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저자의 글
1장_ 기도의 향
1. 약한 자를 배려하세요
2. 잘못과 보상
3. 공평과 너그러움
4. 은혜의 핵심은 보혈입니다
5. 하나님과 교제, 어떻게 할 것인가
6. 하나님을 깊이 만나게 하옵소서
7. 성경과 십자가를 함께 붙드세요
8. 거룩에 힘써도 넘어지는 자를 위하여
9. 거룩에 힘쓰라
10. 기도의 향
11. 하나님의 일, 어떻게 해야 할까
2장_ 지명하여 부르심
12. 우리가 알아야 하는 한 가지
13. 동행
14. 얼굴의 광채
15. 자원하는 마음으로
16. 지명하여 부르심
17. 넉넉한 믿음
18. 언약궤의 두 부분
19. 함께 협력하여
20. 명령하신 대로
21. 신자의 특권
[본 문]
(…) 약자든 강자든 모두 죄인이에요. 이걸 사람들이 대개 놓쳐요. 아무도 죄를 이길 수가 없어요. 약자는 약자대로 늘 죄를 짓고 강자는 강자대로 죄를 지어요. 아무리 좋은 의도나 취지라 해도 인간은 늘 욕심으로 가득 차 있어요. 죄의 지배를 당하는 사람이 주체가 되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갈등은 지구상에서 없어지지 않습니다. 강자와 약자의 대결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약자였지만 얼마 후에 이 사람이 강자가 되어 칼자루를 쥐게 되면 역시 다른 사람들을 종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이게 우리가 아는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없는 자와 있는 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평화롭게 사는 유토피아를 인류는 얼마나 갈망합니까? 그러나 사람이 죄인인 이상 불가능해요. 사람이 주체가 되면 필히 엉뚱한 결론이 나고 말아요.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가능성이 딱 한 가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체가 되는 겁니다. 오늘 본문의 법은 약자와 강자, 없는 자와 있는 자에 관한 법이에요. 그런데 이 법은 조건이 있어요. 하나님이 이 법의 주체자가 되고, 우리 삶의 주체자가 되시는 겁니다. 그때만 이 법은 실행할 수 있어요. 오늘 말씀은 법률이에요. 단순히 삶에 대한 지침이 아닙니다. 뒤에 나오는 법들 역시 근거가 있어요. 법의 내용보다 중요한 것은 이 법의 근거입니다. 뿌리입니다.
십계명을 말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말씀하셨어요. 20장 2절에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구원해 낸 네 하나님 여호와라”, 이 말부터 하나님이 시작하세요. 이게 무슨 의미겠어요? 너희 모두 원래 애굽 땅에서 똑같이 다 종이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해방하셨어요. 너도 과거에 종이었지만 은총으로 구원받았다는 걸 잊지 말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너희 집에서 종노릇하는 이 사람을 종으로 취급하지 말라는 겁니다. 같은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같은 신앙 공동체의 가족으로 여겨 달라는 하나님의 하소연이 깔려 있어요. (…) pp. 16-17 「약한 자를 배려하세요」 중에서
(…) 산 아래 있는 백성들은 모세를 한 달 이상 못 본 거예요. 모세도 눈에 안 보이죠, 하나님도 눈에 안 보이죠. 그러자 백성들 마음이 초조해지고 불안해졌어요.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또 다른 지도자아론을 강요합니다. 이 백성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해요. “우리를 위하여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말은 대단히 중요한 말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이미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니까요. 그런 점에서영적인 위상이 우리와 같아요. 그런데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 된 상태에서 “우리를 위해서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렇게 강요합니다.
백성들이 지금 요구하는 이 신은 어떤 신일까요? 그건 눈에 보이는 신입니다. 참 아이러니한 것 같아요. 믿지 않는 사람들도, 심지어 믿는 사람들도 인간은 끊임없이 눈에 보이는 신을 추구해요. 내 눈으로 확실히 볼 수 있는 신, 내 귀로 확실히 들을 수 있는 신, 내 손으로 분명히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신을 원해요. 그래야 아무래도 더 확실하지 않겠습니까? 안 보이는 신, 아무리 손을 휘저어 봐도 잡히지 않는 신보다는 눈에 보이는 신, 들을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는 신이 더 확실하잖아요? 이렇게 확실한 신을 옆에 두고 있어야 마음이 덜 불안하지요. 안심되지요.
육신의 눈으로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신 같으면 좀 더 믿음이 생기지 않을까요? 좀 더 쉽게 믿어지지 않을까요? 보이는 신이니까 더 가까이 갈 수 있고 더 친밀감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이게 현실이에요. 그러기 때문에 지금도 온갖 우상들이 난무하고 있지 않습니까? 많은 부적이 성행하는 이유도 같아요.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고 그걸 가지고 있으면 좀 더 안심돼요. 백성들이 “만들라”고 요구합니다. 자신들을 인도할 신을 만들래요. 매우 의미심장한 표현입니다. 아론을 향해서 신을 만들어내라고 으름장을 놓는 거지요.
이 말대로 한다면 이 신을 만드는 주체가 누굽니까? 누가 만드는 거예요? 사람이 만드는 거예요. 내가 만드는 거예요. 결국, 사람인 내가 신을 창조해 냅니다. 내가 만든 신이에요. 따라서 내가 신의 주인이 돼요. 이게 모든 우상숭배에 숨어있는 원리예요. 우상숭배는 겉으로 보면 형식적으로는 사람이 우상을 섬기는 것처럼 보여요. 그러나 사실은 우상을 내가 제작하고 만들어낸 우상을 나를 위해서 마음껏 조종하는 거지요. 우상은 나한테 종노릇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것이 세상에 있는 많은 신과 많은 종교의 핵심이에요. 질문은 이 많은 종교와 신들은 누가 컨트롤하는가, 누가 움직이고 누가 조정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컨트롤러예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기 마음대로 움직여요. 그러므로 다 가짜 신들이죠. 우리가 우상이라고 부르는 진실과 핵심이 바로 그렇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성경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완전히 정반대지요. 성경을 보면 하나님과 백성 관계에서 누가 컨트롤합니까? 누가 이끌어 가십니까? 하나님이세요.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하나님이 백성들을 끌어가시는 유일한 컨트롤러가 되세요. (…) pp. 144-146 「우리가 알아야 하는 한 가지」 중에서
(…) 대부분 인간에겐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하나님이 안 보이고 하나님 음성이 안 들리고 빛이 안 보이니까 더욱 적극적으로 죄를 짓게 되지요. 자기도 모르게 마귀의 종노릇 하게 됩니다. 어둠의 왕인 마귀를 계속 따라가면서 종노릇을 하며 삽니다. 매일같이 신문, TV 뉴스에 나오는 온갖 비참, 불행, 고통은 그 결과들입니다. 희한한 건 우리 인생이 겪는 인간의 고통과 비참함은 뭘 해도 완전히 사라지질 않아요. 어떤 성공과 성취를 이루어도 이 고통과 불행과 비참함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를 못해요.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고통과 불행도 그 원인이 돈 때문은 아닙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돈이 없고 집이 없고 소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많이 생각하지요. 하지만 진짜 원인은 돈 때문도 아니고 다른 사람 때문도 아니래요.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죄가 망가뜨렸기 때문입니다. 죄가 내 영혼을 부서뜨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산산조각 내버렸다는 거예요. 그게 불행의 진짜 이유랍니다. 죄와 하나님은 정확하게 반비례 관계입니다. 죄와 가까워지면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게 돼 있어요. 죄를 사랑할수록 하나님은 점점 더 미워하게 돼 있습니다. 통계를 보니까 코로나 기간을 포함한 지난 4년 동안 우울증 환자가 30퍼센트나 늘어났대요. 우울증 때문에 쓰는 비용도 훨씬 많아졌습니다. 우울증은 이제 낯선 단어가 아니지요. 호르몬 작용 때문에 우울증이 올 수 있어요. 코로나 기간에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숨어서 지내는 것처럼 지냈어요. 교회는 주눅이 들어 지난 3년을 지냈어요. 이런 시간을 지나면서 우울증이 올 수도 있죠. 또 운동 부족으로 그럴 수 있어요. 아니면 우울증이 쉽게 올 수 있는 기질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다른 면으로 보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러니까 영적인 해석이 필요해요. 신자도 영적인 침체라는 것을 겪지 않습니까? 영적인 우울증이라는 걸 겪어요.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과 관계가 약한 겁니다. 이게 신앙의 핵심이고 이 관계가 튼튼해야 하고 이 관계가 늘 살아있어야 하고 이 관계가 친밀해야 합니다. (…) pp. 224-225 「언약궤의 두 부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