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프롤로그
Part.1 나를 보는 관점
‘나’라는 고정관념
자꾸 남의 의견을 묻는 너에게
이렇게 저렇게 살아도 상관없다는 너에게
나의 발작 버튼
내가 보지 않는 것
열심히 살기도, 뒤처지기도 싫을 때
그럴 수 있지와 그래도 그럴 수 없어
내가 너무 무거운 나에게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만든다는 것
딱히 좋아하는 게 없는데 어쩌라고
알고 있던 나로 살아가는 것
일상을 지배하는 것
일상을 벗어나고 싶은 너에게
나를 지킨다는 것
내게 너그러워지는 것
목표, 의지, 노력만으로 안 되는 이유
지금 보이는 그것이 당신이다
단순해지려 할수록 복잡해지는 이유
변하기 힘든 사소한 일에 대하여
Part.2 나의 중심
도대체 기본이 뭐길래
나의 기본을 만든다는 것
나의 기본기를 위한 기초 공사: 몸
나의 기본기를 위한 기초 공사: 시간
나의 기본기를 위한 기초 공사: 에너지 흐름
나는 언제 자주 흔들리는가
갓생보단 무너지지 않는 일상
괜찮아야만 하는 당신에게
나는 언제 멈출 수 있는가
꾸준함이 내게 힘이 되지 않을 때
모순적이어도 괜찮아
모 아니면 도, 아니면 몰라의 세계
언어는 당신의 세계를 만든다
완벽한 시작은 없지만서도
내 인생의 원칙을 만든다면
어차피 나한테 관심 없는데 뭐
으이구, 줘도 못 받아 먹니
최선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신에게 여유가 빠져버린 이유
통제에 끌리는 나, 놓고 싶은 나
Part.3 나의 환경
나에게 기본기란
나를 지탱하는 환경과 시스템 만들기
내면 환경 구축하기
1. 자기 탐구
2. 유연함
3. 단순함
4. 일상 실험하기
5. 지금을 사는 태도
외부 환경 구축하기
1. 장소
2. 시간
3. 사람
4. 소비
5. 휴식
기본기를 지켜주는 것들
1. 언제든 시작점 다시 만들기
2. 마무리 포인트 정하기
3. 다양한 관점 수집하기
4. 가능한 시각화하기
5. 심심한 사치 허락하기
일상의 균형을 잡아주는 습관과 루틴
1. 지속 가능한 환경 만들기
2. 트라이얼 기간 만들기
3. 유지 습관과 성장 습관 구별하기
4. 달라진 상황과 공간 활용하기
5. 나만의 회고 루틴 만들기
결국 모든 것은 나를 사랑하기 위한 과정
부록 | 인텐션 노트
[본 문]
“기본기란, 남의 기준을 나에게로 가져오는 일이다.”
“흔들려도 괜찮다. 중요한 건 흔들림 속에서도 다시 서는 힘이다.”
“완벽한 시작은 없다. 하지만 나만의 기준은 언제든 만들 수 있다.”
“삶의 중심을 나에게 둘 때, 비로소 나는 나답게 살아갈 수 있다.”
땅을 만들고 일궈가는 과정은 나만의 기본기를 만드는 과정이다. 남에게 두었던 기준을 나에게로 가져와 삶의 무게중심을 나로 두는 일이며, 나라는 사람의 토대를 만드는 일이다. 이 기본기는 삶의 파도 속에서도 필요할 때면 언제든 발을 단단한 땅에 내딛게 한다. 모든 이에게는 자신만의 땅이 존재한다. 그 땅은 그 누구도 아닌 오직 ‘나’로 인해 만들어진다. 우리는 이 과정을 겪으며 자신만의 색과 아우라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깊게 뿌리를 내리는 갈대는 비바람이 와도, 산들바람이 와도 그저 흔들릴 뿐이다. 흔들리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흔들려도 상관없다는 태도. 참 고고하지 않은가?
- ‘Prologue’ 중에서
기본기의 이미지는 여러 모습으로 나타났지만, 단단한 뿌리를 가진 갈대처럼 흔들리면서도 꺾이지 않는 모습이 가장 나의 기본기와 닮아 있다. 갈대라는 이미지 속에서 나는 기본기가 ‘흔들리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흔들림 속에서도 다시 중심을 찾을 수 있는 힘이라는 사실을 천천히 이해해 갔다.
기본기를 만든다는 것은 흔들림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으려 내 안의 중심을 잡아 가는 일이다. 이는 손잡이 없는 외발자전거를 타는 순간과 닮아 있다. 중심을 잡았다가도 금세 기울고, 또다시 균형을 바로잡아 앞으로 나아가는 그 미세한 움직임들. 완전히 고정된 중심이 아니라, 움직이는 동안 계속 다시 잡히는 중심이다. 이렇게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작은 흔들림도 계속 바로잡다 보면 자연스럽게 중심을 잡는 감이 생긴다.
- ‘나에게 나의 기본기란 : 결국 내게 필요한 것을 주는 것’ 중에서
자신만의 완벽함을 정하고 산다는 건 무엇일까?
내가 만족하고 이제 쉬어도 된다는 기준선 역할을 하는 것일까? 사실 나는 완벽함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아, 이건 완벽해!’라고 느끼는 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기준이 높은 것일 수도 있고, 정말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내가 완벽함에 대해 계속 생각하는 것은 완벽함에 대한 모호한 판타지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시작도 하기 전에 뭔지도 모르는 완벽함을 꿈꾼다.
나의 기본기를 만들어가는 모든 이들은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많은 시도를 해볼 수밖에 없다. 기본기를 다진다는 건 결국 나를 발견해가는 과정이며, 흔들려도 괜찮은 나만의 중심을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완벽주의에 대한 관점, 그리고 ‘완벽’이나 ‘시작’이라는 단어에 대해 각자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많은 실패가 예상되는 여정 속에서 나만의 기본기를 쌓아가는 일은 일종의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과 같다. 완벽하지 않아도, 시작이 매끄럽지 않아도, 모든 시도와 흔들림이 결국 나만의 기본기로 쌓인다. 실수와 실패, 예상치 못한 변화조차도 결국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
인생의 파도에서 어떤 파도가 올지 알 수 없다. 매번 오는 파도를 잡아 멋지게 서핑하면 좋겠지만, 잘 탈 수 있는 파도에도 보드가 뒤집어질 수 있고, 못 탈 것 같은 파도를 오히려 멋지게 잡아탈 수도 있다. 인생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이지만, 중요한 건 그 파도를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든 온전히 받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기본기를 쌓는 일, 그리고 흔들림을 온전히 받아내는 연습이야말로 결국 내가 나를 지키는 힘으로 이어진다고 믿는다.
- ‘완벽한 시작은 없지만서도 : 그럼에도 완벽주의를 놓지 못한다면’ 중에서
편안한 20대, 어색한 조합이다. 역시 불안한 20대가 입에 착 달라붙는다.
나의 20대 역시 목적 없이 흔들리는 배와 같았다. 어른이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막연하게 무언가 성숙하고 멋진 존재라고 생각했다. 반면, 현실의 나는 소심했고 어리숙했다. 이런 모습으로 대학에 가기 두려웠다.
나를 정의하는 말들이 늘어갈수록 투명한 박스 안에 갇힌 것 같았다. 눈으로 직접 볼 수 없지만, 고정관념이 만들어낸 투명한 박스였다. 성장을 위한 다양한 선택지가 눈에 보여도, 이 박스는 더 나아가지 못하게 나를 가두었다. 제대로 살고 있음을 증명해 줬던 나의 정의들이 이제는 발목에 채워진 족쇄와 같았다. 스스로 정의한 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자책하였고, 남들에게 했던 말과 다르게 행동할까 봐 노심초사했다. 사방에 나를 지켜보는 감시자가 있는 것 같았다. 자의식과 자기검열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졌다.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매일 내가 만든 숙제를 억지로 해치우는 기분이었다. 그저 이 박스의 문을 열고 나오면 됐지만, 밖으로 나올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 박스가 나를 불안으로부터 지켜줬다고도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스에 머물 자신도, 떠날 용기도 없었다. 앞뒤가 막힌 도로 위에 있는 기분이었다.
모두에겐 이래야만 ‘나’스럽다고 여겨지는 것이 있다. 이것들은 때론 나를 편하게도 하지만, 때론 나를 조여 오는 족쇄가 된다. ‘지금은 이런 사람인데 앞으로는 아닐 수도 있어. 뭐 같을 수도 있고, 뭐 어때!’라고 스스로에게 말해보는 것은 어떨까? 지금 스스로에게 한번 말해보자. 이 별것 아닌 것이 나를 자유롭게 만든다. 이 별것 아닌 것이 더 나답게 살 수 있도록 만든다.
- ‘‘나’라는 고정관념 : 내가 말하는 ‘나’는 누굴까’ 중에서
‘네가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체력부터 길러라.’ 드라마 미생의 명대사 중 하나다.
눈물겨운 다짐도, 간절한 목표도 체력 앞에선 맥을 못 춘다. 무언가를 이룬다는 건 결국 무언가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했다는 뜻이고, 그 꾸준함엔 체력이 팔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만의 기본기를 만드는 데도 체력은 필수다. 기본기를 만드는 과정은 실패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그 시작을 ‘내 몸을 아는 것’에서부터 하고 싶었다. 체력, 말 그대로 몸에서 나오는 힘이다. 본격적으로 힘을 기르기 전에 먼저 내 몸에 대해 알아보자는 것이다. 생각해 봤다. 아플 때 말고, 언제 내 몸에 대해 알고 싶어 한 적이 있었나? 바디라인을 가꾸고 싶을 때, 더 예뻐지고 싶어서 거울을 들여다보며 개선할 점을 찾았던 기억은 많다. 하지만 그 외의 순간, ‘지금 내 몸은 어떤지’ 물어본 적은 거의 없었다. 거울 속 내 몸을 있는 그대로 본 적도, 괜찮다고 느껴 본 적도 없었다. 항상 부족한 부분을 찾았고, 그래야 안심이 됐다. 노력 중이라고 믿을 수 있었으니까.
일상과 경험 속에서 몸이 느끼는 감각들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라면을 좋아하지만, 내 몸은 라면을 부담스러워했다. 배가 고프다고 느껴졌지만 몸은 ‘비워진 상태’를 더 편안해하기도 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몸은 산책을 원했고, 운동하고 싶을 때 몸이 전혀 따라 주지 않을 때도 있었다. 술을 마시지 않기로 마음먹었지만 몸이 술을 원할 때도 있었다. 중요한 건 몸은 늘 정직했고, 솔직했다. 그 감각들이 내게 ‘이해’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 ‘나의 기본기를 위한 기초 공사 - 나의 몸 : 나는 내 몸에 대해 알까’ 중에서
“다 차려놨는데, 줘도 못 받아먹니? 남들은 못 누려서 난리야.”
꽤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을 좋은 걸 줘도 ‘못 받아먹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 나는 그걸 몰랐다. 그냥 다들 이렇게 사는 줄 알았다. 배우고 싶은 건 다 배우며 자랐고, 대학 등록금도, 용돈도 받았다. 글로벌 컨퍼런스에 다니고, 중국 유학도 다녀왔다. 알바는 생활비 때문이 아니라 더 사고 싶거나 놀고 싶어서 했다. 좋은 환경이 있었는데도, 나는 그것을 온전히 누리지 못했다. 다 주어졌는데, 이 좋은 환경을 잘 살리지 못한 내 탓 같아 늘 잘못처럼 느껴졌다.
자연스럽게 걸어가다가 기회를 만나면 자연스레 탑승하고 싶었다. 하지만 방법을 몰랐다. 그러다 우연히 본 30초 짜리 영상이 힌트가 됐다. 유튜버가 고가의 선물을 준비하고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랜덤으로 선물을 주려 했다. “행운의 주인공으로 뽑히셨어요!”라며 선물을 건네는데, 요즘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생각 때문인 것도 있고, 괜히 안 좋은 일에 얽힐까 걱정해서 대부분은 선물을 거절했다. 그렇게 꽤 많은 사람은 받기만 하면 되는 선물을 알아서 피해 갔다. 그러다 마지막 한 사람이 흔쾌히 웃으며 “감사합니다.” 하고 선물을 가져갔다. 그는 주는 선물을 온전히 기쁨으로 받았다. 기회를 잡는 건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로만 되는 게 아니라, 좋은 걸 좋은 줄 알고 편하게 받을 줄 아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기회가 와도 스스로 형편, 상황, 능력을 따져보며 웬만하면 거절한다. 좋은지 나쁜지 확실하지 않으면 일단 거절하는 게 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받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나에게 호의를 베풀거나 좋은 일이 생겼을 때, 그것을 기분 좋게 받아들이는 태도. 좋은 걸 기분 좋게 받아들이면 에너지가 생기고, 그 에너지가 도미노처럼 또 다른 좋은 흐름을 만들어낸다고 믿는다.
- ‘으이구, 줘도 못 받아먹니 : 인생에서 진짜 받아야 할 것은’ 중에서
“나를 회사처럼 운영해본다면 어떨까?”
회사에는 시스템과 구조가 있다. 그래서 여러 이슈가 있어도 결국 굴러간다. 이 생각은 나를, 그리고 나를 둘러싼 환경을 구조적으로 바라보게 만들어주었다.
의지와 몸, 둘 다 한정된 배터리를 가지고 있다. 노력으로 배터리의 용량을 키울 수는 있지만, 결국 일정 시간이 지나면 소진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더 강한 정신력이나 지치지 않는 체력을 만들려고 애쓰기보다, 나를 지탱하는 환경과 시스템을 설계하는 데 초점을 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의지와 몸이라는 한정된 자원에만 기대기보다,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지속 가능한 환경을 만들면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줄이고, 내가 가진 에너지를 가장 필요한 곳에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한 결심이 아니라, 여러 연구가 뒷받침하는 관점이다. 습관 이론의 대표 저자 제임스 클리어(James Clear)는 “의지는 환경을 이기기 어렵다.”고 말한다. 좋은 습관도,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힘도 결국 환경 설계에서 비롯된다.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Roy Baumeister)는 의지력이 근육처럼 소모되는 자원이라고 했다. 결정을 내리고, 참아내고, 감정을 눌러둘 때마다 에너지가 빠져나간다. 그래서 의지를 다지는 것보다, 결정과 자제력이 덜 드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한다.
- ’나를 지탱하는 환경과 시스템 만들기 : 무엇이 나에게 영향을 주는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