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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시 - 세계 고양이 시선집
- 메리 올리버,존 에이킨,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외 저
- 이재경 역
- 에이치비프레스
- 2026년 09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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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ISBN-13 : 9791190314510 |
|---|---|
| 쪽수 | 160쪽 |
| 크기 | 기타 규격 |
| 제품구성 | 단행본 |
- 소설/에세이/시 > 시 > 외국시











책 소개
메리 올리버,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페르난두 페소아, 샤를 보들레르, 프란츠 카프카…
우리가 잘 몰랐던, 시인들의 고양이
세계적인 문학가들과 만나 시가 된 고양이들
이 책은 그들의 시 45편으로 엮은 ‘고양이는 시’라는 세계다.
페르난두 페소아는 “햇살 아래 있는 고양이처럼 나 자신을 느끼며” 글을 썼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시 속에서 고양이는 평생 사랑한 연인이다. 메리 올리버는 어느 아침 고양이의 모습을 보며, 가만히 머리를 조아린다.
나는 잠시 지켜보다 생각한다.
서투른 말들로 내가 무엇을 더 하리오?
나는 차가운 부엌에 서서 그대에게 머리를 조아린다.
차가운 부엌에 서니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경이롭다.
(메리 올리버, ‘아침’ 중에서)
고양이는 나이기도 너이기도 하며, 세상이 되기도 한다. 혹은 세상을, 고통을 잊게 할 수도 있으니, 고양이와 하루에도 몇 시간씩 노닐곤 했던 샤를 보들레르는 이렇게 고백했다.
그 목소리는 지독한 고통도 잠재우고
세상의 모든 희열을 담고 있어서
긴긴 말을 할 때에도
단어가 필요치 않아.
(샤를 보들레르 ‘고양이’ 중에서)
메리 올리버,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등 현대 시인들, 페르난두 페소아, 샤를 보들레르, 프란츠 카프카 등 세계적인 문학가들은 ‘모두’ 고양이 시를 썼다. 이 책은 그들의 시 45편으로 엮은 ‘고양이는 시’라는 세계다.
“고양이를 어리석을 정도로 사랑하는 것이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스티비 스미스)고 생각하는 작가들이 고양이와 함께 만든 시는 어리석을 정도로 사랑스럽고 깊은 잠처럼 사색적이다. “책들을 스치며 책등의 제목을 지우듯이 다니는”(릴케) 고양이가 곁에 있다면 함께 읽어 보기를. 그러고는 이 책의 마지막 시 ‘고양이와 날씨’의 한 구절처럼, 어떤 평화로운 장면 속에 하나가 되기를.
야옹이는 잠을 청한다.
세상이 원래대로 될 때까지.
(메이 스웬슨 ‘고양이와 날씨’ 중에서)
[목 차]
서시 - 고양이가 그러하듯이
1부. 시
아침 - 메리 올리버
시 -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고양이 - 존 에이킨
사연 없는 고양이는 없다 - 나오미 쉬하브
나이 검은 고양이 - 라이너 마리아 릴케
고양이 - 샤를 보들레르
고양이들 - 샤를 보들레르
여인과 고양이 - 폴 베를렌
길고양이 찬가 - 페르난두 페소아
〈스핑크스〉 중에서 - 오스카 와일드
〈고양이에게〉 중에서 - 앨저넌 찰스 스윈번
2부. 고양이
체셔 고양이 - 루이스 캐럴
윙키에게 - 에이미 로웰
〈쇼팽〉 중에서 - 에이미 로웰
타이거 - 윌리엄 블레이크
늙은 고양이와 젊은 쥐 - 장 드 라 퐁텐
고양이 중의 고양이 - 윌리엄 브라이티 랜즈
고양이의 양심 - 작자미상
부엉이와 야옹이 - 에드워드 리어
애정사에 관해 고양이에게 보내는 호소문 - 토머스 플랫먼
아기고양이 천사 - 리언틴 스탠필드
고양이 - 샤를 보들레르
3부. 고양이에게 바치는 시
고양이에게 바치는 시 - 한스 카로사
〈바보의 노래 두 곡〉 중에서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티타임에 고양이들이 왔어요 - 케이트 그리너웨이
몬태규 미카엘 -작자미상
짧은 우화 - 프란츠 카프카
집고양이 - 포드 매덕스 포드
다섯 개의 눈 - 월터 드 라 메어
문득 새를 보다 - 에밀리 디킨슨
고양이에게 바치는 소네트 - 존 키츠
결투 - 유진 필드
고양이가 죽고 내 친구는 십 년 반 늙었다 - 크리스티나 로세티
파란 밥그릇 - 제인 케니언
4부. 고양이와 날씨
고양이 - 기욤 아폴리네르
행복한 고양이 - 랜들 자렐
달빛 정원 - 에이미 로웰
고양이와 달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고양이와 바람 - 톰 건
고양이는 뚱뚱하게 자고 - 로잘리 무어
하양 고양이들 - 폴 발레리
노래하는 고양이 - 스티비 스미스
오래된 원고 - 리샤르트 크리니츠키
고양이와 날씨 - 메이 스웬슨
아는 고양이 - 이재경
시인들과 고양이
[본 문]
고양이가 그러하듯이 You know how a cat
제임스 라플린 James Laughlin
고양이가 쥐를 잡아다 굳이
주인의 발아래 가져다놓듯이
나도 그렇게 매일 아침 그대에게
내가 한밤에 잠에서 깨어 쓴 시를
그대 아름다움에 대한 헌사와
내 사랑의 서약으로 바칩니다.
시Poem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William Carlos Williams
고양이가
찬장 위를
훌렁 타넘더니
처음에는
오른쪽 앞발이
살포시
다음에는
뒷다리가
움쑥
내려앉았다
비어 있는
화분 속으로.
고양이와 날씨Cat & The Weather
메이 스웬슨May Swenson
야옹이가 날씨를 본다.
눈.
앞발 하나를 창턱에 올린다.
평소 자리가 소복하다. 베개 같다.
발바닥 모양이 찍힌다.
파면 파질까? 아니.
모래 같지 않다.
오히려 자기 털 느낌.
대신 핥아본다. 별로다.
너무 차가워.
벌레들이 날다가 기절하듯 떨어진다.
야옹이가 그중 하나를
유리에 대고 툭툭 쳐본다.
이 벌레들은 몸이 없다. 윙윙 소리도 없다.
그런데 야옹이 발만 축축하다.
알아가도 모를 일.
다리를 하나씩 흔들고,
다음에는 온몸을 흔들어서
하얀 파리들을 털어낸다.
자기 꼬리를 찾아서는
안으로, 라디에이터 곁으로
들어오라고 말한다.
세상이 왠지
묘하게 변했다. 온통 하얗고,
냄새도 없다. 그래도 여기
집 안은 여전히 친숙해.
야옹이는 잠을 청한다.
세상이 원래대로 될 때까지.


메리 올리버 (Mary Oliver) (지은이)
시인. 1935년 미국 오하이오에서 태어났다. 열네 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1963년 첫 시집 『여행하지 않고No Voyage and Other Poems』를 출간했다. 1984년 『미국의 원시American Primitive』로 퓰리처상을, 1992년 시선집 『기러기』로 전미도서상을 받았다. 서른 권이 넘는 시집과 산문집을 낸 메리 올리버는 예술가들의 고장 프로빈스타운에서 날마다 숲과 바닷가를 거닐며, 세상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시를 쓰면서 소박한 삶을 살았다. 2015년 플로리다주로 거처를 옮긴 그는 2019년 1월 17일, 여든세 살을 일기로 잡초 우거진 모래언덕으로 돌아갔다.
존 에이킨 (Joan Aiken) (지은이)
첫 소설집 《당신이 유일하게 원했던 것All You Ever Wanted》을 펴낸 1953년 무렵, 에이킨은 로이터 통신 기자인 남편과 “무척 활발한 18개월 아기, 타이프라이터, 라디오, 전축과 음반들, 재봉틀과 책더미, 그리고 고양이”와 함께 버스에서 살았다. 전후 영국은 주택 공급난이 심했고, 가난한 젊은 부부는 입주할 집이 지어질 부지에서 못 쓰는 버스를 개조해 살았다. 그녀는 이 낭만적이고 어설픈 버스 집에서 첫 장편소설을 집필했다. 그녀의 첫 장편 《월러비 언덕의 늑대들The Wolves of willoughby Chase》은 1962년에 출판되었다. 이 책의 성공에 힘입어 그녀는 집필에 전념해 판타지 소설과 희곡, 시집 등을 망라해 100권이 넘는 책을 펴냈다. 에드거 앨런 포 상, 영국 왕실 훈장(MBE)을 받았다.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William Carlos Williams) (지은이)
1883년 미국 뉴저지주 러더퍼드에서 태어났다. 평생 소아과 및 일반 내과 개업의로 일하며 시, 소설, 번역 등의 활동을 병행했다. 에즈라 파운드 등과의 교류를 통해 잠시 이미지즘의 영향을 거쳐 모더니즘의 길로 나아갔으나, 유럽적 세계로 회귀했다는 점에서 극히 퇴행적인 파운드나 T. S. 엘리엇에 반대해 동시대 미국의 구어로 시를 썼다. 이런 이유로 평단의 냉대를 받았지만, 말년에 뒤늦은 명성을 얻어 ‘20세기 최고의 미국적 시인’으로 평가받으며 앨런 긴즈버그 등의 ‘비트’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관념이 아니라 사물을 통해서” 말하는 ‘객관주의’ 혹은 ‘즉물주의’의 시학과 하나의 긴 행을 세 단위로 분절하는 ‘가변음보(variable foot)’로도 유명하다. 대표작으로 시와 산문이 뒤섞인 실험적 작품 《봄과 모든 것(Spring and All)》, 그의 사후에 퓰리처상을 안겨준 《브뤼헐의 그림들과 다른 시들(Pictures from Brueghel and Other Poems)》, 평생 지역성에 천착한 그의 시 세계와 언어적 실험정신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서사시 《패터슨(Paterson)》 등이 있다.
나오미 쉬하브 나이 (Naomi Shihab Nye) (지은이)
2010년 미국시인학회 회장으로 선출되었으며, 내셔널북어워드 최종 후보작인 『19 Varieties of Gazelle: Poems of the Middle East』와 아랍계 미국인 도서상을 받은 『Honeybee: Poems and Short Prose』를 포함해 30권의 책을 쓴 저자이자 편집자이다. 팔레스타인 계 미국인의 유산과 이종문화 간의 경험을 표현하는 작품들이 많다. 난민의 딸로서, 전쟁 대신 인권과 표현 및 대화의 자유를 위해 국제적으로 많은 학교들을 후원하고 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Rainer Maria Rilke) (지은이)
프라하에서 태어나 황립 사관학교와 린츠 상업 아카데미를 중퇴하고 독학으로 아비투어 획득(1895). 프라하 대학, 뮌헨 대학, 베를린 대학 등을 옮겨가며 철학, 미술사 등을 수학했다. 뮌헨에서 만난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의 권유로 ‘르네’라는 본명을 ‘라이너’라는 독일식 이름으로 바꾸고(1897), 루와 함께 러시아를 두 번 방문하여, 톨스토이(1899)와 레오니드 파스테르나크(1900)를 만났다. 보릅스베데에서 조각가 클라라 베스트호프를 만나 혼인하고(1901), 인젤 출판사의 의뢰로 『로댕론』(1907) 집필을 위해 파리로 로댕을 방문했다(1902). 제1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에 징집, 전쟁기록문서실에 배속되었고(1916), 징용 해제 후 스위스에 거주하며(1919), 독일을 제외한 유럽 각지와 이집트를 여행했다. 18세에 첫 시집 『인생과 노래』(1893)를 발표한 후, 『시도집』(1899, 1902, 1903), 『형상시집』(1902), 『신시집』(1907), 『신시집 별권』(1908), 『두이노의 비가』(1912-1922), 『오르베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1922) 등 2천 편이 넘는 시를 발표했고, 『말테의 수기』(1910)는 독일 최초의 현대소설로 꼽힌다. 릴케는 1926년 스위스 발몽 요양소에서 백혈병으로 51세의 일생을 마쳤다.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Charles Baudelaire) (지은이)
19세기 프랑스 대표 시인. 시집 『악의 꽃(Les Fleurs du mal)』을 통해 ‘현대성’에 대한 선구자적인 태도로 20세기 상징주의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미국 시인 에드거 앨런 포를 프랑스에서 더 유명하게 만든 번역자이자 외젠 들라크루아 등의 모더니즘 화가들을 열렬히 지지한 미술평론가, 바그너를 옹호한 혁명적인 음악비평가이다. 그의 문학은 특히 인간 내면의 갈등과 어둠, 도시적 감성, 현대인의 고독, 그리고 아름다움과 추함의 이중성과 예술적 승화를 잘 드러낸다.
폴 베를렌느 (Paul Verlaine) (지은이)
1844년 3월 30일 프랑스 로렌 주(州) 메츠에서 공병 장교인 아버지와 부농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너무도 귀하게 태어나 가족으로부터 맹목적인 사랑을 받으며 자란 어린 베를렌은 버릇이 없었지만, 다행히도 명민한 아이였다. 열한 살이 되자, 보나파르트 고등학교(Lycee Bonaparte)에 진학했는데, 불어, 라틴어, 그리스어 등, 특히 언어에 뛰어난 자질을 보였다. 7년 과정의 이 학교에서 베를렌은 처음 3년 동안은 분명 모범생이었지만, 4년째 접어들자 돌연 학교 공부에 흥미를 잃고 시와 소설에 몰입한 문학 소년이 되었다. 1862년 바칼로레아 시험에 합격해서 가까스로 법과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지만 대학생이 된 그는 또다시 문학에만 몰두할 뿐, 정작 법률 공부는 등한시했다.
아버지의 강요로 잠시 보험회사 직원으로 일하던 베를렌은 이내 대학 공부를 집어치우고, 1864년 파리 시청의 직원 채용 시험에 합격해 등초본 계원으로 근무하면서 생활의 안정을 찾게 되었다. 그 덕에 1865년부터 베를렌은 마음 편히 문필 활동을 병행할 수 있었으며, 1869년 친구의 이복여동생인 마틸드 모테를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져 1년의 교제 끝에 혼인했다.
1871년 3월, 파리에 시민 혁명 정부인 코뮌이 수립되자 베를렌은 협력자로서 홍보 관련 일을 맡기도 했는데, 두 달 만에 코뮌이 진압된 후, 그 일로 인해 처벌받을까 두려웠던 그는 외가 친척들 집을 옮겨 다니며 은신하다가 결국 시청으로부터 파면 통보를 받았다. 이 무렵, 안면부지의 열일곱 살 문학청년 랭보가 베를렌 앞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편지와 함께 자작시 몇 편을 보내왔다. 랭보의 시에 탄복한 베를렌은 이윽고 랭보를 불러 처가로 맞아들였다. 하지만 반항적인 랭보는 보름 만에 그 집에서 쫓겨나 베를렌의 친구들 집을 전전했으며, 이때부터 베를렌은 랭보와 아내 마틸드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1873년 7월, 브뤼셀의 한 호텔에서 지내던 베를렌의 부름을 받고 랭보가 찾아왔다. 격렬한 언쟁이 이어졌고 술에 취한 베를렌은 파리로 떠나겠다는 랭보를 향해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두 발의 탄환 중 한 발이 랭보의 손목에 경상을 입혔고, 베를렌은 벌금형과 함께 2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곧장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이듬해인 1874년 4월, 파리 법원은 마틸드의 청원을 받아들여 베를렌 부부의 법적 별거 선고를 내렸는데, 벨기에 몽스(Mons) 감옥에서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베를렌은 가톨릭에 귀의해 7월에 영성체 의식을 치렀다. 1875년 1월이 되자 마침내 베를렌은 석방되었고, 그 뒤 1880년까지 영국과 프랑스의 사립학교 몇 군데를 오가며 교사 일을 하는 동시에 꾸준히 시를 써 나갔다. 1882년 7월, 파리 근교의 한 호텔에 거처를 정한 베를렌은 지난 10년간 소원했던 파리의 문인들 곁으로 돌아왔는데, 그간에 완성한 그의 시들이 ≪현대적인 파리≫를 비롯한 여러 문학잡지를 통해 연이어 소개되었다.
나날이 깊어 가는 병세에도 불구하고 베를렌은 왕성한 필력으로 여러 편의 산문집과 시집, 희곡 작품을 발표했으며, 어느덧 프랑스 문단의 대표적인 시인이 되었다. 그리하여 1892년에 들어서면서 젊은 숭배자들의 초청으로 베를렌은 네덜란드와 영국, 프랑스를 돌며 시학 강연을 이어 갔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가장 훌륭한 시인을 뜻하는 ‘시인의 왕’이라는 영예로운 칭호가 있었다. 빅토르 위고에게서 그 칭호를 계승한 르콩트드릴이 1894년 세상을 떠나자 시인들은 새로운 ‘시인의 왕’을 뽑아야 했는데, 400명 가까운 젊은 문인들에게 설문 조사를 한 결과 당대의 유명 시인들 중에서 베를렌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시인의 왕’에 선출되었다.
하지만 살아생전의 영광도 잠시뿐. 1896년 1월 8일, 폐울혈 증세를 보이던 베를렌은 급기야 52세를 일기로 그 자신이 표현했던 “저주받은 시인”다운 처량하고 굴곡진 삶을 마감했다. 이틀 뒤 수천 명의 장례 행렬이 애도하며 그의 유해를 파리 북쪽의 바티뇰(Batignolles) 묘지로 운구했으며, 그와 절친했던 여러 문인들이 애절한 추도사를 낭독했다. 그중 한 사람이었던 시인 말라르메는 베를렌 추모비를 건립하기 위한 기금조성위원회를 발족했고, 그 결실로 마침내 1911년 파리 뤽상부르공원의 양지바른 곳에 그의 흉상을 새긴 추모비가 세워졌다.
오스카 와일드 (Oscar Wilde) (지은이)
19세기 말 빅토리아 시대의 문학과 문화에 깊은 흔적을 남긴 오스카 와일드는 예술지상주의와 유미주의의 대표적 작가이자 사회를 조롱한 재담가였다. 1854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저명한 의사이자 고고학자였고 어머니는 시인이었다. 부모의 영향 아래 그는 어린 시절부터 문학과 예술에 깊이 빠져들었고,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고전문학을 공부한 후 옥스퍼드 대학교 모들린 칼리지로 진학했다. 1878년 시 「라벤나」로 뉴디게이트 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첫 발을 내디뎠고, 1888년에 동화집 『행복한 왕자와 그 밖의 이야기들』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1890년 발표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와일드의 유일한 장편소설이자 가장 논쟁적인 작품이었다. 영원한 젊음과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내던지는 도리언의 이야기 속에서 와일드는 도덕과 타락, 미와 윤리,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탐구했다. 그러나 당시 빅토리아 시대의 도덕적 기준을 위배했다는 이유로 ‘위험하고 부도덕한 책’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이후 그는 1890년대 후반 희곡 작가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윈더미어 부인의 부채〉, 〈하찮은 여인〉, 〈진지함의 중요성〉 같은 풍자극을 발표하여 사회의 위선을 날카롭게 조롱했다.
1895년에는 동성애 혐의로 기소되어 2년간의 강제 노동형을 선고받았다. 출소 후에 프랑스로 떠나 유랑 생활을 했는데, 건강이 악화된 그는 1900년 뇌수막염으로 생을 마감했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19세기 영문학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상징적인 작품 중 하나로 남아 있다. 문학과 미학을 향한 와일드의 탐구는 현대에 이르러서도 논의되며, 그는 여전히 ‘자신의 삶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창조한 작가’로 기억되고 있다.
앨저넌 찰스 스윈번 (Algernon Charles Swinburne) (지은이)
1837년 영국 런던 출생의 시인 겸 평론가다. 어머니는 귀족의 딸, 아버지는 지주였다. 이튼칼리지에서 교육을 받고 옥스퍼드대학에 진학했으나, 그 무렵부터 반골 기질이 강해 학위를 받지 않고 중퇴했다. 대학에서는 그리스어, 라틴어에 뛰어났고, 이탈리아, 프랑스 문학을 가까이했다. 많은 시를 썼으나 그리스풍의 시극 '캘리던의 애틀랜타'에서 처음으로 운율 기교의 원숙미를 보였다.
대표작으로 영국 속물주의에 대한 반항을 표시한 이교적이고 관능적인 <시와 발라드>, 이탈리아 독립운동에 자극딘 <일출 전의 노래>, 완벽한 기법의 장시 '라이어네스의 트리스트람' 등이 있다. 이밖에 비극 작품, 셰익스피어, 빅토르 위고, 벤 존슨 등에 대한 비평, 그리고 시론과 소설론 등이 있다.
루이스 캐럴 (Lewis Carroll) (지은이)
본명은 찰스 럿위지 도지슨(Charles Lutwidge Dodgson). 1832년 1월 27일 영국 체셔의 성직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1846년 진학한 공립학교의 한 수학 선생님으로부터 “이 학교에 온 이후 이처럼 유망한 아이를 본 적이 없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수학에 큰 재능을 보였다. 1851년에 옥스퍼드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에 입학했고, 1855년부터 1881년까지 모교 수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어릴 때부터 투고한 시나 단편소설이 여러 잡지에 게재될 정도로 문학적 재능도 탁월했다고 전해진다.
1864년, 수학과 학장이었던 헨리 조지 리델의 딸 앨리스와 그 자매들에게 ‘땅속 나라의 앨리스’라는 제목의 이야기를 선물했다. 1년 후 이 이야기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정식 출간되었다. 이때 즈음부터 ‘루이스 캐럴’이라는 필명을 사용했는데, 이는 자신의 이름 Charles Lutwidge를 라틴어인 Carolus Ludovicus로 바꾼 후, 이를 다시 영어화하여 앞뒤를 바꾼 것이다. 캐럴의 재치가 돋보이는 필명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출간 후 지금까지 17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고 영화‧애니메이션‧드라마 등으로 각색되며 전 세계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아왔다. 초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상상력과 더불어 캐럴만의 독특한 언어유희, 논리적·수학적 특징이 이 책의 매력으로 꼽힌다.
캐럴은 그 밖에도 《거울나라의 앨리스》, 《실비와 브루노》 등의 동화를 썼고, 《행렬식에 관한 입문서》, 《헝클어진 이야기》, 《수학적 호기심》 등 수학에 관한 다수의 책과 논문을 집필했다. 1898년 1월 14일, 《기호논리학》을 집필하던 중 건강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장례식은 세인트 메리 교회에서 거행되었고, 시신은 마운트 묘지에 안장되었다.
에이미 로웰 (Amy Lowell) (지은이)
형식적인 운율에서 벗어나 선명한 이미지를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이미지즘’ 시의 선두 주자로 평가받는다. 평생의 동반자였던 에이다 드와이어 러셀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관습에 도전하는 여성 간의 사랑과 욕망을 강렬한 언어로 노래했다. 사후 출간된 시집 《몇 시인가》(What’s O’Clock)로 1926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윌리엄 블레이크 (William Blake) (지은이)
1757년 11월 28일 런던의 브로드가(Broad Street) 28번지에서 아버지 제임스 블레이크(James Blake)와 어머니 캐서린 블레이크(Catherine Blake)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2세가 되는 1769년부터 짧은 시들을 습작했고, 이때의 작품들은 ≪시적 소묘(Poetical Sketches)≫(1783)에 실려 있다. 15세 때부터 7년 동안 당시 꽤 알려져 있던 판화가 제임스 버자이어(James Basire) 밑에서 도제 생활을 했다. 그의 이른바 완성작이라고 불리는 동판화 시화집 제작에 필요한 밑그림, 수채화, 유화 등의 기술들은 이때 연마한 것이다.
청년 블레이크는 남의 책에 삽화를 그려 넣거나, 판화를 제작해 돈을 벌었고, 간간이 시를 쓰기도 했다. 그는 25세가 되던 1782년에 채소 농장을 경영하던 윌리엄 바우처(William Boucher)의 딸 캐서린 소피아 바우처(Catherine Sophia Boucher)와 결혼한다. 결혼한 이듬해에 인쇄된 ≪시적 소묘≫ 이후 블레이크는 더 많은 자신의 글과 그림을 동판화로 제작하는데, ‘채색 인쇄법(illuminated printing)’이라는 자기 고유의 동판화 제작법을 고안해 내기도 한다. ≪순수와 경험의 노래≫를 위시한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은 모두 이 방법에 의해 동판화로 제작되었다.
1790년 템스 강의 반대편 지역인 램버스(Lambeth)로 이사하고 이곳에서 ‘램버스 예언시’라고 불리는 일련의 예언시들을 쓴다. 이때의 블레이크는 출판업자 조지프 존슨(Joseph Johnson)의 출판물에 삽화를 그려 넣기도 하며, 그의 집에서 당시의 급진적 개혁주의자들인 조지프 프리슬리(Joseph Priestley), 토머스 페인(Thomas Paine), 윌리엄 고드윈(William Godwin),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 등과 회동하게 된 것도 이 어름이다.
블레이크가는 1800년에 남부 해안의 시골 마을 펠펌(Felpham)의 조그만 오두막으로 이사하게 된다. 이곳에서 그의 장시 3부작을 구상하거나 일부 창작했다.
1803년 8월에 있었던 펠펌에서의 술 취한 국왕 직속 기병대 소속의 사병 ‘스코필드(John Schofield) 사건’은 그의 시세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그는 스코필드와 그 동료를 ≪예루살렘≫에서 악당의 한 무리로 형상화해 심판한다. 나아가 그는 후기의 장시들을 두꺼운 개인적 신화 체계로 둘러싸 시의 상징적이고 암시적인 분위기를 더욱 강화했다.
만년의 블레이크는 시 창작보다는 동판화 작업에 더 경주했다. 이 시기 초서(Geoffrey Chaucer)의 ≪캔터베리 이야기≫, 그리고 <욥기> 및 단테의 작품, 밀턴의 ≪복낙원≫ 등의 삽화를 제작했다. 블레이크는 1827년 8월 12일 6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19세기 중엽 스윈번(Algernon Charles Swinburne)을 위시한 라파엘 전파의 시인들이 그의 천재성을 인정하기 시작했고, 20세기 초엽을 지나며 그의 시 세계가 지닌 독창성과 문학적 가치는 영국 낭만주의 문학의 대표적인 성취로 인정받게 되었다.
장 드 라 퐁텐 (Jean de la Fontaine) (지은이)
17세기 프랑스의 대표 우화 작가이자 시인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숲을 산책하고, 책을 읽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글 솜씨가 아주 뛰어나 감동과 재미가 담긴 그을 많이 썼습니다. 라퐁텐이 살았던 때, 귀족과 왕족은 호화롭게 살았지만 백성은 가난하고 어렵게 살았습니다. 라퐁텐은 우화를 쓰며 이러한 세상을 비판하고, 권력층에 맞서 싸웠습니다. 라퐁텐의 우화는 문학적으로도 가치가 높아, 세계 사람들이 즐겨 읽는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작품으로는 <우화시>, <필레몽과 보시스>, <미네의 딸>, <라고탱>, <마법의 술잔>, <아스트레> 등이 있습니다.
에드워드 리어 (Edward Lear) (지은이)
영국의 난센스 시인이자 화가이다. 전통적인 논리에서 벗어난 무의미한 말로 환상적인 세계를 생생하게 묘사하는 글과 기이하고 환상적인 그림을 곁들인 책을 여럿 발표하여 ‘난센스의 아버지’로 불린다. 대표작으로 《난센스 책 The Book of Nonsense》, 《난센스 노래와 이야기 Nonsense Songs and Stories》 들이 있다.
한스 카로사 (Hans Carossa) (지은이)
1878년 퇼츠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권유에 따라 뮌헨과 뷔르츠부르크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으며 파사우에서 의사로 봉직했다. 뮌헨에 거주할 당시 그는 릴케와 프랑크 베데킨트 등의 작가들과 교류를 했으며, 1910년에는 그의 첫 시집이 출간되었다. 1913년에는 일기 형식을 띤 산문시 ≪뷔르거 박사의 종말(Dr. Burgers Ende)≫이 출간되었다. 1914년부터 카로사는 뮌헨으로 옮겨 와 의원 생활을 계속하며, 작품 집필에도 열중했다. 1922년에 그의 자전 소설 ≪유년 시절≫이 출간되었으며, 그 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는 자전소설 세 권을 더 써 냄으로써 독일의 자전소설사에 큰 기여를 했다. 1929년부터는 의사 생활을 접고 작품 생활에만 전념했다. 1931년에는 고트프리트 켈러 문학상을, 1938년에는 괴테 문학상을, 1939년에는 이탈리아에서 산레모(San Remo) 문학상을 받았다. 1956년 파사우 근처에서 영면했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William Butler Yeats) (지은이)
아일랜드의 시인 ‧ 극작가 ‧ 작가 ‧ 문학평론가 ‧정치가였다. 처음 발표한 것은 2편의 짧은 서정시로 1885년 『더블린 유니버시티 리뷰 Dublin University Review』에 발표되었다. 또한 『오이신의 방랑기 외 The Wanderings of Oisin, and Other Poems』(1889)에 수록된 초기 시는 탐미주의 작품으로, 아름답지만 난해하며 사소한 문제로부터 해방되고 싶어하는 한 영혼의 외침이었다. 한편 예이츠는 시와 연극이 아일랜드 전 국민을 변모시킬 수 있으리라 믿고 문학과 희곡에 전념했다. 그런 활동은 더블린에 그 유명한 애비 극장을 설립하면서 절정에 다다랐다. 1914년 『책임 Responsibilities』이 나왔고, 1923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1925년 『비전 A Vision』의 초판이 출간되었다. 『탑 The Tower』(1928)은 그가 고트에서 구입한 무너진 노르만성의 이름을 따서 붙인 제목으로 그의 작품 중 가장 도도한 것 중의 하나이다. 그 뒤에 쓴 『나선층계 The Winding Stair』(1929)이다. 그는 아일랜드 상원의원으로서 정치적 권력을 실질적인 것에 쏟았다. 1936년 자신이 사랑했던 시이며 대부분 자기 친구들이 쓴 『옥스퍼드 현대시 모음집 Oxford Book of Modern Verse』(1892~1935)편집을 맡았다. 1938년 『헌의 알 The Herne's Egg』을 완성했다. 예이츠는 1939년 1월 28일 프랑스 멘통 근처 로크브룬-카프-마르탱에 있는 호텔 이데알 보세주르에서 73세의 나이로 프랑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프랑스의 로크브륀에 묻혔다. 그의 시신을 슬라이고에 옮기려는 의도는 1939년 가을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좌절되었다. 1948년 그의 시신은 슬라이고로 넘겨져서 드럼클리프에 있는 작은 개신교 교회 묘지에 매장되었다. 이곳은 그의 『마지막 시집 Last Poems』(1939)에 수록된 시 「벤 블벤 아래에서 Under Ben Bulben」에 명시된 장소로 그의 묘 비문에는 자신이 직접 썼던, “삶과 죽음을 냉정히 바라보라. 그리고 지나가라!”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 수상 : 1923년 노벨문학상
케이트 그리너웨이 (Kate Greenaway) (지은이)
19세기 말을 살다 간, 큰 영향력을 지녔던 매우 중요한 일러스트레이터이다. 1846년 3월 17일 영국 런던에서, 조판사였던 아버지 John Greenaway와 재봉사였던 어머니 Elizabeth Catherine Jones 사이에서 태어났고, 노팅엄셔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본명은 Catherine Kate였다. 그녀는 영국의 유명한 목판업자인 Edmund Evans와 아버지의 영향으로 12살 때부터 미술 수업을 받았다. 빅토리아 시대 풍의 그림을 주로 그렸고, 큰 재능을 발휘하였다. 1879년 Edmund Evans의 도움으로 그녀의 첫 그림책인 『창 밑에서 (Under The Window)』를 출판했는데, 다색 컬러 인쇄기를 사용한 다색 목판작업이었다. 자신의 글과 그 내용에 어울리는 삽화를 그린 것으로, 그녀의 재능과 독창성이 한껏 발휘된 작품이다. 이후 그녀는 많은 그림책은 물론, 달력, 카드 등 여러 분야의 그림을 그렸다. 이러한 다양한 그림은 소박한 풍경, 잘 손질된 영국의 정원, 천진하고 사랑스러운 어린이의 모습 등을 우아하고 섬세하게 담았다. 그림 속의 어린이들은, 어른과는 다른 독립된 존재로서 개성을 지닌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아이들의 복장은 그녀가 고안한 것으로, 나중에 ‘그리너웨이 패션’이라 불릴 만큼 사랑을 받았다. 그녀는 최초의 여성 직업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자신의 그림에 대한 인세를 요구하였고, 돌려받은 원화를 소장할 갤러리에 팔아 후대 일러스트레이터들의 모범이 되었다. 1901년 1월 6일 유방암으로 사망했고 런던 Hampstead 공동묘지에 묻혔다. 1955년부터 영국 도서관 협회(Chartered Institute of Library and Information Professionals)는 해마다 우수한 어린이 그림책에 그녀의 이름을 따서 만든 ‘케이트 그리너웨이상’을 수여하고 있다.
랜달 자렐 (Randall Jarrell) (지은이)
1914년 미국 테네시 주에서 태어났다. 주목받는 시인이자 비평가로 활동했으며 어린이 책에 글을 쓰기도 했다. 주요 시집으로는 <이방인의 피>, <워싱턴 동물원의 여자>, <잃어버린 세상> 등이 있으며 글을 쓴 어린이 책으로는 뉴베리 명예상을 받은 <동물 가족>, <박쥐 시>, <생강 빵 토끼> 등이 있다. 1965년 세상을 떠났다.
기욤 아폴리네르 (Guillaume Apollinaire) (지은이)
1880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모나코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생애의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지내다가 죽기 2년 전에야 비로소 프랑스에 완전히 귀화하였다. 1918년 그는 전쟁에서 입은 상처와 스페인 독감으로 제1차 세계 대전 종전을 3일 앞두고 38세의 나이로 짧은 생애를 마감하였다. 1898년부터 여러 잡지에 시를 발표하기 시작, 한편으로는 전위예술에 매혹되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예술을 적극적으로 주도하면서 피카소, 브라크, 막스 자콥 등과도 교류하였던 그는 불문학사에서 상징주의의 황혼기이며 초현실주의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 시기인 20세기 초에 당대의 시대정신을 가장 충실하게 구현한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알코올』은 아폴리네르의 첫 시집으로, 1913년 메르퀴르 드 프랑스 출판사에서 발간되었다. 부제인 <시집 1898-1913>이 말하듯이 『알코올』은 아폴리네르가 시인으로서 처음 이름을 알린 이후 15년간의 결산이라고 할 수 있다. 형태와 주제, 음조와 길이가 다른 50편의 시를 혼란스럽게 늘어놓고 있지만 이 시집 전체가 지니고 있는 특이한 분위기는 거기에 어떤 <숨겨진 건축>, <초현실적 상상력으로만 이해할 수 있는 건축>이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떨쳐 버리기 어렵게 한다.
다른 작품으로는 『썩어 가는 마술사L'enchanteur pourrissant』, 『상형시집Calligrammes』, 『학살 당한 시인Le po?te assassin?』, 『앉아 있는 여인La femme assise』, 『우울한 파수병Le Guetteur m?lancolique』, 『추억처럼 부드러운Tendre comme le souvenir』, 『소년 돈주앙의 회고록Les Exploits d'un jeune Don Juan』, 『미라보 다리Le pont Mirabeau』, 『이교시조회사L'H?r?siarque et Cie』, 『입체파 화가들Les peintres cubistes』 등이 있다.
프란츠 카프카 (Frantz Kafka) (지은이)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프라하 법과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난 후, 1년 동안 프라하의 형사 법원과 민사 법원에서 실무를 익혔고, 일반보험회사와 노동자재해보험공사에 취직했다. 재해 예방 부서의 중요하고 높은 지위에서 활동하면서 상사와 부하로부터 두루 높은 평가를 받았다. 직업과 문학적 소명 사이의 갈등 때문에 몹시 시달리면서도 그는 시민적 직업의 요구를 회피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신념을 지켰다.
대학을 졸업한 직후 미완성 작품 〈시골의 결혼 준비〉를 썼다. 1909년에 그는 잡지 〈히페리온〉에 이미 1904년과 1905년에 쓰인 〈어느 투쟁의 기록〉에서 두 개의 대화를 발췌해서 출판했다. 1910년에 그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일기는 그에게는 성찰의 형태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문학적 창조물들, 즉 형상, 비유, 이야기의 형태를 지닌 자기 해명과 자기 형성의 중요한 수단이었다. 1913년 단편집 《관찰》을 출판했다. 1914년 장편소설 《실종자》를 집필했다. 1912년단편소설 〈선고〉를 썼다. 그 직후 단편소설 〈변신〉을 창작했다. 1914년 세계대전의 영향을 받아 〈유형지에서〉를 썼다. 거의 같은 시기에 장편소설 《소송》을 쓰기 시작했다. 1915년에는 1913년에 출판된 《화부》(장편소설 《실종자》의 첫 장)로 폰타네 상을 수상했다. 1916년과 1917년 창작한 단편들을 모아 《시골 의사》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 1922년 ‘밀레나 위기’ 동안에 장편소설 《성》을 썼다. 《단식광대》라는 제목을 달고 네 개의 단편이 1924년에 출판되었다. 마지막 단편소설 〈여가수 요제피네〉도 1924년에 집필했다.
카프카는 현실성의 결여, 흥미 추구, 공허함 등을 문학 작업의 위험 요소로 인식했다. 그는 문학 작업의 목표를 대단히 높게 설정했다. 그에게 문학은 ‘예언자적 임무’를 지닌 것이다. 문학은 고차원의 관찰 형식이며, 우연성을 법칙성으로 바꾸고, 진리를 인식하는 데 봉사하는, 일종의 ‘기도 형식’이다.
포드 매독스 포드 (Ford Madox Ford) (지은이)
영국의 작가. 1873년 12월 17일, 독일 출신의 프랜시스 헤퍼와, 라파엘 전파 화가 포드 매덕스 브라운의 딸 캐더린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889년 아버지의 사망으로 외가에서 살면서 스윈번, 투르게네프, 로제티 등 빅토리아조 후기의 여러 작가 및 화가들을 알게 된다. 훗날 그는 외할아버지의 성을 따라 매덕스 헤퍼라는 이름을 포드 매덕스 포드로 바꾼다. 1차 대전 이전에 쓴 이 책 《훌륭한 군인The Good Soldier》은 그의 작품 가운데 독보적인 것이다.
포드는 소설가의 의무는 자신이 사는 시대의 역사가가 되는 것이라고 믿었으며, 영국 전쟁 선전국에서 아널드 베넷, 체스터턴, 골즈워디, 힐레어 벨록 등과 함께 일하기도 했다. 포드는 결혼 후 여러 번의 애정 행각을 벌였으며 1931년, 미국의 화가 재니스 비알라를 만나 1939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여생을 함께한다. 1935년을 기점으로 포드는 미국에 자주 체류하며 앨런 테이트, 캐서린 앤 포터, 로버트 로우얼 등 당시 미국 문단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던 천재적인 작가들과 교유하기도 했다. 1937년부터 미시건 주 올리벳 대학의 초빙 작가로 활동하다가 1939년 프랑스 도빌에서 향년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포드는 수필, 시, 회상록, 문학비평 외에도 수많은 소설을 썼으며, 특히 《계승자들The Inheritors》(1901), 《로맨스Romance》(1903), 《범죄의 특성The Nature of a Crime》이라는 소설 세 편을 조셉 콘래드와 공동 창작하기도 했다. 이처럼 작가로서도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지만, 토머스 하디, 아널드 베넷 등 빅토리아조 후기 작가들과 양차 대전 사이 현대문학을 이끌어간 위대한 모더니스트들을 연결해주고, D. H. 로렌스, 진리스 등 뛰어난 작가와 작품들을 발굴하고 출판함으로써 에즈라 파운드와 함께 20세기 문학의 대부 역할을 수행했다.
《잉글리쉬 리뷰English Review》(1908)와 《트랜스애틀랜틱 리뷰Transatlantic Review》(1924)를 창간하기도 했으며, 주요 작품으로 《훌륭한 군인The Good Soldier》(1915) 외에 《행진의 끝Parade’s End》 4부작, 《다섯 번째 왕비The Fifth Queen》(1906~1908) 등이 있다.
에밀리 디킨슨 (Emily Dickinson) (지은이)
1830년 12월 10일 매사추세츠(Massachusetts)의 애머스트(Amherst)에서 변호사이자 정치가, 대학 이사였던 아버지 에드워드 디킨슨(Edward Dickinson)과 어머니 에밀리 노크로스(Emily Norcross)의 사이에서 세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녀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생애의 대부분을 애머스트에서 살았다.
또한 그녀는 외출을 극도로 자제하는 은둔 생활을 했는데, 1872년 이후로는 의사도 집으로 찾아와 약간 열린 문틈으로 걸어 다니는 그녀를 보며 진찰을 해야 했을 정도로 과도한 대인 기피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디킨슨이 은둔 생활을 하게 된 것은 그녀의 악화된 시력은 물론, 심한 신경통으로 고생하던 병약한 어머니를 돌보아야 하는 딸로서의 책임감, 종교 문제, 아버지와의 사고방식 차이, 식구들 사이에서의 경쟁의식, 그리고 주 의원으로 활동하던 아버지로 인해 끊임없이 드나들던 손님들을 맞이해야만 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무의식적인 거부감 등에서 기인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이유로, 그녀의 생애에 걸쳐 몇 번 있었던 정신적이고 정서적인 위기를 들 수 있다. 말하자면,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을 경험하면서 스스로 바깥세상과 점점 담을 쌓게 된 것이다. 특히 디킨슨을 “북극광처럼 빛나는” 존재로 여기던 로드 판사가 1884년에 죽자 실의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다가, 그녀 자신의 건강까지 악화되어 그녀조차 1886년 5월 15일에 세상을 떠남으로써, 그녀는 55년 5개월 5일간의 생애를 마치게 된다.
디킨슨은 초등교육 과정을 거친 후, 애머스트 아카데미(Amherst Academy)에서 희망하는 강좌를 선택해 중·고등학교 수준의 교육과 문예 창작 훈련을 받았으며, 약 1년간의 신학교 교육을 받기도 했지만, 이 밖의 정규 학교 교육을 받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성서보다는 문학작품에 더 많은 흥미를 가졌던 그녀는 독서를 통해 자신의 문학적 소양을 기르는 것과 창작에 대한 열의와 영감을 얻었다. 그녀는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책을 깊이 탐독하는 습성이 있었다. 그녀의 삶과 자아 탐색 정신이 세상과 단절된 것으로만 생각하는 독자들이 많지만, 사실 그녀는 실제로 만나 접촉을 하지는 않았어도, 서신을 통해 당대 최고의 지성과 사상을 가진 지식인들과 시를 교류하며 부단한 교우 관계를 가졌다. 그녀는 또한 자선 단체와 어린 시절의 절친한 친구이자 당시 유명한 작가이던 헬렌 헌트 잭슨(Helen Hunt Jackson)에게 출판을 권유받기도 했지만, 생전에 출판 자체를 인정할 수 없었던 그녀는 이를 거부했다.
그녀는 종교의 반항아로서 청교도 신앙에 대해 회의를 품었으며, 구원의 희망에 대해 강한 반발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친한 친구를 비롯한 많은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으로 인해, 일찍부터 기독교의 신에 대해 근본적으로 강한 회의감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그녀로 하여금 전통의 사고방식과 기존 종교에 대한 불신과 전통적인 시 형식에 대한 반발로 나아가도록 했고, 이러한 사고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녀의 시에 혁신적인 요소를 불러오며 시의 내용과 형식에 있어 일찍이 선구자적 위치를 차지하도록 했다.
그녀 생전에는 그녀의 요구에 의해 그녀의 시가 익명으로 일곱 편밖에 출간되지 못했지만, 그녀 사후에 44개의 시 꾸러미가 여동생 러비니아 노크로스 디킨슨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리고 평생에 걸쳐 그녀의 문학 상담 역할을 해왔던 비평가이자 저널리스트, 작가인 토머스 웬트워스 히긴슨(Thomas Wentworth Higginson)과 토드 부인(Mrs. Todd)의 주선으로 1775편의 시가 세 권의 시집으로 1890년, 1891년, 1896년에 연속 출간되고, 두 권의 서간집이 1894년에 출간되었다. 시인으로서 별로 인정을 받지 못하던 디킨슨은 1920년대에 이르러서야 시인으로 인정받기 시작했으며, 1955년 토머스 존슨(Thomas H. Johnson)에 의해 그녀의 시선집이 출판됨으로써 그녀는 오늘날 위대한 시인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존 키츠 (John Keats) (지은이)
영국 낭만주의 시인들 중 막내인 존 키츠는 1795년 10월 31일 영국의 런던 페이브먼트 로 무어필즈 24번지에서 마차 대여업자의 고용인인 아버지와 그 집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키츠는 학교에서 책을 많이 읽었으며, 키가 다 컸을 때 154cm였을 정도로 작고 몸은 약했지만, 명랑하고 싸움도 잘하고 매우 남자다운 성향을 지녔으며, 행복한 학교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동생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일찍이 인간 삶의 고통과 슬픔을 경험한 그는 약제사 겸 외과의가 될 생각으로 학교를 마친 후 병원에서 견습생을 거쳐 의사와 약제사 면허를 받지만 문학에 심취해 개업을 포기하고 문학 서적을 읽으며 인간 삶의 고통과 우울, 그리고 이에 대한 해독제로서의 사랑과 영원한 아름다움에 대한 시들을 쓰기 시작한다.
키츠에게 문학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그는 영국 낭만주의 시인의 막내가 될 초석을 닦은 셈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첫 작품집 ≪시집(Poems)≫에 이어 ≪엔디미온(Endymion)≫을 출간하고, 여러 작품들을 발표하며 유명한 시인이 된다.
결핵을 치료하기 위해 이탈리아 로마로 가서 스페인 광장 26번지(26 Piazza Di Spagna)에 방을 얻어 지내다가 1821년 2월 23일에 스물여섯 살의 젊은 나이로 죽어 로마의 신교도 묘지에 묻히고 만다. 그의 묘비에는 엘리자베스 시대의 극작가인 프랜시스 보몬트(Francis Baumont)의 <필래스터(Philaster)>에서 따온 문구인 “여기 물 위에 이름을 쓴 자가 누워 있노라(Here lies one whose name was writ in water)”가 쓰여 있다.
크리스티나 로세티 (Christina Rossetti) (지은이)
낭만주의 시, 어린이를 위한 시, 종교 시 등을 남긴 잉글랜드 작가. 환상 동화를 연상케 하는 『고블린 시장』(1862)과 『왕자의 순례』(1866) 등의 작품으로 명성을 얻었다. 삶과 신앙에 관한 생각과 고민을 탁월한 시적 감수성으로 풀어냈다. 시간이 지나면서 종교 산문이나 소설 창작에도 힘썼다. 영국에서 잘 알려진 2곡의 크리스마스 캐럴 「In the Bleak Midwinter」와 「Love Came Down at Christmas」의 가사를 쓴 것도 크리스티나다. 라파엘 전파(Raphael 前派)의 핵심 인물로 화가이자 시인인 단테이 게이브리얼 로세티는 그녀의 오빠이다. 크리스티나의 시는 버지니아 울프, 제라드 맨리 홉킨스 등과 같은 작가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폴 발레리 (Paul Vale'ry) (지은이)
프랑스의 시인·비평가·사상가. 1871년 남프랑스의 항구도시 세트에서 세관직원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몽펠리에 대학 재학 중에 시의 습작에 몰두하다가 파리에서 온 피에르 루이스를 알게 되었고 그를 통해 앙드레 지드와 스테판 말라르메와도 교류하게 된다. 대학 졸업 후 파리로 이주해 “레오나르도 다빈치 방법 입문”, “테스트씨와의 하룻밤”, “방법의 제패” 등을 발표하면서 고도의 관념성으로 독특한 비평적인 세계를 열었다. 1917년 『젊은 파르크』를 발표하면서 시인으로서 명성을 얻었고 1925년에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회원이 되면서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꼽히게 되었다. 시인으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을 뿐 아니라 20세기 최대의 산문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산문작품은 다방면에 걸치는 것으로 문학 ·예술 ·철학 ·과학 등에 관한 논고論考와 현대문명에 관한 고찰이 주요 부분을 이루고 있다.
죽을 때까지 새벽에 일어나 자신을 위하여 습관적으로 쓴 노트인 『카이에』는 1894년부터 시작한 것으로 그가 죽은 후 29권의 사진 복제판으로 간행되었다. 3만 페이지에 이르는 이 방대한 책은 어떤 의미에서는 그의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꼽히며, 지금도 그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리샤르트 크리니츠키 (Ryszard Krynicki) (지은이)
1943년 오스트리아 생. 폴란드의 시인이자 출판인으로 폴란드 시인상, 즈비그니에프 헤르베르트 국제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1970-80년대 폴란드 독재정권에 대항하는 반체제 활동에 적극 참여했으며 잡지와 출판 활동에 몸담았다. 1989년 비영리 문학 출판사 a5를 설립해 운영하며 시집, 비평, 아트북을 출간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폴란드의 옛 수도 크라쿠프에서 여섯 고양이와 아내 크리스티나와 함께 살고 있다.
페르난두 페소아 (Fernando Pessoa) (지은이)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읜 후 어머니가 외교관과 재혼하여 남아프리카 더반으로 이주했다. 이때 교육받은 영국 문학작품들은 페소아 작품세계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작품 활동도 포르투갈어와 영어로 했다. 1905년 열일곱 살 되던 해 포르투갈로 돌아온 뒤로는 거의 리스본 안에서만 생활한다. 1912년 「사회학적 관점에서 포르투갈의 새로운 시」를 『아기아(Aguia)』지에 실으며 첫 평론을 발표한다. 1914년에 페소아는 자신의 대표적 이명인 알베르투 카에이루(Alberto Caeiro), 히카르두 헤이스(Ricardo Reis), 알바루 드 캄푸스(Alvaro de Campos)를 고안해낸다.
1915년에는 포르투갈 모더니즘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 『오르페우(Orpheu)』지를 창간한다. 이해 같은 잡지에 알바루 드 캄푸스가 시를 발표하며 대중들 앞에 처음 선다. ‘오르페우 세대(geracao d’Orpheu)’라 불리는 여러 동시대 모더니스트 문학예술인들과 교류한다. 1919년 무역회사에서 번역가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하다가 이듬해 출판사 겸 광물 무역회사 ‘올리지푸(Olisipo)’를 차린다. 이 출판사를 통해 당시 포르투갈 사회에서 문제적으로 여겨지던 작가들의 작품을 출간하면서 정부로부터 경고를 받기도 한다.
1924년 히카르두 헤이스가 『아테나(Athena)』 창간호를 통해 20편의 송시를 발표하며 세상에 이름을 알린다. 1925년 『아테나』 4호를 통해 알베르투 카에이루가 대표작 「양 치는 목동」을 발표한다. 1929년 『아 헤비스타(A Revista)』지에 베르나르두 소아레스(Bernanrdo Soares)라는 이름으로 『불안의 책』의 일부를 발표한다. 1934년 페소아가 살아생전 출간한 유일한 포르투갈어 시집 『멘사젱(Mensagem)』이 출간된다. 『멘사젱』은 ‘포르투갈 국가선전부’에서 제정한 ‘안테루 드 켄탈 상’ 2등상을 수상한다. 1935년 11월 페소아는 극심한 복통으로 병원에 입원하여 생을 마감한다. 페소아의 글들은 2019년 포르투갈 국보로 지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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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 스웬슨 (지은이)
스티비 스미스 (Stevie Smith) (지은이)
제인 케니언 (Jane Kenyon) (지은이)
톰 건 (지은이)
로잘리 무어 (Rosalie Moore) (지은이)
유진 필드 (Eugene Field) (지은이)
월터 드 라 메어 (지은이)
윌리엄 브라이티 랜즈 (William Brighty Rands) (지은이)
토마스 플랫맨 (Thomas Flatman) (지은이)
제임스 로플린 (James Laughlin) (지은이)
리언틴 스탠필드 (Leontine Stanfield)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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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옮긴이)
서강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하고 경영컨설턴트와 영어교육 출판 편집자를 거쳐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며 외국의 좋은 책을 소개, 기획하는 일에 몸담고 있다. 번역이야말로 세상 여기저기서 듣고 배운 것들을 전방위로 활용하는 경험집약형 작업이라고 자부한다. 옮긴 책으로 《세상을 측정하는 위대한 단위들》, 《n분의 1의 함정》, 《결국 해내는 사람들의 원칙》, 《가치관의 탄생》, 《세상의 모든 공식》, 《달 . 낭만의 달, 광기의 달》, 《우리는 10분에 세 번 거짓말한다》, 《이노베이션 킬러》, 《레이시 이야기》, 《뮬, 마약 운반 이야기》 등이 있고 고전명언집 《다시 일어서는 게 중요해》를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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