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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ISBN-13 : 9791167376817 |
|---|---|
| 쪽수 | 392쪽 |
| 크기 | 기타 규격 |
| 제품구성 | 단행본 |
- 인문/역사 > 사회학
“왜 우리는 아이 없는 미래를 선택하게 되는가?”
출산과 양육이 행복이 아닌 불안과 위험이 되어버린 시대,
초저출생은 자유로운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저항이다
“가난한 아이는 태어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정상’ 부모를 선별하는 사회에서 출산은 특권이 된다
고령화 문제로 시작된 저출생 담론은 이제 국가의 소멸을 걱정하는 단계를 넘어, ‘언제쯤 한국이 소멸할까?’를 계산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20여 년간 저출생을 극복하겠다며 쏟아부은 예산만 700조 원이 넘는데, 합계출산율은 1.0을 넘지 못했다. 육아휴직과 아이 돌봄서비스 확대(‘여성의 일-육아 양립’), 신혼부부 위주의 주거 지원으로 일관된 정부의 저출생 정책이 꾸준히 실패해온 것이다.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지 않는 걸까? 그리고, 누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걸까?
이화여대 이주희 교수는 한국 사회가 꾸준히 ‘부모 자격’의 문턱을 높여 ‘정상’ 부모를 선별해왔다고 지적한다. 최근 4년 동안 고졸 여성의 합계출산율은 27% 급감했는데, 같은 시기 대졸 여성 감소율의 3배가 넘는 수치다. 여성의 월평균 소득이 높을수록 출산율은 조금 감소했으며, 출산을 포기하는 사유의 34.4%는 ‘경제적 문제’다. 이는 경제적 자원이 많고 안정된 주거를 갖추고 돌봄을 감당할 수 있는 인적·사회적 자원을 가진 이성애 부부만이 출산과 양육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혼부부 위주의 현금 지원 정책은 사실상 이러한 ‘정상’ 부모만이 아이를 기를 수 있는 조건을 강화하며, ‘부모 자격’을 갖추지 못한 이들은 현금 지원이 줄어들 뿐 아니라 지원받는다 해도 출산은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위태롭게 만드는 위험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가가 저출생 정책을 통해 ‘정상’ 부모를 선별하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출산을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위협하는 선택으로 만드는 사회구조를 이주희 교수는 ‘구조적 우생학’이라고 정의한다. 구조적 우생학은 인종 선별, 강제 불임처럼 노골적인 폭력을 동반하지는 않지만, 국가가 규정한 ‘정상’ 부모 외에는 출산을 어렵게 만든다. 즉, 구조적 우생학 사회에서 출산은 ‘선별된’ 소수의 ‘특권’이 된다. 《저출생 우생학 사회》는 구조적 우생학이라는 새로운 렌즈와 ‘구조적 우생학’에 의해 ‘낳을 권리’를 선별당한 이들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합계출산율 0.72라는 숫자 뒤의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추적한 책이다.
그런데 ‘부모 자격’이 높아지는 건 태어나는 아이를 위해서는 좋은 일이 아닐까? 누군가 그런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이주희 교수는 유사한 가정환경, 가치관, 사회계층에서만 아이가 태어나는 사회는 “다른 가능성이 태어나기도 전에 제거되는”, 오늘날의 사회문제들이 심각해질 뿐 해소되지 않는 사회라고 말한다. 다양성을 잃어버린 종이 하나의 치명적 질병으로도 멸종해버리듯, 다양성이 만들어지지 않는 사회 역시 스스로를 유지하고 갱신할 능력을 잃어버린 취약한 사회다. 즉 한국 사회가 ‘소멸’한다면, 그 이유는 낮은 합계출산율이 아니라 구조적 우생학에 있을 것이다.
[목 차]
들어가며
1부 저출생은 어떻게 구조적 우생학이 되었나
1장 자본으로 선별되는 ‘부모’의 자격-소득 격차와 저출생
2장 성차별을 거부할 수 없는 사회
3장 돌봄의 책임 편향-개인화·성별화된 돌봄의 덫
4장 가족을 해체하는 가족주의
중간 글 구조적 우생학과 다음 사회
2부 구조적 우생학을 넘어서는 사회
5장 초경쟁 사회를 벗어나기
6장 기본소득의 점진적 도입
7장 성평등 혁명의 완성
8장 결혼 중심의 가족제도를 넘어서
나가며
부표
참고문헌
주
[본 문]
한국 사회가 암묵적으로 상정하고 있는 ‘정상’ 부모-가족상은 일정한 경제적 안정성, 안정된 고용, 적절한 주거 환경, 그리고 양육을 감당할 수 있는 시간과 자원을 갖춘 이성애 부부다. 이러한 기준은 제도와 시장, 그리고 사회적 기대를 통해 반복적으로 강화되며, 도달하기 어려운 특정한 삶의 형태를 사실상의 표준으로 만든다. 이러한 조건을 갖춘 집단만이 안전하게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도록 작동하는 한국 사회의 구조는 출산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부모가 될 수 있는지를 선별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 책에서는 ‘정상 부모’를 선별하는 이러한 사회구조를 ‘구조적 우생학Structural Eugenics’이라 정의할 것이다. 저출생은 구조적 우생학이 축적된 결과다. 누가 태어날 수 있고, 누가 태어날 수 없는가를 결정하는 사회의 깊은 구조, 즉 0.72라는 숫자 아래 감추어진 구조적 우생학의 작동을 드러내야만 우리는 이 문제의 본질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다.
_6~7쪽,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나라, 감추어진 우생학〉에서
구조적 우생학은 이러한 소득 격차, 성차별, 돌봄의 책임 편향, 비정상적인 가족주의가 각각 독립적인 문제가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작동하는 사회구조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소득 하위 계층의 출생률 하락이 더 가팔랐던 이유는 경쟁에서의 실패를 개인의 책임과 무능력으로 돌렸고, 제도적 가족주의가 그 책임을 다시 가족 내부로 환원시켰기 때문이다. 여성에게는 추가적인 구조적 장벽이 있었다.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 특히 불안정한 저임금 일자리에 종사하는 여성은 출산의 가능성이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낮아진다. 국가가 시장의 ‘자유로운’ 작동이 만들어낸 극단적인 소득과 부의 양극화, 성차별적 노동과 돌봄 관행을 용인하며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제도적 개입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족 형태가 전통 사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음에도 가족에 의존하는 선별적 복지를 유지함으로써 한부모가 아이를 더 가질 가능성을 크게 낮추고, 이성애 규범에 의존한 정책을 유지함으로써 성소수자의 재생산권을 제한했다. 구조적 우생학으로 인해 우리는 지나친 불평등과 차별, 경쟁의 부작용으로 혐오가 만연하여 위험한 사회에서 아이를 낳을 수 없었던, 보다 평등하고 인간적인 사회를 지향하는 사람들로부터 양육될 수 있었던 아이들마저 잃어버린 인구구조를 갖게 되었다.
_10~11쪽,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나라, 감추어진 우생학〉에서
우리 사회의 출산은 형식적으로는 개인의 자유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일정 수준의 소득, 고용 안정성, 주거, 사교육 경쟁에 대한 대응 능력을 갖춘 집단에게만 허용된 선택이 되어가고 있다. 출산을 개인의 생물학적 사건이 아니라 가족 단위의 지위 전략으로 이해한, 앞서 살펴본 지위 경쟁 이론가들의 분석은 이러한 구조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부모가 자녀 수를 줄이는 이유는 단지 양육비가 부담되기 때문이 아니라, 자녀의 성공이 곧 가족의 사회적 지위 유지와 직결된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입시, 취업, 주거를 둘러싼 경쟁이 심화하고 그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부모는 더 많은 자원을 더 적은 수의 자녀에게 집중하는 방향으로 선택을 조정한다. 이 과정에서 출산은 점점 더 ‘위험한 선택’이 되며, 경쟁에서 밀릴 가능성이 큰 집단일수록 그 선택지에서 먼저 탈락하게 된다. 이는 특정 집단의 생물학적 재생산을 직접적으로 통제하지 않더라도, 사회구조를 통해 출산 가능성을 차등적으로 배분하는 구조적 우생학의 작동 방식을 정확히 보여준다.
_30~31쪽, 〈성차별을 거부할 수 없는 사회〉에서
젊은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거부하게 된 배경에는 바로 “아이를 낳는 것이 행복한 일인지 모르겠다”는 그들의 인식이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이 문제는 다시 “자신의 삶이 나아질 것이라 기대하지 못하게 하는 노동 현실”과 이어진다. 윤하영 씨의 친구 중에는 취업한다 해도 근로기준법조차 안 지키는 기업이 너무 많아 두세 달 만에 퇴직을 고민하고 있고, 결국 반년 정도 버티다 나와 다른 직장을 찾는 경우가 흔하다. 윤하영 씨는 “이성 결혼을 해도 쓰기 힘든 육아휴직을 자신이 평범한 직장에 취업해서 쓸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렇다고 “시민단체에 들어간다면 그 월급으로 아이를 키우기는 어려울 것”이 명백하다. 설사 아이를 낳더라도 “낳음당했다”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극단적인 경쟁 사회에서 느끼는 실존적 부담과 박탈감이 응축된, 삶 전체에 비판적 감각을 가진 불행한 청년으로 자라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윤하영 씨에게 저출생은 우리 사회가 받아들여야 하는 어떤 숙명일 뿐이다.
_58~59쪽, 〈성차별을 거부할 수 없는 사회〉에서
이 일련의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한국의 저출생이 단순히 경제적 문제나 가치관 변화 때문이 아니라, 출산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 불균등하게 배분된 사회구조의 결과라는 점이다. 출산은 형식적으로는 모든 이에게 열려 있지만, 실제로는 돌봄을 함께 수행하는 관계,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가구, 그리고 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고 느끼는 소수에게만 ‘허락’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출생은 단순한 인구 감소가 아니라, 누가 부모가 될 수 있는지를 사회가 암묵적으로 선별하는 과정이며, 여기서 제안하는 구조적 우생학은 바로 이 기제를 설명하기 위한 개념이다. 한국 사회의 극단적인 저출생은 성평등 혁명의 미완성이라는 구조가 만들어낸 인구학적 대가다.
_94~95쪽, 〈돌봄의 책임 편향-개인화·성별화된 돌봄의 덫〉에서
이 사례에서 우리는 한국의 가족주의가 부모가 될 수 있는 정교하고 까다로운 선별 기준을 만들어낸 것을 살펴볼 수 있다. 양육의 높은 기준을 가졌을 뿐 아니라, 그것을 제공할 수 있는 충분한 재력을 통해 자녀 세대의 계층 하락 위험을 제거할 수 있는 경우, 부모가 될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다. 이런 사회의 무모한 경쟁에 반대하고, 소수자에 대한 사회의 잔인한 차별을 힘들어하며, 인간적인 삶의 기준을 높이 평가할 경우, 부모가 될 가능성이 크게 낮아진다. 강지훈 씨가 그런 사례이다. 그는 노동 시간이 적은 사회를 꿈꾼다. 기본적으로 주 30시간 이하로 일하면서 서로 돌보는 시간, 가족을 포함한 지역공동체를 돌보는 시간을 늘렸으면 좋겠다. 노동 시간이 적다면 아내와 즐거운 일을 많이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아내의 불안도 자연스럽게 낮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불행하게도 아직 그런 사회가 아니다.
_144쪽, 〈가족을 해체하는 가족주의〉에서
이 연구의 결론부터 말하면, 출생 시점부터 동성 부모에게서 자란 아동은 사회경제적 격차 등을 통제한 이후에도 이성 부모 가정의 아동보다 학업 성취가 높았다. 나중에 동성 부모와 살게 된 아이들은 이성 부모 가정의 아동보다 학업 성취가 낮거나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는데, 저자들은 이를 동성 부모 효과가 아닌 부모 이혼 및 불안정한 가정 효과로 해석한다. 이는 아동이 양성의 부모를 모두 필요로 한다든가, 동성 부모 중 한 명은 생물학적으로 아동과 관련이 없을 수 있고 동성 부모에 대한 사회의 차별이 존재하므로 이들이 불리할 것이라는 기존 이론을 모두 뒤엎는 결과이다. 이 연구는 오히려 반대의 논리를 제시한다. 동성 부모가 아이를 얻기 위해서는 생식 보조 의료의 도움을 받거나 입양 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함은 물론 부모됨을 가로막는 여러 차원의 장벽과 차별을 마주해야 하는데, 이런 과정을 통과한 부모들은 이를 보상하기 위해 이성 부모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더 나은 부모가 되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연구의 저자들도 이런 결과가 동성 부모에게 매우 우호적인 문화적·법적 맥락이 존재하는 네덜란드에 한정된 결과로, 국가별 차이가 클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들이 인용한 2015년 유럽연합에서 실시된 조사에 따르면, 네덜란드는 스웨덴 다음으로 동성 부모에 대해 호의적인 국가였다. 국민의 거의 전부인 96%가 동성애자는 이성애자와 동일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또 86%가 자녀가 동성과 관계를 맺어도 편안하게 받아들인다고 응답했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와 제도적 가족주의가 동시에 작동하는 한국에서라면 동성 결혼이 아동에 미치는 복리에 있어 다른 결과가 나타났을까? 우리는 그 답을 모른다. 동성 부부가 부모가 될 수조차 없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_172~173쪽, 〈가족을 해체하는 가족주의〉에서
구조적 우생학이란 특정한 조건을 갖춘 집단만이 안전하게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도록 시장, 사회적 관행, 제도가 형성되거나, 출산과 양육에 필요한 제도가 마련되지 않고 방치됨으로써 재생산의 권리와 역량이 구조적으로 ‘선별’되는 상태를 의미하는 개념이다. 즉, 국가와 시장, 가족, 그리고 여기서 파생되는 제도와 관행이 결합하여 특정한 조건을 충족한 사람만이 부모가 되기에 적합한 존재로 만드는 구조적 기제를 의미한다. 이는 과거의 생물학적 우생학처럼 출산을 직접 통제하지 않지만, 출산에 필요한 조건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제약하고 그 조건을 갖추는 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함으로써, 그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출산을 무모하거나 무책임한 행위로 인식하게 만들어 출산에서 사실상 배제시킨다.
_184쪽, 〈구조적 우생학과 다음 사회〉에서
따라서 기본소득은 인공지능 등으로 인한 구조적 실업에 대한 보상적 정책이 아니라, 노동시장에서의 성과와 생존권을 분리하려는 전면적인 제도적 대응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기본소득은 사람들이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선언이 아니다. 이 제도의 핵심은 일의 형태와 무관하게 인간의 삶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의 사회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고용을 전제로 설계된 기존의 사회보험과 선별적 복지는 안정적 고용과 충분한 임금이라는 전제가 흔들릴수록 한계를 드러낸다. 반면 기본소득은 노동시장의 변동성과 분절에 의해 개인의 생존이 좌우되는 것을 차단한다. 특히 저출생 문제와 관련하여 기본소득의 의미는 더욱 분명해진다. 출산과 양육은 단기적 소득 이전만으로 결정되는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장기간에 걸친 소득 안정성, 돌봄의 예측 가능성, 그리고 실패했을 때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에 대한 기대를 전제로 한다. 노동소득이 이러한 조건을 더 이상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회에서, 기본소득은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 수단이 아니라 출산을 다시 선택 가능한 행위로 만들기 위한 기본적인 사회적 조건이다.
_256쪽, 〈기본소득의 점진적 도입〉에서
오랜 기간 반페미니즘 정치 기술이 감추어온 진실은 성평등이 남성에게도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권리를 준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돌봄권이다. 돌봄은 여성의 의무가 아니라 시민의 권리여야 한다. 남성이 돌봄을 돕는 사람이 아니라 돌볼 권리를 가진 사람이 되는 순간, 가족은 여성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불편한 공간이 아니라 모두가 평등하고 행복할 수 있는 삶의 기반이 된다. 이 권리는 결혼과 출산이 여성의 인생이 끝나는 선택처럼 보이지 않게 함으로써 남성에게 가족 형성의 안정성을 제공할 수 있다. 성평등은 또한 남성에게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날 권리를 준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남성을 생계부양자로 묶어두었다. 이 모델이 유지되는 한 남성은 더 오래 일해야 했고, 더 강하게 경쟁해야 했으며, 실패하면 더 큰 낙인을 감수해야 했다. 성평등은 이 낡은 계약을 해체한다.
_294~295쪽, 〈성평등 혁명의 완성〉에서
결혼을 전제로 한 가족제도는 안정적인 주거와 소득, 돌봄 자원을 갖춘 일부 집단만을 출산에 적합한 집단으로 간주하게 만들며, 그 결과 출산은 선별된 집단의 선택으로 제한되기 쉽다. 이는 일정한 사회경제적 조건을 갖춘 사람들의 출산만을 사실상 장려한다는 점에서 구조적 우생학의 성격을 띤다. 결혼 여부와 무관하게 생활 안정이 보장되는 사회에서 출산은 특정한 가족 모델에 종속된 의무가 아니라 개인의 삶 속에서 선택 가능한 경험이 된다. 출산은 특정한 가족제도에 편입된 사람들만의 선택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삶의 가능성이어야 하며, 이를 가로막는 제도적 조건을 해체하는 것이 저출생 문제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대응이다.
_352~353쪽, 〈결혼 중심의 가족제도를 넘어서〉에서
결혼을 전제로 한 가족제도는 안정적인 주거와 소득, 돌봄 자원을 갖춘 일부 집단만을 출산에 적합한 집단으로 간주하게 만들며, 그 결과 출산은 선별된 집단의 선택으로 제한되기 쉽다. 이는 일정한 사회경제적 조건을 갖춘 사람들의 출산만을 사실상 장려한다는 점에서 구조적 우생학의 성격을 띤다. 결혼 여부와 무관하게 생활 안정이 보장되는 사회에서 출산은 특정한 가족 모델에 종속된 의무가 아니라 개인의 삶 속에서 선택 가능한 경험이 된다. 출산은 특정한 가족제도에 편입된 사람들만의 선택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삶의 가능성이어야 하며, 이를 가로막는 제도적 조건을 해체하는 것이 저출생 문제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대응이다.
_352~353쪽, 〈결혼 중심의 가족제도를 넘어서〉에서
물론 누군가는 묻는다. 더 잘 적응하고, 더 우수한 사람들만 태어나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고. 그러나 ‘우수함’은 고정된 기준이 아니다. 구조적 우생학은 사실상 특정 시점의 ‘적응성’을 기준으로 재생산을 선택하게 만든다. 실제로 특정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과 자질은 역사적·경제적 조건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왔으며, 현재의 성공 기준 역시 특정 시기의 제도와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에 불과하다. 따라서 지금은 우수한 인간도 다른 환경에서는 오히려 취약한 인간이 될 수 있다. 우수한 사람만 태어난다는 것은 사실상 기존 권력 구조를 재생산한다는 뜻이다. 다양성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가능성이 태어나기도 전에 제거되는 것이다. 이러한 재생산 구조는 단순히 어떤 특성을 가진 개인을 선별하는 것을 넘어 기존 사회적 질서를 재생산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유사한 교육, 자원, 가치관을 공유하는 집단 내부에서만 인구가 재생산될 경우, 사회는 인지적·경험적 다양성을 상실하게 되고, 이는 새로운 문제에 대한 대응 능력을 약화시킨다. 생태계에서 단일한 종 구성이 외부 충격에 취약한 것과 마찬가지다. 이 점에서 다양성은 단순한 도덕적 가치를 넘어선다. 그것은 사회가 스스로를 유지하고 갱신하기 위해 필수적인 조건이다. 구조적 우생학이 만들어내는 것은 더 나은 인간이 아니라, 더 좁은 기준에 맞추어 선별된 인간이다. 그런 인간들로 구성된 사회는 더 공정하지도, 더 자유롭지도 않을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더 안정적이지도 않다. 낳을 권리가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사회는 단지 아이가 적게 태어나는 사회가 아니라, 스스로를 유지하고 갱신할 수 있는 능력을 점차 상실해가는 사회일 수 있다.
_358~359쪽, 〈낳을 권리: 불행을 강요하지 않는 사회를 바라며〉에서

“왜 우리는 아이 없는 미래를 선택하게 되는가?”
출산과 양육이 행복이 아닌 불안과 위험이 되어버린 시대,
초저출생은 자유로운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저항이다
“가난한 아이는 태어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정상’ 부모를 선별하는 사회에서 출산은 특권이 된다
고령화 문제로 시작된 저출생 담론은 이제 국가의 소멸을 걱정하는 단계를 넘어, ‘언제쯤 한국이 소멸할까?’를 계산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20여 년간 저출생을 극복하겠다며 쏟아부은 예산만 700조 원이 넘는데, 합계출산율은 1.0을 넘지 못했다. 육아휴직과 아이 돌봄서비스 확대(‘여성의 일-육아 양립’), 신혼부부 위주의 주거 지원으로 일관된 정부의 저출생 정책이 꾸준히 실패해온 것이다.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지 않는 걸까? 그리고, 누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걸까?
이화여대 이주희 교수는 한국 사회가 꾸준히 ‘부모 자격’의 문턱을 높여 ‘정상’ 부모를 선별해왔다고 지적한다. 최근 4년 동안 고졸 여성의 합계출산율은 27% 급감했는데, 같은 시기 대졸 여성 감소율의 3배가 넘는 수치다. 여성의 월평균 소득이 높을수록 출산율은 조금 감소했으며, 출산을 포기하는 사유의 34.4%는 ‘경제적 문제’다. 이는 경제적 자원이 많고 안정된 주거를 갖추고 돌봄을 감당할 수 있는 인적·사회적 자원을 가진 이성애 부부만이 출산과 양육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혼부부 위주의 현금 지원 정책은 사실상 이러한 ‘정상’ 부모만이 아이를 기를 수 있는 조건을 강화하며, ‘부모 자격’을 갖추지 못한 이들은 현금 지원이 줄어들 뿐 아니라 지원받는다 해도 출산은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위태롭게 만드는 위험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가가 저출생 정책을 통해 ‘정상’ 부모를 선별하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출산을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위협하는 선택으로 만드는 사회구조를 이주희 교수는 ‘구조적 우생학’이라고 정의한다. 구조적 우생학은 인종 선별, 강제 불임처럼 노골적인 폭력을 동반하지는 않지만, 국가가 규정한 ‘정상’ 부모 외에는 출산을 어렵게 만든다. 즉, 구조적 우생학 사회에서 출산은 ‘선별된’ 소수의 ‘특권’이 된다. 《저출생 우생학 사회》는 구조적 우생학이라는 새로운 렌즈와 ‘구조적 우생학’에 의해 ‘낳을 권리’를 선별당한 이들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합계출산율 0.72라는 숫자 뒤의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추적한 책이다.
그런데 ‘부모 자격’이 높아지는 건 태어나는 아이를 위해서는 좋은 일이 아닐까? 누군가 그런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이주희 교수는 유사한 가정환경, 가치관, 사회계층에서만 아이가 태어나는 사회는 “다른 가능성이 태어나기도 전에 제거되는”, 오늘날의 사회문제들이 심각해질 뿐 해소되지 않는 사회라고 말한다. 다양성을 잃어버린 종이 하나의 치명적 질병으로도 멸종해버리듯, 다양성이 만들어지지 않는 사회 역시 스스로를 유지하고 갱신할 능력을 잃어버린 취약한 사회다. 즉 한국 사회가 ‘소멸’한다면, 그 이유는 낮은 합계출산율이 아니라 구조적 우생학에 있을 것이다.
“이렇게 힘든 세상에서 아이가 태어나도 행복할까?”
내일의 행복을 확신할 수 없는 사회에서
우리는 가장 먼저 ‘아이 있는 삶’을 포기한다
저출생은 지금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불행과 밀접한 문제다. 내가 행복한 미래를 그릴 수 없다면, 출산은 나를 위협하는 선택이자 태어날 아이를 위해 피해야만 하는 것이다. 실제로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이가 행복하게 살기 어려운 사회라서”다.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것 또한 무한 경쟁이어서, 내 아이를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게 하는 게 맞나, 이런 세상에서 이 아이가 살아갈 때 행복할까, 이런 생각은 들죠….
_김소윤(35세, 결혼 의사가 없는 여성 청년)
양극화가 집단 이기주의를 만들고, 사람들을 염세적으로 만드는 패배주의, ‘어차피 안 돼. 금수저 물고 태어나는 애들이 서연고 많이 간다는 통계도 있는데, 내가 낳아서 뭘 하겠나’ 같은 의식이 많이 팽배해지고….
_박지아(33세, 아이를 원치 않는 기혼 여성)
합계출산율이 높은 연령대인 20~30대 여성은 대학 입시부터 취업과 승진 과정에서 치열한 경쟁을 겪은 세대이자, 남성보다 높은 성취를 이뤘음에도 성차별로 인해 그만큼의 보상을 얻지 못한 세대다. 특히 기혼-출산 여성에 대한 차별을 목격한 그들에게 출산은 경쟁에서 뒤처지는 일이자, 아이의 행복을 책임지면서 그 삶의 불확실성까지 감당해야 하는 ‘위험한’ 선택이다. 아이 돌봄을 도와줄 가족이 있거나 돌봄 노동자를 고용할 경제적 능력이 없다면 출산은 더더욱 비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한국의 지연된 ‘성평등 혁명’ 역시 출산을 가로막는 주원인이다. 제도와 교육·취업 과정에서의 성평등은 어느 정도 이루어졌으나, 직장이나 가정에서의 성평등은 여전히 처참한 상태다. 성별임금격차와 유리천장지수 모두 OECD 국가 중 최악이며, 자녀가 있는 맞벌이 여성의 가사 노동 시간은 남성의 2배를 훌쩍 넘는다. 이러한 성평등 혁명의 지연을 경험한 유럽 국가들도 초저출생 시기를 지나왔으나, 남성의 돌봄 참여와 성차별을 완화하는 각종 제도적 개입 등을 통해 출생률 반등을 이루었다. 그러나 성평등 혁명의 지연과 함께 경쟁 사회에서 좌절한 청년 남성이 자신의 분노를 청년 여성에게 돌리는 ‘투사적 혐오’가 나타나는 한국에서 출생률 반등은 찾아볼 수 없다.
젊은 남성들도 힘들게 살고 있는데, 여성이나 중국인 같은 약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식으로 사고한다고 나아지는 건 없잖아요. 청년 여성은 청년 남성보다도 약자일 뿐인데. 결국 그 문제가 나아지지는 않고 그걸 이용하는 사람만 계속 이용할 뿐.
_윤하영(22세, 아이/입양을 원하는 레즈비언 여성)
성차별을 해소할 책임이 있는, 그러면서도 “그걸 이용하는” 일부 정치권은 이러한 혐오의 본질을 ‘젠더갈등’이라는 표현으로 책임을 회피한다. 결국 ‘낳을 권리’를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여성은 없으며,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자원으로 출산이 가져올 사회적·개인적 위험을 감당할 수 있는 소수만이 출산을 선택할 수 있다. 이때 국가는 초경쟁 사회와 성차별을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방치함으로써 일부 계층만 부모로 선별하는 구조적 우생학을 지탱한다. 때로는 무엇을 ‘하지 않는 것’이, ‘하는 것’보다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정상가족’이라는 시대착오적 이상향에 집착하다
-아이의 행복보다 편견과 차별을 우선하는 사회
유럽 국가에서 출생률이 반등했던 것은 성평등 혁명이 완성됨과 동시에 다양한 형태의 가족에게 이성애 부부와 유사한 권리를 주었기 때문이다. OECD 국가 중 25개국 동성 결혼을 법제화하였으며, 한국에서 논의되는 ‘생활동반자’와 유사한 시민결합을 인정하는 곳도 많다. 그러나 한국은 건강가족기본법에서 가족을 혼인·혈연·입양으로 형성된 단위로 한정하며, 가족 구성원과 국가에게 가족 해체 예방을 위해 노력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이 법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아이를 낳으려면 먼저 정상가족을 만들고, 그 가족을 유지할 책임도 져라.”
이처럼 이성애 부부만을 ‘정상가족’으로 규정하고 ‘낳을 권리’를 보장하려는 제도는 심각하게 시대착오적이다. OECD 국가들의 평균 혼외출산 비율은 40%를 넘었으며, 이는 한국의 8배 가까운 수치다. 프랑스에서는 시민결합 건수가 법적 혼인 건수와 비슷한 수준까지 높아졌으며, OECD 평균 동성 결혼의 비중도 2%를 넘어선 상태다. 한국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다양한 가족이 이미 세계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으며, 그 사회에서는 이성애 가족과 차별 대우를 받지 않는 ‘정상적인 가족’으로서 대우받는다. 그런데 그 가정에서 태어날 수 있었던 아이들은 한국에서는 태어날 수 없으니, 출생률이 반등할 수 없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아이를 낳고 돌보고 싶은 수많은 시민이 태어날 아이의 행복과는 무관한 이성애라는 욕망을 갖고 결혼이라는 제도에 편입되어야 한다.
학교에서 저희가 동성 커플이라는 사실이, ‘쟤는 아빠가 둘이래’라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우리를 받아들이는 건 차치하더라도 아이라도 받아들여줄지 의문이에요. 아이가 폭력적인 상황에 놓일 모습이 뻔히 보여서….
_도현우(48세, 아이/입양을 원하는 게이 남성)
국가가 이성애 가족을 유일한 ‘정상가족’으로 인정하는 것은 사회적 차별을 공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입양이나 해외에서의 생식보조시술로 자녀를 키우게 되면, 태어난 아이는 높은 확률로 차별과 혐오에 노출된다. ‘정상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미혼모/이혼모도 마찬가지다. 자녀들이 부정적인 시선에 시달리고 양육자가 직장에서의 차별 대우를 겪는 것은 물론, 한부모가족으로서 양육을 지원받으려면 가난을 증명해야 한다. 만약 가난에서 벗어나면 한부모 지원이 끊기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선별’ 때문에 국가가 그토록 원하는 ‘정상가족’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서 결혼하고 싶어도, 이 사람이랑 결혼하는 순간 한부모 지원이 끊어지잖아요. 이것 때문에 결혼을 못 하고 그냥 같이 사는 사람들도 보긴 했거든요. 한부모 지원은 받아야 되니까. 이게 끊어지면 너무 큰 돈이 끊어지니까.
_한다은(35세, 이혼 후 혼자 아이 돌보는 여성)
건강가족본법이 지키고자 하는 ‘정상가족’은 이미 세계적으로 붕괴한 지 오래다. 국가는 ‘정상가족’만이 유일하게 자녀를 낳고 돌볼 수 있는, 또 보호해야 하는 가족이라는 편견과 그로 인한 차별을 지탱하기 위해 태어난 아이들의 행복과 태어날 수 있던 아이들을 희생하고 있다. 이 기괴한 가족주의가 선별하는 ‘정상’ 부모는 이번에도 경제적 여유를 가진, 자녀 돌봄을 돕거나 외주화할 사회적·경제적 자원이 있는 이성애 부부로 한정된다. 국가는 결코 출산을 금지하거나 제약하지 않는다. 오히려 출산을 돕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묵묵히 ‘정상’ 부모를 선별하여 누군가의 ‘낳을 권리’를 침해해 어떤 가족에게서 아이가 태어나야 하는지를 사실상 결정하려 한다. 이것이 우생학이 아니라면, 무엇을 우생학이라 할 수 있을까.
구조적 우생학을 거부하는, 다양한 가능성이 태어나는 사회
-우생학적 ‘선별’을 넘어 보편적 ‘낳을 권리’로
이주희 교수는 한국의 저출생을 구조적 우생학으로 규정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것을 넘어설 실질적 대안을 제시한다. ‘우수한 학생’을 선별하는 것이 아닌 개인의 가능성을 꽃피우는 교육정책, 정규직을 넘어 모든 형태의 노동자를 보호하고 불평등을 완화하는 노동정책, ‘정상’ 부모에 대한 선별적 복지의 허점을 메우는 기본소득, ‘혐오의 정치’하에 지연되고 있는 성평등 혁명의 완성, ‘정상가족’이라는 기준을 해체하는 가족제도. 학계를 넘어 10여 년 동안 국가 정책과 제도에도 깊게 관여해온 경력을 오롯이 녹여내, ‘구조적 우생학을 넘어서는 사회’의 모습을 치밀하게 구축한다. 2부에 담긴 촘촘하고 치열한 정책 설계가 만들어내고자 하는 사회는, 사실 당연하고도 단순한 사회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사회는 분명하다. 더 잘 선별하는 사회가 아니라, 더 다양한 삶이 출현할 수 있는 사회, 낳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재생산의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가 아니라, 태어날 수 있었던 수많은 가능성이 사라지지 않는 사회.
_〈나가며〉에서
이주희 교수는 ‘낳을 권리’란 ‘낳지 않을 권리’ 위에 성립한다고 말한다. 행복한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조건에서 아이와 함께할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낳을 권리’가 성립하는 사회란, 새로운 생명을 초대하고 싶은 사회다. 당신이 어느 쪽의 삶을 선택하고 싶든,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동일한 셈이다. 구조적 우생학을 거부하는 것,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긍정하는 것, 서로의 ‘낳을 권리’를 위해 함께하는 것.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졸업 후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사회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8년부터 2005년까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했고, 그 이후부터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노동시장과 노사관계, 사회계층과 불평등, 젠더 및 돌봄 관련 사회정책과 복지국가의 변화 등의 연구를 폭넓게 수행해왔다. 《저출생 우생학 사회》는 세계 최저 수준의 합계출산율이라는 숫자 뒤에 숨겨진 불평등한 선별의 구조를 추적하며, ‘구조적 우생학’이라는 개념으로 이를 이론화해 한국의 초저출생 현상을 새롭게 해석한 책이다. 현재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비판사회학회 회장, 한국사회정책학회 부회장,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 국가인권위 사회권전문위원회 위원, W20(G20 Outreach Group) 한국 대표, 대통령자문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 전문위원, 서울시 노동자권익보호위원회 위원장과 일자리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바 있다. 주요 저서로는 《노동의 균열》 《차별하는 구조 차별받는 감정》 《고진로 사회권》 《유리천장 깨뜨리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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