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0장 이야기의 시작
1장 사이좋은 부부
2장 달러구트
3장 할멈과 푸른 꾸러미
4장 양 세는 꿈
5장 꼬리 잘린 녹틸루카
6장 산타클로스의 장례식
7장 검은 나무
8장 거짓말쟁이 양치기 소년
9장 말론 씨의 유쾌한 집
10장 마지막 유산
작가의 말
[본 문]
낡은 거울 속에 비친 그의 모습은 처참했다. 눈가에는 다크서클이 문신처럼 짙게 자리 잡았고, 입술은 비 한 모금 마시지 못한 마른 버섯처럼 메마르고 갈라져 있었다. 짙었던 머리카락은 언제부턴가 제 색을 잃고 바래더니, 어느덧 뿌연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 열아홉 해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푹 잤다’는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가 실종된 이후인 지난 한 달 동안도 마찬가지였다. 급기야 증세는 더 나빠지고 있었다. 남들은 여덟 시간을 자며 삶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을 때, 달러구트는 거의 하루 종일 어머니의 부재를 홀로 견뎌야 했다.
_ 「2장 달러구트」중에서
“미안하지만 너도 알잖아. 이제 이 근방에서 네가 불면증인 걸 모르는 사람은 없어. 네가 잠도 안 자고 온종일 어머니를 찾아 헤맨 덕에 완전히 증명된 셈이지. 아니라고 잡아떼기라도 하지 그랬니? 네가 스스로 인정한다고 해서 누가 동정해줄 것도 아닌데. 몇몇은 부정 탄다고 가게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래. 완전히 녹틸루카보다 더한 취급이라니까.”
수수는 달러구트의 안색이 어두워지는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쉴 새 없이 주절거렸다.
“계단상회 사람들이 너를 이렇게 대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 보고 지낸 세월이 얼마인데! 누군가는 네가 잠도 못 자니까 하루에 20시간은 거뜬히 일할 수 있을 거라면서 낄낄 웃더라니까?”
“이미 그러고 있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지.”
_ 「2장 달러구트」중에서
“정신 차려.” 수수가 달러구트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걸 눈치 채고 말했다. “지금은 네가 ‘세 번째 제자의 유서 깊은 가게’의 주인이야. 너 말고는 가게를 지켜낼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400고든은 정말 큰돈이지만 상상도 못 할 정도의 액수는 아니야.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면 뭐든지 해야 해.”
_ 「4장 양 세는 꿈」중에서
검은 양은 허술하기 짝이 없는 나무 울타리 밖에 선 달러구트를 발견하고 어슬렁어슬렁 다가와 코앞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양의 입에서 들려오리라고는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인간의 음성으로 말했다. “나는 늑대야.” 달러구트는 순간적으로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소름끼치는 검은 양의 고백과 동시에 또 다른 목소리가 목장 전체에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마을 사람들! 마을 사람들! 여기 늑대가 나타났어요!”
_ 「4장 양 세는 꿈」중에서
달러구트는 ‘양 세는 꿈’을 꾸고 난 이후에 실낱같은 희망이 생기자 모든 것이 그 꿈과 네 시간을 자고난 덕분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는 꿈속에서 봤던 장면들의 여운이 진하게 남아 있었다. 만약 꿈속에서 만난 검은 양의 질문에 ‘그래, 넌 늑대야’ 하고 답했다면 어땠을까?
_ 「5장 꼬리 잘린 녹틸루카」중에서
“너는 나를 믿어주는구나! 외로웠어. 정말 외로웠어.”
양치기 소년이 무표정한 얼굴로 소리로만 흐느끼기 시작했다.
달러구트는 코앞에서 소년의 얼굴을 마주하고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꿈속에선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두 다리는 땅에 말뚝처럼 박혀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잠에서 깨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눈을 질끈 감았다 뜨는 행동을 반복했지만 그때마다 양치기 소년의 얼굴이 더 가까이 다가왔다. 달러구트는 반드시 위험한 일이 일어나고야 말 것이며 마음대로 이 심연을 빠져나갈 수 없을 거라는 무력감에 떨었다.
_ 「5장 꼬리 잘린 녹틸루카」중에서
달러구트는 오늘이 무척 이상한 날이라고 생각했다. 아침 일찍 코리 할멈과 함께 금고에서 쏟아지는 감정을 병에 받아낸 것이 한 달 전의 일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발레곤과 녹틸루카 모자를 만났고, 그랑봉에게 장례식 소식을 전해 듣고 부랴부랴 만년설산에 올라 팔자에도 없는 굴뚝타기를 하고 아가냅 코코까지 만난 데다, 지금은 죽은 산타클로스의 침대에 누워 오늘 처음 보는 사람의 코 고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다. 달러구트는 이 세상 누구도 자기만큼 뒤죽박죽인 하루를 보낼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벽 쪽으로 돌아누웠다.
_ 「6장 산타클로스의 장례식」중에서
니콜라스는 쪽지의 내용을 소리 내어 읽었다. “이렇게 쓰여 있어. ‘이 꿈을 꾸는 사람은 긴 잠에 빠지게 돼요. 아이들이 끝나지 않는 깊은 잠에 빠지면 산타클로스는 마음 편히 선물을 놓고 갈 수 있겠죠.’ 파우시스는 어떤 사람이야? 생각하는 게 평범하지 않네. 안 좋은 쪽으로.”
니콜라스가 언짢은 듯 미간을 찌푸렸다.
“꿈을 꾸는 사람이 긴 잠에 빠지게 된다고?”
달러구트는 니콜라스의 손에서 꿈 레시피를 낚아채듯 빼앗아 훑어 내렸다.
_ 「7장 검은 나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