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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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글
I. 봄
봄비 오시다
저들 나무들처럼 푸르른 봄
풍경 소리는 숲의 고요를 말한다
나물 먹고 물마시자 꽃이 피네
풀을 깎으며
이 산의 주인은 누구인가?
II. 여름
순자 씨, 순자 씨!
“방귀길 나자 보리양식 떨어진다”
항아리에 올려 둔 구부러진 오이 한 개
시간 비행
보리야, 미안하다
그래도, 생명의 물줄기는 멈추지 않았다
인생은 사랑의 붓질
모든 존재는 살아남아야 한다
III. 가을
사랑은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다
어머니와 백일홍
가을이다, 우리도 사랑을 하자
“네가 돌아갈 곳은 없다”
말馬 그리고 말言
인생학교 같은 ‘무문관’에 들고 싶다
마음의 몸살 앓이
IV. 겨울
겨울에도 꽃은 핀다
온 적도 없고 간 적도 없다
금잔화 꽃이 피는 겨울입니다
‘시간 기차’ 안에서
물 한 사발에도 세상의 은혜가 있다
[본 문]
땅속에서 움이 트기를 기다리는 씨앗과 언 땅에서 숨을 죽이는 풀들과, 꽃눈들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는 듯, 입춘을 알리는 맵고 차가운 바람이 지나고 설날이 지나자 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반가운 봄비가 오신다.
우산을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내리는 이슬비를 맞으며, 하늘을 본다.
손바닥을 펼쳐 빗방울을 만난다.
“그래, 봄이 왔다!”
- 14쪽 ‘봄비 오시다’ 중에서
바람이 부니 풍경이 노래한다
바람이 부니 꽃씨가 흩날린다
곧 이어 지천으로 꽃들이 만개 할 것이다
이 봄 천상만화의 봄이 열리고 있다
그리고, 천상낙화의 묘음에 금구성언의 진음이
풍경 소리에 실려 울려 퍼지리라
하늘 닿은 곳 그 너머 더 먼 곳에도
다시금 바람이 인다.
휘리리릭 휘-익 휘
뎅그렁 뎅뎅 뎅
데뎅그렁 데데뎅 뎅뎅
너-훌 너-훌 너너-훌
- 34쪽 ‘풍경 소리는 숲의 고요를 말한다’ 중에서
나뭇잎들이 무성해지고 있다.
살아 있는 것들은, 푸르른 잎들을 키워내기 전부터 자연이 주는 풍상을 딛고 일어서서 나무들이 무성한 잎들을 키워내듯이, 자연이 자연스러워지기까지 일어나는 삼라만상의 모든 작용들이 만들어내는 거센 바람과 비, 땅들의 꿈틀거림과 벌레들의 움직임 속에서 오늘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연엽산에서 십 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야깃거리가 없는 것처럼 숲은 침묵 속에서 푸르르기만 하니, 뉘라 애써 말하지 않는 일들을 굳이 물어볼 이유가 있기나 할까 말이다.
- 67~68쪽 ‘순자 씨, 순자 씨!’ 중에서
한 때는 시에 미쳐서 몇 년을 잠을 자지 않고 살았다.
‘중이 되면 시만 쓸 수 있는 시간이 있을까?’ 하는 나의 ‘미친 욕망’을 품고 산문에 들어, 끝도 없는 노동의 시간으로 한동안은 시를 잊고 살다가, 아예 잊어버렸었다. 벽을 쳐다보다가 밖에 나와 다리를 쉴 때면 한 구절 말이 올라와도 그냥 흘려보내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그 숨은 씨앗이 어디로 가겠는가?
어느 날, 시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시는 우리의 잠을 깨우는 이슬비!
시는 빛으로 가는 등불!
시는 말 이전으로 가는 이정표!
- 87쪽 ‘항아리에 올려 둔 구부러진 오이 한 개’ 중에서
마음이 울적할 때마다 한 번씩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을 새겨본다. 그 중에서 오늘은 여덟 번째 덕목을 새겨보는 것으로 끝을 맺고자 한다.
“덕을 베풀 때, 보답을 바라지 말라.”
보답을 바라면 도모하는 뜻을 가지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덕을 베풀었다는 생각을 헌신짝처럼 버려라.” 하셨느니라.
1.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2. 세상살이에 고난 없기를 바라지 말라.
3. 마음공부에 장애 없기를 바라지 말라.
4. 수행하는 데 마(魔) 없기를 바라지 말라.
5. 일을 꾀하되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말라.
6. 정을 나누되 이롭기를 바라지 말라.
7.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하기를 바라지 말라.
8. 덕을 베풀되 보답을 바라지 말라.
9.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지 말라.
10. 억울함을 자꾸 밝히려고 하지 말라.
- 103쪽 ‘시간 비행’ 중에서
개미는 장마가 오기 전에 줄을 지어 이사를 한다. 그 많은 덤불 속의 벌들도 태풍이나 장마가 오려면, 사람이 사는 헛간이나 처마 아래 자꾸만 집을 지으려고 한다. 벌들이 처마 밑으로 날아들기 시작하면 이삼일 안에 큰 비가 오거나 태풍이 온다. 저마다 살 궁리를 한다. 땅 속의 설치류들은 보다 깊이 굴을 파는 일을 할 것이다. 어쩌면 과학문명은 자연이 빚어내는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인연으로부터 인간 자신을 보호하고 지켜내기 위해 보다 발전되고 진화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자연은 생태의 보존과 확산, 개체의 수를 늘이고 줄이는 일을 인간의 영역에서 관장하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이다.
- 133~134쪽 ‘모든 존재는 살아남아야 한다’ 중에서
‘향상된 정신영역’의 총체적 컨트롤 타워는 물론 ‘사랑’이다. 모양도 모습도 없는 포괄적 긍정에너지의 원천이,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샘물은 모든 부조화의 불협화음을 개선하는 위대한 힘이다.
‘사랑’은 인간이 가진 ‘이해의 감정’을 통로로 그 빛을 선사한다. ‘이해’는 자기의 영역이지만, 그 또한 나는 ‘원대한 사랑’이 준 선물이라고 믿는다. 어쩌면, 인간은 ‘사랑’을 얻으려 평생을 허비하는 것이다.
- 145쪽 ‘사랑은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다’ 중에서
가을이다.
귀뚜리들이 노래하고 있다.
여름의 끝자락이면 어김없이 방이나 창고의 문을 열면 한두 마리씩 튀어 오르는 귀뚜리들을 보며, 가을 엽서를 읽듯이 귀뚜리들을 바라보았다.
저 하늘 어느 별에서는 언제나 음악이 흐르고, 노래로 마음을 나누고 전하는 분명 아름다운 ‘노래별’이 있다고 믿으며, 높이 튀어 오르는 귀뚜리들에게 눈길을 맞추며, 귀뚜리가 꼭 ‘춤추는 악사’처럼 생겼다고 혼잣말을 읊조리기도 했다.
그 새, 가을이 성큼 깊어진 모양이다. 바람결이 연신 창문을 두드린다. 귀뚜리들도 그에 질세라 한층 소리를 높인다.
- 164~165쪽 ‘가을이다, 우리도 사랑을 하자’ 중에서
말은 주인이 이끄는 대로 수레를 끈다.
채찍으로 주인의 의도를 전하고 명령한다. 달리는 말에 채찍을 휘두르는 것도 말의 주인이다.
그런데 수레를 끄는 말과, 우리의 생각을 표현하는 말과는 장음과 단음으로 구분하는, 같은 단어 다른 뜻을 가지고 있지만, 실상 수레를 끄는 말과, 말(言)은 주인의 명령대로 나아가는 것은 다르지 않다.
말이 주인의 채찍에 속도를 내는 것과, 말(言)이 주인의 의도에 따라 혀를 움직여 소리를 내는 것은 ‘주인’이 있다는 것도 같고, 의도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 같기 때문이다.
말이 주인을 잘못만나 잘 길들이지 못하면 제 멋대로 마차를 끌고, 말(言) 또한 주인의 바르지 못하면 생각이 가시를 돋는 말이 되기도 하고, 양설이 되기도 하고, 감언이 되기도 하고, 본말을 감추고 위장을 하기도 한다.
바른 말(言)은 무엇일까?
- 180~181쪽 ‘말(馬) 그리고 말(言)’ 중에서
바람이 불지 않으면 호수엔 물결의 흐름도 보이지 않는다. 그 때 한 송이 연꽃이 호수 위에 봉긋 솟아 올라오는 상상을 해보자.
얼마나 아름다운가! 세상에 반짝이고 빛나는 것, 호사와 치장, 이런 것들이 얼마나 오래 갈 것인가? 내일이면 새로운 모양 더 질기고 고급스러운 물건들이 쏟아져 나온다.
시가 없는 곳은 어디에도 없지만, 시는 잔잔한 호수 위에 불현 듯 올라오는 순결한 한 송이의 연꽃송이와 같다. 그 꽃의 빛깔은 수 만 가지 빛깔이며, 수 만 가지 향기이며 수 만가지 자태로 자기를 바라볼 것이다.
- 212~213쪽 ‘겨울에도 꽃은 핀다’ 중에서
예전에는 징검다리가 많았다.
물에 발이 젖지 않고 개울을 건너가기 위해 큰 돌덩이를 개울 중간 중간에 던져놓고 발을 움직여 건너가는 것이다. 개울을 건너려면 징검다리를 건너야 한다. 그 중 돌덩이 한 개라도 없으면 당신은 개울에 옷을 적셔야 한다. 옷을 적시고 개울을 건너는 일도 당신의 몫이고 징검다리를 놓아 건너는 일도 당신의 몫이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저 개울을 건너려고 하는가? 그 이유를 정확히 알라. 이유를 모른 채 당신은 다리를 놓고 있습니까?
- 당신은 다른 사람이 저 개울에 옷을 젖지 않고 개울을 건너가게 하는 사람인가?
- 당신은 당신 자신이 저 개울을 건너가기 위해 다리를 놓는 사람인가?
- 당신은 당신도 저 개울을 건너고, 다른 사람도 건널 수 있게 다리를 놓는 사람인가?
- 당신은 건너도 좋고, 건너지 않아도 좋은 사람인가?
- 229~230쪽 ‘금잔화 꽃이 피는 겨울입니다’ 중에서
인생은 여행이다.
우리는, 걷거나 차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위대한 역사의 흐름의 ‘시간 기차’ 안에 있다. 여행하고 있는 것이다.
자세히 바라다보면 생명을 지켜가는 모든 생명군의 모든 존재는 순간 순간이 ‘자기목숨’을 위협 받고 있는 것이다. ‘시간 기차’ 안에서는 나무와 풀들이 자라고 꽃들이 피고 벌과 나비들이 날고 새들이 지저귄다. 나무들은 계절 따라 옷을 바꿔 입으며 때가 되면 소멸한다.
우리도 그와 같다. ‘시간 기차’ 안에 승차한 지구행성과 태양계를 지나 머나 먼 은하계의 별들까지 ‘시간 기차’는 연결되어 있다. 너무 먼 거리여서 우리의 시야 안에서 바라볼 수 없을 뿐, 우리는 함께 승차한 승객이다.
- 242~243쪽 ‘시간 기차 안에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