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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수 살인 사건(비명과 침묵4)

    • 사카구치 안고 저
    • 정혜원 역
    • 니케북스
    • 2026년 08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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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품 규격 정보
    상품상세정보
    ISBN ISBN-13 : 9791194706496
    쪽수1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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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품구성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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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소개

    우리는 왜 모든 흔적에서 의미를 찾는가

    의심하고 추측하고 확신하는 인간을 위한 세 편의 미스터리

     

    그의 작품은 추리 소설이 꼭 하나의 정해진 방향으로만 전개될 필요는 없음을 보여준다.”

    —〈옮긴이의 말〉에서

     

    답장이 늦어지거나, 평소와 미묘하게 다른 태도를 보이거나, 평소 열려 있던 문이 닫혀 있다. 우리는 이와 같이 사소한 단서만으로도 보이지 않는 상황을 추측한다. 처음에는 작은 의문에 불과했던 것이 어느 순간 확신으로 바뀌고, 한번 시작된 의심은 새로운 단서를 끊임없이 찾아낸다. 그러나 우리가 발견한 것은 정말 진실의 흔적일까? 혹시 믿고 싶은 이야기에 맞춰 전혀 다른 사실들을 이어 붙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카구치 안고의 추리소설은 바로 이러한 의심의 순간에서 출발한다. 그는 기차 시간과 이동 경로, 계약서의 필체, 설명되지 않는 죽음처럼 눈앞에 놓인 단서를 따라 사건을 풀어가는 동시에, 그 단서를 쥔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안고에게 추리란 단순히 범인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인간이 무엇을 믿고 어떻게 진실을 만들어 가는지 살피는 수단이었다.

    비명과 침묵시리즈의 신간 《투수 살인 사건》에는 표제작 〈투수 살인 사건〉을 비롯해 〈그림자 없는 살인〉, 〈암호〉 세 편을 수록했다. 단서를 모아 논리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본격 추리부터 끝내 하나의 정답으로 수렴하지 않는 미스터리, 의문을 좇는 과정에서 인간 내면의 불합리한 불안을 드러내는 심리소설까지, 추리소설이라는 장르가 지닌 다양한 가능성을 한 권으로 만날 수 있다.

     

    추리는 사건을 쫓고

    안고는 인간을 쫓는다

     

    표제작 〈투수 살인 사건〉은 프로야구 특급 투수의 이적을 둘러싼 소문에서 시작된다. 거액의 계약과 여러 사람의 이해관계가 얽힌 가운데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기차 시간과 이동 동선, 계약서의 필체와 증언 등이 중요한 단서로 떠오른다. 독자는 흩어진 정보를 맞춰 보고 알리바이의 빈틈을 찾으며 사건의 진실에 다가간다.

    야구와 연예계라는 대중적인 소재에 정교한 미스터리 구조를 결합한 이 작품은 단서를 수집하고 논리적으로 해답을 찾아가는 추리의 즐거움을 충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안고가 끝까지 바라보는 것은 범인의 정체만이 아니다. 같은 사실도 누가, 어떤 의구심을 품고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는 점을 보여주며, 일견 믿음직해 보이는 단서와 판단까지 다시 돌아보게 한다.

    〈그림자 없는 살인〉은 한 부호의 수상한 죽음을 둘러싸고 전개된다. 범인과 범행 방법에 관해 가능성이 제시되지만 사건은 하나의 명쾌한 결론으로 쉽게 수렴하지 않는다. 일반적인 추리소설이 범인을 밝혀 혼란을 질서로 되돌려 놓는다면, 이 작품은 진실을 완전히 확정할 수 없을 때 생겨나는 불안과 의심을 끝까지 밀고 나간다.

    〈암호〉는 전쟁을 겪은 남자가 자신의 책에서 발견된 수상한 흔적을 누군가가 남긴 암호라고 의심하며 시작된다. 그것은 정말 비밀을 담은 메시지일까, 아니면 불안에 사로잡힌 사람이 별것 아닌 흔적에 의미심장한 역할을 부여한 것일까. 암호를 해독하려는 시도가 계속될수록 작품의 중심은 미해결의 수수께끼에서 이를 바라보는 인간의 마음으로 옮겨 간다. 진실을 찾으려는 욕망이 때로는 원하던 진상을 마주하게 하지만, 때로는 존재하지 않는 의미를 만들어 낼 수도 있음을 치밀하게 묘사했다.

     

    범인을 의심하기 전에

    자신의 추리를 의심하라

     

    다자이 오사무, 오다 사쿠노스케와 함께 무뢰파를 대표하는 작가 사카구치 안고는 기존 사회의 도덕과 질서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러한 태도는 그의 추리소설에서도 이어진다. 안고는 정통 추리소설의 형식을 능숙하게 활용하면서도, 모든 사건이 반드시 하나의 정답으로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모든 가치가 흔들리던 시대에 안고가 주목한 것은 인간의 내면, 그중에서도 욕망과 불안이었다. 그는 무너진 질서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집요하게 포착했고, 추리라는 장르 형식 안  에 시대의 혼란과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을 담아냈다.

    정보가 넘쳐나지만 무엇을 믿어야 할지는 더욱 불분명해진 오늘날, 안고의 작품이 여전히 의미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편적인 정보로 타인의 의도를 추측하고, 몇 가지 의심스러운 단서만으로 진실을 판단하며, 자신의 해석에 맞는 증거를 찾아가는 모습은 소설 속 인물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단서는 사건을 가리키지만

    의심은 인간을 향한다

     

    《투수 살인 사건》은 세 편의 작품을 통해 추리소설이라는 장르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투수 살인 사건〉에서는 흩어진 단서와 알리바이를 맞춰 가는 지적 쾌감을, 〈그림자 없는 살인〉에서는 해결로써 해소되지 않는 미스터리의 긴장감을, 〈암호〉에서는 작은 의심이 헤어나지 못하는 집착으로 변해가는 심리적 불안을 만날 수 있다.

    세 작품을 관통하는 것은 단순히 누가 범인인가라는 질문만이 아니다. 우리는 왜 어떤 것을 선택해 단서라고 믿는가. 의심은 무엇을 거쳐 확신이 되는가. 진실을 찾으려는 추론은 언제부터 자신이 만든 이야기가 되는가.

    사카구치 안고는 독자가 진실에 가까워졌다고 믿는 순간, 그 믿음 자체를 다시 의심하게 만든다. 《투수 살인 사건》은 범인을 찾는 미스터리를 넘어, 우리가 무엇을 근거로 진실을 믿게 되는지를 끝까지 추적하는 작품이다. 책을 덮고 나면 사건의 결말만큼이나, 끝내 답을 내릴 수 없는 인간이라는 미스터리가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목차

    [목 차]

    작가 소개

    투수 살인 사건

    그림자 없는 범인

    암호

    옮긴이의 글



    [본 문]

    이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요코는 필사적인 표정으로 고개를 들고 물었다.

    부장님, 제 연기에 미래가 있을까요? 어떤 쓴소리도 들을게요.”

    갑자기 그 얘기가 왜 나와?”

    십 년이 걸리더라도 스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면, 그때의 출연료를 담보로 삼백만 엔을 빌려주셨으면 해요.”

    요코는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잃은 호소마키를 창백한 얼굴로 간절히 바라보다가, 이내 주저앉아 흐느끼기 시작했다.

    p. 14 〈투수 살인 사건〉 중에서

     

    당신에게 돈을 받을 이유는 없습니다.”

    이유가 없다지만, 돈을 못 내면 어쩌시려고요?”

    어떻게든 할 겁니다. 각오는 돼 있어요.”

    무슨 각오요?”

    오시카는 남자답게 결의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그때는 아마, 죽을 겁니다.”

    바보.”

    미쓰코는 쓴웃음을 지었지만 이내 낯빛을 누그러뜨렸다.

    p. 32 〈투수 살인 사건〉 중에서

     

    고이치는 여자에 관해서는 닳고 닳은 안목의 소유자였다. 그는 나이 든 벗들을 배신할 의향은 없었지만, 진실을 알린다는 의미에서―한편으론 그 진실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여동생 마리코에게뿐 아니라 당사자인 하나코 부인에게까지 세 선생의 대화를 낱낱이 보고했다.

    하하하. 결국 교로쿠 선생이 가장 순정파인 것 같으면서도 가장 교활하죠. 자기가 뭘 어쩌겠단 말은 없이, 나미키 선생에게는 독을 먹이라고 하고 겐사이 선생에게는 밤중에 베라고 했으니까요.”

    p. 95-96 〈그림자 없는 범인〉 중에서

     

    그런 교묘한 약품을 써서 독살하는 일은 일본에선 상상할 수 없습니다.”

    왜죠? 전쟁에서 패배한 나라는 독약을 쓸 수도 없단 겁니까?”

    일반 사람에게 그런 걸 다룰 만한 생활 기반과 기초 지식이 없기 때문이지요.”

    몰래 공부할 수는 없습니까? 예를 들어, 일본의 읽고 쓰는 교육의 보급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하던데, 그런 독살 방법이 글  로 공개되어 있다면요? 그래도 역시 일본인에게는 독약을 다룰 만한 생활 기반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런 독약은 일반적으로 구하기가 어렵거든요.”

    살인을 위해서라면 범인은 꽤 무리를 할 겁니다.”

    어쨌든 살인은 아닙니다.”

    왜죠?”

    지금은 이미 늦었어요. 부검을 하지 않았으니까요.”

    p. 110 〈그림자 없는 범인〉 중에서

     

    요컨대 범인이 누군지는 짐작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더 나아가 누가 범인이든 상관없을 만큼 기묘하게 무관심한 시대가 도래한 듯했다. 어쩌면 전쟁이라는 대량 살육의 기운이 눈앞까지 다가온 탓인지도 모른다. 이제 모든 것이 지리멸렬해졌는지도 모른다.

    p. 115 〈그림자 없는 범인〉 중에서

     

    가미오는 전사했다. 다카코는 실명했 다. 이를 천벌이 내린 결과라고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에 야지마는 스스로가 한심했지만, 마음의 고통은 떨칠 수 없었다.

    이 암호를 다카코가 썼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을뿐더러, 한 사람은 실명하고 한 사람은 죽은 마당에 과거를 들쑤실 필요는 없었다. 전쟁이란 하나의 악몽일 뿐이라고 마음을 다잡으려 애쓰면서 산 책을 집으로 가져왔지만, 구석에 밀어놓고 다카코에게는 절대 알리지 않을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 부담감이 점점 마음을 짓눌러, 가슴속에만 묻어두려 할수록 비밀을 간직하는 괴로움은 점점 쌓여가는 것만 같았다.

    p. 124 〈암호〉 중에서

     

    그렇다 해도 가미오는 죽었다. 야지마의 집은 불탔다. 살림살이가 모두 소실되고 열 권 남짓 남은 책도 모두 도둑맞았는데, 그 가운데 다카코의 암호 편지 한 장이 끼워진, 비밀의 유일한 실마리를 품은 그 한 권만이 여러 경로를 거쳐 야지마 자신의 손으로 돌아오다니, 이 무슨 기막힌 운명이란 말인가.

    p. 136-137 〈암호〉 중에서

     

    사정이 있어서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으니 십 분 정도 살펴보게 해달라고 양해를 구한 뒤, 자신의 옛 장서를 찾아보니 열한 권이 나왔다. 암호 문서가 두 장 든 것, 세 장 든 것, 한 장 든 것이 있었는데, 합치니 총 열여덟 장이었다. 야지마는 곧바로 해독에 들어갔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아마도 어제까지 평생 흘린 눈물의 총량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몸이 텅 비어버린 것만 같았다.

    p. 143 〈암호〉 중에서

     

    저자 소개
    저자 : 사카구치 안고

    사카구치 안고 (지은이)

    사카구치 안고(1906~1955)는 일본 전후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수필가로, 다자이 오사무, 오다 사쿠노스케와 함께 무뢰파(無賴派)’를 이끈 핵심 작가이다. 1931년 단편 《바람 박사》로 문단의 주목을 받으며 등단한 그는, 기발한 문체와 자유로운 발상을 선보이며 이름을 알렸다. 전쟁과 패전이라는 시대적 격변 속에서 그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방향으로 문학 세계를 확장해 나갔고, 특히 1946, 일본 패전 직후 발표한 《타락론》과 소설 《백치》를 통해 전후 사회의 혼란과 인간의 내면을 통렬하게 드러내며 시대의 목소리로 떠올랐다.

    안고는 인간은 원래 타락한 존재이며, 오히려 그 타락을 직시하고 통과할 때 비로소 재생의 가능성이 열린다고 보았다. 이러한 사유는 자기기만을 날카롭게 해부하는 동시에, 절대적 고독 속에서도 인간을 긍정하려는 역설적 휴머니즘으로 이어진다. 일생 동안 소설, 평론, 역사 연구, 문명 비평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쳤으며, 사회적 사건과 개인적 일탈로 끊임없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1955년 뇌출혈로 급사하기까지, 그는 혼란한 시대를 온몸으로 통과하며 그것을 문학으로 증언한 작가였다.

     

    정혜원 (옮긴이)

    동국대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하고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일본어 통번역을 공부했다. 현재 출판 번역가로 일하면서 독립 출판물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실험 쥐 구름과 별》을 쓰고 그렸으며, 《망각 탐정 시리즈》, 《하루 한 권, 화학 열역학》, 《하루 한 권, 유전공학》, 《동물 윤리의 최전선》, 《어린이 심리학》, 《어린이 철학》, 《어린이 경제학》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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