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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백 긋던 마른 붓질(상상인 시선77)

    • 김경미 저
    • 상상인
    • 2026년 09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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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품 규격 정보
    상품상세정보
    ISBN ISBN-13 : 9791174900913
    쪽수1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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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품구성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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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소개

    김경미의 세 번째 시조집 『동백 긋던 마른 붓질』을 관통하는 정신은 존재에 대한 따뜻한 환대이다. 시인은 “너를 틔우다 앓는다. 그러다가 조금은 감싼다.”라는 짧은 말로 자신의 시가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디로 향하는지를 밝힌다. 한 존재를 틔운다는 것은 그가 지닌 가능성을 믿고 기다리는 일이다. 그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고통이 따른다. 타인의 상처와 슬픔을 외면하지 않고 자신의 아픔처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께 앓은 뒤에야 시인은 그 존재를 조심스럽게 감싼다. 이 시집에서 환대는 이렇게 타자의 고통을 함께 견디는 마음의 형식으로 나타난다.

     

    시인의 시선은 이름을 얻지 못하고 세상의 변두리로 밀려난 존재들에게 오래 머문다. 「이름 없는 이름에게」에서 “이름 하나 얻지 못해도 어딘가 가서 닿기를” 바라는 마음은 호명되지 못한 존재를 향한 간절한 기원이다. 이름은 한 존재가 세상에 받아들여졌음을 증명하는 최초의 자리다. 이름조차 얻지 못한 존재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떠돌 수밖에 없다. 시인은 그러한 존재의 슬픔을 발견하고, “슬픔이 슬픔을 잡고 갈 길 서로 묻는다”고 쓴다.

     

    이러한 환대의 정신은 작고 사소한 일상의 풍경에서도 발견된다. 「뒷주머니 처방전」은 사람이 앉을 때마다 “제대로 납작해”지는 뒷주머니를 생존의 무게에 눌린 존재처럼 바라본다. 그러나 시인은 “철퍼덕 포기 앞에선/일어서는 것이 답이다”라고 말하며 그 납작해진 존재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무심한 손길 한 번이/내겐 환한 봄날이다”라는 구절에는 이 시집의 윤리가 선명하게 담겨 있다. 누군가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손길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긴 겨울을 끝내는 봄날이 될 수 있다.

     

    이 시집의 언어와 시인의 시선은 전반적으로 긍정적이다. 이런 긍정성은 삶의 어둠과 결핍을 통과하며 형성된다. 「청귤의 시간」에서 아직 익지 않은 청귤은 미숙한 존재의 자화상이다. 풋것의 시큼함과 의심의 시간을 견딘 끝에 “어느새 단맛이 고여 전율 알알 퍼진다.” 시인은 미숙함을 부끄러워하거나 서둘러 지우려 하지 않는다. 아직 익지 않은 존재에게도 자기만의 시간이 있으며, 그 시간을 충분히 견디면 언젠가 삶의 단맛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고 이 시집의 시들이 무한 긍정으로만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다. 현실의 상처를 가볍게 무시하거나 희망으로 쉽게 덮지 않는다. 시인은 불안정한 노동, 관계의 상품화, 창작의 좌절과 같은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그 속에서 다시 살아갈 힘을 찾아낸다. 그 힘은 함께 울음을 견디는 몸, 무심히 건네는 손길, 아직 익지 않은 시간을 기다리는 마음에서 생겨난다. 시집 제목의 ‘마른 붓질’ 또한 메마른 삶의 표면에 동백의 붉은 생명력을 다시 그어보려는 시적 의지로 읽힌다.

     

    김경미 시인은 시조의 압축된 형식 안에 생활의 구체성과 언어의 활력을 밀도 있게 담아낸다. 「뒷주머니 처방전」, 「포대기 포개기」처럼 친숙한 사물을 새롭게 바라보는 제목에서부터 「사드리 헵번」, 「그럼에도 달려가馬」, 「8과 ∞」, 「대한大寒 플랫폼」에 이르는 언어유희까지, 시인은 정형의 틀 안에서 말을 자유롭게 비틀고 움직인다. 이러한 재치와 유머는 고단한 삶을 견디게 하는 또 하나의 힘이다. 웃음은 현실의 무게를 잠시 들어 올리고, 익숙한 세계를 낯선 각도에서 바라보게 한다.

     

    『동백 긋던 마른 붓질』은 상처 입고 납작해진 존재, 이름을 얻지 못한 존재,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 존재, 아직 충분히 익지 못한 존재들을 환대하는 시집이다. 삶은 여전히 고단하지만 누군가를 감싸는 손길이 남아 있는 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김경미의 시조는 그 소박하고도 굳센 믿음을 동백처럼 선명하게 그려낸다.

    목차

    [목 차]

    1부 물빛 다 돌려놓고 별처럼 잠길 때면

     

    각시수련/ 우산 섬/ 비상벨/ 삭정이로 타올라/ 한 번쯤은 구르프족/ 뒷주머니 처방전/

    포대기 포개기/ 꽃밥놀이/ 구석 증후군/ 큰꽃으아리/ 못갖춘마디/ 행운을 흥정하다/

    서툰 손수건/ 팀파니/ 서랍 속 쪽지 시점/ 빨간 볼펜 이후

     

    2부 짧은 볕에 풋 익어 미숙인 줄 알았던

     

    늦은 배웅/ 사과 몇 채 도착했다/ 모둠전의 온도/ 별 하나 달고나/ 풀의 주문/ 벙어리매미/

    달이라는 치즈/ 소한/ 이름 없는 이름에게/ 실뜨기 시뮬레이션/ 청귤의 시간/ 연緣 당기기/

    어떤 기대/ 뽕브라/ 벽돌책/ 코르크 조각

     

    3부 햇살 한 줌 받아 둔 내일

     

    이른 동백/ 허기도 특종이 되나요/ 포노사피엔스/ 순번 대기표/ 멸치 한 마리/ 잔혹 동화/

    딴생각 중/ 흰소리 쓰임새/ 뒷담화 쟁탈전/ 그리움을 넘기다/ 행진, 등 하나만 굴곡진/

    이런 메아리/ 병원 앞 우산꽂이/ 오래된 주전자/ 돌돌이 행진곡/ 누수의 저쪽/ 칼집의 말

     

    4부 꽃불을 달아 줄까

     

    빙벽/ 냅둬라 밥벌이다/ 사드리 헵번/ 그럼에도 달려가馬/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개근 거지/ 재개발 예정지/ 폐업기념일/ 휴지심도 이토록/ 8과 ∞/ 금연 건망증/

    막상 가보니/ 대한大寒 플랫폼/ 어쩌면, 맛집/ 한 여름밤의 수박/ 나무 인형 만들기

     

     

    해설 _ 탄력tension과 부피volume의 시

    김효숙(문학평론가)




    [본 문]

    진흙 속 구설만은 들키지 않으려고

     

    멀찍이 떨어져서 쓸쓸을 죄던 잠이

     

    해마다 벼르고 벼른 고백임을 증명해요

    ㅡ 「각시수련」중에서

     

    피 한 방울 투명조차 검게 변한 시간이

    내려앉은 마디 따라, 가야만 하는 길

    그것이 불덩이 되어 누구든 지핀다면

    ㅡ 「삭정이로 타올라」중에서

     

    늦여름 털어내며 땀을 닦는 어느 카페

    몇 사람 없는데도 다 구석에 앉아 있다

    구석이 구석일 수 없게 창 하나 피워낸다

    ㅡ 「구석 증후군」중에서

     

    환해서

    더 저린 갈채,

    아는지

    모르는지

    ㅡ 「큰꽃으아리」중에서

     

    멍으로 물든 나는

    꽃이 되자 다짐했어

    꽃도 나도 이슬 먹는 새벽은 똑같은데

    꽃은 꽃, 풀은 풀 되어 가는 길이 달랐어

    ㅡ 「풀의 주문」중에서

     

    짧은 볕에 풋 익어 미숙인 줄 알았던 나

    여름이 지나고 나면 노랗게 될 수 있을까

    함부로 벗겨지는 동안 모두가 의심했다

    ㅡ 「청귤의 시간」중에서

     

    한 핏줄로 묶였던 매듭 잔꾀처럼 부풀어서

    탱탱해진 꿈이라도 흐늑흐늑 풀어지면

    싼 티로 들떴던 바람, 눈치껏 사라졌어

    ㅡ 「뽕브라」중에서

     

    빗장 풀린 우쭐함이 먼저 목을 타서일까

    언제나 그렇듯 금맥같이 쌓아 놓은

    끗발이 꼬여버렸다 그 글재간 참, 뻣뻣하다

    ㅡ 「잔혹 동화」중에서

     

    행여라는 말을 물고 그 사람 서 있을까

    은근한 바람으로, 볕 드는 맹지로

    ㅡ 「그리움을 넘기다」중에서

     

    어쩌다 달빛 흘러 달달해진 온도가

    물을 반쯤 채워 놓은 누운 풍경 가질 때

    휘파람 다시 돋아나 나는 또 적셔진다

    ㅡ 「오래된 주전자」중에서

     

    몇 겹씩 벗겨지던 감정을 자르는 건

    내 몸을 덮고 있던 텁텁함이 드러나는 것

    쓸모를 찾을 때마다 내 반경은 줄어든다

    ㅡ 「휴지심도 이토록」중에서

     

    무딘 손이 문질러도 펴지지 않는 주름

    기다림을 파내어 무늬를 찾아낸 후

    조금 더 잡아두고픈 세상을 파고든다

    ㅡ 「나무 인형 만들기」중에서

     

    추천사

    문무학 (시조시인·문학평론가·문학박사)
    『동백 긋던 마른 붓질』이라는 시조집 제목을 품은 작품 「어떤 기대」에는 시인의 시적 지향과 미학이 촘촘히 응축되어 있다. “동백”으로 대표되는 전통적 서정과 “복제물” 같은 현대적 감각의 어휘를 병치하며 새로운 서정의 지평을 연다. 그 이면에는 고단한 현실 속에서도 위안을 길어 올리는 따뜻한 시선이 자리하며, 이는 구句로 얽고 장章으로 조인 시조 본연의 팽팽한 형식미로 정교하게 구현된다. “달고나”, “구르프”처럼 소박한 일상의 사물에서 삶의 품위를 발견해 내는 김경미 시인의 눈길은 다정하고 미쁘다. 일상과 기억을 매개로 뒤엉킨 삶을 감싸 안는 이 시조집은, 상처를 견디는 일이 혼자가 아닌 다 함께 살아가는 방식임을 깊고 아늑한 울림으로 일깨워 준다.

    출판사 서평

    [해설 중에서]

    김경미의 세 번째 시조집 『동백 긋던 마른 붓질』에서 펼치는 시인의 발랄한 발화는 당찬 표현미학에서 한층 돋보인다. 예리한 직관으로 벼려낸 삶의 문제들을 다층화한 감정으로 버무려내고, 한 방향의 바라보기를 철회하여 다각화한 관점으로 세계를 대면하며, 구체적 경험과 미학적 표현을 동시에 구현하려는 시도를 절제된 언어로 피워 올린다. 문자로 표현된 시를 시인의 정신과 분리하지 못하게 되는데 이는 시인이 시를 씀으로써 내면에 잠긴 감정의 큐빅을 맞춰 보려는 시도에서 찾을 수 있다. 이렇게 다면체인 감정에 비하여 경험은 구체적이지만 경험의 감정화 단계가 시 쓰기라는 점에서 시는 본질적으로 모호한 장르일 수밖에 없다.

    김경미의 단시조는 짧은 형식을 초과하여 삶의 핵심을 관통하는 힘을 지닌다. 이는 경험을 구체화한 활기찬 표현미학으로 가능한 일이다. 그 표현이 단지 기예로 머물지 않고 하나의 미학적 실천이라는 점에서 시적 진실의 가치는 높아진다. 때로는 재기 발랄한 긍정의 언어로, 때로는 풍자로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한 발화를 이어간다. 그러면서도 아이 같은 마음을 잃지 않으려 하는 시인의 언어에 배인 맑은 슬픔의 정조는 단지 개인의 감정을 발산하는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사회적 개인으로서 시인의 지향이 얼마큼 넓은 보폭을 지녔는지는 몇 편의 시만 읽어보아도 알 수 있다.

    김경미 시인은 긍정의 언어로 세계의 밝음을 표현하면서도 이 세계의 음지를 찾아내어 풍자하는 감각을 지녔다. 우리가 바라는바 긍정성이나 올바름이란 것이 결코 한순간에 얻어지지 않는 까닭에 이 같은 탐색의 자세가 시인을 생생히 살아 있는 감각의 주체로 만든다. 현상과 현실을 자각하는 순간에 깨어나는 세계의 면모가 부정적일 때 시인은 그곳을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부정성에만 파묻히지는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깊어졌을 때 그는 한 편의 시에 자신의 마음을 옮겨놓는다.

    김경미의 시는 직관과 표현 사이에 실재를 들여, 개인의 경험을 시 언어에 이입하면서 감정을 몰아간다. 세상이 급변하더라도 결코 변하지 않을 감정은 물론이고, 감각의 갱신을 거쳐야만 말할 수 있는 대상, 즉 인물이나 사물 등을 망라한 탐구의 과정이 시인 점을 분명히 한다. 이는 수시로 변하는 세계를 대면하는 시인의 감각이 생생히 살아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만큼 그는 시조의 일신에 대한 깊은 고민을 단지 관념이 아니라 실제 삶에서 건져 올리고 있다.

    _ 김효숙(문학평론가)

    *

    시인의 말


    너를 틔우다 앓는다.

    그러다가 조금은 감싼다.


    2026년 9월
    김경미

    저자 소개
    저자 : 김경미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현재 경북 풍기에 살고 있다. 2012년 《월간문학》 신인상(시조)으로 등단했고,
    2014년 《시와소금》 신인상(시)을 받았다. 시조집 『주말 오후 세 시』와 시집 『모호한 엔딩』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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