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광고
AD광고5만원 이상 결제 시 (*배송비 제외)
정가제FREE(상품/사은품) 금액이 2,000원 이상이면 2,000원 추가적립
10만원 이상 결제 시 (*배송비 제외)
정가제FREE(상품/사은품) 금액이 2,000원 이상이면 2,000원 추가적립
정가제FREE(상품/사은품) 금액이 5,000원 이상이면 5,000원 추가적립
신용카드 무이자할부 안내
결제사 혜택 안내



배송안내
- 배송지역 선택
- 주소 검색
| 네이버페이 구매하기 | 찜하기 |
[네이버페이]
| ISBN | ISBN-13 : 9791168150843 |
|---|---|
| 쪽수 | 224쪽 |
| 크기 | 규격 외(152mm X 225mm, 신국판) |
| 제품구성 | 단행본 |
- 정치/사회 > 국방/군사
이 책은 에디를 가까이 지켜보며 응원해 온 연합뉴스 김재홍 기자의 동행 취재기다.
그리고 목숨을 걸고 두만강 여울을 건너온 대학생의 탈북 32년 다큐멘터리이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분단된 나라인 남한과 북한 그리고 호주에서 60년 가까이 살아온 한 사람의 역사이다. 남북이 분단된 지 내년이면 벌써 80년이다. 대륙국가인 대한민국이 38선에 가로막혀 일본 열도나 다름없는 태평양의 섬이 돼 버렸다. 남북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 너무 오랜 세월 떨어져 살아 이제는 서로 다가가기 힘들다는 말이 절망과 한탄처럼 들린다.
에디는 북한에서 태어나 청년기까지 사회주의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이다. 하지만 분단 세월과 교육도 에디의 몸속에 잠복해 온 개성상인 DNA가 용솟음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서울 땅을 밟자, 평양 옥류관 서울분점 창업과 나우누리 등에 정보제공 사업가로 다시 태어났다. 또 호주 회계사로 거듭나 북한지하자원 투자전문가가 됐다. 저자는 남과 북이 새로운 미래를 꿈꾸고 나아갈 때 에디의 삶을 들여다보고, 함께 해법을 찾을 수 있길 간절한 마음의 발로가 책이 되었다.
[목 차]
서문•4
귀순대학생, 평양옥류관 서울분점 창업
외화벌이 골동품 중개…돈의 위력 절감•16
첫 직장 도로공사…고려대 입학•21
평양옥류관 서울분점…정주영 회장도 단골•26
상하이 영어전용 국제유치원…사스 급습에 물거품•34
호주로 이민, 시드니 골프장 청소부•38
우버 기사…87개 나라 1만여 명 실어 날라•41
카센터 설비 세일즈…꿩 먹고 알 먹고•46
마침내 호주회계사•49
노틸러스연구소·UNDP와 북한 자원개발연구 프로젝트•50
개성상인 DNA는 못 숨겨•55
두만강과 장백산맥 넘어 목숨 건 탈북
아버지의 세계지도…바깥세상 나침반•60
첫 대학시험 낙방…청진 광산금속종합대학교 수석•63
유학 꿈 좌절되자 평양서 골동품 밀매•68
일본 골동품상·해외유학생 전해준 바깥세상에 큰 충격•70
청진역에서 깡패들에 ‘거사자금’ 다 털린 뻔•72
초겨울 두만강과 장백산맥 넘어…부친 묘소 향해 큰절•76
하나님 말씀에 뜻밖의 위안
“북조선 사람 한국 망명 도와달라”…거절당해•80
택시기사 선양 북한영사관 앞에 내려줘•83
베이징 한국 대사관도 사실상 퇴짜…진퇴양난•86
‘고수레’…카시오 시계 길에 던져 운명 점쳐•88
북한VIP 호송요원 행세…바다 헤엄쳐 인천행 선박 타•90
탈북과정 혹독한 조사…하나님 말씀에 위안•94
북한 공민증, 한국 주민등록증, 호주 시민권증서…3개국 신분증•96
남과 북 대학 교육환경 달라도 너무 달라
북한 군대식 기숙사 생활…한밤중 ‘식량조절’•100
군 입소 훈련…아무도 못 막는 사과 서리•102
고려대-북한 대학 오리엔테이션 극과 극•105
2학년 편입학 대신 1학년 입학•108
교양과목…남한 세계 이해 길잡이•112
북한 지리여행·투자서 잇따라 출간•114
대학 초청강사 안보강연•119
영국 유학…세계인 첫걸음•122
시드니 경영대학원서 회계사 자격 취득•126
아내의 신장 한쪽…시한부 에디 되살려
아내 “제2 인생 하나님과 가족만을 위해 살아달라”•130
“외할아버지 목소리 닮아 친근”•138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일곱 살 아들의 권유•141
사무치게 그리운 어머니…교사 출신 노동당원•146
어머니 음식 ‘만두와 돼지고기 장조림’•149
소중한 인연…끝없는 동행과 배려
만남과 헤어짐…안타까운 여동생•152
1993년 탈북 동기생…가까운 친구이자 가족•155
함께 온 죽마고우…한의원 박사 원장님•159
기자와 취재원 인연…30년 세월 동안 동행•162
실향민 어르신들…자식 같은 후배로 맞이해준 고마운 분들•165
남북관계 변화 온탕 냉탕…절망보단 희망
남북 공동번영의 길 아직도 오리무중•168
문재인 평양 군중연설…남북 공존공영 기대 물거품•173
북한 1인 후보 선거…남한 대통령 후보 누굴 찍어야•176
남한의 혈육 친척을 찾았지만…•179
대북 투자 대박 유혹…신기루 같은 사기 많아•181
낯선 문화…양아치는 어느 곳에나
하숙집에서 솔직한 말 때문에 봉변•186
런던 지하철역에서 소매치기에 가방 뺏겨•190
캐나다 토론토 술집 된통 바가지•193
유럽 여행 중 ‘망명’ 북한 선배 뜻밖의 사업 제의•198
모스크바행 직항 못 타 ‘빙빙’…지하철 평양과 너무 비슷해 놀라•201
북한 남한 호주 연애와 결혼 풍속도•205
한국 전국 일주…쏘나타 타고 순례•208
북한과 남한 냉면 재료부터 큰 차이•210
사교육…남, 북, 호주 부모 등골 부러져•212
한반도 공존번영 ‘금맥’…호주 기업도 ‘군침’
지구물리탐사 전공…호주서 컨설턴트에 도움 •216
한반도 공존번영 ‘금맥’ 북한 지하자원•220
호주 기업들, 북한자원개발에 군침•225
북한 여행…열차가 가장 중요한 수단•228
아들·딸과 함께 되돌아본 백설의 백두산•230
꿈속 고향 묘향산, 금강산, 주을온천•235
다롄에서 대북사업…고속열차 타고 중국 전역 여행•242
북한은 탯줄, 한국은 새 세계 디딤돌, 호주서 전문가로
흙 내음 그리운 북한 자강도…태를 묻은 땅•248
한국…세계로 향한 디딤돌•252
호주 밑바닥부터 시작 북한 투자전문가로•255
탈북 32년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북한 잊고 악착같이 돈 벌어라.”•257
참고자료•260
[본 문]
귀순대학생, 평양옥류관 서울분점 창업
외화벌이 골동품 중개…돈의 위력 절감
에디는 항구도시(남한으로 치면 부산이다.) 청진에서 대학을 다니기 시작했다. 청진은 인구와 도시 규모 면에서 북한에서 평양, 함흥 다음 가는 제3의 도시다. 그렇지만 북한 사람들은 대부분 평양에 이어 청진을 두 번째로 꼽는다. 중국과 러시아도 남포나 함흥이 아닌 청진에 영사관을 두고 있다.
외국 유학길이 좌절되자 청진에 더는 머물고 싶지 않았다. 주변의 도움을 받아 평양으로 갔다. 사람이 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이 나면 제주도로 보내야 한다는 속담이 있다. 평양은 서울과 달리 아무나 가서 살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월남한 외삼촌 가족 중에 고위공무원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뒤라 더 그랬다. 에디가 평양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려운 상황이었다.
북한 사회에서는 출신 성분에 따라 연좌제가 엄격하게 적용된다. 월남자 가족이라는 낙인이 찍히면 평양에 들어가기는 정말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 월남자 가족은 노동당원 가입 자격과 진급 등에서도 제약을 받는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속담이 있다. 연좌제가 엄격하지만 틈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평양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면 거주 이동의 제한에서 풀려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평양에 가기 위해 다니던 청진광산금속대학을 4학년에 중퇴했다. 예과 포함 6년제인 이 대학에서 5년을 다녔다. 졸업을 앞두고 있어 아쉬움이 컸다. 하지만 대학 편입학에 필요한 추천서를 받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 대학 중퇴 후 곧바로 함경북도 경성에 있는 농업과학원 원종장에 들어갔다. 여기서 2년간 경력을 쌓고 관련 기관들의 대학추천서를 받았다. 그렇게 해서 들어간 대학이 평양철도대학이다. 이 과정을 한두 문장으로 다 밝히기는 어렵다. 온갖 인맥과 수단을 다 동원했다. 주변에서 헌신적으로 도와주지 않았다면 평양 입성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
아직도 북한에서 온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들으면 “이북에서 정규 대학과정을 다니다 4학년에 중퇴해 평양의 다른 대학에 편입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 희귀한 일이야.”라며 놀란다. 북한의 리(이)과대학은 5년제(예과 포함하면 6년제)이고 인문사회대학은 4년제다.
그때 에디는 월남자 가족이라는 연좌제 굴레를 자식한테까지 물려줄 수 없다는 집념에 평양 소재 대학 편입학에 그렇게 매달렸다고 생각을 한다.
평양은 청진과 생활환경이 너무 많이 달랐다. 무엇보다 돈의 위력이 대단했다. 그래서 돈 버는 일에 매달렸다. 월남자 가족으로 전락, 더 이상 신분 상승을 꿈꾸기도 어려워진 상황이라 더 그랬다.
평양에서 사람은 돈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두 부류로 나뉜다. 평양에서 잘나가는 친구들과 어울리려면 돈이 필요했다. 평양에 있는 대학에 적을 두자, 돈을 벌 궁리부터 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밑천이 없으니 돈 벌이를 시작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다.
에디는 개인교습을 하던 중학교 학생의 어머니에게 간절히 부탁했다. “누님, 제가 골동품 장사를 해볼까 하는데 밑천이 필요합니다.”라며 사정을 털어 놓았다. “그래? 윤 선생은 학자 양반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재주도 있어요?”라며 놀라워했다. 에디는 그때를 놓치지 않았다. “누님, 제 친구들은 이미 장사를 잘하고 있어요. 밑천만 있으면 끼워 준다고 합니다.”라며 배포 있게 큰소리를 쳤다.
“그럼 한번 잘 해봐요. 이자는 필요 없고, 우리 아이 공부나 잘 가르쳐 주세요.”라며 미화로 거금 500달러를 빌려줬다. 당시 평양 요지 아파트 한 채 값이 1,000달러 정도 할 때였다.
이 돈으로 시작한 일이 골동품 중개장사다. 북한 당국이 허용한 거래가 아니라 불법 밀거래이다. 적발되면 처벌을 감수해야 해, 위험 부담은 항상 도사리고 있었다. 평양 고려호텔에 일본사업가(골동품상)들이 장기 체류하면서 북한의 골동품을 구입해 일본이나 한국으로 되팔았다. 가까운 지인이 만남을 주선해 줬다.
에디는 주말에 시간을 내 평양 인근 지방에 내려갔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접시, 요강, 꽃병, 오래된 그림(병풍)들을 싸게 구입해 평양으로 가져왔다. 처음에는 골동품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평양으로 가져온 골동품을 저녁 시간에 고려호텔 바에서 만난 일본인들과 비밀리에 거래하면서 지식과 경험을 많이 쌓았다. 지방에서 가져온 골동품들 중 80%는 가짜나 모조품이었다. 진품만 일본인들에게 판매하는데 1건당 보통 50~300달러 정도 받았다. 모조품인데 상당한 값을 받고 판 적도 있었다.
한번은 평성에서 청동 불상을 건네받았다. 이 불상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높이 20cm, 두께 3~4cm 되는 크기로 황청색 빛이 났다. 이 물건 주인은 1,000달러를 불렀다. 일본 구매자는 500달러 이상은 힘들다고 했다.
알고 보니 정교하게 만들어진 모조품이었다. 하지만 일본 구매자는 모조가품이라도 가치가 있다며 결국 500달러에 사갔다.
에디는 이런 식으로 거래를 하면서 돈을 벌었다. 이렇게 해서 약 3개월 만에 원금을 돌려줬다.
골동품을 2년 넘게 사고팔아 돈을 쏠쏠하게 벌었다. 이 돈은 평양의 고위간부 자녀들과 어울릴 때 든든한 자금줄이 됐고, 중국을 넘어 남한으로 오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첫 직장 도로공사…고려대 입학
한국에서 에디가 첫 번째로 들어간 직장은 한국도로공사였다. 총무부로 발령을 받았다. 직원들 해외출장과 연수 업무를 주로 담당했다.
에디는 한국도로공사가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도 모르고 들어갔다. 당국의 조사를 마치자, 담당 공무원이 도로공사에 취직을 알선해 주겠다고 했다. 이 제안을 받고 “아니 아무리 그래도 도로공사에 동원되란 말입니까?”라고 따져 묻기도 했다. 공무원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선생이 생각하는 그런 노동 현장이 아닙니다. 한번 가봅시다.”라며 에디를 다독였다. 속는 셈 치고 따라나섰다.
당시 남한 실정을 몰랐던 에디는 도로공사가 도로 현장 공사나 하는 회사로 생각했다. 공사직원은 공무원에 준해 신분의 안정성을 보장받고 도로공사가 한국 대학졸업생들이 취업하고 싶은 회사의 상위권에 속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기 때문이다.
담당 공무원을 따라 도로공사를 방문하니 예상 밖으로 큰 회사였다. 도로공사 본사는 성남시에 있었다. 고속도로를 관리하고 건설하는 민간으로 치면 대기업이었다. 에디는 직장 생활에 적응하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하지만 이북에서 내려온 사람이 낙하산으로 회사에 들어왔다고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에디는 의지할 데라고는 아무 데도 없었다. 서운하고 힘들었다.
무엇보다 도로공사 업무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한국의 고등교육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에디에겐 사실상 무리였다. 컴퓨터 사용방법, 서류 기안 작성 등 기초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다. 누구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았다. 스스로 연습해야 했다. 같은 과의 대리나 과장도 업무를 대충 설명해 줬다. 동료나 상사도 자신들의 업무가 바빠 신경을 써줄 여유가 없었다. 처장실에 기안 서류를 들고 보고를 하러 가서 꾸중을 듣기도 했다.
이래저래 회사에서 겉도는 신세로 전락했다. 어떤 직원은 “어떻게 이렇게 일 처리를 하느냐?” “한심하다.”라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했다.
비아냥거림보다 더 힘든 게 있었다. 돈을 모을 수 없다는 불안감이었다. 항상 가슴 한 곳을 짓눌렀다. 도로공사 초년병 직원은 100만 원 남짓한 월급을 받았다. 이 월급으로 언제 집을 사고, 결혼하며, 이북에 있는 가족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라고 고민했다. 계속 생각하면 무력감마저 들었다.
같은 회사의 또래 동료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을 집이 있다.” 혹은 “30년 정도 저축하면 집을 마련할 수 있다.”라고 동문서답을 했다. 에디와는 전혀 딴 세상 이야기였다. 에디에겐 서울에 부모 형제도 없고 의지할 데가 없었다. 믿을 건 자신밖에 없었다. 부모형제를 어떻게든 도와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에디를 항상 떠나지 않았다. 점점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결국 고민을 거듭하다가 퇴사를 결심했다. 대학교육을 새롭게 받고 또 개인 사업을 시작해 보란 듯이 큰돈을 벌고 싶었다.
에디는 고려대학교에 입학했다. 이어 출판사의 제의를 받아 『북한의 지리여행』이라는 책을 냈다. 출판사는 청진광산금속공업대학 지질공학부 지구물리탐사과를 다닌 에디의 학력에 주목했다.
에디는 북한의 자연, 지리, 풍습, 지질상태를 연구하기 위해 북한 전역을 수차례나 일주한 특별한 경력의 소유자다. 북한 주민들은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없다. 3백여 쪽 분량의 이 책 전반부는 북한의 고속도로와 일반 국도, 철도, 공항, 항만시설 및 그 이용실태, 강, 하천 및 호수, 광물자원 등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중반부는 광복거리 등 평양의 주요거리와 주택사정, 대학현황, 공장, 기업소, 발전소 등 산업시설을 자료사진과 함께 소개했다. 군인이었던 아버지의 임지를 따라 8차례나 자강도 강계, 평양시 용성구역, 남포시 와우도 구역, 황해북도 황주군, 사리원시, 강원도 철원군, 함경북도 경성·무산군 등으로 자주 이사를 다닌 게 이 책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북한의 지리여행은 발간되자마자 큰 주목을 받았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인기에 편승한 덕을 크게 봤다. 방송에도 고정 출연하게 됐다. 운이 참 좋았다. 남한 사회에서 북한에 대한 관심이 증폭하던 시기였던 것도 타이밍이 절묘했다.
KBS 보도국의 제안으로 당시 인기 프로그램인 ‘남북의 창’에 고정 리포터 겸 작가로 일하게 됐다. 남북의 창 프로그램 제작팀은 차장 1명, 아나운서 1명, 기자 1명, 에디 그리고 촬영팀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북한의 이모저모의 코너에서 에디는 초고를 작성했다. 팀 내부 토론을 거쳐 초고는 수정 보완됐다. 에디가 출연하는 녹화 방송 분량은 일주일에 1회, 3분 정도였다.
‘이모저모’의 아이템은 에디가 남과 북에서 살면서 경험한 소재들이었다. 그때그때 주제에 따라 현장을 옮겨 다니며 촬영했다. 남한의 시장과 북한의 장마당을 비교하면 남대문 시장이나 영등포 시장을 찾아 현장 촬영을 했다. 남한과 북한 대학을 비교할 때는 연세대나 이화여대를 가기도 했다.
에디는 이 프로그램을 약 6년간 진행했다. 방송 덕분에 꽤 알려졌다. KBS 9시 뉴스와 각종 북한 관련 뉴스에도 해설자로 가끔 등장했다. 또 KBS와 MBC, SBS 라디오 방송 등 여러 방송에 출연했다. 서서히 방송인이 돼 갔다.
가는 곳마다 에디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식당에 가면 환대와 더 좋은 서비스도 받았다. 주변 사람들은 총각으로 계속 있지 말고 여자를 사귀라며 소개를 해주겠다고 했다.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여성들도 있었다.
방송활동을 하면 얼굴이 알려진다. 적지 않은 이점도 있었다. 하지만 방송활동을 지속하기가 여러 가지 면에서 힘들었다.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모든 행동이 자유롭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말하고 행동해야 했다. 강박관념이 생겼다. 에디는 자유롭고 편안하게 자신의 방식대로 살고 싶어 북한을 떠났다. 방송활동이 또 하나의 구속이 될 수 있다고 여겨졌다. 또 무역과 컨설팅 사업을 점점 크게 벌이면서 더는 방송인으로 활동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결국 2000년부터 방송활동을 스스로 그만뒀다.
목숨을 걸고 탈북한 청년의 30년 동안을 동행 취재한 기록이며, 드라마틱한 그 여정을 간결하고 스피디한 문체와 다사다난한 질곡의 사건들을 흥미롭게 전개한 연합뉴스 김재홍 기자가 이 책을 썼다. 즉, 이 책의 주인공 에디를 지켜보며 응원해 온 기자의 동행 취재기이며, 모든 것을 걸고 두만강 여울을 건너온 대학생의 탈북 32년 다큐멘터리이다.
에디는 북한에서 태어나 중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왔다. 9년 가까이 서울에서 대학생, 방송인 그리고 사업가로 활동하다 호주로 이민을 떠나 회계사가 됐다. 탈북 귀순자 신분으로 서울에 온 지 얼마 안 된 1995년 3월 말, 에디는 고려대 캠퍼스에서 연합뉴스 기자인 필자를 만났다.
탈북 귀순자의 수는 당시 1년에 10명도 채 안 됐다. 탈북 귀순자들의 기자회견이나 대학 입학 소식은 당시 주요한 뉴스로 다뤄졌다. 에디의 고려대 입학도 충분히 화젯거리가 될 때였다. 필자의 동행 취재는 고려대 근처 안암동 골목 오소리 순대국밥집에서 시작되었다. 에디는 담당 정보과 형사가 몇 번 데리고 간 식당이라고 안내했다. 밥을 먹다가 『북한의 지리여행』(서울:문예산책, 1995)이라는 책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열풍이 불 때였다. 에디는 북한에서 청진광산금속종합대학 지구물리탐사학과를 다녔다. 지리탐사 실습을 위해 북한 곳곳을 다녀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위해 조선 전역을 답사한 북한판 조선시대 김정호를 닮았다. 연합뉴스가 『북한의 지리여행』 서평 기사를 내보내면서, 방송과 신문들이 잇따라 그 내용을 소개했다.
에디는 북한 관련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자가 되어, 『평양 가서 돈 버는 108가지 아이디어』 등 북한 관련 책들을 출간했다. 사업에도 손을 대어, 평양옥류관 서울분점을 강남에 열었다. 실향민 등 전국에서 온 손님들이 옥류관 냉면 맛을 보기 위해 문전성시를 이뤘다.
그러다가 영국으로 어학연수 겸 유학을 떠났고 아이들 장래를 위해 호주 이민을 결행한 건, 호주 시민권자인 아내의 영향이었다. 아내는 고등학교와 대학을 시드니에서 다녀 호주가 다른 나라보다 적응하기가 나을 것으로 판단했다. 영국 유학과 호주 이민 등을 합치면 해외에서 생활한 기간이 20년이 훌쩍 넘는다.
호주에서 처음 생활은 전혀 녹록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했다. 골프장 청소원, 우버 기사, 카센터 세일즈맨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당장의 생활안정도 중요하지만 늙어서 자식들에게도 존경받으려면, 에디는 전문직 자격증을 따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려대에서 경영학과를 졸업한 경력을 살려 호주에서 경영대학원(MBA)에 진학, 회계사(IPA) 자격을 취득했다.
덕분에 회계사와 대북투자전문가로서 성공 궤도에 올라서게 됐다. 호사다마라고 할까,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는데, 선천성 신장기형이 에디 몸에서 발견됐다. 신장을 이식하지 않으면 몇 년밖에 살 수 없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절망 끝에 기적이 찾아왔다. 에디 몸에 아내의 신장을 이식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판정이 나왔다. 스스럼없이 신장 하나를 내어준 아내 덕분에 새 생명을 얻었다. 두만강을 넘어 중국에서 인천항을 통해 한국으로 귀순, 자유의 새 삶을 얻었는데 또 한 번 생명을 얻었다.
호주 병원에서 수술 진행 과정이 너무 늘어진 탓에, 한국의 병원에서 수술할 방법을 찾았지만, 코로나19로 비행기 탑승 등이 쉽지 않았다. 결국, 호주에서 수술을 받았다.
시한부 삶에서 벗어나자, 탈북 32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기록으로 남겨두지 않으면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삶이 될 것 같았다. 에디는 북한, 한국, 영국, 호주 등 체제와 환경이 전혀 다른 곳에서 살았다. 환경과 언어, 체제가 다른 곳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 등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한국과 호주 등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누구보다 잘 적응할 수 있던 원천이 무엇이었을까?”라는 물음에 답하고 싶었다. 에디는 우리 민족의 핏속에 흐르는 개성상인의 DNA가 자신의 심장을 두드려 깨웠다고 필자에게 힘주어 말했다.
이 책의 주인공 에디는 북한을 벗어났다. 한국에 들어와 새로운 터전을 일궜다. 그마저도 오래 있지 않고 호주로 날아갔다. 에디는 북한 공민증과 대한민국 주민등록증, 호주 시민권 증서 등 3개 신분증을 갖게 됐다. 필자는 이 여정에서 겪은 에디의 긴박하고 절절한 순간들을 박진감 넘치게 책에 담았다.
필자와 에디의 이러한 정서적 소통은 어린 시절 지리산 자락에 살면서 천왕봉 등 산만 바라보고 자랐던 필자와, 북녘 산맥 속에서 자란 에디가 처음부터 친숙하게 느껴진 듯하다. 우리는 에디를 통해 북한의 삶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볼 커다란 기회를 얻을 것이다. 이 책을 집필한 연합뉴스의 대기자 김재홍은 사실에 기반하여 사건들을 스피디하고 흥미롭게 전개했다. 미지의 독자들에게 북한을 바짝 들여다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등록된 리뷰가 없습니다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 반품/교환방법 |
|
|---|---|
| 반품/교환 가능기간 |
|
| 반품/교환비용 |
|
| 반품/교환 불가 사유 |
|
| 상품 품절 |
|
| 소비자 피해보상 환불지연에 따른 배상 |
|

- [이벤트 당첨자 발표] 서울국제정원박람회, 김진명 작가 북토크 당첨자 안내
- [이벤트 당첨자 발표] 9월 모두의 서가 이벤트 당첨자 안내
- [공지사항] 스타필드마켓 월계 문구복합매장 그랜드 오픈 🎊 이벤트 안내!
- [공지사항] 2026년 9월 1일 개인정보 처리방침 개정 안내(3.개인정보 처리, 항목, 보유기간)
- [이벤트 당첨자 발표] 26년 8월 <이달의 작가> 댓글 이벤트 당첨자 안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