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들어가는 글
PART 1 인생: 무너지는 삶의 질문에 답하다
1 삶의 방향을 잃은 것 같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요?
2 모든 것을 잃고 불안한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나요?
3 가난에 처한 사람에게 성경은 어떤 소망을 주나요?
4 견딜 수 없는 비극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나요?
5 비극 이후에 어떻게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나요?
6 고난 속 하나님이 저를 실망시키실 때 어떡해야 하나요?
7 쓴 뿌리를 어떻게 뽑을 수 있나요?
8 인생을 허비하는 듯할 때 하나님은 어떻게 일하시나요?
9 고난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 무엇을 할 수 있나요?
10 공공의 비극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PART 2 질병: 약해지는 몸과 마음의 질문에 답하다
11 질병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인가요?
12 하나님은 정말 우리의 모든 질병을 고치시나요?
13 만성적인 통증이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이 되나요?
14 하나님이 치유를 거절하실 때 어떻게 해야 하나요?
15 삶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소망을 어떻게 품나요?
16 태어난 날이 저주스럽다고 한다면, 하나님을 모욕하는 건가요?
17 주의력 결핍 장애는 죄인가요?
18 제가 우울증에 걸린 걸까요?
19 우울증을 겪을 때 어떤 말씀을 묵상하면 도움이 될까요?
20 질병을 통해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나요?
PART 3 신앙: 흔들리는 믿음의 질문에 답하다
21 제 삶을 막는 존재는 사탄인가요, 예수님인가요?
22 주권적이고 선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고통을 허락하실 수 있나요?
23 하나님은 어떻게 고난을 통해 고난에서 구원하시나요?
24 고난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인가요?
25 가장 극심한 고난까지 어떻게 감사할 수 있나요?
26 끝없이 고된 삶, 어떻게 기쁨을 찾을 수 있을까요?
27 기도해도 고난이 계속될 때 어떻게 하나님께 보호를 구해야 하나요?
28 항상 기뻐하지 않으면 죄인가요?
29 자살한 사람도 천국에 갈 수 있나요?
30 하나님이 주권자시라면, 세상은 왜 고통으로 가득한가요?
나가는 글
출처
[본 문]
02 모든 것을 잃고 불안한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나요? 중에서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러한 불안의 감정과 관련해 어떤 도움을 주십니까? 성경에서 불안을 가장 길게 다루는 본문은 마태복음 6장 25-34절입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네 번이나 “염려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성경은 불안이나 두려움을, 예수님을 신실하게 따르는 사람은 전혀 경험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초대하지 않아도 마음속에 불쑥 솟아오르는 것으로 묘사하며, 이를 그리스도인의 관점, 그리스도인의 접근 방식, 그리스도인의 방법으로 다룰 대상이라 가르칩니다.
성경은 단지 “염려하지 말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너희 염려를 주께 맡기라”라고도 말합니다. 아마 당신에게도 염려가 있을 것입니다. 그 염려를 주께 맡기십시오(벧전 5:7).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믿음의 선한 싸움”(딤전 6:12)으로 묘사합니다. 그 싸움의 큰 부분은, 우리의 염려를 성경이 말하는 대로 처리하는 것입니다. 곧, 주님께 굴려 보내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그분의 능력을 기꺼이 나타내시며, 우리의 염려를 우리 대신 짊어지기 원하십니다.
우리는 이 감정의 무력한 피해자가 아닙니다.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불안이 내 주인이다. 나는 피해자다. 나는 이 감정에 아무 영향도 줄 수 없다.” 그런 생각은 사실이 아닙니다.
04 어떻게 하면 견딜 수 없는 비극에서 벗어날 수 있나요? 중에서
디모데전서 1장 15절과 고린도전서 15장 9절을 보면, 바울은 그 일을 결코, 결코 잊지 않았다는 사실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인을 죽였던 자, 더 나아가 그리스도를 박해했던 자라는 사실이 주는 찔림과 공포를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의도적으로 그리스도를 죽이려 하지는 않았지만, 그리스도인을 죽이려 했던 일은 분명히 의도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의 생애 말년에 기록된 디모데전서에서 바울은 여전히 그렇게 느낀다고 말합니다. 그는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 곧 ‘가장 큰 죄인’이라고 부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9절에 따르면,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죽였고, 이로써 주님을 박해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하려는 요점은, 자매님의 비극이 바울의 경우와 같다는 뜻이 아닙니다. 제 요점은 바울의 삶과 과거에는 끔찍한 일이 있었고, 이는 그가 실제로 행한 일이었는데, 그는 그 일을 결코 지우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그 일을 ‘극복하고 넘어선’ 적이 없었습니다. 그 일을 생각하고 의미를 되새기는 일을 멈춘 적이 없었고, 그 일은 그의 삶에서 감정적으로 어떤 역할을 계속해서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는 제안은, 망각이나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이 금하시는 일이지만) 그 끔찍함을 축소하는 데서 해답을 찾으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기억하고, 인정하고, 바울이 보여 준 초자연적인 방식, 곧 슬픔과 잘못을 함께 지고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이 방식은 사역을 마비시키지 않고, 신비로우면서도 고통스럽게, 심지어 아름답고 더 깊어지게 합니다.
디모데전서 1장 15절의 문맥을 읽고, 그런 가능성을 묵상해 보십시오. 이것이 제 첫 번째 관찰입니다.
06 고난 속 하나님이 저를 실망시키실 때 어떡해야 하나요? 중에서
첫째, 우리는 매일, 단 한 번이 아니라 매일 우리의 짐을 주님께 맡기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시 55:22). 이루어지지 않은 소원은 짐입니다. 매우 무거운 짐입니다. 이 짐을 혼자 지려고 하면, 짓눌리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그러지 마십시오. 그 짐을 주님께 굴려 넘기십시오. 이것이 매일 아침 드려야 할 믿음의 행위입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하나님께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아버지, 제 마음이 이 때문에 얼마나 아픈지 주님은 아십니다.” 그리고 각자의 상황을 고하십시오. “제 마음은 이를 간절히 원하나 눈앞에는 아무 전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선하고 지혜로우시며, 저를 사랑하시고, 저를 위해 그리스도를 보내 죽게 하신 분입니다. 주님은 제게 가장 좋은 것을 결코 아끼시지 않습니다. 저는 이 소원의 짐을 오늘 아침 다시 주님께 맡깁니다. 제가 자유 가운데 걸어가도록 도우시고 길을 보여 주십시오.”
08 인생을 허비하는 듯할 때 하나님은 어떻게 일하시나요? 중에서
이제 자매님께 드리는 적용입니다. 반드시 하루의 할 일 목록을 만드십시오. 할 수 있는 한 그 일을 잘하십시오. 우선순위를 정하고, 중요한 일을 먼저 하십시오. 계획을 세우십시오. 최선을 다하십시오. 필요하다면 관련된 책을 읽어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 계획이 현실이라는 바위에 부딪혀 산산이 깨질 때(많은 날이 그럴 것입니다), 평안과 자유 가운데 걸으십시오. 하나님이 당신을 평가하시는 기준은 얼마나 많은 일을 해냈는지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이 새롭게 생겨난 비효율의 혼란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지혜와 주권을 신뢰하는지 여부입니다. 비록 그 방식이 보이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이 이를 통해 그분의 영광과 관련된 모든 사람의 유익을 이루신다고 신뢰하는지 여부입니다.
15 삶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소망을 어떻게 품나요? 중에서
마지막으로 한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 이야기가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마셜 셸리(Marshall Shelley)라는 사람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그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는 덴버신학교 교수인데 제 또래이거나 저보다 한두 살 위일 것입니다.
그는 1991년에 자녀를 잃었고, 이에 관한 글을 「크리스채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에 실었습니다. 글의 제목은 “영원까지 이르는 2분”(Two Minutes to Eternity)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토비(아들)는 1991년 11월 22일 오후 8시 20분에 빛과 공기의 세계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의사의 말에 따르면, 8시 22분에 떠났습니다. … 하나님은 왜 2분 동안만 살 아이를 창조하셨습니까?”
그리고 이어서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토비를 2분 동안 살도록 창조하시지 않았고, 맨디를 2년 동안 살도록 창조하시지도 않았습니다. 저를 이 세상에서 40년을 살도록 창조하신 것도 아니며, 혹은 제 날수를 얼마나 더 연장하실지에 따라 그만큼만 살도록 창조하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토비를 영원을 위해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영원을 위해 창조하셨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이 땅에서는 늘 손에 닿지 않는 듯했던 참된 부르심을 발견하게 될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