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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허를 말하다(맥비 2024 1)

    • 맥락과비평 편집위원회 저
    • 이유출판
    • 2024년 1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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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품 규격 정보
    상품상세정보
    ISBN ISBN-13 : 9791189534592
    쪽수2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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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품구성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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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소개

    『맥락과 비평』 0호(2023)를 잇는 창간호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인문학의 눈으로 지금 이곳에 존재하는 폐허를 들춰내고, 그 어두운 심연을 들여다보려는 시도다.

    무엇보다 막막한 현실을 되돌아보고, 우리 삶의 보이지 않는 이면이 폐허로 물들 수 있음을 환기하려 했다.

    귀납되지 않는 현실, 명료해질 수 없는 삶이 솟아오를 때마다 폐허의 함의는 갈라지며 증폭하기 마련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관심은 지나간 시간에 섞여 있을 폐허의 흔적 찾기에 머물지 않았다.

    그보다는 지금 이곳의 장소, 사건, 궁극적으로는 삶에 주목하려 했다.

    폐허가 어디를 지칭하는지, 무엇으로 나타나고 기억되는지, 그리하여 결국에는 어떻게 우리들의 실제 삶으로 연결되는지 묻고 싶었다.

    목차

    [목 차]

    서문

     

    Ⅰ 잿더미 위에서

    폐허의 세 양상 한상철

    폐허의 신전 오은정

    -히로시마평화기념공원의 원폭 돔 보존과 역사 기억의 전도

    폐허와 분노 임재근

    -미군의 반도 폭격과 북한의 기록

    폐허의 기억 김화선

    시 : 산조, 남쪽 최지인

     

    Ⅱ이후의 상상력

    폐허를 찾는 일 김화선

    전후 한국 영화와 폐허의 비장소성 한영현

    내면의 공동과 폐허의 재건 이하은

    -이청준의「퇴원」, 「병신과 머저리」를 중심으로

    시 : 골링이골, 거미야 윤은경

     

    Ⅲ 소리 없는 목소리

    소설 : 빛이 빛나던 날 손홍규

    폐허의 환상통 고윤수

    -한국전쟁기 몇 장의 사진이 보여주는 ‘대전’

    대전, 폐허와 징후적 언어 맥비 동인 편

    -1950년대 대전의 매체에 기록된 폐허의식

     

    Ⅳ 의견들

    폐허를 읽는 시선 남기택

    알지 못하는 앎 전은경

    -침묵은 폭력과 어떻게 공모하는가

    죽지 않은 유령과 대화하는 방법 임세화

    -사쿠라꽃과 잿더미의 폐허를 껴안고


    [본 문]

    서문

    다시, 폐허에서

     

    시작하는 책을 위해 폐허라는 해묵은 말을 불러낸다. 무엇보다 지금 이곳의 바스러진 현실을 가리켜 돌아보기 위함이다. 그것으로 우리 삶의 보이지 않는 이면이 폐허로 물들어 있음을 환기하고자 했다. 이 작업은 말과 글로 표현되지 않는 것을 말과 글로 설명해야 하는 일에 가깝다. 대지에 뿌리내린 존재들의 삶이 무너져 내릴 때 인간의 말과 글은 무력하나, 또한 유일한 목격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의 폐허는 대부분 구체적 장소로 존재한다. 하지만 실체를 감춘 메타포로 발현되는 순간 역시 적지 않다. 이 말에 부여되었던, 혹은 이 말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의미와 감정이 여럿인 것은 그 때문이다. 귀납되지 않는 현실, 명료해질 수 없는 삶이 솟아오를 때마다 그 함의는 갈라지며 증폭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관심은 지나간 시간에 섞여 있을 폐허의 흔적 찾기에 머물지 않는다. 그보다는 지금 이곳의 장소, 사건, 궁극적으로는 삶에 정초하고자 했다. 폐허가 어디를 지칭하는지, 무엇으로 나타나고 기억되는지, 그리하여 결국에는 어떻게 우리들의 실제 삶으로 연결되는지 묻고 싶었다.

    한편으로 문학과 예술의 폐허가 종종 지난 시대의 ‘맨 앞’과 연결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려 했다. 백년 전, 막 주춧돌을 놓던 한국 근대문학의 첫 세대가 그랬다. 몇몇 청년 작가들이 ‘폐허’를 내세운 것은 원래의 말을 오독한 결과였지만, 식민지로 전락한 시대의 무게감은 모든 것을 압도했다. 와중에 ‘모더니티’의 번역어는 ‘근대’와 ‘현대’로 갈라졌고, 상황은 더욱 긴박해졌다. 늘 새로움이자 늘 현재인 무소불위의 힘이 분열되었으니, 지나간 것들과 다가올 것들은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끝과 시작 사이의 불편한 친연성은 다가올 미래를 끌어당기는 과거의 구심력으로 우리를 이끈다. 다시, 폐허를 앞세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위의 질문들에 대한 답변이 하나로 모여들기를 바라지 않는다. 우리의 현실이 과거의 폐허 위에 구축된 것임을 인정하더라도, 그 현상을 읽어내는 데는 각자의 시선이 작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생각과 마음을 존중하되, 소통하고 논쟁하려 했다. 이런 바탕 위에서 폐허의 양상과 의미를 묻기 위해, 우리는 두 가지 전제를 제시했다. 장소로서의 대전, 사건으로서의 전쟁이 그것이다.

    (후략)

     

    우리 시대의 ‘폐허’는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무너져 내린 성터와 사원, 폭격으로 초토화된 시가지, 빙하가 녹아내린 북극, 대도시 한복판의 버려진 쇼핑몰,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자의 황폐한 내면. 모두가 폐허의 단면이지만 이들을 병렬하는 것만으로 폐허의 의미가 온전해지지는 않는다. 우리 시대의 폐허는 있으면서 없고, 없으면서 있다. ‘잿더미’로 변한 땅이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터전이 되듯. 혹은 그 반대도 가능하다.

    한상철 〈폐허의 세 양상〉(23쪽)

     

    1945년 8월 6일 아침 오전 7시, 북태평양 마리아나 제도의 테니안 기지를 떠난 미군 기상관측기 한 대가 고도 10km의 일본 히로시마 상공에 접근했다. 기온 26.7도, 구름과 바람이 없는 맑은 날씨였다. 일본 군이 미군기를 보고 내린 경계경보는 7시 31분에 해제되어 히로시마 시민들은 전시 중의 일상적인 활동을 재개했다. 약 40분 후인 8시 15분 원자폭탄을 탑재한 B29 폭격기 에놀라 게이가 두 개의 관측기와 함께 다시 히로시마의 동북쪽에 나타났다. 에놀라 게이는 고도 1km가 채 되지 않은 상공에 한 개의 폭탄을 투하하고 빠르게 되돌아 나갔다. 오은정 〈폐허의 신전〉 (33쪽)

     

    전쟁의 참상은 상상을 초월한다. 전투 현장뿐 아니라 곳곳에서 죽음이 발생했다. 하지만 죽음의 순간은 잘 기록되지 않는다. 죽음을 기록할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때로는 죽음을 기록해 선전에 활용하기도 했지만, 은폐하고 싶은 죽음은 의도적으로 기록에서 배제됐다. 전쟁의 참상은 전선(前線)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후방이나 비전투지역에서도 수많은 죽음이 있었다. 민간인 학살이 그 현장이었고, 후방 지역에 가하진 폭격 속에서도 헤아릴 수 없는 죽음이 존재했다. 임재근 〈폐허와 분노〉(57쪽)

     

    안젤름 키퍼는 폐허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폐허 이전과 폐허 이후를 함께 응시하며 역사에서 소외된 타자들의 자리를 구축해내는데, 그가 만든 폐허란 죽음의 파편들 속에서 파국의 역사를 붙잡고 폐허 이후에 도래할 미래를 불러들이는 사건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폐허를 인식하는 행위는 “처음에서 끝으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시간적 흐름의 축이 아니라 끝에서 처음을 생성하는 공간적 전회를 구성해”내는 일이 된다. 김화선 〈폐허를 찾는 일〉(118쪽)

     

    요컨대 한국전쟁의 결과는 기존 한국 사회가 형성한 것들의 초토화와 파괴 그 자체였다고 할 수 있다. 완벽한 초토화와 파괴는 전후의 시대를 살아가는 당대 대중의 감각이 어떠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이다. 이른바 형언할 수 없는 전쟁의 참화와 희생을 직접 경험한 한국인들에게 새겨진 ‘폐허 감각’은 전후의 삶을 인식하는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한영현 〈전후 한국 영화와 폐허의 비장소성〉(123쪽)

     

    해방 후 1950년대 작가들이 식민화된 주체로서의 정체성을 은폐하며 새로운 주체로 거듭나고자 했지만, 1960년대 작가들은 그러한 정체성 지우기와는 거리가 멀다. 그들은 이전 세대들과 달리 새로운 정신과 가치로 무장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열망을 지닌 세대였다. 주지하다시피 1960년대 작가들이 공유하는 시대정신은 ‘자유’이다. 그러나 그들의 시대정신을 이루는 ‘자유’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가 어렵다.

    이하은 〈내면의 공동과 폐허의 재건〉(154쪽)

     

    충령탑이 폭격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시가지와는 조금 떨어진, 옛 충남도청사 뒤편에 세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일제하 대전이라는 도시를 경영한 엘리트들이 이 탑을 그 자리에 세운 것은 분명한 의도가 있었다.

    일본이 건설한 식민도시들을 연구한 하시야 히로시(僑谷弘)는 식민도시를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었다. 식민지 지배와 함께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진 도시, 재래의 전통 도시 위에 겹쳐진 식민도시, 그리고 기존 대도시 근교에 신시가지가 형성되어 만들어진 도시가 그것으로 대전은 이 중 첫 번째에 해당한다.

    고윤수 〈폐허의 환상통〉(196쪽)

    출판사 서평

    잿더미 위에서

    미군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두 도시, 히로시마와 대전의 이야기를 다룬다. 「폐허의 신전」은 히로시마의 상징인 ‘원폭 돔’을 역사적 기억의 전도라는 관점에 기대어 추적한 글이다. 핵폭발에서 살아남은 ‘인공의 잔해’가 전후 재건 과정을 거치며 평화의 상징으로 탈바꿈하는 맥락이 흥미롭다. 이어지는 「폐허의 분노」는 한국전쟁 초반 인민군 점령기의 대전을 ‘잿더미’로 만든 원인이 미군의 집중적인 폭격이었음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인민군을 따라 내려온 종군 작가들의 당시 기록과 수복 후 미군이 남겨놓은 사진은 하나의 폐허를 바라보는 두 시선에 대응하는 것이기도 하다. 「폐허의 기억」에는 대전을 문학의 터전으로 삼았던 작가들이 여럿 등장한다. 한국전쟁의 복판에서 살아남은 작가들에게, 폐허는 ‘죽음과 신생을 동시에 품은’ 공간으로 존재했다. 삭제되고 결락된 시간과 장소를 불러내 재현하는 과정은 폐허를 바라보는 시선이 하나로 모일 수 없음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된다. 1부의 끝에서 최지인의 시 「산조」와 「남쪽」을 만난다. 느릿한 가야금의 울림이 장구 소리와 만나 퍼지는 찰나는, ‘멈출’ 수 있거나 ‘정의할 수 있는’ 무엇이 아니다. 그렇게 시인은 서로 무관해 보이는 일상과 환상 사이에서 흘러넘치는, 무명의 폐허를 붙잡아낸다. 우리들의 삶 곳곳에 산조 가락처럼 폐허가 존재함을 암시하며 경고하는 셈이다.

     

    이후의 상상력

    한국전쟁이 전후 세대의 심성에 미친 여파를 다룬다. 「전후 한국 영화와 폐허의 비장소성」은 1950년대 영화에 나타난 폐허의 의미를 ‘비장소’의 출현이라는 관점으로 살핀 글이다. 전후 세대가 지닐 수밖에 없었던 ‘폐허 감각’이, 당시의 영화에서 기존의 질서나 세계관이 부정되는 ‘비장소’에 대한 탐닉으로 표출되었다는 것이다. 남는 문제는 ‘안정과 평화’의 대척점에 있는 ‘혼란과 무질서의 임시적’ 공간이, 과연 ‘정체성’이나 ‘관계’와는 무관한 비역사적 장소로만 존재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내면의 공동과 폐허의 재건」은 1960년대 작가들에게 미친 한국전쟁의 영향을 이청준의 소설을 내세워 새롭게 읽어낸다. 더 어린 시절에 한국전쟁을 겪었고, 1960년 4월에서 이듬해 5월로 이어지는 격변기를 지나온 세대에게, 전쟁의 기억은 내면의 공동(空洞)으호 현현한다. 이청준의 소설은 “원인을 알지 못하나 이미 파괴되어 버린 현실”을 재현한다는 점에서, 60년대 작가들의 폐허 의식을 선취하며 확장한 사례에 해당한다. 마무리는 윤은경의 시 「골링이골」과 「거미」가 대신한다. 이름 모를 죽음들이 늘어서 있던 골짜기의 비극을, 이제는 많은 이들이 알고 기억하며 한다. 하지만 시인은 우리들의 기억이 진정한 위무일 수 있는지 묻는다. 과거의 폐허는 지금의 현실에 거미줄처럼 이어지지만, 다시 거미줄처럼 부서질 수도 있다.

     

    소리 없는 목소리

    한 도시의 잊힌 기억, 그것을 구성할 기록과 이미지들을 불러 모으려 했다. 문을 여는 소설 손홍규의 「빛이 빛나던 날」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폐허와 눈으로 볼 수 없는 폐허가 나뉘어 있다. 전자는 죽음에 대한 기억에서 비롯하지만, 후자는 마을 사람들의 우화로만 존재한다. 두 폐허는 먼 길을 돌아 하나의 순간으로 모여들어 빛을 이루지만, 결국 재로 변하고 만다. 삶 깊숙이 자리한 정체 모를 불안과 두려움으로부터 폐허가 태어난다면, 그 허물어진 마음을 밝히는 빛 역시 폐허에서 태어나고 저무는 것일지 모른다. 「폐허의 환상통」은 한국전쟁 시기의 대전이 담긴 몇 장의 사진으로부터 시작된 글이다. 이 낯선 폐허에는 살아남은 탑, 무너진 시가지, 버려진 죽음이 동시에 존재한다. 이들은 대전을 불협화음의 도시로 만들며 우리의 인식을 뒤흔든다. 「대전, 폐허와 징후적 언어」에 대해서는 약간의 부연이 필요하다. 이 글은 한국전쟁 직후, 대전에서 발행된 문학 매체에 실린 폐허 관련 글들을 모아놓은 원문 자료집이다. 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던 시절의 기록이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다루어지지 못한 비운의 텍스트이기도 하다.

     

    의견들

    두 권의 책을 빌려 폐허의 의미를 새로운 관점에서 조망하려는 시도로 채워진다. 먼저 「알지 못하는 앎」은 홀로코스트를 방관했던 평범한 독일인들의 내면에 주목한다. 세계대전에 참여했던 군인과 가족, 그 주변 인물들이 ‘폭력의 공모자’로 전락한 것은 묵인과 순응이라는 ‘침묵의 나선형’에 빠져드는 과정이었다. ‘생존’과 ‘폭력’의 쳇바퀴가 여전히 돌고 있는 현실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소수가 아니라 침묵하고 묵인하는 다수의 문제를 살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음으로 「죽지 않는 유령과 화해하는 방법」은 일본과 독일이 전후에 보인 행보의 차이에 대한 최근의 성과를 비판적으로 수렴한 글이다. 두 나라의 차이는 국가, 민족, 지역 단위의 문제로만 치환될 수 없다. 그보다는 ‘역사적 현재’와의 화해, 그리고 ‘폐허의 토양’에 대한 인식 위에서 논의될 때 실체적 진실에 다가설 수 있음을 강조한다.

    저자 소개
    저자 : 맥락과비평 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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