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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평평한가? - 포스트휴먼 시대의 문학과 비평(숙명여자대학교 인문학연구소 HK+ 사업단 학술연구총서 15)
- 박인찬 저
- 한울아카데미
- 2026년 0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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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ISBN-13 : 9788946076655 |
|---|---|
| 쪽수 | 334쪽 |
| 크기 | 규격 외(152mm X 225mm, 신국판) |
| 제품구성 | 양장 |
- 인문/역사 > 문학
기계, 자연, 물질 그리고 지배 질서에서 배제된 자들…
결코 평평하지 않은 현실의 불평등을 감추고 정당화하는 힘은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인간중심주의와 위계적 이분법을 넘어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바라보려는 시도
현대사회에 만연한 혐오, 그로부터 소외된 인간과 비인간에 주목하면서 ‘인간-비인간-세계’의 지평을 탐구해 온 숙명여자대학교 인문학연구소 HK+ 사업단 학술연구총서는 이번 총서 15권에서 ‘포스트휴먼 시대의 문학과 비평’을 주제로, 현대 혹은 그 이전에 출간된 대표적인 소설들을 포스트휴먼의 비평적 관점에서 해석한다. 이 글이 표방하는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으로서의 포스트휴먼은 근대 휴머니즘의 근간이 되는 인간, 즉, 유럽, 백인, 남성중심주의적인 인간 개념을 해체하고,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인간 개념을 모색하려는 시도다. 인간과 비(非)인간의 관계를 인간 중심으로 바라보고 자연과 기계를 인간 개선의 도구로만 취급하는 이분법적인 사고, 즉 트랜스휴머니즘을 넘어서는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비평과 더불어 유물론들을 살펴봄으로써 그동안 타자로서 취급받지조차 못한 존재들, 동물, 기계, 물질, 혹은 인간 주체의 대상으로만 간주되어 온 사물들에 주목하여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바라보고자 한다.
이 책의 첫 장을 여는 필립 딕의 『안드로이드들은 전기 양을 꿈꾸는가?』는 인간과 기계의 공진화적 관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인간 중심 사고에서 포스트휴먼의 시각으로 나아가는 주인공의 변화는 이 책의 주제와도 맞닿아 있다. 또한 AI 알고리즘과 ‘언캐니 밸리’라는 주제 아래 이 책이 언급하는, AI에 의해 소외되는 인간의 모습은 자본주의 지배 질서로부터 배제된 자들의 이야기인 『파이트클럽』과 자연스레 이어진다. 자본주의의 기계가 아닌 ‘대안적 세계’는 확정되지 않은, 어느 모호한 중간 지점일 수 있음을 암시하는 「필경사 바틀비」와 『제49호 품목의 경매』 역시 같은 연장선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러한 비평을 통해 이 책은 인간과 비인간이 소외될 수 밖에 없는 사회구조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인간과 비인간은 상호 의존적인 존재임을 재차 강조한다.
포스트휴머니즘 시대의 유물론들,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 형성되는 ‘네트워크’에 주목하다
기후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지구 생태계의 비인간 존재에 관한 논의가 확장되고 있으며, 최근 들어서는 생성형 AI의 확산으로 기술 특이점 논의가 다시 떠올랐다. 과학기술의 가속화와 기후 위기라는 두 갈래 위협 속에서 ‘인간의 위치와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이 책은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에 주목한다. 주체와 객체, 자연과 문화, 인간과 비인간을 기존의 수직적인 위계로서가 아니라 수평적인 지평에서 바라보는 포스트휴먼 유물론들의 공통된 관점은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이다. 따라서 신유물론, 생기론적 유물론, 사물 이론, 객체지향 존재론 등의 핵심 주제 중 하나인 ‘평평한 존재론’에 대해 살펴보는 것은 이 책의 한 줄기를 이룬다.
그중에서도 신유물론은 인간이든 비인간이든, 자연이든 기계와 같은 인공물이든, 세계를 물질성을 지닌 사물 또는 신체들의 네트워크로 본다는 점에서 이 책이 논하는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의 기본 신념과 일치한다. 신유물론이 표방하는 관계적 존재론의 세계에서 인간과 비인간은 서로 얽혀 있고 그 관계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구성한다. 이렇듯 신유물론이 비인간의 행위 능력을 환기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지만, 인간의 행위 능력에 대해서는 논의하기를 꺼린다는 이 책의 지적은 신유물론의 한계와 더불어 행위자로서 인간의 역할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하는 지점이다.
서로가 상호 의존적인 관계에 있음을 알아가며 존재들의 간극은 서서히 메워진다
∎ 필립 딕의 『안드로이드들은 전기 양을 꿈꾸는가?』
∎ 토머슨 핀천의 『브이』
인간 중심 시각에서 보면, 인간과 비인간, 자연물과 인공물, 진짜와 가짜, 진품과 대용품, 순수와 키치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이분법적 위계로 나누어진 간극이 메워지는 순간을 그린 작품으로 이 책은 필립 딕의 『안드로이드들은 전기 양을 꿈꾸는가?』를 다루었다. 딕의 소설은 지금까지 기계적 타자에 불과했던 안드로이드와 인간이 서로 공감하며 서로의 실존에 깊은 영향을 주는 ‘포스트휴먼 공동체’로 진입하는 과정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이때 ‘공감’은 자아와 타자가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로봇의 감정이 인간의 감정과 같은지 다른지를 구분하는 일이 아니라, ‘로봇과 어떻게 관계 맺기를 원하느냐’이다. 로봇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가 핵심인 것이다. 이 책이 강조하는 포스트휴먼 시대 인간 역할의 중요성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토머스 핀천의 『브이』에서 ‘브이’는 다분히 양면적이다. ‘브이’는 죽음에서 자유롭지 않은 인간인 동시에 그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기계다. 생명이냐 기계냐, 인간이냐 인공물이냐, 살아 있느냐 살아 있지 않느냐라는 이분법으로 설명되지 않는 존재가 ‘브이’다. 무질서하다고 볼 수 있는 ‘브이’에서 이 책은 창조적 혼돈, 혹은 복잡성을 배태하고 있을 긍정적인 무질서를 발견한다. 긍정적인 무질서에서는 자유로운 행위자들이 아주 많은 방식으로 상호작용한다. 이분법에 익숙한 인간중심주의자들에게 이러한 무질서의 세계는 두렵고 낯설기만 하다. 무질서할지도 모르는 실재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할 것인가? ‘브이’의 존재 방식은 이분법적 사고에 길들여진 인간들에게 던지는 거대한 질문과도 같다.
AI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21세기의 ‘언캐니 밸리’
첨단기술로 무장한 포스트휴먼 자본주의가 새로운 권력이 된다면
∎ ‘언캐니 밸리’ 그리고 시몬 스톨렌하그의 『일렉트릭 스테이트』
마사히로 모리가 제안한 ‘인간다움의 척도를 세우기 위한’ 언캐니 밸리에서 티머시 모턴의 ‘비인간 존재자들의 평원’으로서 언캐니 밸리에 이르기까지, 포스트휴먼 시대로 오면서 배제와 차별의 서사는 공존과 평등의 서사로 바뀐다. 그렇다면 오늘날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는 AI는 공존과 평등의 서사라 할 수 있을까? 이 책이 모리와 모턴의 언캐니 밸리 논의를 경유하여 보여주는 것은 오늘날 AI 알고리즘으로 인해 소외되는 인간들의 모습이다. AI 자동화 기술에 일자리를 잃고 부랑자처럼 떠돌거나, 눈에 안 띄는 곳에서 데이터를 분류하는 유령 노동자가 된 이들은 스톨렌하그가 『일렉트릭 스테이트』에서 그리는 ‘언캐니 밸리’의 괴기스러움과 연결된다. 『일렉트릭 스테이트』에서 ‘언캐니 밸리’의 괴기스러움은 인간과 기계의 병치를 통해 점점 더 고조되는데, 인간보다 훨씬 큰 기계, 그러한 기계에 지배당하는 인간의 모습은 AI와 인간의 관계를 상기시키며, 낯설지 않은 인상을 준다.
AI 자본주의는 실제와 달리 완전히 자동화된 세계의 환상을 주어 ‘유령성’을 배가시킨다는 점도 문제다. 설상가상으로 그러한 환상 저편에는 알고리즘을 만들고 자동화 기계를 관리·감독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이 지켜보고 있다. 이러한 과학기술과 지배권력의 결탁은 현재의 위기를 더욱 가속화할 수 있다. 매끄럽게 봉합된 AI의 표면 아래 숨겨진 힘들이 현실의 불평등을 감추고 정당화하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때다.
‘확정 짓지 않음’으로써 이항대립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지배 질서 너머 대안적 세계를 향한 기대와 음모
∎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와 토머스 핀천의 『제49호 품목의 경매』
∎ 척 팔라닉의 『파이트클럽』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와 핀천의 『제49호 품목의 경매』는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존재들에 대한 관심을 유사한 구조와 은유를 통해 제시한다. 또한 사회의 엔트로피를 고조시키는 쓰레기처럼 폐기당한 자들이 대안적 세계에 대한 희망의 음모를 유지해 가는 공간은 어떠한지를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이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멜빌의 변호사 화자는 엔트로피가 갈수록 고조되는 미국 사회에서 그 원인을 찾으려 하거나 바틀비로부터 또 다른 에너지의 가능성을 상상하기보다는, 바틀비를 엔트로피의 종착역, 혹은 에너지가 다 죽어버린 더 이상 쓸모없는 사물이자 쓰레기, 폐물로 확정 짓는 반면, 핀천의 이디파 마스는 버려진 폐기물 같은 존재들이 죽은 게 아니라 그들만의 다른 세계를 꿈꾸며 살아가고 있음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이디파는 멜빌의 화자가 배달 불능 편지와 함께 죽은 것으로 폐기한 존재들에게서 대안적 세계에 대한 음모를 발견함으로써 엔트로피로 치닫는 세계에서 구원의 실마리를 모색한다. 이때 이곳과 저곳 중 어느 하나가 아닌 둘 사이의 어느 불확정한 지점에 서 있는 이디파의 모습에서 그녀가 이항대립의 틀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파이트클럽』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정성을 잃고 부랑하는 존재들, 자본주의 사회의 폐기물 혹은 배설물처럼 되어버린 찌꺼기 같은 존재들에 관한 소설이라면, ‘폭력’은 자본주의에 물든 몸을 깨부수고 살아 있음을 되찾는 행위다. 불면증에 걸려 어떤 실재도 느끼지 못한 채 그 결핍을 기계적인 노동과 소비 욕망으로 채우는 화자는 주먹으로 치고받는 과정에서 그동안 맛보지 못했던 진정성을 경험한다. 억압된 것을 표출함으로써 지배 질서에 저항하는 이러한 구조가 설득력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억압-해방의 기저가 되는 주체-타자의 이분법에 갇혀서 가치 설정의 새로운 출구를 찾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인간과 비인간, 그 모두를 아우르는 것으로서 ‘돌봄’
포스트휴먼 시대, 대안적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한 행위자로서 인간의 역할
∎ 알렉산더 와인스타인의 「양과 작별하기」
∎ 김초엽의 『지구 끝의 온실』과 천선란의 『천 개의 파랑』
인간의 삶이 다른 존재들과 연결되어 있고 그 관계에 필수적으로 의존해야만 한다면, 모든 생명체 간에 이루어지는 모든 형태의 돌봄은 존중되어야 한다. 포스트휴먼 돌봄은 이처럼 인간은 세계에 거주하는 다른 인간·비인간 존재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와인스타인의 「양과 작별하기」에서 읽어낼 수 있는 돌봄의 핵심은 비인간 로봇을 인간과 대등한 돌봄 행위자로 인정하는 것이다. 주인공 짐이 로봇 양을 돌보는 모습처럼,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돌봄 관계는 이미 우리와 함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간과되기 쉽다. 비인간을 배제한 돌봄을 상상하기 어렵다면, 앞으로 어떤 돌봄을 지향해야 할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과학기술과 기후 위기가 동시에 가속화하는 오늘날의 위기 속에서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야 지속 가능한 포스트휴먼 시대가 될 것인가. 우리나라의 작가 김초엽과 천선란이 문제로 삼는 기술 만능 자본주의, 정상성 이데올로기, 인간 종 중심주의, 그리고 멸종에 이르는 기후 위기는 포스트휴먼 시대의 문제 상황과 다르지 않다. 기존의 인간중심주의가 인간을 유일한 특권적 행위자로 간주하는 인간우월주의에 치우쳤던 데 반해, 두 작가는 사이보그, 동물, 식물과 같은 비인간들도 종을 횡단하는 협력과 연대의 공동체 ‘함께-만들기’에 기여하는 적극적인 행위자로 인식한다. 인간-남성 중심의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하고, 그로부터 배제된 여성, 노인, 장애인 같은 소수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이처럼 인간 행위자와 비인간 행위자의 관계는 변화를 주고받는 식으로 얽혀 있다. 인간보다 비인간 행위자의 영향이 더 클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인간은 일방적으로 통제하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통제당하지도 않는다. 핵심은 ‘어떻게 하면 그 안에서 지혜롭게 살아갈 것인가’이다. 포스트휴먼 시대의 지속 가능한 방향을 정하고 지혜로운 방법을 찾는 것이 인간으로서 할 일이다.
[목 차]
서론
1부 ∙ 포스트휴먼으로 가는 길
1장 ∙ 포스트휴먼으로 가는 길: 인간과 기계의 공진화를 중심으로
1. 인간, 죽음 없는 삶을 택하다
2. 포스트휴먼, 트랜스휴머니즘,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
3. 인간과 기계의 공진화: 아이작 아시모프와 필립 K. 딕
2장 ∙ 필립 딕의 키치 세상: 『안드로이드들은 전기 양을 꿈꾸는가?』를 통해 본 인간, 기계, 과학소설
1. 우리들의 키치 작가, 필립 딕
2. 키치란 무언인가?
3. 필립 딕의 키치 세상
4. 『전기 양』의 키치 기법과 스타일
5. 인간, 기계, 과학소설의 키치 미학
3장 ∙ 사물의 왕국에서: 토머슨 핀천의 『브이』에 관한 신유물론적 접근
1. 포스트휴머니즘 이후?
2. 엔트로피와 사물
3. 온실과 거리
4. 사물의 왕국에서 다시 만나는 브이의 세계
5. ‘침착함을 유지하되, 배려하기’
2부 ∙ 세계는 평평한가?
4장 ∙ 세계는 평평한가?: 물질 혐오와 포스트휴먼 유물론
1. 시작하며
2. 물질 혐오와 그 전통
3. 포스트휴먼 유물론과 평평한 존재론
4. 평평한 존재론의 정치학(I): 브뤼노 라투르
5. 평평한 존재론의 정치학(II): 마누엘 데란다
6. 평평한 존재론의 정치학(III): 레비 R. 브라이언트 116
7. 마치며
5장 ∙ 다시 찾은 ‘언캐니 밸리’: 시몬 스톨렌하그의 『일렉트릭 스테이트』에 나타난 포스트휴먼 묵시록
1. ‘네 괴물을 사랑하라’
2. 다시 찾은 ‘언캐니 밸리’
3. 『일렉트릭 스테이트』에 나타난 포스트휴먼 묵시록
6장 ∙ 디지털 오토마타에서 길을 잃다: 우리들의 ‘멋진 신세계’
1. 완전히 자동화된 세계로의 초대
2. ‘병 속의 삶’과 ‘디지털 오토마타’
3. ‘체스 두는 투르크’와 ‘엠터크’
4. 필터버블에 따른 세상
5. 헉슬리의 후회와 희망
3부 ∙ 희망, 혁명, 종말
7장 ∙ ‘풀씨’와 ‘편지’: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 토머스 핀천의 『제49호 품목의 경매』, 희망의 음모
1. 불가능한 물음들
2.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 희망의 음모
3. 핀천의 『제49호 품목의 경매』: 음모와 구원
4. 죽은 편지로서의 문학?
8장 ∙ 지금은 혁명할 시간? 혹은 그 불가능한 가능성: 척 팔라닉의 『파이트클럽』
1. 위기의 미국을 말하다
2. “미국 문화에 관한 장의사의 기록”
3. 남성의,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한 소설?
4. 자본주의에서 길 잃은 좀비들의 반란
5. 치유와 구원으로서의 폭력과 혁명
6. 혁명, 그 불가능한 가능성
9장 ∙ 포스트-트루스 시대의 혐오정치: 워드 켄덜의 『오늘을 견뎌라』
1. ‘우리의 포스트-트루스 대통령’
2. 포스트-트루스와 혐오정치
3. 켄덜의 『오늘을 견뎌라』
4. 포스트-트루스의 혐오정치에 맞서기
10장 ∙ 서부의 종말에서 지구의 종말까지: 코맥 매카시와 제프 밴더미어의 파국의 정치학
1. 위기에서 종말로
2. 종말의 정치학: 매카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로드』
3. ‘뉴 위어드’가 경계를 넘을 때: 『소멸』의 젠더 정치학
4부 ∙ 포스트휴먼의 곤경과 돌봄
11장 ∙ 위기인가, 기회인가?: 포스트휴먼의 곤경과 신유물론 정치의 가능성
1. 포스트휴먼으로 접어든 이후
2. 포스트휴먼의 곤경
3. 포스트휴머니즘의 두 층위
4. 신유물론 정치의 가능성
12장 ∙ 돌봄의 새 지평: 포스트휴먼 돌봄의 가능성
1. 돌봄
2. 포스트휴먼 돌봄
3. 비판, 관심, 돌봄
4. 알렉산더 와인스타인의 「양과 작별하기」
13장 ∙ 포스트휴먼의 곤경을 넘어: 김초엽의 『지구 끝의 온실』, 천선란의 『천 개의 파랑』, 비판적 비인간주의
1. 포스트휴먼의 곤경과 한국 SF
2. ‘돈 룩 업’
3. ‘끌림’과 ‘떨림’, 이중나선과 앙상블
4. 비판적 비인간주의
[본 문]
문학 장르 중에서도 소설은 존재의 ‘현실’을 다루는 데 특히 능하다. 평등해야 할 존재들이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한 데 대한 비판과 성찰이 소설을 계속 읽게 만든다. 이 책에서 다루는 대부분의 소설은 그러한 특징을 지닌 작품들이다. … 우리가 살고 있는 동시대를 포스트휴먼 시대로 명명하는 데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사실 국내외 과학소설과 최근 영미 소설을 연구해 온 필자에게 포스트휴먼은 트랜스휴머니즘을 주로 가리키는 친숙한 용어였다. 특히 과학소설은 향상 기술, 탈신체화, 초지능, 특이점 등으로 무장한 트랜스휴머니즘적 상상력의 놀이터이기 쉽다. 캐서린 헤일스(Katherine Hayles)가 훗날 포스트휴머니즘 이론의 이정표가 된 『우리는 어떻게 포스트휴먼이 되었는가(How We Became Posthuman)』를 통해 반박하려고 한 것은 바로 그 대중적인 트랜스휴머니즘이었다. _ 11쪽, “서론”
프로페인의 불만과 불안은 세계의 무생물화에 기인한다. 그리고 무생물화는 다른 생명을 욕망의 수단과 대상으로 삼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인간성을 상실해 가는 근대 주체의 “인간에 의한 인간의 비인간화(dehumanization)”, 대상화, 도구화, 그리고 기계화에서 비롯된다. 프로페인의 눈에 20세기의 거리는 욕망을 채우기 위한 대상들, 도구화된 사물들로 즐비하다. 거리에서 만나는 여성들도 그가 보기에는 점점 더 그러한 대상이 되어간다. 프로페인이 사물에 대해 혐오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에게 세계는 ‘살아 있는 존재’와 ‘살아 있지 않은 사물’로 나뉜다. 그 세계에서 “사물은 욕망하지 않는다(things do not want); [욕망하는 건] 오직 인간뿐이다. 대신 사물은 할 것을 한다(But things do what they do)”(V. 19). 이렇게 홀로 되뇐 뒤 그는 의지나 욕망이 없는 사물들과 다르다는 것을 웅변하기 위해 지는 태양을 향해 보란 듯이 오줌을 눈다. _ 84~85쪽, “3장 ∙ 사물의 왕국에서”
오늘의 멋진 신세계에 거주하는 많은 이들은 디지털적으로 여과된 세계에서 거의 벗어나기 힘들 정도로 빠져 지낸다. 20세기의 아날로그 시대를 대표하는 포드 자동화 시스템이 AI를 기반으로 하는 21세기의 디지털 오토마타로 바뀌면서 복잡도와 강도가 심화하기는 했지만, 병 속에서의 삶을 산다는 점에서는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 자동으로 재생되는 유튜브부터 아마존닷컴 같은 전자상거래 사이트, 자율주행자동차, 생성형 AI, 스마트시티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 전체가 인터넷과 데이터 알고리즘으로 구축된 거대한 디지털 오토마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디지털 오토마타 역시 자동기계라는 인공물이 혼자 알아서 생각하고 움직이는 듯한 환상에 의존하기는 마찬가지다. 디지털 오토마타의 자율성은 일종의 조성된 환각이지 실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기존의 오토마타들과 다르지 않다. _ 150~151쪽, “6장 ∙ 디지털 오토마타에서 길을 잃다”
『오늘을 견뎌라』의 포스트-트루스 정치는 결국에는 감정과 만남으로써 힘을 얻는다. 이 소설에서 그러한 감정정치는 백인 멸종의 포스트-트루스가 정치적으로 전유해서 이용하려는 혐오 감정의 복합체, 그리고 그 감정이 전략적으로 향해 있는 대상들로 이루어진다. 켄덜의 소설은 다문화주의에 대한 두려움과 적개심에 천착한다. 다문화주의의 “유일하고 중대한 피해자는 유럽계 문화”(HBTD 59)라는 대목이 이 점을 재차 확인시킨다. 이렇게 백인과 그 문화를 피해자로 만든 책임은 세계 정부에 있지만,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은 비백인, 즉 유색인종들이다. 따라서 이 작품의 혐오정치에는 인종혐오가 뿌리 깊이 박혀 있다. 과거에는 모든 인종의 우두머리가 백인이었으나 다문화의 여파로 더는 그러지 못하게 되자, 그것이 한편으로는 유색인에 대한 끊이지 않는 멸시와 증오로, 다른 한편으로는 백인을 위협하는 두려움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_ 246~247쪽, “9장 ∙ 포스트-트루스 시대의 혐오정치”
생물학자를 끊임없이 사로잡는 것은 그러한 트랜스적인 변형 행위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타자성’이다. 변형의 엔진으로 작동되는 X 구역은 그녀로 하여금 자신을 내어주고 녹아들게 만들지만, 정작 그 세계는 스스로를 내어주지도, 그렇다고 드러내지도 않는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경계 지역에 서식하는 생물들에게 매료되어 왔다. 하지만 오래 쳐다볼수록, 그것들은 점점 더 이해하기 어려워지고, 결국에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이윽고 그녀는 그것들이 분류학, 묘사, 재현, 그 어떤 것으로도 ‘환원될 수 없다’(A 175)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표면의 색깔, 형태, 혹은 특징의 변화만으로는 그들을 전혀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생물학자의 기록은 ‘설명할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해명할 수 없는’, ‘불가능한’과 같은 유사한 단어들로 가득 차 있다. _ 268~269쪽, “10장 ∙ 서부의 종말에서 지구의 종말까지”
신유물론에서의 물질은 생성과 변화의 잠재력을 갖고 있다. 물질성이란 죽은 듯이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가 될 수 있는 물질의 생성적 능력이다. 신유물론에서 물질을 ‘되기(becoming)’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그런데 이 ‘되기’는 혼자가 아니라 다른 행위자들과의 관계와 상호작용 속에서 이루어진다. 다르게 말하면, 비인간 행위자가 인간 행위자를 행동하게 하고 그에게 영향을 끼치듯이, 마찬가지로 인간 행위자 또한 비인간 행위자를 행동하게 하고 그에게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 신유물론은 비인간의 행위 능력에 대해서는 그렇게 강조하면서도, 인간의 행위 능력에 대해서는 함구하거나 논의하기를 꺼린다. 지구상의 물질은 필연적으로 특정 시공간에서 인간을 포함한 다른 물질적 객체들과 관계를 맺기 마련이다. 물질성은 그러한 객체들의 관계로부터 나오며, 그것들이 어떻게 배치되느냐에 따라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고,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단적인 예가 ‘인간에 의해 야기된(anthropogenic)’ 현재의 기후 위기다. 그로 인한 영향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현실에서 인간 행위자가 배제된 신유물론 논의는 아무리 뛰어나도 공허할 수밖에 없다. _ 296~297쪽, “11장 ∙ 위기인가, 기회인가?”

박인찬
숙명여자대학교 영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인문학연구소장과 HK+ 지원사업 단장을 맡고 있다.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텍사스 대학교에서 포스트모더니즘 소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문학, 포스트휴머니즘, 과학소설, 디지털문화 연구 등을 가르치며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포스트휴머니즘의 쟁점들』, 『혐오 이론』 1~2권(이상 공저)과 『소설의 죽음 이후』 등이 있으며, 역서로 셰릴 빈트의 『인간 이후: 21세기 문화, 이론, 그리고 비평』과 토머스 핀천의 『블리딩 엣지』, 『바인랜드』 등이 있다. 한국현대영미소설학회장을 역임했으며, 한국영어영문학회 우수논문상, 새한영어영문학회 만청학술상, 한국아메리카학회 우암논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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