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서문
-1장 성서의 기원
책의 종교로서의 유대교 | 책의 종교로서의 그리스도교 | 그리스도교 정경의 형성 과정 | 그리스도교 문서의 독자들 | 초기 그리스도교의 독서 방식, 낭독
-2장 초기 그리스도교 필사자들
그리스-로마 세계의 필사 방식 | 초기 그리스도교 세계에서의 필사 작업 | 초기 필사의 문제점들 | 본문 변개 | ‘원본문’ 회복의 난제들 | 구체적인 변개 사례 | 후대에 신약성서에 추가된 대목 | 결론
-3장 신약성서 전승 과정: 편집, 사본, 이문에 대하여
그리스도교의 전문 필사자들 | 불가타, 라틴어 성서 | 최초로 인쇄된 그리스어 신약성서 | 최초로 출간된 그리스어 신약성서 | 존 밀의 신약성서 본문비평장치 | 본문비평장치가 야기한 논쟁 | 우리에게 남은 과제 | 사본에 나타나는 다양한 변개 | 결론
-4장 원본문을 찾아 나선 사람들: 본문비평 방법론과 새로운 발견
리샤르 시몽 | 리처드 벤틀리 | 요한 알브레히트 벵엘 | 요한 J. 베트슈타인 | 칼 라흐만 | 티셴도르프 | 웨스트코트와 호트
-5장 중요한 원본문들
현대 본문비평 방법들 | 「마가복음」과 분노하는 예수 | 「누가복음」과 침착한 예수 | 「히브리서」와 버림받은 예수 | 결론
-6장 교리적 요인에 의한 본문 변개
사본 전승의 교리적 배경 | 양자론과의 논쟁 | 가현설과의 논쟁 | 분리주의와의 논쟁 | 결론
-7장 사회적 요인에 의한 본문 변개
여성들과 성서 본문 | 유대인과의 갈등과 관련된 본문 변개 | 적대적 이교도와의 논쟁
-결론 | 성서는 지금도 변하고 있다: 필사자, 저자 그리고 독자
-감사의 말
-주
-부록
우리가 묻고 바트 어만이 답하다 | 『성경 왜곡의 역사』 독자들의 반응에 대해 | 유명한 사본들 | 원래 신약성서에 없었던 유명한 구절 10선
-옮긴이의 말: 20년 만에 다시, 원전의 숨결을 따라
[본 문]
우리에게 있는 것은 나중에 만들어진 필사본들로, 대부분 천 년도 넘게 지난 훗날에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더군다나 완벽하게 정확한 필사본은 하나도 없다. 그 사본들을 만든 필사자들이 실수로 혹은 고의로 본문을 여기저기 변개했기 때문이다. 모든 필사자가 그랬다. 우리는 원본, 즉 성서 저자들의 자필 원고 속 영감의 말씀을 가진 것이 아니라 그 원고를 베끼고 베낀 오류투성이 사본들만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성서란 하나님의 뜻이 깃든 것인데 우리에겐 없으니 가장 시급한 과제는 성서 원본문(originals)의 내용을 밝히는 것이었다.
_15쪽
만일 성서를 그리스어(그리고 히브리어)로 연구할 때만 그 말씀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면, 고대어를 알지 못하는 대다수의 그리스도교인들은 하나님이 전하고자 하는 뜻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아울러, 그렇다면 축자영감의 교리는 높은 지적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나 고대어를 배워 성서를 원문으로 읽으면서 연구할 여유가 있는 학자들만을 위한 교리가 되는 것은 아닌가? 대다수가 영어처럼 원어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언어로 옮겨진 다소 어색한 번역본만 접할 수 있다면, 그 말씀은 과연 하나님의 뜻으로 쓰였다고 말할 수 있는가?
_18쪽
스토리 교수는 내 논문 말미에 간단한 한 줄 평을 써놓았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한 줄이 나를 정통으로 꿰뚫고 지나갔다. “마가가 그냥 실수한 것이겠지.” 나는 논문에 기울인 그 많은 수고를 곰곰이 되새기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꽤 교묘한 주해를 동원한 데다 해법이 약간 억지스럽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침내 나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음… 그래. 아마 마가가 실수를 한 게 맞을 거야.”
_22쪽
이제는 성서가 나에게 매우 인간적인 책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인 필사자들이 성서 본문을 베껴 쓰고 변개한 것과 마찬가지로, 처음에 성서 본문을 ‘기록한’ 이들도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성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책인 셈이다. 성서는 서로 다른 필요에 따라, 서로 다른 장소와 서로 다른 시기에, 서로 다른 사람이 기록한 책이다. 성서의 저자들 가운데 많은 이가 자신은 하나님의 뜻을 담아 기록한다고 느꼈겠지만, 그들은 각자 자신의 시각과 자신의 믿음과 자신의 견해와 자신의 필요와 자신의 소망과 자신의 이해와 자신의 신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시각, 믿음, 견해, 필요, 소망, 이해, 신학은 그들이 하는 모든 말에 녹아 있었다.
_25쪽
나는 종종 이렇게 쓰인 범퍼 스티커를 본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씀을 믿는다. 그렇다면 결론은 분명하다.” 나는 그 말에 이렇게 되묻게 된다. 하나님이 그 말씀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나님의 직접적인 말씀을 전해주는 책이라고 당신이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책이 사실 인간의 말을 담고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성서가 낙태 문제라든지 여성 인권 문제, 동성애 문제나 종교적 패권주의 문제, 서구식 민주주의 문제 등 현대 사회의 여러 제반 문제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주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성서를 거짓된 우상 또는 전능한 하나님과 직접 소통하게 해주는 수단으로 떠받들지 않고, 우리 스스로 어떻게 살고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판단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성서가 우리의 삶을 이끄는 무오한 지침이 아니라는 데에는 명백한 이유들이 있다. 특히 지금까지 내가 지적해왔듯이, 학자이든 일반 독자이든, 우리는 성서의 원래 말씀이 무엇이었는지조차 알 수 없다.
_29쪽
이 책은 바로 그런 책이다. 내가 알기로는, 이 책이 이런 목적으로 쓰인 최초의 책인 것 같다. 본문비평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지만, 필사자들이 성서를 어떻게 변개했으며,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아낼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쓰였다. 이 주제에 대해 30년 동안 고민해온 내 생각과 성서에 대한 가치관의 근본적인 변화를 겪은 이후 형성된 시각을 바탕으로 쓰였다. 신약성서가 어떻게 우리에게까지 전달되었는지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 어째서 어떤 경우에는 저자들이 처음 기록했던 문장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 어떤 흥미로운 과정에서 다양한 이문이 생기게 되었는지 알고 싶은 사람들, 철저한 학문적인 분석 방법을 사용해 어떻게 원본문을 복원할 수 있는지 관심이 있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위해 쓰였다.
_31쪽
모든 면에 있어 성서는 서구 문명사에서 가장 중요한 책이다. 우리는 성서에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는가? 성서를 원어로 읽어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설령 읽더라도 실제 사본을 직접 읽어보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여러 사본을 비교해 살펴보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성서의 원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리스어, 히브리어, 라틴어, 시리아어, 콥트어 등 고대 언어를 배우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면서, 사본들을 연구하고, 신약성서의 저자들이 실제로 무엇을 썼는지 판단하는 일에 평생 매달려온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다시 말하자면 누군가가 본문비평이라는 수고스러운 학문 분야에 뛰어들어, 서로 수천 곳에서 차이가 나는 방대한 사본들을 바탕으로 ‘원본문’을 재구성해온 것이다.
_311쪽
혹시 최근에 성서 해석과 관련해 논쟁한 일이 있다면 떠올려보라. 뜨거운 논쟁 중 갑자기 누군가가 일어나서 성서를 인용하며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는데, “도대체 저 사람, 이 말씀으로 어떻게 저런 결론에 도달한 거야?” 하고 의아해한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동성애, 교회 내의 여성 참여, 낙태, 이혼, 심지어 미국의 외교 정책 같은 문제를 둘러싼 논의 속에서 이런 장면을 쉽게 목격한다. 양측 모두 같은 성서, 심지어 어떤 때는 같은 구절을 근거로 저마다의 주장을 펼친다. 이런 현상은 어느 한쪽이 덜 지적이거나 더 고집스러워서 본문이 말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신약성서가 단순히 어느 독자에게나 그 의미가 자명하게 드러나는 말씀들을 모아놓은 책에 불과하다고 볼 수는 없다.
_323쪽
본문의 뜻을 이해하려면 그 본문을 읽을 수밖에 없고, 본문을 읽으려면 그것을 마음속에서 다른 말로 표현하는 수밖에 없고, 그러려면 표현하기 위한 다른 말을 이미 가지고 있어야 하고, 우리가 그런 다른 말을 가진 이유는 우리가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며, 살아 있다는 것은 곧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온갖 요소들 즉 욕구, 갈망, 필요, 바람, 신념, 관점, 세계관, 의견, 기호, 혐오 등으로 채워져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본문을 읽는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본문을 변개하는 행위이다.
_323~32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