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추천사
프롤로그 내 진료실에서는 가끔 피 냄새가 났다
제1장 어리바리 전공의 시절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
그때는 몰라서 힘들었고, 지금은 알아서 더 힘들다
내 얼굴로 환자의 주먹을 때린 날
“정신과 의사인데 공감이 안 돼요”
손가락 하나라도 들어갈 틈이 있다면
제2장 자살을 대하는 법
상처와 함께 사는 법
“우리의 사병을 구해 낼 방법을 찾았습니다!”
죽음의 냄새를 맡았을 때
망상과 환청이 사라진 자리
마지막 사랑
그날 밤 뒤집힌 차 안에서 깨달은 것
자살과 죽음은 동의어일까?
제3장 치료자도 때론 좌절한다
노력했기에 좌절하는 것
심폐 소생술, 그 무거운 이름
매일 인간의 가장 깊은 어둠과 마주하며
“저는 당신을 치료할 자신이 없습니다”
끝장 면담
주치의는 마지막 수비수
제4장 의사 혼자서 치료할 수 없다
좋은 치료 시스템과 건강한 가정
쿠폰 세 장
환경이 치료가 될 때
보이지 않는 치료자들
치료 공동체 미팅이 가져 온 변화
치료 시스템의 마지막 남은 퍼즐
제5장 정신과 병동에도 봄은 온다
비로소 보이는 것들
환자 치료의 1차 방어선
치료 전 공감부터
화를 내지 못해 술만 마시던 환자
자아를 빌려 주다
제6장 진료실 풍경
문제를 정리만 해도 반은 해결된 것
진단명이 아닌 마음을 듣다
타인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내가 문제일까? 내 선택이 문제일까?
조증 삽화 환자의 과대망상 다루기
정신과 의사도 수술을 한다
제7장 잊을 수 없는 선물들
찐 옥수수 세 개
거절할 수 없는 선물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돈
강요해서 받아 낸 감사
마지막 면회
백만 원 촌지의 의미
에필로그 미안했고, 고마웠습니다
[본 문]
또 하나 내 마음을 괴롭힌 것은, 의사로서 보인 내 본능적 방어 기제였다. 환자의 아버님이 차분한 목소리로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주세요”라고 물었을 때 나는 미안하다는 말, 유감스럽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런 말은 조심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러나 내 환자의 불행에 앞서 주치의로서 유책 사항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말하는 것이 민망했다. 그리고 그 민망함이 이후 방 안에서 지옥도의 한 풍경을 만드는 큰 기억이 되었다. 어느 날은 책상 밑에 들어가서 울고 있었다. 어머니가 이 광경을 보더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정신과 한다고 하더니, 이러다가 아들이 미치는 것 아닌가?”
_ p.30
전공의 시절 약물을 고를 때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어느 약물이 잘 들을까?’라는 질문 하나면 충분했다. 약물의 효과만 보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약물의 종류는 훨씬 더 많고 다양해졌는데, 막상 처방하려고 하면 쓸 약이 없다고 느껴진다. 마치 여자들이 옷으로 가득 찬 옷장을 열어 보고 “입을 옷이 없다”며 한숨 쉬는 것과 같다고 할까. 경험이 쌓일수록 각 약물의 미묘한 부작용들이 선명하게 보이고, 그 부작용으로 고생한 경험들이 파도처럼 몰려온다.
_ p.34
조현병 증상은 흔히 양성 증상과 음성 증상으로 나뉜다. 양성 증상은 정상적으로는 없어야 하는데 있는 것들이다. 국정원이나 경찰이 자신을 감시한다는 피해망상, 텔레비전이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관계 망상, 그리고 이런 것들이 소리로 들리는 환청까지. 반면 음성 증상은 정상적으로는 있어야 하는 데 없는 것들을 가리킨다. 친구를 만나고, 취직하고, 이성을 만나고, 가정을 꾸리는 사회적 관계뿐만 아니라 씻고, 면도하고, 옷을 갈아입는 일상적인 것들이 모두 사라진다. 심지어 감정과 표정마저 잃어버린다.
_ p.48
정신과 의사로 막 첫걸음을 떼던 전공의 1년 차, 앞서 말했듯 나는 치료자로서 느낄 수 있는 가장 깊은 절망을 맛보았다. 내 환자가 자살한 것이다. 무능한 의사, 공감력이 떨어지는 의사, 손을 대면 망치는 의사……. 이런 생각들이 나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때 패인 상처는 단지 기억으로만 남지 않았다. 의사 생활 내내 따라다니는 유령이 되었다. 환자들의 사소한 불만이나 “선생님은 내 마음을 몰라줍니다”라는 한마디에도 심각한 내상을 입었다. 절망감 속에서 외과 의사로 도망가려고 했던 적도 있었다.
_ p.55
“영철 씨, 제주도는 다음에 갑시다.”
결정이 내려졌다는 일방적인 태도로 말을 던졌다. 단호한 태도를 보여야 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던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으니까. 100퍼센트 자살한다는 확신을 가진 나의 선택지는 단 하나, 입원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예상했던 것이었다.
“부모님이 병원에 올 수도 없고 입원비 낼 돈도 없어요.
우리는 망했다니까요.”
그의 말에서 절망이 눈물처럼 뚝뚝 떨어졌다.
“그 입원비는 내가 낼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생각하고 한 말이 아니었다. 그냥 나왔다.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는지 그는 눈을 크게 뜨고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나도 그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단호한 의지를 쏘아 보냈다.
_ p.69
그는 우울증에 빠져들었다. 망상이 사라져 텅 빈 마음의 공간에 외로움과 낯선 현실이 홍수처럼 밀려들어 오기 시작했다. 쓸려 나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그는 나의 권유에 두꺼운 갑옷을 벗은 셈이었다. 가벼워졌다기보다 허전했고, 자유롭기보다는 너무 외로웠다. 그냥 부는 바
람에도 상처를 받았고, 수치심이 온몸을 감쌌다. 자신의 왜소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고, 그를 좌절시켰던 현실이 다시 송곳니를 드러냈다. 그때부터 그는 자살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_ p.75
병실에 도착했을 때 환자는 이미 심정지 상태였다. 즉시 CPR을 시작했다. 다행히 병동 안에서 일어난 일이라 빠른 조치가 가능했다. 10여 분 만에 심박동이 돌아왔다. 하지만 저산소성 뇌 손상은 피할 수 없었다.
그 후 3년간 재판이 진행됐다. 병원 측이 상당한 치료비와 간병비를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나는 증인으로 출석했고, 상대 변호사로부터 후안무치한 의사라는 비난도 들어야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과연 CPR을 했어야 했을까?
_ p.105
정신과 의사의 자살률. 다른 의사들보다 1.4배 높다는 그 통계가 숫자가 아니라 지금 내 몸으로 이해된다. 우리는 매일 인간의 가장 깊은 어둠과 마주한다. 그들의 고통이 공기를 타고 전염된다. 환자의 절망이 우리의 절망이 되고, 환자의 무력감이 우리의 무력감이 된다. 하루 종일 어둠을 들여다보면 그 어둠이 우리 안으로도 스며든다. 치료하려다가 감염된다. 구하려다가 함께 익사한다.
_ p.108~109
같은 환자는 단 한 명도 없다. 치료 목표도, 가용한 자원도, 삶의 맥락도 모두 다르다. 게다가 경험이 쌓일수록 고려해야 할 것들이 더 많이 보인다. 끝이 없다. 그래서 나는 ‘완치’라는 말을 제일 듣기 싫어한다. 내 입장에서 그것은 거짓말이다. 치료는 과정이지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증상 호전이 치료의 목표라면 퇴원이 끝이다. 그것은 교과서에 다 나와 있다. 내비게이션을 켜면 된다. 하지만 환자의 삶이 목적이라면 퇴원은 시작점이다. 손가락 끝에서 달까지는 매뉴얼도, 내비게이션도 없다. 모두가 다르기 때문이다. 스스로 지도를 만들어 가야 한다.
_ p.129-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