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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결 유예 악의

    • 김상묵 저
    • 기사무채
    • 2026년 07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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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품 규격 정보
    상품상세정보
    ISBN ISBN-13 : 9791199901919
    쪽수244쪽
    크기B6(127mm X 188mm, 사륙판)
    제품구성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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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소개

    지하철에서 처음 보는 남자가 임다리를 향해 “악귀 형님”이라고 부른다.
    자신을 모르는 인간은 무엇에 붙잡히는가

    『연결, 유예, 악의』는 한 인간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아니 이미 만들어진 존재가 어떻게 유지되는지를 추적한다. 타인의 언어와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정체성, 그리고 그 틈에서 자라나는 악의의 기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타인의 말이 한 인간의 얼굴과 행동, 끝내는 운명까지 어떻게 만들어 가는지를 추적하는 소설이다.

    목차

    [본 문]

    곰이라는 동물이 듬직하고 순했던가.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곰 인형.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곰 인형은 달라.

    _ p.13

     

    “그걸 설명하기 위해 계속 연결하고 있어요. 전체를 알기 위해서죠. 이상하지만 그래요. , 여보세요. 제 말 듣고 있나요? 여보세요, 거기 있어요?”

    _ p.20

     

    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있었을까.

    _ p.27

     

    다리는 오래된 숨을 탁 내뱉었다. 이를 시작으로 아래턱이 기이한 모양으로 틀어졌다. 두껍고 탄탄한 가슴이 불룩 솟았고, 어깨 근육은 활시위처럼 팽팽하게 늘어났다. 미간이 깊게 패며 주름이 겹겹이 잡혔고, 눈자위는 터질 듯 부풀어 오르며 벌겋게 충혈되었다. 순박해 보이던 처진 눈꼬리는 거의 그대로인데, 돌연 교활하고 음험해 보였다. 그가 양손을 쥐었다 펼 때마다 끄드득 소리가 났는데, 마치 무언가를 납작하게 짜부라뜨리는 듯했다. 그는 한 발 더 내디뎠다. 배서 아빠가 두어 발 뒤로 물러났기 때문이었다.

    _ p.36

     

    “장하다. 장해. 네가 해냈어. 네 실적이 일등이야! 비뚤어진 인상과 두꺼운 덩치는 이때 쓰라고 있는 거라고. 너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봐. 잔뜩 겁을 집어먹었잖아. 왜 그러겠어. 널 진짜 악귀로 여기니까 그래. 얇은 귀 때문에 상황이 나빠진다는 의미로 갖다 붙였던 악귀가 아니라, 진짜 악귀. 악독한 귀신. 채권추심의 악귀. 세상일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네가 악귀라니. 아무튼, 얼마나 멋져! 무슨 뜻인지 알지? 몰라? 모르는데 여기까지 온 거라고? 나 참, 생각이 없는 건지. 뭐 좋아, 넌 악귀니까. 네 얇은 귀에 대고 간단하게 설명해 주지. 딱 하나만 생각해. 이제 돈 벌 때가 됐다는 것만.”

    _ p.61

     

    한 인간을 완벽히 설명하려던 열망이 여기에서 꺾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간 소외와 오류를 감내하고서라도 여러 연결을 통해 미지의 부분을 획득했던 건데. 빌어먹을, 여기까지라고. 아니, 그럴 수야 없지. 두 눈을 부릅뜬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다른 연결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부사장에 오른 뒤로 악귀는 한층 강화되었다. 그의 호의는 악귀의 작은 변덕이자 일종의 시험대라서 절대 속아 넘어가면 안 되는 부분이라며 주변 사람들은 몹시 경계했고, 그의 악의는 당연한 것이라서 사람들은 그와의 접촉을 최대한 줄이고자 했다. 그는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내게 되었고, 어느 날부터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자포자기에 빠졌는데, 바깥에서 보기에는 괴팍한 성향만 더해져 더욱더 악귀 같았다.

    _ p.72

     

    “캔맥주에 대한 정보는 매끄러운 옆면에 프린트돼 있잖아요. 하지만 사람은 달라요. 그냥 처음 본 사람이에요. 이름도 모르고요. 안 그래요?”

    _ p.84

     

    사납게 들끓던 마음이 어느 순간 지치고 무기력한 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는 자신에게 일어난 거의 모든 일 앞에서 무책임한 남자였다. 왜냐하면, 다른 것과 연결되었으니까. 그렇게 벗어났으니까. 그는 다른 근무자들에게 자신의 신상에 관해 묻지 않았다. 그들의 어색하고 방어적인 미소며 꺼리는 분위기가 이미 모든 것을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송미진은 조금 달랐다. 괜스레 손을 마주 비비며 안절부절못했으나, 오랜 동료를 외면하지는 않았다.

    _ p.154

     

    순간 임계점을 꿰뚫고 발작하듯 폭발이 일어났다. 그는 붕괴했고, 그의 바깥층을 이루고 있던 사다리, 임자, 임마 씨, 판다, 바위, 진짜 어른 따위가 산산이 날아갔다. 먼지가 걷히자 작고 무거운, 역사의 시원 혹은 중심 입자 같은 것이 시커멓게 그을린 둥근 구슬 형태로 드러났다.

    _ p.158

     

    이십여 분이 지났다. 그는 다시 이십여 분을 기다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바위로 여겨 버텼지만, 실은 낭떠러지였다. 사람들은 낭떠러지에서 멀찍이 떨어져 걸어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_ p.187

     

    채권추심의 악귀도 아니고, 사기꾼의 구원자도 아닌, 한 아이의 영웅.

    _ p.191

     

    그는 피로했다. 배서의 부모를 캄보디아로 날려 버렸고, 배서를 보육원에서 몰래 빼냈으며, 배서의 진짜 엄마를 찾기 위해 여수 말고도 세 도시를 거쳐 다시 여수로 돌아오는 여정이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끝나 버린 것에 대한 피로는 절대 아니었다. 그건 배서가 떠맡기고, 그가 받아들인 영웅 노릇의 대가였다.

    _ p.238

     

    그는 철제문을 열고 기나긴 공백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앞으로 그에게 달라붙을 타인의 말들이 쌓여 언덕을 이루었고,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으며,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드문드문 들려왔다. 그는 한 발짝 내디뎠고, 익숙한 형체 하나를 툭 밀어 버렸다. 그것은 까마득한 아래로 멀어졌다.

    _ p.244

    출판사 서평

    타인의 말들이 그를 대신 설명한다

    소설 『연결, 유예, 악의』는 자신을 설명할 줄 모르는 한 인간, 임다리의 삶을 따라간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돌다리, 사다리, 임꺽정, 임자, 임마 씨, 판다 같은 호칭으로 불려 왔다. 누군가가 붙인 이름들은 시간이 흐르며 그를 규정하는 방식이 된다. 다리는 그 이름들을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못한다. 대신 자신이 정말 그런 사람인지 오래 생각한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마다 말하지 못했고, 그렇게 놓친 말들은 그의 안에 남는다.

    어린 시절의 다리는 공터에서 한 아이와 연결될 뻔하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홀로 남겨진다. 누군가와 이어지고 싶었던 마음은 표현되지 못하고 유예된다. 그러나 유예된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더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다가 훗날 다른 이름과 사건의 얼굴로 돌아온다.

    성인이 되어 채권추심의 세계로 들어간 다리는 채무자들을 압박하는 자리에 서 있으면서도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명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그저 주어진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그러던 어느 순간, 사람들은 그를 ‘악귀’라 부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우연한 호칭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리를 그렇게 인식하기 시작하고, 그 인식은 점차 현실처럼 굳어진다. 그가 나타난 자리에서 누군가의 채무가 사라지고, 삶이 뒤틀리며, 설명하기 어려운 결과들이 이어진다. 다리는 자신을 악귀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타인의 시선 속에서 이미 그렇게 작동한다. ‘악귀’라는 이름은 그의 얼굴과 행동을 해석하는 기준이 되고, 마침내 존재 자체를 대신한다.

    타인의 말들은 어떻게 한 인간의 운명이 되는가

    『연결, 유예, 악의』는 한 인간이 어떻게 ‘악’으로 연결되는지를 추적한다. 악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괴물이 아니라 관계와 사건, 우연과 선택, 구조와 시선이 겹쳐 만들어지는 결과일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쌓여 온 여러 호칭과 관계의 균열, 채권추심이라는 구조적 폭력은 다리를 한 방향으로 밀어간다. 연결은 선택이 아니라 조건이며, 한 번 형성된 연결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16년의 형을 살고 돌아온 다리는 병원 주차장의 야간정산원으로 숨어 살듯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일곱 살 아이 배서가 그의 앞에 나타난다. 불안정한 가정에서 방치와 폭력의 기척을 감지하며 살아가는 아이는 다리를 ‘영웅’으로 바라본다. 다리에게 그것은 처음으로 감사히 받아들이고 싶은 이름이다. 악귀도 판다도 임마 씨도 아닌 영웅. 누군가에게 두려움이 아니라 구원의 가능성으로 불리는 일이다.

    그러나 영웅이라는 이름은 곧 요구가 된다. 배서는 가족이 하나가 되기를 바라고, 다리는 아이의 상처와 거짓말, 자신의 회피와 과거 악귀의 방식 사이에서 흔들린다. 구하고 싶다는 마음은 언제부터 개입이 되는가. 선의는 언제 폭력과 구분되지 않게 되는가.

    모든 이름이 무너진 자리, 한 인간의 공백이 드러난다

    작품은 다리를 악인이나 피해자, 방관자나 구원자 가운데 하나로 단정하지 않는다. 그는 악귀와 영웅 사이에, 연결과 단절 사이에, 선택과 유예 사이에 놓여 있다. 타인이 붙인 이름을 받아들이며 살아온 그는 끝내 자신을 설명하지 못한 채 기나긴 공백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연결, 유예, 악의』다

    이 소설은 세 개의 힘으로 움직인다. 연결은 사람과 사건, 과거와 현재를 묶는다. 유예는 감정과 진실, 선택과 책임을 뒤로 미룬다. 그리고 악의는 그 모든 연결과 유예가 끝내 향하는 어두운 방향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이 작품이 끝까지 묻는 것은 단순히 누가 악한가가 아니다. 악귀로 불린 인간은 끝까지 ‘나는 악귀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영웅으로 불린 인간은 그 이름만으로 누군가를 구할 수 있는가.

    연결은 지속되고 유예는 끝나지 않는다. 『연결, 유예, 악의』는 그 끝에서 인간이 무엇이 되는지를 묻는다. 어쩌면 악의는 특별한 괴물에게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너무 오래 설명되지 못한 한 인간의 이름들 사이에서 조용히 자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이 소설

    우리는 사람을 오래 바라보기보다 빠르게 규정하는 데 익숙하다. 몇 마디의 소문과 한 번의 실수, 하나의 이력만으로 한 인간의 전부를 판단하고, 그 판단을 좀처럼 거두지 않는다. 『연결, 유예, 악의』는 그 성급한 확신이 어떻게 한 사람의 얼굴을 만들고, 마침내 삶의 방향까지 바꾸는지를 보여준다.

    이 소설은 이해보다 규정이 앞서는 우리의 태도를 되돌아보게 한다. 한 인간을 끝까지 단정하지 않는 일, 그가 스스로 말할 때까지 판단을 유예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윤리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너무 빨리 타인을 완성한다.

    저자 소개
    저자 : 김상묵

    2007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작품으로 『한계에서』가 있다. 현재 출판사 기사무채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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