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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겨진 것 - 공적 기억과 예술 언어(SeMA 비평프로젝트)

    • 장한길 저
    • 미디어버스
    • 2025년 12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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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품 규격 정보
    상품상세정보
    ISBN ISBN-13 : 9791190434898
    쪽수248쪽
    크기기타 규격
    제품구성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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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소개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공적 기억과 예술 언어라는 주제를 통해 동시대 한국 예술가의 작품 및 전시에 관한 심도 있는 비평을 쌓아 가는 장한길의 책이 출간되었다. 장한길은 하나금융그룹이 후원하는 2023 SeMA-하나 평론상의 수상자이며, 특전으로 주어지는 연구 및 출판 지원 사업 ‘2024-2025 SeMA 비평연구 프로젝트의 결과물로서 이 책을 썼다. SeMA 비평연구 프로젝트는 서울시립미술관(SeMA)이 구축한 국공립미술관 최초의 미술 분야 평론가 지원 시스템으로서 동시대 한국 미술계에서 가장 빛나는 비평의 성과를 만들어 가고 있다. 『남겨진 것』은 SeMA 비평연구 프로젝트 총서 네 번째 책이다.

    장한길은 서울과 베를린을 오가며 예술·문화 연구자이자 번역가로 활동하고, 동시대 매체가 생산하는 언어와 감각의 층위 그리고 그 안에서 드러나는목소리구술성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왔다. 이 책에서 장한길은공적 기억의 문제가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단지 소재의 차원으로 활용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매체 논리와 형식 언어를 향한 치밀한 사유로 이어지며 서로를 형성해 가는 과정에 주목했다. 따라서 이들의 실천에서 예술적 실험성에 대한 고민이 정치·사회적 함의와 결코 뗄 수 없다는 점을 드러내 보이고자 했다.

    이 책은 우리에게무엇을 기억할 것인가끊임없이 질문한다. 전쟁이 남긴 잔인한 상흔, 곧 사라져 버릴 기념비, 기억 속에만 존재하던 장소, 인간을 그대로 본뜨고자 했던 욕망 등 인간의 다층적인 모습이 남긴 흔적을 찾아내 그 의미를 파헤친다. 그리고 이 기억을 주요하게 다룬 작품들을 해석해 내려 애쓴다. 이 과정에서 단단히 뒷받침되는 것은 시대와 나라를 넘나드는 넓은 연구와 깊은 조사의 결과다. 장한길은 공적 기억을어떻게 기록할 것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질문함으로써 동시대 예술과 기록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목차

    [목 차]
      

    들어가며

    1장 증언미학

    2장 감광영화(減光映?): 기억의 터

    3장 부재를 스크리닝하기: 임철민의 〈야광〉

    4장 진실 혹은 신앙의 매체, 라이프캐스팅

    5장 망각을 위한 장치, 과정으로서의 기념비

    감사의 말

    2024-2025 SeMA 비평연구 프로젝트: 에필로그


    [본 문]
      

    기억은 구호와 의례로서 정형화되는 순간, 즉 편하고 익숙한 형식으로 거듭나 버리는 그 순간에 망각이라는 운명을 안게 된다. 따라서 기억이 오래 남으려면 아이러니하게도 끊임없는 의심과 질문은 물론 고통스러운 직면이 필요하다. 베를린에서 보낸 시간은 나로 하여금 한국의 동시대 예술가 중에서도 구호와 의례 너머의 기억을 모색하는 이들을 눈여겨보게 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작가들은 기억의 문제를 단지 작품의 소재로만 활용하지 않고 매체 논리와 형식 언어를 두고 진지하게 고민한다. 그들은 각광받는 미감이나 널리 수용되는 형식을 깊은 고려 없이 손쉽게 차용하지 않는다. 우리의 감각에 쉽사리 순응하지도 감정에 가볍게 호소하지도 않으며, 손쉽게 주입될 수 있는 형태의 대안 기억을 내걸지도 않는다. 대신 기억 대상이 제시되는 익숙한 형식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며 이를 통해 기억이란 무엇인지, 앎이란 무엇인지를 근본적으로 질문한다. (11페이지)

     

    증언이라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균열과 다층적인 결을 비판적으로 읽어 낼 수 있는 감각을 노아 쉔커(Noah Shenker)증언 문해력이라고 명명했다. ‘문해력이라는 표현을 통해 쉔커가 강조한 것은 증언 생산 주체나 작업자보다, 증언을 비판적으로 성찰해야 하는 수용자의 책임이다. 강경래는 1990년대 일본군위안부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생존자들의 증언을 기록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고 말하며, 대표적 사례로서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1995)를 꼽는다. 반면 2010년 이후의 영화들인 〈귀향〉(2016), 〈눈길〉(2017), 〈아이 캔 스피크〉(2017) 등은 생산된 증언 기록을 바탕으로 오히려 적극적인 가공을 시도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관찰한 바 있다. 그의 말대로 앞선 세대의 예술인, 활동가 그리고 연구자들이증언의 생산에 힘썼다면, 이제는 증언의 생산과 매개 과정을 이루는 복잡한 결, 균열, 모순, 대립하는 요소들을 섬세하게 드러내고 증언이 결코 하나의 틀로 매끄럽게 환원될 수 없음을 상기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27페이지)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문자보다는 녹음매체가 증언을 더 충실하게 전달할 수 있다고 여긴다. 또한 몸짓과 침묵의 순간 등 언어를 초과한 증언의 영역은 영상매체를 통해 더욱있는 그대로전달될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IMO』의 작업자들은 문자를 대체하거나 보완하는 방식으로 영상 촬영과 음성 녹음을 활용하지 않았다. 작업자들은 이모와의 대화를 현장에서 받아 적지 않고 먼저 녹음했으며 종종 촬영도 했지만, 최종 결과물에서 영상과 음성매체는 이모들의 구어적 특징, 비언어적소리 요소, 혹은 몸짓을 포착하기 위한 방식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글을 읽으며 독자가 궁금해할 법한 이모들의멜로디로 하는 말, “불쑥 튀어나온 좋은 미국식 영어 발음과 같은 소리는 큐알 코드 영상에 담겨 있지 않다. 괄호와 대괄호를 끊임없이 동반해야 하는불완전한 문자 전사는 다른 무엇보다 증언의 매개됨을 드러내며, 동시에 영상과 음성 매체의 직접성(immediacy)에 대한 통상적인 믿음에 대해 되묻는다. (50페이지)

     

    〈쇼아〉에서는 47세가 된 스레브니크가 오솔길을 걷다가 자신의 왼쪽(화면의 오른쪽)을 응시하며 멈춰 선다. 그가 독일어로 이렇게 말한다. “좀 알아보기 힘들지만, 여기 있었어요. 여기서 사람들을 화장했죠. 많은 사람들이 화장되었습니다. , 여기가 그 장소입니다.” 이어지는 장면은 짙은 초록의 나무숲과 그 앞에 펼쳐진 연두색 들판의 풍경을 패닝 숏으로 담고 있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절멸 수용소의 흔적은 전혀 남아 있지 않고, 오히려 참사가 자행되었다고 믿기 힘들 만큼 전원적이고 평화로운 풍경이다. 그러나 스레브니크는 그곳에서 마치 시간의 흐름이 기억의 흔적을 모두 지워 내지는 못했다는 듯 헤움노 수용소가 있던 자리를 식별해 내며 자신의 목소리를 그 위에 얹는다. “산 자는 누구도 여기를 빠져나가지 못했습니다.” (70페이지)

     

    프램튼이 스노우의 목소리를 빌려 말했듯이, “우리가보고 싶다고 말할 때, 실제로는’” 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영화, 더 나아가 영상 매체에서더 본다는 명제에 내재한 근본적인 아이러니는 〈레드필터가 철회됩니다.”〉에서 단순한 매체 조건에 대한 인식을 넘어서, 참사의 재현 문제와 맞물린다. 그 결과 작품 속 이미지는 텍스트나 풍경 영상 둘 중 하나로만 환원될 수 없는-동시에 느슨하면서도 우회적으로 연결된-전혀 다른 차원의 깊이를 갖게 된다. (93페이지)

     

    언뜻 보기엔 〈맷〉 역시, 입체의 모든 면을 파악할 수 있도록 2차원으로 재현한전개도에 대한 믿음을 문제 삼는 작업의 연장선상에 놓인 듯하다. 그러나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윤지영이 조각가라는 사실, 그리고 〈구의 전개도는 없다〉 연작이 모두 단순한 전개()’가 아닌 주조 과정을 거쳐 제작된 주물, 즉 조각 작품이라는 점이다. 조각은 태생적으로 전개도와는 전혀 다른 독법을 요구한다. 로절린드 크라우스(Rosalind E. Krauss)의 지적대로, 조각은정적인 것과 동적인 것, 정지된 시간과 흐르고 있는 시간이 교차하는 지점에 특이한 형태로 정박되어 있는 매체이다. 따라서 현대미술에서 조각을 다룰 때 그 안에묵시적으로 내재해있는 시간성에 대한 고찰은 불가결하다.

    이러한 지적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글은 〈맷〉이라는조각의 시간성-, 과정적 그리고 수행적 성격-에 대해 주목하며, 이를 통해 입체를 평면으로 재현한 전개도나 사진에 깃든 진실 가치뿐만 아니라 조각이라는 매체에 부여된 진실 가치 또한 고찰하고자 한다. 진실에 대한 의문, 기억이 전달되는 방식 그리고 믿음이 형성되는 과정을 모두 관통한 자리에는 조각에 대한 고민이 있다. (146페이지)

     

    지표, 즉 누군가의 신체에서 비롯한 흔적으로서 〈맷〉이 지니는 함의는 단순히 독해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만약 이 실리콘 조각이 정말로 사람 신체의 흔적이라면, 우리는 일반적인 조각상을감상할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작품과 마주해야 할 것이다. 윤지영 또한 이런 점을 의식했던 듯하다. 그는 조각과 가능한 상호작용의 방식이나 조각의 과정을 담은 영상을 함께 전시하며 조각 특유의수행적 요소를 전해 왔다. 그런데 〈맷〉의 경우에는, ‘맷으로 추정되는사람에게 쓴 편지가 이 기능을 대신한다(3D 스캐닝 회사에서 개인 정보 보호를 이유로 연락처를 제공하지 않아, 실제로 편지를 부칠 수는 없었다고 한다). 그 편지의 말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저는 사실 당신의 몸을 이용해서 여러 작품을 만들었는데 가끔 당신을 생각하면 왠지 모를 죄책감이 느껴져요. 당신이 어딘가에 정말 살아 있다면 언젠가 마주칠 수 있을까요? 그러면 내가 당신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까요? (32페이지)

    출판사 서평

    예술은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는가

    동시대 예술가들의 언어로 되살아나는 공적 기억

    『남겨진 것』은 총 여섯 편의 글로 구성되었다. 이 책의 프롤로그이자 모든 수록 글을 감싸는들어가며는 작가가 독일에 머물며 목격한, 철저하게 이스라엘을 옹호하고 팔레스타인 지지자들을 탄압하는 독일 정부의역사 청산정신에 의문을 던지며 시작한다. “구호와 의례로서 정형화되는 순간, 즉 편하고 익숙한 형식으로 거듭나 버리는 그 순간에 망각이라는 운명을 안게 된다.”라며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끝없는 의심과 질문을 던지는 고통스러운 직면이 필요하다고 쓴다. 이 의심과 질문이 동시대 예술가들의 작품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차용되는지를 고찰하는 것이 이 책의 화두이다.

    1장 증언미학은 기술 매체와 증언의 균열, ‘증언 문해력을 연관 지으며 증언을 다루는 동시대 예술 실천을 비판적 관점으로 들여다본다. 특히 일본군위안부인터랙티브 증언 프로젝트인 〈영원한 증언〉,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증언을 기록한 〈증언의 다차원성〉, 평택 기지촌 여성들을 인터뷰한 책 『IMO: 평택 기지촌 여성 재현』, 뉘른베르크 재판을 다룬 《증인-기계 콤플렉스》 등 다양한 증언 상황 속에서 보이는 인터뷰의 관습과 편집의 흔적으로 드러나는 균열, 날이 갈수록 발전하는 기술 매체의 특성에 따라 끝없이 바뀌는 변화를 포착한다.

    2장 감광영화(減光映畫): 기억의 터는 기억 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함에도 아무 흔적이 남지 않은 곳을 클로드 란츠만의 용어를 빌려기억의 비장소라 말하며 기억과 실제 흔적의 간극에 대해 주목하고, 이를 김민정의 〈레드필터가 철회됩니다.”〉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막연히 생각하는학살터의 이미지와 실제 장소인 제주 4·3 참사 현장, 헤움노 수용소, 토스카나 지방의 아름다운 풍경을 대비하며 기억의 비장소에 대해 기대했던 익숙한 재현 방식이 깨지고 어긋나는 지점을 레드 필터를 상징으로 한덜 보는 것또는더 보는 것의 의미와 함께 짚어 낸다.

    3장 부재를 스크리닝하기: 임철민의 〈야광〉은 서울 내 퀴어 역사의 일부인 극장 크루징을 주제로 한 임철민 감독의 〈야광〉을비경험 세대포스트-메모리라는 키워드를 통해 조명한다. 〈야광〉은 시간이 경험을 빚어내는 방식, 화면을 표면처럼 인식하게 하는 요소, 그리고 영상의 환영성 혹은 재현적 역량을 강화하는 기술의 역이용이라는 전략을 통해, 극장 크루징에 대한 기억을상기하기보다는 '상상'을 통해 구축한다. 이러한 기억의 구축 속에서 어떻게 영화의 조건과 극장 크루징 사이의 닮은 점을 예리하게 파악하고 활용하는지를 살펴보고, 오늘날 영상의 생산에 동원되는 다양한 기법 및 기술이 공적 기억의 구축에 끼치는 영향을 분석한다.

    4장 진실 혹은 신앙의 매체, 라이프캐스팅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려는 욕망을 담은 매체들과 그 매체가 가진 진실 가치에 대해 고찰한다. 우선 대표적인 기록 매체인 사진을 살펴보고 이어 윤지영 작가의 〈맷으로 추정되는〉, 〈구의 전개도는 없다〉를 통해 조각의 시간성과 진실 가치에 대해 주목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주조 기법 중 라이프캐스팅의 역사를 돌아보고, 진실이라 믿어졌던 매체의 이면을 들추어 조각의 내면을 살펴보기를 권한다. 그리하여 진실에 대한 의문과 진실이 전달되는 방식을 고민한다.

    5장 망각을 위한 장치, 과정으로서의 기념비에서는 철거의 그림자가 드리운 독일 베를린의 〈평화의 소녀상〉을 둘러싼 논의를 베를린의 기념비 건립 붐과 철거의 역사를 돌아보며 다룬다. 〈평화의 소녀상〉의 기념비성을 고찰하며, 이를 이정우 작가의 전시 《알고리즘적 업보의 고리》, 슈판다우 성채에서 열리는 전시 《베일을 벗다: 베를린과 기념비》와 연결해 우리가 기념비를 보고 떠올려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혹시 기념비가 과거에 대한 기억의 의무를 대신해 주는 외부 장치로 거듭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한다.

    『남겨진 것』은 기술 매체·언어·기억의 교차점을 탐색하는 연구 과정을 동시대의 다양한 문화·예술 사례와 겹쳐 보며, 공적 기억과 예술 언어가 보다 넓고 풍부한 논의로 이어질 수 있는 기반을 닦는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지 고찰하는 독자들의 새로운 관점을 또한 기대해 본다.

    저자 소개
    저자 : 장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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