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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배기걸 세계여행 일기 - 한 심리학자가 147개국을 걸으며 만난 세상과 사람들
- 박정은 저
- 이지출판사
- 2026년 08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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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ISBN-13 : 9791155552995 |
|---|---|
| 쪽수 | 276쪽 |
| 크기 | 기타 규격 |
| 제품구성 | 단행본 |
- 자녀교육/건강/여행/요리 > 관광여행
이 책은 수원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이자 심리학자인 박정은 교수가 147개국을 다니며 만난 세상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나배기걸(나 홀로 배낭 메고 기차 타고 걸어서) 세계 여행 일기다.
이 책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한 인간이 세상을 향해 걸어간 발자취이며,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자 했던 마음의 기록이며, 신앙 안에서 자신을 성찰하고자 했던 영혼의 여정이다.
사라, 사하라, 마리아 살로메, 보헤미안, 집시여인, 바람의 여인, 백만 송이 장미 등 수많은 닉네임으로 불리던 박정은 교수는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에 없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이렇게 남아 있다. 이 책을 펼치는 모든 이들이 그녀의 구도(求道) 여행에서의 숨결을 느끼고 그녀가 사랑했던 세상을 함께 바라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이 글들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을 향한 용기가 되기를 바란다.
[목 차]
책을 펴내며_ 사하라를 위한 진혼(鎭魂) _박경하 04
프롤로그_ 나는 왜 쉬지 않고 여행을 하는가 14
제1부 도전, 새로운 세상을 만나다
킬리만자로 정상에 서서 28
피오르를 찾아서 32
잃어버린 공중도시 마추픽추의 전설 속으로 35
활화산을 걷다 43
오로라 기행 56
제2부 자연과 문명 사이 : 대자연과 인간 문명의 경계에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티틀란 호수에서 66
홍콩에서의 새해맞이 71
갠지스강에서의 삶과 죽음 75
멕시코 여행에서의 단상 80
여행은 인간을 겸손하게 만든다 84
터키-그리스 국경 넘기 105
베트남/라오스의 일상 풍경 118
방콕 38일 118
제3부 크루즈 여행, 바다 위에서 만난 또 하나의 세계
중동/아프리카 크루즈 152
남미 크루즈 182
북미/유럽 크루즈 199
제4부 길 위에서의 단상 : 길 끝에서 다시 나를 만나다
새해맞이 216
여행 중 만난 수호천사들 222
Sarah Park의 단상-그저 기도할 뿐이다 232
에필로그_ 사하라는 지금도 길 위에 있다 244
Sarah Park의 어록 246
부록
제10회 <거울인형> 연출가의 변 250
나배기걸 제자의 나 혼자 캐리어 끌고 운전해서 하는 여행 253
박정은 교수님은 □□□이다 257
지인과 제자들의 추모글 261
여행지 통합 리스트 271
Sarah Park의 여행 국가 리스트 274
[본 문]
나는 왜 쉬지 않고 여행을 하는가
내가 처음 해외여행을 시작한 것은 1993년 여름 7월이었다. 그동안 해마다 휴가 시즌이 되면 대부분 혼자 배낭여행을 하였다. 여행 일정은 짧게는 1주일, 평균 30~40일씩 비행기표와 가이드북 한 권만 들고 정처 없이 돌아다녔다.
하지만 내 여행 가방에는 반드시 소요 날짜에 따라 여행지와 관련된 문학책, 수필집 등 5~10권의 책이 들어 있었다. 그래서 늘 무겁고 버거웠다.
“나의 여행은 언제나 고행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 고행 끝에는 언제나 새로운 세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늘 외롭게 혼자 하는 여행이라서 더욱 그렇고, 그럼에도 혼자 하는 여행이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어서 배낭여행을 고집했다. 나의 여행은 차를 기다리거나 순서를 기다릴 때, 어쨌든 뭔가가 지연될 때는 책을 읽고, 컨디션이 좋으면 쉴 새 없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꼼꼼히 살펴보며 감탄에 잠기고, 돌아다니다 피곤하면 어디든 상관없이 돗자리를 깔고 숄 하나 걸치고 쓰러져 잠들고, 컴컴한 차 안에서 책을 읽을 수 없을 때는 가지고 간 가요를 들으면서 상념에 잠기곤 했다.
잠은 야간열차를 이용하여 새우잠을 자면서 시간을 벌고, 정말로 피곤하면 대중탕을 찾아 몸을 풀었다. 먹는 것은 주로 도로변에서 파는 그 지방의 저렴한 음식을 사 먹고, 처음 보는 과일은 무조건 먹어 보았다. 신기한 것은 이렇게 쉴 새 없이 돌아다니고, 전혀 위생적이지 않은 음식을 먹는데도 배탈이나 두통, 근육통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아마도 내 몸속에는 타고난 집시, 영원한 보헤미안의 피가 흐르는 것 같았다.
맨 처음 여행은 미국에 살고 있는 대학 친구의 권유로 샌프란시스코 여행이었으며, 캘리포니아에 도착했을 때 나는 정말로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그림 속에서, 영화 속에서만 보던, 그리고 꿈인 줄만 알았던 아름다운 집들이 광활한 미국 땅에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정말 충격이었다. 그 후 혼자 독일로 2개월간 어학연수를 떠났는데, 결국 어학 공부는 안 하고 주말만 되면 유럽 여러 나라를 정처 없이 원도 없이 돌아다녔다. 물론 나 혼자서.
그런데 미국 여행은 친구가 있었기에 가능했고, 유럽 여행은 어쩌다가 어학연수 때문에 기숙사가 있어서 가능했는데, 이제 다른 나라들은 “어디다 근거지를 두고 어떻게 여행을 할 수 있을까?” 무척 두려웠었다.
하지만 내 안에서 끓어오르는 여행에 대한 욕구는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더 강해서 아무 연고도 없는 이집트-터키-이스라엘-요르단 여행을 감행하였다. 그때가 마침 IMF의 시작이었고, 이집트 룩소르에서는 회교원리주의자들이 쏜 총에 아무 죄도 이유도 없이 불특정 다수의 관광객 70~80명이 살해당한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도 나는 여행을 해야 한다고 굳은 결심을 했다.
그런데 그 이집트, 이스라엘 여행이 또 다른 내 인생의 분수령을 만들어 주었다. 여행은 개인에게 엄청난 문화 충격과 넓어지는 시야, 세상에 대한 포괄적인 안목, 그리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감격들을 가져다준다. 그래서 여행은 무조건 할 만한 가치가 있다.
그동안 여행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이 어디냐고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그럴 때마다 미국은 아주 쾌적하고 멋있는 나라이고, 유럽 24개국은 어디를 가도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굳이 어느 나라 어느 곳이 가장 좋더라는 이야기를 하지 못하겠다고 대답한다.
그래도 내게 강렬하게 남아 있는 관광지를 꼽으라면 폴란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쉰들러 리스트의 배경)에서 처절하게 느껴야 했던(나는 ‘쓰레기 더미에서 다시 피어나는 삶의 장미꽃’이라고 방명록에 썼다), 그리고 이곳에 오는 모든 사람은 두 번 다시 되풀이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 전쟁의 잔혹성이란 것을 보게 해 준 곳이었다.
또한 폴란드 소금광산 아래 천 년 이상 묻혀 있는 지하도시(5시간 이상을 걸어서 관광해도 모자랄 정도로 넓은)에서 만난 큰 교회에서 드린 기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있는 기혼샘에서 실로암 연못까지 300~400m 지하수로의 칠흑 같은 어둠 속을 가이드와 단둘이 가늘게 흔들리는 촛불 하나에 의지해서 가야만 했던(딱 1명만 통과할 수 있고, 맑은 물이 허리까지 차오르는 지하샘) 그 수로에서 만났다고 믿는 신(god), 이집트의 ‘왕비들의 계곡’에서 아주 비싼 관람비를 내고도 딱 15분밖에 감상할 수 없는 ‘네페르타리 왕비’ 무덤에서 보았던 왕비의 모습은 2천 년 전에 그려진 그림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그런 실루엣을 간직한 채 도도히 관광객들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미얀마(버마) 바간에서 조우했던 수천 개의 파고다를 품고 있는 그 유적지는 그동안 수없이 많은 곳을 경험한 내게도 얼마나 독특한 서정성을 안겨 주었는지 모른다.
“여행에서 무엇을 보고 오셨습니까?”라고 많은 사람들이 물어오면, 나는 “신을 만나고 왔습니다”라고 대답한다. 간절히 간절하게 느끼게 되는 결론은 “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체험이며, 오늘 하루 살아 있어서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을 경험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신께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는 독실한 신자가 전혀 아니고 오히려 맹목적인 신앙을 경멸함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나 자신을 향해서 왜 그렇게 쉴 새 없이 여행을 하느냐고 물어보면, 또 다른 내가 이렇게 대답을 한다.
“타인들에게 보여지는 모습보다 더 깊은 세계를 안고 살아갈 수 있는, 즉 깊이 있는 인간이고 싶어서가 그 첫째이고, 마지막으로 늘 내가 알고 있는 세계보다 이 세상이 얼마나 넓고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세상인지를 깨달아 교만에 빠지지 않고 살아가는 현명한 인간이고 싶어서 여행을 합니다.”
나는 왜 걷는가. 걷는다는 것은 가장 원초적이며 인간적인 것이다.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 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발로 걸어가는 인간은 모든 감각기관의 모공을 활짝 열어 주는 능동적 형식의 명상으로 빠져든다. 그 정상에서 돌아올 때면 가끔 사람이 달라져서 당장의 삶을 지배하는 다급한 일에 매달리기보다는 시간을 그윽하게 즐기는 경향을 보인다. 걷는다는 것은 가장 인간적인 몸에 집중하기 위하여 몰아가는 것을 뜻한다.
걷는 사람들은 특이한 개인들이다. 보행은 육체의 승리다. 걷기는 별것 아닌 작은 일들에 대한 기본적 존재철학의 발전에 알맞은 것이다. 대부분 보행자들 스스로 손에 지도를 들고서 혼자 길을 나선다. 모든 글쓰기는 다른 글쓰기에서 자양분을 얻는 것이다.
걷기는 세계를 느끼는 관능에로의 초대다. 걷는다는 것은 세계를 온전하게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때 경험의 주도권은 인간에게 돌아온다. 우리는 목적 없이 그냥 걷는다. 아니 길이 거기에 있기에 걷는다.
걷기는 시간과 공간을 새로운 환희로 바꾸어 놓는 고즈넉한 방법이다. 그것은 오직 순간의 떨림 속에만 있는 내면의 광맥에 닿음으로써 잠정적으로 자신의 전 재산을 포기하는 행위다.
걷기는 어떤 정신 상태, 세계 앞에서의 행복한 겸손, 현대의 기술과 이동 수단들에 대한 무관심, 사물에 대한 상대성의 감각을 전제로 한다. 그곳은 근본적인 것에 대한 관심, 서두르지 않고 시간을 즐기는 센스를 새롭게 해 준다.
진정한 걷기 애호가는 구경거리를 찾아서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운 기분을 찾아서 여행한다.
“이 여행에는 보름이 걸렸는데 나는 이때를 내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들로 꼽을 수 있다. 나는 젊었고, 건강했으며, 돈도 충분히 있었고,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도보로, 그것도 혼자서 여행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한 번도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으며, 이렇게 뿌듯하게 존재하고 살아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때 혼자 걸어가면서 했던 생각들과 존재들 속에서 만큼 나 자신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청년 루소)
“젊다는 것, 신체가 튼튼하다는 것, 만사를 한결같이 무사무욕하게 혼자 걸어서 여행한다는 것, 분별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보다 더 큰 행복을 바랄 수는 없을 것 같다. 여행의 단초에는 우선 어떤 꿈, 계획, 의도가 있기 마련이다. 상상을 채찍질하는 그 어떤 이름들, 길이, 숲이, 사막이 부르는 소리, 일상에서 벗어나 몇 시간 혹은 몇 년 동안 슬쩍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 혹은 어떤 지역을 답사하여 더 잘 알고 싶은 욕심, 서로 떨어져 있는 공간의 두 지점을 이어보고 싶은 욕망, 혹은 순수한 유랑이 선택.” (청년 카잔차키스)
나도 그렇다. 나도 누군가 스쳐가듯 이야기한 소리에 끌려 그 무자비한 고행의 행복한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평소의 모든 활동과 일상적인 임무, 체면상 필요한 일이나 남들에게 신경쓰는 일 따위는 물론, 하던 일마저 손에서 놓아 버린다. 걸어서 떠나는 사람은 익명 속에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을 즐기고 함께 길을 가는 동행이나 길에서 만난 사람들 이외에는 더 이상 그 어느 누구를 위해서도 존재하지 않는 입장이 된 것을 즐긴다.
주저해 왔던 일을 결행하기 위하여 발을 내딛는다는 것은 길건 짧건 존재의 변화를 의미한다. 처음 내딛는 발걸음에는 꿈의 가벼움이 담겨 있다. 인간은 자신의 욕망이 뻗어 간 선을 따라 걷는다.
걷기는 집의 반대다. 걷기는 어떤 거처를 향유하는 것의 반대다. 사실 걷는 사람은 공간이 아니라 시간 속에다 거처를 정한다. 저녁에 멈추는 발걸음, 밤의 휴식, 걷는 사람은 시간을 제것으로 장악하므로 시간에게 사로잡히지 않는다.
걷는 사람은 시간의 부자다. 걸어서 여행하는 사람은 누구에게 무엇을 보고해야 할 의무 같은 것은 없는 자유인이다. 그야말로 기회와 가능성의 인간이요, 흘러가는 시간의 예술, 길을 따라가며 수많은 발견을 측정하는 변화무쌍한 상황의 나그네다. 더 이상 시간을 지킬 필요 없이 보내는 삶, 그것이 바로 영원이다.
보행은 몸의 비율만큼만 세계의 광대함을 줄인다. 이 광대한 세계 내에서 인간이 의탁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의 육체적 저항,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기에 가장 유리한 길을 선택하는 자신의 총명함뿐이다.
이때 유리한 길이란, 뿌리 없이 떠도는 유랑을 으뜸가는 철학으로 삼는 사람일 경우에는 가장 쉽게 길을 잃게 하는 길일 것이고, 단지 한 지점으로부터 다른 지점으로 아동하는 것에 만족하는 사람의 경우라면 가능한 한 복병을 만나지 않고 여행의 종착점에 이르도록 인도해 주는 길일 것이다.
보행은 육체적 활동이다. 보행은 다른 활동들 이상으로 숨, 피로, 의지를 걸고 하는 일이다. 배고픔과 목마름, 험난한 길, 결국 어느 곳에 도착하게 될지 알 수 없는 불안을 견뎌 낼 용기를 걸고 하는 일이다. 보행은 그 어떤 감각도 소홀히 하지 않는 모든 감각의 경험이며, 보행은 삶의 평범한 순간들의 가치를 바꿔 놓는다. 보행은 그 순간들을 새로운 모습으로 재창조한다.
열정적인 보행이 그 어떤 것보다도 더 당신을 깨끗하게 정화시켜 준 나머지 정신의 편협함과 모든 오만이 닦여 나가고 오직 호기심만 남아서 자유롭게 제 역할을 다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걷기는 세계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방법론이며, 스스로 거쳐 온 자연을 자기 속으로 흡수하고 일상적인 인식 및 지각 방식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세계와 접촉하는 한 수단이다. 차츰차츰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보행자는 세계에 대한 그의 시야를 확대하고 자신의 몸을 새로운 조건들 속으로 던져 넣는다.
도보로 산책하는 맛을 제대로 즐기려면 혼자여야 한다. 둘이서 하는 산책은 이름뿐인 산책이 되고 만다. 그것은 산책이 아니라 오히려 피크닉에 속하는 것이다.
도보로 하는 산책은 반드시 혼자 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유가 그 내재적 속성이기 때문이고, 마음 내키는 대로 발걸음을 멈추거나 계속해서 나가거나, 이쪽으로 가거나 저쪽으로 가거나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누군가의 옆에서 뛰다시피 따라 걷거나 데이트하는 누군가와 함께 느릿느릿 걷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만의 보조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1957년생으로 강원도 양양에서 함경도에서 월남한 부친 슬하에서 자랐다.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고향에서 다녔으며, 상명여고를 나와 상지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백제병원에서 소셜워커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고려대 교육대학원과 동아대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천안 순천향병원을 거쳐 1997년부터 수원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임용되어 임상심리학을 가르쳤다.
저서로 《임상상담심리》 《임상사회사업실제》 등이 있으며, 한국NLP학회장을 역임했다.
147국 500여 도시를 나배기걸 방식으로 여행했으며,
2025년 8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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