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광고
AD광고5만원 이상 결제 시 (*배송비 제외)
정가제FREE(상품/사은품) 금액이 2,000원 이상이면 2,000원 추가적립
10만원 이상 결제 시 (*배송비 제외)
정가제FREE(상품/사은품) 금액이 2,000원 이상이면 2,000원 추가적립
정가제FREE(상품/사은품) 금액이 5,000원 이상이면 5,000원 추가적립
신용카드 무이자할부 안내
결제사 혜택 안내




배송안내
- 배송지역 선택
- 주소 검색
| 네이버페이 구매하기 | 찜하기 |
[네이버페이]
| ISBN | ISBN-13 : 9791130683638 |
|---|---|
| 쪽수 | 252쪽 |
| 크기 | B6(127mm X 188mm, 사륙판) |
| 제품구성 | 단행본 |
- 소설/에세이/시 > 수필
★ 2026년 퓰리처상 수상 ★ 2026 앤드류 카네기 메달 수상 ★ 2025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
★ 뉴욕 타임스 올해의 책 ★ 아마존 올해의 책 ★ 뉴요커 올해의 책 ★ 타임 올해의 책
두 아들을 자살로 잃은 세계적 거장 이윤 리가 심연의 자리에서 써 내려간 존재론적 에세이
“발생한 고통은 발생할 고통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이미 겪는 사람이 있다고, 그리고 아직 살아 있다고.”_신형철
“경외한다”_ 살만 루슈디
“낯설고 심오하며, 절대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_『뉴욕 타임스』
상실의 경험을 담은 책은 무수히 많다. 그러나 누군가의 고통이 눈물을 자아낼지언정 늘 탁월한 문학이 되지는 못한다. 현재 미국 문단을 대표하는 소설가 중 한 사람인 이윤 리가 두 아들을 자살로 잃고 남긴 이 회고록은 그 반대에 가깝다. 2026년 퓰리처상, 앤드류 카네기 메달을 수상하는 등 문단을 압도했으며 국내 독자들에게도 입소문이 퍼진 이 심연의 기록은 독자에게도 자신에게도 절대 헛된 감상과 위안을 건네지 않겠다는 결기로 번뜩인다. 어떤 위로도 소용없다고 느껴본 적 있는 독자라면 극한의 상황에서 가능한 사랑과 진실이 무엇인지, 불가능한 것은 또 무엇인지 직시하는 이윤 리의 목소리에서 기이하고도 흔들림 없는 아름다움을 발견할 것이다.
[목 차]
1. 이것을 좋게 말할 방법은 없다
2. 사실의 문제
3. 돌연 심연에 놓이다 (그리고 번지수를 잘못 찾아온 독자를 위한 단서)
4. “인간은 죽는다, 그리고 행복하지 않다”
5. 직감은 서사다
6. 삶의 틀
7. 엄마의 직감이란 게 그런 것
8. 자식들은 죽고 부모는 계속 살아간다
9. 현실을 새로이 인식하는 것
10. 또 다른 신생아
11. 심연이란 서식지
12.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
13. 돌멩이는 바윗돌이 아니다
14. 지금과 그때, 지금 또 지금, 지금과 나중
15. 형제이자 단짝
16. 지금, 지금, 지금, 또 지금
17. 외로움이란 돌멩이
18. 제자리걸음
19. 다시, 심연
20. 살 가치가 있는 삶, 견딜 만한 삶
21. 제임스에게는 하찮은 희극이었을 일들
22. 아이들에게 말하지 않은 것들
23. 자식들은 죽고 부모는 계속 살아간다
추천의 말
옮긴이의 말
[본 문]
나는 줄곧 깨어 있었으므로 홀연 깨어나지도 않았다. 우리 아이들의 엄마로 살아온 그 모든 세월 동안 한시도 소홀하거나 경계를 늦춘 적이 없었다. 내가 직면한 필연은 ‘냉혹한’이라는 형용사가 필요치 않다. 필연, 나의 필연은 극한이고 극한 앞에는 어떤 형용사가 놓인들 별 의미를 지니지 못하기에.
ㅡ p.17 「1장 이것을 좋게 말할 방법은 없다」 중에서
그럼에도 여전히 삶을 살아가야 한다. 비극의 안에서, 비극의 밖에서, 그리고 비극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쓰는 일은 나 자신을 그 기이한 영역에서 분리해 내는 방법인 동시에 그 영역에 영구히 안착시키는 방법이기도 하다.
ㅡ p.36 「3장 돌연 심연에 놓이다」 중에서
사실에 대해 감정을 담아 쓸 수도 있고 감정에 대해 사실을 말하듯 쓸 수도 있다. 하지만 절대 사실을 피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여기, 이 절박한 자리에, 부모들이 여간해서는 살아가지 않는 곳에 있다(인위적 재난이나 자연재해가 삶을 송두리째 쓸어버리지 않는 오늘날의 환경에서는 그렇다). 나는 이 책을 ‘나는 심연 속에 있다’는 단 하나의 확정된 사실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ㅡ p.36-37 「3장 돌연 심연에 놓이다」 중에서
이 책은 삶의 극한에 관한 책이다. 세상 어느 부모도 머물고 싶지 않을 만큼 깊은 심연의 자리에서 쓴, 사실과 논리에 관한 책이다. 이 책에서 나는 당신이 내게 묻고 싶어 할 법한 질문을 하지도, 당신이 이 책에서 기대할지 모를 결론 같은 것도 제공하지 않을 것이다. (…) 이 책은 일부 독자가 갈망할지도 모를 말끔한 서사를 안겨주지 않을 것이다. 시련을 이겨내고 승리를 거둔다든지, 몰이해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식과 지혜를 획득한다든지, 고난을 이겨낸 끝에 초월의 순간을 맞는다는 이야기 따위는 없을 것이다. 실현, 영감, 변화라는 손쉬운 만족감을 제공하지도 않을 것이다.
ㅡ p.42-43 「3장 돌연 심연에 놓이다」 중에서
예전에 몽테뉴의 말을 인용하기를 좋아했다. “철학한다는 것은 죽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지금은 다른 변주가 있음을 안다.
철학한다는 것은 죽음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철학한다는 것은 죽을 때까지 그 죽음들과 사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철학한다는 것은 길을 잃어서가 아니라 돌연 심연에 놓여 그곳에서 살아갈 때 할 수 있는 일이다.
ㅡ p.43 「제3장 돌연 심연에 놓이다」 중에서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아이들이 존재할 공간을 내어주고, 그들이 진정한 자신이 되는 데 필요한 일을 하도록 허용하는 일밖에 뭘 더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부모가 아무리 노력한들, 아이가 자라면서 아무리 다양한 존재 방식과 행동 범위를 경험해 본들 어떤 아이들은 결국 주어진 삶을 다 살지 못하고 죽는다. 아이들은 죽는다. 그리고 행복하지 않다. 그리고 부모는 끝내 알지 못한다. 그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아서 죽은 것인지, 아니면 언젠가는 죽음을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 일찍 감지한 탓에 행복하지 않던 것인지.
ㅡ p.55-56 「제4장 “인간은 죽는다, 그리고 행복하지 않다”」 중에서
일이 잘못될 수 있는 길은 무수히 많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어떻게든 아이들이 결국 괜찮아지기만을 바란다. 그냥 괜찮을 거야. 눈먼 용기를 내든 희망적 사고를 따르든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그렇게 말하고, 부모에게는 이 두 가지가 전부 다 필요하다.
ㅡ p.58 「5장 직감은 서사다」 중에서
빈센트는 그 비슷한 나이였을 때 대놓고 물었다. “엄마는 고통을 이해하고 고통에 대해 그렇게 잘 쓰면서 왜 우리를 낳았어?” 내가 끝내 좋은 답을 내놓지 못한 질문.
ㅡ p.62 「5장 직감은 서사다」 중에서
자식들은 죽고 부모는 계속 살아간다. 그 부모가 계속 살아가는 이유는 그것이 자식을 계속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자식의 죽음이 너무도 쉽게 하루는 한낱 뉴스거리가 됐다가 다음 날에는 뒷이야기가, 그러다 결국에는 통계의 일부가 돼버리기 때문이다.
ㅡ p.90 「8장 자식들은 죽고 부모는 계속 살아간다」 중에서
죽음은 삶의 지축을 뒤흔들어서 사람의 모든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점에서 블랙홀이 되지 못한다. 바로 죽음이 모든 시간을 흡수하진 못한다는 점.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나서도 나날을 살아내야 하는 이들, 사람을 무기력하게 하는 우울증에 시달리는 이들은 이 사실을 안다. 시간이 멈추고, 시간이 단조롭게 느껴지며, 그러다가 마침내 시간이 시시포스의 바위가 되고 만다는 사실. 아침부터 밤까지 시간을 끌고 가다가 잠이 찾아오면 거의 안식이 되지 못하는 보잘것없는 위안을 얻는다. 그러다 다음 날 그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비통해하거나 우울증과 싸우면서 느끼는 지독한 피로감은 끝없이 시간을 이고 가려 안간힘을 쓰는 데서 비롯한다. 그 피로감은 먹지도 자지도 않으려 하며 온종일 울어대기만 하는 갓난아기를 계속해서 안고 있는 느낌과 비슷하다. 아기를 내려놓을 수 없듯이 시간도 내려놓을 수 없다. 어떻게든 이고 가야 한다.
ㅡ p.101-102 「10장 또 다른 신생아」 중에서
아이의 죽음은 시간과 공간을 다시 정렬한다. 만약 심연 속에서 여생을 살아야 한다면 심연이 내 서식지다. 자기의 서식지와 싸우느라 기운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내게 주어진 것은 오직 이 심연이며, 그것이 내 삶이다.
ㅡ p.108 「11장 심연이란 서식지」 중에서
나는 내 슬픔에 종착점이 있기를 원치 않는다. 아이의 죽음은 폭염도 폭설도 아니다. 서둘러 통과해 이겨야 하는 장애물 경주도 아니고, 회복해야 하는 급성이나 만성 질환도 아니다. 애도란 결국 그 단어보다 훨씬 더 큰 무언가를 하나의 지름길로 축약해 버리는 말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내 아이들을 생각하는 일은 공기와도 같고 시간과도 같다. 아이들을 생각하는 일은 내가 삶의 끝에 도달할 때야 비로소 끝날 것이다.
ㅡ p.111 「11장 심연이란 서식지」 중에서
슬픔이 내 없어진 아이의 방을 가득 채우고,
아이의 침대에 눕고, 나와 함께 걸어 다니며,
아이의 어여쁜 얼굴을 하고, 아이의 말을 되풀이하오.
슬픔이 아이의 그 모든 고운 면모를 떠올리게 하고,
아이의 텅 빈 옷을 그의 형상으로 채우오.
그러니 내가 슬픔을 사랑해야 마땅하지 않겠소?
ㅡ p.111-112 「11장 심연이란 서식지」 중에서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 제임스가 죽고 나서는 계속 이 문장을 떠올리게 된다.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라다가 때가 오면 죽는다.
「12장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 중에서
내 정원은 희망이나 재생의 비유가 아니다. 꽃이 밝음과 낙관의 전령 노릇을 해야 할 이유는 없다.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 자살하거나 분노하는 장미는 없고, 우울하거나 반항하는 백합도 없다. 식물에는 오직 하나의 목표만 있다. 바로 살아가는 것이다. 살아가고자 식물은 자랄 수 있을 때 자라고 그럴 수 없을 때 휴면에 들어간다. 그렇게 죽을 때까지 살아간다. 그러다 자연이 정한 때에 죽거나 자연의 다른 요소 때문에 쓰러진다. 정원은 한 자리를 맡아놓고 있을 뿐이다. 꽃도 마찬가지다.
ㅡ p.116 「12장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 116쪽
엄마는 자식을 위해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지만, 자식이 느끼는 세상의 형언할 수 없는 광대함과 낯섦은 끝내 이해할 수 없다는 것. 엄마는 그 세상을 단지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게 해서 아이가 덜 외롭다고 느끼게 해줄 수 없다는 것. 엄마는 자식의 목숨을 지켜낼 수 없다는 것. 이것들이 내가 이제부터 여생 동안 매일매일 안고 살아가야 할 사실이다.
ㅡ p.151 「15장 형제이자 단짝」 중에서
“세상에 고통을 보여줘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지 마세요. 당신의 눈물을 볼 자격이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어요.”
ㅡ p.166-167 「17장 외로움이란 돌멩이」 중에서
말, 말, 말. 말은 단단한 땅 위에도, 구름 위에도 성을 쌓는다. 말은 갑옷이 되고, 감옥의 벽이 된다. 말은 거센 역류가 되고, 한순간에 꺼져 내리는 발밑 유사流沙가 된다. 말은 결코 당연하게 여길 수도, 말을 언제나 믿을 수도 없다. 그렇다 한들 말이 아니면 내 정신이 어디에 머물 수 있을까?
ㅡ p.182-183 「19장 다시, 심연」 중에서
“삶이 살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는 일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카뮈가 한 말이다. 내가 자살 충동에 시달리던 때 누가 내게 삶이 살 가치가 있느냐고 물었다면 나는 대답했을 것이다. 네, 물론이죠. 나는 엄마였고, 삶은 살 가치가 있었다.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적어도 내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상담사는 내게 혹시 아이들을 잃을까 봐 두려우냐고 물었고, 나는 내가 아니라 아이들이 겪을 고통 때문에 두려운 것이라고 대답했다. 아이들이 나를 잃을까 봐 두려웠고, 그들을 대신해 품었던 그 두려움은 나를 나의 가장 사나운 적으로 만들었다.
ㅡ p.195-196 「20장 살 가치가 있는 삶, 견딜 만한 삶」 중에서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게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오래된 이야기를 들려줬다. 캄캄한 어둠 속에 긴 회랑이 하나 있는데, 환하게 불이 켜져 있고 따뜻하며 양쪽 끝에는 창이 열려 있다. 새 한 마리가 한쪽 끝 창으로 날아 들어와 순식간에 다른 쪽 끝으로 빠져나간다. 의사는 그 회랑이 곧 삶이고, 우리는 모두 그 차가운 어둠에서 잠깐 따뜻하고 밝은 곳으로 들어왔다가 다음 순간 그 차가운 어둠 속으로 다시 돌아가는 새들이라고 말했다. “제가 조언하자면, 다시는 그런 질문을 하지 말라는 겁니다. 삶은 과연 견딜 만한가? 우리는 그 질문에 충분하고 신중한 대답을 내어놓을 시간이 사실 없어요.”
ㅡ p.200 「20장 살 가치가 있는 삶, 견딜 만한 삶」 중에서
고통을 더 잘 겪어내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빈센트가 죽고 나서도 몰랐다. 이 사실을 나는 제임스가 죽고 나서야 배웠다.
ㅡ p.210 「20장 살 가치가 있는 삶, 견딜 만한 삶」 중에서
흔히 우리는 어떤 결승선을 마음에 두고, 번거로움이나 아픔을 되도록 덜 겪으면서 그 결승선에 최대한 빨리 도달할 방법을 찾는다. 이런 충동은 시간을 다른 방식으로 견디려는 욕구, 이를테면 시간을 길들여 어떤 이득을 얻겠다는 욕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삶에서 시간은 길들일 수 없다.
ㅡ p.218-219 「21장 제임스에게는 하찮은 희극이었을 일들」 중에서
때로 엄마와 아이는 나란히 놓인 두 손 같다. 간신히 닿아 있거나 아니면 깍지를 낀 두 손. 그러다 세상이 뒤집히고 한 손만 남는다. 모든 것인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지금, 지금, 지금, 또 지금이라 부르는 것을 붙잡은 채로.
ㅡ p.243 「23장 자식들은 죽고 부모는 계속 살아간다」 중에서
- 2026 퓰리처상 심사위원회
- 배리 하디먼 (NPR)
- 애너벨 거터먼 (《타임》 (2026 올해의 책 상반기 선정))
- 아일 맥엘로이 (《뉴욕 매거진》 (2026 올해의 책 상반기 선정))
- 알렉산드라 얼터 (《뉴욕 타임스》)
- 코트니 텐즈 (《워싱턴 포스트》)
- 마이클 매그라스 (《셀프 어웨어니스》)
- 비카스 투라키아 (《미네소타 스타 트리뷴》)
- 매들린 슐츠 (《시카고 리뷰 오브 북스》)
- 헬렌 브라운 (《텔레그래프》)
- 조애나 토머스코 (《선데이 타임스》)
- 로다 펑 (《보스턴 글로브》)
- 댄 피펜브링 (《하퍼스 매거진》)
- 베선 패트릭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 섀넌 칼린 (《타임》)
- 마이클 웰치 (《시카고 리뷰 오브 북스》)
- 그레타 레인보 (《버슬》)
- 《퍼블리셔스 위클리》

두 아들을 자살로 잃은 소설가가 심연의 자리에서 쓴
전 세계 평단을 낯선 경이에 빠뜨린 산문
“이걸 좋게 말할 방법이 없네요.”2024년 2월 소설가 이윤 리가 자신의 문을 두드린 경찰에게 들은 첫마디다. 부드럽게 말할 방법도 없고, 잘 말할 방법도 없는 그 일은 열아홉 살 둘째 아들 제임스가 스스로 삶을 거두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런데 사실 이윤 리에게 이것은 처음 겪는 일이 아니었다. 2017년 열여섯 살이었던 첫째 아들 빈센트가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그리스 비극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 차마 헤아릴 수도 없는 상실 앞에서 저자는 세상 밖으로 숨어버리지도, 감정의 수렁 속으로 침잠하지도 않는다. 대신 책상 앞에 앉아 아들을 위한 책 한 권을 썼다. 지금까지 있었던 그 어떤 애도의 기록과도 닮지 않은 이 책은 출간과 동시에 전 세계의 평단을 압도했다.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 담담하고 묵직하게 울리는 제목의 이 책은 2026년 퓰리처상, 2026년 카네기 메달을 수상했고 2025년 전미도서상 최종후보에 올랐으며 뉴욕타임스와 아마존의 올해의 책 외에도 수없이 많은 목록에 등재되었다. 소설가 살만 루슈디는 이 책을 두고 “경외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상실의 고통을 말하는 책은 무수하다. 대체 어떤 책이기에 이처럼 평단과 독자들을 흔든 것일까.
당신이 이해해주지 않아도 된다
변명도 애도도 거부하고 심연에서 살기를 선택하다
가장 슬프면서도 또한 가장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은 이것이다. 두 번째로 아이를 잃게 되면 이전 경험에서 아이를 잃는 것에 대해 몇 가지를 이미 배워 안다는 사실.
- 본문 중에서
둘째 아들의 죽음 이후, 저자는 일상을 이어간다. 예정되어 있던 피아노 레슨에 가고, 마감이 약속된 원고를 쓴다. 건강한 재료로 요리를 하고, 정원에 구근을 심는다. 그리고 몇 달 지나지 않아 이 책을 쓰기 시작한다. 그 모습은 모두 우리가 아는 애도의 이야기와는 너무도 동떨어져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그는 유난히 회복이 재빠르거나 감정이 없는 사람인가? 두 아들을 자살로 잃은 어머니에게 기대되는 모습과 그의 삶이 그리는 궤적 사이의 간극은 어떤 독자에게 조심스러운 의구심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 실제로 중국 언론은 그의 비극을 요란한 가십으로 만들었고, 사람들은 저마다 납득할 수 있는 원인과 책임을 찾아 그의 삶을 재구성하려 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어떠한 변명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극복과 치유에 대한 서사도, 새로운 삶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결론도 없다. 그는 애도라는 개념을 거부한다. 그 말에는 흔히 슬픔의 단계를 충실히 통과하면 언젠가 터널에 끝이 있으리라는 하나의 과정이 전제되어 있다. 그러나 그에게 이제 상실이 만든 심연은 언젠가 벗어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그가 살아갈 서식지다. 앞으로 이곳에 쭉 머물러야 하기에 서둘러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들을 그리워하는 일은 그의 삶이 다할 때나 끝날 일이다. 이 책을 쓰는 것은 그 공허 곁에서 살아갈 자리를 만들어나가는 작업이기도 하다.
극한의 자리에서 쓴 “사실과 논리에 관한 책”
가짜 위안 대신 붙들 수 있는 단 한 가지
저자는 첫째 아들 빈센트를 잃고 『이성이 다하는 곳Where Reasons End』이라는 소설을 썼다. 자신과 떠나간 첫째 아들이 문학과 언어, 삶과 죽음을 두고 끝없이 대화하는 작품이다. 죽은 아이가 돌아와 어머니와 논쟁할 수 없기에 그 책은 소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실제로 한계에 달할 때까지 대화를 나누었기에 저자는 그 책이 빈센트가 환영하고 사랑할만한 것이라 믿을 수 있었다.
그러나 둘째 아들 제임스를 위한 언어를 찾는 것은 훨씬 어려웠다. 제임스는 말이 적었고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비유보다 사실을, 감정보다 논리를 편안해했다. 그래서 제임스를 위한 책은 그를 함부로 상상하지 않으려는 기록이다. 저자는 이 책을 “사실과 논리에 관한 책”이라 부른다. 이 책은 제임스의 방식으로 제임스에게 다가가려는 시도다. 하지만 그를 완전히 이해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자신의 슬픔으로 채우지 않기 위해서다.
심연의 자리에서 이윤 리가 붙들 수 있는 것은 오직 사실이다. 가짜 위로에 미혹되지 않고, 일어난 일을 다른 이야기로 바꾸지 않으며, 추론과 희망을 사실로 둔갑시키지 않는 것. 그는 이 태도를 ‘근본적 수용’이라 부른다. 그래서 이 책에는 후회와 가정과 자책이 뒤섞인 비통한 외침 또한 없다. 만약을 가정하지도, 교훈을 길어올리지도 않는다. 그런 그가 도달하는 생각은 쉽게 공감하거나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는 영역 바깥에 있다. 그러나 삶의 가장 극한에서도 사실로부터 시선을 돌리지 않는 그의 문장은 독자를 전혀 낯선 사유의 자리로 데려간다.
우리 아이들의 예민함과 독특함을 존중해서 아이들에게 자기 자신으로 자랄 공간을 최대한으로 마련해 주는 일이 내가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 나는 아이들을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한다. 그러나 사랑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일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자기 삶을 끝내기로 한 그들의 선택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하리라.
- 본문 중에서
그러나,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절대적 상실 앞에서 발견한 유일한 사랑의 방법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작품을 써온 이윤 리에게 언어가 닿지 못하는 곳이 있다는 사실은 낯설지 않다. 더군다나 두 아들의 죽음 앞에서는 어떤 언어도 정확하지 않다. 가슴이 찢어진다거나 산산이 부서졌다는 말조차 실제로 일어난 일을 대신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살 수 있는 곳 또한 언어밖에 없기에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말을 찾아 하나하나 쌓아 나간다.
사실을 기록하고, 기억을 불러오고, 문장을 하나씩 놓는다. 제임스가 좋아하던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과 카뮈를 읽고, 빈센트가 좋아하던 아리아 「꽃의 이중창」을 듣는다. 자신이 싸워온 우울의 시간과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짚는다. 빈센트의 화사한 색의 플리스 자켓을 꺼내 입는다. 아이들이 어린 시절 서로 주고받던 농담과 다툼을 기록한다. 시간과 기억이 비선형적으로 교차하는 동안 빈센트와 제임스는 ‘두 번의 자살’이라는 하나의 비극에서 빠져나와 저마다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빵을 굽고 시를 쓰고 뜨개질을 했던 빈센트, 말보다 침묵과 논리를 좋아하고 여덟 개 언어를 익혔던 제임스. 이 책은 죽은 아이들을 되살릴 수는 없지만, 죽음이 그들에 관해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이야기가 되는 것을 막는다.
그러나 그 고요한 집념 아래 흐르는 고통의 저류를 느끼며 독자는 거듭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왜 이 작업을 해야 하는가. 왜 이 모든 것을 잃고도 살아가야 하는가.
그것이 자식을 계속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죽지 않는 동사는 ‘이다to be’이다. 빈센트는 빈센트였고, 지금도 빈센트이며, 언제까지나 빈센트일 것이다. 제임스는 제임스였고, 지금도 제임스이며, 언제까지나 제임스일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부모였고, 지금도 그들의 부모이며, 언제까지나 그들의 부모일 것이다. 지금과 그때로 나뉘지도, 지금과 나중으로 나뉘지도 않는다. 오직 지금, 지금, 지금, 또 지금만이 있을 뿐이다.
- 본문 중에서
신형철 문학평론가가 한 문단의 추천사로는
도무지 다 말할 수 없던 책
하반기 모든 추천사 요청을 거절하려 했던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이 책을 받아들고 고민 끝에 수락했다. 그 작업에는 예상 밖으로 많은 품이 들었다. 모든 문장의 밀도가 높아 좀처럼 빠르게 읽어 내려갈 수 없었고, 뒤표지에 들어갈 한 문단 분량으로는 도무지 읽은 것을 담을 수 없었다. 한마디도 깎아낼 수 없는 추천의 글과 함께 그는 책을 사지 않은 사람도 모두 이 글의 전문을 읽을 수 있게 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리하여 여기 싣는다.
이윤 리는 두 번의 자살 시도 이후 회고록을 썼고, 2017년 첫째 아들이 자살한 후엔 소설을 썼으며, 2024년 둘째마저 같은 방식으로 떠난 뒤엔 두 번째 회고록인 이 책을 썼다. 상상이 불가능한 종류의 고통을 겪고 있을 생면부지의 작가에게 동정과 연민을 느끼면서도 우리는 이렇게 묻고 싶어진다. 왜 책을 쓰는가? 어떻게 그걸 쓸 수 있는가?
삶에서 경험과 이해는 동시적이지 않다. 십 년 전의 경험을 오늘 문득 이해하는 게 인간이다. 그 시간차 속에서 우리는 자신이 겪은 일을 스스로 납득하기 위해 헤맨다. 작가도 그렇다. 다만 그들은 무엇이건 문장으로 옮기지 않으면 그걸 이해했다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쓰는 것이다. ‘비극임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비극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이해란 무엇인가. 답을 찾는다는 뜻인가? 저 죽음들에 대한, 정연하고 그래서 기만적인 답을? 저자는 거부한다. 답을 갈구하는 본능을 결연한 지성으로 억제한다. 이제 세상에 없는 두 아이의 내면을 추론할 권리는 엄마에게도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 경우 이해란 이해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그 불가능의 구조를 분명히 해두는 일에 불과하다.
그런 무지의 상태에선 애도 작업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저자는 다시 거부한다. 애도 같은 건 없다. 심연에서 햇살로 나아가는 단계나 방법 따윈 없다. 심연에서 그는 산다. 자식을 잃고 울다 바위가 된 니오베는 죽은 게 아니라 돌덩어리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냐고? 저자는 말한다. 그게 자식을 계속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우리가 이런 것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이 책에서, 발생한 고통은 발생할 고통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이미 겪은 사람이 있다고, 그리고 아직 살아 있다고. 그게 필요한 독자가 있을 것이다. 또 우리는 배운다. ‘고통받는’ 게 아니라 ‘고통하는’ 인간의 내면, 그리고 그 곁에 꼭 있어야/없어야 할 것들에 대해서. 이 앎이 필요한 때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 〈추천의 말〉 전문

이윤 리(저자)
(Yiyun Li)
1972년 베이징에서 태어났다. 베이징대학교를 졸업하고 1996년에 면역학을 공부하기 위해 아이오와대학교로 유학 왔다. 재학 중 유서 깊은 아이오와대학 작가 워크숍에서 소설 창작의 재능을 발견했다. 2000년에 면역학 석사 학위를, 2005년에 동 대학교에서 문예창작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첫 소설집 『천년의 기도』로 그해 최고의 데뷔 작품에 수여하는 가디언지 퍼스트 북 어워드를 받았으며, 연이어 캘리포니아 북 어워드 데뷔 작품상, 프랭크 오코너 국제 단편소설상, 펜/헤밍웨이상을 받으며 영미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진 작가 중 한 명으로 부상했다. 2007년에 리는 《그랜타》의 미국 최고의 젊은 소설가 21명에, 2010년에는 《뉴요커》의 40세 이하 최고의 작가 20명에 선정되었다. 리는 소위 천재들의 상이라고 불리는 맥아더 펠로십과 구겐하임 펠로십 수상자이며, 윈덤캠벨 문학상과 단편 소설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룬 작가들에게 주어지는 펜/맬러머드상을 받았다. 현재 프린스턴대학교에서 문예창작부 학장으로 재직하며 작가들을 양성하고 교육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는 전미도서상 최종후보에 올랐으며,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정혜윤(역자)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지금은 가족과 함께 뉴욕주 롱아일랜드에 거주하며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산책을 좋아하고 문학과 인문·사회 분야 도서에 관심이 많다. 옮긴 책으로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 『H마트에서 울다』, 『내가 알게 된 모든 것』, 『마법 같은 언어』, 『패티미』, 『미나 리의 마지막 이야기』, 『작가의 책』, 『지금, 호메로스를 읽어야 하는 이유』, 『디베이터』, 『예정된 전쟁』, 『전문가와 강적들』 등이 있다.
구매(배송/수령완료) 후 리뷰를 작성하시면 적립금 300원을 드려요!
등록된 리뷰가 없습니다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 반품/교환방법 |
|
|---|---|
| 반품/교환 가능기간 |
|
| 반품/교환비용 |
|
| 반품/교환 불가 사유 |
|
| 상품 품절 |
|
| 소비자 피해보상 환불지연에 따른 배상 |
|

- [이벤트 당첨자 발표] 26년 9월 <리뷰왕을 찾아라> 이벤트 당첨자 안내
- [이벤트 당첨자 발표] 무라카미 하루키 『가호』 기대평 이벤트 당첨자 발표
- [이벤트 당첨자 발표] 재레드 다이아몬드 『리더는 언제 차이를 만들어내는가』 리뷰 이벤트 당첨자 발표
- [이벤트 당첨자 발표] 10월 모두의 서가 이벤트 당첨자 안내
- [공지사항] 추석 연휴 전국 지점 영업시간 안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