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추천사 -4
서문 -15
설교를 묻다 -23
⦁부교역자에게 최고의 사역지
⦁교회의 엔진, 설교
⦁설교자인가? 설교기계인가?
⦁최고의 설교 : 삶으로 살아내는 설교
설교의 메뉴와 레시피 -33
⦁설교에 쫓기지 말고 설교의 멱살을 잡고 가라!
⦁설교의 덩어리 빚기(단기, 중기, 장기계획)
⦁설교의 우선순위(오전/오후예배, 수요/금요기도회, 새벽기도회)
⦁설교에 담아라(목회철학, 교회의 방향성)
⦁설교메시지의 균형(밸런스)
⦁설교원고의 효율적인 작성법(마인드맵의 활용)
설교의 맛을 내다 -55
⦁청중(성도)의 변화
⦁성도들이 좋아하는 설교의 유형(논리, 반전, 상황화)
⦁전인을 변화시키는 강해설교가 강해~!
⦁삶아라!(묵상과 상상력)
⦁설교의 반복(수정, 보완, 축약, 형식)
⦁공감각적 설교(그림, 소리, 향기)
⦁간을 보라! 유머와 위트
⦁예화, 설교의 보조제? 핵심이다!
⦁청중을 바꾸라!(헌신예배와 집회에 도전하라!)
⦁설교는 기도로 완성된다
설교의 상을 내다 -89
⦁매체의 사용여부에 따른 설교
⦁스피치(억양과 톤)와 몸의 언어
⦁청중을 고려한 설교(인원, 나이, 장소, 신앙여부)
⦁성도들의 반응으로 보는 바로미터(와, 우, 어, 에, 으)
실제 설교 원고 -111
절대감사
뿌림의 비밀
십자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과 사랑
루저의 착각
실수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장례예배설교
결혼주례설교
참고도서 -239
[본 문]
설교는 밥을 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설교는 생식이 아니다. 재료만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그 음식재료(본문)를 가지고 삶고 끓이고 튀기고 양념으로 간을 해서 식탁에 앉은 가족(성도)들에게 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목사가 말씀의 본문을 가지고 충분히 요리(묵상하고 고뇌하고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과정)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그렇게 정성스럽게 준비한 말씀은 성도들이 말하지 않아도 그 맛을 안다.(역시 우리 엄마 김치찌개야~!) _ 18쪽에서
설교는 목사를 절대 피해가지 않는다. 큰 교회 부목사로 사역할 때는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아서 어떻게든 설교할 기회를 잡아보려고 애썼는데 작은 교회에서는 모든 설교를 혼자서 감당해야 하니 어느 순간 너무 외롭고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사역지에 새로 부임하고 그동안 연구하고 쌓아왔던 설교는 2~3년이면 바닥을 드러낸다. 매일, 매주 쳐내야 하는 설교 앞에서 설교자인지? 설교하는 기계인지를 고민할 때가 있다. _ 28쪽에서
설교의 고수와 하수의 차이는 설교학 박사가 있느냐, 언변이 탁월하냐가 아니다. 그 근본적인 차이를 내는 것은 바로 준비에 있다. 하수는 닥치면 닥치는 대로 늘 마감시간에 쫓겨 설교를 준비하고 평생 도망자의 신세로 목회를 마감한다. 그런데 고수는 다르다. 고수는 설교의 멱살을 잡고 간다. 설교의 멱살을 잡고 간다는 말이 무엇인가? 설교 준비에 대한 시간이 늘 고정적으로 확보되어 있고 충분한 묵상과 연구를 통하여 양질의 설교를 주도적으로 재생산해 낸다. _ 35쪽에서
가능하면 주일 설교를 마치고 설교마인드가 제일 활성화되어 있을 때 그 날 저녁에 다음 주 본문을 가지고 아우트라인을 대체적으로 잡아라! 그리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빠르면 목요일, 아무리 늦어도 금요일에는 주일오전설교원고를 마쳐야 한다. 그리고 토요일은 다 준비된 설교문을 보면서 성령의 임재를 위해 기도하고 객관적으로 제3자의 입장에서 청중의 입장에서 반복, 수정, 보완하면서 완성도를 올려가야 한다. _ 42쪽에서
목사님들은 스스로의 설교가 편향되어 있지 않은지 늘 점검해 보아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한 쪽 면만의 하나님만 설교하지는 않는지, 나의 관점만 일방적으로 주장하지는 않는지 말이다. 설교자는 성도와 교회의 상태를 진단하면서 그에 적절한 말씀으로 섬기되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출구를 열어주는 자세를 늘 견지해야 한다. _ 50쪽에서
이제는 목사님들의 지루한 설교, 딱딱한 설교, 호통 치는 설교, 내용 없는 설교, 무미건조한 설교로 성도들의 영혼과 마음을 사로잡기가 힘든 시대이다. 성도의 변화에 맞추어 이제는 목사의 설교도 변화해야 한다. 청중들이 잘 이해하기 위해서 내용이 좋아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짜임새 있는 탄탄한 구조, 커뮤니케이션의 개발, 공감각적인 설교로 성도들의 마음속에 선명하게 들리고 그려져야 한다. 또한 적용이 구체적이고 현장성이 있어서 성도의 삶에 도전을 주어야 한다. _ 58쪽에서
여러 형태의 설교가 있지만 앞에서 언급했던 논리(크래독), 흐름(로우리), 상황화(팀켈러), 이 세 가지를 종합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설교는 〈강해설교〉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주제설교에서 삼대지를 아무리 잘 배치하여도 흐름이 자연스럽지 않고 교리 설교는 이미 성경을 조직신학적으로 구조화해 놓았기 때문에 본문의 상황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본문을 풍성하게 풀어내는 데에는 한계를 가진다. 따라서 강해설교야말로 이 모든 요소를 적절히 배합하여 전인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성경적이고 가장 효과적인 설교라고 볼 수 있다. - 66~67쪽에서
깊이 있는 설교로 나가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묵상과 상상력이며 반드시 시간이 요구된다. 다시 말해 나를 먼저 통과하는 말씀이 힘이 있고 그 말씀을 깊이 우려내는 것은 묵상(심연의 고뇌)과 상상력(성령에 의한 몰입)이다. - 71쪽에서
설교학책에서 말하는 복잡하고 어려운 구조가 설교를 작성하는데 도움이 되기는 한다. 하지만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목사님들 스스로에게 맞는 구조(기성복이 아니라 몸에 어울리는 수제 맞춤옷)를 찾아내는 것이 관건이다. 왜냐하면 책에 나오는 설교구조가 우리 교회와 성도에게 꼭 맞고 어울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구조에서는 설교학자들이 전문가지만 본인이 섬기는 교회에서는 누구보다도 목사님들이 전문가이다. 본인의 교회와 성도, 상황에 어울리는 설교구조를 찾아내고 익숙해지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 _ 75쪽에서
신구약을 언어적으로 구분하면 구약은 그림언어라고 볼 수 있다. 반면에 신약은 글자언어이다. 신구약은 상호보완적 존재이다. 구약의 그 사건이 어떤 배경에서 벌어졌는지 신약에서 분명한 이유와 결론을 내어준다.(예언되고 성취된다) 그림 언어만도 아닌 글자언어만도 아닌 두 개가 만났을 때 그 시너지로 설교는 본문의 의미를 선명하고 의미 있고 풍성하게 드러낸다. _ 78쪽에서
예수님도 청중의 눈높이를 정확히 이해하시고 당대인에게 친숙한 예화로 복음을 전하셨다. 예화는 금기시 할 이유도 없고 결코 보조적인 존재도 아니다. 도리어 예화는 성경의 진리가 청중의 지성과 감정, 의지를 통합하여 본문의 핵심 주제를 드러나게 하는 설교의 필수적 형식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해석된 말씀으로 그렇게 말씀대로 살았던 성도들의 삶을 소개한다면 그 보다 더 정확하고 실제적인 적용이 어디에 있겠는가? _ 81쪽에서
우리가 아무리 잘 준비해도 하나님이 붙들지 않으시면 설교는 그냥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하다. 설교자가 하나님의 손에 온전히 붙들려져야 한다. 그래서 설교는 최종적으로 기도로 완성된다. 설교는 잘 준비했지만 이 설교를 통해 일하실 하나님에 대한 기대함과 성령께서 청중들의 닫힌 눈을 열어 깨닫는 영으로 임하심에 대한 간절한 기도가 전혀 없다면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부족한 설교를 들고 외로이 단에 서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우매함의 다름 아닐 것이다. _ 88쪽에서
PPT나 영상의 문제점은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장면이 바로 화면으로 뜨고 시각적으로 전환되기 때문에 도리어 사고(생각)가 제한되는 측면이 있다. 화면이 설교를 풍성하게 보여줄 때도 있지만 왜곡하고 축소할 가능성도 늘 상존한다. PPT나 영상매체는 설교의 주체가 아니라 보조제이다. 매체를 통한 시각적인 힘이 크다해도 설교의 힘보다는 크지 않다. 화면과 영상에 익숙한 시대이기 때문에 적절하게 잘 활용해야 하지만 이러한 한계도 있다는 것을 목사님은 꼭 인식하고 준비해야 한다. _ 95쪽에서
작은 교회를 섬기는 목사로서 교회를 방문하여 말씀으로 섬기려고 할 때 교회 목사님들이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있다. 목사님 우리 교회는 몇 명 없습니다. 어쩌지요? 설교에 임하면서 늘 고백하는 명제가 있다. 내 설교를 듣는 분이 한 분이라도 그 분 안에 천하가 있음을 보며 최선을 다하고 천 명이 앉아 있어도 그 수에 졸지 않고 한 명에게 설교하는 것처럼 섬세하게 다가가야 한다는 것이다. _ 100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