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시리즈 서문
감사의 글
약어표
서론
가르침과 설교에 유용한 자료
1. 여호수아 1:1-18
2. 여호수아 2:1-24
3. 여호수아 3:1-5:1
4. 여호수아 5:2-12
5. 여호수아 5:13-6:27
6. 여호수아 7:1-26
7. 여호수아 8:1-29
8. 여호수아 8:30-35
9. 여호수아 9:1-27
10. 여호수아 10:1-43
11. 여호수아 11:1-23
12. 여호수아 12:1-24
13. 여호수아 13:1-21:45 개요
14. 여호수아 13:1-33
15. 여호수아 14:1-15:63
16. 여호수아 16:1-17:18
17. 여호수아 18:1-19:51
18. 여호수아 20:1-9
19. 여호수아 21:1-45
20. 여호수아 22:1-34
21. 여호수아 23:1-16
22. 여호수아 24:1-33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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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여호수아서의 여러 강조점은 포로기 청중과 관련된 관심사를 암시한다. 하나님의 땅 약속은 이 책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이는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실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도록 포로기 청중을 격려하지 않았을까?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도 요단 동쪽 지파들의 지위, 믿음을 고백한 외국인(라합)과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아간)의 지위를 둘러싼 긴장을 통해 본문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민족성과 거주지가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요소가 아니라면, 정체성을 규정하는 요소는 과연 무엇인가? 이런 질문은 약속의 땅 밖에 있는 포로기 청중이 관심을 가질 질문이다. 그들이 포로기 이후에 혼합된 군중이 되어 그 땅으로 돌아올 청중이기 때문이다.
_“서론” 중에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힘과 용기를 가지라고 명령하시면서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고 덧붙이신다(9절). 그런데 여호수아의 성공은 그의 담대함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다시 한 번 하나님이 “너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9절; 참조. 5절). 앞서 여호수아는 “어디로 가든지”(7절) 성공하기 위해 율법에 순종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이제 하나님은 “네가 어디로 가든지”(9절) 여호수아와 함께하신다. 분명 여호수아의 순종과 담대함은 성공의 필수 요건이다.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는 순종과 담대함 속에서 역사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가 없다면 이스라엘의 힘이나 담대함만으로는 그 땅을 차지하지 못할 것이다.
_“1. 여호수아 1:1-18” 중에서
라합이 하나님의 백성에 편입된 이야기는 룻이 이스라엘에 편입된 이야기와 깊은 유사성을 보여 준다. 둘 다 이방인 여성이다. 둘 다 이스라엘과 모압 여인들과의 부정적인 연상과 결부되어 있다(민 25장). 라합은 싯딤과의 내러티브 연상에 의해, 룻은 모압 사람이라는 신분에 의해. 라합과 마찬가지로 룻도 이스라엘과 교제가 금지된 백성에 속해 있었다(신 23:3-6). 그런데 두 여성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맹세함으로써 스스로 합류했고(룻 1:16-17), 이에 근거하여 이스라엘 백성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들이 마태복음의 예수님 족보(마 1장)에 다른 세 여성(다말, 밧세바, 마리아)과 함께 포함된 것은 그들이 이스라엘에 완전히 포함되었다는 사실과 그들의 이야기에 부여된 영예 및 중요성을 증명한다. 참으로 그들은 아브라함을 통해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목적을 예시한 여성들이었다.
_“2. 여호수아 2:1-24” 중에서
이어지는 정경 내러티브는 신명기 헤렘법의 과장된 특성을 인정하는 것 같다. 금기시된 국가들의 패망을 요구하는 대신, 그들을 이스라엘 사회 안의 ‘기정사실’(given)로 받아들이는 두드러진 경향이 있다. 사무엘하 21:1에서 다윗은 이스라엘 사회에 가나안 사람들의 자리를 허용하는 기브온 언약의 정당성을 옹호한다. 사무엘하 24:7과 열왕기상 9:20-21(참조. 대하 8:7-8) 같은 본문은 이스라엘 안에 있는 가나안 사람들의 존재를 당황스러워하거나 정당화하지 않는다. 이러한 포용은 에스겔 47:21-23에서 놀라운 절정에 이른다. 여호수아 13-19장을 모델로 삼은 토지 분배 본문에서 예언자 에스겔은 이방인이 이스라엘 안에 완전히 포용되는 동등한 미래를 구상한다. 이스라엘 지파들과 나란히 이방인도 “기업”(nahalah)을 받는다.
_“5. 여호수아 5:13-6:27” 중에서
아간 위에 쌓인 돌무더기는 아이 왕(8:29)과 압살롬(삼하 18:17) 위에 쌓인 돌무더기와 비슷하게 묘사된다. 이 경우 돌은 무덤 같은 역할을 했다. 돌무더기는 또한 증인이나 기념물 역할을 할 수 있고(창 31:46-48), 이런 함의는 아간 위에 쌓인 돌에도 적용될 수 있다(8:29). “오늘까지” 남아 있다는 기록은 기념하는 역할을 암시한다. 앞서 이스라엘은 요단강 건너기를 기념하는 돌 기념물을 세웠다(4:4-7, 20-24). 그것은 상기시키고 가르치는 도구, 하나님의 능력의 기념물, 그리고 “주 너희 하나님을 경외하라”(4:24)고 이스라엘에게 요청하는 역할을 했다. 아간 기념물의 비극은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무시했던 자를 기념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어긴 아간은 이스라엘의 정체성에 남긴 어두운 표식으로 기억될 것이다. 아간을 덮은 돌무더기의 기념비적 성격은 “아골 골짜기”라는 기념 이름과 연결된다.
_“6. 여호수아 7:1-26” 중에서
여호수아 9장의 맥락에서 볼 때, 우리는 모두 기브온 사람이다. 기만적이고, 자기 이익만 추구하거나, 혹은 다른 여러 가지 결격 사유를 가진 사람이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언약이 은혜가 아닌 공로에 기초은혜가 기초해 있다면, 이 결격 사유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그 모든 복을 받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장애물일 수밖에 없다. 신약성경의 이 비유와 대척점에서 기브온 조약을 해석한다면, 하나님의 경륜의 장부가 드러난다. 외부인은 공로(혹은 민족성이나 명예)에 근거해 내부인이 되지 않는다. 언약은 모두에게 은혜를 베푼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기브온 사람에게도, 또한 날이 저물기 한 시간 전에 포도원에 온 일꾼들에게도 말이다.
_“9. 여호수아 9:1-27” 중에서
‘지루한 부분’에는 땅 분배라는 일상의 문제에 몰두한 하나님의 백성의 신실함에 대한 빛나는 이야기가 숨어 있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의 불성실함에 대한 이야기도 어떤 신앙의 삶을 본받기로 선택할 것인지 독자에게 묻는 경고와 도전으로 서 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 좋은 소식이다. 우리는 인생의 대부분을 일상 속에서 살아간다. 밥을 먹고, 차에 기름을 넣고, 멍든 무릎에 붕대를 감고, 식료품을 사고, 또다시 일터로 향하는 등 자질구레한 일상이 우리 삶을 채색하고 형성한다. 하지만 이런 자질구레한 일상 속에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고, 그분의 약속이 진실하고 신실하며 생명을 주고 있음이 입증된다. 또한 이스라엘이 그랬듯이, 우리도 이런 자질구레한 일상의 삶 속에서 불성실함을 벗어나 신실함에 이르도록 부름받는다.
_“14. 여호수아 13:1-33” 중에서
악사는 특히 땅 소유와 관련하여 이스라엘에 포함되는 것이 성별보다 믿음의 문제임을 예증한다. 악사는 땅이 가부장적으로 귀속되는 문화 제도 아래서 여성도 땅을 받을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가부장 제도하에서도 여성은 땅을 소유하고 온 이스라엘의 일원으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악사의 믿음은 라합의 믿음에 비견된다. 두 여성 모두 이스라엘에 참여하고 싶다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믿음은 아버지 갈렙의 믿음에도 비견되고, 둘 다 땅을 보상으로 받는다. 아버지와 딸은 이스라엘이 본받을 만한 끈기 있는 믿음의 전형을 함께 제시한다.
_“15. 여호수아 14:1-15:63” 중에서
이러한 사역 모델은 하나님의 백성의 건강한 공동생활을 뒷받침하는 성경적 관행인 것 같다. 그런데 오늘날 목회 사역에 발을 내딛는 이들은 교회가 전임 사역자를 적절히 지원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지 못하기도 한다. 신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고, 이중직 사역을 고려한다. 이중직 목회 사역은 때로 차선의 선택일 수 있지만, 교회의 선교 비전에서 비롯된 우선적인 선택지가 될 수도 있다. 레위인이 이스라엘 가운데 살면서 자신들의 땅에서 하는 노동과 제의적 책임의 균형을 유지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중직 사역자는 의도적으로 자기 시간을 교회와 지역 사회를 위해 배분한다. 목회 사역의 요구와 세속적 직업의 요구 사이에 균형을 잡기가 무척 어려울 수 있지만, 현대 선교 논의에서 이중직 모델은 단순히 차선의 재정적 선택지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고른 선교적 선택지가 될 수 있다.
_“19. 여호수아 21:1-45”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