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쫓아다니지 마라.
행복이 제 발로 찾아오게 하라.
그 비밀은 단순한 삶의 방식에 있다.
복잡하다는 것은 본질에서 벗어남을 보여 주는 징후다. 어느 경우에도 본질에 충실한 삶은 단순하다. 단순함은 본질을 지향하는 간소한 생활을 한다는 것이고 나 자신이 만든 삶의 기율에 충실하다는 뜻이다. 단순하게 살고 싶은가? 그렇다면 먼저 주변에 흩어져 있는 물건들을 정리하라. 쓰지 않는 물건들은 필요가 없는 것들이다. 그것들을 과감하게 내다 버려라. “물건의 수를 줄이고 간소한 생활을 되찾는 것은 나 스스로 주체가 되는 생활로 되돌아가는 것과도 상통한다.” 물건들은 삶의 환경이자 삶의 일부지만, 필요 이상으로 넘칠 때 짐으로 전락한다. 왜 단순하게 살아야 하는가? 그 이유는 매우 분명하다. 물질에 몸과 마음이 매이지 않아야만, 비로소 인생과 그 본질적 가치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유하는 것이 존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다. 돈을 좇지 말라. 돈으로 비싼 물건을 살 수는 있겠지만 행복과 자유를 얻을 수는 없다. 권력이나 출세를 탐하지도 마라. 그것을 거머쥐면 한순간 우쭐할 수는 있겠지만 그 만족은 길지 않다. 삶을 단순화하되, 행복과 열정을 좇으라. 간소한 물건들에 자족하며, 자유와 기쁨을 좇으라. 짐이 되는 것들을 덜어 내고 버린 뒤 인생의 진정한 가치들에 집중하라.
세계 문명은 더 작은 것들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 작은 게 쓸모 있고, 더 아름답다. 정부 조직, 기업, 가전제품까지 더 작게 줄이는 것, ‘다운사이징downsizing’이 주목을 받는다. 스몰, 다이어트, 경량화가 문명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스몰하우스 운동도 그 흐름의 일부다. 작은 집은 삶의 방식과 연관이 있다. 집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거처일 뿐, 그 이상은 아니다.
디오게네스는 “물받이에서 두 손으로 물을 받아 마시는 아이를 보고 나는 들고 있던 잔을 던져 버렸다”고 고백한다. 이렇듯 단순한 형식은 모든 잉여와 낭비를 추문으로 만든다. 아울러 단순한 삶은 불행을 견디는 강한 힘이 있는 반면에 복잡한 삶은 불행에 취약하다. 적게 소유할수록 삶은 단순해지고, 많이 가질수록 삶은 복잡해진다. 삶의 방식이 단순할수록 삶은 본질에 가까워지고, 단순함에서 멀어지는 사람일수록 더 세속화한다.
단순하게 살라. 어떻게? 욕구를 최소화하고,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식을 단순화하라. 단순한 삶은 불편하다. 하지만 평온하고 자족적인 삶의 방식이다. 성 프란체스코는 말한다. “모든 것에서 단순함을 사랑하라”라고. 단순함을 제2천성으로 만들어라. 단순해지고, 단순해지고, 더 단순해지도록 노력하라. 단순함은 지혜의 응축과 부단한 실천을 통해서만 이를 수 있는 미학이다.
내게 주어진 인생의 의무는
단 하나 뿐이다.
단순하게 행복해지는 것!
새들은 자연의 금욕주의자들이다. 새들은 적게 먹고 적게 배설한다. 자연에서 낭비란 범죄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 부류다. 새들은 날기 위해서 제 뼛속까지 비운다. “벌집은 최소한의 밀랍으로 그것을 가장 튼튼하게 받칠 수 있는 각도로 만들어져 있다. 새의 뼈나 깃은 최소한의 체중으로 가장 큰 힘을 날개에 실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자연은 낭비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새들은 제 욕망을 채우느라 삶을 잃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는다. 새들은 당장에 없는 미래의 근심과 불행 때문에 노래를 쉬는 법이 없다.
자연의 낙천주의자들인 새들을 보고 깨닫느니, 돈이 적을수록 골칫거리도 적고, 바라는 것이 적을수록 불행의 부피도 줄어든다. 아빌라의 성 데레사는 말한다. “가진 것이 가장 적었을 때 걱정거리도 가장 없었다. 감히 말하노니, 부족할 때보다는 풍족했을 때 더 괴로움이 많았던 것을 신은 알고 계신다.” 적게 가지면 괴로움도 작고, 바라는 것이 작으면 불안과 두려움도 준다. 많이 가지면 괴로움도 덩달아 커진다. 많은 것은 작은 것이요, 작은 것은 크다.
날기 위해 뼛속까지 비운 새들이 그렇듯이 현자 디오게네스도 뼛속까지 비운다. 그에겐 낡은 배낭과 옷, 물에 적신 보리빵, 땅에 꽂을 막대기, 진흙을 구워 만든 컵밖에 없었다. 그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전부라고 여겼다. 어느 날 한 시골 아이가 옹달샘에서 두 손을 모아 물을 떠먹는 것을 본 뒤 “물을 떠먹을 두 손이 있는데, 이따위 컵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며, 진흙으로 만든 컵을 내던졌다. 우리는 왜 디오게네스처럼 살 수 없는가.
집을 가꾸고 꾸미는 데도 미니멀리즘의 원칙이 필요하다. 물건들을 치우고 버려서 여백을 만들자. 집안에 여백이 많아지면 작은 물건도 그 존재감이 또렷해진다. 최소한도의 물건이 놓인 거실은 마치 공간이 숨을 쉬고 생기를 내뿜는 듯하다. 텅 빈 거실에 비친 한줄기 햇빛은 얼마나 정갈한가!
몇 줄에 우주를 담는 시는 얼마나 작고 단순한가! 시는 맹목의 확장과 대량생산, 더 많은 소비와 낭비에 맞서는 금욕과 무욕의 미학으로 단단해진다. 찰나들이 번쩍인다. 그 번개들은 본질이 내뿜는 빛이고, 지혜의 집약에서 터져 나오는 광채다. 작고 단순한 것들은 취약해서 멸종되기 쉽다. 짓밟으면 짓밟히고, 죽이면 죽는다. 미약한 것들이 크고 우람찬 것들 향해 부르는 애소哀訴의 노래에 귀 기울여야 한다. 작은 개체들이 사라지는 것은 인류 멸종의 시작점일지도 모른다. 암, 불임, 유전자 손상 따위는 인류에게 나타난 멸종 징후들이다. 작은 집, 소식小食, 시 같은 것들은 작아서 더 갸륵하다. 작고 단순한 것들을 사랑하고, 그것들의 외침에 더 자주 귀 기울여 한다.
절약이 행복을 위해서
검소한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라면
인색함은 탐욕에 바탕을 두는 삶의 방식이다.
절약과 인색함은 다르지만 그 경계는 애매하다. 절약은 사치와 낭비를 줄임으로써 현명하게 살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절약이 몸에 배면 소박하고 단순한 방식의 생활에 만족한다. 아끼는 방식에도 정도程度가 있는 것이다. 그 정도를 넘어서니 문제가 생긴다. 정도를 넘은 절약이 바로 인색함이다. 재산을 모으려고 혈안이 되면 사람은 인색해질 수밖에 없다. 인색한 사람들은 부를 축적하려고 제 욕구를 제한하고, 모든 형태의 기쁨이나 행복을 유보한다. 자신의 인색함으로 타인이 고통을 당한다면 이는 악덕이다. 인색함이 이기주의가 극단적으로 표출된 한 예이고, 악덕이자 어리석은 행위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단순하게, 더욱 단순하게.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며 살자. 물질이 아니라 인생을 위해, 더 중요한 가치들에 집중하기 위해 낭비 없이 살자. 낭비 없이 살 때 미니멀리스트로 사는 방식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 미니멀리스트는 더 적게 소비하고 더 많은 것을 창조하도록 이끈다.
시골에 내려가 산 지 열다섯 해가 넘었다. 더 단순해지려고 채찍질하며 단련했다. 먹고, 자고, 산책하고, 명상하고, 그 이외의 시간은 내가 좋아하는 일에 쓴다. 삶이 단순해지니, 책 읽기와 글쓰기에도 탄력이 붙었다. 전보다 더 많은 책들을 읽고, 더 많은 책들을 써낼 수 있었다. 놀랍게도 시골에 사는 동안 서른 권도 넘는 책을 써냈다. 나는 더 관대해지고, 생활은 활력으로 넘치며 약동했다. 지인들은 내 모습에서 가난에 찌든 모습은 찾기 어렵다고 말한다. 누가 보더라도 좋아 보였다. 이것은 내가 시골에서 단순한 방식으로 살게 되면서 얻은 선물이고 축복이다.
시골에 내려온 뒤 노자와 장자 철학을 공부하면서 생태주의적 사고가 더 깊어졌다. 환경 문제, 생태 문제가 삶의 진지한 화두가 되었다. 사람들이 어여쁜 삶을 사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를 자각하고 실천하는 데 내가 어떻게 기여할 수 있나 늘 생각한다. 글을 쓸 때 기본 바탕에 그런 생각이 깔린다. 화석연료로 만드는 에너지를 덜 쓰는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 문제라든지 물과 땅, 대기오염에 대해 말은 많이 하지만, 생활과 의식 사이의 간극은 크다. 더우면 거의 자동적으로 에어컨을 켠다. 그러면 금세 더위와 습기로 지친 몸이 쾌적해지니까. 앎이 곧 행동으로 이어지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이런 문제들을 자각하지 못하고 물도 에너지도 함부로 쓰는 것이 문제다. 지구 자원은 한정되어 있는데 마치 무제한 공급되는 것인 양 소비하면 지구는 더 빨리 황폐해질 것이다. 기후변화 같은 환경 역습을 받고 있는 것은 인류의 어리석고 오만한 생활 방식이 불러온 자업자득이다. 노자나 장자가 얘기했듯, 자연에 대한 공손함이 필요하다. 우리는 자연의 주인이 아니라 그 일부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인격을 가졌듯 자연에도 그런 무엇이 있다. 이는 사람이 가져야 할 바탕이 되는 책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