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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ISBN-13 : 9791198647863 |
|---|---|
| 쪽수 | 332쪽 |
| 크기 | 기타 규격 |
| 제품구성 | 단행본 |
- 경제/자기계발 > 비즈니스
이 책은 전직 매일경제 기자가 직접 취재한 기록으로, 시코쿠 순례길을 걸은 직장인들의 변화와 고백을 담아냈다. 앞만 보고 달리느라 놓쳤던 가족, 책임감이라는 이름 아래 지워버린 자신, 성과와 통제 속에서 잊고 지냈던 삶의 본질을 길 위에서 다시 마주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저자는 진짜 경쟁력은 사람을 소모하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구성원의 성장이 곧 조직의 성장이라는 믿음, 《걷는 회사》는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를 돌아보라고 건네는 다정하지만 묵직한 질문이다.
[목 차]
책을 펴내며_ 직원들을 순례길로 내몬 회사 p.004
1부. 입문 무엇을 두고 떠나왔습니까 p.015
2부. 직면 왜 여기에 서 있습니까 p.021
3부. 직시 나는 누구입니까 p.069
4부. 전환 어떤 것이 보입니까 p.127
5부. 공명 누구와 연결되어 있습니까 p.145
6부. 통찰 내게 남은 한 문장은 무엇입니까 p.191
7부. 회귀 어디로 돌아갑니까 p.266
8부. 훈습 어떻게 스며들었습니까 p.294
책을 마치며_ 직원들과 함께 걷는 회사 p.316
부록_ 일상 속 시코쿠 순례여행
[본 문]
저는 기록자로서 시코쿠의 비바람을 맞으며 묵언의 길을 걸어낸 수많은 순례자를 만났습니다. 낡은 하쿠이白衣를 입고 지팡이에 의지한 채 하루 20km씩 닷새를 걸어낸 평범한 직장인들. 그들은 그 5일간의 순례를 통해 무엇을 생각하고 자각했을까요?
제가 인터뷰를 통해 마주한 그들의 이야기는 화려한 성공담이 아니었습니다. 대단한 조직 혁신 사례와는 더더욱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저 터져버린 발바닥 물집에 대한 이야기였고, 앞만 보고 달리느라 외면했던 가족과 자신의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또 내 방식대로 억누르며 통제하려다 갈등만 키운 사춘기 자녀를 향한 뼈아픈 참회의 고백이기도 했습니다. 수십 년간 단단하게 굳어진 자존심과 완벽주의라는 껍데기를 스스로 깨부수고, 한 인간으로서 겪어낸 처절한 자아 해체의 순간들이 이 책의 페이지마다 알알이 맺혀 있습니다.
_ 5쪽, ‘책을 펴내며’ 중에서
편한 신발에 단출한 흰옷, 손에는 낡은 지팡이. 같은 차림으로 같은 곳을 향하나 왜인지 한마디 말이 없다. 출근할 시간이지만 이 사람들의 등에는 가방도 없고 손에는 휴대폰마저 들려 있지 않다. 간혹 허리를 굽혀 신발 끈을 다시 묶는 사람이 있고, 걷기를 잠시 멈춘 채 먼 데 한 곳을 가늠해보는 이가 있을 뿐이다.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한국의 한 회사 직원이라는 것이다. 일본이라는 다른 나라, 그중에서도 ‘시코쿠 四し国こく地ち方ほう, Shikoku Region’에 당도한 이들은 닷새 동안 내리 걷는다. 같은 곳에서 떠나 모두 같은 곳에 도착하고, 약속한 듯이 줄지어 걷는 그 모습은 마치 회사 하나가 걷는 것만 같다. 말 그대로 ‘걷는 회사’다. 출장도, 워크숍도, 종교적인 의식도 아니다. 성과를 논의할 일정도, 발표를 준비할 계획도 없다. 회포를 풀며 왁자하게 놀고 마시는 여흥도 없다. 그저 하루에 20km 가까이 말없이 걷는 일정만이 존재한다. ‘생각하지 말고 걷는 하루’. 출발하기 전 직원들이 받아 든 일정의 전부였다.
_ 17쪽, ‘1부 입문, 여정의 시작’ 중에서
“회사에서는 늘 판단을 내려야 하죠. ‘맞다’, ‘아니다’, ‘가자’, ‘멈추자’. 그런 결정들이요. 그런데 정작 제 삶의 방향을 정하는 일은 미뤄두곤 했어요.”
책임을 다하며 살아온 이들에게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본질적인 물음보다 ‘나는 무엇을 책임지고 있는가’라는 역할의 정의가 늘 앞서기 마련이다. 노트북을 챙겨 순례를 떠나고자 했던 것은 단순히 업무에 대한 집착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곧 그가 스스로를 정의하는 방식이자, ‘내가 어딘가에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라는 존재를 확인받고 싶은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일의 도구인 노트북을 내려놓으라는 주문이 그토록 낯설고 무겁게 다가왔던 이유는, 일과 분리된 자신을 처음부터 다시 정의해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 때문이었다. 시코쿠 순례길은 쉼 없이 달려온 구성원들을 잠시 멈춰 세우고 묻고 있었다. 정말로 당신이 없으면 이 세상이 돌아가지 않느냐고, 혹시 그 책임감이라는 이름 아래 스스로를 너무 소진하고 있지는 않았느냐고 말이다.
_ 37~38쪽, ‘2부 직면, 3장 책임이라는 노트북’ 중에서
“동료들과 함께 이야기하며 걸을 것이라 생각했었죠. 그런데 휴대폰도 없이, 대화도 없이 그저 걷기만 한다니 참 낯설더군요. 그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을까 싶었어요. 그런데 막상 걷다 보니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말을 못 하니 생각이 대신 저를 채웠거든요.”
생각을 내려놓으라는 당부로 인해 오히려 생각에 빠졌다는 이도 있었다. ‘내려놓으라’는 말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마을을 지나 들판이 열리자 비로소 숨이 트였다. 주말이면 환기할 겸 부모님 댁에 내려가 농사를 짓던 그인 만큼, 자연 속에 들어서고 나서야 의식을 조금 가다듬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생각을 내려놓는 대신 이 시간을 즐기자’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언젠간 내려놓겠지’ 되뇌이며.
_ 84~85쪽, ‘3부 직시. 3장 말없이 걷기’ 중에서
시코쿠를 걷던 중, 그녀는 문득 자신조차 외면했던 깊은 갈망을 처음으로 입 밖에 냈다. 동료들은 아무런 조언이나 비판 없이 그저 묵묵히 그녀의 고백을 들어주었다. 그러다 시선이 머문 곳에 돌탑이 있었고, 누군가 약속이라도 한 듯 함께 기도를 올리자고 말한 것이었다.
종교와 상관없이 함께 눈을 감았다. 짧은 기도가 끝난 뒤에도 동료들의 표정은 여전히 진지했다. 그 순간 모두가 진심을 다해 한 사람의 소망을 함께 기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덕분일까, 시코쿠 순례여행을 다녀온 뒤 그녀에게는 기적처럼 생명이 찾아왔다. 소식을 들은 동료들은 한마음으로 축하하며 뱃속의 아이에게 ‘시코쿠 베이비’라는 사랑스러운 별명을 붙여 주었다. 시코쿠 순례여행에 ‘미라클 시코쿠’라는 애칭이 붙은 것도 이즈음이다.
_ 105쪽, ‘3부 직시: 7장 시코쿠 베이비, 미라클 시코쿠’ 중에서
“나는 누구인가. 관계로 정의되지 않는 나를 정의할 수 있는가.”
하루 내내 길 위에서 씨름했지만 명확한 답을 내릴 수는 없었다. 비단 그뿐만 아니라 이 공간에 모인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관계의 껍데기를 벗겨내고 나를 정의해 보라는 말. 직함과 역할, 타인의 시선 같은 것들을 잠시 내려놓고 오직 ‘나’라는 본질에만 집중해 보라는 요청. 단순해보일지 몰라도 쉽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수첩을 넘기며 오늘 성찰한 내용을 복기하고,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본질적인 단어를 찾으려 애썼으나 쉽지 않았다. 온종일 침묵하며 생각을 붙잡으려 분투했지만 끝내 머릿속에 남은 것은 나를 둘러싼 무수한 관계의 이름들이었다. 누군가의 자식, 누군가의 부모, 누군가의 동료 혹은 배우자. 관계 밖의 순수한 나를 상상하려 할수록 의식은 자꾸만 관계 속의 나로 되돌아왔다.
_ 124~125쪽, ‘3부 직시, 12장 저녁의 이야기’ 중에서
그러나 사람의 감정은 수식처럼 정확하게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그가 통제하려 애쓸수록, 억지로 상황을 꿰맞추려 할수록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고, 어느새 그 자신마저 깊은 우울과 번아웃의 늪에 빠져버렸다. 급기야 화려한 커리어를 다 내던지고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 무렵, 그는 시코쿠의 길 위에 서게 된 것이다. 땀방울이 눈을 타고 흘러내리는 산길 위에서, 그는 뼈아픈 진실과 직면했다. 자신이 그토록 고군분투했던 이유가 실은 가정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어머니와 아내라는 두 사람을 내 방식대로 통제하려 했던 것이었음을. ‘내가 바뀌면 다 된다’는 자기희생의 포장지 속에, 내가 이 모든 상황의 해결사가 되어야 한다는 오만이 숨어 있었다. 그 통제욕을 내려놓지 않는 한, 그곳은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무간지옥이었다.
_ 154~155쪽, ‘5부 공명: 2장 통제하려는 욕망이 빚어낸 고통
“저는 부부 사이에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걷다 보니, 제 삶이 평탄할 수 있었던 건 아내가 자신의 생활 패턴과 본성을 전부 죽이고 제 억지스러운 기준에 백 퍼센트 맞춰주었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내를 존중한 게 아니라, 제 입맛대로 통제하고 지배하고 있었던 겁니다. 내가 참 못난 놈이구나… 내가 이토록 징그러운 이기주의자였구나 싶어 걷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더라고요.”
그 자리에서 나온 말이 오래 남았다. “우리는 나를 둘러싼 대상이 내 뜻대로 존재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 집착이 어긋날 때 불안과 분노가 생겨나죠. 타인은 결코 나의 연장선이 아닙니다. 완벽하게 분리된 독립적인 우주입니다.” 가족을 나의 소유물이나 나의 기대치를 충족시켜줄 부속품으로 여겼던 오만함. 그 오만함이 산산이 부서진 자리에 찾아온 것은 지독한 부끄러움이었다.
_ 188쪽, ’5부 공명, 7장 어른들의 눈물’ 중에서
나의 가장 딱딱하고 두꺼운 껍데기를 깨고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맨손으로 다가서는 것. 어떻게 첫 문장을 시작할까. 너무 감상적이면 어색해하지 않을까. 내가 겪은 이 거대한 혼란과 느낌을, 그리고 당신을 향한 이 묵직한 미안함을 어떤 평범한 단어에 담아내야 진심이 훼손되지 않고 온전히 가 닿을 수 있을까.
묵언의 규율 속에서, 길을 걷는 사람들의 입술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그들의 내면은 그 어느 때보다 시끄럽고 분주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수첩의 빈칸은 여전히 물리적으로는 하얀 백지상태였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속 백지는 이미 걷는 동안 수없이 지워지고 덧대어진 거칠고도 아름다운 활자들로 빼곡하게 채워져 가고 있었다.
_ 211쪽, ‘6부 통찰, 3장 편지를 채운 사랑’ 중에서
“예전에는 상대가 실수하면 내가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것은 ‘내가 옳기 때문’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내 논리가 맞고 회사를 위한 일이니까, 강하게 질책해서라도 상대를 뜯어고쳐야 한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침묵 속에서 흙길을 걷다 보니, 그토록 악착같이 쥐고 흔들던 옳고 그름의 잣대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서서히 느껴졌다. 화를 낸다고 상대방이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는다. 결국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내 태도뿐이었다. 시비를 가리려는 집착을 내려놓는 것, 그것이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실천이었다.
“화를 내서 얻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참으면 참을수록 오히려 나에게 덕이 쌓이고 건강이 회복되더군요.”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10년 넘게 굳어져 있던 ‘화내는 습관’을 미련 없이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실수를 질책하던 날 선 목소리가 사라지고 부드러운 눈맞춤이 시작되자, 연구소의 공기는 봄눈 녹듯 따뜻해졌다.
_ 242쪽, ‘6부 통찰, 7장 사무실의 공기를 바꾼 리더의 한 마디’ 중에서
순례길을 걷고 온 사람들은 인형을 쉽게 치워두지 않는다. 책상 한쪽에 올려두고, 가끔은 먼지를 털어내고, 어느 날은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본다. 그리고 그 순간 잠시 숨을 고르고 생각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과 그때의 질문이 이어져 있는지, 아니면 다시 예전의 속도로 돌아가고 있는지를. 길 위에서의 생각들, 발바닥의 통증과 함께 지나갔던 시간. 말이 줄어들고, 생각이 또렷해지던 순간.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여정 동안 붙들고 있었던 질문을 상기한다. 동자승 인형은 그렇게, 시코쿠 순례길에서의 자신을 되살리는 작은 표식처럼 남는다.
“나는 무엇으로 나를 설명해왔는가.” 인형을 건네는 자리에서 긴 설명은 덧붙이지 않는다. 다만 여정에서 들었던 개인의 고민을 이해하고, 그의 변화를 응원하는 친필 엽서를 함께 건넨다. 참가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그 의미를 이해한다. 길 위에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질문을 붙들고 걸었는지, 그리고 어떤 표정으로 그 시간을 지나왔는지 잊지 말라는 뜻임을.
_ 275~276쪽, ‘7부 회귀, 2장 동자승의 의미’ 중에서
‘걷는 회사’라는 말은 낯설게 들릴 수도 있다. 사실상 이 길을 걷는 주체는 회사가 아닌 사람이다. 하지만 그들이 각자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살아보려고 애쓰는 과정 속에서, 회사 역시 그들의 삶과 함께 움직인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회사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사람의 이야기다. 누군가는 그 길에서 가족을 만들었고, 누군가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으며, 누군가는 삶의 속도를 늦추는 법을 배웠다. 그 변화는 겉으로 보기에는 작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의 삶에서는 그런 작은 변화들이 오래 남는다.
시코쿠 순례길 걷기는 이미 끝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의 삶 속에는 그 걸음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길 위를 걷는 사람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되도록 천천히, 한번 더 생각하면서. 때로는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때로는 사랑하는 이를 떠올리기 위해, 그리고 때로는 지금을 보다 잘 살아가기 위해.
_ 292~293쪽, ‘7부 회귀, 7장 걷는 사람 그리고 걷는 회사’ 중에서
정성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잘 짜인 일정표에도 없고, 이동 차량의 규격에도 없다. 그것은 비가 오면 다음 날 아침을 미리 생각하는 마음에 있다. 지쳐 뒤처진 사람을 위해 버스를 돌리는 마음에 있다. 그리고 같은 길을 반복해 걸으면서도 그 마음이 닳지 않는 데 있다.
사람들은 가끔 묻는다. 스물네 번이나 같은 길을 걸었는데 지겹지 않느냐고. 나는 지겹지 않다. 길은 같지만 걷는 사람은 매번 다르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을 준비할 때마다 다시 질문한다. ‘프로그램이 참가자들에게 전하려는 마음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마음을 내가 어떻게 이어받아 준비할 것인지’ 수배를 하고, 일정을 짜고, 숙소와 식사를 확인하는 일이 단순한 실무가 아니라 마음을 전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걷고 몰입하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핵심이고, 그 시간을 온전하게 지키는 것이 나의 일이다.
나는 37년간 여행업에 종사해 왔지만, 진짜 여행이 무엇인지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으로 다시 배웠다. 가이드가 아닌 온전한 사람으로 대우받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그것이 내가 ‘걷는 회사’와 함께 스물네 번을 걸은 이유다.
_ 302~303쪽, 8부 ‘훈습: 정성은 닳지 않는다’ 중에서
2012년 봄 조금은 무모하게 내디딘 발걸음이 14년간 24회 여정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시간 속에서 순례 형식도 내용도 많이 변했습니다만 우리는 늘 길 위에 있었습니다. 이 책은 그 길에 대한 기록입니다. 일본 시코쿠 섬에 있는 88 사찰을 이정표 삼아 걸었습니다. 사찰은 그저 이정표일 뿐 종교적인 의미는 없습니다. 순례는 낯선 길에서 삶의 방향을 다시 묻는 과정입니다. 길은 우리를 데려갑니다. 우리는 길을 따라 갑니다.
_ 316쪽, ‘책을 마치며’ 중에서

전직 매일경제 기자가 직접 취재한 한 회사의 걷기 프로젝트
사람을 성장시키는 회사는 다르게 걷는다
회사란 원래 바쁜 곳이다. 목표를 세우고, 성과를 내고, 더 빨리 움직여야 살아남는 곳이다. 어제를 돌아볼 틈도 없이 오늘을 버티고, 오늘을 버티는 와중에도 내일의 숫자를 준비해야 한다. 그런 회사가 어느 날 직원들의 손에서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거둔다. 그리고 낯선 일본 시코쿠 순례길 위에 세운다.
5박 6일 동안 하루 20km씩 말없이 걷는다. 성과를 논의하는 회의도 없고, 발표도 없고, 워크숍도 없다. ‘생각하지 말고 걷는 하루.’ 회사가 직원들에게 제안한 프로그램치고는 꽤 낯설다. 왜 회사는 사람을 길 위에 세우는 걸까?
이 책 《걷는 회사》는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치과용 의료기기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기업 바텍 네트웍스.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왔고, 실제로 그렇게 성장해온 회사다. 그런 조직이 어느 순간 구성원들에게 속도를 늦추자고 말한다. 잠시 멈춰 자신을 돌아보자고 권한다. 얼핏 낭만처럼 보이는 이 선택은 과연 경영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이 책은 전직 매일경제 기자가 직접 취재한 기록이다. 하지만 익숙한 기업 성공담은 아니다. 조직 혁신의 구호나 성과를 끌어올리는 매뉴얼도 아니다. 대신 길 위에서 자신과 마주한 평범한 직장인들의 고백이 담겨 있다. 앞만 보고 달리느라 놓쳤던 가족, 책임감이라는 이름 아래 지워버린 자신, 일과 역할 속에 묻혀 잊고 있던 삶의 질문들.
말없이 길을 걷고 난 뒤, 저녁이 되면 그들은 마음 깊이 묻어두었던 이야기들을 꺼내놓는다. 자신의 이기적인 태도를 깨닫고 눈물을 쏟기도 하고, 차마 꺼내지 못했던 소망을 털어놓으며 진심을 다해 기도하기도 한다. 그렇게 걷고 또 걷다가, 마지막 날 그들은 가족에게 편지를 쓴다. 미처 전하지 못했던 마음을 꺼내고, 오래 외면했던 관계를 다시 바라본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여행이 끝난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일상으로 돌아온 뒤 뒤처진 동료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가족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자신을 대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5박 6일의 여정 속에서 일어난 마음의 변화와 솔직한 고백, 가족에게 보낸 편지, 그리고 순례 이후 달라진 일상까지 세세하게 담아낸 이 책은 흔한 경영서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깊은 울림을 전한다. 여기에 참가 직원들뿐 아니라 1기부터 24기까지 전 여정을 함께한 현지 가이드와 운전기사, 6기를 동행 취재한 마이니치신문 기자의 시선까지 더해져 읽는 재미를 한층 풍성하게 만든다.
읽는 즐거움뿐 아니라 보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시코쿠 순례길의 풍경과 그 길을 걸은 사람들의 모습, 여정의 순간들을 담은 풍부한 사진과 비주얼 자료가 책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따라가듯 몰입하게 만든다. 텍스트만으로는 담아내기 어려운 길의 공기와 침묵, 그리고 변화의 순간들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걷는 회사》는 단지 한 기업의 독특한 문화 사례를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 성과와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쉼 없이 달려온 우리 모두에게 잠시 속도를 늦추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라고 건네는 다정하지만 묵직한 초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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