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세를 맞이하여 한 여성작가의 5번째 52편의 수필과 작가의 말, 가족들의 축하글 2편으로 묶었다.
1부 고무나무(13편) 2부 마실 와야지(14편) 3부 이웃사촌(15편) 4부 세월의 강(10편)
목차
[목 차]
작가의 말 5
1부 고무나무
고무나무 14
항아리 시집 보내기 17
길에서 만나는 아기들 20
상현동의 칸트 부부 22
족보를 기증하다 25
망초꽃 29
푸른 꿈 33
내 안의 신바람 39
이제는 내가 이긴다 44
얼굴 49
정월 대보름 52
인공지능과의 협업 55
혼돈의 시대 58
2부 마실 와야지
둘만 남았다 64
당신이 바뀌었어 68
남편의 근황 72
뮤지컬 74
마실 와야지 78
꽃등을 선물 받다 80
아버지 마음 84
2남 1녀 88
사랑스러운 나의 손녀 92
햇살 같은 깜짝이, 외손녀 95
소중한 당신에게 99
올봄에 하고 싶은 일 103
작은 행복감 106
지금 내 인생의 황금기가 아닐까 109
3부 이웃사촌
고마우신 은사님께 114
고마운 친구 우석 엄마에게 117
우리의 10월 어느 날 121
오래된 친구 희수에게 125
이새린 양의 백일에 부쳐 129
풀님 쉼터 132
요즘 세태 136
캐나다 친구 오정애 140
허망한 꿈(1) 142
허망한 꿈(2) 146
보고 싶은 막냇동생 승범이에게 150
김유정문학촌과 제이드가든을 다녀와서 155
65년 만에 다녀온 고향 160
깊이 흐르는 물 164
나이듦에 대하여 168
4부 세월의 강
사계절이 아름다운 평창 172
이팔청춘 어르신 학교 입소 176
삶과 죽음 179
세월의 강 182
신 여사 댁에서의 신년회 185
치매의 슬픔 188
늦게 터진 복 192
인연의 끈 195
때늦은 고백 198
네오 203
큰아들 가족의 축하메시지 208
사랑하는 엄마, 조순영님께 210
[본 문]
〈고무나무〉
작은아들이 결혼 선물로 받은 고무나무 한 그루를 우리 집에 놓고 갔다. 작은아들이 결혼한 지 어느덧 9년, 그동안 고무나무는 건강한 작은아들처럼 둥글고 두꺼운 이파리에 윤기가 흐르며 잘 자랐다. 그런데 작년 여름까지만 해도 이파리가 무성했는데 겨울이 되자 나뭇잎이 모두 떨어졌다. 작은아들이 결혼하여 제 보금자리를 향해 우리 집을 떠났어도 고무나무는 튼실했는데 지난가을부터 생기를 잃는 것 같더니 시나브로 한 잎 두 잎 떨어지고 결국에는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아서 겨우내 깊은 잠을 자고 있었다. 죽어가는 고무나무를 바라보면서 버려야 할까, 식물원에 가서 상담을 받아 볼까 고민인 채 해를 넘겼다. 그런데 온 누리가 봄의 기운으로 충만한 가운데 고무나무도 긴 동면의 시간을 끝냈는지 작은 움이 트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긴 잠을 자던 나무가 언제부턴가 아른아른 실오라기 같은 나뭇잎이 몽글몽글 피어나고 있었다. 있는 듯 없는 듯하다가 색깔도 점차 선명해졌다. 동그란 나뭇잎 모습을 보이다가 지금은 제법 큰 나뭇잎으로 둥그렇게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다. 나뭇잎 색깔은 점점 짙푸른 색으로 변해가고 잎사귀 모양도 둥그렇게 고무나무 본연의 모습으로 자라고 있다. 회생하는 고무나무를 바라보면서 생명의 신비함에 감탄하였다. 죽은 듯이 보였던 나무에 실은 살아 있었던 것이다. 날이 갈수록 나뭇잎 모양도 색깔도 성숙한 모습으로 다시 거듭나고 있는 고무나무. 작은아들 결혼 때 고무나무 화분 대신 화환을 받았더라면 결혼식이 끝나고 곧바로 쓰레기통으로 들어갔거나 다른 결혼식장으로 직행했을 것이다. 배려심 많은 지인은 화분으로 보내 주었기에 10년이 넘도록 우리 집에 푸르름을 선사하고 있다. 이제는 수형도 우리 아들처럼 늠름하고 튼실하다. 이미 형체도 없이 되었을 나무가 날이 갈수록 청청한 청년의 모습으로 우리 집 베란다를 빛나게 해주니 귀한 식구다. 고무나무는 사실 열대성 식물이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 적응하느라 몸살도 앓았으련만 한겨울에도 죽지 않고 살아남는 것도 신기하다. 표피를 살짝 베어내면 하얀 점액질이 흘러나오는데 열대지역에서는 고무 질의 원재료가 되는 자원식물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주로 실내 공기 청정 기능이 탁월하여 사랑을 받는 관상용 식물로 자리 잡고 있다. 10여 년을 한결같이 우리 집 베란다에 조용히 서서 공기를 청정하게 순화시켜주니 고마운 나무이다. 작은아들이 결혼하여 어여쁜 외동딸이 태어나서 우리 집안을 환하게 밝혀준다. 올해로 다섯 살인 손녀는 올해 초에는 어린이집을 거쳐 유치원에 입학해서 제 아비의 돌봄 서비스를 받으며 우리 집 고무나무처럼 사랑스럽게 커가고 있다. 또 결혼한 딸이 둘째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 은근히 우리 부부가 아쉬웠는데 2년 전 외손녀를 안겨 주었다. 그동안 친손자 넷, 외손자 하나로 손자만 다섯이어서 우리 집에 가족이 모이면 거의 사내들이어서 분위기가 우중충했는데 햇살 같은 두 손녀가 생겨나니 집안이 환하고 반짝이는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다. 다섯 살, 세 살 두 여자아이가 뛰놀고, 베란다에서 묵묵히 서 있는 고무나무도 윤기를 한층 더 내어 청정기운을 불어 주는 것같다. 우리 집 경사에 우연히 식구가 된 고무나무, 오래도록 탁한 공기를 걸러내어 청정공기를 선사하기를 바라며 목말라 있을 나무에 물을 듬뿍 준다.
〈항아리 시집 보내기〉
오랜 세월 서울의 단독 주택에 살았다. 도시 재개발로 이곳 수지의 아파트로 이사를 오면서도 차마 주부로서 버리지 못하고 데리고 왔던 항아리들이 꽤 있었다. 그걸 몇 년을 끌어안고 살다가 미련 없이 남의 집으로 보내버렸다. 사람도 늙어서 갈 때가 되었는데 이 항아리가 다 무슨 소용일까 싶어서다. 장위동 단독 주택에 살 때는 장독대에 올망졸망 항아리들이 많았다. 이사 오면서 다 데리고 올 수가 없으니 선별해서 가져왔는데 9년여 살다 보니 아파트에서는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이삿짐을 싸면서 이 항아리만은 꼭 필요할 것 같아 데리고 온 것들이다. 아파트 생활해 보니 주택에서 매우 쓸모가 있었던 항아리였어도 이 아파트 생활에는 무용지물이고 천덕꾸러기 신세이다. 내가 젊은 주부였다면 아파트 생활에서도 항아리는 요모조모 알뜰하게 사랑을 받았을 것이다. 이제 겨우 남편과 나 단둘이 뭔 기운이 있어 이것저것 요리를 하겠는가 왕성했던 식욕도 사라졌다. 시나브로 사그라지는 데는 장사가 없었다. 베란다를 수리하고 이것저것 정리하고 나니 그곳에 자리한 항아리들이 뒤퉁스러워 보였다. 한때는 애지중지 내게 사랑받던 것들인데 이렇듯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용기를 냈다. 그래도 다 비우지 못하고 가장 아끼는 두 개는 남겨놓고 가져가겠다는 지인네 집으로 보냈다. 번쩍이는 승용차에 실려 가는 항아리들이 마치도 딸을 귀히 대접받을 댁으로 시집 보내는 듯 안심이 되지만 마음 한편으로 섭섭했다. 우리 가족의 입맛을 내주던 간장과 된장, 고추장 등을 간직하면서 내어주던 항아리들, 함께 나눴던 긴긴 세월에 정인들 무심할 수 있으랴. 회자정리, 만나면 언젠가는 꼭 헤어져야 하는 게 세상 이치이니 이별은 가벼운 것이 정답일 것 같다. 나 자신조차도 버리고 싶은 판국에 무엇을 더 옆에 두고 싶어 안달하겠는가. 세상의 모든 것과도 이별 앞에서 애착을 가지고 욕심낼 일이 아니라는 걸 나이가 들면서 터득했다. 어머니가 주지 스님으로부터 두 손으로 공손하게 받아서 애지중지하시던 스님 초상화를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내가 간직하고 있다가 내가 평생 모아두었던 책들까지 함께 버리고 나니 홀가분하다. 이제는 나 자신조차도 감당하기가 벅차서 더는 쌓아놓아 두기엔 숨이 차다. 떠날 때는 깃털처럼 가볍고 홀가분하게 떠나는 것이 보내는 이도 떠나는 이도 마음 가벼운 순리가 아닐까. 편안한 이별이 깃털처럼 가벼운 것이리라.
〈길에서 만나는 아기들〉
길을 걷다 보면 마주치는 어린 아기들에게 나는 시선이 멈추곤 한다. 아기들이 모두 예쁘고 소중하게 느껴져서 아는 척을 하게 된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를 것 같은 아기가 자기가 예뻐서 그러는 시선을 용케 알아채고 유모차에서도 방긋 미소 짓기도 하고 손짓도 한다. 그럴 때 아기의 아빠나 엄마도 환하게 미소와 함께 고마운 눈인사를 하기도 하고 말도 나누기도 한다. 자기의 소중한 자식을 예뻐하는데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모르는 이의 아기들이 모두 소중해서 귀하다. 이 나라의 미래의 주인공들이 아닌가. 그들이 무럭무럭 잘 자라서 나라의 기둥이 되기를 바라는 소망까지 내 눈에는 담겨있다. 아기가 가운데 있으면 생판 모르는 사람끼리라도 분위기가 부드럽게 되고 무장해제가 되면서 따뜻한 정이 오고 간다. 이런 걸 두고 인지상정이라고 하리라. 고 어린 아기가 저를 예뻐하는 줄 용케 알고 제 손을 흔들며 웃음으로 답하는지. 막 나오기 시작한 이빨을 환히 드러내고 웃는 모습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서로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그들과 자연스럽게 얘기가 오간다. 이것이 같은 언어를 쓰고 사는 사람들의 정인가 싶어서 훈훈한 마음을 안고 온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 간의 소통은 말보다는 시선으로 더 진정성 있게 교류하는 것 같다. 저 어린 것이 무얼 알까 싶지만, 아기들도 성인들처럼 희로애락을 몸으로 분위기로 알고 있는 것 같다. ‘아랫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라는 말처럼 어른은 젊은이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청소년들과 어린이, 아기들이 어른들의 보살핌과 사랑으로 면면히 내려갈 것이다.
〈상현동의 칸트 부부〉
아침마다 같은 시간에 산책길에 나서는 우리 부부에게 ‘상현동의 칸트 부부’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 또 다른 지인은 ‘괘종시계’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우리 부부가 날마다 그 시각에 산책로 그 길목을 지나가고 있기에 붙여진 별명이다. 습관은 제2 천성이라고 했던가. 우리가 이곳 상현동으로 이사 온 지도 어언 9년이다. 재개발로 살던 서울 집에서 이사해야 했는데 큰아들이 결혼하여 우리와 한동네에 살다가 우리보다 먼저 직장 따라 이곳 상현동으로 이사 왔다. 우리 부부는 어디로 이사를 해야 할지 근심이 컸는데 큰아들이 먼저 지병이 있는 제 아버지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며 자기네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 오라고 강권유해서 상현동으로 이사를 했다. 전에 우리 집 옆에 살던 큰아들네가 상현동으로 이사 갔을 때다. 삼둥이 중 제일 큰애가 “할아버지네도 우리 집 옆으로 이사 오시면 안 되나요?”라고 물어서 참 기특하다고 생각했다. 초등학교에 입학도 하지 않은 어린아이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기특했다. 이곳으로 이사 오고 한동안 아들이 언제쯤 출근하는지 알지 못했다. 산책길에서 우연히 출근하는 아들과 만나니 무지 반가웠다. 우리가 만나서 함께 하는 시간은 기껏해야 1분 안팎이나 될까, 스치듯 지나가면서 한두 마디 나누는 그 짧은 시간이 그처럼 좋고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시간 그 길목쯤에서 서성이곤 했다. 어느 순간 우리 부부는 바쁘게 출근하는 아들에게 부담을 주는 일은 아닌가 싶어져서 ‘그만 만났으면 좋겠다.’고 아들에게 말했다. 아무리 아들네 집이 가까운 이웃이라 해도 엄연히 가정이 있는데 시도 때도 없이 만날 수야 없는 일 아닌가. 각자의 삶이 있고 사생활이 있기에 어떨 때는 부담을 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우리 부부의 말에 아들이 “자기는 부모님 건강을 살필 수 있어서 좋다.”고 해서 계속 만남을 이어온다. 그래서 아들의 출근 시간 그 짧은 순간에 서로의 얼굴을 잠시라도 볼 수 있다는 건 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은 출근 시간에 변동이 생겨도 출근할 장소가 바뀌더라도 꼭 제시간에 그 길목에 나와서 우리와 잠시 만나고 가는데 그래야 마음이 놓이나 보다. 그 무언의 약속 덕분에 우리 부부는 상현동의 칸트 부부로 행복하게 사는지도 모른다.
- 작은 아들 남선우의 감사의 글
엄마, 생신을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늘 저희 곁을 지켜주시고 따뜻하게 돌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 삶을 되돌아보니, 제가 큰 어려움 없이 행복하게 자랄 수 있었던 건 모두 엄마 덕분이었어요. 어린 시절, 외할머니의 형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여동생을 아끼셨던 아빠 사이에서 저는 아주 가끔 소외감을 느끼기도 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엄마는 늘 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씀해 주시고 온 몸으로 표현해 주셨어요. 밥 먹을 때 식탁에서 제가 좋아하는 꼬막도 까주시고 깻잎도 밥위에 얹어 주시고. 덕분에 저는 제 자존감을 단단하게 지키며 자랄 수 있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엄마는 늘 회사 일로 저희와 긴 시간을 함께하지 못하는 걸 미안해하셨죠. 하지만 그 성실함 덕분에 저희 삼 남매가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부족함 없이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고 생각해요. 저는 회사 생활을 12년 하면서 회사생활에의 어려움에 대해서 온몸으로 느꼈어요. 장위동에서 과천까지 그 먼 출근길을 성실하게 다니신 엄마에 대한 존경이 더더욱 커졌어요. 엄마가 매일 출퇴근하시던 16번 버스를 저는 지금도 기억합니다. 가끔 버스 정류장까지 마중 나가 엄마 손을 잡고 돌아오던 그 길이 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국민학교 3학년 때 바둑에 관심을 가지고 좋아하는 저를 위해 회사에서부터 그 무거운 바둑판을 사 오셨던 날도 기억나요. 엄마 마중 나가서 정류장에서 집까지 들고 오는 게 저도 참 힘들었는데, 엄마는 그 무거운 걸 어떻게 들고 오셨을까요. 그 깊은 사랑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엄마가 써주신 수많은 편지, 지금도 소중히 보관하고 있어요. 다시 읽을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이제 저도 한 아이의 아빠가 되어보니, 그때 엄마의 마음이 어땠을지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랑하는 마음도 표현해야 하고 기록해야 함을 알게 해주신 우리 엄마. 저도 엄마를 본보기 삼아 수많은 글을 쓰고 있습니다. 엄마에게 받은 그 큰 사랑과 은혜를 다 갚을 길은 없겠지만, 스스로 항상 감사한 마음을 바라보며 조금씩 꾸준히 갚아 나가려고 합니다. 부디 건강하게 저희 곁에서 오래오래 건강하시고 행복해 주세요. 엄마, 정말 많이 사랑합니다. 생신 축하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