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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스옥타비아(큰글자책) - 2059 만들어진 세계(활자에 잠긴 시)

    • 유진목 저
    • 알마
    • 2024년 09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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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품 규격 정보
    상품상세정보
    ISBN ISBN-13 : 9791159924095
    쪽수168쪽
    크기B5(188mm X 257mm, 사륙배판)
    제품구성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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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소개

    여성 시인이 쓴 SF, 미래를 통해 지금 여기를 이야기하다

    2016년 시집 《연애의 책》을 내며 일약 문단의 중요한 작가가 된 시인 유진목의 《디스옥타비아》가 출간됐다. 《디스옥타비아》는 흑인 여성이자 페미니스트인 SF 작가, 옥타비아 버틀러의 자장 안에서 유진목 시인이 2059년을 사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낸 SF이자 ‘미래 일기’이다. 옥타비아 버틀러는 “SF 속에서, 당신은 상상 가능한 곳으로 얼마든지 떠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버틀러의 그 말에 응답하듯이, 유진목 시인은 《디스옥타비아》를 통해 자신이 상상한 가공된 미래로 스스로를 데려다 놓는다. 도착한 그곳은 2059년, 78세의 유진목이 ‘모’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세계이다. 그 세계는 마치 무균실처럼 정제되어 있다. 그곳은 오늘날 만연한 성차별, 여성 혐오가 사라진 세계이지만 ‘모’로서는 어쩐지 그저 반갑지만은 않은 세계이다. 우선 ‘모’ 개인적으로는 24년간 함께한, 사랑하는 ‘그’가 더는 없는 세계인 탓이다. ‘그’를 떠나보낸 뒤 ‘모’는 노인 보호시설인 ‘엘더’에 들어간다. 이제는 노인이 된 옛날 사람들은 모두 그러한 시설에서 보호받고, 통제당하며 안전하게 죽어간다. 세상이 보기에 그들은 “불만을 품고 생각하는 방법”을 아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이제 세상은 혼돈과 자유보다는 규정과 시스템을 중시하며 돌아간다. 개인에게 스스로 죽을 권리란 없다. 그가 죽음을 간절히 원하더라도 말이다.

     

    엘더에서 의사들이 인공 수정으로 만든 간병인 율리의 도움을 받으며 남은 삶을 지속하는 모는 “영원히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던 그와의 나날과, 여성 혐오로 얼룩졌던 과거와, 자유 없는 현재와, 목전에 놓인 자신의 죽음 등에 관하여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디스옥타비아》는 가공된 미래를 통해 역설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여기의 풍경을 환기시킨다. “그 시절의 삶이 어땠는지를 짐작이나 해볼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는 ‘모’를 통해 우리는 바로 “그 시절의 삶”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세계를 되돌아보게 된다. 그렇게 돌아본 지금-여기가 ‘디스토피아’처럼 느껴진다면,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한 걸음 더 나은 미래로 내딛어야 할 시간, 다시 태어나야 할 시간이 아닐까?

    목차

    [목 차]

     

    2059년, 여름


    [본 문]

    밤사이 바닷물에 떠밀려 온 커다란 물체가 물살에 이리저리 시달리고 있었다. 나는 머지않아 그것이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자세히 보니 두 팔을 느슨하게 벌린 자세로 엎어져 물에 떠 있었다. 가만히 그것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10쪽)

     

    더 이상 혼자서 죽는 것은 두렵지 않다. 그나마 두려웠던 것은 내가 미처 준비하지 못한 순간에 심장이 멈출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변기에 앉아 죽을까 봐 걱정했다. 그들이 내 바지를 걷어 올리게 될까 봐 두려웠다. 몸을 씻다 죽는 것도 싫었다. 그들이 내 주름이 가득한 알몸을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하더라도 말이다. 싫은 것은 언제나 싫었다. 싫은 것은 좋았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15쪽)

     

    율리가 말하는 다른 세상에서 떠나온 사람으로서 나는 율리를 걱정했다. 주는 대로 받아먹으며 살진 않을 거예요. 율리는 자기 자신을 경멸하는 것 같았다. 당장 내일 먹을 것을 걱정하게 될 거야. 그게 너의 전부가 될지도 몰라. 나는 내가 도망쳐 온 삶에 몸서리를 쳤다. 걱정 말아요. 작가가 되지 않을게요. 초점 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율리가 문득 환하게 웃었다. (28쪽)

     

    다른 삶은 없다고 말하는 이에게 다른 삶이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어떤 절망에는 다른 삶을 꺼낼 수조차 없어야 한다. 잦아드는 불씨처럼 타들어가는 숨이 마침내 다 꺼질 때까지. 형체를 간직하고 있지만 이내 주저앉아 바스러질 때까지. 그대로 내버려두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절망하지 않는 사람이 절망하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31쪽)

     

    내가 한창 가임기의 여성이었을 때, 나는 내가 속한 사회가 생산하는 가족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일찌감치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나왔고, 내가 새로운 가족을 꾸릴 수 있을 거란 기대도 하지 않았다. 만약 지금 내가 아이를 낳을 수 있다면, 지금 다시 그럴 수만 있다면 아이를 낳아서 함께 살고 싶다. 아이를 낳아서 바다가 무엇인지 모래가 어떤 촉감을 가지고 있는지 보고 만지게 해주고 싶다. 함께 물속으로 천천히 들어가서 수평선을 바라보고 싶다. 집으로 돌아가 아이가 먹을 것을 만들고 아이 옆에서 함께 배를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아이가 잠이 들면 다른 생각에 빠져 있다가 아이가 깨어나면 무슨 생각을 했는지 까맣게 잊고 싶다. 하지만 내 몸은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다. (42~43쪽)

     

    나는 살아야 할 이유도 없으면서 자신을 살려두고 있다. 이 세상에는 나를 살아가게 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삶에 대해 비참함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살려두는 것만으로도 살아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우리는 살아 있기 때문에 살아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처럼. 한때 나는 만족스러운 삶의 한가운데서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영원히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53~54쪽)

     

    지구가 아닌 다른 곳에서 살 수 있다면 당신은 지구를 떠날 텐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삶의 본연으로 삼는 일이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 되어버리는 때가 있었다.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하는 비참을 견디며 어떻게든 살아야 하는 때가 있었다.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오로지 혼자서만 책임지면서 타인의 요구도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타인은 요구만 할 뿐 책임은 없다. 타인의 요구를 거부하고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하는 순간 나는 고립된다. 하지만 본연의 모습대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 그것은 곧 자신의 생계를 위험에 빠뜨린다는 것과 같은 얘기다. 하지만 적어도 스스로 위험을 택할 자유는 있었다. (62쪽)

     

    옛날에는 ‘운명’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당신과 내가 만난 건 운명이야. 이렇게. 그러고 보니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사라진 말들이 세상에는 많이 있다. 율리는 한참 후에야 그 말을 이해했다. 율리는 사람이 사람에게 운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신비롭게 여겼다. 그건 마치… 자기 자신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으로 들려요. 내가 살아가는 데 다른 사람이 왜 필요하죠? (64쪽)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만으로 다른 실망스러운 일들을 잊을 수 있었다. 생활비가 걱정돼 울다가도 먹고 싶은 게 떠오르면 눈물을 닦고 그것을 먹었다. 내 앞에는 언제나 안 좋은 일이 도사리고 있는 것만 같은 불안한 날들을 살면서도 내가 밥을 맛있게 먹으니까 유야무야 돼버린 건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나에게 좋은 일이 생기는 것도 내가 밥을 맛있게 먹고 밥을 무척이나 좋아해서라고.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내가 음식에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밥을 맛없게 먹는 사람이었다면 대신 내 앞에 마련돼 있던 모든 불행을 그대로 맛보았을 것이다. (73쪽)

     

    ‘남자처럼’ 짧다는 것은 그야말로 옛날식 표현이다.

     


    추천사

    어둡고 찬란한 그의 디스옥타비아

    옥타비아 버틀러는 어두운 시대를 살며 SF문학의 찬란한 한 세계를 구축한 미국의 흑인 여성 작가다. ‘디스옥타비아’는 옥타비아가 견딘 고초와 차별, 억압의 디스토피아를 가리키는 조어일 테다. 나는 유진목 시인이 옥타비아 문학에 감응한 맥락을 어렴풋이 짐작한다. 그를 에워싼 세계는 옥타비아의 세계로부터 그리 멀리 벗어나지 못했고, 옥타비아가 그랬듯 그도 문학과 더불어 ‘디스옥타비아’의 세계를 견디며 조금씩 밀고 왔을 것이다.

     

    1981년~2059년

    이 책은 저 두 숫자 사이 시간을 살다 간 한 여성의 이야기다. 삶이 곧 끝나리라 생각하며 가까스로 버티던 40년 전의 나. 당장이라도 삶을 끝내고 싶던 60년 전의 나. 그리고 가만히 살아온 날들을 회고하며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은” 때를 맞이한 지금의 나…. 그런 나를 짓누르던 어제의 세상, 그리고 사뭇 달라졌지만 결코 달가워할 수 없는 오늘의 세상. 지금 ‘내’가 있는 곳은 2059년 여름, 어느 한적한 바닷가다. 이 이야기 안에는 ‘1963~2041’의 숫자로 기록된 ‘그’와 함께한 시간이 있다. 그와 더불어 온전한 ‘우리’로 살 수 있었던 벅찬 24년의 시간. ‘디스옥타비아’는 부러울 만큼 깊고 뜨거운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다.

    ‘디스옥타비아’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나는, 이야기 속의 어떤 시간과 풍경 안에서 지금 나의 시간과 세계, 훗날 마주할 어떤 바다를 그려보느라 자주 눈을 감아야 했다. 그리고 아득한 그리움처럼 행간에 스민, 지금 ‘내’가 누리고 있을 사무치는 사랑과 너른 마당이 있는 그들의 바닷가 외딴집을 상상하며 이야기로 돌아오곤 했다. 다른 시간과 세계가 난류와 한류처럼 따로 흐르다 경계에서 격렬히 섞이듯, 2059년 그의 바다가 알몸으로 뛰어들어도 소름 돋지 않을 만큼의 온기는 품고 있기를 바랐다. 존 버거는 “우리가 어떤 이야기에 감응하면 그 이야기가 우리의 일부가 된다”고 했다. 옥타비아 버틀러의 어떤 이야기가 유진목의 것이 되었듯, 내게 스미는 유진목의 문장들을 느끼며 버거의 저 말을 떠올렸다. 이제 각자 디스옥타비아의 세계를 새롭게 견디며 조금씩, 조금은 더 나은 자리로 밀고 나가야 할 시간이다.

    _최윤필 한국일보 기자

    출판사 서평

    “나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다”

    옥타비아 버틀러의 자장 안에서 탄생한

    시인 유진목의 SF, 혹은 ‘미리 쓴 일기’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은” 때를 맞이한 지금의 나의 이야기.

    그런 나를 짓누르던 어제의 세상과, 사뭇 달라졌지만 결코 달가워할 수 없는 오늘의 세상, 디스옥타비아. 이제 각자, 디스옥타비아의 세계를 새롭게 견디며 조금씩,

    조금은 더 나은 자리로 밀고 가야 할 시간이다.

     

    옥타비아 버틀러의 자장 안에서

    《디스옥타비아》는 미국의 SF 작가 옥타비아 버틀러의 영향 속에서 탄생한 책이다. 옥타비아 버틀러는 1947년 태어나 2006년 작고한 미국의 SF 작가로, 흑인 여성이자 페미니스트였다. 작가가 되기까지 그녀는 미국 사회에서 여러 난관에 부딪혀야만 했다. 우선 흑인이자 여성으로서 사회적 약자에 속했으며, 가난했기에 학비를 벌기 위해 육체 노동에 매달려야 했다. 약자이며 소수자인 그녀의 경험을 반영하듯, 그녀의 작품들은 사회적 문제들과 과학적 상상력을 결합한 것들이 많다. 가령 그녀의 대표작인 《킨》은 시간 여행물로, 시대를 오가는 주인공이 가난한 흑인 여성으로서 받는 폭력에 고통받고 좌절하는 이야기이다.

    그러한 옥타비아 버틀러의 삶과 작품이, 여성 혐오가 만연한 한국에서 여성 작가로 살아가는 유진목 시인에게 큰 영향력을 가지고 다가왔음은 어쩌면 필연이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유진목 시인은 “옥타비아 버틀러의 문장이 불현듯 나를 움직이고 있”다면서 “옥타비아 버틀러와 함께 나에게서 생겨나는 것을 받아들이고, 생각하고, 음미하면서” “변화하는 내 자신을 쓰고 또 썼다”라고 작가의 말에 밝혀두고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디스옥타비아》는 옥타비아 버틀러에 대한 헌사이기도 하다.

    《디스옥타비아》에는 옥타비아 버틀러의 소설에서 빌려온 문장과 이미지의 변주, 패러디 들이 퍼즐 조각처럼 펼쳐져 있다. 가령 《디스옥타비아》의 모와 율리의 관계는 [블러드 차일드]의 트가토이와 간의 관계를 떠오르게 하며, [저녁과 아침과 밤]에서 등장하는 ‘표류’라는 증상은 《디스옥타비아》에서 모두가 두려워하는 아웃사이더의 이미지로 변주되어 나타난다. 이미 옥타비아 버틀러를 읽은 독자라면 버틀러가 만들었던 세계를 유진목 시인이 어떻게 인용하고 변형하였는지 살펴볼 수 있을 것이고, 아직 읽어보지 못한 독자라면 언젠가 버틀러를 읽을 때 《디스옥타비아》의 이야기들이 단편적인 꿈처럼 떠오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옥타비아 버틀러의 소설과 유진목의 이 ‘미래 일기’는 독자들을 통해 또 다른 ‘만들어진 세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남성 중심의 세계에 질문을 던지다

    《디스옥타비아》에서 그리는 2059년은 마침내 성차별이 없는 세상이다. 78세의 ‘모’는 “남자 답지 않은 것과 여자 답지 않은 것은 반드시 문제되던 시절”이 정말로 있었다고 회상한다. 고작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사실이 사회적 문젯거리로 보도되고, 출산 장려를 위해 낙태를 금지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수였던 시절이 있었다고. 부부 사이에서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행위가 가정을 돌보는 일이라며 묵인되었다고. 여성은 스스로를 보호하거나 부양할 능력이 없으므로 강자인 남성은 여성을 부양할 의무가 있고 때문에 대접받을 자격도 있다고. 이런 일들이 불과 사십 년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일들이었다며 ‘모’는 “나의 설명을 따라올 수 있겠는가? 그 시절의 삶이 어땠는지를 짐작이나 해볼 수 있겠는가?”라고 말한다.

    물론 우리는 ‘모’의 설명을 따라갈 수 있으며 그 시절의 삶이 어땠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모’가 당신들은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말하는 그 세상은 바로 지금 여기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2059년을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점에서 볼 때 우리들은 이해할 수 없는 과거에서 사는 사람들인 셈이다. 우리 사회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고정 관념과 가치들이 미래에는 상상력을 동원해야 떠올릴 수 있는 부조리한 것이 될 수 있음을 《디스옥타비아》는 아이러니하게 드러낸다.

    몇 년 사이 페미니즘의 물결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한국 또한 여러 사건과 이슈 들을 거치며 페미니즘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확대되었다. 최근 페미니즘적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 문학 독자들은 묻는다. 왜 한국 문학에는 남성 중심적인 가치와 미학이 담긴 서사만 가득한가? 《디스옥타비아》는 이런 질문들에 대한 응답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윤리적으로 올바른 가치관을 지닌 이야기 또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혐오와 차별 앞에서 한국 문학 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말이다.

     

    미래에서 조우하는 글과 그림들, 미래로부터 지금-여기로

    미래의 78세 노인이 남긴 한 권의 아름다운 일기, 《디스옥타비아》를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18여 컷에 달하는 백두리 작가의 일러스트들이다. 초현실적이면서도 리얼하고, 명상적이면서도 관능적인 백두리 작가의 그림들은 유진목 시인의 글과 마찬가지로 옥타비아 버틀러의 소설에서 받은 영감을 통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옥타비아 버틀러라는 하나의 어머니를 두고, 유진목 시인의 글과 백두리 작가의 일러스트는 서로 다른 장르로서 교차하고 교감한다. 글과 그림은 서로 충돌하고 화합하며 리드미컬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 과정을 통해 《디스옥타비아》는 훨씬 풍성해질 수 있게 되었다.

    구성상의 특이점 또한《디스옥타비아》를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디스옥타비아》의 이야기는 역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야기는 ‘모’가 남긴 일기장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시작하여 일기장의 첫 페이지로 흘러간다. 독자들은 가장 먼 미래에서 시작해 책을 덮고난 뒤 지금 여기, 현재로 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책의 중간중간 조우하게 될, 수심 깊은 바다처럼 검게 물든 페이지에서 가만히 떠오르는 문장들을 차례대로 이어 나가다 보면 잠깐 시를 읽는 기분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 소개
    저자 : 유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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