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머리말 - 고대 일본에서 신이 된 백제 왕자 곤지
1부 곤지를 찾아서
1장 가와치, 고대 한일의 비밀을 품다
곤지 탐사의 시작점, 가와치
가와치, 한일 고대사의 새로운 발견│가와치 왕조와 곤지
역사서 속에 숨겨진 단서
곤지 탐사의 시작, 역사서의 비밀│백제삼서, 숨겨진 역사의 단서
역사의 현장에 남겨진 단서
고대 오사카만, 곤지의 흔적을 찾아서│고훈 시대, 고대 한반도의 흔적│전방후원분의 기원,마한│아스카베 신사, 곤지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
2장 아스카의 큰 신, 곤지를 찾아서
고대사의 수수께끼를 풀 열쇠, 새
지명에 숨겨진 고대사, 새 이름 패턴│고대 항법과 새 그리고 정착지에 대한 새로운 해석
한일 고대사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행
덴노지에서 만나는 고대, 왕인 박사에서 쇼토쿠 태자까지│긴테쓰 미나미오사카선으로 떠나는 고대사 여행│고대 한일 교류의 중심 후루이치역│한일 고대사의 타임캡슐, 지카쓰아스카 박물관
잊힌 역사, 아스카 마을과 아스카베 신사
초라한 가미노타이시역과 아스카 마을│아스카베 신사와 아스카 마을의 미래
3장 곤지의 도왜를 둘러싼 의문들
곤지의 흔적을 찾아서
아스카베 신사, 곤지와의 해후│『신찬성씨록』, 곤지의 후손에 대한 기록│비유왕의 후손, 교토 우경의 아스카이씨를 찾아서
곤지와 무령왕, 그리고 일본의 천황들
곤지의 존재와 무령왕릉 지석│게이타이 천황과 무령왕의 관계│고대 한일의 왕비족, 진씨와 다케우치노 스쿠네
곤지를 둘러싼 고대사의 수수께끼들
곤지 탐사에서 만난 사람들│팩트에서 시작하는 곤지 탐사│한반도 남부의 영유권을 주장한 수상한 왜5왕│삼한과 왜 그리고 부여
곤지가 받은 미션의 비밀
곤지의 직위와 질(質)│곤지의 도왜에 등장하는 두 여인│무령왕의 모친, 잉부의 정체│곤지의 시크릿 미션
4장 천황가에서 활약한 곤지의 후손들
모진 세월 속에서도 곤지를 지켜 온 사람들
곤지 탐사의 시작, 아스카베 신사와 나카무라 요지│아스카베 신사의 시련, 메이지 정부와 곤지의 신물
천황가에 뿌리내린 곤지의 후손들
아스카베 신사의 귀환, 번개 전설과 후손 구다라노 나가쓰구│구다라노 나가쓰구의 숨결, 모리모토 신사│쓰보이 하치만궁
2부 곤지의 길
5장 위례성에서 고흥반도까지의 미션
미션의 시작, 한성에서 김포까지
한성백제에서 대한해협으로│하남시 검단산에서 김포로
서남 해안에서의 첫 번째 미션
서남 해안 루트와 금동관 세력│수수께끼의 5세기, 영산강 유역 속 고대사의 미스터리
6장 규슈에서 오카야마현까지의 미션
무령왕의 탄생, 규슈에서의 여정
고토 열도 루트, 고흥만에서 규슈 북서단으로│무령왕 탄생지 가카라시마는 고토 열도 루트의 증거│남부 규슈, 한반도와의 깊은 인연│고토 열도의 결정적 단서, 무나카타 대사│천황가의 수호신, 오이타 우사 신궁
규슈 너머 혼슈와 시코쿠로
고대 한반도와의 교류의 흔적, 야마구치현과 히로시마현│가야와 백제의 흔적, 오카야마현 기비국│한반도 남부와의 연결 고리, 신화의 고장 시마네현 이즈모국│신라 왕자의 전설과 가야의 흔적, 효고현 다지마국과 하리마국│고대 해양 세력의 존재
7장 기나이 왕조에서의 미션
두 번째 미션, 재지 왕조들과의 만남
나라현 가쓰라기 왕조, 와카야마현 기이국에서│오우미 왕조의 땅, 시가현 오우미국│나라현 미와 왕조, 고대의 길 야마노베노 미치
마지막 미션, 백제와 가와치 왕조의 부흥
오사카부 가와치 왕조, 백제의 흔적들│백제왕 신사│곤지의 꽃배, 교바시에서 가시와라시로
│오사카부 다쓰타 고도에서 나라현 호류지로
아스카 왕조와 한반도 남부의 오랜 인연
나라현 아스카 왕조, 가야의 흔적
3부 곤지가 연 미래
8장 아스카 마을, 새로운 과거와 오래된 미래
쉽지 않은 시작
곤지 프로젝트, 시민들과 함께 시작하다│사상 첫 곤지 심포지엄의 개최│곤지 덕후들
곤지의 뿌리를 찾아서, 아스카 방한단
아스카 방한단│곤지와 백제 시조 온조왕의 만남│곤지와 아들 무령왕의 만남
곤지와 함께 나아가는 미래
먹구름이 깔린 심포지엄 전야│폭우 속에서 열린 곤지 심포지엄의 성공│곤지왕 국제 네트워크, 아스카 마을을 백제 곤지왕의 고향으로
9장 국경 없는 곤지의 세계
곤지가 일으킨 변화
드러나는 곤지의 존재│하비키노시의 곤지 심포지엄│각성하는 아스카 마을│한성백제문화제
앞으로도 계속될 곤지의 역사
곤지로 잇는 한일 4개 도시│곤지를 알리려는 사람들│곤지 서거 1,600년을 향해서
참고문헌
[본 문]
첫 문장
역사가 오랜 이곳은 백제의 왕족(곤지왕)이 5세기 말에 거주했고, 고대 일본 문화의 고향이었던 곳입니다.
석비에 새겨진 글은 고대 일본에서 신이 된 한성백제(B.C. 18~A.D. 475)의 왕자 부여곤지(扶餘昆支, ?~477)의 이야기다. 오사카부 하비키노시 아스카 마을에서는 천 년도 넘는 긴 세월 동안 그를 신으로 모셔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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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에서 보이는 곤지 관련 기록들을 정리해 보았다. 그는 한성백제 개로왕(蓋鹵王, 21대, 재위 455~475)의 동생으로 461년 대한해협을 건넜는데 이때 무령왕이 태어났다. 475년 고구려 장수왕(長壽王, 20대, 재위 412~491)에 의해 형 개로왕이 죽임을 당하고 한성백제가 망하자 곤지는 백제로 돌아가 웅진백제의 좌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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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상념에 빠져 있다가 신사를 지나치고 말았다. 그러다 갑자기 눈앞에 포도밭과 산이 나타났다. 도리이의 크기를 보고 신사 규모도 제법일 것이라고 생각해 앞만 보고 걷다 놓친 것이다. 발길을 돌리자 커브 지점에 신사 입구가 있었다. 그곳에 ‘아스카베 신사’라고 새긴 석비가 있었다.
드디어 곤지의 역사를 품은 이곳에 왔다. 경내에 들어선 순간 감회가 새로웠다. 초라한 신사였지만 나에게는 귀중한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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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근거들로 보아 백제의 왕권이 재지 세력 등을 장악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한성백제가 멸망하기까지 개로왕은 이러한 세력들에 휘둘렸고 결국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곤지를 불러 도왜를 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곤지의 시크릿 미션’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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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이 다가오는데도 만삭이 된 잉부를 동행시켰다. 자칫하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데 혼례까지 치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잉부의 존재가 재지 세력의 협조를 구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며, 동시에 대한해협의 해로를 잘 알고 있던 해양 세력과 관련이 깊은 여인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서 출항 시기, 항해 기간, 만삭의 잉부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접근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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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시마는 일본에서 나의 첫 근무지였다. 14대 심수관이 1989년 가고시마 명예 총영사로 임명되었고 이듬해인 1990년 대한항공이 가고시마에 취항하게 되었다. 지금은 온천과 골프로 유명하지만 당시만 해도 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지방 도시였다.
가고시마로 가는 비행기의 탑승객 대부분은 일본인이었고 그곳에 사는 재일교포는 불과 500명 내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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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곤지 탐사에서 중요한 날이었다. 이날의 경험이 몇 년 후 한국과 일본의 평화와 우정이라는 거대한 비전을 가지고 ‘곤지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한반도와 일본 열도를 잇는 곤지의 흔적을 찾아가는 기행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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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로 ‘친구(親舊)’라는 말이 있지요? 여기서도 ‘친구’로 부른답니다. 일본어로 ‘친구’를 뜻하는 단어 ‘도모다치(友達)’와는 구분합니다.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허물없는 ‘진짜 친구’를 말하지요.” 이 ‘친구’라는 말에 한자는 없고 히라가나로만 쓴다고 했다. 일본에서 보통 외래어는 가타카나로 표기하는데 이곳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가 무령왕과 곤지의 대리인이라고 생각하니 이 섬에 대한 애착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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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목적지는 이즈시 신사가 있는 다지마국의 중심 지역 도요오카시로 정했다. 하리마국을 다녀오고 나서 나흘 후에나 날씨가 풀려 길을 떠날 수 있었다. 성탄절에 다녀온 쓰치야마역을 지나 히메지역에서 북쪽으로 혼슈를 종단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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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만에 들어선 100척의 배는 장관을 이루었다. 곤지를 맞으러 나온 크고 작은 배들이 긴 행렬을 이루었고, 배들이 단 오색 깃발은 바다를 형형색색으로 물들였다.
(중략)
해안가에서는 수많은 한반도 유민들이 환호하고 있었다. 손을 모아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유민들도 보였다. 그들로서는 실로 오랜만에 보는 백제 왕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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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무라 요지는 온조왕의 위패를 향하여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합장한 다음 머리를 숙였다. 그러고는 한참 후에 머리를 들었다.
드디어 곤지와 온조를 이었다. 천 년도 넘게 아스카베 신사를 지켜 온 아스카 마을 주민들이 백제 시조에게 참배한 것이다. 나카무라 요지에게는 남다른 감회가 있었음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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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곤지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1,550년 만에 부활한 곤지를 세상에 알리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영원한 평화 대사 곤지를 한일 양국 국민의 가슴에 각인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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