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프롤로그 – 인스타그램 하나로도 미라클, 에디팅
PART 0. [발견] 콘텐츠라는 세계로 들어선 순간들
실행력 만렙이 된 백일장 키드
독립과 창업, 내 이름으로 먹고사는 일
바이라인이 붙은 삶을 꿈꾼다는 것
PART 1. [시도] 일단 시작하는 마음, 하나라도 만들어 내는 경험
내 콘텐츠의 소비자를 상상하며
따라 하는 것부터 시작하기
취향이 아니라 선택을 보여주는 일
기획 잘하는 팁, 실패 가능한 환경 만들기
백지 상태에서 딱 한 줄, 한 컷을 넣는 법
인스타그램, 피드부터 DM까지 캐릭터를 보여주는 법
유튜브라는 취향의 대동여지도
뉴스레터, ‘편지’로 맺는 깊고 좁은 관계
PART 2. [성장] 감각과 캐릭터, 나만의 무기 만들기
“좋은 건 어디서 찾아요?”라고 묻는다면
최초 공개, 에디터의 디깅 라이프
평범한 직장인이 자기 서사를 만드는 법
메타인지, 타인이 보는 나는 어떤 사람일까
에디터의 캐릭터를 보여준다는 것
PART 3. [확장] 내가 만든 콘텐츠가 돈이 될 때
어려운 이야기 쉽게 전달하기, 어그로와 썸네일
알고리즘이라는 파도에 올라타는 법
‘힙‘한 콘텐츠를 만든다는 것
가장 짧은 콘텐츠에 대한 조금은 긴 생각
독자는 늘 충성스러워야 하는가
친밀하되 선 넘지 않는 에디팅 원칙
노출부터 확장까지, 요즘 에디터의 기술
모든 것을 숫자로 바라보는 연습
좋은 콘텐츠 vs. 돈이 되는 콘텐츠
매출, 지속 가능한 에디팅의 조건
PART 4. [지속] 에디팅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
AI가 없애준 ‘쓴다는 두려움’
협업, 내 주변의 능력을 편집하는 법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대한 생각들
인스타그램 시대의 에디터가 보는 미래
에디터라는 직업의 장점과 단점을 묻는다면
집중력을 도둑맞은 에디터의 일일
불안을 동력으로 삼는 법
‘삽질’할 시간, AI가 우리에게 선물한 것
부록 – 세 에디터의 미라클 토크
팔리는 취향과 안 팔리는 취향의 경계에 대하여
에디팅을 ‘미라클’이라 명명한 일에 대하여
때로는 재능 같고 때로는 노력 같은 기획력에 대하여
크리에이터와 마케터 사이 ‘에디터’에 대하여
에필로그 – 당신이라는 미라클, 당신이 만들어 낼 미라클
[본 문]
우리가 오래 살아남은 이유는 콘텐츠 기획이나 비주얼, 퀄리티 때문만은 아니다. 이걸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퀄리티가 언제나 생존의 첫 번째 전략인 것은 아니다. 우리를 먹여 살린 건 시장이 변할 때마다 불도저처럼 달려가서 일단 시도하고 보는 ‘멀티 플랫폼 전략’이었다.
우아하게 사이트 하나 만들어 놓고 독자를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창업 당시에 네이버가 ‘네이버 포스트’라는 모바일형 블로그 서비스를 밀고 있었는데, 그 서비스에 콘텐츠를 제공해 줄 것을 제안받았다.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뛰어들었다. 막 시작하는 서비스라 네이버 메인 화면에도 종종 노출되었다. 네이버 포스트가 모바일 통합 검색에서 상단에 노출되며 트래픽을 어마어마하게 몰고 왔다. 덕분에 초창기부터 제휴 광고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은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이 많다고 착각할 때다. 그 순간 콘텐츠는 현실에서 점점 멀어지기 시작한다.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집 고친 이야기, 물건 하나 써본 이야기, 생활하다 발견한 팁 같은 게 정말 콘텐츠가 되느냐고. 해보면 금방 알게 된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대단한 걸 원하지 않는다. 엄청난 취향이나 특별한 경험을 기대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오래 살아남는 콘텐츠는 훨씬 단순하다. “제가 한번 써봤는데요.” “이거 해봤는데 이렇게 되더라고요.” 결국 다 이런 이야기다. 취향을 감상하기보다는 선택을 따라 할 수 있는 콘텐츠 말이다. 이때 선택의 멋진 결과만 보여주면 안 된다. 집을 고쳤다면 예쁘게 고친 사진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페인트를 칠하다가 망한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 멋진 아이템을 소개하고 싶다면 이전에 비슷한 아이템을 샀다가 처박아 둔 경험도 같이 풀어야 한다. 사람들은 시행착오에 더 반응하기 때문이다. ‘아, 나도 저럴 것 같은데.’ 그 공감이 독자와의 접점이 되고, 콘텐츠는 생명력을 얻는다.
- ‘취향이 아니라 선택을 보여주는 일’ 중에서
2020년대의 소비자들은 오로지 ‘나’에게 집중한다. 당신이 만든 콘텐츠나 물건, 서비스는 자신을 더 효과적으로 투영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이토록 만연한 자기애의 시대에 독자보다 드높은 자의식은 곧 상품성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더 해야 할 일은 내 콘텐츠의 소비자가 누군지 있는 힘껏 자세하게 상상하는 것이다. 나 말고 ‘너’를 탐구해야 한다.
물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먼저 탐구해야 하는 건 맞다. 하지만 이 단계는 콘텐츠를 만들기 전에 가장 적합한 재료를 찾는 준비 과정일 뿐이다. 숨어 있던 나의 천재성이나 빛나는 매력을 발굴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모든 서사가 나로 시작할 필요는 전혀 없다.
예를 들어 당신이 대한민국에 숨어 있는 ‘사우나 성지’를 큐레이션한다고 생각해 보자. 이 콘텐츠의 당위성을 위해 어린 시절의 추억이나 사우나 취향, 해외 사우나 문화에 대한 경험이 서사로 쓰일 수는 있다. 맥락을 만들기 위한 좋은 부재료가 될 테니까. 그런데 당신이 느낀 감정이나 추억만이 콘텐츠라면? 개인이 가진 매력도나 스타성으로 결과물의 상품성이 크게 좌우될 수밖에 없다.
디에디트는 ‘테크 신제품 리뷰’라는 분명한 주제를 가지고 유튜브를 시작했다. 신제품은 언제나 쏟아진다. 즉 10년을 운영해도 주제가 고갈되지 않는다. 여기에 초반부터 약간의 키워드를 가미했다. ‘여성이 소개하는 감성 리뷰.’ 지금 생각하면 별로 새로울 것 없는 캐릭터지만, 그때는 테크 제품을 다소 딱딱하게 다루는 남성 위주의 리뷰 영상 사이에서 컬러나 색감 등을 강조하고 비주얼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영상을 보여주는 게 신선했다.
거기에 ‘선글라스를 낀 두 여자’라는 강한 시각적 캐릭터까지 더해졌다. 악플도 많았다. 쌍꺼풀 수술을 했냐는 둥, 못생겨서 가린 거냐는 둥. 선글라스를 끼지 않은 얼굴이 화면에 비칠 때면 커뮤니티에 캡처가 올라오며 “역시 예상대로 못생겼다”라는 조롱이 줄을 이었다. 다소 가혹한 과정을 수반했지만 어쨌든 기억에는 남는 데는 성공한 것 아닐까? ‘완벽한 호감’을 만드는 건 쉽지 않다. 때로는 의아한 마음이 드는 선명한 첫인상이 유리할 때도 있다.
자극적인 캐릭터를 만들기만 하면 된다는 말이 아니다. 유튜브에서 진짜 중요한 건 캐릭터를 ‘지속 가능한 포맷’ 안에 넣는 일이다. 잘되는 채널을 보면 둘 중 하나다. 사람을 보러 오거나, 포맷을 보러 오거나. 그런데 오래가는 채널은 대개 둘 다 잡고 있다
- ‘선명한 캐릭터를 지속적으로 보여주기’ 중에서
지금의 플랫폼은 한 콘텐츠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계속 다음 콘텐츠로 넘어가도록 설계되어 있다. 관심사를 조금만 드러내도 비슷한 콘텐츠가 끝없이 이어진다. 재미있는 건 이 흐름에 익숙해졌으면서도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은 자꾸 반대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독자를 붙잡아야 한다고, 충성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이유는 단순하다. 그래야 훨씬 다루기 쉽기 때문이다. 숫자로 보이고, 설명하기 쉽고, 예측도 가능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충성도 높은 독자=좋은 독자’라는 공식을 믿게 된다.
문제는 이 공식이 실제 독자의 움직임과 맞지 않는다는 데 있다. 우리는 관계를 쌓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독자는 그때그때 들른다. 특정 콘텐츠의 반응을 ‘우리 독자의 취향’이라고 일반화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어긋난다. 어제 좋아했던 사람이 오늘도 좋아할 거라는 보장이 없다. 반대로 오늘 아무 반응 없던 사람이 내일 들어올 수도 있다.
독자는 고정된 집단이 아니다. 계속 변하는 흐름이다. 그래서 충성 독자는 안정된 상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변동성이 큰 상태다. 좋아한 만큼 크게 실망하고, 돌아설 때 더 단호하다. ‘빠’가 ‘까’가 되는 건 한순간이다. 애정이 깊을수록 떠날 때는 가차 없다. 단단할수록 한 번의 균열에 빠르게 무너지듯이.
취향의 출발점은 내가 세워야 한다. 직접 검색하고, 캡처하고, 비교하는 ‘노가다’를 감수하자. 그러다가 다른 길로 새서 전혀 다른 레퍼런스를 찾을 수도 있다. ‘어? 매거진 에디터만 생각했는데, 마케터의 영역도 에디팅의 기술이 필요하네? 글과 영상, 사진 콘텐츠만 생각했는데 제품도 콘텐츠가 될 수 있네? 커머스를 붙인 사례는 어떨까? 그러고 보니 요즘 홈쇼핑보다 인스타 라이브나 틱톡 라이브 판매가 더 잘된다던데. 요즘 잘나가는 크리에이터 이름이 뭐였지? 엄청 스타일 좋던데. 어떤 아이템이 유행하지? 나도 하나 사볼까? 와, 이 사람 콘텐츠 진짜 잘 만든다. 이렇게 SNS 피드를 꾸미는 사람도 있구나. 캡처해 둬야지. 이 사람이 태그한 브랜드 너무 좋은데? 들어가 볼까? 오프라인 매장이 있네? 감도가 왜 이렇게 좋아? 이번 주말에 가봐야지. 저장. 이렇게 저장한 걸 어떤 플랫폼에 모아 두면 보기 편할까? 이걸 카테고리별로 묶어서 주말 버킷리스트 큐레이션을 해볼까? 일주일 단위로 발행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어떤 연령대에서 반응하는 콘텐츠일까?’
실제로 레퍼런스를 찾는 내 의식의 흐름은 이것보다 더 산만하고 의외성이 넘쳐난다. 사람의 취향과 감각은 초 단위로 변수가 발생한다. 그래서 재밌다. 직접 자료를 찾고, 진짜 좋아하고, 내가 매혹되는 것들을 모아야 한다.
- ‘삽질할 시간, AI가 우리에게 선물한 것’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