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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묻는 사회 - 한국형 연령차별주의와 멸칭 문화

    • 정회옥 저
    • 한겨레출판
    • 2026년 05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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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품 규격 정보
    상품상세정보
    ISBN ISBN-13 : 9791172133993
    쪽수348쪽
    크기기타 규격
    제품구성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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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역사 >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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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소개

    우리는 차별하기 위해 몇 살이냐고 묻는다

     

    잼민이부터 틀딱충까지 한국의 나이 멸칭 문화와

    나이가 많아서, 적어서, 같아서 혐오하는 나이 전쟁의 실체

     

    과거의 기성세대와는 다르게 활력이 넘치고 트렌드에 민감한 40, 혹은 스스로 젊다고 착각하면서 꼰대짓을 일삼는 40대를 지칭하는 영포티는 멸칭일까, 아닐까? 공공장소에서 매미처럼 시끄럽게 떠드는 어르신을 가리키는 할매미? 귀엽고 재미있는 어린이를 일컫는 잼민이? 한 번이라도 입 밖으로 불러 보았거나 머릿속으로 떠올린 적이 있다면 당신은 대한민국에서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나이 전쟁에 참전 중인 셈이다.

    틀딱충, 연금충, 개저씨, 김여사, 급식충, 초글링등 한국 사회는 나이 멸칭 문화에 점령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년, 중년, 청년, 어린이 및 청소년 등 전 연령과 세대를 지칭하는 나이 멸칭이 존재하고 이를 통해 서로가 서로에 대해 조롱과 경멸을 주고받는다. 여러 연령대 중에서도 특히 사회적 약자이자 소수자인 아동과 노인에게 쉽게 비하와 경멸의 화살이 향한다. 이는 우리가 지독한 연령차별주의(Ageism) 사회를 살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나이는 사람을 판단하는 가장 쉽고 유용한 기준이다. 그래서 사람을 분류하고 평가하는 데 흔히 사용되지만 때로 해악, 불이익, 부당함을 초래하고 세대 간 결속을 약화시키기도 한다. 즉 상대의 나이가 많아서, 적어서, 혹은 같아서편견을 갖고 차별하는 행위가 연령차별주의. 이것이 심각한 이유는 사회가 연령을 기준으로 개인의 능력과 태도를 판단하여 기회와 자원을 배제시키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갖기 때문이다. 그 결과 특정 연령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물론이고 그들에게 불리한 법 제도, 시스템, 규정 등이 만들어질 수 있다. 또 연령차별은 인종차별이나 성차별과 달리 피해 당사자들이 차별에 문제의식을 느끼거나 저항하지 않는다. ‘나이는 누구나 먹는 것이라는 평등의 논리에 가려져 그 위험성이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는 모두를 차별의 피해자이자 가해자로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어쩌다 연령차별주의 사회가 되었으며, ‘나이 전쟁을 종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작 《아시아인이라는 이유》 《한 번은 불러보았다》 《차별의 나라에서 행복한 사람들》을 통해 인종, 국적, 지역, 성별, 장애, 빈부, 소수자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차별과 혐오 문제를 꾸준히 다뤄 온 정회옥 교수는 이번에 나이로 화두를 넓혔다. 그의 신작 《나이 묻는 사회》는 세대별 나이 멸칭의 종류와 유래, 의미와 부작용을 살펴보고 정치, 사회, 대중문화, 일상 등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연령차별주의의 사례를 소개한다. 이런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한국형 연령차별주의가 발생하게 된 역사적·문화적 배경과 그 특징을 분석하고 궁극적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개인적, 사회적, 제도적 방안을 모색한다.

    한국은 처음 만나면 서로의 나이를 묻는 게 일상적인 나이 묻는 사회. 관계를 시작할 때 나이를 먼저 확인해야 마음이 놓이는 문화를 가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이를 기준으로 관계를 정립하는 데 익숙하지만, 나이를 잠시 내려놓고 한 사람을 온전히 마주하는 일에는 서툴다. 문화평론가 이라영의 추천처럼 나이가 단지 숫자에 불과한 것도 아니지만, 나이가 한 사람의 모든 정체성을 잠식하는 것도 반대하고 경계해야 한다. 연령대 간 유대와 연대를 방해하고 단절과 반목을 조장하는 나이는 기꺼이 묻어 버려야한다. 이 책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나이 전쟁의 본질을 이해하고 우리 안에 내면화된 차별의 시선을 거두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다. 이 책을 통해 나이라는 보이지 않는 족쇄가 어떻게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규율하고 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목차

    [목 차]

    추천사

    들어가는 말: 나이라는 억압이 만들어 낸 혐오와 차별

     

    1장 한국 사회를 집어삼킨 나이 멸칭 문화

    나이는 어떻게 존재와 삶을 규정하는가

    연령차별주의 사회, 한국

    틀딱충, 할매미, 연금충으로 불리는 노년

    개저씨, 영포티, 김여사가 되어 버린 중장년

    MZ, 삼포 세대, 욜로의 틀에 갇힌 청년

    급식충, ~린이, 잼민이라 조롱받는 아동·청소년

    혐오와 분열을 조장하는 각국의 나이 멸칭

     

    2장 우리는 왜 나이에 집착하는가

    근대화, 산업화를 떠받친 경로사상과 장유유서

    나이 전쟁의 시작과 양상

     

    3장 정치사회 이슈로 떠오른 연령차별 문제들

    어르신을 어르신이라 부르지 못할 때

    몇 살까지 일하고 싶으세요?

    대한민국은 노인정치의 나라

    언제 운전대를 놓아야 할까

    나이 많은 사람이 이기는 선거

    40세 이상만 대통령 자격이 있다?

    나이에 따라 투표권이 다른 평등선거

    젊으니까 좁은 집에 살아도 괜찮아

    대견하다는 정말 칭찬일까?

     

    4장 일상에서 마주친 연령차별의 단상들

    교통약자석인가, 노인석인가

    버릇없는노인과 노인 연령 기준

    황혼육아에서 박카스 할머니까지

    더 이상 어리지 않은 여성의 한계

    28세 이상의 미스코리아를 꿈꾸며

    나이 들고 싶지 않은 사회의 저속노화 열풍

    금쪽이들에게도 정당한 권리가 있다

    노키즈존과 노시니어존, 다음은 누구?

     

    5장 나이 묻지 않는 사회로 나아가기

    서로 다른 나이를 살지만 하나의 삶을 공유하다

    나이보다 중요한 가치들을 위하여

     

    참고문헌


    [본 문]

    우리 사회는 어떨까? 강산이 변한다는 서른 해의 간격을 넘어 서로 친구가 될 수 있는 사회일까?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는 아직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처음 만나면 자연스럽게 서로의 나이를 묻는다. 관계를 시작하기에 앞서 나이를 먼저 확인해야 마음이 놓이는 문화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는 관계의 방향을 정하는 일종의 좌표로, 나이를 알아야 말을 놓을지 높일지, 어느 자리에 서야 할지를 비로소 정할 수 있다. _7

     

    사실 나이에는 역연령(chronological age)’기능적 연령(functional age)’이 있다. 역연령은 출생 이후의 시간 흐름에 따라 매겨지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나이를 뜻한다. 반면 기능적 연령은 개인이 특정 역할이나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달라지는 나이다. 그래서 60세라 하더라도 기능적 연령은 35세처럼 활기찰 수 있고, 반대로 30세라 하더라도 기능적 연령이 이미 70세에 이르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 두 가지 차이를 외면한 채 역연령에만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한다. 한국인들은 삶의 전 과정에서 특정한 나이에 맞는 직업, 언어, 태도, 결혼 등을 갖추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으며 살아간다. _21~22

     

    나이 차별은 한국 사회를 세대 간 분열시키기도 하지만, 동일 세대 내에서의 분열도 야기한다. 한 연구에 의하면, 노인들은 본인이 속해 있는 노인 집단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때로는 동일시하고 때로는 자신과 분리하기도 했는데, 노인으로서 활동적 삶을 영위할수록 다른 노인들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자신과 구분 짓는 경향이 컸다. (중략)

    노인 멸칭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노인들이 서로를 혐오하는 노노 혐오현상이 생긴다. 탑골공원 내 급식소를 탐방한 기사에 따르면, 노인들이 서로 대화하는 풍경을 상상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노인들은 지저분하다’ ‘냄새 난다’ ‘무섭다등의 이유를 들어 친구를 사귀거나 말을 걸고 싶지 않다고 응답했다. “나는 저들과 다르다고 말하는 노인들은 서로를 타자화하며 거리를 두고 있었다. _45

     

    주린이, 요린이, 헬린이언뜻 귀엽게 들리는 이 용어는 어린이에 대한 멸칭이다. ‘주린이주식+어린이’, ‘요린이요리+어린이’, ‘헬린이헬스+어린이의 합성어로 각각의 분야에서 초보라는 의미다. 이 용어는 어린이가 초보처럼 미숙하다는 편견이 들어간 멸칭이다. 어린이는 분명 나이가 어리지만 그렇다고 모든 분야에서 미숙한 존재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린이라는 표현은 이미 보편적으로 사용된다. 우리 사회가 어린이를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보기보다는, 모든 영역에서 초보자이며 미성숙한 존재로 보는 연령주의적 편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_80

     

    나이 차별은 다른 나라에서도 일어난다. 우리나라의 나이 차별이 전 연령대에 걸쳐서 더 가열차게 발생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서 사용되는 나이 멸칭 중 고연령층을 향한 것으로 기저(geezer)’가 있다. 미국에서 이 용어는 늙은이, 꼰대, 또는 괴팍한 노인이라는 부정적 뉘앙스로 사용된다. 단순히 늙었다는 것을 넘어 고집 세고 불평 많고 공적 공간에서 민폐를 끼치는 나이 든 사람을 기저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의 틀딱충또는 할매미의 미국판이다. 틀니를 낀 채 딱딱 소리를 내며 권위적으로 잔소리를 하거나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떠들어 민폐를 끼치는 노인들처럼, 기저도 짜증을 유발하는 존재로 희화화된다. _89

     

    한국식 집단주의는 여러 특징 중에서도 온정적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특징을 가진다. , 조화, 협동, 겸손, 배려 등을 중요하게 여기며 상대방과 최소한의 친근함과 정서적 편안함을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처음 관계를 맺을 때도, 온정적 인간관계가 반영되어 나이, 가족관계, 고향, 출신 학교 등 호구 조사라 불리는 사적인 질문을 꺼리지 않는다. 외국에서는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이런 사적인 질문이 잘 안 나오는 데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사적인 질문을 통해 공통분모를 찾으려 한다. 처음 만났을 때 공통점을 찾는 것은 우리관계를 시작하기 위해 객관적 단서를 찾으려는 노력이다. _111

     

    무엇보다 우리나라처럼 세계사에서 유례없는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뤄 낸 나라는 성취에 민감하다. 노인들에게는 과거에 고착되어 근대의 성취로부터 소외된 무력한 타자의 이미지가 주어진다. 흔히 인정하고 싶지 않고 바람직하지 않은 자신의 특성이 타자에게 투영된다. 예를 들어 서양의 오리엔탈리즘은 서양이 자신의 속성 중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간주하는 속성을 동양에 투사하는 것으로, 동양은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이처럼 노년에 대한 한국 사회의 타자화도 선진 문명 성취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강박과 관련되어 있다. 우리 사회에서 노인은 한국 사회가 가장 싫어하고 꺼리는 속성을 투사하는 존재가 되었는데, 그 속성이 바로 급속한 발전에 저해가 되는 비생산성’ ‘느림’ ‘지체. _122~123

     

    나이에 따른 구별과 위계는 한국인들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갈등을 유발하고 기회를 제한하고 있다. 교통약자석을 둘러싼 갈등이 이를 잘 보여 준다. 외국에서도 노인이나 장애인들을 배려하기 위한 교통약자석을 많이 운영하지만 우리처럼 자리의 주인을 따지고 충돌하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이런 갈등은 우리 사회가 유난히 강하게 지니고 있는 나이 중심의 문화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정작 필요한 것은 나이를 따지는 태도가 아니라, 연령과 상관없이 자리에 앉아야 할 약자를 먼저 배려하려는 마음 아닐까. _233

     

    평균수명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노인 기준 연령을 그대로 65세에 고정하면 사람들의 노동기간은 짧아지고 퇴직 후 기간은 늘어나게 된다. 이는 단순히 지하철 무임승차 문제만이 아니라 노동시장, 연금제도, 정년제, 교육제도 등 사회 전반의 조정이라는 거대한 변화를 동시에 요구한다. 여기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노인 빈곤 문제나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더욱 악화하는 상황에서 막연하게 노인 연령과 복지 수급 연령만 높이면 안 된다. 노인 연령 상향 조정은 결국 연금 수급과 노인 의료비 지원 등 사회보장 혜택을 받는 연령의 상향 조정을 위한 초석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노인은 기본적으로 계급적 개념이라는 주장이 있다. 정치인이나 재벌 등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노인이라 불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서민에게만 노인이라는 칭호를 붙이고, 노인이 되는 것은 보통 사람들에게만 문제가 된다. _242~243

     

    아동 예능은 즐거움을 포장한 채 사실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아동을 일정한 틀에 가두는 연령차별적 행태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 준다. 무엇보다 등장하는 어린이는 모두 말썽을 일으키는 존재고, 종종 어른은 말썽을 일으키는 아이로 인해 고통을 받는 입장으로 묘사된다. 아이들은 욕하고 떼쓰며 발길질하는, 악마화된 대상으로 그려진다. 그래서 한 후배는 이 프로그램을 보고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프로그램 속에서 아동에게 문제가 드러나면 전문가가 짜잔하고 등장해 금쪽 처방을 제시하는 식의 연출은, 제작 과정에서 아동의 초상권과 인권이 충분히 보호받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_277~278

     

    연령대마다 따라붙는 편견과 차별은 언제나 부정적인 모습만을 부각시킨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맞이하게 될 인생의 여러 단계를 설렘이 아니라 두려움과 불행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한국이 행복하지 않은 나라에 꼽히는 것도 이런 나이에 대한 차별이 한 측면을 담당하고 있다. 나이에 대한 부정적이고 왜곡된 전제가 해소될 때 우리는 생애주기별로 행복한 미래를 그릴 수 있다. 아이는 미성숙하고, 청년은 노력과 열정이 부족하며, 중년은 꼰대처럼 꽉 막혀 있고, 노년은 퇴화의 시기로 보기만 하면 우리는 삶에 대한 창조적 해석이 불가능하게 된다. 어린 시절은 어린 시절대로, 청년은 청년대로, 그리고 중년 및 노년은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음을 알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제도를 만들어 나갈 때 모두가 행복한 사회가 가능할 것이다. 이제 인생에서 각 연령대별로 어떤 긍정적인 의미가 있는지를 우리 사회가 제시해야 한다. _321

    추천사

    나이는 어떻게 정치가 되는가. 나이에 관한 이 책의 많은 문제 제기는 생각해 볼 만한 질문들이다. 논쟁적인 내용도 있고, 적극적 시정 조치가 필요한 사안도 있다. 혐오와 차별이 극심해지면서 오늘날 멸칭의 생산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다. 생애주기별로 멸칭이 존재하니 누구라도 피해 가기 어렵다. 차별은 왜 이렇게 촘촘하고 꼼꼼하며 부지런하기까지 한가.

    나이가 단지 숫자에 불과한 것은 아니지만, 나이가 한 사람의 모든 정체성을 잠식하는 것에도 반대한다. 일단 만나면 나이부터 묻고 보는 일상적 습관을 타파하자. 나이는 묻어 버리고제대로 사람을 볼 수는 없는 것일까. 이 책을 읽으며 독자들이 나이에 관한 우리의 닫힌 문화에 의구심을 가득 품고 새로운 정치적 상상을 해 보길 바란다.
    _이라영(문화평론가, 《쇳돌》 저자)

    출판사 서평



    차별과 혐오의 무기가 된 생애주기별 맞춤형 나이 멸칭들

     

    치열한 나이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는 각 세대가 서로를 향해 나이 멸칭이라는 총알을 퍼붓고 있다. 생애주기별로 멸칭이 존재하니 누구라도 이 총탄을 피해 가기 어렵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 우리 삶을 구조화하고 세계를 바라보는 사고의 틀을 만들어 낸다. 증오와 멸시의 언어는 느린 속도로 개인들 안에 스며들어 잔혹한 행동으로 발현한다. 단순히 농담과 유머로 여겼던 나이 멸칭이 우리 사회에 차별과 혐오 문화를 어떻게 고착시키는지 명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노인들의 신체적, 정신적 능력을 빗대어 만들어진 멸칭에는 노화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이 짙게 담겨져 있다. 틀니를 희화화한 틀딱충’, 감소된 청각 능력 때문에 크고 요란한 목소리를 내야 하는 행태를 비꼰 할매미’, 벌레처럼 사회에 기여하는 바 없이 연금만 축내는 이미지를 형상화한 연금충등 멸칭들은 노인을 무력하고 쇠약하며 죽음과 가까운 존재로 그린다.(31) 쇠퇴의 이미지는 중장년층에게도 이어진다. 부족한 생산력과 창의력 때문에 시대에 뒤떨어지고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편견, 권위적이고 무례하며 불평등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이미지, 재미없고 권위만 앞세우고 청년들을 한심하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 어려 보이려는 이중적 태도, ‘꼰대, 개저씨, 김여사, 영포티는 이를 조롱하는 멸칭이다.(47)

    원래 마케팅·트렌드 용어였던 ‘MZ, 삼포 세대, 욜로 세대는 청년들에 대한 노년·중장년 세대의 무시와 비판의 시선이 더해지면서 그 의미가 변질되었다. 이 멸칭들은 청년을 공적인 가치에는 관심이 없고 개인 욕구에만 충실한 이기적인 존재로 그린다. 미래를 위한 노력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의욕도 없고 게으르며 불성실한 세대, 한마디로 무능하고 부족한 집단으로 매도하는 것이다.(66) 미래의 희망이자 사회 변화의 원동력이 될 청소년과 어린이도 나이 멸칭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급식충, 잼민이, ~린이등에는 어린이와 청소년이 독립적 인격체,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이기보다 모든 영역에서 초보자이며 미숙하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인식과 평가가 내포되어 있다. 문제는 차별어를 듣고 자란 아이들은 차별하는 어른이 되기 쉽다는 사실이다.(75)

    한국 사회는 나이라는 범주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각 나이대마다 멸칭을 만들어 붙였고, 이제 나이 범주는 그 범주에 속한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는 수단이기보다 부정적 고정관념을 연상시키는 기능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고령자를 멸칭으로 부르는 행위는 고령자 개인의 문제로 그치는 게 아니라 사회구조적 문제로 연결된다. 젊은 세대에서 노인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늘어나면, 향후 이들이 노인을 위한 복지 제도를 결정하게 될 때 부정적 편견이 작동해 노인 복지는 감소하고 노인 빈곤, 노인 자살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이다.(46) 이러한 우려는 전 연령대에서도 마찬가지이며, 나이 멸칭을 단순한 언어적 유희로 간주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하지만 나이 멸칭의 폐해는 한국형 연령차별주의의 한 단면일 뿐이다. 우리는 정치, 사회, 대중문화 등 전방위에서 차별과 혐오의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인간의 가치를 생산성과 연결시킨 한국형 연령차별주의

     

    한국 사회는 단기간에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룬 역사적·문화적 배경 때문에 생존을 위한 비교와 경쟁이 일상이 되었다. 그래서 종종 생산성=인간의 가치라는 등식이 성립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신체적·정신적 능력이 저하됐거나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노인과 어린이,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중년, 불평불만과 남 탓만 일삼는 청년은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경멸과 배제의 대상이 된다. 죽음과 가깝거나 자기 관리가 되지 않는 존재도 같은 맥락에서 차별을 받는다.(117)

    정년제는 대표적인 제도적 연령차별이다. 일정한 나이가 되면 사람이 갑자기 무능력해지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퇴직을 시키는 것이다. 근로자의 의사에 반하는 연령 기준 강제퇴직은 정당한 사유 없이 특정 연령층을 다른 연령층에 비해 다르게 처우하는 것이므로 헌법상 행복추구권, 직업 선택의 자유, 평등권, 근로권 등 기본권 침해 소지가 있다. 해외에서는 정년제가 폐지되거나 연장되는 추세이며, 정년 연장의 기준을 사회보장제도와 연계하여 설계하고 있다.(156)

    고령자 운전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는 관련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커지고 있다. 노화가 인지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교통사고는 운전자의 나이보다는 운전 당시의 몸 상태나 피로도가 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안전한 사회를 위해서라면 늙은 몸과 나이가 아닌, 위험한 운전을 하는 행동을 규제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노년층의 운전을 무조건 금지하기보단 면허 제도를 촘촘히 설계해야 한다.(178)

    우리나라의 정치 영역에서는 연령차별적 상황을 자주 맞닥뜨릴 수 있다. 최다 득표자가 2명 이상이면 연장자가 당선되다는 규정, 이른바 장유유서 선거가 대표적이다.(188) 또한 다른 나라에 비해 40세 이하 젊은 정치인의 수가 압도적으로 적고, 국회의원·지방의원·교육감 등과 다르게 대통령 선거에는 40세 이상인 사람만 출마할 수 있다는 규정도 존재한다.(197) 나이가 어릴수록 더 많은 투표권을 가지고, 나이가 많을수록 더 적은 투표권을 가져야 한다는 차등 투표제·여명 투표제도 세대 간 갈등을 조장하는 불평등한 발상이다.(206)

    청년층의 주거 안정과 저출생 극복 대책 마련의 일환으로 마련된 공공임대주택 제도의 경우 세대원 수별 규정된 면적이 너무 좁게 산정되었는데 이는 젊으니까 좁은 데 살아도 괜찮다는 낡은 편견이 바탕인 정책이다.(212) 또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건네는 대견하다혹은 기특하다는 칭찬에는 상대를 동등한 존재로 존중하지 않고 미성숙하거나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인식이 깔려 있다.(219) 이 외에도 어르신 호칭 문제, 임금피크제, 황혼육아와 돌봄노동, 저속노화 열풍, 노키즈존과 노시니어존 등 우리 사회에는 참으로 다양한 연령차별 문제가 숨어 있다. 하지만 나이에 대한 제한을 모두 없애는 방향은 결코 좋은 해결책이 아니다. 지나치게 나이에 얽매인 사회는 뚜렷한 한계를 지니고 있음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제도적 맥락에 맞는 나이 기준에 대한 논의를 가져야 한다.

     

     

    어떻게 나이 전쟁을 끝내고 나이 묻지 않는 사회로 향할 것인가

     

    전통적으로 한국 사회는 사회적 관계에서, 평등함이 아닌 우열 또는 상하의 차등을 두었다. 이는 불평등을 전제로 한 유교 사상이 깊게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여기에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냉전 시대, 군사 독재 정권, 국가 주도 경제 성장을 거치면서 집단주의적 성향이 강해졌다. 나이에 따른 서열은 우리 사회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 규범으로 소중히 여겨져 왔다. 하지만 산업화로 인한 자본주의의 발달과 개인주의 대두, 평등한 정치권력을 추구하는 민주화는 우리 사회의 가치 혼란을 가져왔다. 근대화 이후 그 기본 규범이 무너지고 세대 간 충돌이 발생했으며 각 연령대마다 맞춤형 편견과 차별이 혼재하게 되었다.(48) 4차 산업 혁명, AI 기술의 보편화 등 사회가 매우 빠르게 변화함에도 여전히 밀도 있는 사회적 논의와 나이에 대한 도덕적 규율의 재창출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나이를 묻는 사회는 나이에 따른 여러 긴장을 발생시킨다. 한국 사회는 세대 간에 서로를 이해할 교육 제도나 환경이 충분하지 못하다. 저자는 나이를 묻지 않고 나이와 상관없이 어우러져 사는 사회, 연령 블라인드(age-blind) 사회야말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지향점임을 강조한다.(322)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 간 접촉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서울시의 한 지붕 세대 공감’, 네덜란드의 후마니타스’, 프랑스의 한 지붕, 두 세대처럼 고령층과 청년층 간 상호작용을 증진시킬 수 있는 유용한 프로그램이 많아져야 한다. 또 어린이집과 노인 복지 시설이 함께 있는 세대 통합 돌봄 센터, 세대 간 멘토링 프로그램 등도 효과적이다.(310)

    세대 간 인식 변화를 위한 교육도 중요하다. 학교 교과서에서 퇴행, 기능 저하처럼 부정적 용어를 사용하는 대신 노년기에도 새로운 발달이 시작될 수 있고 생애 단계마다 중요한 발달 과정을 거친다는 내용이 반영되어야 한다.(316) 가상현실 기술을 사용해 노년 체험, 어린이 체험을 해 보는 것은 다른 연령대에 대한 추상적인 이해를 넘어 실질적인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법 제도적인 개선도 필요하다.(318) 우리나라에도 연령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존재하지만 실제 현장과 집행에는 괴리가 있다. 세대 간 교류와 통합을 전담하는 정부 기구를 설치하거나 정부가 민간단체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제도가 필요하다.(320)

    나이는 삶의 한순간이자 과정일 뿐이다. 모든 세대가 나이가 주는 편견에서 자유로워질 때 우리는 비로소 서로의 삶을 공유하고 연대하는 성숙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단순히 한국형 연령차별주의의 실태를 고발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약자인 어린이였으며 반드시 노인이 될 것이라는 삶의 진리이자 역설을 일깨우며 나이 묻지 않는 사회로 나아갈 공존의 길을 선사한다.

    저자 소개
    저자 : 정회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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