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키 산주고, 야마모토 슈고로, 에도가와 란포…….
이름은 많이 들어본 듯한데 정작 작품은 한 편도 읽어보지 못했다?
작품이 아니라 문학상으로 우리에게 이름이 알려진 작가 가운데는 이런 사람들이 많다. 특히 일본에 그런 작가들이 많은데, 이번에 그런 작가들의 대표작을 한 권으로 엮었다.
이 책은 그들이 명성을 얻게 된 이유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목차
옮긴이의 말
밀회(하야시 후미코)
지옥변(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만우절(오다 사쿠노스케)
로봇과 침대의 중량(나오키 산주고)
비 그치다(야마모토 슈고로)
이백십일(나쓰메 소세키)
외과실(이즈미 교카)
달려라 메로스(다자이 오사무)
그림과 여행하는 남자(에도가와 란포)
삼인법사(다니자키 준이치로)
저자 소개
저자 : 나쓰메소세키,다니자키준이치로외
하야시 후미코 일본 쇼와 시대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 1922년 고등학교 졸업 후 약혼자를 따라 상경했으나 이듬해 파혼당하고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이 일기를 바탕으로 1928년 잡지 <여인예술>에 자전적 소설 《방랑기》를 연재했고, 1930년 단행본 출간 이후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서민의 애환을 다룬 작품을 많이 썼으며 《아내》, 《만국》, 《부운》 등이 영화로 제작되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도쿄에서 우유 판매업을 하던 아버지 니하라 토시조와 어머니 후쿠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의 정신이상 등의 이유로 외가 아쿠타가와 가문의 양자로 들어가 전통예술에 조예가 깊던 이모 후키의 손에 자랐다. 도쿄제국대학 영문과 재학 시절 [라쇼몽], [코]를 발표해 나쓰메 소세키로부터 격찬을 받고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는다. 책에서 인생을 배운 그는 철학, 종교, 문학 서적을 두루 섭렵해 세상의 이치에 다가가고자 했으며, 이런 ‘잡박 한’ 소양이 풍성한 소재와 비범한 어휘로 특유의 이지적인 단편소설, 평론, 수필 등을 남기게 한 밑거름이 됐다. 이 책에 실린 [문예적인, 너무나 문예적인]은 줄거리와 구성의 재미를 강조한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평론 [요설록]과 논쟁적 위치에서 시적 정신이 발화한 예술로서 소설이 지닌 아름다움과 가치를 주장했다. 두 작가의 격렬한 논쟁은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모두가 깊이 고찰할 기회를 제공한 일본 근대문학사의 주요 사건이었다. 건강 악화와 친족 문제, 광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등으로 신경쇠약과 불면증에 시달리던 아쿠타가와는 서른다섯 살, 머리맡에 여러 편의 유고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전하는 유서를 남긴 채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하고 자살했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 속에 그 불안을 해부하기 위해 써내려간 유작 [톱니바퀴], [어느 바보의 일생] 등은 "있는 것은 오직 신경뿐"이라고 고백했던 그가 예리한 신경이라는 물감으로 그려낸 예술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아쿠타가와의 오랜 벗인 기쿠치 칸은 자신이 설립한 [문예춘추]에 그의 예술 정신을 기려 ‘아쿠타가와상’을 제정했으며 이 상은 오늘날까지 일본에서 가장 유력한 신예작가의 등용문이다.
오다 사쿠노스케 일본의 소설가. 출세작이 된 《속취》, 《부부단팥죽》을 비롯해 《경마》, 《세상》 등 주로 단편 소설을 남겼다. 대표작으로는 《부부단팥죽》, 《토요부인》 등이 있다.
야마모토 슈고로 야마나시 현 출생으로 본명은 시미즈 사토무. 세이소쿠 영어학교 졸업. 전당포의 종업원으로 일하다 신문, 잡지의 기자를 거쳐 소설가가 되었다. 『문예춘추』(1926년 4월호)의 현상에 투고한 「스마데라 부근」으로 문단에 나왔다. 처음에는 극작이나 동화의 집필을 주로 했으나 이후 대중오락잡지를 작품 활동의 주 무대로 삼았다. 이에 초기, 중견 시대에는 순문학자나 비평가들로부터 거의 묵살 당했다. 그러나 야마모토는 “문학에는 ‘순’도 없고 ‘불순’도 없으며, ‘대중’도 ‘소수’도 없다. 단지 ‘좋은 소설’과 ‘나쁜 소설’이 있을 뿐이다.”라는 신념하에 보편타당성을 가진 인간상의 조형을 평생의 목적으로 삼았다. 야마모토는 언제나 볕이 들지 않는 서민 편에 서서 기성의 권위에 용감히 저항하는 태도를 유지했다. 1943년에 아쿠타가와상을 사퇴한 것을 시작으로 수상을 요청받은 문학상 전부를 일축한 이유는 ‘문학은 상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작가의 윤리에서 나온 것이었다. 일본의 패전 이후 마침내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여 수많은 걸작을 세상에 내놓았으며, 사후 “귀여운 여인을 묘사한 체호프를 능가한다.”, “100년 후, 일본의 대표적 단편작가로 남을 것이다.”라는 등의 높은 평가를 얻었다.
나쓰메 소세키 1867년 명문가에서 5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두 번이나 다른 집에 양자 로 가는 등 불행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릴 때부터 학업 성적이 뛰어났던 소세키는 1890년 도쿄제국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하였고, 졸업 후에는 잠시 도쿄 고등사범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근무했다. 1900년에는 일본 문부성에서 선발한 유학생으로 영국에서 영문학을 공부했으며, 유학을 마친 뒤에는 도쿄제국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강의하며 소설을 집필했다. 대표작으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도련님], [마음], [풀베개] 등이 있다. 1913년 신경 쇠약이 심해진 소세키는 위궤양이 재발했고, 1914년 한 달 동안 병상에서 지내야 했다. 아픈 중에도 작품 활동을 계속하던 그는 1916년 [명암]을 연재하던 중에 위궤양 악화로 사망했다.
이즈미 교카 가나자와 시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이즈미 교타로(泉鏡太郞)이다. 예술가이자 장인 가문에서 태어나 부모로부터 신앙심과 예술적인 자질을 물려받았다. 메이지 시대 후기부터 다이쇼 시대를 거쳐 쇼와 시대 말기까지 활동했으며 장·단편소설과 수필, 가부키 등 3백여 편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1895년 [외과실(外科室)]과 [야행순사(夜行巡査)]를 발표하면서 문단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고야성(高野聖)] [유지마 참배] 등의 작품을 내놓았다. 여성을 찬미하거나 낭만적이고 신비로운 독특한 세계를 창조하여 등장인물로 하여금 작가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도덕적 가치를 대표하게 했다.
다자이 오사무 20세기 일본 데까당스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본명은 쯔시마 슈우지(津島修治)로, 1909년 아오모리 현 키따쯔가루의 대지주 집안의 11남매 중 여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고리대금업으로 부를 축적한 집안이라는 출신 배경을 혐오해 프롤레타리아 문학 동인지 『세포문예』를 창간하고, 좌익운동에 가담한다. 1930년 토오꾜오 제국대학 불문과에 입학해, 5월 이부세 마스지를 처음 만나 그를 사사한다. 1933년 1월 이부세를 만나 자신의 필명과 첫 소설집 의 제목을 정하게 된다. 그해 본격적으로 창작활동을 시작해 1935년에는 「역행」으로 아꾸따가와상 후보에 오른다. 1936년 소설집 『만년』을 출간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게 된다. 1939년 결혼 전까지 네차례나 자살을 기도했으나, 이부세의 중매로 이시하라 미찌꼬와 결혼해 생활이 안정되자 창작활동에 몰두해 새로운 경향의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1940년 『여학생』으로 기따무라 토오꼬꾸 상을 받았고, 1947년에 발표한 『사양』은 ‘사양족’이라는 유행어를 낳는 등 전후 최초의 베스트셀러가 되어 다자이를 인기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1948년 5월 『세까이』에 「앵두」 발표, 「인간 실격」 탈고 후 6월 14일 새벽 연인과 함께 타마가와조오스이에 투신했다. 6월 19일 그의 서른아홉번째 생일에 사체가 발견되었다.
에도가와 란포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로 불리는 일본 미스터리 추리소설계의 거장. 본명은 히라이 타로(平井太郞)이지만 에드가 앨런 포의 이름에서 따온 필명을 평생 사용하였다.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후 다양한 직업을 경험했다. 서점 경영과 잡지 출간에 실패한 뒤 1923년 ‘신세이넨’에 〈2전짜리 동전〉을 발표하며 추리작가로 데뷔했다. 눈부신 걸작 단편들을 다수 발표하여 일본 추리소설계의 유명 작가가 되었지만, 한때 붓을 꺾고 방랑하기도 하고 반전 혐의로 검열에 걸려 전면삭제를 당하기도 했다. 전후에는 일본탐정작가클럽을 창설하고 잡지를 발간하며 강연과 좌담회를 개최하는 등 추리소설의 발전과 보급에 큰 공헌을 했다. 1955년 그의 환갑을 맞아 탄생한 에도가와 란포상은 지금까지도 일본의 추리소설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이며, 추리작가의 등용문이 되고 있다.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은 고단샤가 출판하고 있으며, 38회부터는 후지TV가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하고 있다. 작품으로 <심리시험> <빨간 방> <황금가면> 등이 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Tanizaki Junichiro) 1886년 7월 24일, 도쿄 니혼바시(日本橋)에서 5남 3녀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으나 1897년 중학교에 진학할 무렵, 외조부의 사업을 이어받은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가세가 기울었으나 큰아버지의 도움으로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중학교에 다니던 중 '학생구락부(学生倶楽部)'라는 문학잡지를 자체 발간하면 서 문학에 대한 관심을 본격적으로 나타내기 시작했다.
1908년 도쿄제국대학(현재의 도쿄대학) 국문 과에 입학했으나 학비미납으로 퇴학당한다. 이 후 1910년 제2차 '신사조(新思潮)'에 소설 [문신(刺青)], [기린(麒麟)]과 희곡 [탄생(誕生)]을 발표하게 된다. 1911년[소년(少年)] 등의 작품이 발표된 이후 소설가 나가이 가후(永井荷風)에게 격찬을 받으며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 후에 탐미주의적인 작품을 써 나가면서 '악마주의 작가'로 불리며 문단에서 주목받기 시작한다. 1915년, 29세였던 다니자키는 9살 아래의 이시카와 치요(石川千代)와 혼인하게 된다.
결혼 후 아내 치요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치요의 여동생이었던 세이코에게 빠져들게 된다. 이때 다니자키의 친구였던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사토 하루오(佐藤春夫)가 치요에게 동정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것이 곧 사랑으로 발전하면서 삼각관계에 이른다. 이후 다니자키는 친구인 사토에게 자신의 아내를 양도해버려 일본 문 단 내의 가장 큰 스캔들을 일으키게 된다.
1923년 관동 대지진을 겪고 관서지방으로 이주한 직후 다니자키 초기 문학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치인의 사랑(痴人の愛)]을 1924년부터 연재하게 된다. 다니자키의 작품 세계는 [치인의 사랑(痴人の愛)]을 경계로 해서 서양의 미를 동경하던 것에서 점차 일본적인 소재와 전통미를 추구하는 것으로 바뀌어 가는데 1928년 연재하기 시작한 [만지(卍)]와[여뀌 먹는 벌레(蓼喰ふ虫)]가 그것이다.
나중에 다니자키는 일본 전통 문화에 깊이 심취하게 되는데, [겐지 이야기(源氏物語)]의 현대어역(譯) 작업을 시작한 것도 이 시기(1935년)의 일이다.
1936년 잡지 [개조(改造)] 1월호와 7월호에 소설 [고양이와 쇼조와 두 여자], 1942년 [세설(細雪)], 1951년 [다니자키 신역 겐지 이야기(潤一郎新訳源氏物語)], 1962년 [미친 노인의 일기(瘋癲老人日記)] 등의 작품을 연이어 발표하며 식지 않는 왕성한 창작열을 과시했다. 1958년, 1960년에 두 번이나 노벨상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까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