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프롤로그
존재와 실존을 잇다
1장. 전능의 숭고 : 오해를 멈추다
1. 전능성의 재발견
2. 아버지는 누구신가
2장. 성육신: 존재가 실존 안으로 침투하다
3. 외아들 예수 - 유일이 보편이 되다
4. 동정녀 마리아 - 신성의 수용
5. 빌라도 - 누구라도 그 상황이면 그랬을 거요
6. 십자가 - 거절당하신 하나님의 무로부터의 창조
3장. 부활, 승천과 심판: 새 존재의 계기
7. 부활 - 영원한 생명을 풀어 다니게 하라
8. 승천 - 무지의 구름 사이로
9. 심판 - 악의 종말과 본질을 직면하는 은총
4장. 성령과 공동체: 새생명 새사람들의 연대
10. 성령의 현존 - 자아의 숨바꼭질이 끝난 뒤
11. 거룩한 공회 -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 이유
12. 성도의 교제 - 거룩한 관계의 리듬학교
5장. 구속과 회복 : 미래를 꿈꾸다
13.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 - 칭의의 열매
14. 몸이 다시 사는 것 - 실상의 몸
15. 영원히 사는 것 - 끝이 아닌 시작
에필로그
‘우리는’ 믿습니다
[본 문]
1. 전능성의 재발견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고백에는 존재의 근원으로부터 나오는 긍정과 신뢰의 응답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압도하고 지배하고 노예처럼 부리기 위해 전능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를 한없이 자유롭게 하시기 위해 전능하십니다. 하나님의 전능은 생명을 창조하고 구원하고 다스리시기 위해, 생명의 근원으로 인도하시는 아버지가 되시기 위해 있습니다.
2. 아버지는 누구신가
시선을 옮겨 하늘을 바라보며 만유의 아버지를 묵상해 보십시오. 온 우주 만물이 십자가의 도 안에서 하나의 생명 공동체로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 우주적 유기체 안에서 우리는 어떤 역할을 부여받았을까요? 전쟁터 같은 삶의 방패를 내려놓고 이 신비로운 공존을 환기해 보십시오. 만유의 하나님을 아버지로 둔 자녀 된 기상이 솟아오를 것입니다.
3. 외아들 예수 - 유일이 보편이 되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입으심으로 인해, 이 구체적인 세계 안에서 신적 생명이 접붙여지는 통로가 탄생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외아들의 존재를 통해 인간 안에 하나님과의 화해의 거처를 마련하셨습니다. … 그리고 그 순종의 일치로 말미암아 외아들로부터 접붙여져 자녀 된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외아들은 이제 ‘보편성을 획득한 유일성’이 된 것입니다!
4. 동정녀 마리아 - 신성의 수용
동정녀를 통한 탄생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차원의 방식, 출발, 기원, 창조가 우리의 삶에 돌진해 들어옴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사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성육신은 단지 생물학적 기적으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성육신의 신비는,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 되고 하늘과 땅이 연합되는 주도권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의지, 곧 신이 기어코 인간성을 수용하겠다는 의지에 있다는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신비를 고백하는 우리는 그분의 주권적 사랑의 방식에 대해 승복합니다.
5. 빌라도 - 누구라도 그 상황이면 그랬을 거요
보이는 행동보다 더 중요한 것은 빌라도의 숨은 동기와 의도입니다. … 결국 그는 그 상황 한가운데에서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아니,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눈앞의 권력과 안위를 지키기 위해 참 진리를 보고도 외면했고, 생명의 주님 앞에서 침묵하거나 손을 씻음으로 책임을 피했습니다. 그것은 그때 한순간 일어난 일이 아니라 오랫동안 자기 욕망을 따라 축적된 빌라도의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6.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시고 - 거절당하신 하나님의 무로부터의 창조
십자가는 단순한 고난이나 윤리적 모범이 아닙니다. 존재의 근원적 전환이 일어난 자리, 죽음 너머의 생명으로 이어지는 창조적 자리입니다. 즉 십자가는 윤리적 교훈을 넘어,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한 무(無)의 가능성, 곧 철저한 자기비움 안에서 새롭게 생성되는 존재의 재창조를 뜻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바로 이 십자가를 현재화하는 것입니다.
7. 부활 - 영원한 생명을 풀어 다니게 하라
요단강을 건넌다는 것은 이 요한으로 상징되는 세계관에 완전한 죽음을 선고하는 일입니다. 이 도강(渡江)이야말로 두 베다니를 가르는 완전한 공간의 전환이었습니다. 생명을 위한 도강을 위해, 나사로 역시 완전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 죽음의 방식을 완전히 끊어내고 새로운 생명의 차원을 열어젖히시는 것, 그것이 부활이 일어나는 방식입니다.
8. 승천 - 무지의 구름 사이로
구름은 하나님의 부재가 아니라 침묵을 동반한 차원 다른 임재입니다. 그분은 불확실성 속에 우리를 내버려두신 것이 아니라, 안다는 생각과 경험을 포착하여 미래를 소유하려는 우리의 눈을 가림으로써, 지금 여기에서 언약의 실현을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9. 심판 - 악의 종말과 본질을 직면하는 은총
심판은 이렇게 우리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그 악하고 참담한 악의 실상을 직면하는 것이 우리가 깨어날 계기가 됩니다. 심판이 있기 전에는 적당한 쾌락과 양심이 세상의 실상을 감추고 있습니다. 분명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잠깐의 위안으로 인해 곧 희미해집니다. 그러나 심판이 올 때는 돌이키지 않고 있었던 죄와 세상의 악한 본질이 모두 드러납니다.
10. 성령의 현존 - 자아의 숨바꼭질이 끝난 뒤
때로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가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던 소외된 영역에서 놀라운 일을 시작하십니다. 그래서 그분을 만나는 여정은 마치 숨바꼭질하는 것과 같으며 보물찾기의 여정입니다. 우리가 보물이라고 생각하는 곳에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그분이 계신 곳에 보물이 있습니다.
11. 거룩한 공회 -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 이유
교회는 한 개인이 신앙생활을 성실히 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넘어, ‘함께 있음’의 진실한 구조 속으로 들어가는 진리의 실천 공간입니다. 인간은 언제나 자신을 중심으로 세계를 해석하고자 하지만, 삼위일체적 몸으로서의 교회는 각 개인이 ‘전체 안에서의 지체’로 살아가면서 동시에 ‘타자를 위한 존재’가 되는 자기부정의 훈련이 요구됩니다.
12. 성도의 교제 - 거룩한 관계의 리듬학교
성도의 교통은 상호 간에 마음이 통하는 정도의 교제가 아닙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서로 애쓰고 협력하는 차원도 아닙니다. 이는 차원을 초월하여 하늘과 땅, 시간과 공간을 넘어 확장되는 생명의 영의 거대한 연결망을 통한 신비한 사랑의 교통입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이렇게 보이지 않는 깊고 광대한 생명의 차원에 눈을 뜨고, 그 소통의 감각이 열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13.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 죄 사함의 열매
용서받은 자는 더 이상 과거에 묶인 존재가 아닙니다. 그는 용서의 자리, 곧 새로운 생명의 자리, 은혜가 흐르는 자리에서 살아야 할 존재입니다. 그 자리란 단순히 죄를 용납받은 안정된 마음의 안식처가 아닙니다. 다른 이의 죄까지 품고 하나님 앞에 함께 나아가는 거룩한 기도의 자리입니다. 용서는 하나님의 본질이 우리 안에서 드러나는 삶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14. 몸이 다시 사는 것 - 실상의 몸
이 땅에서 몸을 입고 살아가는 모든 순간은 영혼의 집을 짓는 과정이며, 우리가 지은 영혼의 집은 장차 영원히 거할 몸이 됩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짧은 시간 동안 영원히 남을 우리 영혼의 몸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15. 영원히 사는 것 - 끝이 아닌 시작
영원히 산다는 것의 희망은 무한한 시간에 달린 것이 아니라, 단 한 순간이라도 무한한 충실함으로 살아내는 데 있습니다. 그 희망 앞에서 사도신경은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하나님의 시간’과 맞닿아 영원한 생명으로 바꿀 용기가 있는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