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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을 여읜 마음-독서 에세이 읽고 쓰며 나이 들기

    • 손대원 저
    • 소감
    • 2026년 06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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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품 규격 정보
    상품상세정보
    ISBN ISBN-13 : 9791199056824
    쪽수200쪽
    크기기타 규격
    제품구성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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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소개

    이과 남자가 역사서, 철학서, 소설을 읽으면 어떨까. 클레오파트라, 카이사르, 안토니우스의 나이를 직접 계산해보고 헛웃음을 짓는다. 『역사의 풍경』 앞에서는 수학 용어 해설을 곁들여가며 독자를 대신해 분투한다. 『안나 카레니나』의 브론스키는 '불온새끼'가 되고, 안나는 '안놔'가 된다. 틀린 번역어 하나를 발견하면 끝까지 파고든다. 이 사람의 독서법은 정밀하고, 솔직하고, 때로 짓궂다.

    읽기 힘들면 힘들다고, 별로면 별로라고 했다. 500쪽짜리 책을 다 읽고 나서 책상에 내동댕이쳤고, 어려운 책 앞에서는 "하드커버인 것도 짜증이 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다음 달에 또 책을 읽고, 또 글을 썼다. 『장자』 앞에서는 저절로 추임새가 나왔고, 불교와 동양 철학 앞에서는 수십 년을 공부해온 사람답게 깊고 조용하게 말한다. 수와 논리를 다루던 사람의 정밀함과 동양학을 오래 공부한 사람의 깊이가 한 문장 안에 공존한다.

    이 책은 독서모임에서 매달 한 권을 읽고 한 편씩 써 내려간 30개월의 기록이다. 책 사이사이로 한 사람의 삶이 흘러나온다. 직장을 중간에 그만두고, 새 일을 도모하다 실패하고, 연금 없이 노년을 맞이한 삶. 낯선 포천 땅에서 도서관 공고를 보고 독서모임에 발을 들인 것이 이 책의 시작이다. 코로나 팬데믹 동안 손자를 무릎에 앉히고 수업을 함께 들으며 "더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낸 시간도 담겨 있다. 보건소에서 '사전 연명 의료 의향서'를 작성했다는 담담한 고백도 있다. 삶의 무게를 숨기지 않으면서도, 글은 무겁지 않다.

    저자는 "3일밖에 지난 것 같지 않은데 30개월이나 지났다"고, 지루하지 않았고 나이가 들 틈이 없었다고 말한다. 젊어지는 비결은 시간이 가는 줄 모르는 것이고, 그러려면 책 읽고 글 쓰면 된다고. 이 책은 독서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한 사람이 책과 함께 살아온 시간을 가장 솔직한 언어로 펼쳐 보인다.

    목차

    [목 차]

    들어가며 _ 책과 함께 걸어온 길

     

    1부 책으로 세계를 읽다

    읽는 사람이 앞서 간다

    - 『리더는 무엇에 집중하는가』

    불확실한 것에 불안해하지 말자

    - 『불안세대』

    주는 것 보다 더 많이 얻는다

    - 『기브앤테이크』

    처진 놈의 반전

    - 『경험의 멸종』

    얼뜨기 기만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무질서란 없다

    - 『무질서와 질서 사이』

    쪼그라진 허위합의 효과

    - 『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

    2부 사람과 역사를 읽다

     

    까다로운 역사 바라보기

    - 『역사의 풍경』

    클레오파트라

    - 『독재의 탄생』

    의병장 홍범도 장군

    - 『민족의 장군 홍범도』

    아름다움을 관조하는 삶

    - 『향연』

    오만한 철인

    - 『소크라테스의 변명』

    장자 엿보기

    - 『장자』

    재미있는 한글

    - 『한글의 탄생』

    내 모습은 내가 만든다

    -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3부 소설로 마음을 읽다

     

    악마의 선택

    - 『안나 카레리나』

    깝죽거려봐야 우리 엄마 손바닥 안이다

    - 『라인강의 품 안에서』

    용감했다 그대 여

    - 『모비 딕』

    돌이켜 봐

    - 『브뤼셀의 두 남자』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 『외계인 인터뷰』

    역지사지해봐요

    -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낯선 우리말을 따라 걷다

    - 『이해조 문학전집』

     

    4부 책으로 존재를 깨우다

     

    나는 왜 시인이 되지 못했을까

    - 『그 시를 읽고 나는 시인이 되었네』

    예수와 만들어진 신화

    - 『넥서스』

    화상 입은 예수님

    - 『미술관에서 우리가 놓친 것들』

    비어 있으나 가득한

    - 『반야심경 마음공부』

    어른이를 위한 사자소학

    - 『어른이 한자학습 인성교육을 위한 사자소학』

    꾸미고 가다듬기

    - 『어른이 한자학습 인성교육을 위한 사자소학』

    지자요수(知者樂水)

    - 『모든 삶은 흐른다』

    생각을 여읜 마음

    - 『고요함의 지혜』

     

    나오며 _ 나이가 들 틈도 없이

    펴낸이의 말 _ 그런 인생이라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본 문]

    비전 격차가 있지만, 국민 대다수가 책을 가까이하고 서점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세상이 왔으면 하고 바라본다. 독서는 무사독학(無師獨學)으로 자신의 가치를 더해준다.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장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 (16쪽)

    어느 날 풍자를 잘하는 분이 '복 있는 사람'과 '덕 있는 사람'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지 재치 있게 이야기해주었는데, 병이 나서 병원에 입원해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꽃이나 음료수 상자를 들고 병문안 오는 사람이 많으면 복 있는 사람이고, 병원비 내주는 사람이 있으면 덕 있는 사람이란다. 복보다 덕이 훨씬 크다. 왜냐고? 돈의 단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29쪽)

    손 글씨는 매력은 없고 정성만 많이 들어가는 쓸모없는 것이 아니다. 내 마음과 몸에 대한 이해를 나타내는 수단이다. 명확한 손 글씨는 의사소통만 돕는 것이 아니다. 뇌의 읽기 회로가 글자 인식에 동원되어 학습을 더 재미있게 하고 문자 언어 처리에 중요한 역할을 하여 인지적 혜택에도 도움을 준다. 내 경험에 따르면 손 글씨는 책 내용을 확실히 덜 잊어버리게 한다. 어차피 못 배운 워드, 그냥 계속 손 글씨로 글을 쓰려 한다. 남들 다 하는 문서 편집, 그것도 못하는 뒤처진 나에게도 보이지 않는 혜택이 있었네? 어쭈! (31~32쪽)

    데이비드를 만났다. 담소를 나누다가 대거리를 한 탓으로 큰코다쳤다. 술 못한다고 부적합, 생뚱하게 싹둑. 노후 준비를 못 했다고 부적합, 냉담하게 싹둑. 반거들충이라고 부적합, 야멸차게 싹둑. 얼뜨기 에고(ego)는 봉변을 당하고 폭삭 주저앉았다. (37쪽)

    이 분야가 낯선 나로서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몇 번을 읽고 또 읽고 나서야 겨우 감을 잡았다. 사실은 이 말도 자신이 없다. 나에게는 쉬운 책이 아니다. 지난 연말 발표자로 걸리지 않은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책 내용을 이해 못 해 기분이 언짢아지니까 하드커버인 것도 짜증이 났다. 마음을 가다듬고 욕은 하지 말자.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라는데 말귀 어두운 나를 탓해야지 남을 탓할 수 없다'고 되뇌었다. (52쪽)

    개디스의 『역사의 풍경』은 쉽게 설명해도 될 것을 어려운 말로 설명한다. 매우 현학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모질음을 쓰다가 5월에 더위를 먹을 뻔했다. 실력 있는 교수처럼 보이려면 전문 학술용어를 많이 쓰고 학생이 알 듯 말 듯하게 가르쳐야 한다는 교육계의 속설이 있다. 개디스는 이 점에 대해서는 만점을 받을 듯하다. (55쪽)

    다만 클레오파트라가 등장하는 구간에서는 읽는 속도가 느려졌다. 유일하게 들어본 인명인데, 어째서 코가 조금만 낮았으면 역사가 바뀌었다고 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주요 등장인물에 대해 백과사전도 찾아보며 정리해보니 재미가 더 커졌다. 클레오파트라를 중심으로 카이사르, 안토니우스의 나이를 계산해보니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 나이에 난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였는데 그들은 참으로 대단했구나! (60쪽)

    『향연』은 흥미 위주의 쉬운 책이 아니었다. 빨간 딱지가 붙은 에로라는 말에 속아 넘어갔다. 읽고 나면 야릇한 성 전문가 반열에 오를 거라는 희망을 품고 군침을 흘리며 읽은 내가 속되고 저질스러운 바보였을 따름이다. 『향연』의 주제는 에로스가 아니다. 책에 등장하는 이야기꾼들의 주제가 사랑의 신 에로스일 뿐이다. (71쪽)

    테스 형에게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테스 형은 자기 과신이 너무 심했던 사람 같다. 남보다 자신이 우월하다는 강한 믿음 탓에 자기도취에 빠져 사형이라는 결과를 불러왔다. 테스 형의 '나보다 더 현명한 이는 없다'는 오만한 허영심이 못내 아쉽다. (81쪽)

    『장자』는 소재가 다양하고 구체적 표현으로 생동감을 주며 묘사와 서술이 문학적이어서 영상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심오한 철학도 사물로 구체화해 객관화하고, 깊은 사유가 필요한 가르침도 이야기의 흐름이 끊어지지 않게 감미로운 사탕절이로 슬며시 공감을 유도한다. (83쪽)

    훈민정음 해례본에 따르면 한글은 음양과 오행, 삼재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오늘날 많은 이가 미신이라고 여기는 것들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셈이다. 창제 당시의 과학적, 논리적 이론 체계에 맞추어 해설하고 친절하게 예제까지 곁들여 설명하고 있는 것이 해례본이다. 현대 음운론의 시각에서도 흠잡을 데가 없다는 것이 훈민정음 해례본 연구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미신 덩어리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과학 덩어리였다. (86쪽)

    건강검진에서 정상 청력 판정을 받았음에도 내 귀에는 그저 똑같이 들릴 뿐이다. 혀가 잇몸에 붙는지, 입술이 살짝 닿는지 떨어지는지, 콧소리가 섞였는지 분간할 수 없다. 이를 검증하려고 ㄹ이 있는 글자를 찾아 거울을 보며 한참을 읽었더니 볼만 아프다. 음운학자들의 주장이 맞겠거니 여기며 그만두었다. (90~91쪽)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는 불쾌지수를 한껏 끌어올리는 데 한몫했다. 동양 한의학의 기초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나는 읽다가 다시 앞으로 갔다가를 여러 번 반복했다. 겨우 이해하는 척은 했지만 사실은 이해 못 한 부분이 훨씬 많았다. 대충 감을 잡아 나만의 생각틀에 구겨 넣어 억지로 견강부회하며 소설 같은 이야기를 하려 한다. 소설(小舌)이라고 생각하고 들어주는 편이 낫겠다. 나는 본시 '뻥맨'으로 삼류 소설가이다. 노가리는 없지만 노가리를 풀어보겠다. (93쪽)

    지금부터는 작가가 무엇을 소재로 하여 이야기를 이끌어갔는지 알아보자. 사랑 타령일까? 1권을 다 읽도록 그 흔한 키스 장면 한 번 못 봤다. 그래서 이 소설은 플라토닉 러브인 줄 알았다. 2권 중간쯤에서 임신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고서야 에로틱 러브인 것을 알았다. 나를 단순 무식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순진무구가 잘못은 아니지 않나? 아하! 소재는 불륜이구나. 하지만 브론스키와 안나가 볼 때는 로맨스가 맞을 테다. 이래서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나왔나 보다. (103쪽)

    육십갑자를 한 바퀴 돌면 누구나 말하기 곤란한 사연 한두 개쯤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얼핏 보면 비교적 건전하게 산 것처럼 보이는 나도 사실 발가벗겨놓고 털어보면 흠 많은 불량품이다. 부끄러워 숨기고 싶은 것이 어디 하나둘뿐이겠는가. 손가락으로 꼽으면 양손이 모자랄지도 모른다. (107쪽)

    몇 해 전 보건소에 가서 '사전 연명 의료 의향서'를 작성했다. 내가 위급할 때 억지로 살리려 하지 말고 그냥 죽게 놔두라는 것이다. 국가와 사회에 도움도 못 되고 가족에게 짐이 되는 것이 싫다. 그러나 장기 이식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혼이 나가도 그 몸의 주인은 혼이다. 여러 몸의 정령으로 남아 있기 싫다. 떠날 때는 미련 없이 떠나고 싶다. (119쪽)

    『그 시를 읽고 나는 시인이 되었네』를 읽고 내가 시를 쓰지 못하는 까닭을 알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시인 마흔한 명의 공통점은 청소년기에 선배 시인들의 시를 읽고 깊이 감명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청소년기에 시를 읽고 감명받은 적이 없다. 감정이 메말라 있든지 인정머리가 없든지, 잔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것 같다. 문학청년의 꿈도 꿔본 적이 없다. 악마 체질이다. 같은 책을 읽어도 남들과 다른 생뚱맞은 이야기를 한다. (142쪽)

    1977년 충청도 촌놈이 서울로 재수하러 왔다. 관훈동에 있는 재수종합반 정일학원에 등록했다. 수업이 끝나면 대부분 집으로 가거나 단과학원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러 갔다. 나는 야간 자율학습을 했다. 구내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나오면 시간이 많이 남았다. 교실은 청소 시간이라 학생은 출입 금지였다. 하릴없이 학원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쉼터로 발견한 곳이 조계사였다. 경내의 돌덩어리에 앉아 있다가 시간이 되면 돌아왔다. (160쪽)

    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마흔 살에 직장을 그만둘 때는 고민한 시간이 이삼 일에 불과했다. 예순 살에 자유를 선언할 때는 두세 시간만 고민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운명의 큰 힘이 작용한 것이지 평소 나의 지론과는 거리가 먼 결정이었다. 삶이란 꼭 자신이 의도한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의도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슬퍼할 것도 짜증 낼 것도 원망할 것도 없다. 하늘이 이어주는 대로, 엮어주는 대로 순응하며 최선을 다하면 된다. 때가 무르익으면 뭐가 되었든 저절로 된다. (182쪽)

    지루하지 않았다. 나이가 들 틈이 없었다. 젊어지는 비결은 시간이 가는 줄 모르는 것이다. 어떻게? 책 읽고 글 쓰면 된다. 회춘하기 위해 독서와 글쓰기를 계속하련다. (193쪽)

    출판사 서평

















    그런 인생이라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1

    손대원 님을 처음 만난 것은 제가 강의했던 ‘함께 읽고 쓰는 책모임’ 시간이었습니다. 희끗한 머리칼은 단정했고, 눈매는 날카로웠습니다. 말 한마디 가볍게 흘리지 않을 듯한 인상이어서 젊은 강사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을지 내심 걱정되었습니다. 수업이 거듭되며 첫인상이 조금씩 허물어졌습니다. 경상도와 충청도 말씨가 섞인 말투가 정겨웠고, 툭툭 던지는 농담이 재밌었습니다.

    손대원 님은 합평 과제로 ‘티미한 놈’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저는 그때 ‘어리석다’라는 뜻의 경상도 방언 ‘티미하다’를 처음 알았습니다. 글을 쓴 이유를 물으니,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티미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나이 들어 돌아봐도 아버지 말이 맞다고 했습니다.

    글에는 아버지 앞에서 티미했던 저자의 지난 삶이 담겨 있었습니다. 글을 읽으니, 호박 심을 구덩이를 파고 똥지게를 나르는 열세 살 소년이 눈앞에 그려졌습니다. 빨리 끝내고 놀 생각으로 구덩이를 대충 파서, 똥물을 치우지 않아서 아버지에게 혼나는 모습이 눈에 선했습니다. 수학 교사를 하겠다고 말했다가 아버지에게 티미한 놈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안타까웠습니다. 하지만 글을 다 읽고 알았습니다. 티미한 놈이라는 말 안에 담긴 깊은 애정을. 아버지는 막 제대한 아들의 손을 잡고 서예학원으로 갔습니다. 판서와 서류 작업을 휘갈겨 쓴 글씨로는 할 수 없음을 알았던 것입니다.

    저자는 “아버지는 아들을 꿰뚫어 보고 계셨다. 티미한 놈을 티미하지 않은 놈으로 고쳐주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신 것이다”라고 썼습니다. 그러나 자신은 직장을 중간에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도모하다 끝맺지 못했고 아버지의 노력에 부응하지 못했다며 글을 끝맺습니다. “삶이 제 뜻대로 되지 않음을 깨닫고, 배고픔을 알고 나서야 낮추고 굽히고 겸손해질 줄 알았다. 실패와 좌절은 쓰지만 가르침을 주었다. 지금은 연금 없이 노인 일자리에서 일하며 기초연금을 받아 생활하는 초라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티미한 놈이 맞다.”


    2

    저의 아버지는 손대원 님보다 네 살 위로, 같은 세대입니다. 아버지는 일흔이 된 이른 봄, 심한 어지러움 때문에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갔고 여러 검사 끝에 만성 골수증식질환 판정을 받았습니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항암제를 먹은 지 두 해가 지났습니다.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책을 내고 싶다는 아버지의 오랜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봐 조급해지는 날들입니다.

    아버지의 책을 내는 마음으로 『생각을 여읜 마음』을 만들었습니다. 줄 노트 93장을 빼곡히 채운 친필 원고를 받았을 때, 각기 다른 서른 편의 글을 한 권의 책으로 묶는 것에 대한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알맞은 크기로 줄과 줄 사이를 메운 손 글씨를 보는데(아들을 서예학원에 보낸 저자의 부친에게 감사드립니다) 저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난 사실 티미하지 않다’라는.

    저는 마흔이 넘어도 아버지가 어렵습니다. 어린 시절 콧노래를 부르다가도 문밖에서 아버지 발소리가 들리면 자는 척을 했습니다. ‘티미한 놈’이라는 말 대신 “네가 커서 뭐가 되겠냐?”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아버지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아버지 또한 할아버지 앞에서 티미한 장남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입니다. 『생각을 여읜 마음』 곳곳에서 아버지의 뒷모습을 만났습니다. 아버지가 소리치며 회초리를 들 때는 무서웠지만, 함께 서점에 가고 영화관에 갈 때는 속이 간지러울 만큼 따뜻했습니다.


    3

    작가는 쓰는 사람입니다. 쓰다 보면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한 권의 책을 쓰면 전과는 다른 결의 사람이 됩니다. 손대원 님은 티미하지만 티미하지 않습니다. 티미했기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티미하지 않았기에 자신의 생각과 마음이 담긴 한 권의 책을 완성했습니다.

    저자는 손자에게 넉넉한 할아버지입니다.

    “손자 녀석을 무릎에 앉히고 수업을 함께 보고 들었다. 동영상 시청이 끝나면 수업 시간에 배운 것을 복습하고 과제도 하고, 과제 한 것을 사진으로 찍어 담임 선생님에게 전송하면 일과가 끝났다. 나머지 시간은 손자와 산책도 하고 엎치락뒤치락 장난도 치면서 뒹굴며 놀았다. 더없이 행복한 시간이었다.”(18쪽)

    클레오파트라, 카이사르, 안토니우스의 나이를 계산하며 저자 자신과 비교하는 모습은 유쾌합니다.

    “클레오파트라를 중심으로 카이사르, 안토니우스의 나이를 계산해보니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 나이에 난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였는데 그들은 참으로 대단했구나!”(60쪽)

    안나와 브론스키가 ‘안놔’와 ‘불온새끼’로 개명하는 과정은 짓궂으면서도 천진합니다. 충청도식 유머에 빠져들었습니다.
    “후반부로 가면 안나의 사랑은 집요한 집착으로 변한다. 브론스키는 외친다. “제발 나를 놓아줘! 놓아달란 말이야! 놔! 놓으라고! 안 놔?” 그래서 안나는 ‘안놔’로 개명했다. 한편 브론스키는 행실도 온당하지 않지만 마음도 불온하다. 그래서 ‘불온+스키’가 되고 혀 짧은 소리로 ‘불온새끼’가 되었다나.”(104쪽)

    재수생 시절 불교와 인연을 맺고 직업까지 바꾸게 된 사연은 예사롭지 않습니다.

    “1977년 충청도 촌놈이 서울로 재수하러 왔다. 관훈동에 있는 재수종합반 정일학원에 등록했다. 수업이 끝나면 대부분 집으로 가거나 단과학원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러 갔다. 나는 야간 자율학습을 했다. 구내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나오면 시간이 많이 남았다. … 하릴없이 학원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쉼터로 발견한 곳이 조계사였다. 경내의 돌덩어리에 앉아 있다가 시간이 되면 돌아왔다.”(160쪽)
    서른 편의 이야기를 읽으며 손자와 뒹굴며 놀고, 클레오파트라의 나이를 계산하며 헛웃음 짓고, 안나의 이름을 ‘안놔’로 바꾸고, 조계사 돌덩어리에 앉아 있던 그를 만났습니다. 티미한 놈이라 꾸짖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저자는 손자와 엎치락뒤치락 장난치는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런 인생이라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 윤혜린((주)도서출판 밤나무 대표, 『엄마의 책장』 저자)

    저자 소개
    저자 : 손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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