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시작하며
1. 죽음을 통해 배우는 삶
2. ‘더 나은 삶을 위한 디자인’의 완성을 위하여
1장 죽음 준비에 대한 인식의 전환
1-1 인생은 시한부 : 남아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1-2 나이듦에 대한 이해 : 노화와 노쇠는 다른 것이었다
1-3 당하는 죽음의 피해자 vs 맞이하는 죽음의 설계자
1-4 삶의 마무리를 위한 담담한 계획
1-5 죽음에 대한 일상적 담론의 필요성
1-6 살던 집에서 혼자 살 수 있는, 죽을 수 있는 권리 :고독사 vs 재택사
2장 생의 마지막 날들의 여정 맵
2-1. 노쇠의 과정 : 의학적 팩트를 삶의 서사로 번역하다
2-2. 인생의 아홉 번째 단계 : 상실의 시기를 초월의 시기로
2-3. ‘좋은 죽음’을 위한 조건들 : 죽음은 세대 간의 협업이다
2-4. 사망 장소에 따른 죽음 여정의 현황
2-5. 생의 마무리 단계의 여정별 시나리오
2-6. 삶의 마무리를 위한 시간
3장 존엄한 죽음을 둘러싼 불법과 합법
3-1.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둘러싼 논란
3-2. 타인의 행위가 개입된 죽음 : 타살 vs 안락사
3-3. 존중받고 싶은 죽음 : 자살 vs 조력 존엄사
3-4. 인위적인 죽음과 자연스러운 죽음 사이 :적극적 안락사 vs 소극적 안락사
3-5. 법을 초월한 존엄한 선택 : 의료사 vs 단식 존엄사
3-6. 각자도사를 위한 합법적 결정
4장 더 나은 죽음을 위한 삶 디자인
4-1. 삶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노년 생활 디자인
4-2. 삶은 셀프 : 셀프 돌봄을 위한 디자인
4-3. 죽음도 셀프 : 의지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 디자인
4-4. 재택임종 : 집에서 죽을 권리를 보장하는 정책 디자인
4-5. 존엄한 삶의 마무리를 위한 사회 문화 디자인
4-6. 아름다운 엔딩을 위한 삶의 서사 디자인
마치며
1. 나의 더 나은 죽음을 위한 삶 디자인 설계도
2. 내 죽음의 총괄 디렉터에게 남기는 글
감사의 말
[본 문]
나는 아버지가 생의 마무리 단계에 서서히 진입하며 겪던 변화의 과정을 낱낱이 살필 수 있었다. 어머니 때는 보이지 않던 삶의 커다란 행로를 비로소 볼 수 있었다. 부모님의 생애 말기를 함께함에 있어서 그저 건강히 오래오래 사시도록 최선을 다해 모시면 될 것이라는 생각은 너무도 막연하고 피상적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삶의 한가운데서 맞닥뜨린 이 일은 아버지의 죽음과 나의 삶이 교차하며 엄청난 깨달음을 남긴 ‘인생사건’이었다. 아버지를 배웅하고 나니 이제 나에게 남아 있는 삶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도 보다 선명해졌다. 잘 죽기 위한 준비는 결국 잘 살기 위한 노력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 것이니, 삶의 마무리 단계에 대한 나의 공부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중략)
언젠가 다가올 죽음을 아쉬움 없이, 두려움 없이 맞이하기 위한 방법은 미리 준비하는 것뿐이다. 생의 마무리 단계에 이르러 가족이나 의료진에게 몸을 의탁하게 되었을 때, 삶을 어떻게 마무리하고 싶은지에 대한 본인의 의사가 분명해야 그에 부합하는 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려면 아직 건강할 때 죽음에 대해 진지한 사유의 과정을 거쳐 입장을 정리해두어야 한다. 생의 마무리 단계에 처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필요한 공부를 해놓아야 한다. 혹여라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능력을 상실할 경우를 대비하여 자신의 생각과 결정을 가족에게 미리 알려두어야 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생의 마무리 단계에 발생할 수 있는 ‘연명의료’에 대한 본인의 의사를 분명히 해두기 위한 법적인 장치이다. 하지만 이것은 최소한의 방향성일 뿐 세심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여러 경우의 수가 있다. 인생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하듯, 원하는 방식으로 삶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도 세심한 설계가 필요한 것이다. ‘설계’라는 말이 시사하듯, 이것은 미리 계획하는 것이 중요하다. 누구나 언젠가 맞이하게 될 죽음에 대해 가족, 친구들과 함께 담담하게 이야기 나누는 일은 이제 자연스러운 일상의 문화가 되어야 한다.
(중략)
이 책은 아직 건강할 때 시작하는 죽음 준비 작업의 일환으로, 내 삶의 완성을 위한 설계도를 진지하게 그려보기 위해 시작되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생의 마무리 단계에 닥치게 될 ‘죽음’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살펴보고, 우리 앞에 놓인 문제를 정의하며, 개인적 차원으로나마 그 대처 방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아버지 삶의 마지막 날들을 함께하며 고군분투하던 시간을 기억하면서, 언젠가 겪게 될 내 죽음의 당사자로서 치열함과 냉철함, 그리고 삶에 대한 감사함을 잃지 않고자 한다. 죽음이 내게 언제 어떤 방식으로 다가올지는 모르지만 삶의 주체로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는 점에 마음이 놓인다. 이 멋진 일을 늦지 않게 깨닫게 되어 감사하고, 도전을 결심하게 되어 설레기도 한다. 이 일은 긴 세월을 살면서 내가 노력을 기울여온 그 어떤 일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일이며, 내 가슴을 가장 두근거리게 하는 디자인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_ ‘시작하며’ 중에서
죽음에 대한 문제를 배제한 ‘인간의 더 나은 삶을 위한 디자인’은 미완의 가정에 불과할 뿐이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강을 건너는 바로 그 순간까지도 분명 ‘삶’의 시간인데, 나는 이러한 점을 한 번도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혹시 다들 나와 같다면 삶에 대한 디자이너들의 이해는 반쯤 가다 만 셈이다. 생의 마무리 단계에 이르러 맞닥뜨릴 ‘더 나은 죽음’에 대한 고민과 대처 방안까지 포함시켜야 진정한 의미의 ‘더 나은 삶’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_ p.18~19
결론적으로 깨닫게 되는 것은, 혼자여도 ‘더 잘 죽기’ 위해서는 결국 오늘 하루를 ‘더 잘 살아야’ 한다는 명쾌한 사실이다.
_ p.80
아버지는 완전히 겁에 질려 계셨다. 운명의 포승줄에 묶여 질질 끌려가며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는 표정, 내 아버지의 얼굴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런 표정이었다.
그런 모습으로 아버지를 보내드릴 수는 없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정신은 차리고 자기다운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실 수 있도록 해드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아버지를 낫게 할 방법은 없지만, 운명이 허락한 시간까지는 집에서 가족과 함께 평안한 시간을 보낼 방법을 반드시 찾아내리라 마음먹었다.
_ p.101
아버지 얼굴에 남겨진 표정에는 그간 내가 알아오던 아버지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무엇이 느껴졌다. 무언가에 깊이 몰두하여 초월에 이른 사람의 표정이라고나 할까. 거기엔 단순히 ‘죽었다’고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었다.
낡은 껍질을 벗어던지고 아버지는 무엇이 되셨을까. 어디로 가셨을까. 너무도 궁금했다. 육체를 떠나면서 남긴 사람의 마지막 표정이 저리 아름다울 수 있을까 싶은 말할 수 없는 황홀감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슬픔과 경이로움을 오가는 양가적 감정 사이에서 언젠가 겪게 될 나 자신의 죽음에 대해 깊은 호기심이 피어나기까지 했으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_ p.103~104
삶의 끝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건 분명하나 그 시점이 언제일지는 알 수 없다. 그렇기에 더더욱 아직 젊고 건강할 때 죽음에 대한 사유를 시작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다. 죽음의 위협 때문이 아니라 인생 전반을 설계하는 차원에서,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시각으로 ‘내 삶’을 연구하였듯 ‘내 죽음’ 또한 연구할 수 있어야 공평한 일이다. 죽음이 저만치 다가오는 게 느껴지는 순간에는 이미 패배감을 안고 시작하는 일이 되므로 공평하지도, 여유롭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죽음의 주체로서 당당히 죽음을 맞이할 기회를 갖기에 너무 늦은 때란 없기도 하다.
_ p.139
병원에서는 ‘비위관(콧줄)’ 삽입을 통한 영양 공급을 권하였다. 그다음 수순을 물으니, 이곳에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요양병원으로 전원을 하여 그곳에서 비위 관 관리를 받으며 지내시면 된다고 했다. 결국 낯선 요양병원에서 콧줄에 의존해 연명하다가, 위급해지면 종합병원 응급실로 실려가는 이른바 ‘연명 셔틀’을 반복하며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었다.
_ p.155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본인의 의사결정능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죽음에 대한 계획과 결정을 합법화함에 있어서 당사자의 의사결정능력이 취약한 상태라고 판단되면 그 결정을 위한 권한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직 건강할 때,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을 때 필요한 과정과 절차를 이행하는 것이 몹시도 중요하다.
_ p.207
‘셀프 돌봄’은 자기 삶을 스스로 책임지려는 의지이며 태도이다. 이는 인간의 본능으로부터 출발하며, 성인이 될수록 더더욱 강화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성인이 된 후 노화의 과정을 겪으며 노인이 되어가는 사이에도 그 본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신체적 역량은 비록 취약해지더라도 존엄한 인간으로 늙어가기 위한 의지와 살아온 세월만큼 두터워진 삶의 지혜가 이 부분을 더욱 강화해줄 것이라 믿는다. 늙음에 적응하기 위한 다양한 방 법을 찾고 존엄을 유지하면서도 자신만의 삶을 지속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라 믿기 때문이다.
_ p.231
한평생의 삶을 보내고 유효기간이 다한 육체가 맞이하게 될 죽음은 ‘극복해야 할 질병’이 아니다. 싸워서 이겨야 할 적도 아니고 인간이 추구하는 절대 선을 방해하는 악도 아니다. 죽음은 삶의 마지막 지점에 놓인 삶의 일부이며 삶의 서사를 완성하기 위한 마침표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완성해갈 내 삶의 서사 디자인의 핵심은 어떻게 그 마침표를 찍을지에 집중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_ p.292~293
내 몸 안에 들어 있던 너와, 네 몸 안에 들어 있던 또 다른 생명. 그렇게 보면 너는 네 딸의 껍질이고 나는 너의 껍질인 셈이니, 엄마는 ‘대왕 껍질’이 되어 이뤄낸 그 풍경이 참으로 대견하고 벅찼다. 내 속에서 나온 소중한 알맹이가 더더욱 소중한 알맹이를 내어 우리가 삼대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감격스러웠어.
_ p.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