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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의 손을 물어야 할지니 - 흑백의 세계를 살며 생각한 것들
- 줄리아 리 저
- 강예은, 문지영 역
- 후마니타스
- 2026년 08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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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ISBN-13 : 9788964375198 |
|---|---|
| 쪽수 | 320쪽 |
| 크기 | 기타 규격 |
| 제품구성 | 단행본 |
- 인문/역사 > 사회학









책 소개
[목 차]
한국 독자들에게 13
1부 분노
1장 성난 아시아 여자애 20
2장 인종적 상상계 36
3장 어설픈 흉내 54
4장 잊힌 전쟁 68
5장 침묵 속에 남겨 둔 것들 88
2부 수치심
6장 부모를 대신해 106
7장 유리 천장 130
8장 이도 저도 아닌 148
9장 오리엔탈리즘 166
10장 엄마와 망태 할아범 176
11장 자격지심 192
3부 은혜
12장 흑과 백 사이에서 218
13장 그 손을 물어야 할지니 240
14장 친족 공동체 266
15장 우리 또한 288
감사의 말 305
옮긴이 후기 308
[본 문]
(39) 엄마가 우리는 한국인이라고 알려 주었을 때, 난 불안감이 섞인 묘한 조바심을 느꼈다. 나는 친구에게 간단명료한 답을 주고 싶었다. 맞아 난 중국인이야, 라든지 난 일본인이 아니야 같은 답 말이다. 나보고 어떻게 반 친구한테 “한국인”이 뭔지 설명하란 말인가? 엄마는 한국이 “반도”고 어쩌고 하는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았는데, 내 머릿속에는 친구가 물어본 건 그런 게 아니란 말이야. 걔한테 내가 반도라고 말할 순 없잖아, 하는 생각뿐이었다. 답답해진 나는 백인의 관점에서 내 자신을 납득시키기 위해 웃픈 방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한글학교에서 친구들과 나는 위의 동요를 개사해 “중국인”과 “일본인” 사이에 “한국인”을 끼워 넣고 눈꼬리를 옆으로 찢어 보였다. 미국 문화에서 우리가 인식되도록 만들기 위해 자신의 생김새를 왜곡하고 있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다. 뒤틀린 모습이라 해도 그저 눈에 띄고 싶었던 것이다.
(64) 나는 이렇게 “너무 백인스러운” 친구와 “너무 아시아인스러운/폽스러운” 친구들에게 유난히 분노를 품었다. 그건 사실 내 안에서 타오르는 자기혐오였다. 그들의 모습에서 내가 싫어한 부분은 결국 나 자신의 모습에서 내가 제일 싫어한 부분과 같았다. 백인성에 지나치게 잘 동화된 모습이거나, 아니면 아시아인다움에서 충분히 벗어나지 못한 모습 말이다. 그들의 결점이라고 여겨지는 부분에 집중하고 있으면 나 자신의 문제는 직면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적어도 쟤네만큼 화이트워싱되진 않았잖아, 혹은 적어도 쟤네만큼 폽스럽진 않잖아, 하고 말하며 자위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자리 역시 내가 다른 아시아계들에게 부여한 자리와 마찬가지로 백인 우월주의 문화에 의해 왜곡된 것이었다. 나는 백인성의 틀 안에서 정의된 “딱 적당함”이라는 범주에 날 끼워 맞추고 있었다. 심지어 거기서도 나는 분노와 자기혐오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76) 부모님은 전쟁의 기억을 말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물려주셨다. 비닐봉지를 모아 두는 습관으로, 낭비를 극히 꺼리는 태도로, 권위에 대한 두려움과 막연한 피해망상 같은 걸로 말이다. 언제든 도망칠 준비를 해라. 모든 걸 잃을 각오를 해라. 아무도 믿지 마라.
(80-81) 돌이켜 생각해 보면, 엄마의 들쭉날쭉한 성정과 예측할 수 없는 폭력성, 발작적인 절망의 몸부림은 단순히 불안이나 우울증, 갱년기 같은 서양의학의 빈약한 진단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더 복합적인 무언가의 증상이었다. 인종차별, 가부장제, 경제적 불안정, 역사적 트라우마 같은 스트레스 요인이 한데 뒤섞인 독성 칵테일, 즉 한 말이다. 엄마는 화를 억누른 채 밖에서는 표정을 온화하게 가다듬고 가면 뒤에 숨어 지냈다. 하지만 그 화는 몸 안에서 전이되어 통제 불가능한 상태로 변해 가고 있었다. 내 동생이 자신을 더 작고 더 조용하게 움츠러뜨리는 방식으로 거기에 대응했다면, 나는 나만의 분노를 점점 키워 가며 맞섰다. 나 역시 무력감과 핍박받는 듯한 느낌에 휩싸였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분노에 찢겨 나가는 기분이었다. 엄마를 미워할수록 나는 점점 더 그녀를 닮아 가고 있었다.
(86) 점점 더 내가 분노를 뿜어낼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은 엄마가 되어 갔다. 내 눈에 엄마는 모든 억압의 결정체였다. 내게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집어던지는 사람도 엄마였고, 성적을 잘 받아야 한다고 압박하고, 억지로 그 잘난 사립학교에 보내고, 자신의 모든 불행을 내가 보상해야 할 책임이라도 있는 것처럼 떠넘긴 사람도 엄마였다. 한번은 친구 아일린이 우리 집 앞까지 날 태우러 와서 막 나가려는데, 엄마가 “조심해” 비슷한 소리를 했다. 나는 돌아서서 “상관 마, 씨발!”이라고 소리를 지르며 문을 쾅 닫아 버렸다. “완전 썅년이야.” 나는 아일린에게 이렇게 투덜대며 눈을 흘겼다. 아일린은 경악했다. 그 애도 사이코 같은 한국인 엄마를 두긴 했지만, 엄마에게 욕을 했다가는 (하물며 친구 앞에서라면 더더욱) 그날로 끝장이었을 것이다. 나도 엄마가 무서웠지만, 너무 화가 나고 우울해서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차라리 엄마가 날 때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스스로를 두들겨 패고 싶었다.
(102) 봉기 이후 집단적 트라우마 경험을 되돌아볼 때, 불타 버린 건물들이나 고통스러웠던 어떤 극적인 한순간이 떠오르는 건 아니다. 오히려 나는 트라우마 이후 살아남기 위해 이어 갔던 눈에 보이지 않는 일상적 행위들이 생각난다. 손님 한 명당 냅킨 한 장, 케첩 한 봉지로 제한해서 비용을 줄여 보려던 엄마의 눈물겨운 노력(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술을 마셔서가 아니라(경찰은 그렇게 의심했지만) 너무 피곤한 나머지 자꾸 차선을 이탈하는 바람에 아빠가 떼인 난폭 운전 딱지. 엄마와 옷을 사러 구세군 매장에 갔다가 빈티지 쇼핑을 하던 친구 두 명과 마주쳤던 일(당시는 부잣집 딸들이 가난해 보이는 것을 ‘멋있다’ 여기던 그런지 시대였다. 하지만 진짜로 가난한 것은 전혀 멋진 일이 아니었다).
(102-103) 나는 동부의 명문대 여러 곳에 지원했다. 모두 부모님이 감당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등록금을 내야 하는 곳들이었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관료주의적인 연방학자금 신청서 양식을 채워 넣다가 마지막 항목에 다다랐다. 거기에는 추가 의견을 적는 칸이 있었다. 아빠가 편지 봉투 뒷면에 몇 문장을 고심해서 작성하더니, 문법을 고쳐 달라며 내게 건넸다. 나는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다시 써넣었다. “저희 부모님은 소규모 사업체를 운영하는 자영업자입니다. 부모님 사업이 최근 경기 침체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학자금 지원 요구를 판단하실 때 이런 사정을 고려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나는 구걸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최대한 사무적인 어조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사실 우리는 구걸하고 있었다). 내가 합격한 모든 대학 가운데 프린스턴이 집에서 가장 멀었고, 가장 명성이 높았으며, 가장 많은 액수의 학자금 지원을 제안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나는 ‘가장 멀리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사람’ 1위로 뽑혔다.
(154) 우리 부모님들이 인정과 칭찬에 얼마나 인색한지, 잘난 척하지 말고 겸손하라고 얼마나 강조하는지, 98점을 받아 가도 나머지 2점은 어디 갔냐고 타박할 정도로 얼마나 만족을 모르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 절대로 내 것이 되지 않을 부모의 인정에 목말라 끊임없이 더 잘 하려고 악바리처럼 밀어붙이는 과잉 성취자들인 게 당연했다. 하지만 나는 한국인인 만큼이나 미국인이다.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의 가치관에 동화된 사람이다. 내가 엉망이 된 모든 원인을 다 부모 탓으로 돌리는 건 너무 쉬운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부모님도 내가 이렇게 된 데 일조한 건 사실이지만, 백인 우월주의도 마찬가지다. 내가 느끼는 이 끝없는 수치심이 단지 한국적 가치관이나 유교적 가치관 때문만은 아니다. 삶의 매 순간 내가 흠뻑 젖어 있던 건 미국 백인 사회의 가치관이다. 이 나라에서 비백인 소수자로 산다는 것은 영원히 지속되는 수치심 속에서 살아가는 것과 같다. 매일 같이 이런 말을 듣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넌 결코 우리 일원이 될 수 없어. 넌 영원히 자격 미달이라고. 절대 미국인이 될 순 없어. 그러니까 절대 백인은 못 될 거란 소리야.”
(173) 오리엔탈리즘과 아시아인 혐오는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이다. 둘 다 아시아 여성을 비인간화하고 비하하는 역할을 한다. “나 당신 오래 사랑해”me love you long time라고 외치는 백인 남자는 나라는 인간에겐 관심이 없다. 난 그저 백인 남성이 지배하는 세상에 대한 그의 왜곡된 환상을 구성하는 소품일 뿐이다.
(208) 난 내가 꽤 잘난 인간이라고 생각하며 대학원에 들어왔다. 하지만 불과 6개월 만에 신경쇠약이 찾아왔고, 나는 처음으로 졸로프트를 처방받았다. 사람들은 하버드 인간들이 죄다 최고인 데 익숙해서 아주 사소한 “실패”에도 심리적으로 무너져 내리기 때문에 학교 정신건강센터에서 항우울제를 사탕처럼 나눠 준다는 농담을 하곤 했다. 물론 그것도 이유 중 하나였겠지만, 잃을 게 더 많을 때 소위 말하는 그 “실패”가 훨씬 더 가혹한 결과를 초래하는 탓도 있다. 이를테면, 고정관념의 덫(“흑인이라서 합격한 거야” “아시아인이니 공부가 힘들 리 없어” 같은)과 싸우고 있을 때, 혹은 이런 환경에서 자신이 속한 집단을 대표해 길을 닦아야 한다는 생각에 성공에 대한 엄청난 압박감을 느낄 때 말이다.
(261) 나는 날 키워 준 손을 물면서 살아왔다. 그것이 부모 손이든, 스승의 손이든, 대학이나 국가의 손이든 간에 말이다. 내 성장 환경에 감사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날 키우고 교육하고 통치해 준 이들에게 영원히 신세를 갚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주인에게 길들여져야 할 말이 아니다. ...... 이제 내 딸도 날 밀어내고 거리를 두며, 자신의 독립성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입장이 바뀌어 이제는 내가 저항의 대상인 권위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건 당혹스러운 경험이다. 이 상황이 달갑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이가 성장하고 있는 거라고, 내가 결점 없는 존재가 아님을 발견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 가는 과정이라고 스스로 되뇐다. 이건 배신이 아니다(흑흑). 최소한 그렇게 나 자신을 다독이려 노력 중이다. 몇 년 뒤에 다시 물어봐 주면 좋겠다.
(215) 킨케이드 교수는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나에게 그녀는 내 인생을 구한 조언 한마디를 건넸다. “널 키워 준 손을 물어야 하는 거야.” 백인 우월주의 문화는 킨케이드가 『뉴요커』나 하버드, 미국 같은 특권적 공간에 들어갈 수 있게 된 데 감사하며 순응하기를 기대했다. 그녀가 감히 권력을 비판하고 나섰을 때, 사람들은 그녀가 수준 미달이라거나 자격이 없다거나 너무 분노에 차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킨케이드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기를 거부했고, 입을 다무는 것도 거부했다. 한번은 그녀가 이 나라의 흑인 차별의 역사를 규탄하는 공개 강연을 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청중석에 있던 한 백인 노인이 손을 들고 소리쳤다. “이 나라가 그렇게 싫으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지 그래??!” 킨케이드는 그를 차분히 바라보며 대답했다. “당신이나 당신이 원래 있던 그 구멍으로 다시 기어 들어가지 그래요?”
(221) 1999년 처음으로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 나는 학생으로 오해받는 일이 잦아서 일부러 정장을 입고 머리를 묶어 올렸다. 얼마나 엄격하게 굴었던지 학생들은 날 이 장군General Lee이라고 불렀다(이 별명이 가진 아이러니를 나도 잘 알고 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백인 남성 동료들은 추레한 티셔츠에 버켄스탁 슬리퍼를 질질 끌며 수업에 들어가도, 또 학생들에게 자신을 “밥”〔‘로버트’의 애칭〕이라 부르게 해도 여전히 권위를 인정받았다. 반면에 나는 어땠을 것 같은가? 나는 잡을 수 있는 권위란 권위는 남김없이 거머쥐어야 했다. 한 친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부유한 백인 노부인처럼 입고 부유한 백인 노신사처럼 행동하는 법을 배웠다. 나는 이 장군이었다. 그런데도 어떤 학생들은 여전히 날 만만하게 대했다. 가장 심한 이들은 — 이미 예상했겠지만 — 백인 남성이었다. 영상 제작 전공의 한 학부생이 수업 시간에 전화를 받길래 휴대폰을 집어넣으라고 했더니 그는 내 말을 눙치면서 장난스레 이렇게 말했다. “뭘 그렇게까지, 줄스!” 또 다른 학생은 내가 “입을 움직이는” 모양새가 원어민 같지 않다며, 영어가 내 모국어 맞냐고 물었다. 학생들이나 동료들 모두 날 부를 때면 교내 아시아계 여교사 이름을 죄다 갖다 붙였다. 유색인 교수라면 누구나 비슷한 사연들이 있을 것이다.
(231) 나는 줌 화면을 끄고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진행자가 한 말은 기본적으로 내가 학생들에게 늘 해오던 말(“문학은 모호함에 관한 것이다”)이나 내가 갈고닦았던 방법론(“해체주의란 이분법적 대립에 대한 비판이다”)과 다를 바 없었지만, 정작 나 자신이 똑같은 함정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은 전혀 깨닫고 있지 못했다. 내 존재를 부정하는 인종적 이분법에 갇혀 평생을 살아왔던 내게 그녀는 이제 나 자신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라고, 즉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닌neither/nor 존재가 아니라 이쪽이기도 하고 저쪽이기도 한both/and 존재로 인식해 보라고 요청하고 있었다. 나는 백인에 근접한 존재인 동시에 인종적으로 타자화된 존재였고, 유색인인 동시에 그 범주에서 배제된 사람이었으며, 인종적 특혜를 누리는 존재인 동시에 불이익을 당하는 존재였다.
(249) 내가 아이들에게 청개구리 엄마와 아들 이야기를 절대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걸 기억하는가? 말이야 쉽지, 뭐 결국 내 아이들도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아이들이 반항적으로 굴거나 이기적으로 행동할 때면 “엄마 죽고 나서 후회해 봤자 소용없어!”라고 악을 쓰곤 했다. 아이패드를 두 동강 내버리겠다거나 야구방망이로 엑스박스를 부숴 버리겠다는 협박도 했다. 아이들은 너무 많은 것을 누리며 응석받이로 자라고 있었다. 세상은 험난한 곳이니 나는 아이들이 그에 대비하기를 바랐다. 나는 엄마가 내게 했던 말을 그대로 되풀이했다. 너희는 아시아인의 얼굴을 하고 있고, 세상은 너희를 이방인이자 열등한 존재로 볼 거라고, 남들 절반만큼이라도 가려면 두 배로 열심히 노력하고 두 배로 뛰어나야 한다고 말이다.
(259) 내 딸은 이제 열세 살이다. 내가 우리 엄마한테 처음 반항하기 시작했던 바로 그 나이다. 솔직히 말하면, 무서워서 떨고 있다. 그 애가 예전에 내가 반항하고 성질을 부렸던 수준의 딱 10분의 1만 해도, 난 죽어 버릴지 모른다. 하지만 이내 생각한다. 그만해, 줄리아. 우리는 과거를 반복할 운명도 아니고, 똑같은 고통과 피해의 서사를 되풀이하리란 법도 없다. 나아가 내 딸은 마땅히 반항해야 한다. 딸은 나로부터 분리되어 온전히 독자적인 인격체로 성장해야 한다. 나는 그 애의 엄마이지 주인이 아니다. 그 애가 나한테 영원히 복종할 의무는 없다. 내 딸에게 말한다. 너는 너를 키워 준 손을 물어야 한다. 설령 그 손이 내 손이라 해도 말이다. ...... 딸은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거듭나기 위해 저항해야만 한다. 어머니의 손아귀 아래 머무는 것은 영구적인 예속과 다를 바 없다.
(261) 나는 날 키워 준 손을 물면서 살아왔다. 그것이 부모 손이든, 스승의 손이든, 대학이나 국가의 손이든 간에 말이다. 내 성장 환경에 감사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날 키우고 교육하고 통치해 준 이들에게 영원히 신세를 갚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주인에게 길들여져야 할 말이 아니다. ...... 이제 내 딸도 날 밀어내고 거리를 두며, 자신의 독립성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입장이 바뀌어 이제는 내가 저항의 대상인 권위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건 당혹스러운 경험이다. 이 상황이 달갑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이가 성장하고 있는 거라고, 내가 결점 없는 존재가 아님을 발견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 가는 과정이라고 스스로 되뇐다. 이건 배신이 아니다(흑흑). 최소한 그렇게 나 자신을 다독이려 노력 중이다. 몇 년 뒤에 다시 물어봐 주면 좋겠다.
(271) 나는 내가 꽤 괜찮은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내 머리는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나는 변화에 저항하고 있었다. 젠더 대명사는 당혹스러웠고, 토지 인정 선언은 혼란스러웠다. 내 즉각적인 반응은 다른 많은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토지 인정 선언을 듣거나, 올젠더 화장실을 이용하거나, 누군가가 원하는 대명사를 불러 주는 게 나한테 무슨 손해를 끼쳤던가? 잃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 자신의 안일함 말고는. 나는 내 내면을 탈식민화해야 했다. 내가 탈식민화라는 단어를 쓰는 이유는 반인종주의 논의가 흔히 백인-흑인, 인종주의자-반인종주의자라는 이분법을 고착화하기 때문이다. 반흑인 인종주의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필수적이고 시급한 일이지만, 반인종주의 업계의 언어는 백인이 덜 상처받으면서 공감 능력을 더 높이도록 하는 데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278) “〔토착민들은〕 소속이나 시민권을 규정할 때 그런 유전자 혈통 검사를 가지고 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것은 당신이 단순히 선언하면 되는 문제가 아니라, 누가 당신을 인정해 주느냐의 문제다.”
이 나라에서 나는 이름을 붙이고 선언하는 게 핵심이라고 배워 왔다. 그것은 전형적인 식민주의적 행위이자 위력 과시다. 나는 콜럼버스도, 쿡도, 샹플랭도 아니지만, 그들이 명명하기와 선언하기의 언어에 의지해서 만들어 낸 이 식민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세상에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려 애써 왔다. 내가 미국인이라고, 아시아계 미국인이라고, 유색인이라고 선언할 때 나는 권력의 언어를 모방하며 스스로에게 이름을 붙이고 내 영역을 선언한 것이다. 하지만 누가 날 인정해 주는가? 나는 어떤 공동체에 속해 있나? 어떤 공동체가 날 일원으로 생각해 줄까? 백인 우월주의적인 미국은 아니다. 그들은 내가 쓸모 있을 때만 임시로 받아들이고, 쓸모가 없어지면 내쫓는다. 한국인 공동체가 반드시 날 받아 주는 것도 아니다. 비록 “피”는 나눴을지언정, 그들은 날 뿌리를 잃은 미국화된 존재로 볼 것이다. 나는 내가 고아나 천덕꾸러기 의붓자식, 불량 미국인에 불량 한국인, 어딜 가든 딱 들어맞지 않는 존재 같다고 종종 농담 삼아 털어놓곤 한다. 내가 당당히 일원이라 말할 수 있고 그들 또한 나를 일원으로 인정해 주는 유색인 여성들과 조력자들의 공동체를 찾은 것은 불과 최근, 그러니까 정말로 지난 5년 사이의 일이다.
“궁극적으로 줄리아 리의 회고록은 강력한 배교 행위를 보여 준다. … 무한히 생성을 반복하며 끊임없는 변화 과정 속에 있는 아시아계 미국인의 정체성이라는 현재진행형의 기획을 위한 아름다운 주문과도 같다.”
―『뉴욕타임스』
“생생하고, 강력하며, 공감 어린 이 책은 ‘미국’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만들어지고 있으며, 앞으로 만들어질지에 대한 이야기를 붙들고 씨름한다. 이 이야기의 가혹함을 우리는 보통 잊고 있거나 오용하곤 하지만 줄리아 리는 그 이야기의 복잡한 진실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저메이카 킨케이드, 『내 어머니의 자서전』 『루시』 『애니 존』
“줄리아 리는 때로는 선동적이고, 때로는 유머러스하며, 때로는 우울하지만, 결코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는다. … 거짓 이분법, 잔인할 정도로 낙관적인 환상, 백인 우월주의의 논리를 거부하는 데서, 그녀는 결국 구원을 찾아내고야 만다.”
―『보스턴 글로브』
“줄리아 리가 미국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경이로운 회고록이다. 자신이 선 자리를 파악하기 위해 고군분투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아시아계 미국인의 경험 속 미묘한 뉘앙스를 조명한다. ‘한’恨과 아시아계 미국인의 경험, 그리고 회복력을 더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모든 이를 위한 필독서.”
―데이비드 장, 모모푸쿠 레스토랑 셰프
“이 책은 나를 완전히 휘저어 놓았다. 줄리아 리는 내가 수년 동안 글로 풀어내기를 두려워했던 문제의 주변을 맴돌다가 결국 정면 돌파한다. 사람들이 타인에 대해 거는 기대의 정치학에 대한 풍성한 논고와 같다. 경이롭다.”
―키에스 레이먼, 『헤비』
“희망적이고, 솔직하며, 뼈아픈 유머가 묻어나는 이 책에서 줄리아 리는 가르치고 배우는 것, 경청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 그리고 우리가 ‘되어야 할 모습’과 ‘될 수 있는 모습’을 달리 생각하는 법에 대한 매혹적인 이야기를 선사한다.”
―후아 쉬, 『진실에 다가가기』
“미국 내 인종적 계급 구조를 헤쳐 나가는 우리의 여정을 탁월하게, 대담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써내려간 책. 내가 직접 이야기하지 못하고 마음속에 담아 둔 이야기였기에, 자신의 마음을 활짝 열어 함께 여행할 수 있게 해준 줄리아 리에게 무척 감사하다.”
―킴벌리 존스, 『기울어진 게임에서 승리하는 법』
“재치와 지성, 자신의 약점을 과감히 드러내는 솔직함, 그리고 짜릿한 분노로 가득 찬 회고록이자 ‘앵그리 리틀 아시안 걸’의 불타는 선언문. 여러 가지 면에서 깊은 울림을 준다. 학문적 통찰과 삶의 경험, 그리고 모든 민족의 해방을 위한 혁명적 호소가 완벽하게 응축된 작품이다.”
―푹 트란, 『사이, 곤』Sigh, Gone
“줄리아 리는 신랄한 이 회고록을 통해 ‘순종적인 아시아인’이라는 신화를 깨뜨리고 인종적 위계질서의 부조리를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 그녀의 자기 성찰적인 목소리와 우리 사회의 실패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은 진실을 폭로하며 정당한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탄생시켰다.”
―『퍼블리셔스 위클리』
“유머와 솔직함, 이상주의적 명료함, 그리고 강렬한 분노로 끊임없이 빛이 난다. 자신의 실수에 대한 솔직하고 연민 어린 분석은 독자들로 하여금 각자 자신이 저질러 온 실수를 돌아보도록 이끈다. 아시아계 미국인과 ‘백인성’에 대한 생생하고 현명하며 통찰력 넘치는 회고록.”
―『커커스 리뷰』
“줄리아 리는 자신의 자전적 경험을 정체성과 인종적 계층화에 대한 신랄한 분석과 매끄럽게 결합해, 어떤 이념을 가진 독자들에게도 도전이 될 만한 결론을 제시한다. … 권력과 특권에 대한 이해가 진화해 가는 과정을 탁월하게 기록한 책으로, 독자들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 있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북페이지〉
“정당한 분노가 뿜어져 나오는 통찰력 넘치는 회고록. 그간 미국 사회를 규정해 온 이분법적 인종 체계 밖에서 살아가는 복잡성을 그려 내며, 오랫동안 ‘보이지 않는 존재’로 여겨져 온 모든 이들에게 현존하는 권력 구조를 해체하는 데 동참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북리스트』
◆ 흑백의 세상에서 아시아계 여성이 인종적 계급 구조를 헤쳐 가며
마침내 자신의 자리를 찾기까지
◆ 억압의 손을 물고뜯으며 스스로를 갱신해 온 자기변신의 이야기
★ 권력과 특권에 대한 이해가 진화해 가는 과정에 대한 탁월한 기록 ★
★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권력 구조를 해체하는 방법에 대한 통찰들이 가득하다 ★
영어에는 ‘손을 물다’biting the hand라는 관용구가 있다. 그 뒤에는 보통 ‘너를 먹여 준’that feed you이라는 수식어가 뒤따른다. 억압자의 입장에선 ‘배은망덕’이지만 피억압자의 입장에선 ‘저항’의 의미를 지닌 이 말은 저자가 백인 중심 영문학계에서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시절 멘토였던 저메이카 킨케이드 교수가 그들의 저의를 배반하는 전략을 생각해 보라며 충고 삼아 건넨 말이기도 하다.
한국전쟁을 겪고 미국으로 건너간 노동계급 부모 밑에서 성장해 1992년 LA봉기 당시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지나며 불타는 한인 상점들을 목격했던 저자는 그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벌어진 저항운동의 한가운데서 인종주의가 자신의 삶에 남긴 상처를 되돌아보며 이 회고록을 완성해 냈다. 하버드에서 빅토리아시대 문학을 전공한 저자가 흑인 문학을 연구하고 유색인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기까지, 엄한 어머니 밑에서 반항을 일삼던 ‘앵그리 리틀 아시안 걸’이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자신의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기까지, 인종주의 사회에서 분투해 온 부모와 자신의 삶을 촘촘히 되짚으며 써내려간 이 책은 저자 자신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자리 잡은 인종주의에 대한 통렬한 고발장인 동시에,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헤집어 그 속에 자리한 거대한 억압의 그림자를 물고뜯으며 스스로를 끊임없이 갱신해 온 치열한 자기 변신의 기록이다.
◆ 인종주의가 한 인간과 사회에 남기는 상처와 해악에 대한 통렬한 고발장
학교를 ‘피난처’라 여기며 주말이면 월요일 아침이 되기만을 기다릴 만큼 모범생이었던 줄리아의 어린 시절은 백인 사회에 받아들여지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들로 점철돼 있다. 한국어밖에 모르는 할아버지와 지내다 어린이집에 가게 된 줄리아가 적응을 못 하자 엄마는 집에서도 영어를 쓰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3개월 만에 줄리아는 한국어를 싸그리 잊고 “돌이킬 수 없이 미국애”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같은 반 백인 친구한테 그녀는 동요 속 “중국인, 일본인, 인디언 족장” 중 하나일 뿐이고, 그 속에서 줄리아는 자신이 “한국인”임을 설명하기 위해 그 사이에 “한국인”을 끼워 넣어 부르며 눈꼬리를 옆으로 찢어 보였다. 그녀는 이 순간을 자신이 난생처음 ‘이중의식’, 즉 백인의 시선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자아가 분열되는 감각을 느꼈던 순간이라 회고한다.
그렇게 아이는 점점 인종주의 사회에서 아시안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일종의 ‘연기’를 요구하는 일임을 깨달아 간다. 백인 선생님한테 인정받기 위해 김치도 수학도 “미친 한국 엄마”도 너무 싫다는 에세이를 써내며 자신이 “얼마나 독특한 아시아계 미국인인지” “가짜 혐오를 연기”하고, “너무 백인스러운” 친구와 “너무 아시안스러운” 친구들을 깎아내리며 자신을 “딱 적당한” 아시안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동화의 몸부림은 거의 실패로 끝이 난다. 베트남계 아역을 뽑는 오디션에서도, 프린스턴 대학 시절 F. 스콧 피츠제럴드가 회원이었던 유서 깊은 클럽에 들어가고자 치룬 “역겹고 수치스러운” 신고식에서도, 백인 세상에 받아들여지기 위해 인내한 굴욕들은 어김없이 수치심과 우울, 분노와 자기혐오로 돌아오고 말았기 때문이다.
한편 그럴수록 줄리아는 능력주의라는 환상에 매달린다. 교육을 통해, 초인적인 노력과 성취를 통해 그런 수치심을 떨쳐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엘리트 중의 엘리트가 되어 백인들에게만 주어지는 그 “눈부신 기회”를 움켜쥐고 말겠다는 각오로 줄리아는 프린스턴에서도 하루 일정을 꽉꽉 채워 가며 조별 토론 수업조차 빠지는 법 없는 지독한 모범생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주류 백인 사회에 진입하기 위한 경쟁은 끝이 없다. 일단 들어가고 나면, 이전보다 훨씬 더 폐쇄적이고 더 백인 중심적인 세계로 들어가게 해주는 관문들이 기다리고 있다. 프린스턴을 졸업하고 엄청난 연봉을 약속받고 들어간 경영 컨설팅 회사에서도, 장학금 혜택을 약속받고 들어간 하버드 대학원에서도, 문턱관리와 수치심 유발, 배제를 기제로 유색인들에게 주어지는 한정된 자리를 따내기 위한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지고, 줄리아의 불안과 우울, 신경쇠약도 깊어진다. “박사 학위를 가진 흑인을 뭐라고 부르게? 그냥 깜둥이지”라는 오래된 농담처럼, 그녀가 뭘 성취하든, 얼마나 높이 올라가든, 문제는 인종주의 사회에서 유색인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 자체였기 때문이다.
◆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인종주의 트라우마의 서사
/ 이민 2세대의 부모에 대한 치열한 해석 투쟁과 그럼에도 끊어지지 않는 사슬들
“부모는 우리에게 더 나은 삶을 선사하고, 우리는 살점을 얼마나 떼어 주어야 그 빚을 갚을 수 있을지 고민하며 남은 생을 보낸다.” 이민자 부모와 그 자식 사이의 암묵적인 계약을 완벽히 묘사하고 있는 비야센시오의 이 말은 줄리아 리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검은” 미군이 주던 사탕은 버렸지만 미국이 기회의 땅이라는 생각은 버리지 못하고 이민을 온 한국 남자는 추방당할 상황에서 소개받은 영주권을 가진 “노처녀”와 만난 지 3주 만에 결혼식을 올린다. 그 노처녀는 한국에서 독일로, 그리고 미국으로 온 간호사였다. 그녀는 간호사로 종일 근무를 하면서도 남편의 주류 판매점 일을 도왔고, 일 년 동안 강도를 세 번이나 당하자 과부가 될까 두려워 간호사를 관두고 새로 시작한 치킨집을 함께 한다. 부부는 크리스마스와 추수감사절을 빼곤 하루도 빠짐없이 일했고, 두 딸을 명문고, 명문대에 진학시키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줄리아에게 어머니는 “모든 억압의 결정체”이기도 했다. 어찌 보면 엄마는 불행한 결혼 생활에 갇힌 채 계산대에서 돈을 훔치는 직원들과 통옥수수를 얼굴에다 던져 대는 손님들, 총을 겨누는 강도들 사이에서 하루하루를 버텨 내며 엄청난 희생과 헌신을 한 것이었지만, 화가 나면 딸에게 쥬스병을 집어던졌고, 성적을 닦달했으며, 억지로 그 잘난 사립학교에 보내고, 자신의 모든 불행에 대한 보상을 자식에게서 찾고자 한 사람이었다.
줄리아는 이렇게 “엄마의 사랑이 가부장제와 백인 우월주의의 형태를 띠고 있었던 것”은, 자식이 백인들로부터 당하게 될 일이 훨씬 더 가혹할 것이기에 매를 들었던 키에스 레이먼의 어머니나, “전쟁에 대비”시키겠다는 생각에서 손찌검을 했던 베트남 난민 출신 오션 브엉의 어머니처럼, “자식이 살아남아야 할 세상이 그랬기 때문”임을 이해해 나간다. 그리고 과장되고 시답잖은 괴담 정도로 치부했던 엄마의 피해망상적 이야기들을 전쟁의 포화처럼 계속되는 일상적 인종차별, 가부장제, 경제적 불안정, 역사적 트라우마가 뒤섞여 만들어진 무엇으로 재해석해 나가기 시작한다.
이 같은 피해망상과 불안, 공포에 대한 치열한 재해석의 과정은 부모 세대의 파괴적인 유산, 끝없는 부채의식으로부터 절연하고자 한 과정이었지만, 그 유산은 쉽사리 청산되지 않는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줄리아는 어느덧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어머니로부터 들었던 말들을 되풀이하며 “엄한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너희는 아시아인의 얼굴을 하고 있고, 세상은 너희를 이방인이자 열등한 존재로 볼 거야, 남들 절반만큼이라도 가려면 두 배로 열심히 노력하고 두 배로 뛰어나야 해”라고 말이다. 그리고 열 살 난 딸이 소아과 의사에게 자살충동을 고백하게 되는 상황을 마주한다. 그녀의 딸 역시 완벽하고 특별하지 못하다면 실패자에 불과하다는 줄리아의 내면화된 생각과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었던 것이다.
# 어떻게 내가 무심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아이들한테 백인 우월주의가 하는 짓을 해버린 걸까? 내 아이들이 내가 세뇌당했던 방식대로 세뇌당하는 일은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 항상 맹세해 온 내가? 딸아이는 그저 내가 나 자신을 대하는 방식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었다. 나는 나 자신이 평범한 한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을 허락하지 못했다. 완벽하고 특별하지 못하다면 나는 실패자, 바보, 낙오자였다. 그런 걸 나는 ‘엄한 사랑’이라거나 자기 책임을 다하는 것으로 포장했지만, 실은 인간으로 대접받으려면 그래야 한다고 바깥세상이 내게 말하는 소리를 그저 내면화한 데 지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나 자신을 상대로 한 백인 우월주의의 대행자”가 되어 버렸다.
◆ 주인의 손을 물어야 할지니, 그리고 네 앞에 있는 인간에게 인간이 되어라
이처럼 세대를 거듭하며 이어지는 인종주의 트라우마의 서사는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까? 저자는 그 해답을 자신이 등져야 할 억압들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며 찾아나간다. 이는 단순히 인종차별적 선입견을 버리는 것 이상의 일이다. 그것은 부모의 징벌적 사랑과 절연하기를, 그간 인종주의 사회에서 배워 온 것들을 철저히 거부하기를,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기를 요구한다. 부모로서 자식에게 세상을 헤쳐 나갈 도구를 쥐여 주는 것과 그 도구를 지속적인 억압의 무기로 바꾸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부모에게, 혹은 스승에게, 혹은 이 나라에 진) “빚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실은 “학대를 참아 내라”는 뜻을 숨기고 있을 때, 그것은 단호히 거부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자신의 딸에게, 학생들에게, 후세대에 이 말을 할 때 배교의 대상이 되는 손은 자신의 손이 될 수도 있다는 각오를 동반한다. 자신이 피해자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가해자 혹은 공모자일 수도 있다는 자각, 그리하여 자신의 손이 물리는 손이 될 수도 있다는 깨달음이 그것이다.
이 같은 깨달음은 유색인 동료와 학생들로부터 온 것이기도 하다. 후대가 자신이 겪었던 것과 같은 자기 비하와 자기혐오의 논리에 빠져들지 않도록, 줄리아는 수치심을 느꼈던 무례한 순간들보다 교감이 이루어지는 순간들에 더 집중하고, 백인 엘리트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권력의 언어를 구사하기보다 자신과 같은 유색인 학생들에게 전해줄 수 있는 이야기를 생각해 낸다. 인종과 민족성이란 궁극적으로 백인 우월주의와 식민주의가 만들어 낸 개념일 뿐이라는 원주민 친구의 지적에도 실마리가 있다. 원주민들의 사고에 따르면 피를 나눈 공동체, 피부색이 같은 이들이라고 해서 반드시 친족kin인 것은 아니다.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체로키족 혈통을 주장했던 것처럼) 백인들의 식민주의 문화에선 유전자 검사 따위로 혈통을 증명하고 자신이 그렇다고 선언하면 그만이지만, 원주민들에게 친족은 나를 동류로 인정해 주고 뜻을 같이하는 공동체로, 친족이 되려면 무엇보다 그 구성원들의 인정이 선행돼야 한다.
저자는 ‘탈식민주의’나 ‘반인종주의’ 같은 거창한 말을 쓰기보다 엉망진창인 세상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는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진정한 ‘친족’, 좋은 조상, 좋은 가족, 좋은 이웃,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가? 줄리아 리의 수업을 듣던 유색인 학생이 제시한 대답은 명쾌하다.
“네 앞에 있는 인간에게 인간이 되어라.”
아무리 유명하고 엄청난 자본을 움직인다 한들(심지어 BTS나 손흥민이라 해도) 이 나라 밖을 벗어나 백인들의 세계에 들어서면 인종차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우리지만, 폭염경보 속 비닐하우스에서 쉼없이 일하는 이주노동자에게는 “더운 나라 출신들이라 쉬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또 다른 우리에게 던지는 말이 아닐까.

줄리아 리 Julia Lee (저자)
미국으로 이민 온 한국계 부모 밑에서 나고 자랐다. 열다섯 살, 부유한 백인들이 다니던 사립학교를 다니며 반항하던 시절 LA 폭동을 목격했다. 당시 프랜차이즈 치킨집을 운영하고 있던 부모님의 상점 또한 피해를 입었다. 도망치듯 집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프린스턴대학에 진학해 영문학을 공부했고, 경영 컨설팅 회사에 잠시 몸담았다가 하버드대학 영문학 박사 과정에 진학했다. 미국 사회에서 소위 ‘모범 소수자’로 성장하며 경험한 인종적 갈등과 정체성 문제는 그녀의 학문과 문학 세계를 관통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하버드대학에서 만난 저메이카 킨케이드 교수의 영향 아래 아프리카계 미국인 문학과 영문학의 교차점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인종․기억․재현의 문제를 중심으로 문학과 문화사를 연구하는 한편, 소설도 썼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문학의 노예 서사가 빅토리아시대 영국 문학에 미친 영향을 연구한 The American Slave Narrative and the Victorian Novel(2010), 흑백의 어린이들이 좌충우돌하는 코미디 시리즈물 《꾸러기 클럽》을 문화사적으로 연구한 Our Gang: A Racial History of The Little Rascals(2015), 제인 오스틴의 『설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소설 By The Book(2018)(필명 줄리아 손본Julia Sonneborn으로 발표)이 그 산물이다. LA폭동으로부터 30여 년이 흘러 조지 플로이드 사건의 여파 속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이 책을 썼다. 현재는 로욜라메리마운트대학에서 영문과 교수로 일하며 아프리카계 미국인 문학, 아시아계 미국인 문학, 카리브해 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강예은 (옮긴이)
서울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때부터 미국과 한국, 영국을 오가며 유학 생활을 했다. 뉴욕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서울에서 미디어콘텐츠 관련 일을 하다가 현재는 텍사스대학 오스틴 캠퍼스의 미디어학과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한국 콘텐츠의 세계화 요인과 미디어산업에 대한 문화지리적 연구에 관심이 있다. 『특권: 명문 사립 고등학교의 새로운 엘리트 만들기』를 번역했다.
문지영 (옮긴이)
서강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는 서강대 글로컬사회문화연구소에서 의회주의의 발전과 젠더민주주의의 제도화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비지팅펠로 및 박사후연구원 자격으로 하버드대 옌칭연구소와 케임브리지대 정치학과에서 자유주의와 명예혁명에 대해 연구했다. 『지배와 저항: 한국 자유주의의 두 얼굴』, 『자유』 등을 썼고, 『민주주의의 수수께끼』, 『통치에 관한 두 번째 논고』 등을 함께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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