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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지 않지만 사는 데 괜찮습니다 - 소리 없는 세상에서 청각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 이금자 저
- 슬로디미디어그룹
- 2026년 0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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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ISBN-13 : 9791167853073 |
|---|---|
| 쪽수 | 196쪽 |
| 크기 | A5(148mm X 210mm, 국판) |
| 제품구성 | 단행본 |
- 소설/에세이/시 > 수필
세상의 소리는 아름다웠다!
소리 없는 세상에서 청각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들이 제게 이렇게 말합니다. “긴 세월 소리 없이 살아오느라 고생했어. 이제는 들리지 않아도 괜찮아. 조용함이 더 좋을 나이니까.” “그동안 수고 많으셨고 청각장애인으로 살아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박수를 보냅니다.”
상처의 시간은 지나가고, 결국 남는 것은 사람입니다. 들리지는 않지만, 마음은 충분히 전해진다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이 책은 소리 없는 세상에서 살아온 한 사람의 이야기이자, 청각장애인·건청인·농인의 다름과 이해를 묻는 기록입니다!
[목 차]
머리말 4
1장 나의 어린 시절 13
1. 세상의 소리는 아름다웠다 13
세상의 모든 소리 13
어린 날의 소풍 14
소리가 사라졌다 15
이제 나는 청각장애인이다 18
고립의 시작 20
새로운 시작은 아픔의 시작이다 23
2. 외계인 같은 말소리 24
언어장애가 왔다 24
말을 찾아서 25
세상은 불공평하다 26
3. 말을 배우는 데는 도움이 필요하다 28
들리지 않아도 그대로 살아간다 28
도움 그리고 관심이 필요하다 29
청각장애인을 위한 ‘와우수술’조차도 내게는 31
나는 경계성 장애다 32
4. 학교는 더 이상 즐거운 곳이 아니다 35
질투는 폭력을 불러온다 35
영원히 머릿속에 저장된 이름 36
2장 고통 속에서 꽃을 피우다 41
1. 투명 인간이 되다 41
불혹에 시작한 사회생활 41
수화를 배우며 만난 인연 43
퀼트로 인생을 시작하다 44
은빛 모래알이고 싶다 46
희망은 작은 빛에서 찾아오고 47
회색빛을 무지개색으로 48
2. 낯선 도시 서울, 그 길을 방황하다 50
도시, 낯설다 50
왕따로 얼룩진 인생 51
사회, 그 냉정함과 차가움 53
3. 청각장애인 시선으로 본 함께하는 사람들 55
한 번만 질문하기 55
비행을 시작하다 56
괜찮아, 내가 응원할게 57
고립은 또 다른 길로 안내한다 59
4. 나는 상위에서 활동하는 퀼트 작가다 61
나는 퀼트 작가다 61
나를 부정하는 사람들 64
‘나’와 ‘너’만 있다 65
나는 이렇게 살아간다 67
나는 거북이다 69
들리지 않아도 내 삶은 내 몫이었다 72
없는 것이 더 많지만 지금에 감사한다 73
혼자 가는 길은 외롭다 75
작은 것이 모여 큰 것이 되고 77
3장 청각장애인의 눈물과 고통 81
1. 청각장애인은 지식 성장이 어렵다 81
청각장애와 지식의 성장 81
청각장애인의 생각 82
내 삶의 충만함 84
나의 작은 목표 85
긍정의 자기 인식 87
청각장애인을 응원한다 89
장애는 걸림돌이 아니다 90
2. 청각장애인은 깊이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 92
소리의 부재는 생각을 가다듬을 여유를 앗아간다 92
청각장애인과 농인과의 대화 95
3. 청각장애인과 농인의 차이 98
같지만 다르다 98
청각장애인으로서의 삶과 인간의 권리가 있다 102
나를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104
4. 소망과 희망, 배려 106
4장 표현해야 내가 보인다 111
1. 청각장애인 자존감 회복하기 111
장애는 약점이 아닌 특성이다 111
나만 이런 것이 아니야 112
편견 넘어서기 113
감정 표현 115
가족과 친구 117
생각과 이해의 폭이 좁다는 오해 118
2. 삶의 방향 119
인간은 사회적 존재다 119
바보가 아닌 천재가 되자 120
3. 언어는 결국 극복해야 하는 일 123
나는 외국인이 되기도 한다 123
배려는 다름에서 온다 126
5장 같지만 다른 이유 131
1. 소통하기 그리고 이해하기 131
건청인과 어떻게 소통하는가? 131
장애인이 편한 사회가 모두를 편하게 한다 132
같은 사람이어도 생각이 다르다 134
자존심과 자존감 136
2. 정부나 지자체의 도움이 필요하다 138
센터 138
동아리 모임 139
종교 141
3.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마음의 상처 143
스트레스는 사람을 힘들게 한다 143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 144
존재 자체로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147
4. 나를 사랑하자 149
나를 사랑하기 149
가족과 소통하기 151
가족이 바라보는 청각장애의 나 152
나는 무가치하지 않다 154
5. 스스로 배우고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158
정체성 찾아주기 158
가정에서 배우기 160
본당 신부님의 조언 161
소리 대신 눈과 마음으로 164
6. 청각장애인이 보내는 메시지 167
건청인 167
청각장애인 168
농인 170
우리들은 소중하다 171
1. 궁극적인 목표를 향해 아직도 뛰고 있다 175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 175
퀼트는 직업이자 취미 177
청각장애인의 자율성 179
목표는 바뀔 수 있다 182
2. 친구들에게 전하는 마음 185
맺음말 188
[본 문]
여름 감기처럼 찾아온 뇌수막염, 그리고 전신마비가 왔다. 개학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열심히 산수 숙제를 하던 중 감기처럼 아프기 시작했다. 갑자기 40도를 오르내리는 고열로 토하면서 뜨거운 코피도 멈추지 않고 같이 쏟아졌다. 그렇게 심하게 아파 몸을 가누지 못하고 앉지도 못했다. 여름 감기라고 하는 의사의 말을 듣고 입원은 하지 않았다. 어느 늦은 밤, 심한 고열로 정신을 잃은 나를 등에 업고 아버지는 병원으로 뛰어갔다. 감기라고 해서 끝내 입원은 하지 못했다. 그 후로 조금씩 나았다. 그때까지도 부모님은 몰랐다. 내가 왜 그렇게 아팠는지. 앙상하게 뼈만 남은 채 완쾌된 나를 보고 의사가 이렇게 말했다. “이 아이는 살아남는다고 해도 평생 누워 살아갈 거예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 엄마는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으셨다고 훗날 담담히 말했다. 다 낫고 나서야 의사는 감기가 아니었고, 뇌수막염이었다고 말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부모님은 의사의 오진을 어디에도 말하지 못하고 따지지도 못했다. 한 아이의 인생을 바꿔버린 큰 실수를 알고나 있었을까? 그때까지도 의사도, 부모님도 몰랐다. 내가 듣지 못한다는 것을.
- p.16
심한 열병에서 빠져나와 회복은 되었지만 들을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엄마는 다시 걷기를 바라는 마음에 나를 잡아 일으켰다. 다리에 힘이 생기라고 계속 주물렀다. 장롱을 짚고 걸음마를 다시 시작했다. 여름의 끝자락이 되었다. 종일 마루에 누워서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과 키다리 접시꽃과 풍성하게 피어난 봉숭아꽃 그리고 바닥에 옹기종기 피어난 채송화였다. 그것이 9살 소녀의 여름이었다. 나는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위태롭지만 걸었다. 하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들리지 않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런데도 어린 마음에, 아프기 전에 그렇게도 하고 싶었던 놀이를 했다. 오징어게임이라는 놀이였다. 게임을 하면서 위태롭게 움직이는 나를 친구들이 잡아주었지만, 잠시뿐이었다. 이겨야 하는 게임이었으니, 같은 팀이라도 나를 챙겨줄 여유가 없었다. 이상하게 한쪽 발로는 움직이지 못했다. 한쪽 다리를 들면 쓰러졌다. 친구들 사이에 말소리와 고함이 오갔지만,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다시 게임은 시작되고 나는 피하라는 친구의 말을 듣지 못했다. 무방비 상태로 서 있던 나는 누군가가 밀치는 힘에 넘어져 기절했다. 그 후, 친구들은 다시는 나를 게임에 끼워주지 않았다.
- p.17
더는 대화가 되지 않는 딸을 바라보면서 어떡해서든 다시 듣게 하기 위해 아버지는 민간요법을 찾았다. 이는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이었다. 내 아버지는 법 없이도 살았다. 어려서부터 한문을 배웠고, 학교는 초등학교만 나왔다. 언문(한글)만 떼면 된다던 할아버지 때문이었다. 엄마는 슬픔을 밖으로 쏟아내는 성격이라면 아버지는 평온한 표정을 가장해 안으로 삼키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딸의 장애는 아주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병원에서 놓쳐버린 골든타임을 민간요법으로 되돌리고 싶어 했다. 들리게 하고야 말겠다는 부정을 어린 딸은 알지 못했지만, 약을 만드는 아버지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기에 아파도 순응했다. 달걀노른자를 태워 만든 정체 모를 기름을 종이에 발라 연기가 귓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민간요법이었다. 그렇게 하면 귀에서 눈을 통해 머리끝까지 찌르는 아픔이 밀려왔으나,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한껏 웅크릴 뿐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다시 들린다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 p.22
자식 없으니 오십이 넘어서도 큰아들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완전히 헤아리지는 못했다. 오빠의 죽음이 슬퍼도 부모님만큼 슬프지는 않았을 것이다. 장애인이 된 딸을 바라보며 한숨짓는 엄마를 보며, ‘장남이 살고 내가 죽었어야 하는 것이었을까?’라는 생각에 엄마의 상처를 헤집고 내 상처에 스스로 생채기를 내면서 우울한 세월을 보내기도 했다. 엄마가 여든이 되던 무렵에 그때 내가 했던 말이 엄마를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여쭤보았다. 한때 잠시 생각은 했었지만 나이 들어보니 딸 만 한 자식은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답했다. “미안하다. 네가 못 들어도 엄마와 하는 대화는 다 알아들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너라도 없었으면 이 노년을 어찌 보냈을까?”아들이 아프고 그립기는 하지만 인연이 거기까지였을 거란 엄마의 말이 나이 들어가는 내게도 쓸쓸히 다가온다. 여동생을 아끼던 오빠의 모습은 이제 희미해져 안개 속에 있는 것 같다.
- p.27
말하고 노래하고 배우는 것 외에 가족들과의 대화도 도움이 됐다. 말하지 못했다면 가정에서도 소외되어 힘들었을 것이다. 밖에서도 되도록 말로 하려 애썼다. 어눌하고 서툴지만 그렇게 살아왔다. 특수학교가 있는지도 몰랐다. 그저 들리지 않을 뿐, 일상생활이 크게 불편하지 않아서 그럭저럭 살았다. 들리지 않는다고 소외되지는 않았다. 학교는 가지 않았지만 독학으로 배웠다. 처음에는 자존감도 용기도 없이 쓸데없는 자존심만 남아 있었다. 그렇지만 결국 나 자신을 찾으며, 나를 감추기에 바빴던 인생을 바꿨다.
- p.29
나는 청각장애인이지만 농인 문화가 아닌 기존 사회에서 살았던 그대로 살아간다. 나를 다르게 보는 시선도 많지만, 그 시선을 받아들인다. 내가 장애를 신경 쓰기 시작한 것은 마흔이 넘어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였다. 그 전엔 신경 쓰지 않고 살았다. 장애를 받아들였다기보다 나를 대하는 사람 그 누구도 청각장애인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저 소리가 안 들릴 뿐 대화는 되는 사람이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장애를 인식하고 내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건청인과 농인 세계 그 어디서도 나를 받아주지 않았다. 경험이 늘고 나이 든 지금은 중요하지도 않고 신경 쓰지도 않지만, 괴롭고 힘들고 고난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이에 대해 시를 써보았다.
- p.33
스물여섯에 결혼해 마흔한 살에 혼자가 되었다. 신혼 6개월에 남편은 위암 판정을 받았다. 15년이 넘는 오랜 시간 부부가 힘들어했다. 강산이 한 번하고도 반은 바뀔 시간 동안, 남편보다 내가 먼저 죽을 것 같았다. 성당을 오가며 나도 할 만큼 했다고 신에게 하소연했다. 우울감이 나를 짓눌렀다. 남편의 장례식장에서는 울음도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날 보고 남편 장례식장에서 눈물도 흘리지 않는다고 수군댔다. 그럼에도 울음은 나오지 않았다. 자고만 싶었다. 남편을 보내고 긴 잠에 빠졌다. 동면에 드는 동물처럼 잠에 빠져들었다. 슬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을 잠만 잤다. 다시는 뒤돌아보고 싶지 않은 전라도 광주를 책과 옷가지 몇 개만 챙겨 두 달 만에 떠났다. 여행으로라도 다시는 돌아보고 싶지 않은 곳이다.
- p.41
비상금을 털었다. 내가 살기 위해서 배웠다. 작은 소품을 만들면서 우울감도, 공황이 올 듯한 몸도 꾀병이었던 듯 나았다. 소리가 없어도 즐겁게 할 수 있는 바느질은 재미있고 즐거웠다. 숨이 쉬어졌고 하루가 금방 갔다. 늘 우울하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날 서 있던 내가 남편에게도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암이 재발하면 환자보다 보호자가 더 힘들다. 탈모로 빠져버린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지 않는 것이 그 시절을 증명한다. 남편과 이별하고 본격적으로 퀼트를 배울 때 진심으로 울었다. 취미가 아니라 전문적으로 가는 길은 달라서다. 소리의 절실함을 느꼈고 대화의 고립감도 느꼈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겪는 일이었다. 영원히 잠에서 깨지 않기를 기도할 정도였다.
- p.45
퀼트를 처음 배울 때는 바느질은 듣지 않아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바늘과 천만 있으면 소리는 없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배우려면 수업을 들어야 한다. 이론을 가르쳐주는 시간이면 고개를 들어 경청해야 했다. 눈이 빠져라 봐야 겨우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손은 손대로 움직이고 귀로 들으면서, 하하 호호 웃기 바빴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면 ‘내가 여기 왜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에 끼어들어보지만, 함께하는 수업 중에 누구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나도 말 걸지 않았다. 학창 시절의 왕따보다 더 아픈 외로움이었다. 바느질 수업에서 나는 있어도 없는 사람이었다.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무언의 흐느낌이 있었지만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 p.51
퀼트 작품은 손으로 만드는 핸드퀼트, 재봉틀로 만드는 머신퀼트가 있는데, 나는 핸드퀼트 전문이다. 머신으로 만드는 작품이 멋있고 쉬워 보여서 오랫동안 배웠지만 결국 손으로 만드는 핸드퀼트로 돌아왔다. 머신퀼트를 배우기 위한 시간과 돈이 아깝지만, 배운 걸로도 충분하다. 전시회에 참여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가까워졌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 전시회에도 참가한다. 다른 작가와 달리 많이 늦은 행보지만 괜찮다. 멈추지 않았고 현재도 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니까. 상도 받았다.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았는데 결국은 해냈다. 대나무가 생각난다. 죽순은 긴 시간 땅속에 묻혀 있지만, 일단 나오면 쭉쭉 빠르게 성장한다. 내가 대나무였으면 좋겠다. 홀로 걸어간다는 것은 외롭고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괴롭기도 하다. 외롭지만 멈추면 안 되는 길이었다. 아무 소리 없는 길 위에서 홀로 걸어가면 사람을 개척자로 만든다. 오래된 시집에서 이런 글을 읽은 기억이 있다. “외로움을 이기면 고독이 찾아온다.” 외로움은 힘들게 하지만, 고독은 성장시킨다. 외로운 것이 나쁘지만은 않다. 홀로 생각하면서 성장하니까. 외로우면 결핍과 단절로 힘들지만, 고독함은 외로움을 이겨내고 진짜 나를 맞이하는 시간이다. 고독은 혼자여도 아무 생각 없이 평온하다. 회복하지 못했던 마음을 위로하는 시간이다.
- p.62
나는 건청인의 사회에서 산다. 들리지 않았지만 그전과 다르지 않은 삶을 이어왔다. 공부와 일, 친구를 찾으면서도 행동하지 못했던 10대, 결혼의 굴레에 시간을 뺏겨버린 20대와 30대, 홀로 살면서 나 자신과 싸웠던 40대 그리고 50대, 그 모든 시간을 견디고 이겨내서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나는 60대다. 나이가 든다는 것이 싫었는데, 막상 60대가 되어보니 나쁘지만도 않다. 생각은 깊어지고 너그러움이 생겨나며 이해심과 배려가 살아난다. 농인과 청각장애인을 만나기보다 삶의 터전에서 건청인들과 더 많이 만난다. 예전엔 외로웠다면 현재의 나는 사람이 없어도 외롭지 않다. 지인을 만나 한 끼 식사와 차 한잔 마시는 일상이 행복하다. 책을 보고 글을 쓰고 바느질하면서 살아가는 지금이 나는 너무 좋다. 만나는 사람은 많지 않아도 어디든 갈 수 있고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 노년으로 접어들면서도 좋아하는 일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 p.67
청각장애인이 된 순간부터 나의 삶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내 삶은 스스로 책임져야 했다. 사람이 그리웠고 도움이 절실했을 때조차 나는 혼자였다. 성인이 된 순간부터 나는 나를 책임져야 했다. 부모님은 평범하게 나를 키우셨지만, 내게는 평범함이 쉽지 않은 문제였다. 청각장애인이 된 순간부터 세상은 달라졌고, 내 삶은 오롯이 내 손에 맡겨졌다. 괴롭고 아팠던 젊은 날을 보내고 나이가 든 지금도 책임져야 한다. 나를 세상에 맡겼지만, 세상은 나를 외면했다. 세상보다 나를 믿는 법을 배웠다. 절망 속에서 끝을 본 마음은 위로받지 못했다. 그래도 달라진 세상 앞에서도 홀로 서야 했다. 나를 믿었고 걸어왔으며 그 끝에서 비로소 세상을 향해 감사한다. 완벽할 필요는 없다. 실수와 부족함도 배움이자 일부다. 실수할 때마다 내가 나에게 해주는 말이었다. 완벽하고 싶어도 완벽해질 수 없는 내 신체로 인해 실수와 오해와 느림을 반복해왔다. 괜찮다며 자기 최면을 수없이 걸었고,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고, 실수와 부족함도 성장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부족함 속에서도 배울 수 있다고 스스로 위로했다.
- p.72
누구의 도움도 없이 청각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허허벌판에 버려진 기분이다. 바람막 하나 없이 몰아치고 내리치는 비바람을 온전히 맞으며 걸어가는 듯하다. 차갑게 불어오는 비바람은 마음도 얼어붙게 한다. 그런 기분을 가슴에 안고 어떡해서든 그곳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다가 타인에 대한 존중도 배웠다. 진정한 존중은 나를 지키고 타인을 배려하는 일이다. 청각장애인은 배려가 필요한 장애이지만, 먹여주고 입혀주고 손잡고 걷게 해주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소리의 사각지대에서 망연자실 서 있을 때 정보의 세계로 이끌어주는 그런 배려다. 천재의 업적도 혼자 이룬 게 아니다. 그들도 조력자가 있었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남길 수 있었다.
- p.73
나를 받아들이는 시간은 참 오래 걸렸다. 비장애인의 세계에서 살아온 오만함도 있었고, 나 또한 ‘다름’을 인정하기보다 ‘같음’을 이야기했다. 들리지 않을 뿐 너와 나는 같다고 생각해왔다. ‘다름’과 ‘같음’을 구분하지 못했고 나를 수용하지 못한 오만함이었다. 이제는 안다. 나는 청각장애인이며 ‘같음’이 아니라 ‘다름’을 알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비록 불편한 몸이지만 삶에서 희망을 찾는다. 외면을 경험하면서 존중도 알았다. 돌아오지 않는 대답을 기다리며 배려를 배웠다. 배려는 나만 받는 것이 아니었다. 나도 주는 것이 배려다. 들리지 않아 불편하지만, 그 안에서 희망을 본다.
- p.76
소리 대신 진동과 시각 신호로만 세상과 소통하는 청각 장애견은 잘 짖지 않는다고 한다. 듣는 경험이 제한되면, 상호작용 능력에도 영향이 가는 것이다. 언어 능력이 학습의 기초이기 때문에 듣지 못하면 어휘와 맥락을 파악하기가 힘들다. 언어 발달이 지연되면 수용 언어와 이해 능력의 발달이 느려지면서 표현하지 못하고 ‘사고’가 사라진다. 일상에서 우연히 듣는 정보는 한 사람의 인생을 구하진 못할지 몰라도 그 정보로 인해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길이 생긴다. 비장애인은 크게 움직이지 않아도,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눈을 감고도 소리로 많은 정보를 흡수한다. 들을 수 있는 축복 덕에 쉽게 배운다. 청각장애인은 말 가리개를 쓴 듯이 앞만 보아야 정보를 조금이나마 얻는다. 뒤에서 고급 정보가 들려와도 알 수 없다. 여러 명이 앉아서 수다를 떨어도 수어가 아니라면 그림의 떡이다. 떠 먹여줘도 알 수 없는 조용한 세상에서 평화롭지만 아프게 살고 있다는 표현이 웃기면서도 슬프게 맞아떨어진다.
- p.82
청각장애인과는 수어도 같이 쓰며 대화한다. 배운 수어가 정확하지 않아도 괜찮고 느려도 괜찮다. 구어를 하기 때문에 구어로 대화하면서 안 되는 부분은 수어도 같이하면 어려움은 없다. 또한 재미있다. 대화에 끼어드는 사람도 없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맞장구치면서 들어준다. 서로 같은 처지에서 나오는 편안함 덕에 즐거운 기분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을 느끼면서 아쉬워한다. 습관처럼 구어로 대화는 하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기에 스치듯 지나가는 손동작의 수어로 알아듣는다. 말과 수어가 일치하지 않아도 빠른 눈치로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알게 된다. 받아들이는 정보도 많아서 건청인과 다를 바 없는 만남이다.
- p.83
청각을 상실하면 사회와 세상 정보로부터 고립된다. 소리를 잃는다는 것은 감각 하나를 잃는 것이다. 세상의 통로가 닫히기 때문이다. 귀가 닫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닫힌다. 청각은 인간관계와 사회적 소통의 핵심이다. 건청인이라면 사회에서 일할 때 소리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경험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와의 연결이 차단되므로 청각장애인은 마음의 문을 닫아건다. 그래서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는 사람도 많다. 나는 모험했고, 자기 성찰과 배움으로 이 자리에 서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을 생각하면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서 안타깝다. 선천적 장애거나 유아기 때 장애가 온 사람은 후천적 장애를 가지고 사는 사람과는 다르다. 소리를 아예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인지적, 사고적 성장 면에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 농인 외의 사람들과 소통이 단절되는 것은 물론 언어와 문장 이해력도 성장하지 못한다. 그래서 언어를 모르는 상태에서 수어를 하지 않고 문자로 의사소통하면 문장의 이해도가 낮아 소통이 이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사고 확장의 깊이가 없어서 눈앞에 보이는 사물과 자신의 생각에 국한되어 대화하기를 원한다. 소통 단절과 접근성의 어려움이 생기면, 사고 확장이나 깊이가 자라지 못한다.
- p.93
들리지 않아도 세상은 느껴진다. 공기와 바람도 같이 느낀다. 들리지 않은 것과 언어의 다름을 빼면 건청인들과 다를 게 없다. 어쩌면 우리들이 더 행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시끄러운 시장에서 귀 막을 필요가 없다. 차를 운전하다 뒤에서 빵빵거리는 불쾌한 소리를 듣지 않아서 좋다. 정말 나쁜 사람을 만나지만 않으면 그저 모르쇠로 일관하면 그만이다. 생각하기 나름이다. 그러니 크게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다. 눈빛과 손짓만으로도 세상은 아름답다. 그럼에도 마음이 힘들어지면 가을날 오대산 입구 월정사의 새벽을 만나보면 좋겠다. 스님들이 걷는 길을 걷다 보면 마음이 정화된다. 새벽 공기와 짙게 피어오르는 전나무에서 풍기는 향기가 참 좋다. 수녀 친구와 함께 떠났던 그 여행길은 아직도 추억으로 남아 있다.
- p.101
들리지 않는다고 아이 취급하는 사람도 많다. 수어를 언어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저 몸짓 정도로 가볍게 여기기도 한다. 청각장애인을 언어적, 문화적 성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건청인과 똑같이 성인으로서의 삶이 있고 인권의 권리도 있다. 그저 시각적으로 말하는 언어만 가지고 그 사람의 인생과 정체성, 삶을 가볍게 판단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들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미성숙하거나 무능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말소리 중심 사회에서 말로 표현하지 않거나 반응이 부족하면 이해하지 못하거나, 지능이 낮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정보력 부재로 생각이 깊지 못할 수는 있지만, 이해의 문제가 아니라 소통 방식의 차이다.
- p.102
청각장애인은 시각 정보 해석 능력이 뛰어나다. 시각장애인은 청각과 촉각을 통한 공간 이해 능력이 뛰어나다. 지체장애인은 몸이 불편할 뿐 머리로 하는 지식 직업에서는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다. 기존 사회에서 ‘장애’는 ‘부족함’으로 보았지만, 지금은 각자가 다양한 능력을 가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청각장애인은 불편함을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창의적인 사고를 키워나가고 있다. 지난 세대와는 다른 경험, 공감 다양성을 포용하며 장애는 약점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능력이라고 여긴다. 평등한 기회를 주고 장애인을 배제하지 않길 바란다. 내가 알려줘야 상대도 이해한다. 상대방에게 나를 알리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내 권리를 요구하고 나를 지키는 힘은 당당한 태도에서 나온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태도는 말보다 강하고, 내 뜻을 전하면 변화는 찾아온다.
- p.111
나이가 들어 돌아본 인간관계는 결국 ‘사람 대 사람’의 문제였다. 내가 좋은 인연을 맺으려 애썼듯, 그들도 자신에게 적합한 사람을 찾으려 노력한 것뿐이다. 나보다 나은 사람을 만나 발전하고 싶은 욕망은 비장애인이나 나나 매한가지일 텐데, 나는 내 장애만 너무 부각해 생각했었다. 타인이 자신에게 맞는 사람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당연한 이치를 외면한 채, 자격지심에 빠져 부정적인 마음만 키웠던 시간들이었다. 젊을 땐 몰랐던 이치를 나이 들어서야 깨닫는다. 열등감 뒤에 숨어 있던 나의 모자람이 이제야 부끄럽게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청각장애인의 언어는 단 하나에 머물지 않는다.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며, 생각으로 말한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수어와 문자는 또 다른 목소리가 되어준다. 손으로 말하고 눈으로 듣는 것도 하나의 온전한 언어다. 언어의 다양성은 불편함이 아니라, 표현의 또 다른 풍요로움이다.
- p.125
장애가 있기에 앞서 존엄한 사람이기에, 비장애인과 동등한 권리를 주장하며 거리로 나섰다. 투쟁의 초창기, 나 역시 그 대열에 동참하며 현장의 고단함을 온몸으로 겪었다. 이제는 누구나 불의의 사고로 장애인이 될 수 있는 시대다. 장애는 그저 조금 불편할 뿐,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는 삶의 단면이다. 그러니 편견의 시선이 아닌 ‘사람의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자. ‘장애자’ 대신 ‘장애인’을, ‘정상인’ 대신 ‘비장애인’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모두가 평등한 사람이라는 선언이다. 누구라도 한순간에 장애를 입을 수 있는 오늘날, 장애인을 ‘결함 있는 존재’로 보던 낡은 시선은 완전히 사라져야 한다.
- p.133
인간은 저마다의 소질을 품고 태어난다. 손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중증 장애를 딛고 우주의 진리를 알린 스티븐 호킹, 소리를 잃고도 불멸의 교향곡을 남긴 베토벤, 청각장애를 예술로 승화시킨 운보 김기창, 그리고 묵묵히 빛을 발하는 이름 모를 장애인 작가들까지. 장애는 삶을 불편하게 할 뿐, 꿈을 향한 의지까지 가로막지는 못한다. 장애인은 결코 무용한 존재가 아니라, 어쩌면 특별하게 선택받은 사람들이다. 몸의 어느 한 부분이 고장 났을 뿐, 존엄한 인간임은 변함이 없다. 우리 또한 스스로가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함을 잘 알고 있다. 누군가 따뜻한 손을 내밀어준다면, 그 온기를 날개 삼아 꿈을 향해 비상할 것이다. 지체장애인들의 단합이 기적을 일궈냈듯, 혼자 할 수 없다면 함께 하면 된다.
- p.147

도움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한 사람으로서오늘의 하루를 살아가는 이야기!
10살이 되기 전에 청각장애인 된 사람은 소리뿐만 아니라 언어도 사라진다. 소리가 언어를 책임지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는 들리는 것과 안 들리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다.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고 2년 후 친구가 놀리는 바람에 내가 들리지 않게 되었고 발음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친구의 말로 내 인생은 달라졌다. 잃어가는 언어를 찾기 위해 노력한 결과, 확실하지 않은 발음이지만 대화는 가능하다.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서 말은 어눌해졌고, 친구들이 벙어리라고 놀렸다. 예민한 사춘기 소녀에게는 지옥 같은 일상이었다. 그로 인해 학업을 중단했지만, 멈추고 싶지 않기도 했다. 집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살면서, 소리는 노력한다고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반면에 언어는 노력하면 어느 정도 유지된다는 걸 알고 연습을 멈추지 않았다. 들리지 않아도 말은 하고 혀는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소리가 사라지면 입도 닫혀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혼잣말하며 이제껏 인생을 살아왔다. 책을 읽고, 유행가 가사를 따라 부르고, 동생에게 말을 건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변화하고 달라져왔다. 이 책은 청각장애인으로 살아오며 겪은 경험을 쓴 것이다. 청각장애인은 세상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 그럼에도 도움 없이 홀로 살아가면서 퀼트 작가가 되었다. 신의 영역과도 같은 비장애인의 세상에서 성공했다. 부정적인 시선을 이겨냈다. 작가로 우뚝 선 그날 이후로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따뜻하고 부드러워졌다. 그들도 장애라기보다는 다름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나를 선택하고 버리지 않았다. 나를 믿었다. 내 선택은 옳았다. 청각장애인으로 이루지 못할 일을 해냈으니까. 어쩌면 청각장애인으로 살아온 경험은 신이 주신 선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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