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태어나지만,
모두가 자기 자신을 만나는 것은 아니다”
조용한 고통의 시대,
자기 자신으로 살아도 괜찮아진 사람들의 기록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시간은 점점 줄고 있다. AI는 더 많은 정보를 안겨 주지만, 그만큼 내가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스스로 묻는 일은 어려워졌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답이 아니라, 내 안에서 다시 질문을 시작하는 일이다.
종교도, 직업도, 삶의 궤적도 서로 다른 27명의 사람들. 이들은 저마다 삶의 막다른 길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마주했고, 각자의 방식으로 답을 찾아갔다. 그 여정에서 공통으로 만난 것이 ‘명상’이다. 어떤 이는 침묵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았고, 어떤 이는 기도를 통해 신과 더 깊이 연결되고자 했다. 불교의 선(禪)과 가톨릭의 관상, 개신교의 묵상, 원불교의 좌선, 현대의 마음챙김까지 이름과 방법은 다르지만, 모두 인간의 마음을 향한다. 이들이 마주한 끝은 하나였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자기 자신으로 살아도 괜찮다는 믿음에 이르는 것.
김한수 기자는 오랜 취재를 통해 명상이 서로 다른 종교와 영성 전통을 잇는 공통의 언어임을 발견했다. 수행의 형태와 이름은 달라도 삶을 변화시키는 출발점은 언제나 자기 안을 바라보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명상은 쉴 새 없이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지금 이 순간의 몸과 호흡으로 돌아오는 일이다. 그 짧은 멈춤만으로도 생각의 소음이 잦아들고, 자신을 몰아세우던 마음에 여백이 생긴다. 그 자리에서 자기 이해와 연민이 자라고, 불안은 평온함으로 바뀌어 간다.
일 못하는 사람들에게 조바심을 냈던 안젤름 그륀 신부
생계를 걱정하던 분자생물학자 존 카밧진
자살을 생각했던 소년 차드 멩 탄
자신에게 장애를 입힌 이를 위해 기도하는 화가 박대성
4천여 명의 죽음을 지켜보며 깨달은 능행 스님
인터뷰이들의 삶은 처음부터 특별하지 않았다. 세계적인 영성가 안셀름 그륀 신부도 한때는 일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옆에서 조바심을 냈고 기도를 통해 자신과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현대 마음챙김의 선구자 존 카밧진은 젊은 시절 생계를 걱정하는 평범한 연구자였고, 그 경험은 오늘날 MBSR(마음챙김 기반 스트레스 완화 프로그램)으로 이어졌다. 어린 시절 자살을 생각할 만큼 깊은 우울을 겪었던 차드 멩 탄은 명상을 통해 삶을 다시 붙잡았고, 6·25전쟁에 휩쓸려 팔을 잃은 화가 박대성은 자신에게 장애를 입힌 이를 용서하는 마음을 기도 속에서 길러갔다.
이들의 삶을 바꾼 것은 극적인 깨달음이 아니었다. 자신의 고통과 불안, 내면의 소란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마주한 시간이었다. 엄청난 창작의 부담을 명상으로 다스리는 만화가 이현세, 병원 운영 실패 끝에 죽음을 떠올렸던 정신과 전문의 최훈동, 수시로 슬럼프에 빠졌던 프로야구 선수 한유섬, 4천여 명의 임종을 지킨 능행 스님까지. 저마다 짊어진 삶의 무게는 달랐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다시 삶의 중심(섬)을 찾아갔다.
명상을 시작한 이유 또한 같지 않았다. 어떤 이는 죽음의 문턱에서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듯 수행을 만났고, 어떤 이는 삶에 대한 오래된 질문을 따라 조용히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들이 도착한 곳은 ‘지금, 여기’였다. 인터뷰이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중요한 것은 특별한 깨달음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자신을 알아차리는 일이라고. 그래서 그들은 “늦은 때란 없다”, “멈추지 말라”고 말한다.
책장을 덮을 즈음 독자는 명상이 거창한 수행이나 초월의 경험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한 호흡에 머무는 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 타인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지는 일. 《쉼 숨 섬》은 그 작은 변화가 한 사람의 삶을 어떻게 다시 제자리로 이끄는지를 보여준다. 나에게로 가는 길은 멀리 있지 않다. 언제나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르는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된다.
아무것도 아닌,
그러나 모든 것인 ‘나’를 찾아가는 세 가지 길
‘쉄’, 오타가 아니다. 개신교 목회자 정광일 목사가 세운 가락재 영성원 마당의 비석에 새겨진 글자다. ‘쉼’과 ‘숨’, ‘섬’을 한데 묶은 말이다. 안식과 휴식으로 ‘쉼’을 얻고, 영적인 ‘숨’을 회복하며, 자기 삶의 중심인 ‘섬’에 이르는 여정이 함축돼 있다. 저자는 이 세 글자가 곧 이 책의 핵심을 관통하는 언어라고 말한다.
쉼_ 멈출 수 있는 용기
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더는 자신을 몰아붙이지 않기로 결심하는 순간이다. 이 책의 인터뷰이들은 삶의 괴로움과 불만족 앞에서 잠시 멈췄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생각과 반응을 내려놓자 번아웃과 상실, 관계의 상처와 실패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 되었다. 쉼은 현실을 포기하는 일이 아니라, 다시 자신을 만나는 시작이다.
숨_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느끼는 한 호흡
생각은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하지만, 호흡은 언제나 현재에 머문다. 인터뷰이들이 공통으로 이야기한 명상의 시작도 한 호흡을 알아차리는 일이었다. 몸의 감각을 느끼고, 생각의 속도를 늦추며,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힘은 ‘한 호흡’을 의식하는 것에서 자라난다.
섬_ 흔들릴 때마다 돌아오는 삶의 중심
섬은 고립된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마음의 자리를 가리킨다. 인터뷰이들이 수행을 통해 얻은 것은 흔들리지 않는 삶이 아니었다. 흔들릴 때마다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는 힘이었다. 그곳에서 이들은 비로소 ‘내가 나여도 괜찮다’는 믿음을 얻고, 자신과 타인, 세상을 이전보다 더 따뜻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쉼’은 문을 열고, ‘숨’은 길을 만들며, ‘섬’은 삶의 중심이 된다. 삶이 흔들릴 때 잠시 멈추고, 한 호흡에 집중하며, 다시 자신의 중심을 확인하는 일. 이 책은 그 여정을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명상이 우리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종교는 달라도, 마음이 향하는 곳은 하나!
사랑과 연민의 ‘차가운 물’
명상은 불교만의 수행일까? 27명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명상이 특정 종교에만 속한 수행이 아님을 알게 된다. 불교의 선(禪)과 천주교의 관상,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개신교의 묵상, 원불교의 좌선, 현대 심리학의 마음챙김(MBSR), 나아가 종교 없이 자신의 호흡과 몸을 관찰하는 일상적인 명상까지. 이름도 방법도 다르지만, 이들이 향하는 곳은 놀라울 만큼 닮았다.
불교는 알아차림을 통해 집착과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고, 그리스도교는 침묵과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더 깊은 만남을 추구한다. 원불교는 마음을 바르게 쓰는 공부를, 현대 마음챙김은 현재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강조한다. 표현은 달라도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고 삶의 고통을 덜어내며, 자신과 타인, 세상과 더 깊이 연결되는 삶을 지향한다.
저자는 불교와 천주교, 개신교 성직자는 물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심리학자, 과학자, 예술가 등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을 만나며 하나의 진실을 발견한다. 명상은 특정 종교의 전유물이 아니라, 여러 영성 전통이 서로를 이해하고 만나는 공통의 언어라는 것이다. 서로 다른 신앙 역시 경쟁하는 진리라기보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이해하고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서로 다른 표현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은 수행법을 비교하거나 우열을 가리지 않는다. 오히려 각 전통이 왜 그런 수행을 이어왔는지, 그 수행이 삶 속에서 어떻게 스며드는지 보여줄 뿐. 관상기도의 침묵도, 렉시오 디비나의 거룩한 독서도, 좌선과 위빠사나도, 마음챙김도 모두 삶을 떠나 신비를 좇는 기술이 아니라, 오늘을 더 깊이 살아내기 위한 길이다.
그 여정에서 수행은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바꾸는 것일까. 위빠사나 명상의 대가 고엔카는 이를 ‘휘발유와 차가운 물’에 비유한다. 마음속에 분노와 두려움, 상처가 쌓여 있으면 작은 불씨에도 쉽게 타오르는 휘발유 통이 되지만, 꾸준한 수행이 그 연료를 조금씩 비워낸다. 그 자리에 사랑과 연민이라는 ‘차가운 물’이 채워지기 시작하면, 같은 자극 앞에서도 마음은 쉽게 타오르지 않는다. 명상은 현실을 피하는 게 아니라, 현실을 이전과 다른 마음으로 살아낼 힘을 기르는 과정이다.
이 책의 인터뷰이들이 말하는 신비는 특별한 체험이나 초월적인 능력이 아니다. 그들이 끝내 발견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이라는 가장 평범한 기적이다. 한 호흡을 놓치지 않고, 한 사람을 더 따뜻하게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일. 종교는 달라도, 수행의 이름은 달라도, 27명의 삶이 가리킨 방향은 바로 그곳이었다.
■ 저자의 말
“원고를 정리하며 당시의 인터뷰 녹음을 다시 들었다. 행복했다. 명상을 만나 삶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인터뷰한 분들의 목소리에서 그 기쁨이 생생하게 다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행복감을 독자들에게 가능한 한 전달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