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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화는 아직 피지 않았다(글나무 시선 31)

    • 권연홍 저
    • 글나무
    • 2026년 05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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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품 규격 정보
    상품상세정보
    ISBN ISBN-13 : 9791193913369
    쪽수1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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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품구성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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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소개

    목 진 숙
    〈시인, 문학박사, 전 창신대 문예창작과 초빙교수〉

    창원에서 활약 중인 권연홍 시인이 첫 시집 『겨울 산에 핀 꽃』에 이어 두 번째 시집 『국화는 아직 피지 않았다』를 상재한다. 월간 《조선문학》에 시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 권 시인은 그동안 틈틈이 써온 시편들을 모아 이번 작품집으로 엮어냈다.
    시 내용을 들여다보면 전반적으로 흐르는 서정성이 먼저 감지된다. 흙냄새가 시편 저변에 잔잔하게 풍기면서 자연의 숨결이 곳곳에서 느껴지는 것은 시인 자신의 삶의 바탕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지리산 자락이 포근하게 감싼 전형적인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 유년을 보낸 그에게 유독 풀 향기가 온몸에서 풍기는 것은 우연이 아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돌아앉은 산맥
    바람은 방향을 잃었다

    비탈마다 숨을 고르던
    사람들의 기억을 더듬는 길
    떠남과 돌아옴이 겹겹이 쌓여 있다

    옛 휴게소 터
    커피 한 모금 머금고
    속초를 바라본다

    바람은 바퀴 없는 시간을 굴려
    내 발길을 재촉하고

    도로의 화살표는
    이정표가 아니라
    내 마음을 가리킨다

    멈춤과 떠남 사이
    생성과 소멸의 틈에서
    낯선 여행자가 되어
    허공에 버려진 그림자 하나 걸어간다
    -「미시령 옛길」 전문

    이 시는 시인의 대표작 한가운데 백미라고 해도 좋을 만큼 시적 형상화가 뛰어난 수작이다. 한때 수많은 사람의 발자국과 차량의 바퀴가 지나간 흔적 위에 홀로 서서 흥망성쇠의 애잔한 감상에 젖어 들면 불현듯 ‘나는 누구인가’라는 존재론적 물음을 마주한다. 그러면서 인간이란 본질적으로 “허공에 버려진 그림자”임을 절감하게 한다.
    근작들에서는 부조리한 사회 현실과 정치권의 당리당략으로 얼룩진 풍경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시선이 두드러진다. 그런 작품의 하나가 「국화는 아직 피지 않았다」이다. 시인은 가슴에 ‘국회’라 새겨진 금배지를 단 이들이 민초의 고단한 삶을 외면한 채 싸움만 일삼는 현실을 꾸짖으며 “국화는 아직 피지 않았다”고 일갈한다. “겨울을 견디지 않았기에 / 눈물의 온도를 모른다”고 질타하며 시대의 양심을 일깨운다.
    또한 민초들과 노동자의 애환을 읊은 시, 「인력시장」, 「마른 통장의 비명」, 「누가 꿈을 용접하는가-창원공단」 등에서 보이듯, 시인은 서민의 삶을 직시하며 그 속의 자화상을 담담히 그려낸다.
    그는 지금 우리 민족이 겪고 있는 참담한 현실에도 큰 관심을 쏟고 있다. 「통일전망대」, 「화진포와 휴전선」 등의 시에서 나타나듯이 분단으로 인한 한민족의 고통을 밀도 있게 표현한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다시 하나가 될 것이란 소망 한 자락을 시의 저변에 깔아 두고 있음을 보게 된다.
    권 시인이 걸어온 길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부모님의 사랑 속에 자란 유년기와 형제자매 사이의 우애, 그리고 단란한 가정에서의 현재 삶은 그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발끝에 걸린 과거와 / 손끝으로 잡히는 미래 사이 / 어느 쪽에도 닿지 않는 나이로 걷는다”(「나이테 없는 나이」 중에서)라는 구절처럼, 그는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천생 시인

    이름만 들으면
    연한 홍시 같은 살빛 고운 여인으로 알겠다
    가까이 다가서면
    지리산 푸른 기운이 옷자락에 나부낀다
    삶의 고단한 땀방울도 이슬같이 빛나고
    거친 숨결에도 향기로운 흙냄새가 난다
    달빛 젖은 산야에 피어난 풀꽃처럼
    고요히 흔들리며 백지 위에 필을 들고
    한 구절 또 한 구절 시로(詩路)의 길을 닦는
    지금의 시간 속에 사는 천생(天生) 시인
    권연홍
    - 자작시

    이번 시집에 실린 작품들은 어느 한 주제로 묶이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색채를 지닌다. 그러나 시편마다 관통하는 근원은 ‘순수 서정의 향기’라 할 것이다. 향후 그의 시적 여정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더라도, 그 바탕에는 인간과 자연, 삶에 대한 따뜻한 서정의 결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

    목차

    [목 차]

    서(序) / 목진숙 - 5
    시인의 말 - 10

    1부

    눈꽃 나들이 - 19
    왕후시장 오후 세 시 - 20
    전답 가는 길 - 22
    이정표 없는 길 - 24
    청산도, 여백의 시간 - 26
    화산 짐꾼 - 28
    행성 같은 억새 - 30
    합천 왕후시장 - 32
    초록 신호등 - 34
    우편함 - 36
    신두리 사구의 삐삐꽃 - 38
    불꽃이 칠판이던 밤 - 40
    동정호의 꿈 - 42
    닭섬, 그 푸른 사유 - 44
    논골담 아버지들 - 46
    남은 한 사람 - 48
    낙엽에 묻다 - 50
    겹겹의 시간 - 52
    금성산 기원제 - 54

     

    2부

    집 - 59
    자유와 독수리 - 60
    국화는 아직 피지 않았다 - 62
    마른 통장의 비명 - 64
    거짓의 옷깃 - 66
    화진포와 휴전선 - 68
    한 국가 두 부족 - 70
    통일 전망대 - 72
    침묵의 다짐 - 74
    서민과 정치 - 76
    무지개 화합 - 78
    녹슨 침묵 - 80
    마니산 - 82
    독도 - 83
    자유와 고독 - 84
    추암 촛대바위 - 86

     

    3부

    제비꽃 폭죽 - 89
    예당호 출렁다리 - 90
    미시령 옛길 - 92
    저무는 여정 - 94
    은빛 잠수 - 95
    오유지족 - 96
    엉또폭포 - 98
    속초 포장마차 - 100
    선상 위의 고요한 침투 - 102
    빛은 안에서 열린다 - 103
    밭둑이 합천호로 간 날 - 104
    바다 메시지 - 106
    문보트 - 108
    만선횟집 - 110
    강 낚시 - 111
    황계폭포 - 112
    탄금의 혼 - 113
    짠내와 단내 사이 - 114
    헐렁한 소매 - 116

     

    4부

    예순의 끝자락 - 121
    인력시장 - 122
    억새 춤 - 124
    동해바다 - 125
    운문사의 침묵 - 126
    할머니 전답 사랑 - 128
    놀이터 풍경 - 129
    하멜등대의 밤 - 130
    카페 플로라 - 132
    인력 공사 사람들 - 134
    그 님이 지새운 밤 - 136
    등산 간 친구를 기다리며 - 138
    그날과 그날 사이 - 139
    예고 없는 이별 - 140
    누가 꿈을 용접하는가 - 142
    화산석에 선 향나무 - 144

     

    5부

    가을 - 149
    늙어가는 법 - 150
    산 너머 별에게 - 152
    붉은 물결에 스민 이름 - 153
    묵비권 - 154
    몽돌의 노래 - 156
    달콤한 꿈 조각들 - 158
    늦은 향기 - 160
    별을 품은 여자 - 161
    별밤 여행 - 162
    나이테 없는 나이 - 164
    서리 꽃 - 166
    그리운 별 하나 - 168
    추억의 그림자 - 169
    나에게 - 170
    황매산 - 172
    똥 - 173

    [본 문]

    [시]

    왕후시장 오후 세 시


    바지락이 입을 다물면
    오늘 장사도 끝난다

    늙은 호박 마지막 해를 삼키고
    할머니의 저울은 아직 뜨겁다

    “에이, 싸게 줄게요.”
    그 소리가 하루의 기도다

    말하지 않는 상인들
    값보다 오래된 침묵
    신이 팔리고
    신이 시장 바닥을 걷는다

    뒤집힌 햇빛 속에서
    그 안엔 바다가 아니라
    사라진 궁전이 흔들리고 있다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들
    점점 가벼워지는 삶의 무게

    그러다 문이 닫힌다
    왕후시장은 스스로를 팔고 있는 우주다
    국화는 아직 피지 않았다


    일제의 그림자를 닮은 옛 문양을 지우고
    한글 두 글자를 새겨 넣을 때도
    꽃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가슴에 국화를 달고
    가을의 품격을 흉내 내며
    황금빛 꽃잎 사이로
    묵음(音)의 향기가 새어 나왔다

    혀끝엔 설(舌)화꽃이 피었다
    달콤한 약속을 겨울 내내 틔우며
    얼어붙은 입김 사이로 국민의 이름을 착취했다

    무궁화 형상 안에 박힌 글자, 국회
    나라꽃을 빌려 쓴 입으로
    국민을 향해 이 또한 민의라며 번역해 내지만

    그 금빛은 사실
    로비와 공천과 이해관계의 조명 아래
    더 잘 비치도록 닦인 거울일 뿐
    거리의 피켓이 비치지는 않는다

    그들은 말한다
    이 꽃은 국민 뜻으로 피웠다고
    여섯 그램 남짓한 금빛을 만작거리지만
    그 안에 뿌리도 계절도 장마도 없다

    가난한 손, 분노한 눈동자
    투표용지에 남은 손때의 냄새로
    진짜 국화는
    늘 담장 밖에서만 피고 져서
    온실 속에 선 법안보다 먼저
    스스로를 갈기갈기 찢는다

    그리하여 국화는 피지 않는다
    양복 깃 위 붙은 꽃 모양은
    단 한 번도 겨울을 견디지 않았기에
    눈물의 온도를 모른다

    추천사

    합천호 전경에 반해 대병면에서 텃밭을 가꾸며 전원 생활인으로 살고 있는 권연홍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국화는 아직 피지 않았다』를 읽는 일은 즐겁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잠재우진 진실 앞에, 그는 시에다 삶을 밀착시키는 고독한 자기방어로 존재의 의미를 깊이 있게 들여 보기를 좋아한다.
    저녁놀이 번지는 황매산이나 물안개 피어오르는 합천호를 바라보면서 “야생마처럼 승부를 걸며 세상을 쫓았지만” 그의 시편들은 “문패처럼 성공을 내걸고” 사는 삶이 아닌 “하늘이 파랗다는 단순한 깨달음”으로 내면의 풍경을 담담히 밝히는 빛으로 표출된다.
    황매산 철쭉이 피기 시작하면 “햇살이 머문 자리가 안내판”이 된다며 짧은 꽃 한 철이 안타깝고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꽃 앞에 문우들을 불러 모은다.
    인생의 가장 화사한 시절을 놓치고 말았다는 회한보다 “하늘 담은 합천호 위에” 지금이 이미 좋은 시절이라며 기쁜 일 굿은일 마다않고 정성을 다해서 주변을 밝히는 성품이다.

    - 옥영숙 (시조 시인, 오늘의 시조시인회의 부의장)

    출판사 서평

    작가의 말

    동쪽 끝 통일전망대에 서면,

    파도는 여전히 남과 북을 오가고 있었다.

    쓸쓸한 바람 속에 마주 선

    이승만 별장과 김일성의 별장은

    허물어진 권력의 잔해로 남아 있었다.

     

    추암 촛대바위 앞에서 바람에게 물었다.

    한 시대의 허망은 어디로 가는 것이냐고,

     

    예당호 출렁다리를 건널 때

    정치는 또 한 차례의 굴절을 일으켰고,

    청산도 느림의 길에서는

    세상의 모든 소용돌이도 결국 풀려 사라지리라 믿었다.

     

    그러나 그 믿음의 이면에서

    마음 한켠은 언제나 격랑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이 시집은 그 길 위에서 피어난 바람의 조각이다.

    바람 부는 전망대에서, 흔들리는 다리 위에서

    나는 인간의 권력보다 오래 남을

    느림과 기다림의 진실을 보고자 했다.

     

    이 시집은 또한 어둠을 비트는 서정의 노래이며,

    침묵 끝에 남은 미세한 떨림의 기록이다.

    달빛에 젖은 바다의 얼굴에서

    이 땅이 품은 씁쓸한 아름다움을 보았다.

    저자 소개
    저자 : 권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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