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글작가의 말
그림작가의 말
1. 세상의 문을 여는 궁금해하는 마음 - 질문은 생각이 자라는 씨앗
물고기의 미소를 본 적 있니? _ 장자와 혜자 | 내가 보는 게 진짜일까? _ 플라톤과 칸트 | 김치찌개의 진짜 맛은 어디서 오는 걸까? _ 탈레스와 고대 철학자들 | 욕심 없는 삶, 그게 진짜 자유일까? _ 디오게네스 | 피타고라스의 정체, 그는 누구일까? _ 피타고라스 | 식어버린 커피는 완전히 사라진 걸까? _ 헤라클레이토스, 파르메니데스, 제논 | 습관에도 철학이 있을까? _ 니체와 아리스토텔레스
2. 세상을 다르게 보면 마음도 성장한다 - 보는 눈이 바뀌어 새로워진 세상
저 친구는 왜 자기만 생각할까? _ 쇼펜하우어 | 잘 통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_ 마르틴 부버 | 세상은 내가 해석하는 만큼 달라진다? _ 모리스 메를로 퐁티 |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_ 칸트 | 인도에서는 소를 먹으면 안 된다고? _ 프로타고라스 | 철학 미인대회, 1등은 과연 누구? _ 플라톤 | 내가 하는 생각도 내 생각이 아닐 수 있다고? _ 소쉬르와 알튀세르 | 타인이 심어준 욕망을 좇지 말고 순수 욕망을 좇아라 _ 라캉
3. 우린 계속 자라는 중이니까 흔들려도 괜찮아 - 철학은 마음을 단단하게 만드는 연습
질문으로 진실을 낳는 사람 _ 소크라테스 | 죽음 앞에서 삶을 다시 사랑하게 되는 순간 _ 플라톤, 에피쿠로스, 스피노자 | 나도 슈퍼맨이 될 수 있을까? _ 니체 | 생각을 멈출 때, 가장 위험해진다 _ 카를로 치폴라 | 행복은 원래 작고 조용한 걸까? _ 무라카미 하루키 | 엄마, 죄책감은 이제 그만 _ 니체
4. 생각이 쌓이면 인생이 달라진다 - 철학은 매일 조금씩 자라는 근육
잡스는 왜 소크라테스를 만나고 싶어 했을까? _ 스티브 잡스와 소크라테스 | 나를 만들어가는 건 매일의 작은 선택이다 _ 사르트르 |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정말 자유일까? _ 홉스, 로크, 루소, 칸트 | 생각이 나를 바꿀 수 있을까? _ 스피노자 | 마음이 흔들릴 때, 바꿀 수 있는 건 ‘판단’이다 _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5. 철학은 삶으로 완성된다 - 생각한 대로 사는 용기 그것이 철학의 결실 아닐까
엉뚱한 질문이 세상을 바꾼다 _ 탈레스, 파르메니데스, 데카르트 & 해리포터와 어린왕자
|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 _ 소쉬르와 비트겐슈타인 | 죽음을 생각할 때, 삶이 더 선명해진다 _ 에피쿠로스, 하이데거, 톨스토이 | 철학은 정답이 아니라 연습이다 _ 소크라테스 | 방황해도 괜찮아 _ 괴테와 니체 | 나는 죽을 때까지 지적으로 살고 싶다 _ 양원근
나가는 글
[본 문]
p. 26~27 _ 카페에 앉아 글을 쓰다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두꺼운 외투를 입고 몸을 움츠리며 횡단보도 앞에 서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내가 보는 사람들의 형체,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 우뚝 솟아 있는 건물들까지… ‘내가 바라보는 이 사람들과 사물들은 과연 진짜 일까?’라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플라톤이나 칸트처럼 생각한다면 내가 보는 이 모든 것은 진짜의 그림자일 뿐, 아무도 그 진짜는 알 수 없다는 의미 아니었던가?
플라톤은 “보이는 건 그림자일 뿐.”이라고 말했고, 칸트는 “현상은 알 수 있어도, 물자체는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러니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이 세계는 정말 진짜인지, 아니면 단지 그림자와 현상일 뿐인지 알 수 없다. 내가 만나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책장에 꽂힌 수많은 책들, 막 끓여서 나온 식탁 위의 뜨끈한 라면, 창밖의 하늘까지도, 우리는 그것들을 매일 본다. 그 순간 철학은 우리에게 조용히 묻는다.
“당신은 정말 진짜를 보고 있나요?”
세상을 바라볼 때, 눈 앞에만 보이는 어떤 현상이나 형체, 언어, 미디어를 통해 보여지는 것들 너머의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눈앞에 앉아 있는 가까운 이와의 대화 속에서도 나는 그 사람을 다 알 수 없듯이 말이다. 보여지는 것과 보여지는 것 너머의 이면까지도 볼 수 있는 제3의 눈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큰 바람인가?
p. 126~127 _ 니체는 말했다.
“운명을 사랑하라. 이것이 지금부터 나의 사랑이 될 것이다!나는 언젠가는 긍정하는 자가 될 것이다!”
‘아모르 파티(Amor Fati)’란 주어진 운명을 원망하지 않고 그 자체로 사랑하라는 뜻이다. 그에게 인생의 시련은 피해야 할 불행이 아니라, 나를 단련시키는 불씨였다. 니체는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고 했다. 고통은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숨어 있는 힘을 깨우러 오는 것이다. 삶을 사랑한다는 것은 기쁜 일만 사랑한다는 뜻이 아니다. 상처, 실패, 고통, 외로움까지도 모두 내 삶의 일부로 껴안는 것이다.
p. 207~208 _ 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한 문장이 떠올랐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우리는 무언가를 하는 한 매일 방황한다. 이 방황은 실패도, 패배도 아닌 ‘멈추지 않고 계속 도전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길을 잃었다고 느낄 때, 우리는 흔히 내가 부족해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그 순간은 ‘더 나은 방향’을 찾고 있다는 신호이다. 불안하다는 것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고, 두렵다는 것은 여전히 가능성이 있다는 증거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인간을 이렇게 정의했다.
“인간은 극복하는 존재다.”
니체에게 인간은 완성된 존재가 아니다. 늘 흔들리고,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며 어제의 자신을 넘어서려고 애쓰는 존재다. 니체는 말한다. 고통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고통을 끌어안고도 계속 나아가는 삶이 진짜 인간다운 삶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