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01 스위스 실스마리아 - 숨 막힐 듯 아름다운 영화 속 풍경
02 스위스 루체른 - 웅장한 알프스와 유구한 역사를 품은 호반 도시
03 스위스 샤프하우젠 & 슈타인암라인 - 라인강 물길이 만든 절경과 유서 깊은 거리
04 프랑스 아비뇽 - 교황권과 왕권이 역전된 ‘아비뇽 유수’의 역사 현장
05 프랑스 아를 - 고흐가 사랑한 ‘작은 로마’
06 프랑스 엑상프로방스 - 폴 세잔의 자취가 곳곳마다 서린 ‘물의 도시’
07 이탈리아 캄파니아 - 아직도 온전한 고대 유적과 환상적인 해안 절경
08 이탈리아 시칠리아 - ‘거대한 고고학 박물관’이 된 지중해 최대의 섬
09 노르웨이 로포텐 제도 - 거칠고도 아름다운 ‘북해의 알프스’
10 노르웨이 아틀란틱 오션 로드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짜릿한 드라이브 길
11 노르웨이 트롤스티겐-게이랑에르 국립경관 도로 - 노르웨이의 모든 것을 만나는 ‘꿈길’
12 노르웨이 프레이케스톨렌 - 톰 크루즈 영화의 대미를 장식한 수직 절벽
13 노르웨이 트롤퉁가 - 700m 공중에 뜬 ‘트롤의 혀’
14 스웨덴 피엘바카 - 잉그리드 버그먼의 영원한 안식처
15 스웨덴 벡셰 - 유럽에서 가장 친환경적인 도시
16 네덜란드 히트호른 - 네덜란드의 베니스
17 네덜란드 킨더다이크 & 바를러 - ‘진짜’ 풍차 마을, 그리고 한 마을 속의 두 나라
18 독일 브레멘 - 브레멘 음악대가 동경한 ‘자유 도시’
19 체코 모라비아 - 역사 도시와 명승지가 즐비한 리히텐슈타인의 옛 영지
20 리투아니아 트라카이 & 빌뉴스 - 리투아니아의 과거와 현재의 수도
21 그리스 아테네 - 찬란한 문화 유산과 행복한 사람들이 가득한 도시
[본 문]
나의 여행은 종종 한편의 영화에서 시작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 감독한 영화 〈아이거 생크션(The Eiger Sanction), 1975〉은 수십 년 뒤에 나를 스위스 융프라우요흐에 올라서게 했고, 중국 영화 〈산이 울다(Mountain Cry), 2015〉는 2023년 여름에 태항산의 깊은 협곡과 장대한 산줄기를 쏘다니게 만들었다. 스위스의 맨 서쪽 구석에 있는 그라우뷘덴(Graubüden)주의 산골 마을 실스마리아를 두 번 찾은 것도 순전히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Clouds of Sils Maria), 2014〉 때문이다. 실스마리아는 영화를 보기 전까지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지명이었다. 지인이 추천해 관람한 그 영화는 감동을 넘어 충격이었다. 주연 배우 줄리엣 비노쉬,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도 훌륭했지만, 무엇보다 영화 속 실스마리아의 풍광이 가슴을 뒤흔들었다. 영화관을 나서면서 아내와 나는 “우리 꼭 실스마리아에 가보자”고 다짐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서 내가 먼저 그 다짐을 실행에 옮겼다. 그로부터 일년쯤 뒤에는 아내와 함께 다시 실스마리아를 찾았다.
- 본문 14쪽 중에서 (01 스위스 실스마리아)
누군가가 내게 스위스에서 가장 매력적인 도시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루체른’이라 답하겠다. 이 도시에는 ‘스위스’ 하면 떠오르는 자연경관과 문화유산이 다 있다. 아름다운 설산과 탁 트인 초원, 잔잔한 호수와 도도히 흐르는 강, 수백 년의 풍상을 견뎌온 고성과 다리, 장엄하고 예스러운 성당과 교회 등…. 한마디로 ‘알프스 특유의 웅장한 자연과 기나긴 세월을 품은 문화유산이 잘 조화된 도시’다. 가난한 여행자인 내가 빠듯한 일정에도 닷새 동안이나 루체른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 본문 32쪽 중에서 (02 스위스 루체른)
‘아를’ 하면 비운의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가 맨 먼저 떠오른다. 37세의 길지 않은 삶을 스스로 마감한 그가 아를에 머무른 기간은 사실 15개월밖에 안 된다. 하지만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작품 대부분이 아를의 따뜻하고 강렬한 햇살 아래에서 탄생했다. 그래서 아를 여행은 고흐의 자취와 작품 속 배경을 찾아가는 여행이나 다름없다. 흔히 ‘프로방스(Provence)’라 부르는 남프랑스에는 아주 매력적인 도시들이 즐비하다. 고흐 이외에도 세잔, 피카소, 마티스, 샤갈 등 화가들이 사랑한 소도시도 많고 니스, 칸, 앙티브 등과 같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휴양지도 한둘이 아니다. 그 가운데 딱 한 곳만 다시 간다면 나는 주저 없이 아를을 선택할 것이다. 물론 고흐 때문만은 아니다. 고흐의 자취와 이야기를 훌쩍 뛰어넘는 역사와 가치를 품은 곳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 본문 88쪽 중에서 (05 프랑스 아를)
폼페이는 매몰된 지 1,500여 년 만인 1592년에 우연히 발견되었다. 수로 공사를 하다가 유적 일부가 드러났지만, 이탈리아 어디서나 흔히 발견되는 고대 유적쯤으로만 여기고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제대로 된 발굴 작업은 1748년에야 시작됐다. 처음에는 값비싼 고대 유물만 찾아나선 탐사팀이 발굴 작업에 앞장섰다. 거의 완벽하게 보존된 유물들을 수없이 발굴해 나폴리로 옮겼고, 일부 벽화는 벽에서 떼어 액자로 만들기도 했다. 그와 같은 성과에 힘입어 폼페이 유적에 대한 가치와 중요성이 인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발굴 작업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폼페이 유적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고대 도시의 유적들 가운데 가장 완벽하다. 로마 제국 당시의 건물, 도로, 광장, 공공 수도, 공중목욕탕, 원형 극장, 상점, 주택 등이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귀족의 저택에는 화려하고 선명하게 채색된 벽화, 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모자이크 타일 등이 온전하게 남았다. 심지어 오븐에서 막 구워낸 빵, 느닷없는 화산 폭발로 죽음을 맞이한 폼페이 시민들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완벽하게 되살아났다. 79년 8월 24일에서 멈춰버린 폼페이의 시간은 ‘순간에서 영원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 본문 134-135쪽 중에서 (07 이탈리아 캄파니아)
일찍이 1787년 봄에 시칠리아를 여행한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시칠리아를 보지 않고서는 이탈리아를 봤다고 말할 수 없다. 시칠리아는 모든 것의 열쇠다”라는 말을 그 유명한 《이탈리아 기행》에 남겼다. 시칠리아섬은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이다. 전체 면적이 제주도(1,850km2)의 14배, 서울(605km2)의 42배에 이르는 25,711km2나 된다. 지중해 한복판에 자리 잡았다는 지정학적 이점 때문에 까마득한 옛날부터 다양한 국가와 민족, 종교와 정치 세력의 치열한 각축장이 되기도 했다. 지금도 시칠리아 곳곳에는 감동과 경이의 고대 유적들이 또렷하게 남아 있다. 특히 고대 그리스 식민지의 유적들이 인상적이다. 그리스 본토에 남은 어떤 신전보다 완벽하게 보존된 그리스 신전도 여럿 있다. 시칠리아 전체는 ‘거대한 고고학 박물관’이나 다름없다. 주민들이 진심으로 친절하고, 여행 물가가 확실히 저렴하다는 점도 시칠리아를 아주 매력적인 여행지로 만들었다.
- 본문 176쪽 중에서 (08 이탈리아 시칠리아)
로포텐 제도의 E10도로는 길 자체만으로도 여행의 목적이 충분히 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내 인생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다. 노르웨이 정부가 지정한 국립 경관 도로(Norwegian Scenic Routes) 18곳 중 하나이기도 하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하나같이 비현실적으로 독특하면서도 아름답다. 길을 달리는 내내 자신도 모르게 탄성과 감탄사가 쉼 없이 터져 나온다. 차창 밖으로 스쳐 가는 풍경이 너무 아쉬워서 잠시 차를 멈춰 세우고 망연히 바라보기를 수없이 되풀이한다. 그런 운전자를 위해 무료 주차가 가능한 공터나 쉼터가 E10도로변 곳곳에 설치돼 있다. ‘잠깐 쉬다 가자’는 마음으로 차를 세우지만, 발길과 눈길을 놓아주지 않는 풍경들로 계획된 시간보다 훨씬 오래 머물게 마련이다.
- 본문 253-254쪽 중에서 (09 노르웨이 로포텐 제도)
이제는 동굴을 벗어날 일만 남았다. 푼크바 동굴 투어는 아주 이색적인 방식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동굴 내부에는 푼크바강(Punkva River)이 유유히 흐르는데, 이 강에 띄운 낮고 평평한 보트를 타고 밖으로 나가게 된다. 동굴 속의 강을 따라 440m가량 이동하는 도중에는 잠시 배를 멈추고 뭍에 올라서 마사리크 돔(Masaryk’s Dome)의 장관을 감상하는 이벤트도 한다. 모라비아 카르스트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이 돔에는 물과 억겁의 시간이 합심해서 만든 석주, 석순, 종유석, 베이컨 시트 등을 비롯한 자연의 걸작품들이 사방천지에 가득했다. 사람들은 신음 같은 감탄사만 연신 쏟아냈다. 어쩌면 남은 생에 두 번 다시 보기 어려운 진풍경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조차 들었다. 모라비아에서의 사흘이 쏜살같이 흘렀다. 애초에는 레드니체-발티체 문화경관만 한나절 동안 둘러본 뒤에 슬로바키아로 넘어갈 작정이었다. 일정이 세 곱절로 늘어났는데도 시간은 부족했고 아쉬움은 컸다. 모라비아의 전원 풍경이 가장 아름답다는 5월에 다시 찾으리라 기약하며 체코-슬로바키아 국경을 넘었다.
- 본문 402쪽 중에서 (19 체코 모라비아)
빌뉴스에는 세상에서 가장 작고 독특한 나라인 우주피스공화국(Uzupis Republic)이 있다. 리투아니아어로 ‘우주피스’는 ‘강 너머’를 뜻한다. 실제로 빌뉴스 구시가지의 동쪽을 굽이쳐 흐르는 빌니아강 너머에 있다. 원래는 유대인이 모여 사는 게토(ghetto)였다고 한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 홀로코스트로 수많은 유대인이 희생된 뒤로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그러다 리투아니아가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이후에 예술가와 지식인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급기야 그들은 1997년 4월 1일에 자체 헌법과 대통령, 국기와 12명의 군대까지 갖춘 우주피스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했다. 총 41개 조항으로 이루어진 헌법 내용이 무척 흥미롭다. 모든 사람은 실수할 권리가 있다, 모든 사람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않아도 될 권리가 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생일을 축하하거나 축하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등의 ‘별난’ 조항이 대부분이다. (…) 각박하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야 하는 이 세상의 어딘가에 이토록 게으르고 자유로운 나라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의 위안이 느껴지는 듯했다.
- 본문 420-423쪽 중에서 (20 리투아니아 트라카이 & 빌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