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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 김종해 저
    • 문학세계사
    • 2023년 03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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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품 규격 정보
    상품상세정보
    ISBN ISBN-13 : 9791193001004
    쪽수148쪽
    크기B6(127mm X 188mm, 사륙판)
    제품구성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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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소개

    삶과 존재에 대한 경험적 통찰과 함께 따스하고 서정적인 시편을 발표해왔던 한국 시단의 원로 김종해 시인의 시집. 2023년 올해로 시력 60년이 된 김종해 시인의 새 시집을 펼치면 60년이라는 시력을 관통하는 내공과 무게가 느껴진다.

    삶에 대한 경험적 통찰과 따스하고 아름다운 서정으로 가득한 김종해 시인의 시는 정갈하고 함축된 언어로 삶과 자연의 섭리를 들려주고 있다. 김종해 시인의 이번 시집은 아름다운 서정시를 읽는 즐거움을 깨닫게 해줄 뿐만 아니라, 청정한 이미지와 짧고 긴장된 함축미의 진수를 보여준다.

    김종해 시인은 ‘사람의 온기가 담겨 있는 따뜻한 시, 영혼의 갈증을 축여주는 생수 같은 시, 눈물이나 이슬이 묻어 있는 듯한 물기 있는 서정시, 너무 압축되고 함축되다가 옆구리가 터진 시, 삶의 일상에서는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있다가 세상사의 중심을 시로써만 짚어내는 시인의 시, 울림이 있는 시, 향기가 있는 시’를 쓰고 싶다고 꾸준히 자신의 시론을 밝힌 바 있다.

    목차

    1. 풀잎끼리도 사랑하니까 흔들린다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 14
    절망도 약이 된다 · 15
    사람으로 살아보니까 · 16
    풀잎끼리도 사랑하니까 흔들린다 · 17
    풀 앞에 서서 · 18
    서울이 캄캄하다 · 19
    오늘은 비 · 20
    만찬 · 21
    비에 젖은 새 · 22
    스마트폰에 노을을 담았다 · 23
    은행나무 아래 주차장 · 24
    신안 앞바다 · 25
    눈물을 흘렸다 · 26
    능소화, 이름을 묻다 · 28
    달력을 뜯어내며 · 30
    시간 속에서 사람이 걸어간다 · 31
    은행잎은 떨어져서도 길을 밝힌다 · 32
    은행잎이 흩날리는 시각 · 33

    2. 낙원樂園을 찾아서

    길 위에서 · 36
    낙원樂園을 찾아서 · 37
    선종善終을 지켜보다 · 38
    아내와의 약속 · 39
    수목장樹木葬 · 40
    봄이여 무심하구나 · 41
    알람을 껐다 · 42
    허공 속에서 · 44
    자전거를 타고 간 사내 · 45
    까마귀와 함께 · 46
    외출 · 48
    따뜻한 지폐 · 50
    된장 시래기국 · 51
    한 마리의 새, 이민을 가다 · 52
    청와대가 달라졌다 · 54
    감사 기도 · 56
    따뜻한 서재 · 58

    3. 서귀포를 가다

    서귀포를 가다 · 62
    Happy birthday · 63
    섬에서 최하림 시인을 만났다 · 64
    안부 전화 · 66
    가까운 곳에 새 여행지가 있었네 · 67
    블라디보스톡으로 가다 · 69
    덩굴장미꽃은 아름답다 · 71
    5월 엽서 · 72
    아가에게 · 73
    할아버지는 행복하다 · 74
    그대 아름다운 신라의 여인이여 · 75
    살아있는 날의 사랑 · 77
    동백꽃을 보며 · 78
    벚꽃세상 · 79
    어머니, 저는 면목이 없습니다 · 80
    봄날, 나의 무덤 찾아가기 · 81

    4. 그 강 건너지 마오

    무인도에 내리는 눈 · 84
    기상도 · 85
    지하철을 타고 가며 · 86
    노인의 시간 · 88
    그 강 건너지 마오 · 89
    서울 입성入城 · 91
    못 찾겠다, 꾀꼬리 · 92
    엄마라는 말, 특히 · 93
    초장동에서 감내골까지 · 94
    나이 팔십 산수傘壽가 되니 · 96
    인왕산을 바라보며 · 97
    가을은 길 밖에서도 길 안에서도 · 98
    나무연필로 시를 쓰다 · 99
    시詩를 버리다 · 101
    황무지 · 103

    5. 봄날을 그리며

    하얀 마스크 · 106
    하늘이여 · 107
    봄이 왔건만 봄 같지 않구나 · 108
    봄날을 그리며 · 110
    유채꽃밭을 갈아엎다 · 112
    아픔에 대하여 · 114
    화장火葬 · 115
    봄을 기다리며 · 116
    봄날 저녁 · 118
    저 혼자 핀 목련꽃 · 119
    꽃잎 떨어지다 · 120
    강변 산책 · 121
    복분자 술을 빚다 · 122

    ┃해설┃방민호(문학평론가·서울대학교 국문과 교수)
    ‘벼랑’을 짊어진 시인이 걸어온 길
    ─김종해 시인의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에 대하여 · 123

    추천사

    “김종해의 시집은 한 마디로 시를 읽는 즐거움을 만끽시켜 준다. 사람들은 왜 시를 읽을까. 나는 종종 이 문제를 생각해 보지만, 적어도 나의 경우 아무리 그 내용이 훌륭한 것이라 하더라도 시를 읽는 즐거움을 주지 못하는 시라면 읽지 않는다. 어떤 시가 어떻게 즐거움을 주는가를 따지기란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은 산문이나 그 밖의 사회과학이 주는 즐거움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이다. 김종해의 시집에 실린 시들은 전체적으로 아름답다. 아름다울 뿐 아니라 넉넉하고 따뜻하다.”


    신경림(시인, 예술원 회원)


    “시의 산문화가 두드러지고 절제 없는 의식의 넘나듦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듯이 보이는 작금의 추세 속에서 과장과 요설 없는 시인의 세계는 고유의 간곡함으로 부가적 의미를 얻게 된다. 젊음의 노도질풍기와 중년의 신산함을 지나 노년의 시인은 이제 평정과 평온의 심경에 이른다. 세상 이치에 대한 화해와 거기서 유래한 인간 긍정과 세계 긍정이 성취한 정신의 경지다. 봄꿈을 기다리는 동안 행복할 수 있는 심경이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터이다. 그것은 시인의 평생 경험이 안겨준 모색과 태도 형성의 결과일 것이다. 그리하여 김종해의 시편들은 은은하고 탈속한 삶에 대한 송가가 되어주고 있다.”

    유종호(문학평론가, 예술원 회원)


    “김종해 시인의 시집에는 김종해 시인의 등단 60년간의 시력이 편안하게 숨 쉬고 있다. 삶의 산전수전뿐만 아니라 시의 산전수전도 다 겪은 노시인은 편안하고 자유롭고 오히려 천진해졌다. 시인은 이제 높은 뜻을 만들려고 긴장하지 않으며, 멋진 기교의 언어를 구사하려고 애쓰지도 않으며, 새로운 시의 비경을 찾아 헤매지도 않는다. 등단 60년간의 시력은 시인으로 하여금 일상의 느낌과 생각이 그대로 시가 되게 하였고, 시와 삶이 하나가 되게 하였다. ‘나는 붓을 던져도 그림이 된다’고 중광 스님이 말한 바 있지만, 김종해 시인이야말로 ‘나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도 시가 된다’고 해도 될 것 같은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남호(문학평론가, 고려대학교 교수)


    “김종해 시인의 이번 시집에는 그전에 출간했던 시집들에서조차 감지하기 어려웠던 무언가 색다른 것이 있다. 시어가 한층 더 평이해졌고, 시적 진술도 형식의 구속에서도 한층 더 자유로워졌다. 그뿐만이 아니라, 시적 소재도 평범한 사람들과 사물들 및 그것들이 존재하는 낮고도 낮은 세상의 체취가 한층 더 강렬하게 느껴지는 것으로 바뀌었고, 또한 다양해졌다. 다시 말해, 그동안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시인의 다원적, 다층적인 눈길이 전보다 한층 더 낮고 낮은 질박한 세상의 이곳저곳을 향하고 있음을 감지케 한다.”


    장경렬(문학평론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모두가 헐벗었던 1963년 그 허기의 시대에 시인으로 출발하여 암울한 현실에 저항의 칼날을 내세우는 한편 새로운 표현미학을 탐색하던 시인은 60년이 넘는 시인의 공력을 거쳐 무욕의 미학, 무심의 사랑의 자리에 이르렀다. 그가 걸어온 시인의 길이 어찌 우연의 소산일 것인가? 하늘에 새와 달과 별의 길이 있듯 그는 김종해의 길을 택하여 그만의 길을 걸어온 것이다. 그 독자적인 길의 여정과 행로에 무욕의 축복이 깃들 것이다.”

    이숭원(문학평론가, 서울여대 명예교수)


    출판사 서평



    “무슨 말을 해도 시가 되는 경지” ─이남호(문학평론가)
    삶과 존재에 대한 경험적 통찰과 함께 따스하고 서정적인 시편을 발표해왔던 한국 시단의 원로 김종해 시인의 새 시집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가 문학세계사에서 출간되었다. 올해로 시력詩歷 60년이 된 김종해 시인의 새 시집을 펼치면 60년이라는 시력을 관통하는 내공과 무게가 느껴진다.
    삶에 대한 경험적 통찰과 따스하고 아름다운 서정으로 가득한 김종해 시인의 시는 정갈하고 함축된 언어로 삶과 자연의 섭리를 들려주고 있다. 김종해 시인의 이번 시집은 아름다운 서정시를 읽는 즐거움을 깨닫게 해줄 뿐만 아니라, 청정한 이미지와 짧고 긴장된 함축미의 진수를 보여준다.
    김종해 시인은 ‘사람의 온기가 담겨 있는 따뜻한 시, 영혼의 갈증을 축여주는 생수 같은 시, 눈물이나 이슬이 묻어 있는 듯한 물기 있는 서정시, 너무 압축되고 함축되다가 옆구리가 터진 시, 삶의 일상에서는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있다가 세상사의 중심을 시로써만 짚어내는 시인의 시, 울림이 있는 시, 향기가 있는 시’를 쓰고 싶다고 꾸준히 자신의 시론을 밝힌 바 있다.

    ‘벼랑’을 짊어진 시인이 걸어온 길

    김종해 시인의 새 시집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는 죽음과 죽음의 임박과 죽은 이들에 대한 회상과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다. 일견 평이해 보이는 듯한 언술들로 구성된, 일상의 평범한 일들을 시에 끌어들이는 듯한, 무신경을 가장한 시들이, 전혀 일상적이지 않은 기운을 내장하고 있다. 이 시집에서는, 죽은 이들, 그것도 그냥 일가 사람들, 지인들은 아니고, 문학사 속에서 이름을 접할 수 있는 시인들의 이름들이 발견된다. 김광림(「외출」), 최하림(「섬에서 최하림 시인을 만났다」), 이어령(「봄이여 무심하구나─이어령 선생님을 그리며」, 「알람을 껐다」), 박목월(「따뜻한 지폐」), 조지훈, 박남수(「한 마리의 새, 이민을 가다」) 등이다. 이런 인연은 시인의 성장이나 성숙, 그리고 문제의식 벼리기에 더없이 중요한 것이다. 의미 있는 문학인을 직접 만나는 것, 인간을 느끼고 대화 나누는 것, 문학적 질문의 심층에 도달하는 것, 이런 것들을 체험적으로 터득한 것이다.

    김종해 시인은 이전의 작품에서 서울의 질병적 상태에 대한 화자의 ‘경악’에 가까운 환멸을 표현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신적 충격을 딛고 구원에 다다르고자 하는 완강한 의지 또한 표현한 적 있다. 김종해 시인이 어둡고 추운 ‘서울’의 현실에서 길을 찾아 뜨겁게 살아가던 시대는 어떻게 되었을까? ‘서울의 봄날’은 아직도 ‘캄캄하다.’(「서울이 캄캄하다」) 하지만 객관적인 현실 그 자체란 없으며 그것은 언제나 그것을 대하는 사람에 의해 해석되고 이해된 어떤 것이지 않을 수 없다. 이 시집을 통해서 보는 김종해 시인의 현실은 이제 연행되는 지식인, 학생과 검열로 얼룩진 그런 것은 아니다. ‘서민 대중’의 삶은 그의 심중 깊은 곳에 아직도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겠지만, 그는 이제 그런 것을 고통스러워하며 대담과 논쟁과 질문의 주제로 올리는 대신 그런 어둠, 고통을 내장한 세계에 자신이 찾아왔고 이제는 그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응시하고자 한다.

    삶에 대한 원숙한 통찰, 따스하고 아름다운 서정의 함축미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는 깨달음,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린 느낌, 삶의 일상에 어른거리는 죽음의 그림자, 간단없이 찾아오는 떠난 이들의 기억, 노쇠해 가면서 외롭게 되는 것, 피붙이들이 주는 작은 기쁨들, 이런 것들 속에서 김종해 시인은 삶이란 무엇인가를, ‘나’는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무엇을 생각하고 노래해야 하는가를, 편안해지고 순치된 것 같은 포즈 아래 여전히 예민함을 잃지 않는 감각, 느낌으로 묻고자 한다.

    나이 팔순을 지나가니까
    풀이 문득 보인다
    풀이 보이니까 바람마저 보인다
    풀 앞에 서면 나도 말을 버린다
    말을 잊고 사는 것은 풀만이 아니다
    한 마디 말도 하지 않고
    풀은 일생을 살아간다
    풀의 말을 해석하지 못하므로
    나는 외롭다
    말을 버린 풀처럼
    바람이 불어오는 쪽을 향해
    나는 필생畢生으로 온몸을 편다
    풀이 흔들린다
    ─「풀 앞에 서서」 전문

    이 시를 쓰면서 그가 김수영 시인의 「풀」을 의식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시를 읽으면서 김수영의 「풀」을 생각하며, 시인이 이 「풀」과의 거리를 어떻게 의식하며 자신의 ‘풀’을 노래하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김수영의 ‘풀’은 민중적인, 서민적인 전통적인 의미를 내장하면서도 그보다는 훨씬 더 바람과 풀의 존재론적인 호응과 존재론적 삶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김종해 시인의 ‘풀’이라고 할 「풀 앞에 서서」에서 화자는 자기 자신이, ‘나’ 자신이 ‘풀’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는다. ‘나’ 자신 또한 ‘풀’처럼 ‘바람이 불어오는 쪽을 향해’ ‘필생畢生으로 온몸을’ 펴는, ‘풀’과 같은 존재, 바로 그것이다. ‘필생’을 ‘서울’의, “현실”의 어둠에 맞서 거세게 헤쳐나오며, ‘항해’를 하며 살아온 그였건만, ‘나이 팔순’에 다다라 보니 이제 ‘풀’이 보이고 ‘풀’을 나부끼게 하는 ‘바람’이 보인다. ‘말’을 버린 ‘풀’의 ‘일생’이 보인다. 침묵 속에서 ‘흔들리는’ ‘풀’처럼 ‘나’ 또한 ‘말’을 잊고 하나의 존재로서의 자신의 삶을 생각하며 서 있을 수밖에 없다.
    김종해 시인은 또 다른 곳에서 ‘풀’을 이렇게도 노래한다.

    풀잎끼리도 말을 한다
    풀잎끼리 서로 지껄이는 조그만 귀엣말
    내가 풀잎이 되어야
    겨우 알아듣게 되는 저 풀잎의 말
    서로 사랑하는 모든 존재는 흔들린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살아 있는 것은
    서로 사랑하니까 흔들린다
    풀잎의 옷을 비껴 입고
    제 몸의 가녀린 무게를 실은 뒤
    바람에 몸을 맡기는
    저 작은 생명의 귀엣말을
    나는 풀잎이 되어 엿듣는다
    ─「풀잎끼리도 사랑하니까 흔들린다」 전문

    이 시에서도 ‘나’는 이제 ‘풀잎’이 되어 있다. 여기서 ‘풀잎’은 하나하나의 생명적 존재를 가리키는 ‘대명사’ 또는 ‘집합명사’가 되어 있다. 이 존재들로 하여금 서로 호응하게 하고 의지하게 해주는 것, 그것의 동인動因은 바로 ‘사랑’이다. “내가 풀잎이 되어야 / 겨우 알아듣게 되는 저 풀잎의 말”, 그것은 “서로 사랑하는 모든 존재는 흔들린다”는 ‘진리’다. 모든 문학적 질문의 정답, 해답은 ‘사랑’에 있는 것을, 김종해 시인의 시적 화자는 ‘팔순’ 즈음에 다다라 이제 명료하게 인식한다. ‘서울’의 영원한 타향인으로 어둠 속 ‘현실’을 필사적인 항해의 거스름으로 헤쳐나온 그는 이제 죽음이 보이는 삶의 국면에 다다라 있음을 느끼며, ‘사랑’이라는 삶의 기적, 모든 문학적 질문의 정답, 해답을 찾아낸다. 이렇게 되면 이제 투쟁하는 아우성의 현장과는 다른 삶의 국면이라 해도 그 삶의 ‘일상’들은 단순한 ‘일상’이 아니다.

    아침에 잠을 깨니
    유리창에 빗방울이 가득 맺혀 있다
    밤사이 하늘이 써서 보낸 기별을
    나는 놓쳤다
    하늘은 아직 어둡고
    바람은 유리창에 제 모습을 적어 놓지 않았다
    사람 살아가는 일 다 그렇지
    단순하지
    비가 오니까
    오늘 아침 나는 우산을 들고
    집을 나설 것이다
    일상 속에서 일상의 바람에 부대끼며
    오늘 내린 빗방울에
    조금은 옷자락이 젖을 것이다
    젖는 일마저
    나는 편안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오늘은 비」 전문

    이 시에 등장하는 ‘비’는 단순한 비가 아니라 저 앞의 시들에서 ‘풀’로서, ‘풀잎’으로서 자신을 의식하는 ‘나’의 ‘옷자락’을 적시는 ‘비’인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이 ‘존재’의 ‘일상’의 의미를 새롭게 인식하게 하는 ‘비’, 바로 그것이다. 오랜 시간을 위태로울 만큼 뜨거운 내부를 끌어안고 ‘걸어온’ 시인은 죽음이 어른거리는 삶의 국면을 의식한다. 삶은 이제 죽음에 가까워졌고, 그 얇아진 경계만큼 삶의 ‘현실’은 이제 ‘사회’의 그것보다 ‘자연’으로서의 그것 자체가 된다. “절벽을 마주 서 본 사람의 결기”(「길 위에서」)를 접는다. “눈송이를 이고 하늘로 오”르는 ‘바람’을 ‘보며’ “각을 세운 세상”과는 다른 쪽으로 가던 「눈송이는 나의 각角을 지운다」(『눈송이는 나의 각을 지운다』, 문학세계사, 2013, 36쪽)의 ‘나’를 거쳐, 이제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가 된다. “오늘 내린 빗방울에” “조금은 옷자락이 젖을 것”이고, ‘나’는 바로 ‘풀’이고 ‘풀잎’이기 때문에 ‘젖는 일마저’ “편안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자연적 존재 바로 그것으로써 하루하루를 살고, 서귀포든, 신안이든, 블라디보스톡이든 떠나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 홀로, 차오르는 죽음의 기운을, 그리하여 오늘 살아 있는 삶의 의미를 받아들일 것이다.

    저자 소개
    저자 : 김종해
      김종해
      부산에서 태어났다. 1963년 《자유문학》지와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현대시》 동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창립발기위원, 문학세계사 창립 대표. 시전문 계간지 《시인세계》 발행인.
      제34대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지냈다.
      현대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한국시협상, 구상문학상 본상, 공초문학상, PEN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인간의 악기』, 『신의 열쇠』, 『왜 아니오시나요』, 『천노, 일어서다』(장편서사시), 『항해일지』, 『바람 부는 날은 지하철을 타고』, 『별똥별』, 『풀』, 『봄꿈을 꾸며』, 『눈송이는 나의 각을 지운다』, 『모두 허공이야』, 『늦저녁의 버스킹』,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가 있다.
      시선집 『누구에게나 봄날은 온다』, 『그대 앞에 봄이 있다』, 『무인도를 위하여』, 『우리들의 우산』, 『어머니, 우리 어머니』(김종해·김종철 형제 시집) 등과 산문집 『시가 있으므로 세상은 따스하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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