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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ISBN-13 : 9791176612760 |
|---|---|
| 쪽수 | 256쪽 |
| 크기 | A5(148mm X 210mm, 국판) |
| 제품구성 | 양장 |
- 인문/역사 > 언론학/매스컴
라디오 한 대가 나라의 목소리가 되기까지,
방송 100년은 사람과 시대의 기록이었다
JODK 호출부호, 단파방송 연락운동, 해방의 마이크, 전쟁 속 피란방송, 민영방송의 탄생, 언론통폐합, 한류와 종편, UHD와 방송박물관의 과제까지―한국 방송의 한 세기를 사건·인물·프로그램·사료로 되짚는다.
방송은 어떻게 한 시대의 목소리가 되었는가
1927년 2월 16일 경성방송국의 정규방송으로 출발한 한국 방송은 식민지와 해방, 전쟁과 산업화, 민주화와 다매체 시대를 거치며 사회의 중심 매체로 성장했다. 『한국 방송 100년사』는 이 100년을 단순한 연도와 제도의 목록으로 정리하지 않는다. 시험방송의 현장, 호출부호의 의미, 방송 직종을 개척한 사람들, 사라진 방송국과 살아남은 프로그램, 제도를 둘러싼 갈등을 연결해 방송이 시대와 함께 움직여온 과정을 보여준다.
이 책은 서장에서 한국 방송의 기원과 역사서 편찬의 흐름을 짚은 뒤, 192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를 열 개 장으로 나누어 전개한다. 마지막 종장에서는 지상파의 하향세와 재원 위기, 공영방송 체제의 문제를 살피며 한국 방송이 다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 혁신을 제안한다.
[목 차]
서장 한국 방송의 기원 고찰
제1장 경성방송국 개국―방송의 탄생
제2장 1945년 해방과 서울중앙방송국의 등장
제3장 1950년대: 한국 방송의 변화상 고찰
제4장 1960년대: 민영 상업방송의 탄생과 KBS의 변화
제5장 1970년대: 공영방송 창립기 및 상업방송 성숙기
제6장 1980년대: 한국 방송 재편기 및 확충기
제7장 1990년대: 방송 다원화기 및 KBS 공영방송 도약기
제8장 2000년대: 한류의 본격화 및 교육방송공사 탄생
제9장 2010년대: 종합편성 채널 등장 및 MBC 상암시대 개막
제10장 2020년대: 코로나19 돌발 및 방송 100년 과제
종장 한국 방송제도의 혁신으로 성장 돌파구 창출
[본 문]
현 수표동인 당시의 경성부 수표정에 있던 한식 평가옥 조선일보 사장실에 홑이불로 방음장치를 하고 마이크를 설치, 방송실을 꾸미고 지금의 상공회의소 자리에 있던 당시의 공회당과 우미관에 수신기를 설치하고 그곳에 애독자를 초대하여 방송을 실시했던 것이다. 당시 조선일보 기자 최은희의 사회로 진행된 프로그램은 사장인 이상재의 인사를 시작으로 무선방송 설치자인 일본인에 대한 설명에 이어, 명창 이동백의 창에 주만갑의 해금 앙금 연주 등의 순서로 계속되었다. 이 행사는 인천, 수원, 개성, 영등포 등지에서도 베풀어졌는데 수천 명의 지방 도시 주민들이 신비하기 그지없는 라디오방송에 매혹되었다. 아울러 이 행사는 시민들에게 라디오 수신기 소유욕도 높여 주었다.
- P. 30 ‘제1장 경성방송국 개국’ 중에서
조선총독부 체신국은 경성방송국 개국 당시 호출부호를 일본 체신성에 JOAK(도쿄), BK(오사카), CK(나고야)에 이어 일본의 네 번째 방송국인 만큼 DK로 할당해 줄 것을 강력히 요청하여 달성시켰다. 그 결정에는 내선일체, 일시동인이라는 사상이 배후에 깔려 있다. 그러나 사실상 호출부호는 일본제국의 식민지별로 달랐는데, 조선은 ‘JB’, 대만은 ‘JF’, 만주는 ‘JQ’이었다. 즉 ‘JO’는 일본 내에서만 사용하는 호출부호였던 것이다.
- P. 32 ‘제1장 경성방송국 개국’ 중에서
이 사건에 연루된 한국방송인들은 중앙방송국 기술자, 아나운서, 편성원 등 40여 명을 비롯하여 전국의 지방방송국에서 약 100여 명 등 무려 150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가장 크게 고초를 겪은 이가 방송기술인 성기석이다. 그는 단파수신기 제작기술이 뛰어나 취미 활동으로 만들다가 주변 사람들로부터 부탁을 받아 수신기기를 조립하여 제공하였다. 이 기기를 통하여 ‘미국의 소리(VOA)’ 등 해외 단파소식을 접하게 되고 주변 동료들에게 전파하는 등의 과정 등에서 일본 경찰의 덜미에 잡혀 급기야 구속되기에 이른다.
- P. 43 제1장 경성방송국 개국 중에서
방송 미디어의 힘은 1945년 8·15 해방 공간에서도 여실히 나타났다. 비록 라디오 단일 매체로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일본 천황의 항복 선언, 소위 ‘옥음 방송’도 라디오를 통하여 전파되었으며, 국민들의 기쁨에 찬 함성도 방송의 힘에서 비롯되었다. 방송의 영향력이란 순기능 차원에서만 보면 엄청나게 커서 방송만큼 세상을 바꿀 만한 위대한 도구도 없을 것이다.
- P. 49 제2장 1945년 해방과 서울중앙방송국의 등장 중에서
장기범은 아무리 대중적 인기와 영향력을 가진 아나운서라 할지라도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이처럼 그는 선지자의 역할, 선비로서의 기개를 보인 한국 방송사에 보기 드문 방송인이었다. 장기범은 “말은 곧 사람이다”라는 금언을 강도 높게 강조하며 몸소 실천했다. 그는 아나운서가 되기 위하여 태어난 사람처럼 일생을 아나운서로 살았다.
- P. 62 제2장 1945년 해방과 서울중앙방송국의 등장 중에서
저자가 관련 사료를 통하여 조사한 바에 의하면, 6·25 전쟁으로 사망한 방송인은 앞에서 언급한 이중근 1명으로 확인됐으며, 납북 방송인은 현재까지 한덕봉을 비롯하여 28명으로 파악되었다.
- P. 80 제3장 1950년대: 한국방송의 변화상 고찰 중에서
이러한 과정을 통해 기독교방송은 1954년 12월 15일 첫 정규방송을 내보내 개국하게 되었다. 이 CBS의 개국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민간방송의 탄생인 동시에 방송 제도의 틀도 국영방송 독점 시대에서 민영 제도가 혼합하는 시대를 개막하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 P. 87 제3장 1950년대: 한국방송의 변화상 고찰 중에서
MBC는 이 1960년대에 라디오 매체로 존치하면서 1963년과 64년에 등장한 새 상업방송과 치열한 청취률 경쟁에 몰입하였다. 1963년 개국한 DBS 동아방송과 그 다음해 등장한 RSB 라디오서울이 MBC와 더불어 상업민방 3사 시대를 펼치면서 극한 상황을 방불케 하는 경쟁을 펼쳐나갔다.
- P. 102 제4장 1960년대: 민영 상업방송의 탄생과 KBS의 변화 중에서
한국방송공사 창립은 비록 유신정권의 통제 속에서 출발했지만, KBS의 정체성과 지향점의 단초를 마련했다는 사실을 주시할 때, 명실상부한 공영방송을 향한 KBS의 길고 먼 여정의 출발점이라는 측면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KBS는 오랜 국영방송 체제에서 벗어나 정권으로부터의 정치적 독립성 확보를 지상과제로 안고 진정한 공영방송을 꿈꾸며 새롭게 출발한 것이다.
- P. 124 제5장 1970년대: 공영방송 창립기 및 상업방송 성숙기 중에서
1980년 신군부가 집권하자 그 세력에 참여한 언론인, 언론학자들이 언론 통제의 수단으로 언론사를 통폐합하는 극단적 조치에 앞장섰다. 방송협회의 자율적 결의라는 오명하에 방송사도 대대적인 통폐합이 이루어졌다. 공민영 제도의 방송 질서가 공영방송 단일체제로 전환되면서 민간 상업방송이던 MBC 문화방송은 졸지에 공영화되는 해프닝이 이루어져 지금까지 그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 P. 140 제6장 1980년대: 한국 방송 재편기 및 확충기 중에서
이 시대 MBC도 1980년 10월 농촌드라마의 원조격인 《전원일기》가 탄생했으며 1981년 4월 정치드라마 《제1공화국》이 시작되었고, 5월에는 유아 프로그램 《뽀뽀뽀》가 편성되었다. 1983년 3월에는 대하 역사드라마 《조선왕조 500년》이 주간극으로 방송되기 시작해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장수 프로그램으로 정착했다. TV 교양 프로그램으로는 1985년 5월에 등장한 휴먼 다큐멘터리 《인간시대》가 대중적이며 감동을 많이 준 프로그램으로 1990년대 초까지 장수했다.
- P. 145 제6장 1980년대: 한국 방송 재편기 및 확충기 중에서
KBS는 1998년 9월 3일 방송의날을 맞아 한국 방송 최초로 ‘KBS 방송제작 가이드라인’을 제정하여 공포했다. KBS 방송제작 현장을 대표하는 50여 명의 편집 및 집필진이 오랫동안 작업하여 당시 박권상 사장이 공포했는데, 실무자 대표로 《독도 365일》을 제작했던 최훈근 PD의 노고가 컸다.
- P. 158 제7장 1990년대: 방송 다원화기 및 KBS 공영방송 도약기 중에서
최창봉은 생전에 ‘방송역사의 살아 있는 전설’이라 불린 한국 방송의 최고 원로로서 우리나라 여러 방송국의 개국을 주도한 위대한 방송인이었다. 그는 지상파 주요 방송사 최고 방송 경영인으로 한국 방송사에 큰 획을 그은 한국 최초의 TV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그는 1956년 한국 최초의 텔레비전방송국인 HLKZ-TV에 입사하여 초석을 놓았으며 1961년 MBC 개국 및 KBS-TV 창설에 기초를 다진 후, 1963년 DBS 동아방송 개국 때에도 방송 실무책임자로 활동하였다.
- P. 166 제7장 1990년대: 방송 다원화기 및 KBS 공영방송 도약기 중에서
2000년대 들어서 한국 방송의 TV 드라마들이 국내외에서 한류의 깃발을 크게 올렸다. KBS는 2000년 9월에 방송된 드라마 《가을동화》가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 오면서 한류의 큰 시금석이 되었다. 윤석호 PD 연출 작품인 《가을동화》는 송혜교, 송승현이 주연을 맡아 4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이웃 나라 대만을 필두로 하여 아시아권으로 퍼져나가며 한국에 대한 이미지 제고에 크게 기여했다.
- P. 185 제8장 2000년대: 한류의 본격화 및 교육방송공사 탄생 중에서
KBS는 1999년 밀레니엄 시대를 대비하여 사장 직속 특별부서로 밀레니엄기획단을 발족시키면서 저자를 개혁기획단장에 이어 이 부서 단장으로 발령내었다. 새 조직을 발족시키면서 저자는 최고경영자에게 진언하여 그 구성원들을 기자, PD, 기술, 경영 등 각 직종을 망라하여 우수한 인재들을 차출할 수 있었다.
- P. 196 제8장 2000년대: 한류의 본격화 및 교육방송공사 탄생 중에서
2000년대 스포츠 빅 이벤트로는 2002년 개최된 한일 월드컵 경기가 단연 돋보인다. 5월 31일부터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개최한 제17회 월드컵 대회는 두 나라에서 나누어 경기를 펼쳤다. 이때 한국은 세계 4위라는 성적을 차지해 온 세계 축구계를 놀라게 했다. TV를 시청하던 수천만 국민들은 환호하며 거리로 뛰어나와 길거리 응원을 펼치면서 밤새도록 감동의 순간을 이어갔다.
- P. 200 제8장 2000년대: 한류의 본격화 및 교육방송공사 탄생 중에서
이 시기의 한국 방송계의 큰 변화는 종합편성 채널의 등장이다. 이 채널은 케이블TV와 위성방송, IPTV 등을 통하여 뉴스·드라마·교양·오락·스포츠 등 모든 장르를 방송하는데, 줄여서 종편이라고도 한다. 모든 장르를 편성한다는 점에서는 지상파와 차이점이 없으나 케이블TV나 위성TV를 통해서만 송출하기 때문에 여기에 가입한 가구만 시청할 수 있다.
- P. 206 제9장 2010년대: 종합편성 채널 등장 및 MBC 상암시대 개막 중에서
한국은 이미 박물관 1000관 시대에 진입한 박물관 선진국이 되었다. 이러한 박물관 선진국에 유독 방송박물관만 부재하니 통탄스러울 뿐이다. 한국 방송이 이룩한 업적이 대단함에도, 그러한 위업을 기록하고 보존하여 후대들에게 전승할 ‘방송역사의 집적지’가 없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 P. 233 제10장 2020년대: 코로나19 돌발 및 방송 100년 과제 중에서
따라서 한국 방송 기관이나 그 기관에 근무하는 이들이 사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수집에 앞장서 체계적인 보존 관리방안을 탐구하여야 할 것이다. 더욱 중요한 사항은 어느 곳에 숨겨져 방치된 사료들을 발굴하여 정리하여 보존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작업이다. 방송사들이 방치하여 깊숙한 곳에 숨겨진 방송 사료를 찾아내 한국 방송 역사 속에 기록된 인물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지상과제로 판단된다.
- P. 239 제10장 2020년대: 코로나19 돌발 및 방송 100년 과제 중에서
한국 방송산업이 하향화되고 있다. 그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 현상을 거론할 수 있겠지만, 새로운 매체들이 즐비하게 등장하고 유행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카톡,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이 시대의 조류를 타고 맹위를 떨치고 있다. 방송 매체는 구시대적 산물로 전락하고 방송을 듣지도 보지도 않는 상황이 즐비하게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사회현상은 신문 매체가 시대적 조류에 따라 하향하던 상황이 방송매체에게도 들이닥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P. 243 종장: 한국 방송제도의 혁신으로 성장 돌파구 창출 중에서

라디오 한 대가 나라의 목소리가 되기까지,
방송 100년은 사람과 시대의 기록이었다
JODK 호출부호, 단파방송 연락운동, 해방의 마이크, 전쟁 속 피란방송, 민영방송의 탄생, 언론통폐합, 한류와 종편, UHD와 방송박물관의 과제까지―한국 방송의 한 세기를 사건·인물·프로그램·사료로 되짚는다.
방송은 어떻게 한 시대의 목소리가 되었는가
1927년 2월 16일 경성방송국의 정규방송으로 출발한 한국 방송은 식민지와 해방, 전쟁과 산업화, 민주화와 다매체 시대를 거치며 사회의 중심 매체로 성장했다. 『한국 방송 100년사』는 이 100년을 단순한 연도와 제도의 목록으로 정리하지 않는다. 시험방송의 현장, 호출부호의 의미, 방송 직종을 개척한 사람들, 사라진 방송국과 살아남은 프로그램, 제도를 둘러싼 갈등을 연결해 방송이 시대와 함께 움직여온 과정을 보여준다.
이 책은 서장에서 한국 방송의 기원과 역사서 편찬의 흐름을 짚은 뒤, 192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를 열 개 장으로 나누어 전개한다. 마지막 종장에서는 지상파의 하향세와 재원 위기, 공영방송 체제의 문제를 살피며 한국 방송이 다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 혁신을 제안한다.
조선일보 사장실의 홑이불 방음실, 방송의 시작은 뜻밖의 풍경이었다
정규방송이 시작되기 전, 방송은 실험과 공개시험의 형태로 대중 앞에 나타났다. 1925년 조선일보는 사장실에 홑이불로 방음장치를 하고 마이크를 설치했다. 공회당과 우미관에는 수신기를 놓았고, 명창의 소리와 해금 연주가 전파를 타자 수천 명의 시민이 새로운 매체에 매혹되었다. 책은 이러한 구체적인 장면을 통해 ‘방송의 탄생’을 추상적인 기술사가 아니라 사람들이 처음 소리를 공유한 문화사로 되살린다.
JODK의 네 글자에는 식민지 방송의 모순이 들어 있다
경성방송국의 호출부호 JODK는 단순한 식별기호가 아니었다. 일본 본토의 호출부호 체계와 식민지별 호출부호가 달랐던 상황, 경성방송국이 일본의 네 번째 방송국처럼 ‘JO’를 부여받은 경위, 뒤이어 부산방송국이 JBAK를 사용하게 된 사정을 따라가면 방송망의 확장 속에 내재한 식민 통치의 논리가 드러난다. 여기에 단파로 해외 소식을 듣고 전한 방송인들이 체포·투옥되고 옥사한 ‘단파방송 연락운동’까지 더해져, 전파가 통치의 수단인 동시에 저항과 정보의 통로였음을 보여준다.
해방의 환호도, 전쟁의 참상도 라디오 통해 퍼져나가
1945년 일본 천황의 항복 선언과 해방의 함성은 라디오를 통해 퍼졌다. 미군 진주와 함께 일본어 채널이 한국어 채널로 바뀌었고, 국영방송 체제가 본격화했다. 이어 6·25전쟁은 방송시설과 방송인을 동시에 파괴했다. 책은 피란방송의 열악한 환경, 남산방송촌의 건립, 전쟁 중 사망하거나 납북된 방송인들을 사료와 기록을 통해 추적한다. 한덕봉을 비롯해 저자가 파악한 납북 방송인 28명의 기록은 거대한 역사를 개인의 이름으로 되돌려놓는다.
한 개인의 발상에서 시작된 최초의 TV, 민영방송은 어떻게 태어났나
1950년대에는 CBS 기독교방송, HLKZ-TV, 부산문화방송 등 새로운 방송 주체가 등장했다. 특히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국 HLKZ-TV는 미국 RCA의 한국 대리점을 운영하던 황태영의 발상과 기자재 도입에서 시작되었다. 1960년대에는 MBC, 동아방송, 라디오서울·동양방송이 잇따라 출범하며 상업방송 경쟁이 뜨거워졌다. 프로그램, 인력, 송신시설을 둘러싼 경쟁의 현장을 통해 한국 방송산업이 형성되는 과정을 입체적으로 읽을 수 있다.
공영방송의 출범과 언론통폐합―성장과 상처가 한 시대에 겹쳐
1973년 한국방송공사의 출범은 KBS가 국영방송에서 공영방송으로 전환하는 출발점이었다. 여의도 청사 건립과 전문 인력 확충은 새로운 방송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1980년 언론통폐합은 민간방송을 해체하고 공영방송 단일체제를 만들었다. TBC와 DBS의 채널과 인력이 KBS로 흡수되고 MBC가 공영화되는 과정은 오늘날 방송제도의 뿌리를 이해하게 한다. 이 시기 《전국노래자랑》, 《TV문학관》, 《추적60분》, 《전원일기》, 《조선왕조 500년》 등 오랫동안 기억되는 프로그램들이 탄생한 역사도 함께 담겼다.
《겨울연가》에서 종편과 UHD까지, 방송의 무대가 국경과 플랫폼을 넘다
1990년대의 다매체·다채널화, 2000년대의 한류, 2010년대의 종합편성 채널과 UHD 방송은 방송의 경계를 크게 바꾸었다. 《가을동화》와 《겨울연가》가 아시아에 한국의 이미지를 심었고, 교육방송은 전쟁기 ‘라디오 학교’에서 출발해 독립적인 방송공사로 성장했다. KBS의 우리말 이름 ‘한국방송’이 탄생한 과정, 월드컵 거리응원과 방송, 지상파 최초 UHD 본방송도 한 시대의 변화로 연결된다.
100주년을 앞둔 방송에 없는 것―박물관, 인물사, 그리고 미래 제도
이 책의 시선은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저자는 방송 사료가 흩어지고 사라지는 현실을 지적하며 한국 방송박물관 건립과 방송 인물사 연구를 100주년의 핵심 과제로 제시한다. 종장에서는 인터넷·유튜브 등 새로운 매체의 확산과 지상파의 재원 위기를 진단하고, KBS·MBC·EBS를 둘러싼 공영방송 제도를 시대에 맞게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방송의 역사를 기록하는 일이 곧 방송의 다음 세기를 준비하는 일이라는 문제의식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1970년 KBS 방송직(아나운서) 공채로 입사해 아나운서, PD, 연구원, 편성, 정책, 지역방송국 등 방송 현장의 여러 직종과 부서를 거쳤으며 KBSi(인터넷) 사장을 지냈다. 이후 대학에서 약 10년 동안 교수로 재직했고, 대학을 떠난 뒤 한국 방송사 연구와 사료 정리에 전념했다. 『한국 아나운서 통사』, 『한국 방송기자 통사』, 『소장 사료를 통해 본 한국 방송 역사』 등을 펴냈고, 2017년 KBS의 『한국 방송 90년 연표』를 집필했다. 이상의 소개는 책의 「머리말」과 본문에 적힌 내용만을 바탕으로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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