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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ISBN-13 : 9788964622155 |
|---|---|
| 쪽수 | 402쪽 |
| 크기 | 규격 외(152mm X 225mm, 신국판) |
| 제품구성 | 단행본 |
- 인문/역사 > 한국역사/지리
‘제2판, 34곳 삭제판’ 이후 10년 6개월 만에 ‘제3판, 원본 복원판’ 출간!
이 11년 동안, 우리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얼마나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을까?
이제, 당신이 직접 읽고, ‘법정이 아니라 광장에서’ 말하라!
20년 동안 민족문제로만 여겨져온 위안부 문제를 처음으로 계급문제와 여성문제로 고찰한 책. 조선인 위안부 문제는 지원단체가 주장해온 ‘전쟁범죄’ 아닌 ‘식민지지배’의 결과임을 보여주려 했던 책. 그러나 돌아온 건 대화나 연대 대신 민형사 고소고발과 출판금지 가처분신청, 그리고 비난이었다. 지원단체와 관계자들이 선봉에 서고, 학자들마저 그 뒤를 따랐고, 국가의 얼굴을 한 ‘국민’들이 함께 나섰다. 『제국의 위안부』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한 책이 아니라는 최종 판결이 내려진 건 무려 10년, 11년 후였다. 가처분에 따라 34곳을 ○○○○으로 처리한 ‘제2판 34곳 삭제판’이 나오고 10년이 지나도록, 일본어판, 중국어판, 영어판이 잇달아 출간되고 읽혀도, 정작 한국어판은 ‘21세기의 금서’로 묶여 있었다.
[목 차]
제3판(원본 복원판) 서문 ‘민주’가 파괴된 분열의 시대에
제2판(34곳 삭제판) 서문 식민지의 아이러니
초판 서문 다시 ‘생산적인 논의’를 위해서
제1부 '위안부'란 누구인가-국가의 관리, 업자의 가담
제1장 강제연행’과 ‘국민동원’ 사이
1. 죄와 범죄-‘강제로 끌어간’ 건 누구인가
2. ‘위안부’의 전신 ‘가라유키상’-국가의 세력 확장과 이동하는 여자들
유괴범들과 일본의 소녀들/ 조선인의 가담-인신매매와 성매매/
공창과 사창-여러 종류의 위안소들
3. 우리 안의 협력자들
4. ‘강제로 모집된’ 정신대
5. ‘소녀 20만’의 기억과 피해의식
제2장 위안소에서-풍화되는 기억들
1. 일본군과 ‘조선인 위안부’-지옥 속의 평화, 군수품으로서의 동지
위안부의 역할/ 사랑과 평화/ 또 하나의 일본군-수치와 연민/
관리자로서의 일본군/ 병사와 위안부/ 망각되는 기억들 2. 전쟁터의 포주들 종군하는 업자들/ 강제노동과 착취/ 감시·폭행·중절/ 제국의 위안부
제3장 패전 직후-‘조선인 위안부’의 귀환 1. ‘일본인’에서 ‘조선인’으로
2. 극한상황 속에서
제2부 기억의 투쟁-다시, ‘조선인 위안부’는 누구인가
제1장 지원단체의 ‘위안부’ 설명
1. 근본적인 오해 2. 정보 은폐와 ‘공적 기억’ 만들기
3. 억압으로서의 ‘성노예’상 4. 박물관의 ‘위안부’ 5. 소거되는 기억들
제2장 하나뿐인 ‘조선인 위안부’ 이야기
제3장 공모하는 욕망들
제4장 일본인 지원자들의 문제 1. 페미니즘의 모순 2. ‘가해자’란 누구인가
제5장 일본인의 부정의 심리와 식민지 인식 1. ‘조선인 위안부’란 누구인가-소설 「메뚜기」의 위안부 2. 관여 주체는 누구인가
3. 그들만의 ‘법’
4. ‘애국’하는 위안부
‘자발성’의 구조/ ‘적극성’의 배경/ ‘과거’를 생각하는 의미
제3부 냉전 종식과 위안부 문제
제1장 해석의 정치학-‘사죄와 보상’을 둘러싼 갈등
1. ‘위안부 문제’의 발생과 경과
2. ‘고노 담화’와 강제성 3. 여야가 합의한 아시아여성기금
4. ‘사죄수단’으로서의 기금 5. ‘위로금’인가 ‘속죄금’인가
6. 위안부/지원단체의 분열과 당사자주의의 모순 제2장 정치화된 일본의 지원운동 1. ‘위안부 문제’의 도구화
2. 정부에 대한 불신과 운동의 정치화 3. 지원운동의 변화와 향방
제3장 한국 지원운동의 모순 1. 서울 정대협 운동의 공과 ‘위안부’가 없는 ‘위안부 소녀상’/ 정대협의 힘과 민족권력
2. 서울 정대협의 요구를 다시 생각한다
죄인가 범죄인가/ ‘공식 사죄’와 ‘법적 책임’
3.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읽는다
피해자들의 생각과 한일협정/ 한일협정의 논의/ 한일합방조약의 구속/
제국과 냉전시대의 한계/ 위안부에 대한 이해 제4장 세계의 생각을 생각한다
1. 쿠마라와스미 보고서 2. 맥두걸 보고서의 ‘최종보고’ 3. 미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 4. ILO 조약권고적용전문가위윈회 소견 5. 사라진 ‘조선인 위안부’ 문제
제5장 일본 정부에 기대한다-새로운 조치에 나서야 할 세 가지 이유 1. 1965년 한일협정의 한계
2. 미완의 1990년대 ‘사죄와 보상’
3. 세계의 시각과 일본의 역할
제4부 제국과 냉전을 넘어서
제1장 위안부와 국가 1. 위안부와 제국 2. 위안부와 미국 3. 위안부와 한국 제2장 새로운 아시아를 향해서-패전 70년, 해방 70년 1. 식민지의 모순 2. 냉전의 사고 3. 해결을 위해
후기
참고문헌
부록 1: 『제국의 위안부』 고소고발 사태 관련 일지
부록 2: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주장 및 삭제 요구,
가처분 ‘일부 인용’ 내용 표
[본 문]
고발자들은 ‘박유하가 위안부를 매춘부라 했다’는 주장으로 언론과 전 국민의 비난을 유도했지만, 법정에서 이루어진 원고 대리인과 검찰의 비난은 위안부 문제 해결 방식에 대한 내 제안에 더 집중되어 있었다. 그리고 일본에 ‘법적’ 책임을 지우는 것은 어렵다고 한 나의 말을 ‘일본의 책임’을 부정했다는 말로 치환했다. 검사는 『제국의 위안부』보다 10년, 15년 전에 낸 책까지 거론하며 어떻게든 내가 국익을 해치는 매국노임을 증명하고 싶어했다. 그 저변에 노골적으로 드러난 건 바람직한 민족 이야기(내셔널 히스토리)에 균열을 낸 ‘여자’에 대한 강한 분노였다. 위안부 할머니를 위하는 것으로 여겨졌을 검사의 추궁과 힐난을 떠받친 건 ‘깨끗한 어머니’만 보호하겠다는 심리였다. 그에 반하는, ‘적’이어야 하는 일본군과 정을 통한 조선인 여성에 대한 혐오와, 아버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누이에 대한 불편함과, 그런 이야기를 굳이 써서 자신(남성)을 불편하게 만든 나에 대한 분노가, 그를 사로잡고 있었다. 물론 내가 책에서 일본을 비판했다는 사실은 그, 혹은 그들에게 전혀 관심사가 아니었다. 말하자면 검찰이 대표한, 자신이 바라는 ‘역사 만들기 욕망’이 나를 11년 동안 법정에 가둬둔 셈이었다.(제3판 서문, iii쪽)
이 책은 그 결정에 따라 초판본에서 34곳을 ○○○○으로 처리한 삭제판이다. 재판부는 기각한 19곳에 대해 “헌법상 보장되는 학문의 자유 또는 표현의 자유의 보호영역 내에 있다고 보이고, 이러한 견해에 대해 법원이 사전적으로 그 표현을 금지하기보다는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들을 통하여 시민사회가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건전하게 해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우리 사회의 시민의식은 충분히 이러한 해결이 가능할 정도로 성숙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마땅히 책 전체에 대해 그런 결정이 내려졌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나와 출판사는 ‘일부 인용’ 결정에 승복할 수 없었고 이의신청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재판부도 말한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이 있는 공론의 장을 위해, 삭제판이나마 내기로 했다.(제2판 서문, x쪽)
내 입장은 ‘사실을 정확히 알아야 일본에도 제대로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과 무엇보다 원고 측은 이 책이 “매춘을 근거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부정했다, 일본 정부를 면책했다”고 했지만, 나는 일본의 책임을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일본의 책임을 묻는 논지가 기존 연구자나 지원단체와는 달랐을 뿐이다. 기존 지원단체나 연구자들의 차이는 단지 ‘책임을 묻는 방식’과 그러한 결론을 도출하기까지의 ‘논지’에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해결 방식’과 다른 해결 방식을 내놓았다는 이유만으로 국가의 힘을 빌려 나를 억압하는 일에 나섰다. 서글픈 건 그들이 오래전부터 그 누구보다도 국가의 억압에 민감했고 때로는 직접 고통을 당했던 이들이라는 점이다.(제2판 서문, xii쪽)
2015년 5월, 역사학자를 포함한 세계의 저명한 일본전문가 187명이 일본 정부에 보내는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이에 참여하는 학자들은 이후 500명 이상으로 늘어났는데, 성명의 내용은 이 책에서 내가 말하고자 했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뿐 아니라 한국과 중국의 민족주의도 비판하고 있고, 운동이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을 소외시킬 수 있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무엇보다, 성매매, 인신매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지원단체는 그동안 ‘세계’가 우리 편인 것처럼 말해왔지만, 이제 그들도 지원단체의 인식에만 갖혀 있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성명인 셈이다. 그러나 한국에는 한국 비판은 생략된 채 전달되었고, 이 역시도 한국 편만 든 것처럼 환영받는 일이 일어났다. 이 책의 부록으로 그 성명을 넣기로 한 것은 그래서다.(제2판 서문, xiii쪽)
‘위안부’의 본질을 보기 위해서는 ‘조선인 위안부’의 고통이 일본인 창기의 고통과 기본적으로는 다르지 않다는 점을 먼저 알 필요가 있다. 그 안에서 차별이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위안부의 불행을 만든 것은 민족 요인보다도 먼저, 가난과 남성우월주의적 가부장제와 국가주의였다. 그리고 ‘조선인 위안부’라는 존재가 생기게 된 것은 이들의 위치를 조선인 여성들이 대체한 결과였다. 그렇게 된 배경에는 한국의 식민지화와 식민지로 이식된 공창제도가 있었고, 중간매개자들은 그런 과정에서 생겨난 존재였다.(33~34쪽)
일본군에 의한 성폭력은 일회성 강간과 납치성(연속성) 성폭력, 관리매춘의 세 종류가 존재했다. ‘위안부’들의 경우 이 세 가지 상황이 조금씩 겹치는 경우도 있지만, 조선인 위안부의 대부분은 앞에서 본 것처럼 세 번째 경우가 중심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중국 등의 점령지에서 많이 발생했던 첫 번째 경우나 네덜란드 여성을 대상으로 한 두 번째 경우까지 ‘조선인 위안부’의 경험으로 생각해왔다.(110~111쪽)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는 이들은 ‘위안’을 ‘매춘’으로만 생각했고 우리는 ‘강간’으로만 이해했지만, ‘위안’이란 기본적으로는 그 두 요소를 다 포함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위안’은 가혹한 먹이사슬 구조 속에서 실제로 돈을 버는 이들은 적었지만 기본적으로는 수입이 예상되는 노동이었고, 그런 의미에서는 ‘강간적 매춘’이었다. 혹은 ‘매춘적 강간’이었다. 이 20년 동안, 우리는 초기에 만들어진 ‘상식’에만 고집하고 그에 반하는 이야기는 무조건 ‘우익의 망동’이거나 ‘친일적 발언’으로 간주하고 배척해왔다. 그 결과, 우리 안에 남아 있는 것은 모든 ‘불순물’을 제거하고 ‘순수배양’된 ‘위안부 이야기’뿐이다.(120~121쪽)
설령 그녀들이 ‘조선인 부모에 의해 팔려’가거나 ‘조선인 업자’에 의해 강제로 끌려갔다고 하더라도, 그녀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훼손하게 되는 구조를 기획하고 마지막 순서로 가담한 이들은 일본군이었다. 전쟁터의 ‘위안부’들이 ‘원래부터 매춘부’였는지 아닌지는 그런 점에서는 중요하지 않다.(148쪽)
‘위안부’ 문제는 사실 한일 간의 문제이기 이전에 일본 내부의 문제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대립은 단순히 ‘한일 간의 대립’이 아니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또 하나의 이유는 이 문제가 냉전 종식기에 대두되어 역사인식 논쟁화되면서 위안부 문제를 현재의 정치 문제와 결부시켰던 일본 좌우 진영의 대립에 있다. 다시 말해 ‘조선인 위안부’라는 존재는 식민지지배가 야기한 문제였지만, 위안부 문제를 장기화하고 미해결 상태로 몰아넣은 것은 냉전적 사고였다.(168쪽)
그러나 기금을 완전한 ‘민간기금’으로 이해한 이들은 일본 정부가 전달한 ‘보상금(속죄금)’을 단순한 ‘위로금’으로 격하했다. 한국 사회에서 ‘보상은 없었다’는 이해가 주류가 된 것은 그런 경과를 거친 결과였다. 그러나 ‘도의적 책임’을 지는 뜻으로 건넨 그 돈이 일본 정부와 국민들의 ‘속죄’의 마음이 담긴 보상금이었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186쪽)
당시 지원자/단체가 천황제 폐지를 향한 ‘일본 사회의 개혁’의 지향보다 ‘위안부’ 문제 자체에만 집중했다면 ‘위안부’ 문제의 해결은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강제동원’에 대한 의문을 받아들이면서 구조적 강제성에 대한 인정을 구하고 합의에 도달했더라면, ‘전후 일본’ 또는 ‘현대 일본’의 한계에만 주목해서 좌파 이외의 생각과 사람을 규탄하는 게 아니라 전후 일본의 가능성에도 시선을 돌리면서 정부의 대응의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했더라면,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채 20년이라는 세월을 보내게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200쪽).
‘조선인 위안부’란 조선인 일본군과 마찬가지로 저항했으나 굴복하고 협력했던 식민지의 슬픔과 굴욕을 한 몸에 경험한 존재다. ‘일본’이 주체가 된 전쟁에 ‘끌려’갔을 뿐 아니라 군이 가는 곳마다 ‘끌려’다녀야 했던 ‘노예’임에 분명했지만, 동시에 성을 제공해주고 간호해주며 전쟁터로 떠나는 병사를 향해 ‘살아 돌아오라’고 말했던 동지이기도 했다. 그들은, ‘한복’을 입은 댕기머리 조선인이기도 했지만, 일본옷을 입고 일본머리를 한 청초한 ‘야마토 나데시코’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조선인 일본군과 마찬가지로 ‘식민지의 모순’을 가장 처절하게 살아낸 존재였다. 협력의 기억을 거세하고 하나의 이미지, 저항하고 투쟁하는 이미지만을 표현하는 ‘소녀’상은 협력해야 했던 ‘위안부’의 슬픔은 표현하지 못한다.(207쪽)
그러나 ‘반제국’의 의미를 가졌던 저항이 그곳에서는 어느새 민족권력화되어 있었다. 스스로가 ‘국가’가 되어 개인의 의지를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민족의 자존심’을 위한 것으로 간주되어 온 국민의 호응을 얻었지만, 실제 운동의 주도권은 분명 좌파가 가지고 있었다. (…) 그러나 원래는 민족의 자유를 억압하는 세력-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의미를 갖는 좌파가 어느새 국가의 얼굴을 하고 위안부를 억압하게 된다. 2000년대 이후 운동에서는 ‘여성의 인권’을 화두삼아 운동을 세계적으로 성공시켰지만, 정작 지원단체의 뜻에 따르지 않는 ‘늙은 한국여성’의 인권은 존중받지 못했다.(216쪽)
하지만 이때의 구미 각국의 결의는, 운동이 조선인 위안부의 특수성을 제거하고 여성인권문제로 호소하면서 구미의 ‘식민지배’의 그림자를 지워버렸기 때문에 가능했던 성과였다. 말하자면 구미 각국은 자신들도 식민지배의 경험이 있고 위안부를 필요로 한 군대를 가졌다는 점에서는 일본만을 비판할 수는 없는 일이었는데 위안부 문제를 자신들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안심하고 ‘일본’만을 비판할 수 있었다고 할 수도 있다.(255쪽)
‘위안부’라는 존재는 제국주의와 함께 시작되었지만, 제국이 붕괴한 이후에도 아시아에서 ‘위안부’ 시스템이 이어진 것은 곧바로 본격화된 냉전체제 때문이다. 1965년의 한일협정이 개인의 청구권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상태로 맺어진 것도 냉전체제 속의 일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위안부들은 제국주의에 의해 만들어졌으면서도 냉전 유지에도 이용되었고 냉전 때문에 보상을 받지 못했던 셈이다.(288쪽)
지금 필요한 일은, 그들을 ‘올바른 조선인 투사’로 존재하게 하면서 ‘국가의 품격’을 높이는 일이 아니다. 그저 그들을 ‘한 사람의 개인’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일이다. 중국이나 네덜란드와 같은 적국 여성들의 ‘완벽한 피해’의 기억을 빌려와 덧씌우고, 조선 여성들의 ‘협력’의 기억을 벗겨낸 소녀상을 통해 그들을 ‘민족의 딸’로 만드는 것은, 가부장제와 국가의 희생자였던 ‘위안부’를 또다시 국가를 위해 희생시키는 일일 뿐이다.(306쪽)
그럼에도 ‘자민당’에게는 사죄의식이 없는 것으로 치부한 ‘정의의 독점’이 결과적으로 일반 시민의 혐한과 우경화를 가속화시키기도 했던 것이다. 문제는 그런 식의 경직된 사고가 미국이 만든 해방 후 냉전체제 속에서 굳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제국은 붕괴했지만, 냉전체제는 그렇게 여전히 동아시아를 분열시키고 있다.(308쪽)
불화는 보수를 우경화시키고, 냉전적 사고는 기지를 존속시킨다. ‘위안부’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고 싶다면 기지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그것을 위해서도 일본과의 화해는 필요하다. 진정한 ‘아시아의 연대’는 그렇게 일본의 제국주의에 앞서 시작된 서양의 제국주의와 그들이 남긴 냉전적 사고를 넘어설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314쪽)
마녀사냥과 여덟 개의 재판, 법정에서 벌어진 대리전
다시 애초에, 사실(팩트)은 확인하면 될 일이고, 의견과 주장은 ‘법정이 아니라 광장에서’, 공론장에서 맞붙을 일이다. 법정에서 검사나 원고 측과 피고 측이 벌인 공방은 결국 학자들의 연구결과와 주장, 곧 ‘의견’들이 부딪치는 대리전이었고, 지은이는 공포의 ‘마녀사냥’, 온갖 비난과 조롱, 때로는 살해 협박에조차 시달리는 와중에 형사재판과 민사 손해배상재판, 가처분재판, 총 여덟 개의 법정을 드나들며 수백 가지 자료들을 챙겨 제출하고 거듭거듭 ‘의견서’와 ‘답변서’를 써야 했다.
대법원 ‘무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문은 이렇다. 그러니, 애초에 고소고발 사태는 도대체 무엇이었단 말인가.
“하지만 학문적 표현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학문적 연구결과 발표에 사용된 표현의 적절성은 형사법정에서 가려지기보다 자유로운 공개토론이나 학계 내부의 동료평가 과정을 통하여 검증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므로 학문적 연구에 따른 의견표현을 명예훼손죄에서 사실적시로 평가하는 데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역사학 또는 역사적 사실을 연구대상으로 삼는 학문영역에서의 ‘역사적 사실’과 같이, 그것이 분명한 윤곽과 형태를 지닌 고정적인 사실이 아니라 사회적 연구, 검토, 비판의 끊임없는 과정 속에서 재구성되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이 사건 도서의 전체적인 내용이나 맥락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검사의 주장처럼 일본군에 의한 강제연행을 부인하거나, 조선인 위안부가 자발적으로 매춘 행위를 하였다거나, 일본군에 적극 협력하였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이 사건 각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고, 이 사건 각 표현이 그러한 주장을 전제하고 있다고 보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피고인은 이 사건 도서에서 강제로 끌려가는 이들을 양산한 구조를 만든 것이 일본 제국 또는 일본군이라는 점은 분명하고,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가 일본 제국의 구성원으로서 피해자인 동시에 식민지인으로서 일본 제국에 협력할 수밖에 없었던 모순된 상황에 처해 있었다는 점을 여러 차례에 걸쳐 밝히고 있다.
이는 공소사실에 기재된 것과 같은 ‘위안부의 자발성’, ‘강제연행의 부인’, ‘동지적 관계’와는 거리가 있다.”
일지와 109곳-53곳-34곳/35곳의 ‘명예훼손’ 주장 및 ‘삭제 가처분’ 내용 비교표,
11년 동안의 『제국의 위안부』 고소고발 사태 총정리
이 ‘제3판 원본 복원판’에는 그동안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지, 그 전모를 살펴볼 수 있도록 두 개의 부록을 실었다. ‘부록 1’은 ‘『제국의 위안부』 고소고발 사태 관련 일지’이다. 그리고 ‘부록 2’로 원고 측이 『제국의 위안부』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민형사 고소고발과 ‘출판금지 등 가처분신청’에서 그 근거로 내놓은 ‘범죄 일람표’ 109곳-53곳, 그리고 가처분신청 재판부의 ‘일부 인용’으로 삭제된 34곳, 거기에 검사가 한 곳을 더한 35곳의 비교표가 실려 있다. 표 분량만 총 46쪽.
책 맨앞의 ‘제3판과 제2판 서문’은 쪽번호 i~xvi으로 따로 매겨, 본문 쪽번호는 초판본과 달라지지 않도록 했다. ‘범죄 일람표’에서 문제 삼은 내용/표현들의 위치를 곧바로 대조, 확인할 수 있도록.
돌이켜보면, 지은이는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면서 “하나의 생각만이 존중되는 사회, 국가에 그 목소리를 대표시키는 사회는 ‘다른’ 목소리를 가차없이 억압하고 배제하며 스스로를 국가화합니다”(심포지엄 〈위안부 문제, 제3의 목소리〉 발제문, 2014년 4월 29일)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그 직후에, 온몸으로 바로 그 상황을 겪게 되었다.
학문이 정치화(진영화)되고, 역사가 사법화되었다. 고발자들은 ‘박유하가 위안부를 자발적인 매춘부라 했다’는 주장으로 언론과 전 국민의 비난을 유도했지만(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법정에서 이루어진 원고 대리인과 검찰의 비난은 위안부 문제 해결 방식에 대한 지은이의 제안에 더 집중되어 있었다. 그리고 일본에 ‘법적’ 책임을 지우는 것은 어렵다고 한 말은 ’일본의 책임’을 부정했다는 말로 치환되었다. 검사는 어떻게든 지은이가 국익을 해치는 매국노임을 증명하고 싶어했다. 그 저변에 노골적으로 드러난 건 바람직한 민족 이야기(내셔널 히스토리)에 균열을 낸 ‘여자’에 대한 강한 분노였다.
그저 “복잡한 사안을 복잡한 대로 마주하자”고 했을 뿐인 지은이의 제안은 그들 자신에 의해 단순화되었던 ‘민족’ 이야기에 균열을 내는 “방해물”로 간주되었다. 그렇게 방해물의 ‘관리’에 나선 고발자와 대리인과 검찰의 뒤를 언론과 국민과 정치가들이 따라나섰다. 심지어 그 맨앞에 섰던 건 ‘학자’며 ‘평론가’라는 이름의 ‘지식인’들이었다.
대법원의 ‘무죄’ 판결, 민사재판의 ‘명예훼손과 인격권 침해 없음’ 판결, ‘삭제 가처분’ 취소 결정을 거쳐 11년 1개월 만에 법정 공방이 매듭지어지고, 10년 반 만에 『제국의 위안부』 ‘원본 복원판’을 낸다. 이제, 우리는 온전한 책을 읽고, ‘법정이 아니라 광장에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지은이는 이 『제국의 위안부』 ‘제3판 원본 복원판’과 함께 그가 ‘『제국의 위안부』 고소고발 사태’의 “그 시간을 한 권의 책이 어떻게 버텨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제 모습을 되찾게 되었는지”를 돌아본 법정투쟁기 『11년-꽃다발과 화살』을 내놓았다. 법적 처벌의 중압감과 사회적 비난과 파면 압력에 더해 한때는 살해 협박에까지 시달리며 치렀던 여덟 개의 재판을 분석하고, 재판부와 우리 사회를 향한 외침과 반론들을 모아 정리하면서 ‘지금’의 생각을 덧붙인, 특히 그 과정을 측면에서, 혹은 밑에서 지탱하고 지원해온 ‘진보’ 학자와 언론과 출판의 문제점을 비판한 2010년대 한국사회론이기도 하다.
이 10년, 11년 동안, 우리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을 얼마나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을까?
아래에, 책의 핵심 내용과 그동안의 곡절이 담긴 ‘제2판 34곳 삭제판’ 및 초판본에 대한 출판사 소개글을 덧붙여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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