퓰리처상 수상작가 윌리엄 스타이런의 대표작『소피의 선택』제1권. 전쟁의 폭력과 상처, 인간의 광기와 사랑을 그려낸 작품이다. 1979년 출간 이후 지금까지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20세기 주요 미국 문학 작품으로 꼽힌다. 1980년에는 내셔널 북어워드를 수상하였으며, 1982년에는 메릴 스트립 주연의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1950년대 뉴욕, 작가 지망생 스팅고는 새로 이사한 아파트에서 아우슈비츠 생존자인 미모의 폴란드 여인 소피와 그녀의 연인 네이선을 만난다. 스팅고는 소피에게 첫눈에 반하고, 동시에 지적이고 사려 깊은 네이선에게 끌린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게 붙잡혀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내진 소피는 그곳에서 인종 대학살을 직접 목격하고, 자신 또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살아남아 미국으로 건너온다.
절망감에 빠져 있던 소피는 미국에서 유대인인 네이선을 만나게 된다. 매력적인 지식인 네이선은 소피를 보살피고 죽음에서 건져 내지만, 그 역시 유대인이라는 굴레를 극복하지 못하고 종종 발작을 일으키는 정신병을 갖고 있었다. 결국 점점 심해지는 네이선의 광기와 함께 그들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데….
전쟁과 학살의 비극을 체험한 폴란드인 소피, 유대인이라는 숙명에서 자유롭지 못한 네이선, 노예를 소유했던 집안에서 자란 남부인 스팅고. 작가는 세 사람을 통해 인류가 직면해야 했던 역사적 상흔과 비극을 감동적으로 그려내었다. 여기에는 10여 년 동안 이 작품의 창작에 매달리며 제2차 세계대전과 나치의 인종 대학살, 미국의 노예 제도와 흑인 반란, 인종 차별 등을 치열하게 연구해온 작가의 노력이 담겨 있다.
목차
[목 차]
소피의 선택
[본 문]
파렐은 일어서서 눈을 훔치며 창가로 가 서더니 노을에 붉게 물든 허드슨 강을 내려다보았는데, 그 강 위에서는 거대한 배 두 척의 희미한 윤곽이 천천히 바다 쪽으로, 해협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봄바람이 맥그로힐 건물의 무심한 녹색 차양 주위를 오가며 악마 같은 소리로 휘파람을 불었다. 파렐리 입을 열었을 때, 그의 목소리는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았고, 말이 아니라 절망의 숨을 내뱉는 것 같았다.
인간이 존중하는 모든 것은
한순간이나 하루를 견뎌 낸다…….
전령의 외침과 군인의 발걸음이
그의 영광과 힘을 소진시킨다.
밤을 밝히는 불빛은 모두
인간의 붉은 심장이 불을 밝힌 것이다.
그러더니 그는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 자네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글에 담아 봐.' 그러고는 비틀거리며 복도를 걸어가, 내 삶에서 영원히 퇴장해 버렸다. -50~51쪽
그러나 나는 버려진 독자였고, 게다가 이상스럽게도 온갖 분야의 책을 다 좋아했으며, 문자화된 단어, 거의 모든 단어에 대단한 친밀감을 느껴서, 책을 읽으면 거의 성애에 가까운 흥분을 느꼈다. 이건 조금도 과장하는 것 없이 말 그대로인데, 젊은 시절에 나처럼 이런 특이한 흥분을 느꼈다고 고백한 몇몇 사람들의 글을 읽지 못했다면, 삼십 분 정도 업종별 전화번호부를 뒤적이며 놀 수 있다는 기대만으로도 약간이지만 분명희 눈에 띌 만큼 내 성기가 발기되었던 적도 있다는 말을 함으로써 경멸이나 의심을 자초하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27~28쪽
그때는 깨닫지 못했지만, 나를 매혹시키고 유쾌하게 했던 프로이트식의 대화가 소피에게는 지극히 불쾌하게 느껴져서 네이선과 함께 먼저 자리를 떴던 것이다. "그 이상하고 섬뜩한 사람들은 자기의 작은 상처 딱지들을 뜯어 내고 있어요." 네이선이 곁에 없을 때 그녀가 내게 말했다. "난 그런 식의 노력 없이 얻은 불행-보석 같은 표현이었다-을 증오해요."-237쪽
그리고 그 밖에도 다른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죄책감이 중요한 원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그 단어를 자주 썼고,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할 때에는 끔찍한 죄책감이 마음을 억눌렀던 게 분명하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는 그때의 일에 대해서 자기 혐오감을 느끼고 있었고, 이는 그녀와 같은 시련을 겪은 사람들에게는 보기 드문 현상이 아니었다. 시몬 베유(프랑스의 여성 철학자-옮긴이)는 이런 종류의 고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신체적, 정신적 고통은 경멸감, 타인과 심지어 자기에 대한 혐오감, 그리고 죄책감을 인간의 영혼에 깊숙이 각인시킨다. 논리적으로 볼 때는 범죄가 그러해야겠지만 실제로는 고통이 그러하다."-264쪽
다시 한번 시몬 베유의 말을 빌리자면 이 "가상의 악은 비현실적이고 다양하지만, 실제의 악은 음울하고 단조롭고 황량하고 지루하다."-268쪽
출판사 서평
* 퓰리처상 수상 작가 윌리엄 스타이런의 대표작!
끔찍한 전쟁의 폭력과 상처,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인간의 광기와 사랑 인류의 죄악과 아픔 그리고 희망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려 낸 20세기 고전
퓰리처상 수상 작가 윌리엄 스타이런의 대표작 『소피의 선택』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197, 198)으로 출간되었다. 1979년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고, 20세기 주요 미국 문학 작품으로 손꼽히는 등 독자와 평단의 사랑을 꾸준히 받아 온 이 작품으로 스타이런은 1980년 내셔널 북 어워드를 수상했다. 또한 1982년 여배우 메릴 스트립 주연의 동명 영화로도 제작되었으며, 주인공 소피로 열연한 메릴 스트립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세 번째 장편 소설 『냇 터너의 고백』(1967) 이후 스타이런은 십여 년 동안 『소피의 선택』 창작에 매달리며 제2차 세계 대전과 나치의 인종 대학살, 미국의 노예 제도와 흑인 반란, 인종 차별 등에 대해 역사학자에 가까울 정도로 치열하게 연구했다. 전쟁과 학살의 비극을 체험한 폴란드인 소피와 유대인이라는 숙명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네이선, 그리고 노예를 소유했던 집안에서 자란 남부인 스팅고. 스타이런은 인류가 직면해야 했던 역사적 상흔과 비극을 이들 세 사람을 삶을 통해 감동적으로 그려 냈다.
세계 대전과 인종 대학살, 노예 제도와 인종 차별 인류가 저지른 비극의 상처를 낱낱이 파헤치고 보듬는 만년의 스타이런
1950년대 뉴욕 브루클린, 남부에서 막 올라온 작가 지망생 스팅고는 새로 이사한 아파트에서 특이한 이웃을 만난다. 아우슈비츠 생존자인 미모의 폴란드 여인 소피와 그녀의 연인 네이선. 스팅고는 소피에게 첫눈에 반하고, 동시에 지적이고 사려 깊은 네이선에게 끌린다. 과거 소피의 아버지는 반유대주의자였지만 그런 정치적 견해와 상관없이 소피의 남편과 함께 나치의 학살 정책에 희생당하고 소피 또한 아우슈비츠로 보내졌다. 수용소로 들어가는 긴 행렬에 어린 아들, 딸과 함께 서 있던 소피는 한 독일 장교의 눈에 띄고 만다. 그는 두 아이 중에서 가스실로 보낼 아이를 선택하라고 협박하고, 소피는 병약한 딸을 선택하지만 엄마 품에서 떨어져 나간 딸아이의 본능적인 절규 앞에서 오열한다. 어린이 수용소로 보내진 아들이나마 살리고자 독일 장교 헤스를 유혹하려고 하지만 아들의 생사 역시 확인하지 못한 채 전쟁이 끝나고, 소피는 절망감으로 난민 수용소에서 자살을 기도한다. 그러다 미국까지 흘러든 소피는 유대인인 네이선을 만난다. 지적이고 매력적인 지식인 네이선은 소피를 보살피고 죽음에서 건져 내지만, 유대인이라는 굴레 속에서 종종 발작을 일으키는 정신병자이기도 했다. 점점 심해져 가는 네이선의 광기와 함께 그들의 관계는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흑인 노예 반란의 지도자였던 냇 터너의 일생을 다룬 소설 『냇 터너의 고백』(1967) 이후 스타이런은 십여 년 동안 『소피의 선택』 창작에 몰두하며 2차 세계 대전과 나치의 인종 대학살, 미국의 노예 제도와 흑인 반란, 인종 차별 등 인류가 저지른 비극들을 역사학자에 가까울 정도로 치열하게 연구했고, 이러한 그의 노력은 그의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여러 작가와 사상가들의 의견과 저서 발췌문, 역사적 사실에 관한 기록과 그의 일기문을 읽다 보면, 압도적인 주제를 울림이 있는 이야기로 형상화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작가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하지만 “그 일을 온몸으로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이 그 고통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줄” 수 있는가 하는 의문과, 홀로코스트와 같은 비극적인 사건을 마치 유행처럼 소설에 자유롭게 이용하면서 중요한 본질을 빼 버리거나 왜곡하면서 그것을 값싼 주제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에 대해 스타이런은 『소피의 선택』의 화자 스팅고를 통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그러나 나는 침묵이 최선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쓸데없는 문학적, 사회학적 논쟁에는 덤비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스타이너의 말은 받아들일 수가 없다. 또한 “어떤 현실에 있어서는 문학은 별 의미가 없거나 관련이 없다.”는 생각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여기서 문학의 신성함 같은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특히 스타이너 자신이 침묵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중략) 나는 모순덩어리 같은 소피를 이해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아우슈비츠를 이해하려고 시도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 왔다. (1권, 390쪽)
이와 같은 생각을 바탕으로 스타이런은 비록 유대인은 아니지만 아우슈비츠의 참상을 직접 체험한 폴란드인 소피와 유대인이라는 피해의식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네이선, 그리고 노예를 소유했던 집안에서 자란 남부인 스팅고, 이들 세 사람의 삶을 통해 인류가 직면해야 했던 역사적 상흔과 비극을 상세하게 그리면서 불가해한 역사를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또한 그는 다루는 주제만큼이나 방대한 양의 이야기를 하면서 전쟁의 피해자들에 대한 섣부른 이해나 가치 판단을 시도하지 않는다.
구타당하고 배신당하고 학살당하고 순교당한 이 시대의 희생양들. 나는 600만 명의 유대인이나 200만 명의 폴란드인들, 혹은 100만 명의 세르비아인들, 500만 명의 러시아인들을 위해 울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내게 의미 있는 존재로 다가선 사람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렸고, 아무도 없는 해변에서 내 흐느낌은 어느새 절규로 바뀌어 있었다. (2권, 478쪽)
참혹한 전쟁과 평온한 일상이 동시에 존재하며, 피해자와 가해자가 서로 다른 사람이 아닌 역사의 아이러니
이 작품의 화자인 스팅고는 소피로부터 듣게 된 그녀의 과거 이야기를 바탕으로 소설을 쓰고자 한다. 스타이런의 분신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여러 면에서 작가 스타이런을 빼닮은 스팅고는 소피가 겪은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되돌아보면서 깊은 고뇌에 빠진다.
1947년 말의 어느 날, 나는 소피가 생지옥의 문 안으로 걸어 들어갔던 바로 그날 나는 어디 있었는지 무엇을 했는지 알아내기 위해 기억을 뒤져 보았다. 1943년 4월 1일 만우절은 내게도 무언가 중요한 일이 일어난 날인 것 같아 아버지가 보낸 편지들을 뒤져 본 나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소피가 아우슈비츠 역 플랫폼에 첫발을 내디뎠던 그날 오후, 노스캐롤라이나 주 롤리는 화창한 봄날 아침이었고, 나는 거기서 미친 듯이 바나나를 먹고 있었던 것이다. (1권, 387쪽)
스팅고는 미국의 문학비평가 조지 스타이너의 말을 인용하여 “그곳에 있지 않았던, 그리고 마치 다른 행성에 살았던 것 같은 우리에게는 동시적이기는 하나 효과적으로 비교하거나 의사소통할 수 없는 다른 종류의 시간이 존재한다는 개념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라고 하면서 역사의 아이러니 앞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시간 관계처럼 이 작품의 세 주인공들은 모두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작품의 여주인공 소피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고국 폴란드에서 나치에게 붙잡혀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내져 나치의 인종 대학살을 직접 목격하고, 자신 또한 언제 죽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미국으로 건너온 인물이다. 아우슈비츠에 도착하자마자 병약한 딸을 가스실로 보내는 선택을 해야만 했고, 아들의 생사마저 확인하지 못한 채 유대인을 비롯한 포로들을 태운 연기가 솟아오르는 가스실을 보며 하루하루를 연명해야 했다. 죽음으로 인한 극심한 공포, 강제 노동과 굶주림의 고통으로 인해 산송장처럼 살았던 그녀는 나치의 반인류적인 범죄의 희생양이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나치에 협조하기도 했다. 그녀는 “희생자인 동시에 대량 학살의 공범자이자 종범이었고 (중략) 그것이 바로 그녀를 그렇게도 괴롭히던 죄책감의 중요한 원인들 중 하나였다.” 그리고 소피의 연인 네이선은 유대인이라는 숙명을 지닌 채 태어나 그 굴레를 극복하지 못하고 미쳐 버린 비극적인 인물이지만, 바로 그 점으로 인해 아우슈비츠의 희생자이지만 유대인은 아닌 소피를 잔혹하게 괴롭히는 가해자가 되기도 했다. 한편 스팅고는 주목받지 못했던 역사 속 인물인 흑인 반란의 지도자 냇 터너의 일생을 그린 소설을 쓸 만큼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증조할아버지가 소유했던 노예 소년 아리스테를 팔아 번 돈 485달러로 생활을 이어 간다. 이처럼 『소피의 선택』은 거대한 역사 속에서 고통받는 피해자로서의 개인의 모습과, 동시에 악을 재생산하고 타인에게 위해를 끼치는 가해자로서의 개인의 모습을 보여 주며, 피해자와 가해자가 서로 다른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이 두 가지 면을 다 지닐 수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