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광고
AD광고5만원 이상 결제 시 (*배송비 제외)
정가제FREE(상품/사은품) 금액이 2,000원 이상이면 2,000원 추가적립
10만원 이상 결제 시 (*배송비 제외)
정가제FREE(상품/사은품) 금액이 2,000원 이상이면 2,000원 추가적립
정가제FREE(상품/사은품) 금액이 5,000원 이상이면 5,000원 추가적립
신용카드 무이자할부 안내
결제사 혜택 안내



| 네이버페이 구매하기 | 찜하기 |
[네이버페이]
| ISBN | ISBN-13 : 9788997482863 |
|---|---|
| 쪽수 | 278쪽 |
| 크기 | 규격 외(152mm X 225mm, 신국판) |
| 제품구성 | 단행본 |
- 소설/에세이/시 > 수필
저는 1992년 1월, 실로암사람들의 1기 전임사역자로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35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실로암 소식지에는 1991년 7월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소식지는 월간에서 격월간으로, 지금은 계간으로 발행되고 있습니다. 매달의 시간을 새기듯, 때로는 숙제처럼 써 내려간 글들이 차곡차곡 쌓였습니다. 그렇게 모인 글들은 2002년 11월, <함께 가는 아름다운 세상>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제게는 첫 번째 책이었고, 동시에 실로암의 시간을 담아낸 기록이었습니다.
이 책의 첫 번째 독자이자 가장 자주 읽는 독자는 저 자신입니다. 책을 읽다 보면 오래된 앨범을 꺼내 보는 것처럼 아련한 기억이 되살아나고, 그 시절의 사람들과 다시 만나게 됩니다. 짧은 글 속에는 긴 시간이 담겨 있습니다. 그 시간은 저를 다시 세우기도 하고, 조용한 미소를 짓게도 하며, 잊고 지내던 마음을 다시 일깨워 주기도 합니다.
이번 개정판은 실로암사람들 50주년을 맞아 준비했습니다. 50주년은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고 앞으로 걸어갈 길을 내다보는 시간이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실로암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다시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오래된 글들을 다시 읽으며 부끄러움이 앞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 또한 그때의 저였기에 외면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과거는 지워야 할 시간이 아니라,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입니다.
개정판을 내며 책 제목도 <실로암이 있어서 다행이다>로 바꾸었습니다. 이 책의 등장인물과 배경은 모두 실로암이며, 담긴 이야기 또한 모두 실로암사람들의 삶입니다. 새롭게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사역의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받아쓰기’한 기록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저자는 저 혼자가 아니라 실로암사람들 모두입니다. 함께 울고 웃으며 걸어온 시간들이 한 편 한 편의 글이 되었습니다.
아울러 2002년 말부터 2026년까지 실로암 소식지에 실린 글을 모아 두 번째 책 <아픔을 직시하는 힘이 아픔을 넘는다>도 함께 펴내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책이 실로암과 함께 걸어온 시간을 담았다면, 두 번째 책은 장애인과 함께 살아오며 배우고 깨달은 마음들을 담았습니다.
끝으로, 실로암사람들의 이름으로 벗이 되어 주신 회원과 직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함께 시간을 견디고 길을 만들어 온 동역자들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장애인 선교의 길로 이끄시고 한결같이 붙들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당시의 시대와 상황을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이번 개정판에서는 당시의 문맥은 유지하되, 오늘의 독자들이 읽기 쉽도록 문장을 다듬고 제목을 새롭게 붙였습니다. 이 책이 실로암사람들의 삶을 기억하는 작은 기록이 되고, 장애인 선교와 하나님 나라를 향한 길 위에 작은 디딤돌 하나 놓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목 차]
책머리에(개정판) • 6
축하의글(개정판) / 김현아 처장 • 6
책머리에(초판) • 6
축시 / 이대우 시인 • 6
축하의글 / 강신석 목사 • 6
축하의글 / 나학수 목사 • 6
목욕탕 이야기 • 26
약한 자 편들기 • 28
수련회, 감추어진 진실들 • 30
운동회 • 33
첫눈 오는 날 • 35
장애인에게 빚진 자 • 37
낯선 시선, 익숙해지는 시간 • 39
멈춰 선 엘리베이터를 보며 • 41
문턱 앞에 서 있는 사람들 • 43
부모님 전상서 • 45
사람을 잊지 않는 사역 • 47
입지 못한 반바지 • 49
수련회를 기다리며 • 51
함께 바다로 가자 • 53
장애인은 정상인이다 • 55
벽은 몸이 아니라 환경에 있다 • 57
상식이 무너진 자리에서 • 59
흘러간 시간이 아니라, 살아낸 시간 • 61
정작 버려야 할 것들 • 63
나의 봄을 기다리며 • 65
장애가 아니라, 한 사람을 보다 • 67
서로의 삶을 배워가고 있다 • 69
문제는 능력이 아니라 기회다 • 71
노래가 나를 부를 때 • 73
바람을 거느린 소나기처럼 • 75
끝나지 않는 만남 • 77
차이와 차별 사이에서 • 79
우리 뒤에 서 있는 사람들 • 81
넘어진 자리에서 시작된 것 • 83
작지만 꼭 필요한 소리 • 85
포기하지 않는 법을 배우다 • 87
디아코니아에서 배운 것들 • 89
눈은 떠 있고, 마음은 감겨 있다 • 92
누구에게 열린 교회인가 • 94
물은 권리이다 • 96
서로에게 기대는 일 • 98
낯선 자리에서 나를 만나다 • 100
함께 떠나는 모두의 여름 • 102
보조기와 함께 걷다 • 104
늘 웃는 얼굴이 가르쳐 준 것 • 106
그럼에도 감사하는 이유 • 108
지팡이에서 핸들까지 • 110
새해의 기도 • 112
멈춰 서서 바라보는 시간 • 114
이 낮은 데로 임하소서 • 116
함께 걷는 길 위에서 • 118
완전함보다 함께 • 120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사이에서 • 122
나눔이 시작되는 곳 • 124
다름을 안고 살아가는 법 • 126
용서를 선택하며 살아간다는 것 • 128
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법 • 130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가기 • 132
내가 섬겨야 할 얼굴들 • 134
할 수 없다는 말 앞에서 • 136
결혼을 준비하는 마음 • 138
가난한 이들과 함께 배운 삶 • 140
별명으로 기억되는 사람들 • 142
우리의 치료자, 예수 • 144
그래도 내일은 있다 • 146
사명을 따라 사는 삶 • 148
나를 세워 준 공동체 • 150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위하여 • 152
캠프와 목요모임 • 154
고통 속에서 배우는 삶 • 156
편집을 맡고 나서야 알게 된 것들 • 158
다시, 성탄의 주인공을 생각하며 • 160
새해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 162
장애를 통해 배우는 믿음 • 164
같은 비를 맞으며 • 166
절룩이며 걷는 세상도 아름답다 • 168
삶을 써 내려가는 사람들 • 170
일하고 싶은 마음 앞에서 • 172
더위 속에서 배우는 쉼 • 174
사랑하면 보인다 • 176
거꾸로 키 재기 • 178
이렇게 살고 싶다 • 180
물집이라는 이름의 훈장 • 182
눈이 오면 생각나는 사람들 • 184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 186
느린 걸음으로 오른 산 • 188
비워 둔 자리 • 190
나갈 수 있어야 살 수 있다 • 192
하나된소리에서 삶으로 • 194
우리는 준비되어 있는가 • 196
당신이 나의 길이었다 • 198
서로 다른 너와 나를 위하여 • 200
가장 가깝고도 먼 이웃 • 202
다시 일어나는 힘 • 204
사람을 세우는 섬김 • 206
삶을 나누며 세워가는 사람들 • 208
전화를 기다리는 마음 • 210
어머니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 212
통일은 마음을 잇는 일이다 • 214
그 자리에 남아 있는 사람들 • 216
장애인의 이동권은 기본권이다 • 218
꽃이 문이 되는 날 • 220
다리를 놓는 사람 • 222
웃음으로 시를 쓰는 사람 • 224
상처가 시가 되기까지 • 226
심지가 아닌 등잔으로 살고 싶다 • 228
꽃을 심는 마음으로 • 230
아이들과 함께 배우는 마음 • 232
함께 걷는 새해 • 234
낮은 곳을 향한 마음 • 236
몸으로 웃는 시간들 • 238
가능성의 시대에 서 있다 • 240
배고픔과 은혜 사이 • 242
사무실 생존 이야기 • 244
나는 장애를 극복하지 않았다 • 246
휠체어가 길이 되기를 • 248
그들만의 축제가 되지 않기를 • 250
바른손은 누구의 기준인가 • 252
일본에서 이동의 자유를 보다 • 254
실로암센터를 이전해야 한다 • 256
✽ 인터뷰 글모음
그의 길에서 나의 길을 묻다 (2001.09) • 258
이동할 권리, 살아갈 권리 (2002.03) • 265
색인 • 273
[본 문]
목욕탕 이야기
철없던 어린 시절을 목욕탕 하나 없는 시골에서 보낸 탓에, 나는 여탕에 들어갈 기회를 놓쳐 버렸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아쉽지만 남탕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 목욕탕은 묘한 공간이다. 가진 자든, 힘 있는 자든, 그럴듯한 권위와 교양의 껍데기를 하나씩 벗어 두고 결국은 한 인간으로 서게 되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목욕탕을 배경으로 한 풍자와 유머가 유난히 많은 것도 이해가 된다. 그곳에서는 누구도 완전히 자신을 숨길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의 목욕탕 이야기는 고등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주에서 자취를 하던 어느 날, 학교에서 갑작스럽게 신체검사를 한다기에 마지못해 목욕탕을 찾았다. 그전까지는 집에서 대충 해결하던 터라 목욕탕은 더욱 낯선 공간이었다. 예상대로 사람들의 시선은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그러나 그날 나를 더 당황하게 만든 것은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거울 속에 비친 나 자신의 몸이었다. 우람한 상체와는 달리 힘없이 왜소한 하체, 어디에서도 균형을 찾기 어려운 모습.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낯설었다. 내가 알고 있던 ‘나’와 너무 다른 몸이 거기에 서 있었다. 그날 이후, 목욕탕은 갈 때마다 설명하기 어려운 패배감과 좌절감을 남기는 곳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 대학에 입학한 첫해 봄, 아침 모임을 마치고 강의실로 올라가던 중이었다. 계단을 오르기 힘겨워하던 나에게 한 여학생이 아무렇지 않게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여학생 역시 장애를 가진 사람이었다. 얼굴이 화끈거릴 만큼 당황스러웠다. 그 순간은 짧았지만 오랜 기억으로 남았다. 그가 보여준 자연스러움과 편안함은, 나 자신의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는 출발점이 되었다. 나는 그동안 나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 열등감 속에서 스스로를 밀어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목욕탕에 대한 두려움도 서서히 옅어졌다.
상처 난 자아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그러나 따뜻한 손길이 그 상처를 덮고 지나며, 나는 내 몸을 다시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갔다. 그렇게 ‘때가 차매’, 목욕탕에 가는 일은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라 그저 일상의 한 장면이 되었다. 대중목욕탕을 불편해하는 장애인의 마음을 생각하면, 전용 목욕탕을 마련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몸은 숨긴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숨길수록 더 낯설어질 뿐이다. 언젠가는 장애인의 몸도 특별한 시선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우리 곁에 있는 하나의 몸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호기심 어린 시선마저 시간이 흐르며 무뎌지고, 서로의 다름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일상이 되었으면 한다.
우리는 종종 스스로의 삶을 좁은 울타리 안에 가두고, 그 밖으로 나가기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그 경계를 넘지 않는 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돌아보면 나는 아직 대중목욕탕에서 또 다른 장애인을 만난 적이 없다. 그래서일까. 언젠가 그 낯선 몸과 마주하게 될 날이 기다려진다. 그날이 오면 기쁘게 등을 밀어 주고 싶다. 같은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1991.07)
약한 자 편들기
좀처럼 늘지 않는 기타 실력에 지칠 즈음, 나는 큰 마음을 먹고 기타 학원을 찾았다. 광주교육대학교 앞에 자리한 그 학원은 이름난 강사와 제법 정돈된 분위기를 갖춘 곳이었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설렘이, 한동안 나를 그 길로 이끌었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골목 어귀에서 누군가 서툰 말투로 큰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순간 몸이 굳었지만, 곧 그가 정신적 어려움을 가진 장애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그 골목을 지날 때면 무심코 그의 모습을 찾았다. 설명하기 어려운 동질감 같은 것이 마음 한켠에 남아 있었다.
그를 다시 보게 된 것은 보름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함께 노는 것’처럼 보였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것은 놀이가 아니었다. 아이들은 그를 흉내 내고, 밀치고, 웃으며 자극했다. 그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그 자리를 맴돌았다. 아이들은 그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 더 크게 웃었다. 누군가 손을 대면 그는 도망쳤고, 아이들은 쫓아갔다. 다시 붙잡아 때리고, 또 도망치기를 반복했다. 끝내 그는 길 한복판에서 몸을 가누지 못한 채 실수를 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아이들의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 장면을 지켜보는 동안, 이상하게도 주변은 너무 조용했다. 누구 하나 나서서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마치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그저 지나가는 풍경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서 있을 수 없었다. 아이들 중 가장 큰 녀석을 붙잡아 등을 한 대 내리쳤다. 순간, 오래전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나를 놀리던 아이의 뒤통수를 지팡이로 내려쳤던 초등학교 시절의 감정과 비슷했다. 분노와 억울함, 그리고 뒤늦게 밀려오는 어떤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사람들은 흔히 약자를 응원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우리는 강한 자 앞에서는 쉽게 작아지고, 약한 자 앞에서는 뜻밖에 잔인해진다. 힘이나 폭력의 방향은 언제나 위가 아니라, 더 아래를 향하기 쉽다. 그날 이후 나는 가끔 생각한다. 연약한 사람 곁에 선다는 것은 무엇일까. 단순히 대신 싸워 주는 것일까, 아니면 그 사람이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고 느끼게 하는 것일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쩌면 거창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냥 외면하지 않는 것, 침묵하지 않는 것, 그리고 그 자리에 함께 서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작은 선택들이 모일 때, 누군가에게 작은 힘이 될 것이다.
연약한 이들을 향해 따뜻한 시선이 머무는 세상, 조롱이 아니라 존엄이 먼저 드러나는 세상. 그런 세상을 꿈꾸는 일이 여전히 멀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꿈을 포기할 수는 없다.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로마서 15:1) (1991.08)
수련회, 감추어진 진실들
유난히 많은 여름 행사를 치른 뒤라 몸은 지쳐 있었지만, 장애인 수련회에 도착하는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먼저 풀렸다. 그동안 여러 행사에서 만나 익숙해진 얼굴들을 다시 마주하는 기쁨도 컸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웃고, 또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는 시간조차도 위로가 되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드리는 찬양과 기도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이번 수련회는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 함께했다. 특히 처음 참가한 이들도 많았다. 어딘가 긴장한 듯한 얼굴, 기대와 두려움이 섞인 표정들을 보며 문득 오래전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처음 이 실로암 수련회에 참가한 것은 광주 대촌동초등학교에서 열린 제6회 실로암 여름수련회였다. 시골 학교의 풍경은 어린 시절의 기억과 겹쳐져 낯설기보다 오히려 편안했다. 지금도 사진첩 속에 남아 있는 그때의 장면들은 내 청춘의 한때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그 시절의 우리는 참으로 유쾌했다. 한 손에 절단장애가 있는 조미경 자매와 함께 준비한 촌극 <손>은 예상보다 큰 박수와 웃음을 받았고, 우리는 그 반응에 한껏 들떠 있었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따로 있다. 이름하여 ‘미스·미스터 실로암 선발대회’. 각 조에서 대표를 뽑아 본선에 올리는 방식이었는데, 조 대표로 선발되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처럼 여겨질 만큼 경쟁이 치열했다. 온갖 선거 전략이 동원되었다. 애교는 기본이고, 조원들에게 100원씩 나눠 주는 금품 공세도 있었다. “당선되면 경운기를 타고 전국일주를 시켜 주겠다”는 공약이 나오는가 하면, 심지어 “내 고향이 벌교다.”라는 협박 아닌 협박까지 등장했다.
나는 신명옥 자매와 함께 본선에 오르는 행운을 얻었다. 문제는 분장이었다. 나는 ‘임신 8개월의 여인’이라는 다소 무리한 설정을 선택했는데, 의상을 갖추는 일이 쉽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 솔직히 고백하자면, 필요한 속옷을 구하지 못해 숙소 뒤 빨랫줄에 걸려 있던 것을 몰래 가져오는 일까지 벌어졌다. 물론 나중에 제자리에 돌려 놓았다. 하지만 결과는 탈락이었다. 그해 미스터 실로암의 영예는 형영철 형제에게 돌아갔다. 지금 생각하면 그저 웃음이 나는 추억이다.
수련회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초상화 그리기’였다. 얼굴이나 몸에 매직으로 그림을 그리는 놀이였는데, 언제부턴가 자연스럽게 내 역할이 되었다. 물론 혼자서 한 것은 아니었다. 가끔 난처한 상황을 수습하거나 설명해 줄 파트너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주로 이미경, 주완, 박상권... 이름만 들어도 든든한 동료들이었다. 함께 웃고, 함께 장난치며, 다른 사람의 얼굴에 그림을 그리던 시간은 우리만의 비밀 축제였다. 올해는 사정이 있어 그 일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누군가의 엉성한 그림이 내 작품으로 오해받아 구박을 받을 때면, 변명도 못 한 채 웃어넘기곤 했다. 어쩌면 그동안 내가 뿌려 놓은 장난의 씨앗이 이제야 열매를 맺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수련회가 거듭될수록, 나는 조금씩 다른 것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어색하게만 보이던 몸짓과 서툰 말 속에도 쉽게 드러나지 않는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로의 아픔을 마주하고, 그 아픔을 외면하지 않은 채 함께 견디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가까워졌다. 눈물은 숨겨지지 않았고, 그 눈물은 오히려 우리를 더 단단하게 이어 주었다. 새롭게 참여한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낯선 공간과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쉽게 드러내기 어려운 자신의 아픔까지. 그 모든 것을 안고 이 자리에 온 발걸음은 얼마나 무거웠을까. 그러나 그 발걸음 위에도 시간이 쌓이고, 새로운 관계가 더해질 것을 나는 믿는다. (1991.09)
운동회
교회에서 주최한 체육대회를 마치고 나니 온몸이 녹초가 되었다. 이제는 운동장을 마음껏 누비고 사람들 틈에서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일이 특별하지 않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장애를 가진 몸으로 운동장과 수영장, 해수욕장을 거리낌 없이 드나들기까지는 스무 해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서 유난히 선명하게 남아 있는 장면이 있다. 체육시간과 운동회다. 체육시간이 시작되면 나는 늘 운동장 한켠에 머물러야 했다. 아침 조회나 보건체조 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몸은 그 자리에 있었지만 마음은 늘 먼 곳을 떠돌았다. 그때의 나는 마치 새장 속의 새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채 하늘만 바라보고 서 있었다. 더 견디기 힘든 순간도 있었다. 체육시간 전후로 교실에서 물건이 없어지기라도 하면 이유 없이 마음이 조여 왔다. 누가 나를 의심한 것도 아닌데 함께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죄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순간마다 나는 세상에서 조금씩 밀려난 사람처럼 작아졌다.
가을이 깊어지면 운동회가 열렸다. 친구들은 부모님의 손을 잡고 도시락 보자기를 들고 학교로 향했다. 그러나 나는 운동회 이야기를 집에 꺼내지 못했다. 운동회는 즐거운 날이 아니라, 견뎌야 하는 날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운동장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나는 그곳에 속하지 못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만 그 자리에 없는 것이 아니었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운동장에 모여 있던 그 시간, 부모님은 들에 나가 일을 하고 계셨다. 그 넓은 들판에서 부모님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을까. 그 물음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아 있었다.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남동생의 권유로 자전거를 배우게 되었다. 처음에는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막상 페달을 밟아 보니 몸은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반응했다. 자전거 위에 올라선 순간 세상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날 이후 나는 조금씩 더 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이킹을 하고, 탁구를 치고, 배드민턴을 즐겼다. 몸의 한계를 넘어섰다기보다, 내 몸을 사용하는 새로운 방식을 배워 간 셈이었다.
돌이켜 보면 장애를 가진 몸은 분명 크고 단단한 벽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 벽은 움직임을 제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때로는 생각과 마음마저 가두려 한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알 수 없는 위축을 느끼곤 했다. 그 문장 속에는 내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다른 길을 찾게 되었다. 장애를 가진 몸으로도 할 수 있는 운동을 찾고, 나에게 맞게 바꾸어 즐길 수 있는 놀이를 찾았다. 기존의 방식을 따르기보다 나에게 맞는 길을 만들어 갈 때, 비로소 몸은 조금씩 자유로워졌다.
하늘이 높아지는 계절, 운동장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 가운데 어딘가에서 망설이고 있을 누군가를 떠올려 본다. 그가 조금 더 쉽게 그 자리에 들어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보이지 않는 월계관 하나를 건넨다. 서툴지만 멈추지 않고 걸어온 이들에게. 그리고 이제 막 첫걸음을 내디딜 이들에게. (1991.10)
첫눈 오는 날
언제부터인가 눈 오는 날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게 되었다. 아마 언덕길에서 몇 번이나 속수무책으로 미끄러진 뒤부터였을 것이다. 발을 딛는 순간 중심을 잃고 넘어지던 그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 느낌이 아직도 몸 어딘가에 남아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첫눈만큼은 여전히 기다려진다. 봉숭아물을 손톱에 물들이고 주황빛이 들기를 기다리던 어린 시절처럼, 첫눈은 지금도 마음 한편을 설레게 한다. 특별히 만나야 할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떠올려야 할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니다. 첫눈을 기다리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날, 하나님께 드리고 싶은 기도가 있기 때문이다.
첫눈이 내리는 날부터 장애인의 겨울은 시작된다. 그러나 그 겨울은 누구에게나 같은 모습으로 찾아오지 않는다. 장애의 정도와 특성에 따라 겨울의 무게도 저마다 다르다. 어떤 이에게는 계절이 바뀌는 일에 지나지 않지만, 어떤 이에게는 움직임이 멈추는 시간이 된다. 손과 발은 더 움츠러들고, 방 안에 머무는 시간은 길어진다. 창밖으로 내리는 눈을 바라보면서도 쉽게 밖으로 나설 수 없는 날들이 이어진다. 그렇게 겨울의 낭만은 점점 멀어지고, 바깥세상은 쉽게 닿을 수 없는 곳이 되어 간다.
눈 위를 미끄러지며 썰매를 타는 아이들,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하며 웃음 짓는 사람들, 가로등 불빛 아래를 함께 걷는 연인들. 사람들은 그것을 겨울의 즐거움이라 말한다. 그러나 그 모든 풍경이 누구에게나 허락되는 것은 아니다. 장애인에게 겨울은 종종 ‘타인의 계절’이 된다. 그 계절은 몸의 한계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설렘으로 쌓이는 눈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한 걸음조차 조심해야 하는 장애물이 된다.
얼어붙은 길 위에서 한 발짝 내딛는 일은 쉽지 않다. 차가운 바람은 몸의 감각을 무디게 만들고, 금속으로 된 보조기는 그 냉기를 고스란히 전해 준다. 휠체어 바퀴가 얼어붙은 길 위에 멈춰 설 때면, 그 자리에서 한참을 길만 바라보게 된다. 움직일 수 없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도 함께 얼어붙는 듯하다. 그 순간에는 길만 막히는 것이 아니라, 시간마저 멈춘 것처럼 느껴진다.
그럴 때면 한 장면이 떠오른다.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한 아기의 이야기다. 가장 작고 보잘것없는 자리,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곳에서 시작된 생명. 그곳에도 하나님의 시선은 머물러 있었고, 그곳에서도 소망은 시작되었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자리에서 시작된 그 온기는 지금의 나에게도 조용히 스며든다. 그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겨울 한가운데서도 작은 온기를 느낀다.
그래서 나는 첫눈이 오는 날이면 기도한다. 얼어붙은 마음을 가진 이들에게 따뜻한 숨결을 불어넣어 달라고. 움직이지 못하는 몸보다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지켜 달라고. 그리고 겨울이 더 이상 누군가에게만 허락된 계절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이 되게 해 달라고. 서로의 걸음을 기다려 주는 계절이 되게 해 달라고.
눈은 조용히 내린다. 소리 없이 쌓여 가는 그 눈처럼 우리의 시간도 그렇게 쌓여 간다. 그 위에 쌓이는 것은 눈만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마음이다. (1991.12)
장애인에게 빚진 자
처음 실로암선교회를 알게 되었을 때, 내 마음에는 적지 않은 기대와 설렘이 있었다. 나와 같은 아픔을 지닌 사람들과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다.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평안과 기쁨을 살아내는 사람들의 모습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무엇보다 그 공동체를 묵묵히 섬기던 이들의 헌신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그렇게 시작된 만남은 어느덧 6년의 세월이 흘렀고, 나는 자연스럽게 그 공동체의 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훗날 내가 이 공동체와 장애인들에게 큰 빚을 지게 되리라는 것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지난 가을, 장애인 선교 사역자로 헌신을 결심하던 날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날 나는 쉽게 “예”라고 대답하지 못했다. 준비되지 않았다는 생각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나를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조급하게 몰아붙이지 않으셨다. 오히려 지나온 시간들을 하나씩 돌아보게 하셨다. 우연처럼 흘러온 일들이 사실은 하나의 길이었음을 그제야 조금씩 알게 되었다. 결국 나는 거스를 수 없는 은혜 앞에 서게 되었고, 그 부르심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시간을 지나며 나는 나 자신을 다르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일이 때로는 무겁고 견디기 어려운 현실이지만, 동시에 그것이 나를 이 자리로 이끈 이유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단순한 조건이 아니라, 같은 아픔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갖게 되는 일이었다. 그제야 장애인의 삶은 설명보다 공감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앙 안에서도 같은 깨달음이 이어졌다. 사도 바울이 자신을 ‘빚진 자’라고 고백했던 이유를 이전보다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께만 빚진 사람이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빚진 사람으로 살아갔다. 그들을 향한 삶이 곧 자신의 부르심이었기 때문이다. 그 고백을 따라가다 보니, 나 역시 이 자리에 서 있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는 장애인에게 빚진 사람이다. 그들을 도우며 살아온 것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 오늘의 내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길을 혼자 걷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큰 은혜였다. 결혼을 통해 하나님은 함께 걸어갈 동역자를 허락하셨다. 우리는 같은 비전을 품고 장애인 선교의 길을 함께 걷기로 마음을 모았다. 혼자였다면 감당하기 어려웠을 길도 함께였기에 걸어올 수 있었다. 서로의 손을 잡고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힘이었다.
이제 나는 다시 길 위에 서 있다. 한때의 나를 닮은 사람에게 그 삶에도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설렘이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다. 장애인을 동정이나 시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바라보는 눈이 열리기를 바란다. 한국 교회 또한 장애인을 돕는 대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한다. 나는 그 길 위에서, 장애인에게 빚진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1992.01)
낯선 시선, 익숙해지는 시간
길을 걷다 보면, 가끔 당혹스러운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저만치서 다가오는 아이가 내 걸음걸이를 흉내 내며 절뚝거릴 때다. 그 장면을 마주하면, 왜인지 모르게 내 얼굴이 먼저 붉어진다. 아이의 장난 때문이 아니라, 그런 장면이 내게는 너무도 익숙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가장 또렷하게 남아 있는 기억은 육체적 장애와 관련된 모멸감이었다. 그 기억은 시간이 흘러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아이 옆에 부모가 함께 있을 때면, 나는 아이보다 부모의 표정을 먼저 살핀다. 모르는 척 시선을 피하는 사람도 있고, 아이를 나무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넘기는 사람도 있다. 때로는 아이의 기를 죽일까 봐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더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그다음에 이어지는 말들이다.
“너도 엄마 말 안 들으면 저렇게 된다.” 그 말 한마디가 아이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지 생각하면 쉽게 지나칠 수가 없다. 그 순간 장애인은 하나의 모습이 아니라, ‘되지 말아야 할 상태’로 기억될 것이다. 어쩌면 장애에 대한 첫인상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낯선 골목에서 길을 묻기 위해 아이들에게 말을 건넬 때도 비슷한 순간을 마주한다. 조금 전까지 웃으며 뛰놀던 아이들이 갑자기 표정이 굳어지거나 뒤로 물러서는 모습을 볼 때면,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내 표정이 문제일까, 아니면 내가 가진 모습이 아이들에게 낯선 것일까. 말을 꺼내 보기도 전에 도망치듯 흩어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게 된다.
이런 경험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장애인을 낯설고 두려운 존재로 경험한 아이들은,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그 인식을 쉽게 바꾸기 어렵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 시선이 가족 안에서도 반복된다는 사실이다. 장애를 부끄러운 것으로 여기고 숨기려는 태도는, 결국 장애인을 더 깊은 고립 속으로 밀어 넣는다. 함께 있어야 할 자리에서 한 발 물러나게 하고, 함께 나누어야 할 웃음과 시간을 끊어 버린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사람은 만나야 이해하게 되고, 함께 살아야 익숙해진다는 것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특별한 존재로 바라보지 않고, 그저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거창한 선언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작은 만남, 어색하지만 피하지 않는 시선, 서툴지만 이어지는 대화 속에서 조금씩 이루어진다. 서로를 몰라서 생기는 두려움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음은 있지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그 거리감이 조금씩 좁혀지기를 바란다. 우리는 다르지 않다. 다만 아직 서로에게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 (1992.02)

1963년 전남 벌교에서 태어났다.
35년 동안 장애인과 함께 살아오며 인권운동과 자립생활운동, 그리고 교회와 시민사회의 경계를 오갔다. 장애를 통해 세상을 읽고, 사람을 통해 희망을 배웠다.
김용목에게 글쓰기는 기록이 아니라 사람을 기억하는 일이다. 투쟁의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이웃들, 신앙 안에서 길을 찾아온 시간들을 오래도록 받아 적어 왔다.
현재 (사)실로암사람들에서 활동하며, 오늘도 사람들의 삶을 받아쓰고 있다.
등록된 리뷰가 없습니다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 반품/교환방법 |
|
|---|---|
| 반품/교환 가능기간 |
|
| 반품/교환비용 |
|
| 반품/교환 불가 사유 |
|
| 상품 품절 |
|
| 소비자 피해보상 환불지연에 따른 배상 |
|

- [이벤트 당첨자 발표] 서울국제정원박람회, 김진명 작가 북토크 당첨자 안내
- [이벤트 당첨자 발표] 9월 모두의 서가 이벤트 당첨자 안내
- [공지사항] 스타필드마켓 월계 문구복합매장 그랜드 오픈 🎊 이벤트 안내!
- [공지사항] 2026년 9월 1일 개인정보 처리방침 개정 안내(3.개인정보 처리, 항목, 보유기간)
- [이벤트 당첨자 발표] 26년 8월 <이달의 작가> 댓글 이벤트 당첨자 안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