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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ISBN-13 : 9788961953696 |
|---|---|
| 쪽수 | 480쪽 |
| 크기 | 규격 외(152mm X 225mm, 신국판) |
| 제품구성 | 단행본 |
- 예술 > 디자인
1960년대 태동한 플럭서스는 예술과 삶의 경계를 허물며 등장했다. 켄 프리드먼이 엮은 『플럭서스 리더』에서는 13명의 플럭서스 예술가, 역사가, 비평가들이 플럭서스에 대한 다각도의 통찰력을 제시한다. 이 책은 1960년대 초기 플럭서스 페스티벌부터 1990년대까지의 발전 과정을 추적하며, 역사적 기록, 이론적 분석, 비평적 시각을 종합한다. 조지 마키우나스, 딕 히긴스와 같은 주요 인물들의 목소리를 통해 플럭서스가 어떻게 예술가와 예술 자체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에 도전했는지 보여주며, 다다이즘에서부터 포스트모더니즘으로까지 이어지는 예술사적 맥락 속에서 플럭서스의 위치를 재조명한다. 특히 이 책은 래리 밀러와 조지 마키우나스가 나눈 플럭서스 초창기에 관한 대화, 그리고 빌리 마키우나스가 수잔 자로시와의 인터뷰에서 들려주는 마키우나스와의 개인적 경험을 최초로 소개하여, 플럭서스에 대한 더욱 깊이 있는 이해를 제공한다.
플럭서스는 역사의 한순간이나 예술 운동이 아니다. 플럭서스는 무언가를 하는 방식이며, 전통이며, 삶과 죽음의 방식이다. 플럭서스는 양식적, 이데올로기적 원리에 따라 분류하고 포장하거나 도서관 책장에 가지런히 놓을 수 있는 유형의 ‘예술가’ 그룹이 아니다. 그것은 예술계를 철학적 실천의 장으로 만들었고 멀티미디어, 통신, 하이퍼텍스트, 산업 디자인, 도시 계획, 건축, 출판, 심지어 경영의 아이디어들을 발전시키고 실현할 수 있게 했다.
놀이정신은 처음부터 플럭서스의 일부였다. 과학적 실험에서도 장난에서도 나타나는 아이디어의 놀이, 자유로운 실험의 놀이, 자유 연상의 놀이, 그리고 패러다임 전환의 놀이는 유머를 훨씬 넘어선다. 또 플럭서스 작품은 악보처럼 설계되어, 창작자가 아닌 다른 예술가들도 실현할 수 있다. 음악성은 플럭서스의 핵심 개념이다. 연극 복장을 한 퍼포머가 머리로 바이올린을 치고, 색소폰 케이스에서 어이없게 트럼펫이 나오고, 오케스트라 단원이 일렬로 서서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 벽에 머리를 찧고 ‘퍼포머’가 아니라 관객이 탱고를 추고 구두를 신고 한쪽 발을 구른다. 플럭서스 퍼포먼스를 하는 동안 공연이 가졌던 개념은 조롱되고, 전복되고 쫓겨난다. 플럭서스 작품의 불손한 기행은 예술의 신성함이라는 이기적인 개념을 경멸한다.
[목 차]
엮은이 한국어판 서문 6
서문 : 플럭서스의 혁신적 비전 · 켄 프리드먼 8
1부 세 가지 플럭서스 역사
플럭스-가능한 포럼을 발달시키기 : 초기 퍼포먼스와 출판 / 오언 스미스 16
플럭서스, 플럭션, 〈플럭스슈〉 : 1970년대 / 사이먼 앤더슨 50
플럭서스 포르투나 / 한나 히긴스 67
2부 플럭서스 이론들
지루함과 망각 / 이나 블롬 126
선 보드빌 : 플럭서스의 가장자리에서 하는 매개/명상 / 데이비드 T. 도리스 178
플럭서스 실험실 / 크레이그 세이퍼 260
3부 비평적·역사적 관점들
플럭서스 역사와 초-역사 : 영향력 확보를 위해 경쟁하는 전략들 / 에스테라 밀만 292
역사적 설계와 사회적 목적 : 플럭서스와 모더니즘의 관계에 대한 주석 / 스테판 C. 포스터 310
“큰 목표를 지닌 정신” : 플럭서스, 다다, 그리고 두 가지 속도의 포스트모던 문화 이론 / 니콜라스 저브러그 321
4부 세 가지 플럭서스 목소리
조지 마키우나스와의 비디오 인터뷰 녹취록, 1978년 3월 24일 / 래리 밀러 338
빌리 마키우나스와의 인터뷰 발췌문 / 수잔 L. 자로시 367
어쩌면 플럭서스 (새로운 시대의 변형가, 실험가, 사색가, 총체론자를 위한 준-질문지) / 래리 밀러 390
5부 두 가지 플럭서스 이론
플럭서스 : 이론과 수용 / 딕 히긴스 396
플럭서스와 동료들 / 켄 프리드먼 431
감사의 글 458
기여자들 461
플럭서스 리더 웹사이트 463
정보 및 문의 463
옮긴이 후기 464
글쓴이 소개 467
인명 찾아보기 471
작품 및 용어 찾아보기 475
[본 문]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 조지 마키우나스는 나에게 플럭서스 역사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1966년 가을이었다. 당시 나는 열여섯 살이었고 학업을 잠시 중단한 채 뉴욕에 살고 있었다. 조지는 그해 8월 나를 플럭서스 명부에 올려놓았다.
- 서문, 8쪽
저녁 8시, 뒤셀도르프 예술 아카데미에서 미술평론가이자 미술관 관장인 장-피에르 빌헬름의 사회로 첫 번째 ‘페스툼 플룩소룸 플럭서스’가 열렸다. 무대 앞을 가로지른 거대한 흰 종이가 무대를 가리고 있었고, 빌헬름은 무대 왼편에 놓인 작은 테이블에 앉아 준비한 대본을 읽었다.
- 플럭스(Flux)-가능한 포럼을 발달시키기, 15쪽
1970년대는 플럭서스 역사의 첫 기념탑이라 할 만한 ‘해프닝과 플럭서스’ 전시 및 카탈로그와 함께 시작되었다. 당시 해프닝은 국제적, 공식적으로 눈에 띄는 문화 현상이었다.
- 플럭서스, 플럭션, 〈플럭스슈〉, 51쪽
매우 가난하던 시절에 조지 마키우나스는 식료품점에서 라벨이 다 떨어져 나간 통조림 음식을 사곤 했다. 당연히 그런 통조림들은 할인을 많이 해서 가격이 저렴했기 때문이다. 그 시기에 마키우나스와 함께하는 식사는 한 편의 모험이었다.
- 플럭서스 포르투나, 123쪽
백남준은 테크놀로지 장치들이 어떤 안정적인 기계적 혹은 재생산적 형태로도 남아있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장치가 끊임없이 변형될 정도로까지 테크놀로지 자체를 소리의 개념과 동일시하곤 했다. 백남준의 장치들은 단순히 소리를 전달하거나 만들어 내지 않고 쉴 새 없이 소리를 재구성했다.
- 지루함과 망각, 156쪽
플럭서스 참여자들은 사실 플럭서스 프로그램이 무엇인가에 대해 좀처럼 동의하지 않았다. 플럭서스는 또한 다른 운동과 달리 특정한 지리적 위치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와는 반대로, 그것은 최초의 진정한 전지구적 아방가르드로 여겨질 만했다. 플럭서스 작품의 창작에 참여한 예술가, 작곡가, 시인 등은 프랑스, 서독, 일본, 한국, 체코슬로바키아, 덴마크, 미국 출신이었다. 이들 중 몇몇은 국외 거주자로 살거나 유목민으로 살았다.
- 선 보드빌, 179~180쪽
마키우나스는 플럭서스가 “하나의 예술 형식이라기보다는 일을 해 나가는 방식에 더 가깝다”라고 설명한다. “플럭서스는 개그 … 다분히 독창적인 개그 같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는 일”이라고 반복하며 여기에 수반되는 내용을 부연 설명하고 있다.
- 플럭서스 실험실, 285쪽
플럭서스의 모든 참여자들이 당시 행동주의자나 정치 참여 예술가 명단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은 예술 창작을 문화적, 사회정치적 비판과 통합하려는 아방가르드의 오랜 책임을 정기적으로 수행했다.
- 플럭서스 역사와 초-역사, 299쪽
유연한 목표가 집단의 생존을 가능케 한 방식을 언급하며 백남준은 플럭서스를 “서로 다른 자아를 가진 이삼십 명의 예술가들이 좋은 우정을 유지하며 협력했던, 거의 찾아보기 힘든 아나키스트적 집단들 중 하나”로 설명한다.
- “큰 목표를 지닌 정신”, 329쪽
래리 밀러 : 당시 예술계에 유머가 부족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조지 마키우나스 : 그렇습니다. 미래주의 시대에도 유머는 부수적인 것에 불과했어요. 그들은 진지한 선언문을 매우 심각하게 다뤘거든요. 반면 우리는 재미있는 선언문을 만들어냈죠. ... 우리가 만든 많은 박스들, 필름들, 콘서트, 스포츠 이벤트, 음식 … 우리가 한 모든 것들은 매우 유머러스했어요. 심지어 미사처럼 진지한 것도 결국에는 유머러스해졌죠.
- 조지 마키우나스와의 비디오 인터뷰 녹취록, 1978년 3월 24일, 357쪽
저는 여전히 플럭스오브제이고, 아직도 진행 중이에요. 조지도 저에게 플럭스오브제였습니다. 그는 시적 오브제, 시적 주제였습니다. 이것이 그 결혼이 왜 저를 위한 결혼이었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래서 그 결혼이 제게는 진정한 결혼이었어요. 3개월밖에 안 됐다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 빌리 마키우나스와의 인터뷰 발췌문, 388쪽
어쩌면 당신은 평범한 사람으로서 플럭서스적인 무언가를 해보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먼저 플럭서스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부터 판단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 어쩌면 플럭서스, 390쪽
우리는 각각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놀스, 포스텔, 브레히트는 원래 화가였고, 와츠는 조각가, 패터슨과 나, 백남준은 작곡가, 빌헬름과 나, 맥 로우는 작가인 식이었다. 이런 다양한 부류의 사람을 모두 플럭서스 사람이라 불렀던 것이다.
- 플럭서스 : 이론과 수용, 401쪽
플럭서스 그룹이 공식적으로 탄생한 때는 1962년이다. 당시 유럽, 일본, 미국에서 여러 예술가들이 유사한 예술 형식으로 작업하며 동일한 아이디어를 추구하고 있었다. 여기에 리투아니아 태생의 건축가 및 디자이너였던 조지 마키우나스가 이들의 작품을 갤러리에 전시하고 『플럭서스』라는 잡지를 통해 세상에 알리려 했다. 하지만 갤러리는 문을 닫았고 잡지는 출간되지 못했다.
- 플럭서스와 동료들, 441쪽
플럭서스란 무엇인가?
플럭서스는 1960년대에 시작된 혁신적인 예술운동으로, 예술가와 작곡가들의 국제적 네트워크이기도 했다. ‘흐르다’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이름을 따왔다. 플럭서스의 창립 멤버 중 한 사람이자 주요 조직가였던 리투아니아계 미국인 예술가 조지 마키우나스는 플럭서스의 목적을 “예술의 혁명적 흐름을 촉진하고, 생활 속의 예술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플럭서스는 실험 음악에서 출발했지만, 곧 모든 예술 장르를 아우르는 움직임으로 발전했다. 1961년 뉴욕에서 첫 행사를 한 후, 뉴욕, 독일, 일본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특히 이들은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예술이 특별한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플럭서스 예술가들은 미술관에 걸린 그림이나 콘서트홀의 음악만 예술인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들은 일상적인 행동을 예술로 만들고, 관객이 직접 참여하는 작품을 만들었으며, 우연과 유머를 작품의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였다. 오노 요코, 백남준, 요셉 보이스와 같은 혁신적인 예술가들이 이끈 이 운동은, 기존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예술 형식을 실험했다.
플럭서스의 실험정신과 민주적인 예술관은 오늘날 현대예술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이들이 추구한 ‘일상 속의 예술’, ‘모두를 위한 예술’이라는 생각은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다양한 예술 활동의 근간이 되었으며,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무는 현대예술의 주요한 흐름을 만들어냈다.
이 책을 엮은 켄 프리드먼은 누구인가?
프리드먼은 영향력 있는 플럭서스 연구자로서, 예술가와 학자라는 두 가지 정체성을 통해 플럭서스의 실천과 이론을 모두 아우르는 독보적인 인물이다. 그는 조지 마키우나스와 함께 활동하며 플럭서스 운동의 발전에 깊이 관여했고, 이후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플럭서스 운동의 발전과 연구에 헌신해 왔다.
프리드먼의 작품들은 플럭서스의 핵심 가치인 단순성, 유머, 그리고 일상과 예술의 결합을 잘 보여주며, 뉴욕현대미술관(MoMA)을 비롯한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학자로서 프리드먼은 멜버른 스윈번 대학교 디자인 대학 학장을 역임하며 예술경영, 디자인, 그리고 플럭서스 연구 분야에서 활약했다. 그의 연구는 플럭서스를 단순한 예술운동이 아닌, 20세기 후반 예술과 사회의 변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렌즈로 재조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플럭서스의 이론적 토대를 체계화하고, 이를 현대 예술 및 디자인 교육과 연결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
프리드먼은 플럭서스를 직접 경험한 참여자이자, 동시에 이를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분석한 관찰자라는 점에서 특별한 위치에 있다. 그의 저술과 연구는 플럭서스에 대한 실천적 이해와 이론적 분석을 결합하여, 현대 예술사 연구에서 핵심적인 참고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현재도 그는 지속적인 연구와 저술 활동을 통해 플럭서스의 유산을 현대적 맥락에서 재해석하고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플럭서스 연구의 결정판 『플럭서스 리더』
『플럭서스 리더』는 플럭서스 운동에 대한 포괄적이고 권위 있는 연구서로서, 현대 예술사 연구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책이 가지는 학술적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플럭서스의 역사적 맥락과 철학적 배경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둘째, 플럭서스 운동의 주요 참여자들의 생생한 증언과 연구자들의 심도 있는 분석을 함께 담아, 이 운동에 대한 내부자적 시각과 학술적 관점을 균형 있게 제시한다. 셋째, 플럭서스가 현대 예술에 미친 영향과 의의를 심도 있게 다룸으로써, 이 운동의 역사적 중요성을 재조명했다.
요셉 보이스, 딕 히긴스, 앨리스 허친스, 오노 요코, 백남준, 벤 보티에, 로버트 와츠, 벤저민 패터슨, 에밋 윌리엄스 등 1960년대 주요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활동을 포함하여, 예술을 전공하는 학생부터 현대 예술에 관심 있는 일반 독자까지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된 이 책은 현대 예술의 중요한 흐름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안내서가 될 것이다. 특히 한국이 배출한 세계적인 예술가 백남준이 플럭서스의 주요 구성원이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한국 현대예술의 중요한 맥락을 이해하는 데도 핵심적인 자료가 될 것이다.
이 책을 번역한 정유진 역자는 박사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 책을 처음 접했고 “수많은 연구서를 읽어왔지만, 이 책은 마치 보석을 발견한 것 같은 특별한 경험을 선사했습니다.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예술을 사고하고 접근하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는 이 책은, 제 연구에도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한국에는 아직 플럭서스에 대해 이처럼 깊이 있게 다룬 책이 없다는 점에서, 이 책의 번역 출간이 국내 예술계에 중요한 기여가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라고 밝혔다.
모두가 예술가이고, 예술가이기를 강요받고 있는 ‘예술인간의 시대’에,
‘플럭서스’의 의미는 무엇일까?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플럭서스의 민주적 예술관은 오늘날 모두가 창작자가 되어가는 시대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특히 플럭서스가 추구했던 일상과 예술의 경계 허물기는 현대인들이 일상에서 창의성을 발견하고 표현하는 데 깊은 영감을 준다. 그러나 플럭서스의 진정한 가치는 단순한 ‘창작 행위’를 넘어선 더 본질적인 곳에 있다.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창의적이어야 한다’고 강요하지만, 플럭서스는 이러한 강제된 창의성이 아닌 자발적이고 본질적인 창조성을 추구했다. SNS와 콘텐츠 생산에 집중된 현대의 ‘창작 강박’에 대해, 플럭서스는 ‘무엇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압박이 아닌, ‘존재 자체가 예술’이라는 해방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플럭서스는 예술을 통한 저항과 해방의 가능성도 보여준다. 현대인이 겪는 성과주의와 경쟁 구도, ‘생산성’과 ‘효율성’의 압박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아를 찾는 길을 제시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플럭서스가 강조하는 공동체적 예술 실천이다. 개인의 ‘인플루언서화’가 아닌, 집단적이고 참여적인 예술 경험을 통해 경쟁이 아닌 협력, 소통, 공유의 가치를 보여준다.
디지털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플럭서스는 기술과 인간성의 균형에 대해서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백남준의 작업은 기술을 도구로 사용하되 인간성을 잃지 않는 균형 잡힌 접근을 보여준다. 가상현실과 메타버스가 일상화되는 시대에, ‘실제’ 경험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것이다. 더불어 플럭서스는 예술의 상품화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제공한다. ‘좋아요’와 ‘조회수’로 대변되는 현대 사회의 ‘콘텐츠 상품화’를 넘어, 예술이 삶의 본질적 부분이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는 현대인의 무감각해진 일상 감각을 깨우고, 평범한 순간들의 예술적 가치를 재발견하게 한다.
결국 플럭서스는 ‘예술적 삶’이 특별한 재능이나 기술이 아닌, 관점의 전환에서 시작됨을 보여준다. 이는 예술가가 ‘되어야만 하는’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예술적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플럭서스와 정치, 플럭서스와 사회
플럭서스와 정치, 사회의 관계는 매우 밀접했으며, 이는 플럭서스가 단순한 예술운동이 아닌 사회문화적 운동이었음을 보여준다. 플럭서스 예술가들은 예술을 통해 당대의 사회적, 정치적 이슈에 적극적으로 개입했으며,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사회적 측면에서 플럭서스는 무엇보다 예술의 엘리트주의를 강하게 거부했다. 미술관과 갤러리로 대표되는 제도화된 예술 시스템에 도전하며, 예술이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닌 모든 이의 것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일상의 경험을 예술로 승화시킴으로써 예술과 삶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고, 이를 통해 사회 변혁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플럭서스의 국제적 네트워크이다. 냉전 시기에 동서양의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교류하며 문화적, 정치적 경계를 넘어선 소통을 추구했다는 점은 매우 혁신적이었다. 이러한 국제주의적 태도는 예술을 통한 평화와 소통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정치적 측면에서 플럭서스 작가들의 활동은 직접적이었다. 요셉 보이스는 ‘사회적 조각’이라는 개념을 통해 예술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실제로 녹색당 창당에 참여하는 등 적극적인 정치활동을 펼쳤다. 많은 플럭서스 예술가가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퍼포먼스와 작품을 선보였으며, 이를 통해 예술이 정치적 발언을 할 수 있는 힘을 입증했다. 플럭서스의 정치성은 기존 예술 제도와 권력 구조에 대한 비판으로도 나타났다. 이들은 상업화된 예술 시장과 제도화된 미술관 시스템에 도전하며, 대안적인 예술 제작과 유통 방식을 모색했다. 값비싼 재료 대신 일상적 사물을 사용하고, 복제와 공유가 가능한 형태의 작품을 만드는 등 예술의 민주화를 실천했다.
이처럼 플럭서스의 사회정치적 성격은 예술운동이 단순히 미학적 실험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사회 변화의 동력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이들의 실천은 오늘날 사회참여 예술이나 공동체 예술의 중요한 선례가 되었으며, 예술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플럭서스 예술가 백남준
백남준은 한국에서 주로 ‘비디오 아트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예술 세계는 훨씬 더 깊고 다면적이다. 특히 플럭서스 운동의 핵심 구성원으로서 백남준의 면모는 더욱 깊이 있게 이해될 필요가 있는데, 이 책은 백남준의 활동과 사상을 플럭서스라는 맥락 속에서 고찰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우선 백남준의 실험정신은 플럭서스와 깊은 연관성을 가진다. 그의 초기 퍼포먼스와 음악 실험들은 플럭서스의 핵심 가치인 장르의 경계 허물기, 우연성의 수용,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잘 보여준다. 〈바이올린 솔로를 위한 하나〉와 같은 작품에서 보이는 파격적 실험정신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닌, 플럭서스의 예술철학이 구현된 것이었다.
또한 백남준의 예술관은 동서양의 문화적 감수성을 독특하게 융합했다. 그는 선(禪)적 사고와 서구 아방가르드를 접목시켰고, 이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예술적 표현을 창조했다. 존 케이지의 우연성 음악과 동양적 사유의 만남, 테크놀로지와 인간성의 조화는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중요한 특징이다.
백남준은 일찍이 테크놀로지가 인간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동시에 이를 창조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전자 초고속도로’와 같은 개념을 통해 글로벌 소통의 시대를 예견했으며, 이는 오늘날 인터넷과 디지털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인공지능과 메타버스 시대를 맞이하는 지금, 테크놀로지와 인간성의 조화라는 그의 비전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또한 문화적 경계를 넘어선 소통과 교류에 대한 그의 선구적 통찰은 글로벌 시대의 예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더불어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백남준의 생각도 더 깊이 이해될 필요가 있다. 그는 테크놀로지를 단순한 도구가 아닌, 사회적 소통과 문화적 교류의 매개체로 보았다. 특히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유머와 따뜻한 인간애는 차가운 기술을 인간적인 것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을 보여준다.
백남준의 예술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그의 기술적 혁신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그의 예술철학과 문화적 비전, 그리고 플럭서스와의 연관성 속에서 그의 작품 세계를 총체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플럭서스 예술가와 작품들 : 딕 히긴스와 앨리슨 놀스
마지막으로 플럭서스 예술가들이 어떤 활동을 했는지에 대한 사례로서 여러 플럭서스 멤버 중에서 딕 히긴스와 앨리슨 놀스의 작품에 관해 살펴보자.
딕 히긴스는 ‘인터미디어’(Intermedia)라는 개념을 최초로 제시한 예술가이다. 1966년 그가 발표한 「인터미디어 선언문」은 오늘날 융합예술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 그는 시각예술, 음악, 퍼포먼스, 출판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장르의 경계를 허물었고, 섬씽 엘스 프레스(Something Else Press)를 설립하여 실험예술 출판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특히 그의 〈위험 음악〉(Danger Music) 시리즈는 음악의 개념을 완전히 새롭게 정의했는데, 예를 들어 〈위험 음악 17번〉(Danger Music Number Seventeen)은 “한밤중에 소리 지르기”라는 단순한 지시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일상적 행위와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예술이 특별한 기술이나 재료 없이도 가능하다는 플럭서스의 철학을 잘 보여준다.
앨리슨 놀스는 플럭서스의 주요 여성 예술가로서, 특히 일상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작업에서 탁월한 면모를 보였다. 그녀의 대표작 〈샐러드를 만드시오〉(Make a Salad, 1962)는 샐러드를 만드는 일상적인 행위를 퍼포먼스로 변환시킴으로써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작품은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 미술관에서 재연되고 있으며,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플럭서스의 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그녀의 〈커다란 책〉(The Big Book, 1967)은 관객이 직접 페이지 안을 걸어 다닐 수 있는 8피트 크기의 책으로, 책이라는 매체의 개념을 완전히 새롭게 해석한 혁신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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