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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ISBN-13 : 9791174900807 |
|---|---|
| 쪽수 | 410쪽 |
| 크기 | 기타 규격 |
| 제품구성 | 단행본 |
- 인문/역사 > 문학
우리는 말이 넘쳐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뉴스와 광고, 정치적 구호와 인터넷의 댓글이 쉴 새 없이 쏟아진다. 말의 양은 늘어났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실과 감정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상투화된 언어는 세상을 선악의 구도로 단순화하고, 때로 혐오와 폭력을 부추기는 도구가 된다. 황정산의 평론집 『별이 사라진 시대의 서정시』는 이러한 현실에서 서정시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얘기한다. 이 책이 붙들고 있는 핵심 개념은 ‘언어의 두께’이다.
저자에게 시는 납작해진 말을 다시 부풀리는 작업이다. 사물과 사물의 관계를 이어주고, 말과 존재에 깃든 기억과 정서의 심연을 탐색하며, 일상의 언어가 지워버린 삶의 진실을 되살리는 일이 시 쓰기의 본질이다. 시인은 익숙한 질서 앞에서 “왜?”라고 질문하는 사람이며, 두꺼워진 언어를 통해 세상의 두려움과 억압에 저항하는 존재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의 서정시를 읽고 그 안에 축적된 감성과 사유의 깊이를 헤아린다.
제1부 「서정시의 힘」은 이 책 전체의 비평적 토대를 보여준다. 저자는 서정시를 자아와 세계의 행복한 합일이라는 전통적인 규정에서 해방한다. 근대 이후의 서정은 주체와 세계의 거리, 나와 타자의 긴장, 자연과 인간 사이의 균열 속에서 형성된다. 그 긴장을 견디며 언어의 객관성을 확보하는 아이러니가 현대 서정시의 중요한 원리가 된다. 개인의 기억이 공동체의 경험과 만나는 순간 서정시는 역사의식을 획득하며, 타인의 상처를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치유의 가능성을 연다. 또한, 저자는 시어의 함축성과 침묵의 힘을 강조한다. 적은 말로 존재를 더 넓은 시간과 공간에 연결하는 데 시의 경이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제2부 「별이 사라진 시대의 서정시」는 이러한 논의를 구체적인 작품 속에서 확인한다. 이 시대의 별은 모든 사람의 길을 밝혀주는 절대적인 가치로 머리 위에 떠 있지 않다. 별은 꽃과 이슬방울, 돌과 바람, 타인의 손길과 마음의 그리움 속에 잠시 나타난다. 시인은 사라진 별을 슬퍼하면서 자기 몸 안에 새로운 별을 키운다. 해야, 남택성, 김백겸, 김영미를 비롯한 여러 시인의 작품을 읽어가는 과정은 우리 시대 서정시가 순수와 부재, 슬픔과 불안, 자유와 탈주를 어떻게 새로운 언어로 바꾸는지를 보여준다.
제3부에서는 시의 시선이 삶의 구체적인 현장으로 더욱 깊이 들어간다. 죽음과 질병, 가난과 노동, 상실과 그리움, 자연과 생명의 문제가 다양한 작품을 통해 탐색된다. 평론가의 시선은 아픈 존재들이 서로의 등과 어깨와 체온을 빌려 살아가는 장면에 오래 머문다. 서정시가 즐겨 다루는 그리움은 충족되지 못한 욕망에서 생겨난 슬픔을 삶의 깊이로 바꾸는 정신적 힘이라고 저자는 생각한다.
제4부 「서정으로의 초대」에 실린 서평들은 사라지는 것, 아픈 몸, 자발적 외로움, 자연, 진정성의 언어를 폭넓게 다룬다. 짧은 글 안에서도 작품의 핵심 이미지와 시인의 정신적 지향을 정확히 포착한다. 인용한 작품들의 한 단어, 한 장면을 꼼꼼하게 분석하여 시집 전체의 세계로 나아가는 세밀한 읽기는 이 평론집의 중요한 장점이다. 이론은 작품을 재단하는 기준으로 군림하지 않고 작품 속에서 발견한 의미를 더욱 선명하게 밝히는 도구가 된다.
『별이 사라진 시대의 서정시』는 우리 시대 서정시의 다양한 지형을 보여주는 동시에 서정시가 여전히 필요한 이유를 설득력 있게 증명한다. 서정은 사라진 관계를 되살리고, 타인의 고통을 기억하며, 상투적인 삶과 언어에 균열을 내는 힘이다. 별이 사라진 시대에도 시인은 별을 찾아 나선다. 때로는 꽃잎에서, 때로는 아픈 몸과 외로운 마음에서, 때로는 사라지는 존재의 마지막 흔적에서 희미한 빛을 발견한다. 이 평론집은 그 빛을 따라 우리 시대의 시와 삶을 읽어가는 냉철하지만 따뜻한 안내서이다.
[목 차]
서문 서정시와 언어의 두께
제1부 서정시의 힘
서정시라는 오명/ 서정시와 역사의식/ 서정적 언어의 힘/
상처와 치유로서의 서정시/ 시가 길지 않아야 할 세 가지 이유
제2부 별이 사라진 시대의 서정시
순수의 눈으로 다시 보는 세계
- 해야 시집 『맨발로 별까지』 해설
부재와 현존 사이에서 찾은 무심의 시학
- 남택성 시집 『너는 없고 나는 있고』 해설
시뮬라크르와 새로운 주술의 언어
- 김백겸 시집 『거울아, 거울아』 해설
별이 사라진 시대의 서정시
- 김영미 시집 『내 몸에는 별이 산다』 해설
슬픔의 두 가지 이유와 그것을 견디는 두 가지 방법
- 금별뫼 시집 『몇 분의 안도감』 해설
벗어나거나 다시 붙잡히거나
- 김연숙 시집 『눈부신 꽝』 해설
은근히 아나키스트
- 김윤선 시집 『절벽 수도원』 해설
다른 것 되기와 다르게 말하기
- 김태영 시집 『매일 밥 짓는 하느님』 해설
불안하고 불완전해서 불온한
- 김명이 시집 『사랑에 대하여는 쓰지 않겠다』 해설
제3부 서정시로 읽는 세상의 깊이와 두께
아픈 것들이 서로를 업는 저녁
- 박윤일 시집 『솜사탕 증후군』 해설
맑은 눈이 찾아낸 삶의 지혜
- 박태진 시집 『가장 늦게, 가장 낮게』 해설
생명 있는 것들은 모두 슬픔을 안다
- 석연경 시집 『독수리의 날들』 해설
그리움의 두께
- 신재화 시집 『핑크, 펑크』 해설
생활의 깊이와 사유의 구체성
- 이은봉 시집 『생활』 해설
자연 속의 삶, 삶 속의 자연
- 정금윤 시집 『가족오락관』 해설
납작해진 세상 생명의 언어로 일으키다
- 정영주 시집 『달에서 모일까요』 해설
주체의 확장과 스밈의 미학
- 지하선 시집 『미지의 하루에 불시착하다』 해설
제4부 서정으로의 초대
잠으로의 초대
- 김재근 시집 『같이 앉아도 될까요』 서평
사라지는 것들을 위하여
- 오민석 시집 『그리운 명륜 여인숙』,
- 김승기 시집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서평
아픔을 대하는 두 가지 방식
- 주선미 『통증의 발원』,
- 이수 『오늘의 표정이 구름이라는 것은 거짓말이야』 서평
살아 있는 것과 사라지는 것 사이
- 이영춘 시집 『노자의 무덤을 가다』 서평
자발적 외로움의 언어
- 이명수 시집 『바람코지에 두고 간다』 서평
자연으로 또는 자연에서
- 문효치 시집 『별박이자나방』,
- 김완하 시집 『절정』 서평
진정성의 언어와 그 힘
- 김도연 시집 『엄마를 베끼다』 서평
삶의 상투성에 대한 두 가지 저항
- 정병근 시집 『눈과 도끼』,
- 김예강 시집 『오늘의 마음』 서평
[본 문]
서정시가 현대성을 획득하며 낡지 않게 갱신해 가는 하나의 방법은 언어의 객관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즉, 나의 주관적 언어를 통해 세상과 만나는 지점을 이루어 내는 것이다. 일인칭의 관점으로 세상의 비의나 세계의 진실을 드러낼 수 없는 현대 사회에서 흔히 그것은 아이러니로 나타난다. 내가 서 있는 곳과 반대 지점에 대한 시선, 내 생각과 다른 세상의 질서와의 상충과 그 속의 갈등이 주관과 객관 사이의 끝없는 긴장을 만든다. 낡은 서정시라는 오명을 벗어나는 길은 바로 이 긴장을 유지하는 것이다. -「서정시라는 오명」 부분
의자는 무거운 사람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무게에 눌려 살면서 서서히 그 무게에 저항할 모반의 의지를 키우고 있다. 의자가 삐걱이며 낡아가는 이유이다. 그런데 이런 의자가 그 존재의 가장 치열한 의미로 다가오는 것은 바로 그 의자가 무너질 때이다. 의자가 몰락하면서 시인도 몰락하고 의자의 고통을 시인 역시 고통스럽게 경험하게 될 것이다. 시인은 두려움 속에서도 그것을 피하지 않고 바라보고 있다. -「 상처와 치유로서의 서정시」 부분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이 찾아 떠돌던 별을 발견한다. 그 별은 그가 돌아온 집에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당신”이었다. 불빛이 아니라 별빛이었고, 당신이 집이었고 별이었다. 여기서 별의 이미지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1부의 별은 하늘의 별이었지만, 마지막의 별은 집 안의 별이며, 당신이라는 관계의 별이다. 시집의 여정은 하늘의 별에서 시작해 집의 별로 돌아온다. 이 귀환은 단순한 회귀로 볼 수 없다. 오히려 자연과 우주를 통과한 뒤에야 가장 가까운 존재의 빛을 알아보게 되는 성찰의 완성이며 구도의 끝 지점이다. -「순수의 눈으로 다시 보는 세계」 부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는 시뮬라크르가 만들어 낸 매트릭스가 지배하는 시대이다. 복제된 기호가 우리를 지배하기에 기호 중의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언어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언어가 우리의 욕망을 대신하고 언어가 우리를 소비하게 만든다. 그러다 보니 언어는 또 우리를 끝없이 소외시키는 강력한 지배 수단이 되어 버렸다. -「시뮬라크르와 새로운 주술의 언어」 부분
시는 이면을 드러내는 일이다. 설명하는 것도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감추려 하다 들킨 것처럼 삶의 어떤 진실이 스스로 얼굴을 내미는 것 그것이 바로 시의 마력이다. -「불안하고 불완전해서 불온한」 부분
여기에서 춤은 시 쓰기와 다르지 않다. 질서에 묶여 있는 사람은 시를 쓸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시는 불온하다. 이렇게 질서와 규범을 넘어서는 그리움은 막연한 감상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침윤된 슬픔과 절망을 견디게 하는 진정한 치유의 힘이 될 수 있다. -「그리움의 두께」 부분
시인은 이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에 무엇이 어울릴지를 생각한다. 밥이나 반찬 같은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것들은 거기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것은 실용적인 것을 넘어서는 특별한 것이기 때문이다. 달항아리는 예술에 대한 환유이기도 하고, 한국적인 것, 즉 더 확대하면 우리나라에 대한 비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술이거나 나라에 대한 사랑이거나 거기에는 사랑과 평화라는 가치가 실현되어야 함을 우리에게 은근하게 주장하고 있다. -「생활의 깊이와 사유의 구체성」 부분
사라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것은 잊힌 존재가 되는 것이고 힘을 잃는 것이고 그렇기에 꿈과 희망을 포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으려는 안간힘이 세상을 어지럽힌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아 악착같이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노력이 모든 부정부패와 악덕을 만든다. 그뿐이랴 사라지지 않는 욕망의 신화가 우리 모두를 욕망 추구만을 위해 살아가는 배고픈 아귀로 만들고 있다. -「사라지는 것들을 위하여」 부분
하지만 시인은 그 벌레의 날개에서 하늘로 통하는 천문을 읽는다. 거기에 모든 힘의 근원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 하찮은 미물의 몸에 새겨진 무늬가 자연 질서의 산물이고 그것이 바로 인간과 우주를 이어주는 지도가 된다는 생각이다. 시인이 벌레에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작은 것들의 세계를 우리의 삶에서 끊임없이 몰아내며 살고 있다. -「자연으로 또는 자연에서」 부분
시는 바로 이 상투화되고 규격화된 말에 흠집을 내고 말을 그것들로부터 해방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시를 쓴다는 것은 끊임없이 우리 삶을 옥죄는 말의 구속으로부터 우리를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결국, 이는 말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모든 사회적 억압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거나 최소한 자유로움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일이다. -「삶의 상투성에 대한 두 가지 저항」 부분
서문 중에서
시, 특히 서정시는 이렇게 점점 납작해지는 언어를 부풀려 풍부한 언어로 만드는 일이다. 그것은 언어의 상투화와 폭력성으로부터 원래의 생생한 힘을 되찾게 하는 작업이다. 시를 쓰는 것은 지시적이고 환기적인 언어의 본래적 기능을 회복하여 감추어진 세상의 진실을 파헤치고 삶의 현장에서 우리가 우리의 정신에 축적한 많은 사유와 정서를 기억하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시적 환유를 통해 서로 관계되는 사물을 연결하여 우리 삶이 가지는 복잡한 그물망 속을 헤집어 언어의 의미를 끊임없이 확장하기도 하고, 은유를 통해 말과 사물에 깃들어 있는 사유와 정서의 가늠할 수 없는 심연까지 탐색하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언어는 풍부해지고 언어의 두께는 두꺼워진다.
시인은 꿈을 꾸는 사람이다. 사람들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것을 시인은 꿈을 통해 발견한다. 그것은 세상에 없는 것이긴 하나 세상에 있었으면 하는 시인의 소망 때문에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이 꿈꾸는 세상은 더 아름답고 충만한 그런 세상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런 세상의 모습은 항상 요원하기에 시인은 그리워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 그리움은 현실에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이룰 수 없는 사랑이며 소망이기도 하다. 한용운이 그의 시집 『님의 침묵』 첫 작품 「군말」에서 “그리운 것은 다 님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일 것이다. 이 그리움이 커지는 만큼 언어는 두꺼워진다. 그래서 우리는 서정시를 쓰고 또 읽어야 한다.
우리의 언어를 풍부하게 만들어 감성의 두께를 쌓아가는 시인들의 노력에 이 책을 바친다.

1958년 목포 출생. 1992년 『창작과비평』 평론 활동 시작, 2002년 『정신과표현』 시 발표. 저서 『주변에서 글쓰기』, 『쉽게 쓴 문학의 이해』, 『소수자의 시 읽기』 『별이 사라진 시대의 서정시』 등. 시집 『거푸집의 국적』.
rivert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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