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광고
AD광고
5만원 이상 결제 시 (*배송비 제외)
정가제FREE(상품/사은품) 금액이 2,000원 이상이면 2,000원 추가적립
10만원 이상 결제 시 (*배송비 제외)
정가제FREE(상품/사은품) 금액이 2,000원 이상이면 2,000원 추가적립
정가제FREE(상품/사은품) 금액이 5,000원 이상이면 5,000원 추가적립
신용카드 무이자할부 안내
결제사 혜택 안내



배송안내
- 배송지역 선택
- 주소 검색
| 네이버페이 구매하기 | 찜하기 |
[네이버페이]
| ISBN | ISBN-13 : 9788964476222 |
|---|---|
| 쪽수 | 312쪽 |
| 크기 | 기타 규격 |
| 제품구성 | 단행본 |
- 종교 > 기독교
페미니스트적 · 포스트식민주의적 정체성
- 정(情)을 향하여
미국에서의 사춘기 경험은 삶의 관점과 존재 방식을 형성하는 것에 영향을 주었고, 꼬리표처럼 끝내 해소되지 않은 채 따라다니는 질문들로 남았다. 이 질문들 가운데 가장 많은 부분은 개인·집단적 트라우마, 구조적 배제의 관행 그리고 묵인하는 폭력의 형태들이었다. 사람들은 흔히 이것을 현실에서 분리하여 추상화하고 합리화하려 한다. 그러나 다양한 형태의 트라우마는 결코 단일 사건에 머무르지 않고, 훨씬 더 복잡하며 분산되어 있고, 은폐되거나 일상에 스며들곤 한다. 『정(情), 십자가의 심장』(Heart of the Cross)은 역사·개인·집단적 폭력의 양상들과 씨름하던 분투였다. 이는 고통이 발생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행위성을 과소평가했던 십자가 신학과 얽혀있다.
민중신학은 이미 ‘한’에 대해 광범위하게 탐구해 왔다. 사회학자 한완상은 한을 “불의로 고통받는 것에 대한 해결되지 않은 분노이며, 자신이 완전히 버려졌다는 압도적 느낌으로 인한 무력감이며, 내장과 창자에서 극심한 고통과 슬픔을 느끼는 것”이라 설명했다. 그러나 이에 비하면 ‘정’은 깊이 있게 연구되지 않았다. 정은 그 다양하고 변화하는 차원의 깊이를 놓치지 않고는 간결하게 정의할 수 없다. 최유진은 정을 “구원하는 관계성 안에 구현되는 힘”이라고 주장한다. 정은 우리를 삶으로 이끌어주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한과 정은 아직 신학적으로 정의되지 않았다. 이 책은 정이라는 개념의 미묘하지만 필연적으로 모호한 윤곽을 탐구하고 상상하며, 표현하도록 초대한다.
저자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억압받는 사람들이 (강요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자발적인 용서와 화해 없이 자신을 훼손하지 않고 살 수 있는가?”, “해방과 투쟁의 선봉에 서서 남을 미워하는 것으로 자신의 구원을 이룰 수 있는가?”이다. 정의를 위해 적에 대항해 투쟁을 지속한 사람은 어느 순간부터 메마르고 지쳐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니체의 표현에 따르면 우리는 “괴물과 싸우기 위해 괴물이 되어 버릴 수 있는 위험”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정은 수동적이거나 주체성을 상실하는 행위가 아닌 능동적이고 주체성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1장에서는 장소의 정치를 통해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와 반본질주의의 문제를 둘러싼 현재의 논의를 분석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정과 한에 대한 소개로 마무리된다. 2장에서는 이재훈의 심리학적 분석을 바탕으로 한을 고찰하고, 포스트식민주의적 내용을 담은 두 편의 영화 〈공동경비구역〉, 〈사이구〉(Sa-I-Gu)의 분석을 통한 한국인의 삶에 스며있는 정의 여러 차원을 탐구한다. 3장에서는 포스트식민주의 개념을 신학적 구성을 위해 부각시키고, 그 이론을 한국계 미국인의 시각으로 읽어낸 해석을 고찰한다. 이 장은 정이라는 관계적 개념이 차이를 오히려 장려하고 귀하게 여긴다는 논지를 통해, 차이를 지워야 한다는 전통적 이해를 어떻게 재구성할 수 있을지 제안한다. 4장에서는 페미니스트 신학적 관점에서 한, 정, 아브젝트, 사랑의 개념으로 위르겐 몰트만의 그리스도론과 대화한다. 몰트만과 비판적 대화를 펼쳐 그의 해방적 정치 신학에 여전히 남아 있는 가부장적 흔적을 문제 삼는다. 5장에서는 페미니스트 비평에 비춰, 그리고 줄리아 크리스테바를 논의에 끌어들임으로써 추가된 심리적 차원으로 전통적 그리스도론을 계속해 분석한다. 결론에 가서는 과거에 십자가가 전통적으로 해석되어 온 억압적 방식을 염두에 두면서 십자가의 능력에 대해 말할 수 있는지 다양한 방법을 묻고 탐색한다.
그간 포스트식민주의 연구와 페미니스트 신학적 성찰을 통합한 한인들의 연구는 아직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 책은 한국계 미국인 포스트식민주의 페미니스트 신학 자체가 아닌, 이제 막 등장했거나 아직 표현되지 않은 많은 목소리 중 하나에 불과하다. 저자는 이 책의 성찰이 신학적 대화의 지평을 넓히는 데 기여를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또한 이번 한국어 번역이 신학적 성찰을 탈식민화하고, 두려움 없이 더 정의로운 삶과 공존의 방식을 희망하는 신학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이 책을 옮긴 최유진은 한국 독자에게 이 글이 한국 신학의 좋은 자원인 ‘정’을 세계 신학계에 소개할 수 있는 좋은 참고도서가 될 것이라 믿는다. 또한 포스트식민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의 개념들을 신학에 전유한 구체적인 예를 소개받을 수 있을 것이라 한다.
[목 차]
한국어판 서문
옮긴이의 글
감사의 말
서론╻
포스트식민주의 서문
뿌리 찾기
‘거주 외국인’(Resident Alien): 변위(들)(Displacement[s])
복잡한 경로(Route)/깊은 뿌리(Roots)
이 책의 주장
이 책의 개요
1장╻제자리에서 벗어난 정체성(Identity Out of Place)
제자리에서 벗어난(Out of Place)
시험대에 오른 본질주의
집의 정치
페미니스트적· 포스트식민주의적 정체성 - 정(情)을 향하여
2장╻한(恨)과 정(情)
한(恨)과 정(情)에 대한 정신분석
정(情) 이야기
번역된 번역가
공동경비구역 JSA: 비무장지대(DMZ), 삶과 투쟁의 현장
사이구(Sa-I-Gu): LA 폭동, 삶과 투쟁의 현장
3장╻포스트식민주의 이론과 한국계 미국 신학
소외(외국인Alien/국가nation)
‘영향력’으로서의 정체성
혼종성(Hybridity)
흉내내기(Mimicry)
틈새적 제3의 공간(Interstitial Third Space)
‘포스트식민주의’ 논쟁
4장╻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정(情)의 길
폭력적인 함의와 급진적 연대
위르겐 몰트만의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과 삼위일체 그리스도론
정(情)의 해방적 실천(Praxis)
5장╻정(情) 그리스도론
가부장적 신 뒤흔들기
한(恨)/죄와 정(情)/구원
정(情)의 힘과 한(恨)의 공포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아브젝시옹과 사랑
결론╻십자가의 심장
찾아보기
주Note
[본 문]
포스트식민주의 이론에 따르면 정체성은 통일되거나 단일한 것이 아니라 파편화되고 분열된 것이다. 정체성은 서로 다르고, 교차되어 있고, 상반된 입장들과 실천들을 가로질러서 구성된다. 따라서 혼종성에 대한 포스트식민주의 이론은 기원이나 뿌리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다양한 경로의 중요성을 주장하고자 한다.
많은 사람에게 집은 항상 여러 문턱이 있기 때문에 완전히 들어가지 못하고 항상 여러 현실의 경계에서 살아간다. 집은 다양한 역학 관계에 따라 달라질 뿐만 아니라 항상 임시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삶의 터전뿐만 아니라 ‘고향’에서도 낯선 존재가 된다. 그 결과 익숙하지만 서로 다른 세계 속에서 반복적으로 이질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불안한 느낌 때문에 우리는 정착에 대한 문제를 면밀히 검토하게 되는데, 이는 다양한 이유로 정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익숙하지 않은 고립의 불안을 더 쉽게 견딜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1장_ 제자리에서 벗어난 정체성〉 중에서
주디스 버틀러는 페미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양날의 검과 같은 관계를 염두에 두면서 “정체성 범주는 단순히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항상 규범적이며, 따라서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이는 민족주의, 젠더, 계급 등의 용어로 정체성이 구성될 때마다 페미니스트에게 이것을 경계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버틀러는 정체성의 해체는 “정치의 해체가 아니라 정체성을 표현하는 바로 그 용어들을 정치적인 것으로 설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녀는 범주의 죽음이 아니라 범주/용어에 대한 전체화 경향을 넘어서도록 열려 있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1장_ 제자리에서 벗어난 정체성〉 중에서
영화는 번역이고 영화 제작자는 번역가이다. 이 특별한 영화를 재번역하는 관객이자 작가로서 나는 오역과 오독을 예상하기 때문에 번역의 역할은 모호하고 불안으로 가득하다고 생각한다. 번역은 가장 내밀한 읽기 행위 중 하나이지만, 그 과정에서 번역가는 자아의 가장 가까운 곳을 ‘넘어설 수 있는 허락’을 얻게 된다. 가야트리 스피박은 모든 독서/번역 행위가 가장자리에서 의미가 흐트러질 위험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번역자로서 우리의 행위가 “사랑으로 이루어질 때, 그 흐트러짐을 최소화”할 수 있게 돕는다고 말한다. 번역가의 임무는 “원작과 그 그림자 사이의 이러한 사랑, 즉 의미의 흐트러짐을 허용하는 사랑을 촉진하는 것”이다. 이 점과 더불어 모든 번역은 어느 정도의 배신이 포함된다는 점도 잊지 않으면서….
〈2장_ 한(恨)과 정(情)〉 중에서
이 다큐멘터리는 또한 정이 가진 힘과 지속성에 의해 한을 유발하는 요인들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영화 속에서 그리고 여성들의 목소리를 통해 드러나는 ‘정’(情)은 인종적 분열을 가로지르고 저항하는 힘을 의미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사이구〉는 한인 여성 상점 주인들의 시각에서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 다큐멘터리는 이 폭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한국 여성들의 일관된 목소리와 그들만의 특별한 성찰을 듣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낀 세 명의 한국계 미국 여성 학자들이 연출과 제작을 맡았다. … 이 다큐멘터리의 페미니스트 관점은 미국의 한인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인 이 폭동을 조명할 뿐만 아니라 폭동의 피해자였던 한인 여성들의 성찰을 보여준다.
〈2장_ 한(恨)과 정(情)〉 중에서
아시아계 미국 문화의 경계와 정의는 지속적으로 도전받고 변화하고 있다. 로우는 아시아계 미국 문화의 특성을 설명할 때 “이질성, 혼종성, 다중성을 강조한다.” 이질성, 혼종성, 다중성은 수사학적 용어가 아니라 아시아계 미국인 집단을 특징짓는 ‘물질적 모순’을 명명하기 위한 시도로 사용된다. 그렇다면 식민 이전 정체성의 본질화된 개념에 호소하는 무비판적 원주민주의 또는 인종주의를 의심해야 한다. 로우는 스피박의 ‘이질성에 대한 지속적인 인식’을 요구하자는 데에 공감한다. 여기서 나는 로우의 주장에 동의하며, 더 나아가 ‘진정한’ 한국인에 대한 어떤 주장도 의심스럽다고 생각한다. 이는 기껏해야 본질주의적 정체성에 대한 순진한 호소이며, 최악의 경우 정체성의 혼종성을 부정하고, 그것과 공모하는 가식적인 행위일 것이다.
〈3장_ 포스트식민주의 이론과 한국계 미국 신학〉 중에서
흉내내기는 ‘예의라는 규율 안에 있는 시민 불복종의 순간을 표시’하는 것이며, ‘극적인 저항’의 표시이기도 하다. 수혁과 경필이 깊은 원한 속에 정이 등장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공동경비구역 JSA〉의 경우처럼 말이다. 비무장지대를 넘어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극적인 저항’ 행위이다. 또한 〈사이구〉 인터뷰에서 여성들이, 비난받아야 할 대상은 ‘흑인’이 아니라 미국의 지배 구조에 ‘뭔가 정말 잘못된 것’이 있음을 인식할 때 정이 가진 변혁적 힘이 드러난다. 이 여성들이 보여준 정을 통한 의심의 해석학과 타자와의 연대는 또 다른 극적인 저항 또는 저항하는 극적인 장면을 보여준다. “약탈자들이 대부분 유색인종이고 거의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러한 저항은 더욱 빛을 발한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영화적 표현(즉, 영화)은 그 자체로 전복적 흉내내기의 예이자 타자의 저항적 흉내내기에 대한 이야기이며, 이는 정의 중요한 연대적 측면이다. 이후에 기술할 그리스도론 장에서는 십자가 사건에서 흉내내기의 역할, 특히 ‘기적을 위한 표징’의 해방적 재전유와 관련된 흉내내기의 역할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3장_ 포스트식민주의 이론과 한국계 미국 신학〉 중에서
페미니스트들은 억압적인 권력 역학이 무의식적으로 유지되는 전통적인 그리스도론적 패러다임의 한계를 비판해 왔다. 몰트만은 아들의 고난 속에 동참하시는 아버지의 연대를 강조하면서, 실제로 이러한 전통적 패러다임의 한계를 밀어붙인다. 그러나 어떤 패러다임들은 그 경계를 확장하기 위해 상당한 압박이 필요하다. 전통적인 그리스도론적 패러다임에 남아 있는 억압적인 가부장주의의 흔적에서 삼위일체 관계를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것은 단지 삼위일체를 해방시키거나 변호하는 방법을 찾거나 신학에서 성차별적 언어를 제거하는 문제만은 아니다. 오히려 신학이 지배에 맞서 싸우는 공동체들과 관련성을 갖기 위해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젠더적, 인종적, 문화적, 성적 지향 등 다양한 분야에서 권력과 지배의 존재를 비판해야 한다.
〈4장_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중에서
몰트만의 신학은 십자가를 급진화하려고 시도하면서도 동시에 전통적인 패러다임 안에서 작업함으로써 아들과 아버지의 융합되었지만 분리된 정체성이 제기하는 모순에 얽혀있다. 몰트만에게 십자가는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로 융합되는 사건이지만 동시에 그는 이것이 급진적인 분리의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즉, “십자가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너무도 하나가 되어, 단 하나의 자기 내어줌(surrendering)의 움직임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몰트만 신학은 어떤 면에서는 정신분석적 관점과 공명하지만, 페미니스트 정신분석 이론을 통해 해체되어야 하는 권력 역학이 스며있다. 몰트만 십자가의 심리학적 틀에서 빠진 것은 모성 기호계이다.
〈4장_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중에서
로고스 중심 신학에 드러난 남성주의의 우세는 페미니스트 신학자들의 비판을 받았는데 이들은 부활, 또는 어쩌면 억압된 것의 ‘소생’(resuscitation)을 옹호했다. 얀첸은 뤼스 이리가레를 비판적으로 읽으면서 이리가레의 주장, 즉 “남성이 항상 자신의 젠더에 따라 신을 투사했던 것처럼 여성도 우리의 젠더에 따라 신을 의도적으로 투사하기 시작해야 한다”를 지지한다. 우리는 더 이상 가부장적 종교 투사에서 ‘구원 가능한’ 측면을 찾는 것이 아니라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우리의 에너지를 여성 신을 창조적이고 상상력 있게 구성하는 데 쏟아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페미니스트들은 억압적인 가부장적 구조가 신학과 예전의 실천에서 신의 여성적 측면을 선포하고 재구성하는 페미니스트 신학자들을 사냥하고 이단으로 정죄하는 상황에서도, 이제는 두려움 없이 기호계의 심연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5장_ 정(情) 그리스도론〉 중에서
브록은 고전적인 삼위일체 신학을 부모와 자녀의 융합이라는 맥락에 배치함으로써 속죄 그리스도론에 내재된 처벌적 아버지의 유령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러한 전통적인 틀에서는 구속 역시 일방적인 권력 지향의 왜곡과 사랑을 고통과 혼동하는 것을 반영하며, 이는 결국 인류의 영웅으로서 우리의 죄악을 위해 희생되어야 했던 예수라는 인물에서 정점에 이른다. 그는 우리의 죄악을 위해 희생되어야 했던 존재이다. 브록은 예수를 상호연결성의 원리로부터 분리시키는 이러한 그리스도론적 모델들을 비판한다. 진정한 그리스도론적 의미는 개인이 아닌 사람들 간의 연결성, 즉 에로스적 힘의 실재 속에 존재한다. 그녀가 이해하는 그리스도론은 관계성이 정의와 사랑의 핵심이라는 중요한 통찰에 기반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그녀가 창조적으로 만든 용어인 ‘크리스타/공동체’(Christa/Community)의 역학 관계 안에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초점이 예수 개인에서 그가 속한 공동체로 옮겨진다. 이는 그녀가 제시한 그리스도론적 신화의 해석을 통해 설명된다. “예수는 마치 파도 위에 떠 있는 하얀 포말 같다… 그분은 바다의 거대하게 밀어내는 힘 위에 떠 있다.” 바다는 아마도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들’에 대한 C. S. 송의 은유라고 할 수 있다.
〈5장_ 정(情) 그리스도론〉 중에서
정은 관계성의 중요한 부분을 표현하는 만큼 명확한 범주적 번역에 저항한다. 정은 시, 문학, 미술, 영화를 통해 주로 표현되며 민요와 유행가는 물론 일상 대화에 스며들어 있고 관계성의 삶의 에너지이다. 정은 그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윤곽의 깊이를 놓치지 않고는 간결하게 정의할 수 없다. 더군다나 앞으로 이어질 내용을 보면 정을 단순히 사랑과 동일시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 정은 연민(compassion)과만 완전히 동일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국인은 정이 사랑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는 것을 이해한다. 정은 아가페, 에로스, 필리아적 사랑에 연민, 공감, 연대, 이해가 더해져 관계 속에서 연결된 마음 사이에서 생겨나는 것을 뜻한다. 정은 관계주의의 틈새에 들어오는 보충물이다. 정은 관계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것은 연결성 사이에 생겨나기 때문에 윤활유 역할을 하며, 한이 최종 단어가 아니라는 끈질긴 믿음으로 작용한다.
〈결론_ 십자가의 심장〉 중에서
한국의 정 개념을 살펴본다면 우리는 한을 많이 경험했던 한국인들에게 생명력을 제공해 주던 모든 것을 아우르는 개념과 마주하게 된다. 한이 대대로 한국인의 주된 경험이었다면, 정이 친숙하다는 것은 한의 부식성에 대항하고 저항하는 생명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를 정의 개념과 연결하면 우리의 그리스도론은 희생적 고통을 통한 구원으로부터 벗어나 정이라는 관계적 힘에 기초한 구원이 될 수 있다. 해방신학, 페미니스트 신학, 포스트식민주의 이론의 영향을 깊이 받은 이러한 정의 그리스도론은 삶의 연결된 관계성 속에서 그리고 그 관계성 사이에서 생겨난다. 정 그리스도론에 서 십자가는 한의 공포와 자유와 온전함을 향한 심오한 정의 힘을 모두 의미한다.
〈결론_ 십자가의 심장〉 중에서
박일준 (원광대학교 교수)
미국 시카고 게렛신학교의 교수, 앤 조 혹은 조원희의 저서 『십자가의 마음』은 ‘정’(情: jeong)이라는 매우 고유한 주제를 탈식민적 상황 속에서 전개한 특별한 책이다. 이 ‘정’이라는 주제의 중요성은, 번역자가 제기하듯, “억압받는 사람들이… 자발적인 용서와 화해 없이 자신을 훼손하지 않고 살 수 있는가?”라는 물음 속에 담겨 있다. 이는 고난과 억압의 현장에서 당장 가해/피해의 이분법으로 정의를 실현하려는 서툰 욕망에 물음표를 던지는 작업이다.
본서의 가치는 ‘정’(情)이나 ‘한’(恨)을 주제로 출판한 연구 논문들이 학술지 인용정보 색인(KCI)에서 거의 검색되지 않는 현실에서 두드러진다. 최근 소위 K-Pop의 인기를 업고 K-Culture가 지구촌 문화에서 부상하고 있다고 야단법석이지만, 정작 그 문화적 역량을 뒷받침할 학술 문화는 토대를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K-Culture가 가능하려면, 현재 지구 문명과 인류가 당면한 문제들에 대한 문화적 대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역량이 있어야 한다. 바로 이 점에서 조원희의 『정(情), 십자가의 심장』은 한국적 신학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고 보인다.
아주 긴 시간을 되돌아, 포스트휴먼과 인공지능의 시대, 민주주의가 양극화된 정치 진영 간의 갈등으로 붕괴하고 있는 시대, 정(情)/한(恨)의 신학/철학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최유진의 이 번역서 출판이 한국적 신학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기를 마음 담아 기원한다.

등록된 리뷰가 없습니다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 반품/교환방법 |
|
|---|---|
| 반품/교환 가능기간 |
|
| 반품/교환비용 |
|
| 반품/교환 불가 사유 |
|
| 상품 품절 |
|
| 소비자 피해보상 환불지연에 따른 배상 |
|

- [이벤트 당첨자 발표] 서울국제정원박람회, 김진명 작가 북토크 당첨자 안내
- [이벤트 당첨자 발표] 9월 모두의 서가 이벤트 당첨자 안내
- [공지사항] 스타필드마켓 월계 문구복합매장 그랜드 오픈 🎊 이벤트 안내!
- [공지사항] 2026년 9월 1일 개인정보 처리방침 개정 안내(3.개인정보 처리, 항목, 보유기간)
- [이벤트 당첨자 발표] 26년 8월 <이달의 작가> 댓글 이벤트 당첨자 안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