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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ISBN-13 : 9791157068753 |
|---|---|
| 쪽수 | 232쪽 |
| 크기 | 기타 규격 |
| 제품구성 | 단행본 |
- 인문/역사 > 교양사상
“한식은 생존투쟁이 남긴 맛있는 흉터다.”
에드워드 리, 프렌치 파파 이동준 강력 추천
밥, 국, 찬의 삼위일체로 푸는 한식 밥상의 비밀
우리는 매일 밥과 국, 수많은 반찬을 당연하게 먹지만, 정작 “한국인은 왜 이렇게 반찬을 많이 먹나요?”, “왜 쌈과 김치를 먹나요?”라는 질문에는 막연한 대답밖에 하지 못한다. 《밥 국 찬, 한식의 탄생》은 한식을 무조건 찬양하거나 가난의 결과로만 치부하지 않는다. 대신 한국인이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하고 축적해 온 ‘생존의 발자국’이자, 오랜 시간 몸과 입맛에 새겨진 문화적 유전자로서 한식을 추적한다. 산지가 많은 지형, 뚜렷하지만 혹독한 사계절, 여름철 집중호우로 인한 토양과 영양분의 유실 등 한반도는 농경지로서는 ‘C급’에 가까운 환경이었다. 수렵채집민에서 시작해 마침내 한반도라는 환경에 사로잡힌 한국인의 조상들은 가뭄과 수해,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며 끊임없이 생존법을 갱신해 왔다.
‘밥’은 쌀밥인 동시에 식사 전체를 가리키며 한국인의 신념 그 자체가 되었다. 높은 인구 부양력을 위해 노동집약적인 벼농사에 사활을 걸었던 역사 속에서 ‘밥심’은 생존의 에너지가 되었고, ‘밥그릇’은 자기 몫의 생존권이 되었다. ‘밥값’을 못하면 제 몫을 못하는 사람이 되고, ‘밥줄’이 끊기면 생존을 위협받으며, 쓸모를 잃으면 ‘찬밥 신세’가 된다. 한국인이 밥에 품어 온 애증과 집착은 그렇게 하나의 독특한 세계관을 만들었다.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다채로운 국물을 즐기는 ‘국물의 민족’이다. 한국인은 밥의 민족이었기에 국물의 민족이 되었다. 퍽퍽하고 지루한 곡물 주식을 쉽게 삼키기 위해 국물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서양의 수프나 중국의 탕에 비해 한식의 국은 철저하게 ‘밥의 조력자’로 발전했고, 왼쪽에는 밥, 오른쪽에는 국을 놓는 ‘좌반우갱’이라는 밥상 위의 UI로 완성됐다.
하지만 밥과 국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부족한 영양을 채우고, 춘궁기와 겨울을 버텨내기 위해 한국인은 먹을 수 있는 것의 범위를 넓히는 생존 실험을 거듭했다. 콩으로 단백질을 확보하고, 산과 들의 온갖 풀을 나물로 먹고, 바다에서는 해조류를 건져 올렸으며, 채소를 발효시켜 겨울을 넘길 김치를 만들었다. 먹을 수 있는 것은 식물과 동물을 가리지 않고 온갖 방식으로 변주해 찬으로 만들었다. 살아남는 것이 실력이라면, 한국인은 ‘지나치게 유능한 잡식동물’이었다.
그렇게 완성된 밥, 국, 찬은 하나의 상 위에 동시에 펼쳐진다. 밥과 국, 여러 찬이 한꺼번에 놓이는 ‘공간전개형’ 밥상은 엄격한 구조를 지니지만, 그 안에서 먹는 사람은 더없이 자유롭다. 밥과 국을 조립하면 국밥이 되고, 밥과 찬을 조립하면 비빔밥이 되며, 밥상 전체를 한입에 조립하면 쌈이 된다. 고기를 실컷 먹은 뒤에도 된장찌개와 밥을 찾고, 전골을 먹고 나면 남은 국물에 밥을 볶거나 죽을 쑤어야 비로소 한 끼가 끝난다. 엄격한 밥상의 구속 안에서 무한한 조합을 즐기면서도, 끝내 ‘밥+국+찬’이라는 구조로 돌아오는 것. 이것이 한식 밥상의 비밀이다.
이 밥상의 골격 안에서 한식의 독특한 ‘맛의 감각’이 만들어졌다. 밥과 국, 찬을 오가며 입안에서 ‘간’을 맞추고, 다양한 재료에서 우러난 감칠맛을 겹겹이 쌓는다. 여기에 펄펄 끓는 찌개부터 얼음 동동 띄운 냉면까지 뜨거움과 차가움의 극단을 찾는 온도 감각이 더해진다. 간을 맞추고, 감칠맛을 겹치고, 온도의 극단을 즐기는 한식의 맛에는 오래된 생존의 기억이 새겨져 있다.
[목 차]
프롤로그 한식이라는 질문
한식은 왜 이 모양인가 | 한식에 대한 이해
1부 한식의 무대
1장 한반도라는 땅
아프리카로부터 | 진화: 먹을 것의 범위를 확장하는 일 | 먹거리 찾아 삼만리 | 인기 없는 땅, 한반도 | 마침내 한반도에 사로잡히다
2부 한식의 겉멋
2장 밥
젖이 세운 문명, 유목 | 낱알이 세운 문명, 농경 |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 한반도라는 거짓말 | 쌀농사라는 거짓말 | 소로리의 거짓말 | 밥의 거짓말
3장 밥과 국
메마른 주식을 적실지어다 | 곡물은 국물을 부른다 | 국물의 계보 | 국물의 민족 | 국과 탕 | 보글보글에서 지글지글로 | 국물의 종착지, 볶음 | 진국과 맹탕
4장 밥, 국, 찬
나뭇잎을 먹어? | 쌀의 배신 | 쌀농사를 버티는 실험, 콩 | 춘궁기와 보릿고개 | 봄을 버티는 실험, 나물 | 초근목피 | 바다의 나물, 해조류 | 겨울을 버티는 실험, 김치 | 김치의 세계 | 동(動)적인 김치와 정(靜)적인 피클 | 김치 탄생의 비밀 |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의 모든 형태 | 지나치게 유능한 잡식동물 | 먹는 것도 실력이다
5장 밥상의 비밀
자유로운 구속 | 숟가락과 젓가락 | 국밥: 밥과 국의 조립 | 비빔밥: 밥과 찬의 조립 | 쌈: 밥상의 조립 | 김밥: 김으로 조립한 쌈 | 탈옥에 실패하면 밥상이 완성된다
3부 한식의 속맛
6장 간, 감칠맛, 온도
몸과 밥 | 간의 밑간 | 감칠맛 중독 | 요괴의 가루, 아지노모토 | 뜨거움과 차가움
에필로그 음식이라는 질문
주석
참고문헌
[본 문]
가난은 한식을 설명하는 긴 이야기의 일부일 수 있지만, 가난만으로는 왜 한국의 음식이 하필 지금과 같은 구조가 되었는지 설명할 수 없다.
_7쪽, 프롤로그 한식이라는 질문 중에서
이 책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순수한 최초의 한국인’이었는지가 아니다. 여러 집단이 이 땅에 들어오고 나가고 섞이면서, 이 환경에서 먹고사는 방법을 계속 갱신했다는 사실이다. 한반도는 오랫동안 방치되었고, 한 번 이상 버려졌다. 먹고사는 방법을 찾아 헤매던 호모 사피엔스에게 한반도는 최선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혹은 어쩌다 선택한 생존의 실험장이었다. 한식은 실험에 승리한 결과라기보다는, 반복된 시행착오가 남긴 흔적이다.
_29-30쪽, 1장 한반도라는 땅 중에서
한국인은 자칭 ‘국물의 민족’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 한국인에게 밥은 ‘밥심’이 아닌가. 내 몫의 생존권을 ‘밥그릇’이라 부르고, 그 사람이 싫다는 평가를 ‘밥맛없다’는 표현으로 갈음한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밥값’을 해야 하고, ‘밥이 보약’이고, ‘밥줄’이 끊기면 큰일이며, ‘찬밥 신세’가 되면 서글프다. 밥은 한국인의 언어에 새겨진 문신이다. 국물이 끼어들 틈이나 있단 말인가. 우리는 밥의 민족인가, 국물의 민족인가? 사실은 앞의 문장을 바꿔야 한다. 한국인은 밥의 민족이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국물의 민족이다.
_56쪽, 2장 밥 중에서
일본에서 한때, 삼계탕 다음에 한국 순두부찌개가 유행한 적이 있다. ‘닭한마리’가 인기를 얻은 지도 꽤 됐다. 육개장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렇게 신기한 국물요리가 있다는 사실이 일본인에게는 흥분할 만한 일이었던 모양이다. 한류가 계속되는 한 일본에서 한식 국물요리의 유행은 이론적으로 끝날 수 없다. 이제 시작이니까. 일본인은 이제 갓 한국의 국물을 1만 분의 1 정도 체험했다.
_70쪽, 3장 밥과 국 중에서
한국인은 키울 식물을 재배하고 개량하는 실험 외에, 더욱 광범위한 실험을 해야 했다. 인간이 어디까지 먹어도 죽지 않을 수 있는지 확인하는 실험이다. 즉 먹는 게 가능한 식물인 ‘나물’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실험이다.
_109쪽, 4장 밥, 국, 찬 중에서
모든 한국인은 생일날 자신을 낳아 준 어머니를 기념하며 미역국을 먹는다. 아무도 생일을 챙겨 주지 않는 쓸쓸한 여(남)주인공을 위해 남(여)주인공이 미역국을 끓이는 장면은 한국 드라마의 클리셰다. 많은 한국 남자에게 미역국은 생애 최초로 요리한 국이다. 어머니나 연인을 위해, 한 번쯤은 미역국에 도전한다. 미역국은 화려하지 않지만 간절한 꽃다발과 같으며, 짜고 젖어 있지만 진실된 생일케이크다.
_116-117쪽, 4장 밥, 국, 찬 중에서
김치와 피클을 가르는 본질적 차이는 발효 여부가 아니다. 변화와 고정의 차이이다. 피클은 정적으로 고정되지만 김치는 동적으로 변한다. 겉절이, 덜 익은 김치, 잘 익은 김치, 신김치, 묵은지로 변화하며 단계마다 다른 맛과 특징을 자랑한다. 한국인은 김치의 변화에 적응한 수준을 넘어, 변화를 당연시한다. 그래서 피클과 달리 김치를 담그는 것에서 요리를 끝내지 않고, 김치로 요리를 한다. 김치볶음밥에는 신김치가, 김치찜에는 묵은지가 좋은 식이다.
_133쪽, 4장 밥, 국, 찬 중에서
한식은 주식을 먹는다는 행위의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평민의 식사가 임금의 밥상까지도 규정한,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식문화를 가졌다. ‘국과 찬을 곁들여 주식인 밥을 잘 먹겠다’는 구성이다. 밥을 잘 먹히게 하는 찬이 좋은 찬이다. 한국어에서 ‘밥도둑’은 맛난 반찬을 칭찬하는 말로, 그릇 안의 밥을 잘 없앤다는 뜻이다. 모든 음식이 밥과 함께한다는 가치를 전제로 전개되어 있다. 국군 장병이 식판에 받아먹는 식사나, 40첩 반상이 깔리는 전주 한정식이나 똑같다. 군대 식판은 3찬인데, 첩 수에서 빠지는 김치가 반드시 포함되므로 ‘3찬 2첩’이다. 어쨌거나 밥 옆에 국이 있고 그 위로 찬이 단번에 펼쳐져 있다는 점에서는 한정식과 같다. 그러므로 유난히 푸짐한 식사를 가리키는, 한국어에만 존재하는 표현이 있다. “상다리가 부러진다.” 외국은 음식을 순서대로 내오면 되므로, 아무리 풍성해도 상다리가 부러질 필요까지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한정식집의 밥상이나 잔칫상에는 그릇을 놓을 공간이 없을 지경이다.
_152-153쪽, 5장 밥상의 비밀 중에서
국밥은 밥과 국의 조립이고, 비빔밥은 밥과 찬의 조립이다. 어차피 한국인은 식사할 때마다 ‘밥, 국, 찬’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조직하고 조립하며 왜곡한다. 밥과 국이 만나 국밥이 되는데, 밥과 찬이 만나지 말라는 법이 있겠는가. 비빔밥은 밥상 위에 펼쳐진 반찬의 세계를 사발 안에 접어 놓은 음식이다.
_169쪽, 5장 밥상의 비밀 중에서
‘밑간’은 맛의 토대를 다지기 위해 재료를 미리 간해두는 것을 말한다. 나는 밑간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요리는 건축이다. 맛을 토대에서부터 층층이 쌓아 올려 짓는 작업이다. 밑간이라는 단어는 한국어가 얼마나 감각적인지 새삼 알려준다. 이상한 표현이지만 간이란 단어에는 밑간이 있다. 표면적으로는 짠 정도만을 가리킬지 몰라도, 한국인의 의식구조 깊은 곳에서는 적절한 균형 자체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국을 끓일 때도 간을 보지만, 사람의 의중을 파악할 때도 간을 본다고 한다. 파고들 빈틈이 있는지 없는지 넌지시 확인해 보는 것이다.
_199쪽, 6장 간, 감칠맛, 온도 중에서
왜 한국어는 ‘적당한 온도’를 원수 취급하는가. 대관절 왜 그토록 심하게 뜨겁거나 차갑게 먹어야 한단 말인가. 감칠맛 때문이다. 강하고 복합적인 감칠맛은 십중팔구 미지근하면 맛이 뒤틀린다. 물론 성분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향, 지방, 점도, 짠맛, 잡내의 균형이 무너진다. 맛있다는 건 하나의 감칠맛이 아니라 전체적인 감각이다. 곰탕, 육개장, 갈비찜 같은 음식은 뜨거워야만 그 안에 녹아들어간 지방이 맛과 향을 운반한다. 식어서 기름이 뜨고 굳으면 감칠맛과 지방이 따로 놀아 역겨워진다. 냉면 육수를 만들 때, 끓였다 식힌 국물에 뜬 기름을 완전히 걷어 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콩나물국은 놀라울 정도로 지방이 없는 음식인데, 그래서 차갑게 먹어도 맛있다. 차가운 콩나물국은 족발, 보쌈 식당에 흔하다.
_214-215쪽, 6장 간, 감칠맛, 온도 중에서
뜨거운 국물을 마시면서 어! 시원해라고 말하는 한식의 미스테리를 이 책을 읽으면서 풀었습니다. 속 시원합니다.
- 에드워드 리(흑백요리사 시즌 1, 준우승)
프렌치 요리 문법에 익숙한 나로서는 한식의 문법도 항상 궁금했다. 한식은 왜 밥, 국, 찬이 항상 같은 상에 놓여야 하는 걸까? 막연히 문법이 있다고는 느꼈지만 설명할 수 없었고 어디서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이 책으로 마침내 한국 밥상의 문법을 이해했다.
- 프렌치 파파 이동준 셰프(흑백요리사 시즌 2)

“미역국은 짜고 젖어 있지만 진실된 생일케이크다.”
“쌈을 싼다는 건 즉석에서 자신만을 위한 국을 끓이는 일이다.”
“중국인은 김치를 발명하기엔 너무 살기 편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먹고 있는 것일까?
너무 익숙해서 묻지 않았던 한식의 비밀
《밥 국 찬, 한식의 탄생》은 독특한 반찬 문화부터 쌈과 김치, 국밥과 비빔밥까지, 외국인은 궁금해하지만, 정작 한국인은 잘 설명하지 못하는 일상 속 한식의 비밀을 파고든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밥, 국, 찬에는 오랜 시간 한반도에서 살아남기 위해 거듭해온 선택이 켜켜이 쌓여 있다.
‘겉멋’과 ‘속맛’: 한식의 이중생활
외국인이나 어린아이가 한식을 처음 접하며 던지는 질문은 의외로 날카롭고 근본적이다.
“한국인은 왜 한 끼에 이렇게 많은 ‘반찬’을 먹나요? 그리고 왜 반찬은 꼭 있어야 하나요?”
“채소와 나물은 어떻게 다른가요? 왜 생풀에 밥과 고기를 싸서 먹나요?”
“왜 햄버거를 먹고는 간식을 먹었다고 하면서, 밥을 먹어야 식사했다고 하나요?”
대부분의 한국인은 이런 질문에 좀처럼 명쾌하게 답하지 못한다. 흔히 “옛날에 먹고살기 힘들어서 산나물을 뜯어 먹고, 내장과 피까지 버리지 않고 먹게 되었다”는 식의 ‘가난의 인상비평’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가난이 이유라면 독일인은 왜 돼지 족발인 슈바인학센을 먹고, 스코틀랜드인은 왜 양의 내장으로 해기스를 만들었을까? 가난은 설명의 일부일 뿐, 한식이 하필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된 이유까지 설명하지는 못한다.
《밥 국 찬》은 한식을 ‘위대한 조상의 지혜’로 찬양하지도, 가난이 빚어낸 궁여지책으로 치부하지도 않는다. 한식은 누군가가 설계한 완성품이 아니다.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되풀이한 선택과 우연, 실패와 모방이 쌓여 만들어진 ‘생존의 발자국’이다. 책은 이를 한식의 ‘겉멋’(밥, 국, 찬, 밥상처럼 눈에 보이는 외형적 골격)과 ‘속맛’(간과 감칠맛, 뜨거움과 차가움을 느끼는 내면의 감각)으로 나누어 추적한다.
밥: 먹는 것이 어떻게 신념이 되었나
한국어에서 ‘밥’은 음식이면서 식사이고, 생존과 인생의 은유다. 힘은 ‘밥심’에서 나오고, 자신의 생존권과 영역은 ‘밥그릇’이다. 제 몫을 하려면 ‘밥값’을 해야 하고, 생계의 근간은 ‘밥줄’이다.
이 집착의 뿌리에는 벼농사가 있다. 농경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한정된 땅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느냐였다. 높은 인구 부양력을 가진 벼는 매력적인 답이었지만, 그만큼 막대한 노동을 요구했다. 수확량을 높이기 위해 노동집약적인 벼농사에 사활을 걸면서 쌀에는 피와 땀, 애증과 집착이 쌓였다. 밥은 그렇게 주식을 넘어 한국인의 생존관과 세계관이 되었다.
국물: 국물의 시작과 끝에는 밥이 있다
한국인이 ‘국물의 민족’이 된 출발점에도 밥이 있다. 퍽퍽한 곡물 주식을 계속 먹기 위해 국물은 입과 목을 적셔주는 가장 효과적인 조력자였다. 왼쪽에는 밥, 오른쪽에는 국을 놓는 ‘좌반우갱’은 둘의 긴밀한 관계를 밥상 위에 고정시켰다.
하지만 국물은 단순히 밥을 삼키기 위한 물에 머물지 않았다. 국과 탕, 국물이 자작해지는 찌개, 상 위에서 끓이며 함께 먹는 전골까지, 한국인은 국물과 건더기의 비중, 간과 조리법, 먹는 방식을 달리하며 놀라운 국물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한쪽에는 미역국과 콩나물국이 있고 다른 쪽에는 곰탕과 설렁탕, 김치찌개와 된장찌개, 전골이 있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 끝이다. 국물이 졸아들면서 ‘보글보글’은 ‘지글지글’로 바뀌고, 남은 국물과 건더기에는 다시 밥이 들어간다. 밥을 볶고 눌려 마지막 한 숟가락까지 먹는다. 밥에서 출발한 국물은 수없이 변주된 끝에 다시 밥으로 돌아온다.
찬: 결핍은 어떻게 무한한 반찬을 낳았나
밥과 국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쌀 중심의 식사가 채우지 못하는 영양을 보완하고, 춘궁기와 겨울이라는 계절의 공백을 건너려면 먹을 것을 더 찾아내고, 먹기 어려운 것까지 먹을 수 있게 만들어야 했다.
콩은 단백질 공급원이자 장 문화의 토대가 되었다. 산과 들의 식물은 삶고 데치고 말리고 우려내 나물이 되었고, 그 범위는 김과 미역 같은 ‘바다의 나물’로 확장됐다. 겨울에는 채소를 절이고 발효시켜 김치를 만들었고, 재료와 양념, 조리법을 달리하며 수많은 김치로 변주해냈다.
한국인은 그렇게 식물과 동물을 가리지 않고 재료를 찾아내 삶고, 굽고, 말리고, 삭히고, 절이고, 무쳐 찬으로 만들었다. 반찬의 어마어마한 가짓수는 풍요의 목록이라기보다 먹을 수 있는 것의 범위를 끝없이 넓혀온 생존 실험의 목록이다. 살아남는 것이 실력이라면, 한국인은 ‘지나치게 유능한 잡식동물’이었다.
밥상: 엄격한 상, 방탕한 맛
밥, 국, 찬이 갖춰지자 이들을 하나의 상 위에 동시에 펼치는 독특한 밥상 구조가 완성된다. 임금의 12첩 반상이든 서민의 소박한 밥상이든 밥+국+찬이라는 기본 골격은 같다. 상을 차리는 방식은 엄격하지만 먹는 방식은 놀랍도록 자유롭다. 어떤 찬을 밥과 먹을지, 언제 국을 떠먹을지, 무엇과 무엇을 한입에 넣을지는 먹는 사람의 선택이다. 구조는 고정되어 있지만 조합은 무한하다.
한국인은 여기서 더 나아가 밥상 자체를 조립하고 해체한다. 밥과 국을 합치면 국밥, 밥과 찬을 합치면 비빔밥이 된다. 밥상 전체를 한입에 조립하면 쌈이 되고, 밥과 찬을 김으로 말면 김밥이 된다. 서로 전혀 다른 음식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밥+국+찬’이라는 밥상의 문법이 살아 있다.
그 문법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고기를 실컷 먹은 뒤에도 된장찌개와 밥을 찾고, 전골을 먹고 나면 밥을 볶거나 죽을 쑤어야 한 끼가 끝난다. 조선의 문신 이정귀는 명나라에서 술과 안주, 과일과 떡을 배불리 먹고도 밥을 먹지 못했다며 자신은 “아직 식사 전”이라고 했다. 저자는 이를 배고픔이 아니라 밥상의 미완성을 견디지 못하는 ‘문화적 허기’라고 부른다.
속맛: 우리가 맛있다고 느끼는 것의 역사
과거 한국인은 지금보다 훨씬 많은 밥을 먹었다. 간이 거의 없는 맨밥을 많이 먹으려면 국과 찬이 필요했고, 밥과 국, 여러 찬을 오가며 입안에서 적절한 맛을 만들어야 했다. 국과 찬만 먹으면 짜지만 밥과 함께 먹으면 ‘간’이 맞는다. 한국인의 식사는 입안에서 실시간으로 ‘간’을 맞추는 일이다.
한식의 감칠맛은 서로 다른 재료에서 우러난 맛을 한 음식 안에 겹겹이 쌓는다. 하나의 감칠맛 위에 또 다른 감칠맛을 더해 복합적인 맛의 층을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 감칠맛을 가장 맛있는 상태로 즐기기 위한 극단적인 온도 감각이 더해진다. 뚝배기째 펄펄 끓는 찌개를 ‘시원하다’며 먹다가도 살얼음 뜬 냉면과 동치미 국물을 즐긴다. 뜨거운 것은 더 뜨겁게, 차가운 것은 더 차갑게. 간을 맞추고, 감칠맛을 겹치고, 온도의 극단을 즐기는 한식의 맛에는 오랜 생존의 역사가 배어 있다.

작가, 평론가. 철학과 역사를 쓰고 강연한다.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주제에 오랫동안 천착하고 있다. 《어떻게 휘둘리지 않는 개인이 되는가》, 《1미터 개인의 간격》으로 현대적 개인의 탄생을 정리했다. 한국인의 특질을 설명하기 위해 대표작 《한국인의 탄생》에서 한국사가 아닌 ‘한국인의 역사’를 기록했다. 번외편 《유신 사무라이 박정희》는 한국 현대사의 미싱 링크를 채우기 위한 작업이었다. 이 책 《밥 국 찬, 한식의 탄생》도 같은 목적을 갖고 있다. 한국인을 총체적이고 통시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작업이다. 차기작으로 현대 한국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한국인의 형태’를 준비 중이다. 다른 지은 책으로 40년 이글스 팬으로서 ‘사랑’과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는 《행복이 이글이글》, 온라인 연재 2억뷰를 기록한 테무진-칭기즈 칸에 대한 이야기 《테무진 to the 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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