[목 차]
프롤로그: 사회생물학자가 호모 사피엔스에게 보내는 편지
1장 생명의 기원
지구 최초의 생명은 어떻게 태어났을까?
하나의 생명체에서 수백만 종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식물은 동물보다 열등하다?
동물은 본능에 따라 행동한다?
동물들의 의사소통은 단순하다?
동물도 경제학을 한다?
동식물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강한 동식물이 살아남는다?
우리가 손뼉 칠 때 동물들은 울고 있다
2장 문제적 동물, 호모 사피엔스
호모 사피엔스는 어떻게 탄생해서 살아남았을까?
현명하다는 호모 사피엔스가 멸종시킨 것들
번식을 멈춘 삶은 무의미하다?
과학이 발달하면 인간 수명도 늘어난다?
성의 주도권은 여성에게 있다
일부일처제는 여성을 위한 제도다?
맞춤 유전자로 태어날 신인류는 행복할까?
3장 다윈의 진화론으로 세상 읽기
진화론은 한 명의 천재에 의해 태어났다?
진화는 항상 더 나은 종을 만들어 낸다?
자연은 적자생존의 세계다?
진화론은 이기주의를 지지한다?
진화도 때로 도박을 한다
세상에는 암수밖에 없을까?
질병도 우리와 함께 진화해 왔다
살인 사건의 해결에도 진화론이 필요하다
4장 팬데믹과 기후 변화
자연 침범을 멈추지 않으면 재앙은 반복된다
바이러스 근절은 불가능하다
화학 백신보다 더 강력한 행동 백신과 생태 백신
생물다양성을 보호해야 우리도 산다
인간이 멈추자 자연이 되살아났다
핵폭탄보다 더 무서운 기후 재앙이 다가온다
기후 변화가 바이러스를 부추기고 북극곰을 위협한다
5장 공생의 미래를 위하여
식량, 에너지, 물이 부족한 시대가 온다
대한민국, 전술 국가에서 전략 국가로
뉴 노멀 시대를 위한 사람 중심 경제
언택트 시대와 AI 시대의 인류
차별과 혐오를 넘어 연대와 협력으로
에필로그: 행복한 진화생물학자가 깨달은 생명의 지혜
[본 문]
서울대학교 대학원 시절 나는 매일 쥐를 20마리씩 죽여야 했다. 교수님이 쥐의 난자로 실험을 하셨는데, 내가 쥐의 난자를 확보해서 인큐베이터 안에다 배양시키는 일을 맡았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쥐 한 마리를 실수로 놓쳤는데, 쥐가 책상 밑으로 도망가 버렸다. 다음 날 점심 도시락을 먹고 있는데 도망간 쥐가 제 발로 기어 나왔다. 쥐를 잡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죽이려는데 손이 벌벌 떨렸다. 그런 내 모습을 본 선배가 자신이 하겠다고 나섰고, 나는 밖으로 나왔다. 나는 관악산 산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더 이상 이 짓은 못 하겠다고. 그때 결심했다. 생명을 죽이지 않고 연구하는 생물학을 하겠다고. 그게 생태학이었다.
[프롤로그: 사회생물학자가 호모 사피엔스에게 보내는 편지]
1983년 미국 다트머스 대학교 연구진은 『사이언스』지에 나무들이 화학물질로 대화를 나눈다는 사실을 밝혔다. 곤충들이 숲 가장자리에 있는 사탕단풍나무를 갉아 먹기 시작하자 공격당한 나무는 유독한 화학물질인 페놀과 탄닌을 분비했다. 그런데 아직 공격당하지 않은 옆의 나무도 똑같은 물질을 내뿜었다. 그 물질이 다음 나무에게 전달되고, 또 다음 나무에게 전달되면서 숲 반대쪽에 있는 나무들도 곤충이 싫어하는 화학물질을 만들어 냈다. “나 지금 당하고 있어”라는 최초 신호를 동료들이 서로 공유한 뒤 방어 전선을 구축한 것이다. 이러한 메커니즘 덕분에 곤충은 숲 전체를 공격하는 데 실패하고 일부 나뭇잎만 먹다 떠나 버린다.
[1장 생명의 기원 / 식물은 동물보다 열등하다?]
2013년 제인 구달 박사와 함께 생명다양성재단을 만들자마자 시작한 프로젝트가 있다. 2009년 5월 서귀포 앞바다에서 불법 포획된 뒤 서울대공원에서 하루 서너 차례씩 돌고래쇼를 하던 남방큰돌고래 ‘제돌이’를 야생으로 돌려보내는 일이었다. 2012년 3월 서울시가 야생 방류 결정을 내리고 예산을 마련한 뒤 곧바로 시민위원회가 꾸려졌다. 나는 시민위원회 위원장이 되어 제돌이의 야생 훈련에 참여했다. 하루에 100km씩 달리던 녀석은 수족관에 갇혀 지내다 보니 사냥 능력을 상실하고 근육도 많이 퇴화되어 있었다. 제돌이와 비슷한 처지에 있던 춘삼이, 삼팔이도 함께 1년 5개월 동안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훈련을 받았다. 2013년 6월 22일 삼팔이가 야생 적응 훈련 중에 찢어진 가두리 틈으로 탈출해 먼저 바다로 돌아갔고, 제돌이와 춘삼이는 한 달 뒤인 7월 18일 제주시 김녕 앞바다에 방류되었다. 방류 장소에 기념비가 세워졌는데, “제돌이의 꿈은 바다였습니다”라는 글이 내 필체로 새겨졌다.
[1장 생명의 기원 / 우리가 손뼉 칠 때 동물들은 울고 있다]
중남미 열대 우림의 잎꾼개미는 이모작 삶의 바람직한 예를 보여 준다. 큰 일개미들은 톱날 같은 턱으로 나뭇잎을 썰어 집으로 가져온다. 그러면 작은 일개미들은 그 잎을 더 잘게 썰고 작아진 잎 위에다 먹이가 될 버섯을 기른다. 미국 오리건 대학교 연구진에 따르면, 늙은 일개미는 젊은 일개미에 비해 나뭇잎을 써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쓴다. 평생 잎을 써느라 톱날이 무뎌진 것이다. 그렇다고 늙은 일개미들이 바로 퇴물 취급을 당하는 건 아니다. 그들은 힘 좋은 젊은이들이 썰어 놓은 나뭇잎을 운반하는 비교적 쉬운 역할을 맡는다. 사회가 자기 구성원들에게 적합한 일을 찾아 맡긴다면, 불필요한 존재는 사라진다. 초고령 시대를 맞아 출산율을 높이는 정책도 세워야겠지만, 부양 인구라며 제쳐 두었던 고령층에 어떤 역할을 맡길지 고민해 볼 시점이다.
[2장 문제적 동물, 호모 사피엔스 / 번식을 멈춘 삶은 무의미하다?]
우리 눈이 약점을 가지게 된 건 순전히 조상 탓이다. 모든 척추동물의 눈은 인간과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척추동물의 조상은 멍게와 비슷하게 생긴 생물이었다. 그때는 투명한 피부 밑에 있던 세포들이 레이다처럼 퍼진 상태에서 빛을 받았고, 그 빛을 자신에게 연결되어 있던 혈관과 신경들에 전달했다. 진화 과정에서 빛을 받던 세포들은 안으로 오그라들면서 작은 구멍을 가진 눈으로 변했지만, 빛이 혈관과 신경을 거쳐 시각세포에 도달하는 방식은 변하지 않았다.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설계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3장 다윈의 진화론으로 세상 읽기 / 진화는 항상 더 나은 종을 만들어 낸다?]
우리는 환경경제학이라는 분야까지 만들어 설득했다. 갯벌을 개발하는 것보다 그대로 두는 것이 정화 작용 측면에서 오히려 이득이라는 사실을 알렸다. 지난 몇십 년간 이런 계산법을 계속 알렸지만 사람들은 듣지 않았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그런데 비슷한 사태가 반복된다면? 5년 만에, 3년 만에, 또는 매년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이제 사람들이 계산을 달리할 것이다. 죽도록 일했는데 몇 년에 한 번씩 경제가 망가지다니. 그럼 손해 아냐? 자연을 보호하는 게 더 유리하네. 개발이 생존인 줄 알았는데 보존이 생존이네. 이제 자연을 건드리지 말자. 사람들이 드디어 제대로 된 계산을 할지 모른다.
[4장 팬데믹과 기후 변화 / 자연 침범을 멈추지 않으면 재앙은 반복된다]
유엔 회의를 주재하느라 캐나다 몬트리올에 자주 갔는데, 2015년 11월에도 총회가 있었다. 몬트리올의 한 호텔에서 짐을 풀고 누웠는데 시차 때문인지 잠이 오지 않았다. 텔레비전을 켜니, 쥐스탱 트뤼도 총리가 내각 수반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장면이 생방송되고 있었다. 총리는 내각 절반을 여성에게 할애하겠다고 이미 공언한 터라, 나는 눈에 불을 켜고 숫자를 세어 보았다. 장관 30명 중 정확히 15명이 여성이었다. 터번을 쓰는 등 인도 출신의 장관도 셋이나 눈에 띄었다. 국방부 장관 하지트 싱 사잔, 혁신·과학·경제발전부 장관 나브디프 바인스, 사회기반시설부 장관 아마르지트 소히였다. 그뿐 아니었다. 총기 사고로 휠체어를 타게 된 켄트 헤르 국가보훈부 장관, 아프가니스탄 난민 출신인 메리엄 몬세프 민주제도부 장관도 있었다. 나는 평생 자연의 다양성을 연구해 왔다. 아름다운 장면도 정말 많이 보았다. 하지만 그날 본 캐나다 내각 임명 장면보다 더 아름다운 다양성을 본 적 없었다. 눈물이 주체할 수 없게 흘러내렸다.
[5장 공생의 미래를 위하여 / 차별과 혐오를 넘어 연대와 협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