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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이 나를 보았다(이um 시선 7)

    • 정선희 저
    • 이um
    • 2026년 09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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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품 규격 정보
    상품상세정보
    ISBN ISBN-13 : 9791199846852
    쪽수160쪽
    크기B6(127mm X 188mm, 사륙판)
    제품구성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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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소개

    “사람의 눈빛을 / 약으로 쓸 때가 있었다.”

    정선희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초록이 나를 보았다』는 이 짧은 고백에서 시작한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사람의 눈빛으로 치유하고, 우울과 슬픔마저 삶을 견디게 하는 힘으로 바꾸어온 시인의 시간이 이 한 문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빛과 물, 나무와 꽃, 바위와 새를 오래 바라본다. 그러나 그가 자연을 바라보는 방식은 일방적이지 않다. 표제작 「초록이 나를 보았다」에서 물오리의 눈동자에 찰나처럼 떠오른 초록은 시인이 발견한 색인 동시에 시인을 바라본 세계의 눈빛이다. 보는 사람과 보이는 대상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 초록은 단순한 색채를 넘어 사라진 것과 남겨진 것, 믿음과 의심, 삶과 죽음을 잇는 통로가 된다.

     

    정선희의 시는 먼 시간과 넓은 공간을 자유롭게 오간다. 20억 년 전 바위의 기억을 더듬고, 중생대의 공룡과 태초의 빛을 불러내며, 몽골 사막의 별과 보이저 1호의 시선으로 오늘의 삶을 돌아본다. 이러한 우주적 상상력은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도피가 아니다. 가까이에서는 풀리지 않는 인간의 고민을 더 먼 자리에서 바라보고, 우리의 근심과 상처를 새로운 크기로 재어보려는 시적 사유의 방식이다.

     

    그렇다고 이 시집이 거대한 시간과 관념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시인은 수돗물을 틀어놓고 울던 사람, 부치지 못한 편지를 가방 속에 품고 살아온 사람, 남의 말에 쉽게 미안해하며 정작 자신의 편이 되어주지 못했던 사람의 마음을 세심하게 들여다본다. 「오랜 우울에게」에서는 자신의 우울한 이력이 누군가에게 내밀 손이 될 수 있는지를 묻고, 「울음 동호회」에서는 하루치 울음을 비워낸 사람이 가벼워진 달을 옆구리에 끼고 돌아가게 한다. 슬픔을 없애려 하기보다 충분히 울 수 있는 자리부터 마련해주는 것이 정선희 시가 지닌 다정함이다.

     

    시인은 익숙한 가치의 방향을 유쾌하게 뒤집기도 한다. 「결핍이라는 자원」에서는 부족함이 사라진 시대에 스스로 불편한 자유를 선택하고, 「영리한 우울」에서는 우울을 삶의 비바람을 피하는 방패로 받아들인다. 「나는 내 편이 아니었다」에서는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강박과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려온 삶을 돌아보며, 이제라도 스스로의 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반전은 삶의 그늘을 오래 통과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한 통찰이다.

     

    시집의 후반부로 갈수록 그 시선은 타인과 세계를 향해 더욱 따뜻하게 열린다. 「다정한 것들이 살아남는다」에서 시인은 한때 선망했던 냉소와 결별하고, 다정함이야말로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이 지닌 힘임을 깨닫는다. 「손의 세계」에서는 맞잡은 손 하나에서 한 사람의 마음과 기억, 상처와 운명까지 읽어낸다. 손을 잡는 일은 곧 한 사람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일이며, 사막에서 서로에게 오아시스가 되어주는 일이다.

     

    『초록이 나를 보았다』는 우울을 밀어내지 않고, 슬픔을 삶의 바깥으로 추방하지 않는다. 깨진 자리에 금빛을 입히는 킨츠기처럼 상처를 감추지 않은 채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되살린다. 상처 입은 것들이 서로의 손을 잡을 때, 결핍과 우울도 살아갈 힘이 될 수 있다고. 냉소보다 다정함이 오래 남고,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결국 사람의 눈빛이라고 말한다.

    목차

    [목 차]

    시인의 말

    1부 오랜 우울에게

    차가운 손 · 12

    오랜 우울에게 · 14

    큐레이터 · 16

    걷는 기분 · 19

    우주적 솔루션 · 21

    킨츠기 봄 · 23

    슈빌 · 25

    슬픔의 눈금 · 27

    결핍이라는 자원 · 29

    영리한 우울 · 31

    휴가 두 배로 즐기기 · 33

    심심함을 찾아서 · 36

    바위 연습 · 37

    슬픔은 어디로 가야 하나 · 39

    돌을 기르는 사람 · 41

     

    2부 눈물이 앞을 가릴 때

    초록이 나를 보았다 · 44

    부치지 못한 편지 · 46

    책의 귀 · 48

    감정의 포기 · 50

    용기 · 52

    맨드라미의 설문법 · 54

    뭉뚱그리는 말 · 57

    · 59

    짹짹커피 · 61

    울음 동호회 · 63

    무채색으로 무채색을 말하는 · 65

    철쭉으로 만든 관 · 68

    길들여진다는 것 · 69

     

    3부 버리고 비우면서 떠나는

    내기하듯 목련나무 · 72

    초록과 맞장 뜨다 · 74

    거룩한 이사 · 75

    표정의 광고판 · 77

    만대재 고양이 · 80

    집들이 선물 · 82

    자귀, 자기 · 84

    벤치의 자세 · 86

    운명의 수레바퀴 · 89

    책기둥 · 91

    불면증 · 93

    남해 설천의 봄 · 95

    나는 내 편이 아니었다 · 97

     

    4부 사랑을 많이 받았다는 말

    밤의 소리 · 100

    다정한 것들이 살아남는다 · 102

    노후 준비 · 105

    슬픔이 시킨 일 · 106

    입이 없는 인형 · 108

    손의 세계 · 110

    꼭두각시 · 112

    그게 뭐라고 · 113

    입만 남은 악어 · 115

    웃음 포인트 · 117

    자살도 힘이 있어야 · 119

    신선놀음 · 121

    놀아주다 · 123

    송창식 · 125

    익룡발자국 박물관 · 126

    생활의 달인 · 128

    벚꽃 엔딩 · 129

    |해설 | 김재홍 _ 장구한시간과 광대한공간사유의 현대성 · 130



    [본 문]

    경계 너머로 부는 바람에

    어지럽게 흩날리던 꽃잎이

    차 속으로 뛰어들었다

     

    꽃잎의 상상이

    자동차의 속도를 얻으면서

    한층 더 가까워진 우리

    이렇게 바람 속을 부유해도 되는 것인지

     

    봄은 흩날리는 것들의 속도로

    더 빠르게 편집된다

     

    깨진 도자기를 수리하는

    킨츠기의 기법으로

    우리의 이야기는 새롭게 시작된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우리인가요

    경계나 부위는 중요하지 않아

    상처를 덧대거나 숨기지 않아서

    더 아름다운 알몸들

     

    부서지는 것들을 생각하면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빛의 찬란

    하마터면 길을 잃을 뻔 했어요

     

    꽃잎을 따라가다가 헛디딘

    발끝에 피어나는

    찬란하고 오묘한 빛무리

     

    꽃 아닌 상처란 없다

    새로운 지도를 펼치고

    누군가의 영화 속 주인공이 된다

    ㅡ 「킨츠기 봄」중에서

     
    *

    달밤에 나왔다가 깜짝 놀랐다

    관들이 줄줄이 놓여있는 게 아닌가

    꽃으로 둘러 쌓인 관

    아파트 주변을 한 바퀴 돌다가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머리를 싹둑 잘라놓은 철쭉들

    꽃으로 장식한 관처럼 보였다

    성당에 다니는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성호를 그었다

     

    어젯밤

    저 먼 나라 아이들이 화염에 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ㅡ 「철쭉으로 만든 관」중에서

     


    한때 냉소적인 사람들이

    근사해 보였지

     

    눈을 가늘게 뜨고서

    한쪽 입귀가 올라가며

    한 마디 툭,

     

    그들은 말이 많은 사람을 무시하는 투로 말했지

     

    조용한 것을 못 견디는 거죠?

    또는 길게 말하고 있는데

    그래서요? 지겹다는 듯

    요점만 말해요!

     

    그들은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대신

    남의 말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자르고 토막 내기를 좋아했지

     

    젊은 날 그게 멋져 보여

    그들을 따라 배우고자 했지

     

    너는 자존심도 없어?

    나를 무시하는 사람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살았지

     

    인간의 본 모습은

    보노보사회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

     

    다정하다는 것은

    사랑을 많이 받았다는 말

    왜 좋은 것을 두고

    남의 것을 부러워했을까

     

    나는 나를 좀 더

    다정하게 대하기로 했어

    ㅡ 「다정한 것들이 살아남는다」중에서

     


    꼭두각시를 만드는 사람이 있다

     

    아직도 어디선가는 저 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무대 뒤에서 인형들을 조종하며

     

    그는 신이 된 기분을 즐긴다고 한다

     

    가끔 내 팔다리를 묶어 누군가 끌고 다닌다

     

    그의 짓일까 조종하는 대로

     

    나는 넘어졌다가 일어서기를 반복한다

     

    살살 좀 하라고

     

    소리치려는데, 그는 내 입을 만들지 않는다

    ㅡ 「꼭둑각시」중에서

     


    바다에 가면

    낚시 포인트가 있는 것처럼

    저마다의 생활엔 웃음 포인트가 있다

     

    어제는

    배달 오토바이 쌓인 박스 위 만물상을 보고

    웃음이 빵 터졌다

     

    소꿉장난하듯

    작은 행성에 큰 나무 세 그루뿐인 어린 왕자의 별처럼

     

    한낮의 인형뽑기방에서 뽑은

    자랑스러운 전리품들인가

     

    만세를 부르는 갈색 옷 고릴라도 있고

    눈가에 멍이 든 짱구 인형도 있고

    ㅡ 「웃음 포인트」중에서  

    추천사

    [시인의 말]

    사람의 눈빛을
    약으로 쓸 때가 있었다

    -정선희

    출판사 서평



    [해설]

    시인들은 멀리 과거와 대화하고, 더 멀리 미래와도 이야기를 나눈다고 얘기했습니다. 그것이 지향하는 바는 우선 ‘사람’이며, 나아가 “생물학적으로 차원을 달리하는 나무와 풀과 꽃과 소통하는가 하면, 물리적으로 구별되는 하늘과 바람과 구름과 바위와도 무람없이” 지낸다고도 했습니다. 정선희가 20억 년 전 지질 시대를 탐색하고, 중생대의 공룡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한없이 초라한 존재자인 인간의 유한성을 투철하게 인식한 결과입니다. 또한 드넓은 우주의 운행과 그것을 따라 생멸하는 다양한 생명들을 살핀 것도 종당에는 인간애로 귀결된다는 것을 말한 바 있습니다.

    또한 시인이 장구한 시간과 광대한 공간만 사유한 게 아님도 보았습니다. 그는 순간과 찰나를 보았고, 거기서 ‘초록’과 ‘슬픔’과 ‘우울’의 진정한 의미가 주체-객체의 이원론을 넘어서는 탈주체화와 일의성임을 알았습니다. 그 극점에 이르러 정선희는 ‘모두의 편’이 되고자 하는 시적 열망을 아름다운 표현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초록이 나를 보았다』는 등단 14년을 맞은 정선희 시인의 네 번째 시집입니다. 『푸른 빛이 걸어왔다』(시와표현)와 『아직 자라지 않은 아이가 많았다』(상상인), 『엄마 난 잘 울어 그래서 잘 웃어』(상상인)를 잇는 돋보이는 성과입니다. 분명한 것은 그 성과가 양적인 데만 머물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소재와 제재, 표현의 연속성과 더불어 매우 현대적인 철학적 사유가 서정시의 의상을 입고 태어난 것입니다. 이점은 오래도록 시단의 큰 주목을 받을 것임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김재홍 해설 중에서

    저자 소개
    저자 : 정선희

    · 경남 진주 출생
    · 2012년 《문학과의식》 신인상, 2013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등단
    · 국어교육전공
    · 제20회 모던포엠 문학상 수상
    · 시집 『푸른 빛이 걸어왔다』, 『아직 자라지 않은 아이가 많았다』, 『엄마 난 잘 울어 그래서 잘 웃어』, 『초록이 나를 보았다』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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