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저자 서문 7
로마서 서론 10
로마서의 전체 흐름 요약 14
제1장 [로마서 1:1-32] ----------------------------------- 23
제2장 [로마서 2:1-29] ----------------------------------- 57
제3장 [로마서 3:1-31] ----------------------------------- 81
제4장 [로마서 4:1-25] ---------------------------------- 120
제5장 [로마서 5:1-21] ---------------------------------- 138
제6장 [로마서 6:1-23] ---------------------------------- 159
제7장 [로마서 7:1-25] ---------------------------------- 188
제8장 [로마서 8:1-39] ---------------------------------- 221
제9장 [로마서 9:1-29] ---------------------------------- 272
제10장 [로마서 9:30-10:21] ------------------------------ 296
제11장 [로마서 11:1-36] -------------------------------- 311
제12장 [로마서 12:1-21] -------------------------------- 336
제13장 [로마서 13:1-14] -------------------------------- 359
제14장 [로마서 14:1-15:12] ----------------------------- 378
제15장 [로마서 15:13-33] ------------------------------- 405
제16장 [로마서 16:1-27] -------------------------------- 424
[본 문]
하지만, 그들은 알면서도 변하지 않는다. 아니 변할 수가 없다! 이미 죄의 노예가 된 의지를 돌이킬 능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불안과 두려움을 잠재우기 위해 자신들의 행위를 합리화시킬 뿐만 아니라, 서로 악행을 승인해 주고 부추기기까지 함으로써 죄악을 확대하며 재생산한다. 미래의 죽음은 이렇게 현재의 진노의 현실 속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절망적 어두움은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게 되는 필연적 배경을 형성한다. p. 56
22절은 ‘율법과 상관없이 나타난 하나님의 의’가 어떻게, 그리고 누구에게 효력을 발휘하는 지에 대해 설명한다. ‘하나님의 의’는 어떻게 작동하게 되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작동한다. 이는 이미 1장 17절이 “복음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의가 ‘믿음에서 믿음으로’ 의인으로 살게 한다”라고 한 것을 재확인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하나님의 의’가 작용하도록 하는 동력 전달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믿음을 통해’ 의인으로 여겨지며, 끝까지 그 ‘믿음을 통해’ 의인으로 살게 된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의’가 적용되는 범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이며, 그 효력에는 어떤 제한도, 예외도, 차별도 없다. p. 109
1장부터 3장 전반부까지의 내용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상관없이 모든 인간이 죄의 노예로 살고 있는 절망과 진노의 현실에 관한 것이었다. 이곳 23절은 다시 한번 그것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피조물로서의 영광도 잃어버렸고, 하나님과의 사귐에서도 소외되었으며, 그것을 회복할 힘도 능력도 없다. 율법은 이를 지적하고 깨닫게는 해 주지만 이 질곡에서 벗어나게 해 줄 힘은 없다. 그러므로 우선 누군가가 우리를 풀려나게 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마침내 그가 나타났다. 바로 이 세상에 오셔서 스스로를 그들의 몸값으로 대신 지불하시고, 우리를 죄의 손아귀에서 빼내어 속량해 주신 분,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p. 110
그리고 이 ‘믿음의 법’은 모든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원리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유대인만을 위한 하나님과 이방인을 위한 하나님이 따로 존재할 수 없다. 성경은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이 세계와 함께 인간을 지으셨으며(창 1:1, 26-28; 2:7), 그 후손이 여러 나라 백성으로 나뉘어 각기 방언과 종족과 나라대로 세계 여러 곳에 정착하였다고 가르치고 있다(창 10:5). 따라서 할례를 받은 유대인도 이 ‘믿음의 법’에 의해 의롭다 함을 받고,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도 똑같은 ‘믿음의 법’에 의해 의롭다 함을 받는다. 그리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땅의 모든 족속이 (믿음으로 사는)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3)라는 언약이 마침내 성취된 것이다. p. 115
하지만, 하나님은 노동과 임금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우리를 구원하지 않으신다. 여기 어떤 고용주가 자기 일꾼 하나가 제대로 일을 하지 못했는데도 그에게 약정된 임금을 주었다고 하자. 그때 그 일꾼은 그 돈을 은혜로 여길 것이고, 그 마음은 주인에 대한 감사와 사랑으로 이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방식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내세울 공적이 없고 경건하지 못한 자신을 의롭게 여겨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p. 123
의롭다 여겨 주시는 은혜는 아브라함을 위해서와 마찬가지로 우리를 위해서도 준비해 주신 선물이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었던 아브라함처럼, 우리는 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을 믿는다. 또한, 우리는 장차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요, 죄인을 의인으로 여겨 주시는 하나님, 다시 말해 “없는 것들을 불러내어 있는 것이 되게 하시는”(17절/새번역) 하나님을 믿는다. 그렇게 우리는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12절)이다. p. 132
율법이 있어야 죄를 죄로 확실히 깨닫게 되고 자신이 죄인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율법은 사람들이 구원에 대한 갈망을 갖도록 인도하는 안내자의 역할을 한다. 그렇게 진지하게 깨닫고 갈망해야 죄 사함의 은혜를 은혜로 분명히 알게 된다. 그러므로 율법은 새로운 시대를 개막한 것이 아니라, 단지 옛 부류의 인간이 안고 있는 문제를 더 분명하고 강하게 드러냄으로써, 그리스도를 통한 사죄의 은혜가 얼마나 절실하고 위대한지를 알도록 해 주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아담 시대와 그리스도 시대 사이에 율법이 개입하게 된 이유이다. p. 158
구원 안에는 두 가지 내용, 즉 우리를 ‘의롭게 여겨 주심’과 우리를 실제로 ‘의롭게 변화시키심’이 모두 들어있는 것이다. 마치 물리학적으로 빛이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인 것처럼, 구원은 사건이면서 동시에 상태, 다시 말해 ‘칭의’이면서 동시에 ‘성화’이다. 로마서 전체의 주제에 해당하는 1장 17절이 말하고 있는 대로, ‘하나님의 의’는 성도를 의롭다고 선언하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성도를 의롭게 살도록 만드는(“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능력을 지닌다. 그리고 그 능력은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을 통해(“믿음에서 믿음으로”) 발생하고 적용된다. 그러므로 ‘의롭다 여겨짐’도 믿음으로 일어나는 역사요, ‘의롭게 존재함’(변화됨)도 믿음의 역사이다. p. 162
성화는 내가 하나님의 선물에 대해 보답하기 위해 종교적 혹은 도덕적 의로움을 연마하거나 쌓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하나님의 의’는 퇴색하고 ‘자기 의’의 목록이 부각되게 된다. 그리스도 안에 ‘머묾’을 통해 ‘되어 감’, 이것이 바로 성화의 본질이다. p. 175
죽여야 할 것은 ‘몸’이 아니라, 육신에게 조종당하여 나타나는 ‘몸의 행실’이다. 무조건 몸을 억압하는 금욕주의나 몸을 괴롭히는 고행주의는 답이 아니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의 몸을 육신성의 지배로부터 탈환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은 오직 ‘영으로써’, 즉 성령의 능력으로만 이루어진다. 즉, 그리스도와의 영적 연합에서 나오는 권능으로써만 가능한 일이다. 몸의 행실을 제어하는 것은 내 의지력과 인내력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사랑함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의 능력인 것이다. p. 243
이와 같이 악을 악으로 갚으면 악의 몸값만 높여 주는 엉뚱한 결과를 초래한다. 물론, 악은 극복되어야 한다. 그러나 악인들을 미워하고 두들겨 때림으로써 극복하려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결국 악을 흉내 내는 ‘반동적 악’(counter-evil)에 불과하며, 결국 악에 투항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과 정반대의 방식, 즉 오직 선한 일을 도모함으로써 극복해야 한다. 선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받은 사람이 갖게 되는 새로운 지혜는 바로 ‘악은 궁극적으로 선을 통해서만 극복된다’는 사실을 아는 지혜다. p. 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