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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연, 그 축복

    • 오세리현 저
    • 선우미디어
    • 2026년 0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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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품 규격 정보
    상품상세정보
    ISBN ISBN-13 : 9788956588322
    쪽수1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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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품구성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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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소개

    재미 수필가 오세리현의 두 번째 수필집으로 한글 수필 29편, 영역 작품 7편과
    작가의 말, 김영중 재미작가 축하글, 유성호 문학평론가의 해설로 엮었다.
    1. 삶의 변주곡(8편)
    2. 희망의 빛(7편)
    3. 처음 만남처럼(7편)
    4. 역에서 역으로(7편)
    5. English Translation(7편)

    목차

    [목 차]

    축하의 글 | 김영중 작가의 말

    chapter 1. 삶의 변주곡
    마음의 눈
    봄날에 추억하는 동백꽃
    삶의 변주곡
    보이지 않는 사랑 26
    첫눈 30
    사랑하는 딸아 34
    내 맘의 강물 37
    브레인게이트 41

    chapter 2. 희망의 빛
    겨울 바다
    희망의 빛
    인연, 그 축복
    제2의 고향 팔로스버디스
    끝없는 방황
    빛바랜 편지
    사람의 향기

    chapter 3. 처음 만남처럼
    처음 만남처럼
    치료의 힘
    다르게 부대끼며
    그 사람의 아우라
    한글, 세계 무대에 서다
    분노의 시대
    행복은 바로 이 순간

    chapter 4. 역에서 역으로
    생일
    좋은 이별 연습
    팜스프링스의 오페라 길드
    작별 인사
    연말 단상
    역에서 역으로

    chapter 5. English Translation
    Mind’s Eye
    Dear Beloved Daughter
    My Second Hometown, Palos Verdes The Palm Springs Opera Guild
    Light of Hope
    Farewell
    Faded Letter
    The First Snow

    해설 | 유성호
    사람, 시간, 풍경에 대한 섬세한 기억과 사랑의 문장들


    [본 문]

    〈마음의 눈〉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What does your mind see?
    이 작품은 프랑스 칸 영화제 광고 부문에 입상한 작품을 우리나라 쟌 박(John Park) 작가가 편집한 〈마음의 눈Mind’s Eye〉이란 제목의 영상이다. 유수한 기업의 사진기 광고 영상 중 화면에 스치는 마지막 구절이다.
    여름방학을 맞아 딸아이가 포스트 프로덕션Post Producuion Film 광고 회사에서 인턴십을 하고 있다. 운 좋게 이 작가와 한 팀이 되어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딸아이는 우리말과 영어를 동시 번역과 통역하는 일을 한다. 일주일 전 회사의 배려로 디트로이트에 출장을 갔다. 그곳에서 이메일로 나에게 보내온 짧은 영상이다. 그 영상은 반생을 넘은 내 삶을 잠시 뒤돌아보게 했다.
    수상 작품의 첫 장면은 아침 햇살에 안개가 피어나는 신비스러운 들과 숲이다.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손짓하듯 높이 치솟아 있다. 다시 화면은 달리는 기차 안에서 단발머리 소녀가 성에가 가득 낀 차창을 가녀린 손으로 천천히 미끄러지듯 쓸어내린다. 영상은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광활한 갈대밭에서 한 소년이 작은 사진기를 들고 뭔가를 열심히 찍고 있다. 날리는 갈대가 렌즈 앞을 가릴 때마다 그 소년은 한 손으로 허공을 휘젓듯 갈대를 더듬는다.
    화면은 바뀌어 해 질 녘 해무가 바다 수면 가까이 드리운 고요한 섬이다. 한 무리의 갈매기 떼가 날아다니는 바닷가에서 천진스러운 소년이 사진기를 귀에 가까이 댄다. 그는 소리로 새들의 움직임을 감지하며 한 컷 한 컷을 정성스럽게 사진에 담고 있다.
    마지막 화면에는 불꽃놀이의 폭죽 소리와 함께 밤하늘에는 반짝이는 무수한 불꽃 별들의 휘황찬란한 향연이 펼쳐진다. 육감을 통해 현실 세계를 시각적으로 옮기며 순간순간의 느낌을 마음에 담아 카메라에 포착하는 아이들, 그들은 모두 눈이 먼 장애아들이다.
    볼 수 없는 눈이지만 마음의 눈으로 본 것을 사진기라는 매체를 통해 생생하게 표현한다. 보이는 것 이상의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졌다. 그들이 찍은 사진 속에는 새 날개의 끝부분만 간신히 찍힌 것일지라도 마음으로 본 세상의 전부이다. 사각사각 갈대가 바람에 스치는 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 불꽃이 터지는 폭죽 소리와 꽃향기 등 시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을 통해 얻은 그들만의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마음의 눈이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의 오감 중에 시각을 제외한 사감의 느낌이지만 오감 이상의 온전한 체험이다. 그들은 자신의 예민한 정신세계를 통해 느낌으로 세상을 설명한다. 신은 그들에게 보통 사람과 같은 시력을 주지 않았지만 평범한 사람들보다 뛰어난 감각의 능력을 갖출 수 있게 했다.
    들판이나 바다와 그 어느 곳에 있을지라도 해맑게 미소 짓는 그들의 순전한 표정에 가슴이 뛰며 뭉클해진다. 조금 전 언짢은 일이 있었을지라도 이내 따뜻한 심성으로 돌아가 어질고 순한 마음이 된다. 아름다운 사람이란 바로 이들이 아닐까. 이들을 바라보는 동안 나 자신이 부끄러움으로 가득해진다. 현재에 감사하고 자족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몇 분간의 짧은 영상이었지만 한 작가의 정결한 혼이 담긴 예술 작품은 나에게 신선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한동안 시간이 정지된 듯하여 다 끝난 화면에서 떠나질 못했다. 마치 공연이 끝난 후 텅 빈 객석에 홀로 앉아 있는 듯했다. 긴 여운을 못내 아쉬워하는 마음이었다. 삶을 새롭게 열며 만들어가는 그들의 도전과 용기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내 마음의 눈에 비친 세상은 어떠한지. 나는 눈 뜬 시각장애인으로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쉽게 좌절하지 않았나. 다른 사람의 생각과 의견을 따라가느라 허둥대며 여기까지 오지 않았나 싶다. 정신적인 무기력의 대가는 노년이 되어서야 알 수 있다고 한다.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무한한 사고력은 훈련과 노력으로 내적 성장을 깊이 이뤄낼 수 있음인 까닭이다. 끊임없는 지적 성장만이 마음의 눈을 활짝 열어주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지게 할 것이다.
    눈으로 보는 이 세상은 협곡 같은 터널 속이다. 마음의 눈으로 보는 세상 너머는 빛나고 끝없이 넓다. 마음의 눈으로 온 세상을 바라보며 내 이웃과 동행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기 위해 마음의 눈을 환히 밝히리라.


    〈봄날에 추억하는 동백꽃〉

    앞뜰에 동백꽃이 한창이다. 동백꽃의 찬란함이 매혹적이다. 그 꽃에 마음이 닿으니 평온해지며 행복해진다.
    사무실 창가에도 내 키보다 더 크고 무성하게 자란 동백나무 한 그루가 있다. 진녹색의 동백잎 사이사이로 붉은 원색의 꽃잎이 푸른 잎과 보색을 이루며 피어난다. 환하게 불을 밝히는 꽃망울이 꽃 등불처럼 눈 부시다. 화사한 꽃송이의 타오르는 그 빛이 내 눈과 마음을 끌며 곱게 물들인다.

    전라북도 고창의 선운사는 동백꽃이 아름다워 숱한 시인이 즐겨 찾는 곳이다. 시인의 시 〈선운사 동구〉로 더욱 유명해진 선운사의 그 동백나무 숲이 문득 보고 싶어진다. 동백나무는 언 땅속에 뿌리를 뻗고 안으로, 안으로 맑은 향기를 품는다. 생명이란 이토록 고결하고 거룩한 것인가를 깨닫는다.
    동백꽃을 보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떤 향기를 남길 것인가를 생각한다. 우리의 삶도 어떤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동백꽃처럼 열정의 삶을 산다면 좋겠다. 희망과 사랑을 가슴에 담고 산다면 살아있는 동안 생명의 꽃불을 미려하게 피워 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이웃이나 국가의 안위보다 개인의 이기심으로 카멜레온처럼 변절하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지금 내 모국의 국정 사태는 갈피를 못 잡아 매우 혼란스럽다. 그러한 정세를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볼 수밖에 없는 떠나온 내 처지가 어쩔 수 없이 안타까운 심정이다. 오로지 한가지 믿음은 고국의 안녕을 염원하며 바랄 뿐이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강인한 정신으로 유구한 역사를 이어왔다.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현명하고 지혜롭게 잘 극복하리라는 희망을 품는다.
    한 겨울에도 꽃을 피우는 동백나무는 모진 혹한을 감내하며 견뎌낸다. 우리 민족의 기품 그와 다르지 않다.
    학창 시절 나는 미술반에서 활동하며 한국 화가이신 미술 선생님께 한국화를 배웠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에게 서예를 배웠다. 어머니는 고려 충신 삼은三隱이신 목은 이색李穡 선생의 16대 후손으로 자부심이 대단하셨다. 완성된 화폭 위에 화제를 쓸 때는 어머니에게 익힌 붓글씨가 빛을 더해 주었다. 사군자와 소나무, 꽃과 나무가 산수화의 소재였다.
    화조 그림 가운데 동백꽃을 그릴 때면 붓의 끝이 화폭에 닿을 때마다 한 잎 한 잎의 붉은 꽃잎이 하얀 화선지에서 피어났다. 흰색의 한지에 그려진 한 송이의 꽃은 순백의 눈 속에 핀 동백꽃을 연상하게 했다.
    서해에는 동백나무 숲이 군락을 이룬 동백섬이 있다. 동백의 계절인 겨울방학에 미술반에서 함께 활동하다 한국 화가가 된 친구 J와 동백섬을 찾아갔다. 우리는 숲사이로 난 오솔길과 백사장을 해가 지는 줄 모르고 마냥 거닐었다. 밤하늘의 별자리를 하나둘 헤아리며 정답게 이야기하던 그때의 추억이 스쳐 간다.
    동백꽃말은 꽃의 색에 따라 다르다. 겸손한 아름다움, 완벽한 사랑, 희생이라고 한다. 삼가고 조심하며 허세를 부리지 않는다는 ‘신중’이다.
    동백꽃 나무 앞에 서니 어머니의 가없는 사랑이 붉은 동백꽃처럼 나의 가슴 속에서 따뜻한 온기로 다시 피어난다. 어머니는 나에게 평소에 언행일치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모든 일의 처리함에 있어서 경솔해서는 아니 되며 매사에 사려 깊게 헤아려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동백꽃은 잔설 속에서도 불꽃처럼 만개한다. 해풍에 스러질 때면 꽃잎이 흩어짐 없이 송이채로 꼿꼿이 뚝 떨어진다. 동백꽃은 물러설 때나 떠날 때 절제와 용기 있는 단아한 미덕을 지녔다.
    동백꽃의 품위와 기개가 한층 더 우러러보이는 3월의 봄날이다.


    〈삶의 변주곡〉

    해무가 아랫마을에서 언덕 위로 신비롭게 퍼져 올라오는 주말 아침이다. 여느 때처럼 창가 피아노 앞에 앉았다. 새의 경쾌한 노랫소리에 창밖을 보니 블루제이 새 한 마리가 테라스 모퉁이에 앉아 아침 인사를 한다. 머리를 조아리는 자태가 귀엽고 사랑스럽다. 윤기 흐르는 짙은 청록빛 깃털이 사진 속 어머니의 비단 옷자락 같다.

    지난 계절은 뜨거웠던 만큼 숨 가쁘게 살았나 보다. 여름 끝 무렵 마음도 몸도 된 몸살을 앓았다.
    해마다 휴가철이면 우리 집은 한국을 비롯한 곳곳에서 방문한 손님으로 북적인다. 반가운 친척과 여행하며 일상에서 탈출할 수 있는 좋은 시간으로 긍정적 면도 있으나 손님이 머무는 동안 자유롭던 일상의 일부분을 접고 내 시간을 할애하며 배려해야 하니 한편으로 스트레스였다.
    예년과 달리 올해는 딸의 대학원 준비로 비상 체재였으니 제대로 여유롭게 손님 대접했겠는가.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FM 라디오에서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가 흘러나왔다. 그 아름다운 선율에 뒤숭숭했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얼마 후 작곡가인 그가 청력을 잃어가는 중에 작곡했다는 피아노 소나타 14번 악보를 접했다.
    시적이며 자유롭고 서정적인 제1악장은 달빛이 호수에 비친 조각배 같다는 문학적 비유처럼 선율에 취할수록 내 가슴 속에서도 잔잔한 물결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동트기 전 어스름한 바닷가에 반사된 고요한 달빛이 스며든 기분이었다. 피아노 페달을 밟는 발끝의 감각과 건반에 닿는 내 손마디를 타고 울리는 투명하고 애틋한 선율에 온몸이 전율한다. 긴 가뭄에 타는 사막의 메마른 들녘처럼 조각조각 부서져 가는 심신을 적시며 한 줄기 빛의 환희와 감동이 어두웠던 영혼을 서서히 비춘다.
    〈월광 소나타〉는 인간의 어떤 언어로도 묘사할 수 없는 한 편의 시라고 베를리오즈는 말했다.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의 원천이며 높은 경지의 명곡으로 연주된다. 내가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는 정신적·육체적 성장이 시작되던 사춘기였고 그 후 이 곡을 통해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
    나에게는 고전 음악과의 각별한 인연의 곡이다. 그 당시 언니가 청계천 음반 가게에서 구한 중고 LP판이었다. 판을 턴테이블에 올려놓으면 들릴 듯 말 듯 바늘 스치는 잡음 소리가 이따금 들렸다. 그런데도 단조롭고 일정한 리듬이 반복 연주되는 이 곡은 어린 나에게 어렵지 않게 클래식 음악의 세계로 빠져들게 했다.
    단조롭다는 것은 음악의 숨표처럼 비어 있음이 아닌 절제된 여백 안에 연주자나 감상자의 상상력 여하에 따라 많은 세세한 것을 포용함을 뜻할 것이다. 평소 사무실에서 클래식 FM 채널에 라디오를 고정해 놓고 듣는다. 근무 중에 들으니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귀가 열렸을 때 비로소 음악이 제대로 들린다. 여러 음악 가운데 귀에 익숙해져 친근한 곡을 듣는 것은 일하는 가운데 소소한 나만의 즐거움이다.
    음악은 악장마다 다른 빠르기로 작곡 구성된 것처럼 우리 삶에도 행불행이 정해진 순서처럼 일어난다. 늘 불행하거나 행복한 일만 있을 수 없다. 행불행 중의 한 가지만 계속 일어난다면 삶은 무미건조할 것이다. 성장이나 발전도 없을 것이다.

    작곡가가 겪은 고뇌와 비탄을 표현한 〈월광 소나타〉처럼 한 인간의 내밀한 감정이 응축된 음악과의 교감은 내 안에 쌓인 번민과 고통으로부터 자유와 평안을 얻게 한다. 혼탁해진 정신을 맑게 정화해 준다. 음악은 고단한 인생 여정에 따뜻한 온기가 되어 거친 세상에 뿌려지는 향유이다. 권태로운 일상에 새로운 삶의 리듬과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음악은 내 삶의 변주곡이다.


    〈보이지 않는 사랑〉

    생명의 시간이 나에게 얼마나 남아 있을까 생각하다가 그것은 바로 신의 영역임을 깨달았다. 이 지상에서 나에게 남겨진 날들은 사랑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다. 우리네 인생은 따뜻한 가슴에 사랑으로 사는 것이다. 사랑이 없는 대인관계란 마치 공기 없는 세상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주고받는 사랑을 통해 인간관계의 사랑과 삶의 의미를 생각한다.
    모든 예술이나 문학 작품에는 사랑과 미움, 증오도 있지만 대부분은 사랑에서 시작하여 사랑으로 완성되어 끝을 맺는 것 같다.
    지난 이른 봄에 잔설이 남은 워터맨 산에 다녀왔다. 사막인 이곳 캘리포니아의 산은 7천 피트 이상의 높이에서만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며 자란다.
    산에 들어서면 소나무 숲으로부터 솔향의 청량함이 풍겨 나온다. 바람이 콧끝에 살짝 스쳐도 솔 내음이 폐부 가득히 스며듦이 느껴진다. 무성한 나뭇가지의 푸르름으로 그늘이 된 산길은 깊고 고요하다. 그 길에 서면 오랜 세월 동안 떨어진 소나무잎이 켜켜이 내려 쌓여 발을 디딜 때마다 푹신한 감촉에 기분이 좋아진다.
    사계절의 산을 생각할 때 산은 역시 겨울 산이다. 겨울 산에는 눈이 하얗게 내려 나뭇가지마다 눈꽃이 환하게 피어난다. 햇살에 비친 눈꽃은 영롱한 유리알의 유희와 같다. 그 풍경을 바라보는 나의 눈은 곧 맑아지며 시원해진다. 눈 덮인 겨울 산은 자연이 빚어낸 눈부시게 아름답고 장엄한 신세계이다.
    얼마 전 자연 발화된 산불로 소나무 숲의 나무들이 밑동만 남긴 채 잿빛으로 검게 탔다. 불에 탄 나무들 사이를 걸으며 산에서 천천히 내려오는 길이었다. 햇볕에 초롱초롱히 반짝이는 방울 몇 개가 타다 남은 나뭇등걸 끝에 매달려 있음을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송진이었다. 불에 타들어 가는 자기의 맨살을 보호하려 마지막으로 흘린 눈물방울처럼 맺혀 있었다. 피할 수 없는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후에도 끝까지 버티며 그 자리를 꿋꿋이 지켜내고 있었다.
    소나무에 달린 그 송진 방울은 나무 자신에게 보낸 보이지 않는 사랑이었으리라 여겨진다. 사진기 렌즈 사이로 전해 오는 나의 마음에도 애잔하고 아린 물방울이 어리었다.
    소나무들은 생존을 위해 물길을 찾아 깊고도 멀리 뿌리를 내리며 비바람과 혹한, 오랜 시간을 견디며 자라 왔을 터인데 안타까움이었다. 불사의 사랑이라던 소나무는 불길에 타며 한순간에 재로 변했다. 자연재해나 인재로 인해 공들여 쌓아 올린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 우리 인간사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솔방울은 중력에 의해 땅에 떨어지나 비가 내리고 눈이 와도 싹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강렬한 열기를 겪어야 굳게 닫혀있던 솔방울이 벌어져 씨앗이 사방으로 날려 보내진다. 떨어진 씨앗은 비로소 싹을 틔울 수 있으며 불에 강한 소나무 씨앗은 빈 공간의 숲을 빠르게 소생시킨다고 한다. 불에 탄 산자락에는 움을 틔우며 연한 잎의 아기 소나무들이 새로운 자연을 향해 자라나고 있다.
    자연적인 발화는 새 생명을 잉태하기 위한 고통의 과정이며 희생을 필요로 하지만 결국 예정된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삶 가운데 갑자기 불어닥친 불행한 일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행운으로 바뀌듯이 말이다. 그러한 행운을 우리 모두 한 번이라도 경험하며 받은 복을 온전히 누렸으면 좋겠다.
    한 아기의 출생은 10개월을 힘겹게 품어 키워 준 모성애, 그 모성애야말로 인간 심층에 밀착된 본능적인 사랑이 아닌가. 바다 같은 포용력으로 감싸 준 사랑이기에 헌신적인 사랑을 바쳐온 그 모성애는 숭고하다. 태어난 아기는 하늘을 닮은 이 세상의 고결한 생명이 아닐까. 우리는 누군가의 따뜻한 보살핌과 사랑으로 성장하며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진정한 사랑은 보이지 아니하나, 가슴으로 전해져 느낄 수 있는 것이리라.


    〈Mind’s Eye〉

    “What does your mind see?” This question comes from an award-winning commercial featured at the Cannes Film Festival. Titled “Insight (The World Seen From the Heart)”, it was edited by Korean artist John Park as an advertisement for a famous camera brand. The above phrase appears in the last scene of the commercial.
    This summer break, my daughter is working as an intern for a post-production film company. She is fortunate to be working on the same team as this editor and collaborating with him on various projects. She is also translating and interpreting English into Korean, and vice versa. 

    저자 소개
    저자 : 오세리현

    재미 여류작가로 대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1983년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세리(Sherrie)는 영어 이름, 현(어질 賢)은 한글 이름이다. 월간 ≪한국수필≫에 작품 〈시간의 발자취〉 〈이웃 사랑 있음에〉가 신인상에 당선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수필집으로 『인연, 그 축복』 『바람 불어 좋은 날』을 출간했으며, 『생각의 유희』 『꽃을 따라온 별』 『골목길 쉼 돌에 앉아』 등 동인지와 공저를 펴냈다. 국제PEN 한국본부 세계한글작가대회기념문집에 〈한글, 세계무대에 서다〉 수필이 수록되었다. 작품으로 〈생일〉, 〈겨울바다〉, 〈역에서 역으로〉 외 다수의 수필을 문학지에 발표하고 있다.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 전 칼럼니스트, 국제PEN 한국본부 회원으로 문학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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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품/교환 불가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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